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정덕재 시집
정덕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일상과 욕망의 목소리를 현미경 렌즈로 들여다보는 시인의 은밀한 시선 속에 위트와 풍자가 묻어 나온다. 첫 시집의 재미와 농담을 더욱 숙성시켜 구수한 향기까지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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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정덕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일상의 사소함을 사소하지 않게 만들고, 보이는 것의 뒷면을 꼼꼼하게 살피는 정덕재 시인의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은 일상과 욕망의 목소리를 현미경 렌즈로 들여다보는 시인의 은밀한 시선 속에 위트와 풍자가 묻어 나온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덕재 시인은 첫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에서도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일상을 뒤집으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닿아야 할 곳을 재미있게 안내해준 바 있다. 이번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에서는 첫 시집의 재미와 농담을 더욱 숙성시켜 구수한 향기까지 퍼뜨리고 있다.
시인은 있는 그대로를 줌-인(zoom-in)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슬며시 건드리고 있다. 주목할 대상 중 하나는 '음식'과 그로 촉발된 '맛' 그리고 '기억'이라는 심리적 작용이다. 황도, 김밥, 라면, 통조림은 일상적인 먹을거리다. 이러한 것들을 시적 대상으로 의미화한 것은 기억의 연장 혹은 보존이라는 맥락을 동시에 지니는, 시간을 유예하는 발명품에 대한 양가적 발로라고 할 수 있다. '통조림'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도 없는/쇠 갑옷을 입고/몇 년을 서 있거나 /누워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한 줄기 빛도 받지 않는/깊고 깊은 숙면/혹은 일어날 수 없는/영면"(「세상의 거의 모든 통조림」) 상태인 통조림은 가공된 일상과 인공적인 삶에 대한 쓸쓸한 은유다. 시인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는 통조림과 일상을 저장하는 냉장고, 냉동고, 김치냉장고를 소재로 해학적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저장과 한 쌍을 이루는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현대화된 삶을 반복적으로 변주해 보여준다.
3년 만의 기회가/몇 초 만에 날아가 버렸지만/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퇴한 공필원 선수가 기억하는 건/되돌이표 같은 긴 탄식이 아니라/7초간의 함성이다/기름 솥에서/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함성으로 들려/벌써 십오 년째 치킨 가게를 운영 중이다
―「7초 영웅」 부분
이번 시집에서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시의 '이야기성'이다. 야구와 축구를 두고 펼쳐지는 시편들은 일상의 파노라마를 예시한다. 우리가 이야기함으로써 일정부분 결핍과 작은 분노들을 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이 살아내는 힘 또한 이야기다. 「7초 영웅」은 프로 데뷔 후 한 골도 넣지 못한 공필원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맞았으나 끝내 골을 넣을 기회를 잃고 지금은 십오 년째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에서 공필원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의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개인의 스토리는 시대를 넘어 히스토리로 확장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24시간 간판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이/검문소처럼 놓여있다/잠시 자동차 속도를 늦추고/머뭇거리는 차의 대부분은/담배/맥주/스타킹을 사면서/스스로 검열대에 선다/아파트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편의점이/새벽을 거부하기 때문이다/컵라면 뚜껑 사이로/따뜻한 김이/모락모락 피어오르는/새벽 다섯 시//편의적이지 않지만/편의상 너는 안개다
―「편의적이지 않은 편의점」 전문
시인은 개인화 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일상과 그것의 상업화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편의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시집의 표제작인 이 시에서 잠들지 않는 것은 비단 아파트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둠 대신 불빛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는 편의점에서 상품이 검색대에서 찍히듯 잠을 잊은 몸으로 검열대에 오른다. 바코드화 된 몸의 총체는 '편의점'이자 시스템화 된 사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새벽을 거부하는 편의점에 들르는 군상은 담배와 맥주와 스타킹이 필요한 소시민이다. 새벽 다섯 시에 편의점을 출입하는 이들을 위해 그러니 편의점은 편의적이지 않지만 편의적이어야 할 운명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시집 제목인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은 새벽까지 불 밝힌 편의점에서 안개까지 파는 현실에 우울하나 한편으로 이 시대의 비루하고 애잔한 이들이 잠시 머물고 갈 정거장이라는 점에서 따듯한 공간이기도 하다
■ 정덕재 시집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약평
청년의 풍모들이 어느새 초로의 시점이니 동반의 세월도 빛의 속도다. 서랍을 열고 연필꽂이로 숨어 행태를 짯짯이 찍어나 볼까. 출근 한 시간 전까지는 원형 불빛에 몰입하는 시인의 몰골이었다가 작업 종료 직후 목로집 부대찌개 앞에서는 드라이한 술꾼으로 변신하지 않던가. 가로 15센티 세로 25센티 종이 하우스를 넘기다 보면, 겨우 식자재 사연으로 대기하다가 뚜껑을 여는 순간 사무치는 페이소스 문자들의 아우성을 만나면서 그 결의가 더욱 굳어버렸다. 기껏해야 7초 함성의 주역이었던 치킨센터 주인이 오래된 동반자 풍경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담장 속에 숙성시킨 자양분 탓이리라. 그러면서 가끔은 그가 드리운 토란잎 그늘 아래서 개미집 되어 느긋하게 박자도 맞추고 싶은 것이다._강병철(시인, 소설가)
사람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물 위를 걸었던 이가 몇인지 알 수 없지만 사실 그 원리는 간단하다. 내딛은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음 발로 무게중심을 넘기면 그만이다. 느긋하게 한쪽 발을 믿고 의지하는 순간, 물에 흠뻑 젖는 것은 그 한쪽 발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매서운 의심의 눈초리로 주변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물 위를 걷는 사람이다. 한밤, 아니 어느 아침이나 저녁, 이 시집과 마주한 이는 한 시인이 물 위를 걷는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사물의 한 꺼풀 뒤에 꽂혀있는 눈초리로 견고한 것들을 의심하면서 사건과 관계들을 빠르게 훑는 발걸음을 만날 테니까._김병호(시인, 과학저술가)
목차
목차
맛의 기억형성·11
7초 영웅·12
시옷과 쌍시옷·14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16
꼭 필요한 사용설명서·18
층간소음의 유래·20
공공의 적·22
나무의 이동·24
홈런볼의 궤적·26
개의 이름·30
발등이 되고 싶은 발바닥·31
늙은 눈·32
ㄱ과 ㄴ사이·33
턱을 괴다·34
제2부
기억의 열쇠·39
가스레인지와 냉장고의 대화·40
전자레인지와 냉동실의 공존·42
참치 통조림의 일생·44
냉장고 뒤에 김치냉장고·46
세상의 거의 모든 통조림·48
황도의 자세·50
김밥의 혁명·52
다르지만 같은 삼각김밥·54
새벽 운동장에서 새의 역할·55
이종 잡스러운 스포츠 개꿈을 꾸다가·56
세상의 모든 그네·58
리모컨을 찾는 시간·60
반납을 독촉함·62
라면 신세계·64
제3부
소리를 찾다·69
빈집·70
땅의 질식·71
뱉고 옮기고·72
극장이 깜깜한 이유·73
우울한 채소·74
꽃의 순서·76
푸른 멀미·77
약·78
식물의 노래·80
사랑의 임계점·81
사랑의 전설이 그네를 타고 뒤뚱뒤뚱·82
제4부
시집과 소설집과 산문집을 내는 작가에 고함·89
퇴근 1시간 전에 퇴근을 생각함·90
출근 1시간 전에 출근길을 생각함·92
늙은 피부·94
물방울 속 낙타·96
슬하(膝下)·98
관광객과 여행자를 태운 고속관광버스·99
시인의 의자·100
눈물·101
바람의 DNA·102
일부 단어에 대한 시론·106
문장론 1·108
문장론 2·110
해설·111
시인의 말·127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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