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 되어 조선을 비추다(양장본 HardCover)
한국 최초 여의사 김점동
『큰 별 되어 조선을 비추다』은 “한국 최초 여의사 김점동 큰 별 되어 조선을 비추다”는 ‘이화의 여웅’ 중 김점동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으로, 대한민국 근대 여성 교육의 역사, 여성의 사회 활동 개척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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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국 최초 여의사 김점동 큰 별 되어 조선을 비추다"는 '이화의 여웅' 중 김점동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으로, 대한민국 근대 여성 교육의 역사, 여성의 사회 활동 개척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치마저고리에 댕기머리 소녀가 의사가 되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까지의 과정은 곧 우리나라 근대 여성 교육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국 북감리회 해외여선교회에서 파견한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턴이 1886년 세운 이화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의 네 번째 학생이었던 김점동은 성경과 영어 공부에 특히 뛰어나 새로이 파견돼 한국에 오는 선교사들의 통역을 맡아 하였다.
당시 조선은 내외법이 엄연하여 남녀가 한 자리에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여성들의 바깥출입도 제한적이었다. 남자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일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스크랜턴 선교사는 여성전용 병원을 세워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 병원이 된 보구여관이 그것이다. 보구여관의 의사선교사로 온 로제타 셔우드(후에 의사 선교사 홀 박사와 결혼하여 셔우드 홀, 또는 홀 부인이라 불림)는 자신을 통역해 주는 김점동의 재능을 눈 여겨 보고 의사로 키우기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점동은 처음에 의학 공부를 두려워하였으나 구순구개열 환자가 수술을 받고 멀쩡하게 낫는 것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꾼다.
홀 부인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을 간 김점동은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현재 존스홉킨스의과대학)에 입학, 남편의 도움으로 어렵게, 어렵게 공부하여 마침내 의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 보구여관과 평양 광혜여원 등에서 매년 3~4천 명의 환자를 돌보았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를 순회하며 위생 계몽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또 자신의 스승인 홀 부인과 함께 맹아학교와 간호학교를 설립하고 성경 학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한 과로로 1910년 4월 13일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김점동의 뛰어난 영어 실력과 헌신적인 의료 활동은 곧 교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 땅의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5년 개교 129주년을 맞는 이화여고는 7만 명에 가까운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교육계와 의료계, 문화예술계, 사회사업 등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목차
목차
김점동이 이화에 남긴 메시지
제1장 한 알의 밀알들
라벤나의 볼드윈 여사
보스턴의 가우처 박사
미국 선교사 파견의 1등 공신 이수정
조선 외교의 치열한 현장, 정동
제2장 김점동
조선의 첫 여 선교사 스크랜턴 대부인
조선의 첫 민간 병원, '시병원'
정동에 문을 연 이화학당
김홍택과 네 딸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
제3장 김에스더
점동에서 에스더로
여성 전문 병원 보구여관
외국인드르이 아이를 잡아먹는다?
윌리엄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
소녀 통역사와 로제타 셔우드의 만남
제4장 박에스더
김에스더에서 박에스더로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은 어느 곳이든 갈 것
청일전쟁과 닥터 홀의 죽음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홀 기념병원과 광혜여원, 그리고 에디스마거리트 어린이 병동
남편과의 사별, 의학사 취득
의사선교사로 귀국
가마와 나귀 타고 순회전도
맹인 교육과 간호사 교육
고종황제로부터 은장 받다
34년간 타오른 불꽃 사그라들다
에필로그
또 다른 김점동을 기다리며
책을 쓰고 나서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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