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지 않는 희망
테리 이글턴이 전하는 21세기 희망 메세지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 그렇게 했을 때에만 이글턴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희망”의 여건을 조성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허망하고 낙관적인 희망에 대항하는 ‘값지고 현실적인 희망’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다. 그렇게 생성되는 희망은 욕망과 비극과 절망을 엄밀하게 직시하면서 낙관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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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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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일이 앞으로 발생하기를 희망할 수 없다'
기독교신자들은 신국의 출현을 확실성의 문제로 간주하면서도 신국의 출현을 기대하는 희망을 덕목으로 간주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는 관용어의 지극히 평범한 용법과 다르게, 그들은 앞으로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어떤 것을 신뢰한다. 사도 바울에게 희망은 메시아의 출현을 끈질기고 기쁘게 확신하면서 기다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희망은 그의 우주적 낙관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라서 논쟁을 불허한다. 그의 관점에서 희망은 평온한 확신의 문제이다.
알랭 바디우는 '비난을 불허하는 신학의 정통학설에서 희망은 확실성과 연관되며 신앙은 확신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 『설득Persuasion』에서 희망을 "미래를 믿는 명랑한 확신"으로 지칭한 것도 그런 희망을 재현하는 것이다. 기독교경전 『시편Psalms』은 '희망은 꺾이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고 사도 바울은 '희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어느 해설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에서 희망은 경솔한 낙관주의와 동떨어진 "확고부동한 신념과 설레는 확신"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희망이 '기원祈願하는 성질'뿐 아니라 '실행하는 성질'도 겸비한다. 어느 현대 사상가는 희망을 "어떤 목적의 바람직함과 실현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헌신"으로 보면서 심리상태의 일종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오히려 활동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면 진정한 만족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 희망소멸상태가 반드시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그런 상태는 절망을 치료하는 가장 강력한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 실행 불가능한 것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파멸을 예방할 수 있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한 체념정신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워는 '희망은 거짓기대감들로써 평정심을 교란하는 악惡의 근원이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이 완벽해질 때까지 영생할 수 있다면 모든 결핍에서 해방되면서 모든 희망에서도 해방될 것이고 종국에는 모든 실망에서도 해방될 것이다.
희망은 단순히 목적론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이 희망을 상실할 수 있어도 절망을 상실할 수는 없다. 비극과 마찬가지로 희망은 '인간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인간이 운명과 맺어야 할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적어도 '타인들이 나의 곤경을 보면서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하는 희망을 언제나 미미하게라도 품을 수 있다. 더구나 희망은 문화나 교육 같아서 비록 희망을 상실한 인간도 자손에게 유산을 물려주듯이 희망을 물려줄 수 있다.
결국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逆理的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 그렇게 했을 때에만 이글턴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희망"의 여건을 조성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허망하고 낙관적인 희망에 대항하는 '값지고 현실적인 희망'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다. 그렇게 생성되는 희망은 욕망과 비극과 절망을 엄밀하게 직시하면서 낙관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희망이 될 것이다.
* 책속으로 추가 *
최악상황은 다소 왜곡된 의미를 띠는 희망의 원천이다. 왜냐면 최악상황에 처한 사람은 그것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는 내몰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으므로 차라리 편안해질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는 없어"라고 단호히 주장하면 다른 사람은 "오 맞아, 그럴 수는 없지"라고 응답하는 뜬금없는 문답도 있을 수 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낙관주의자이고 누가 비관주의일까? 에스파냐의 소설가 엔리케 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1948~)가 소설 『더블린 사람Dublinesque』에도 썼다시피, "인간은 최악처지에 내몰려도, 가장 비참해지고 가장 철저히 망각되어야 할 운명에 휘말려도, 언제나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비판Critique of Instrumental Reason』이라는 저서에서 '쇼펜하워는 정확히 완전한 희망부재상황希望不在狀況을 직면하므로 희망에 관해서 다른 어느 사상가보다 더 많이 안다'고 논평한다.블레즈 파스칼의 관점에서는 인류의 지독한 참상이 바로 희망의 아이러니한 원천으로 보이는데, 왜냐면 그런 참상을 개선할 수 있는 손에 인도되어야 할 '신의 은총에 쓰일 재료들의 종류'를 암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참상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예술역사학자 맬컴 불Malcolm Bull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도 워낙 굶주리고 탈진하여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인다고 무젤말Muselmann으로 지칭되던 재소자들은 희망을 아예 품지 못하므로 상처받을 수도 없는 "그들의 희망부재상황 때문에 구제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권력은 권력술책들을 감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에드거가 변장할 인물로 선택하는 부랑아처럼,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법에 대항하는 법』에 나오는 정신병자 같은 악당 바너딘Barnadine 처럼, 잃을 것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남녀들은 전혀 두려워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므로 위험하지도 않는 개인들로 판명될 수 있다. 자기박탈은 극한으로 내몰리면 거꾸로 뒤집혀서 기묘한 종류의 자유로 변할 수 있는데, 왜냐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태어나는 귀중하고 희귀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242-243쪽
목차
목차
1장 낙관주의의 진부함
2장 희망이란 무엇인가?
3장 희망철학자
4장 희망에 대항하는 희망
번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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