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사냥
나카지마 아츠시 단편선
나카지마 아쓰시의 문학 스펙트럼은 일본 문학사에서도 손꼽힌다. 그의 문학은 중국 고전, 아시리아 설화 등 이국적 소재, 일본 바깥에서의 경험과 느낌을 오간다. 1920년 9월, 나카지마 아쓰시는 용산중학교에 한문 교사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왔다. 그 시절의 경험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을 소재로 한 「호랑이 사냥」 「순사가 있는 풍경」 「수영장 옆에서」 등을 쓴다. 「호랑이 사냥」은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담겼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또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외면당했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소설에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비판을 담았다. 동시에 조선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잃지 않았다. 어느 한쪽을 정당화하지도, 어느 한쪽을 동정하지도 않아서 한일 독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에는 금기에 가까운 소재(강우규 의사의 조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 사건)로 소설을 써서 교우 문집에 투고하고, 훗날 「호랑이 사냥」을 썼다고 생각하면, 암울한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간 문학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34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 요절 작가. 일본 바깥에서 겪은 경험이 만들어낸 깊고 넓은 고민. 그의 문학의 광대한 스펙트럼은 여기에서 태동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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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나카지마 아쓰시의 아버지는 한문 교사였다. 1920년 9월,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용산중학교에 발령을 받아 나카지마도 함께 조선으로 넘어갔다. 나카지마는 당시 경성의 용산소학교(서울 남정초등학교의 전신, 1905년 일본인 학교로 개교), 경성중학교(서울고등학교의 전신, 1909년 일본인 학교로 개교)를 졸업했다. 그 시절의 경험으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소재로 한 「호랑이 사냥」 「순사가 있는 풍경」 「수영장 옆에서 등의 소설이 탄생했다.
나카지마 아쓰시가 조선에서 경험한 것을 배경 삼아 쓴 소설 「호랑이 사냥」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국 독자에게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에서 당시 호랑이 사냥을 갔다거나, 그 시절에도 황사가 있었다거나, 그때에도 국수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었다거나 등 사료적 측면이 흥미로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우리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오갈 법한 이야기다.
「호랑이 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은 한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담겼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또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외면당했다. 물론 나카지마 아쓰시는 소설에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비판을 담았다. 동시에 조선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도 잃지 않았다. 어느 한쪽을 정당화하지도, 어느 한쪽을 동정하지도 않아서 한일 독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니, 불편해야만 하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에는 금기에 가까운 소재(강우규 의사의 조선 총독 암살 미수 사건,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 사건)로 소설을 써서 교우 문집에 투고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훗날 「호랑이 사냥」까지…… 그 역시 암울한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간 문학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호랑이 사냥」의 화자인 일본인 소년은 작가의 소년 시절을 염두에 둔 듯하다. 소설로 미루어, 그는 '흔치 않은 귀중한 경험을 위해서라면 부모님의 잔소리 정도는 개의치 않는 태생적인 쾌락주의자'였던 것 같다. 나카지마는 1942년 12월, 34세의 나이로 너무도 일찍 운명을 달리한다. 일본 바깥에서 겪은 경험이 만들어낸 깊고 넓은 고민. 그의 문학의 스펙트럼은 여기에서 태동했을 것이다.
목차
목차
순사가 있는 풍경 - 1923년의 스케치 하나 1929 64
문자 사변 1942 94
옮긴이의 말 112
작가 연보 118
저자
저자
용산소학교, 경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으로 귀국한 뒤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순사가 있는 풍경」 「호랑이 사냥」을 집필했다. 도쿄제국대학(현재 도쿄 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1934년부터 천식 발작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1941년 6월 팔라우 남양청에 부임했다. 이해에 그의 대표작인 「산월기」 「문자 사변」 「빛과 바람과 꿈」 등을 썼다. 1942년 3월 잠시 귀국했다가 천식이 악화되어
그대로 도쿄에서 치료를 받는다. 7월에 그의 첫 소설집 『빛과 바람과 꿈』이 출판되고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른다. 이후 전업 작가로 살았지만 병이 악화되며 같은 해 12월,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1948년 지쿠마쇼보에서 『나카지마 아쓰시 전집』(3권)이 간행되어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산월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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