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뒤에 생각나는 것들
서서히 멀어져가는 기억 속을 붙잡고 싶은 저자의 애잔함이 돋보이는 이응수의 수필집 [떠난 뒤에 생각나는 것들]. 두 편의 수필집, 몇 편의 장편소설과 비평집으로 호평을 받아온 저자 특유의 잔잔함과 꿀벅지 예찬(?), 반려견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명품에 대한 소회, 자식 주례 서기, 추억의 하모니카 등에서 느낄 수 있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노년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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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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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꽃을 왜 보지 못했을까
인생 포물선의 끝자락이 노을 속으로 저만큼 보이는 지점에서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모처럼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본다.
얼룩으로 물든 흔적 사이로 홀연히 고은 선생의 시 [그 꽃]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왜 보지 못했을까.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 돌아서서 내려다보니 거기에 너무 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다른 길을 에돌아 온 것도 아닌데, 그런데 왜 그때는 그 꽃들이, 그렇게 는실난실 손짓을 하고 피어있는데도 내게는 보이지 않았을까.
마음 같아서는,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새로 한 번 올라왔으면 싶다. 올라올 때 그 꽃들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내 생각도 달랐을 것이고, 따라서 다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를 테고, 지금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모습으로 여기에 올라와 있을 터인데···.
아마 시인도 나와 같은 안타까움 때문에 [그 꽃]을 노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서서히 멀어져가는 기억 속을 붙잡고 싶은 저자의 애잔함이 돋보이는 수필집이다. 이미 두 편의 수필집, 몇 편의 장편소설과 비평집으로 호평을 받아온 저자 특유의 잔잔함과 꿀벅지 예찬, 반려견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짝퉁 명품 선물을 받고 난 후 소회, 자식 주례 서기, 추억의 하모니카 등에서 느낄 수 있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노년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제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대한민국, 과연 우리 아버지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책속으로 추가
내가 신기해서 정신없이 매달리는 게 부담이 되었던지 한참 뒤, 그때서야 실토하듯 다음 이야기를 꺼낸다.
"아버지, 실은 이거 짝퉁입니다. 진짜의 십분의 일 가격도 안 됩니다. 그러나 진짜하고 똑같아요. 자식이 출장 선물로 준 거라면서 아버지가 갖고 다니시면 아무도 모릅니다."
짝퉁이라는 말에 그만 기분이 반감으로 뚝 떨어진다. 그러나 막내는 그게 이미 생활화가 돼 그런지, 모처럼 선물을 가짜로 준다면 아무리 상대가 만만한 부모라도 조금은 가책이 들만도 한데, 전혀 내색이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왕지사 그렇게 된 거 같이 싸잡혀 돌아가는 수밖에는.
"우리가 쓰는 거 아무려면 어떠냐, 됐다."
"이런 거 제대로 구분하는 사람도 잘 없습니다. 전문가들도 속아 넘어가는데요, 뭘."
이런 선물은 짝퉁이 당연하다는 듯, 듣자하니 서글픔이 울컥한다. 마음 같아서는 "이눔아, 모처럼 부모한테 하는 선물 이왕이면 진짜로 할 것 아니냐, 아니면 짝퉁이란 말을 하지 말든지." 이 말이 목구멍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지만, 할 수없이 다독거려 리턴을 한다. 하지만 또 어쩌랴, 계속 그렇게 같이 뒹굴어 굴러가는 수밖에.
나는 그 짝퉁 구찌 지갑과 벨트를 3년째 가지고, 매고 다닌다. 그런데 신기한 건, 누구도 자네 그거 웬 거냐며 물어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사실이다. 구찌라는 글씨를 모르는 건지, 아예 그런 쪽으론 담을 쌓은 건지, 아니면 친구들이란 사람들이 모두 고물딱지라 그런지, 누가 알더라도 한두 사람은 알고 있지 싶은데 전혀 반응이 없다. 자네 깜냥을 내가 아는데 설마 자네가 구찌랑 짝을 이루려고 해서 아예 무시해버리는지 그런 거까지는 다 모르지만.
하여튼,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 생각인데 명품도 주인을 제대로 만나야 그 구실을 하는 것이지, 안 그런 담에야 말짤 꽝이다. 어쩌면 그런 게 명품의 비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으로 건져내야할 하나의 진실은, 아무도 관심 갖는 이가 없는데 괜히 나 혼자만 남이 알아주느냐 마느냐로, 헛고생으로 영혼을 낭비했다는 사실이다.
-명품은 내가 만드는 것 102∼103p
그런데 거기에 붙어있는 가격표가 조붓이 사람 신경을 건드린다.
'한 개 : 300원, 세 개 : 1,000원'
…(중략)
"가격표 이거 잘못 된 거 아닙니까?"
"어디가 잘못 됐는데요?"
태연한 대답이 잘못된 곳이 없다는 투다.
"한 개 300원이면 세 개 900원이 되든지, 안 그러면 한 개에 400원을 받아야···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평소 내 계산법대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상할 게 뭐 있습니까. 거기 써놓은 대로 사가면 되지요."
내가 묻는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저쪽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자기주장만 고수했다.
"···?"
할 말이 없다.
"잘못 쓴 거 아닙니다."
"아니 계산이 좀····."
"···."
이번엔 저쪽에서 이해가 안 되는지 대답이 없다. 아마 그때까지도 그는 내가 묻는, 궁금해 하는 까닭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조금 뒤 그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까? 한 번 더 묻고는 그렇다니까 그때서야 이렇게 설명을 한다.
"저한테는 애들이 고객이거든요. 애들한테는 천원도 큰돈이란 말입니다. 우리들끼리 정한 가격은 세 개에 천원인데, 천원이 없는 아이들도 사 먹을 수 있도록 그래 그런 가격을 만든 겁니다. 하나라도 더 팔면 그게 그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도 좋고 서로가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래 써 붙였습니다." "···!?"
나는 멍 때린 기분으로 다시 가격표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듣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 답을 얼른 못 생각해내고 왜 허우적거렸는지 모르겠다.
-착한 가격 147∼149p
한창 때 나한테 꿈은 춘원과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한의사인 아버지는 당신의 꿈으로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한테 그런 재능은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녔을 때 [학원]이라는 학생잡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 글이 한편 실리면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61년도 제 4회 김천 문화제 때 한글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일이 있고, 그해 한양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전국남녀고등학교 문예낭독회에 참여 그 학교 교수인 박목월을 비롯, 조지훈, 박두진 등 당대 유명 시인들이 직접 심사하는 자리에서 차하(次下)로 입상 (장원 : 조세희), 그런 선생님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나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 지내놓고 보니 그건 꿈이었을 뿐이다.
생활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 꿈이 월급쟁이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렇다고 갈아입은 옷이 꿈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꿈은 옷이 마냥 거추장스러웠고, 옷은 옷대로 그런 꿈이 짜증이 났다. 그들의 불협화음은 지금까지도 타협점을 못 찾아 허둥대며 발가락 새 티눈처럼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기차와 달리기를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한참동안을 같이 가기에 기차와 같은 속도인 줄 알지만 실은 그런 착각이 없다. 기차가 긴 걸 알고 그 착각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기차의 머리는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는 데야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일테면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연작(燕雀)이 어찌 알리오'가 되고 만 셈이다.
꿈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모두 꿈을 가지라고 부추기에, 저마다 꿈은 가지고 있다고 떠벌리기에,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모두 노래가 꿈 타령이기에 그렇게 해결이 되는 줄 알았다. 다 지내놓고 보니 풍차한테 칼을 뽑은 돈키호테의 꼬락서니로 남게 되는 걸 그때는 몰랐다.
-못난 꿈도 사랑할 수 있다면 232∼233p
목차
목차
그러나 오늘은 어제가 아닙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
*꿀벅지 르네상스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정말 만나고 싶었을까 *난(蘭)한테는 죄가 없다
*우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의문 하나 *익석관(翼蟬冠)이라니
*이제 화장실이 아니다 *세뱃돈,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이런 반려견(伴侶犬)이라니오? *어째 이런 일이
*그 사람 성은 '김이'요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았으면
*나는 허언증(虛言症) 환자 *망초(亡草)이야기
*태공망(太公望)을 그리며 *안타까운 진실
*아파트에도 골목이 있다 *나를 구속하는 것들
제 2부 제 4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래도 우리한테는 꿈이 있습니다
*오른손이 모르는 일 *못난 꿈도 사랑할 수 있다면
*명품은 내가 만드는 것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입니다 *자식 주례를 서보았더니
*어당팔을 아시나요? * 꿈과 운명과
*오수부동론(五獸不動論 ) *갑돌이와 갑순이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 *일흔에 생남(生男)이라더니
*기념메달의 추억 *돌멩이 하나에도
*착한 가격 *너희들은 나의 꿈
*미친 존재감
저자
저자
저서로는 문화비평집 『꼴값』,『영부인은 직위가 아닙니다』, 에세이 『이것만은 남기고 가야지,『지나간 것은 다 그리움이다』, 장편소설 『아버지의 시말서』,『갓바위에 뜨는 달』, 논픽션 『아파트 경비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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