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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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강력 추천! 죽음을 이토록 아름답게 쓴 작가는 없었다.
〈가디언〉 선정 최고의 100대 논픽션, 토머스 브라운 국내 초역
국내 초역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영문학 역사상 가장 장엄한 산문의 대가로 꼽히는 토머스 브라운 경의 Hydriotaphia, Urne-Buriall(1658)을 완역한 것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산문'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끌어 올린 '가장 매혹적인 비밀'로 불려온 작가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고고학적 보고서를 넘어, 한 줌의 재로 변한 인간의 운명과 망각에 저항하는 불멸의 야망을 노래한 '죽음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찬가'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영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지성 중 한 명이다. 그의 명성은 토머스 드 퀸시, 윌리엄 해즐릿,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최근에는 보르헤스와 제발트와 같은 다양한 애호가들 사이에서 '작가들이 인정하는 작가'로 통한다. 브라운은 인생의 대부분을 의사로 보냈지만, 그의 정신은 결코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1650년대 중반, 잉글랜드 노퍽주의 한 들판에서 고대 유골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이 우연한 사건이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를 탄생시켰다.
브라운이 진정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유물의 정확한 연대보다 '시간의 무자비함'이었다. 그는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던 제왕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반면, 이름 없는 자들의 소박한 유골 항아리가 수천 년을 버텨내고 우리에게 전해진 역설에 주목한다. 이 책을 펼치는 것은 17세기 어느 박식한 의사의 진귀한 보물 창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문장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죽음을 응시하다 끝내 삶으로 되돌아오는 사백 년 전 브라운의 눈부신 명상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디언〉 선정 최고의 100대 논픽션, 토머스 브라운 국내 초역
국내 초역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영문학 역사상 가장 장엄한 산문의 대가로 꼽히는 토머스 브라운 경의 Hydriotaphia, Urne-Buriall(1658)을 완역한 것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산문'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끌어 올린 '가장 매혹적인 비밀'로 불려온 작가이다. 이 책은 단순한 고고학적 보고서를 넘어, 한 줌의 재로 변한 인간의 운명과 망각에 저항하는 불멸의 야망을 노래한 '죽음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찬가'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영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지성 중 한 명이다. 그의 명성은 토머스 드 퀸시, 윌리엄 해즐릿,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버지니아 울프, 최근에는 보르헤스와 제발트와 같은 다양한 애호가들 사이에서 '작가들이 인정하는 작가'로 통한다. 브라운은 인생의 대부분을 의사로 보냈지만, 그의 정신은 결코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1650년대 중반, 잉글랜드 노퍽주의 한 들판에서 고대 유골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이 우연한 사건이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를 탄생시켰다.
브라운이 진정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유물의 정확한 연대보다 '시간의 무자비함'이었다. 그는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던 제왕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반면, 이름 없는 자들의 소박한 유골 항아리가 수천 년을 버텨내고 우리에게 전해진 역설에 주목한다. 이 책을 펼치는 것은 17세기 어느 박식한 의사의 진귀한 보물 창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문장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죽음을 응시하다 끝내 삶으로 되돌아오는 사백 년 전 브라운의 눈부신 명상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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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650년대 중반, 잉글랜드 노퍽주의 한 들판에서 사오십 개의 고대 유골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이 영문학 역사상 가장 장엄한 산문으로 평가받는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Hydriotaphia, Urne-Buriall)』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1658년 출간 직후부터 당대 지식인들을 매료시켰고, 수 세기 동안 수많은 문인의 펜 끝에서 인용되어 왔다. 새뮤얼 존슨부터 버지니아 울프에 이르기까지 그를 찬미하지 않은 작가가 없었으며, 특히 보르헤스는 브라운을 자신의 '또 다른 자아'처럼 여겼고, 제발트는 『토성의 고리』 첫머리를 브라운에 대한 오마주로 채웠다. 세대와 언어를 건너뛰며 이어져 온 문호들의 이와 같은 사랑은 브라운의 저작이 한때의 골동품이 아님을 말해 준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영문학사에서 자주 예찬되면서도 한국에는 늦게 도착한 고전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산문'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끌어 올린 '가장 매혹적인 비밀'로 불려온 작가이다. 그의 문장에는 의사의 냉철한 관찰과 시인의 장엄한 상상, 박물학자의 집요한 호기심과 신앙인의 깊은 사색이 한데 녹아 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천천히 차오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인류가 시신을 어떻게 태우고 묻어 왔는지 훑고(1장), 노퍽에서 나온 항아리들이 어느 시대 누구의 것인지 추적하고(2장), 유골 항아리와 뼈와 재를 만지작거리며 관찰과 상상 사이를 넘나들고(3장), 모든 장례 의식이 실은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의 표현임을 논증한다.(4장). 이 모든 과학적 조사와 사색이 마지막 5장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필멸성과 영원한 삶에 대한 장엄한 명상으로 날아오르며 절정에 달한다.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뼈와 재, 빗이나 핀 같은 소박한 유물들을 바라보며 브라운이 정말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유물의 정확한 연대보다 '시간의 무자비함'이었다. 그는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던 제왕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반면, 이름 없는 자들의 소박한 유골 항아리가 수천 년을 버텨내고 우리에게 전해진 역설에 주목한다. 브라운은 오래 기억되려는 인간의 안간힘을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그것이 공허한 망상이자 어리석은 기대이며, 잊히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것들의 비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놀랍게도 이 결론은 이름과 흔적을 강박처럼 남기며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뜻밖의 해방감을 준다.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으면, 먼 앞날에 얽매이던 마음이 풀려나 지금 눈앞에 놓인 삶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브라운의 독자들은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는데도,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살고 싶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브라운의 긴 문장과 라틴어 말투, 고전에서 끌어온 숱한 인용을 오늘의 우리말로 옮긴 국내 첫 완역작이다. 원문의 무게는 지키되 읽는 맛을 살리고, 낯선 이름과 옛 이야기에는 주석과 찾아보기를 넣어 사백 년 전의 목소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힘썼다. 책 제목은 브라운이 토머스 르그로스에게 부친 편지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왜 그토록 기억되려 하는 걸까?"라는 장강명 작가의 질문이 암시하듯이 내가 몇 번이나 옮겨 묻힐지, 내 재가 어디로 흩어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오래된 물음이 곧 이 책의 초대장이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영문학사에서 자주 예찬되면서도 한국에는 늦게 도착한 고전이다. 토머스 브라운은 '산문'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끌어 올린 '가장 매혹적인 비밀'로 불려온 작가이다. 그의 문장에는 의사의 냉철한 관찰과 시인의 장엄한 상상, 박물학자의 집요한 호기심과 신앙인의 깊은 사색이 한데 녹아 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천천히 차오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인류가 시신을 어떻게 태우고 묻어 왔는지 훑고(1장), 노퍽에서 나온 항아리들이 어느 시대 누구의 것인지 추적하고(2장), 유골 항아리와 뼈와 재를 만지작거리며 관찰과 상상 사이를 넘나들고(3장), 모든 장례 의식이 실은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의 표현임을 논증한다.(4장). 이 모든 과학적 조사와 사색이 마지막 5장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필멸성과 영원한 삶에 대한 장엄한 명상으로 날아오르며 절정에 달한다.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뼈와 재, 빗이나 핀 같은 소박한 유물들을 바라보며 브라운이 정말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유물의 정확한 연대보다 '시간의 무자비함'이었다. 그는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던 제왕들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진 반면, 이름 없는 자들의 소박한 유골 항아리가 수천 년을 버텨내고 우리에게 전해진 역설에 주목한다. 브라운은 오래 기억되려는 인간의 안간힘을 하나하나 헤아리다가, 그것이 공허한 망상이자 어리석은 기대이며, 잊히는 것이야말로 살아남은 것들의 비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놀랍게도 이 결론은 이름과 흔적을 강박처럼 남기며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뜻밖의 해방감을 준다.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으면, 먼 앞날에 얽매이던 마음이 풀려나 지금 눈앞에 놓인 삶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브라운의 독자들은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는데도,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살고 싶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브라운의 긴 문장과 라틴어 말투, 고전에서 끌어온 숱한 인용을 오늘의 우리말로 옮긴 국내 첫 완역작이다. 원문의 무게는 지키되 읽는 맛을 살리고, 낯선 이름과 옛 이야기에는 주석과 찾아보기를 넣어 사백 년 전의 목소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힘썼다. 책 제목은 브라운이 토머스 르그로스에게 부친 편지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왜 그토록 기억되려 하는 걸까?"라는 장강명 작가의 질문이 암시하듯이 내가 몇 번이나 옮겨 묻힐지, 내 재가 어디로 흩어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오래된 물음이 곧 이 책의 초대장이다.
목차
목차
이 숨 막히는 아름다움, 숙연함, 해방감 - 장강명
왜 우리는 토머스 브라운을 읽는가 - 버지니아 울프
벗에게 부치는 헌사
1. 묻을 것인가, 태울 것인가
2. 들판에서 나온 유골 항아리들
3. 썩지 않고 남은 것들
4. 죽음 너머의 희망
5. 삶은 순수한 불꽃
옮긴이의 말
연보
찾아보기
왜 우리는 토머스 브라운을 읽는가 - 버지니아 울프
벗에게 부치는 헌사
1. 묻을 것인가, 태울 것인가
2. 들판에서 나온 유골 항아리들
3. 썩지 않고 남은 것들
4. 죽음 너머의 희망
5. 삶은 순수한 불꽃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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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토머스 브라운 토머스 브라운 경은 17세기 영국이 낳은 가장 독창적인 지성이자 영어 산문의 대가였다. 스스로를 육체라는 물질 세계와 영혼이라는 영적 세계를 동시에 항해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그는 이성과 신비, 과학과 신앙을 한 문장 안에서 화해시키려 했다. 파도처럼 굽이치는 그의 문장은 뒷날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숱한 작가를 매혹했고, 'electricity(전기)'와 'hallucination(환각)'을 비롯한 수많은 어휘가 영어 문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의 글에서였다. 1605년 런던 칩사이드의 부유한 포목상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 펨브룩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의 기초를 닦은 브라운은 프랑스 몽펠리에와 이탈리아 파도바를 거쳐 1633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 각지를 떠돌며 쌓은 수련은 그에게 서로 다른 신앙과 문화를 아우르는 깊은 관용의 정신을 심어 주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요크셔의 핼리팩스에서 신앙과 이성의 화해를 꾀한 고백록 『의사의 종교』를 집필했다. 1637년 노리치에 정착해 평생을 성실한 의사이자 가장으로 살았고, 진귀한 표본과 유물로 가득한 그의 서재에서 백과사전적 저작 『속설 비판』과 죽음에 대한 장엄한 명상록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가 탄생했다. 브라운은 1671년 찰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682년 10월 19일, 77세 생일을 맞은 날 세상을 떠남으로써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원형(圓形) 같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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