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넌 나비(창연기획시선 1)
박병수 시집
박병수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는 크게 4부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으며 〈사이렌〉, 〈열흘〉, 〈에덴의 깊은 밤〉, 〈신을 드립니다〉,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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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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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밀어올린 전갈이 제 몸을 뒤집어 밤을 건너는 동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달과 별의 사체였다 우는 것과 울음소리를 듣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달빛은 벌레가 되고 울음 속에 갇혀 울고 있는 짐승은 양이 되는 신목의 그루터기, 나눠가진 잠을 들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무거운 잠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은 칼이 만든 돌멩이처럼 멀리 더 멀리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달이 부서진다 별똥별이 쏟아진다 어둠을 떠돌다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죽은 달과 별의 눈가를 닦으며 혼자 잠들고 혼자 잠을 깨는, 벌레여! 그들의 무덤 아래 내가 잠 들었으니 새들을 이어붙인 수레라고 할지라도 나의 잠을 네 곁으로 옮겨 놓지 못하겠구나 잠을 만들고 남은 조각으로 사다리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새겨 놓은 소원들로 하늘은 어두워졌다 벌레의 울음이 담을 넘다 스며 있다 말라붙은 울음은 파내야겠다 울음을 파낸 자리에 해의 뼈가 발견되었다 흙이 묻은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으니 또 저녁이 되었구나 무거운 것 하나를 놓아버린 흔적, 깊은 구멍처럼 울어대는, 벌레여! 너의 잠을 움켜쥔다 아무리 멀리 던져도 돌이 돌에 부딪친다 (「황무지」 전문)
도저한 내면 풍경을 발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외부와 내부는 연상과 환상의 연쇄로 이어진다. 의식과 무의식이 겹쳐 있어서 자아의 바깥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설혹 어떤 "황무지"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시가 말하는 사건과 이미지들은 '내향 투사'의 산물이다. 해가 있는 낮은 사라지고 "밤을 건너는 동안" 꿈속의 이야기이다. 종말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같이 하늘에서 달과 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라진다. 온통 생존이 벌레의 처지가 되었는데 이러한 벌레들의 "무덤 아래" 시적 화자가 잠들어 있다. 도무지 잠에서 헤어나 타자의 곁으로 갈 수 없다. 낮이지만 어두운 하늘이고 빠르게 저녁이 되고 만다. 새의 비상도, 사람들의 소원도, 울음마저 말라붙은 "황무지"이다. 여기서 "무거운 것 하나를 놓아버린 흔적, 깊은 구멍처럼 울어대는, 벌레여!"라고 화자는 탄식한다. 자아는 추락한 벌레와 같아서 잠에서 벗어나는 출구는 없다. 그러므로 황무지는 시적 자아의 몸이자 의식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폐허에서 놓여나는 길은 결코 없는가? 그건 아니다. 다만 시인의 시적 지평이 세계에 대한 환멸과 자아 소멸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어떠한 자전적 연유에서 내적 황폐함으로 의식을 견인하는가에 대하여 알기 어렵다. 가령 「일곱 난쟁이와 나타샤」와 같은 시편은 비교적 시적 조사(poetic diction)에 충실하다. 백석의 시에 일곱 난쟁이와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병치하는 패러디 기법을 원용하였다. 백석을 흰 눈 또는 각설탕으로 치환하거나 그의 시 속의 '나타샤'를 시적 화자가 만나는 과정을 연상한 방법이 재미있게 읽힌다. 비상하는 새의 귀환을 "지도를 펼쳤다가 알맞게 접는 순간 새들이 돌아온다"(「귀환」에서)라는 결구로 맺은 「귀환」이나 의식과 심리의 안과 밖을 병치하고 있는 「검은 눈이 사라진 쥐와 넝쿨장미와 나와 고양이와 작은 사과 하나가 배달되는 낮 12시」, 그리고 소녀의 욕망을 "문신"이라는 이미지를 얻어 표현한 「나비문신」과 같은 시편들이 아름답다. 「탈무드의 어원을 떠올릴 때」는 가마솥에 소머리를 삶아 고우는 이야기인데 이를 '심우도'를 연상하게 하는 어떤 배움으로 승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편은 박병수 시인의 시작에서 주류가 아니다. 가령 여름이라는 절기의 노동과 삶을 말하는 「애벌레」에 있어서도 시적 자아와 벌레를 동일시하는 퇴행 욕구가 발현한다. "실어증이 발병하기 전이라네 나의 잠은 샛강처럼 마르다가 성충이 된 벌레, 눈은 겨우 끔벅인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유리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무의식의 시학을 지향하는 시편들이 주된 흐름이며 대부분 난해의 커튼을 드리운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백일몽은 존재를 해방한다고 한다. 낮의 꿈은 의식의 소산에 가깝다는 말인데 밤의 꿈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억압된 욕망의 분출에 상응한다. 자주 어둠과 밤으로 기운 박병수의 시편들은 백일몽의 기미는 거의 없다. 황무지 혹은 폐허의 자리에 잠든 자아가 있으며 자기를 부정하는 우울과 소멸 충동에 시달린다. 간혹 「멜랑콜리아」나 「인셉션」과 같은 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시편들도 있으나 시인의 의도는 영화를 실마리로 자아를 말하려 한다. 나르시시즘과 다른 자기부정의 무거움이 주조를 형성하고 있다. 「거울」이 진술하고 있듯이 시인은 거울 속의 "페병쟁이 아버지"를 지우려 하거나 자아의 분열과 무화(無化)를 거부하지 않는다. 박병수의 시편들은 나르시시즘의 표백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아를 껴안고 존재를 부정하는 극단의 상상력을 나타낸다.
시인이 상정하는 구체적 삶의 정황은 "사실상 물속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 더 깊은 심해로 떠날 수도 뭍으로 오를 수도 없는 방치된 어떤 풍문"(「숭어」에서)과 흡사하다. 그림자, 어둠, 밤은 시인이 삶을 말하는 표상들이다. "나의 잠은 물방울에 갇혀 있다 집은 어둠을 비우려고 창문쪽으로 기울었다"라는 결구를 지닌 「익사자」는 "밤의 묶음"이라는 존재의 상황을 표출한다. 시인의 시적 자아들은 때론 "벌레의 눈"(「붉은 눈」에서)을 하고서 잠들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의 강인 아케론을 배회하거나 "죽음보다 깊은 잠"(「달콤한 칩거」에서)에 빠진다.
세상의 길은 감나무로 이어졌다 구름 사이를 걸어왔거나 어둠 속을 날아왔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겨울에 떠난 어머니가 그늘 드리우며 감나무 가지마다 앉아 밤낮없이 감나무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석 달 가뭄에도 끊이지 않는 울음의 뿌리는 어디일까 감나무 밑동을 더듬을 때 오돌토돌 물기 숨긴 가파른 껍질이 만져졌다 감꽃이 필 때부터 집안 어딘가에서 떫은 감물이 말매미 울음으로 스며 나와 꼭꼭 씹은 구름이 마당 귀퉁이에서 우표처럼 부풀었다 처마 밑에서 어미 제비가 배냇짓 집을 짓고 꼬리조팝나무는 제비집을 바라보며 고봉밥을 차리곤 하였는데 떫은 감물 말고는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다 내 몸의 뜬눈들이 감나무 가지마다 흔들리고 붉은 눈시울이 꼭지에서 떨어졌다 시월이었다 (「감나무통신-에필로그」 전문)
박병수의 시편에서 가족사의 편린은 두드러져 있지 않다. 부모가 등장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등장하는 시편들이 있다. "불편한 공기처럼 먼지를 닦아내면/죽어버린 아버지,/무릎으로 부축하니 당신이 만져진다"로 끝을 맺는 「손잡이」가 아버지에 대한 헌시라면 인용한 「감나무통신」은 어머니에게 바쳐진다. 무엇보다 이 시를 시집의 에필로그에 두었다는 의도를 주목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삶의 원천인 물의 의미를 회상한다. 생명의 물은 바로 기원의 어머니이며 그 물이 흐르는 감나무가 자아의 중심에 서 있다. "떫은 감물"을 아는 "나"는 감나무가 있는 유년의 풍경에서 나무의 철학을 익힌다. 신산한 삶의 가운데 감나무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감나무를 바라보며 시적 화자는 "붉은 눈시울"로 홍시 같은 눈물을 흘린다. 회한을 품은 생의 감각이 민활하다. 어쩌면 이러한 감각이야말로 박병수 시인의 시적 가능성이자 지속성이 아닌가 한다. 폐허를 딛고서 가느다랗게 푸른빛을 예감하는 지각이 요긴하다. 「경계의 술사들」이 말하고 있는 지평이 이러한 기대를 담보한다. 길에서 죽은 고양이와 자동차의 바퀴 그리고 그 주변의 벚나무들을 어울려서 "내가 잠든 곳은 새 떼를 꿀컥 먹어버린 늙은 고양이의 뱃속, 달의 눈을 파먹고 왕벚나무의 나이테에 숨어버린" 경계라고 말한다. 이미지들을 얻고 조합하는 기교가 빼어나다. 「알키투더스 추적기」나 「자각몽」에 내재한 긍정의 기미들이 또한 종요롭다. 전자의 경우 "그의 집은 언제나 불빛 없는 깊은 바다"이었지만 "불빛 환한 그의 집"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얻는다. 후자는 여행과 순례를 통하여 밤을 지나면서 "꿈에서 본 동뢰(同牢)"를 경험하고 사랑을 다시 찾는다. 비록 신화에 의탁한 발상이지만 환멸의 터널을 지나 생의 활기를 얻는 대목이다. "이제 그만 이글루 이글루의 천장을 장식할/불빛에 대해서 고민하지"(「빙궁」에서). 얼어붙은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대지의 기운을 호흡할 때이다.
목차
목차
● 프롤로그(prologue)
1부
사이렌
열흘
에덴의 깊은 밤
신을 드립니다
식음하는 당신을 식음하는
이주자의 달
부엉이와의 동행일지
사막을 건넌 나비
흑점
짐승과 연못
2부
저문 강
인셉션
안개제국
이때의 아이들
개미집
머큐리
반영월식
빙궁(氷宮)
일곱 난쟁이와 나타샤
무거운 돌
3부
나비문신
황무지?
귀환
검은 눈이 사라진?쥐와 넝쿨장미와 나와 고양이와 작은
사과 하나가 배달되는 낮 12시?
탈무드의 어원을 떠올릴 때
애벌레
키워드
유리물고기
석총(石塚)
거울
4부
숭어
익사자
낡은 액자
붉은 눈
달콤한 칩거
손잡이
절지새
짜부예차카 이야기
알키투더스 추모기
경계의 술사들
감나무통신
■시집 해설
어둠과 밤을 가로질러-박병수의 시 세계 / 구모룡
저자
저자
현재 영남시 동인,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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