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나무에 묻다(창연기획시선 3)(양장본 Hardcover)
안화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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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등단 이후 안화수 시인은 『까치밥』, 『명품악보』 등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이번 시집을 포함하면 20여 년의 세월 동안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하는 것이 된다. 비교적 과작寡作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인의 성정性情이 드러나는 시편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편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시가 대체로 담담한 삶의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심성의 구심력이 강하게 견인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에서 안화수의 시편들이 시의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는 것은, 시적 자율성이 심미적 가치 판단의 핵심 척도, 아니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된 현 시단의 상황에서 시의 역능力能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란, 좀더 넓게 보아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근대시학의 기획이 분리하고자 했던 언어와 삶의 문제, 이 둘의 관계를 그의 시에서 재삼 돌아보게 된다.
-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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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안화수 시인은 현재 마산공업고등학교에서 34년째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예전 같지 않아서 힘들다고 명예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학생들과 지내는 게 천직인지, 보람과 사명감에 더 비중을 두는 듯하다. 동료들이 교장을 하고 있지만, 위를 보지 않고 옆을 보면서 지내온 세월이었던 모양이다. 듬직한 덩치만큼 심지도 곧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돈독한 세월로 살아왔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그의 시편들에서 엿볼 수 있다. 시집 편집에도 꼼꼼하게 도움을 주어 단단한 시집이 되었다. 일상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친구처럼 시를 행간마다 자분자분하게 읽어준다.
[시집 해설]
성정性情의 시, 시의 역능力能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1.
한자문화권에서 시에 관한 가장 오랜 정의는 공자에서 연원한다. 공자가 편했다는 『상서尙書』 「순전舜典」은 '시란 뜻을 말하는 것'(詩言志)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란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詩言志 歌永言)이라는 유서 깊은 명제의 발원지인 상서에서 공자는 순임금을 빌려 시와 노래[詩歌]는 가르침의 주요 수단이자 그 가르침의 소산임을 밝힌다. 이 대목의 맥락을 정리해보면 전악典樂의 조화로움은 사람을 감화感化시키고 교육하는 중요한 원천이고, 그 교육적 성과는 사람의 됨됨이를 갖추게 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시는 교육의 주요 수단이자, 그러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 됨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표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교육의 한 축인 시교詩敎는 시를 통한 교육이면서 시 쓰기를 통한 자기 내면의 표현 교육인 셈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중의 하나는 이러한 전악典樂 교육이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성정性情이란 '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며, 굳세면서도 거칠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오만하지 않는 것', 이는 악樂의 조화로움이 인간 됨됨이에 육화된 상태이며, 중화中和의 덕을 갖춘 인격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시에 관한 또 하나의 전통적인 정의인 '사무사思無邪' 역시 『상서』에서 강조한 시교詩敎와 무관치 않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思無邪'라고 할 것이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고 규정함으로써 시가 사특함이 없는 생각에서 발현되는 정서적 산물임을 천명한다. 이는 시란 인욕人慾의 개입이 없는 본성의 발현으로 천리天理에 합하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의 소산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서 시를 통한 성정 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논어』에서 '사무사'와 관련하여 시를 언급한 것은 여러 대목이어서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공자에게 시는 단순한 일시적 감정 발산의 장場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는 자리라는 것, 그래서 시는 사회적, 교육적으로 쓰임새가 많은 실용적인 배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자로子路」편에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외우되 정치를 맡겼을 때 잘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능히 오로지 상대할 수 없다면 비록 많이 외운들 또한 어찌할 것인가?"라고 함으로써 시의 현실적 쓰임새, 특히 백성을 다스리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매우 유용한 영역임을 강조한 바 있다. 후자가 당대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 것임을 감안하여 차치하더라도, 전자의 경우 시가 사람의 성정에 기초하고 있고 풍속을 살필 수 있는, 즉 사람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지표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사무사'의 시적 표상이 된 『시경詩經』에는 인간의 감정과 시속의 풍속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아서 '시교詩敎'를 단순히 시를 통한 훈육의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임을 생각게 한다. 오히려 시 삼백 편은 넓은 의미의 '인간학'에 가깝다고 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한자문화권 최초의 문예비평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은 '시언지詩言志'에 대해 "시는 지持이다. 인간의 성정을 보존, 유지하는 것이다. 『시경』에 수록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결국 그 내용은 마음의 순수성으로 귀결된다. '詩'가 '持'라는 논리가 여기에서 부합된다. 인간은 생래로 七情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과의 자극에 감응되어 '志'를 읊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헤아려보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전통에서 시로 발현되는 내면이란 단순히 개인의 일시적 감정이나 사적인 기분이 아닌 좀더 보편에 바탕을 둔 뜻이자 감성이며, 그러한 점에서 시에서의 공감, 혹은 시를 통한 가르침과 배움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회복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언지'와 '사무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시학의 관점에서 시란 인간 본연의 성정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마음과 의지의 표현이며, 그것은 사특함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실천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2.
『늙은 나무에 묻다』를 논하는 자리에서 다소 생뚱맞게 동아시아 전통시학의 관점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것은 안화수 시인의 시 세계에서 이러한 시학적 전통이 두루 확인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이번 시집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 아니라 그의 시편들 전체에 바탕을 이루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기술하는 방식은 그것의 성격을 해명하는 데 전혀 충분치 않다. 근대시학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적 자의식과 자율성 위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전통시학의 본질은 오히려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드러내는 자리라는 점에서, 좀더 정확히 부연하자면 시가 삶에 대해 갖는 성격과 의미의 차원을 배제하고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화수의 시편들이 전통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은, 그의 시가 우리에게 삶의 내용들을, 나아가 시의 자리를 재삼 성찰하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1998년 등단 이후 안화수 시인은 『까치밥』, 『명품악보』 등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이번 시집을 포함하면 20여 년의 세월 동안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하는 것이 된다. 비교적 과작寡作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인의 성정性情이 드러나는 시편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편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시가 대체로 담담한 삶의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심성의 구심력이 강하게 견인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에서 안화수의 시편들이 시의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는 것은, 시적 자율성이 심미적 가치 판단의 핵심 척도, 아니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된 현 시단의 상황에서 시의 역능力能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란, 좀더 넓게 보아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근대시학의 기획이 분리하고자 했던 언어와 삶의 문제, 이 둘의 관계를 그의 시에서 재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 그루 한 그루마다/ 감 하나씩 달아놓겠습니다/ 아버지,/감 열매가 몇백 원, 몇천 원/ 아무리 비쌀지언정 참 좋은 놈 한 개/ 따지 않고 그냥 두겠습니다// 집 뒤 지나는 까치 있어/ 굳이 까치 아니라 까마귀라도/ 배고프면 잠시 앉아 쉬면서/ 먹고 갈 높이에 그대로 매달아 놓겠습니다// 겨울이 온다는/ 문자 메시지 한 줄 없이/ 갑자기 추워진 요즈음/ 도시에 부모 없이 외롭게 크는 아이에게도/ 까치밥만 한 탐스러운 어린이 밥 필요하겠습니다
- 「까치밥」 전문
안화수 시인의 첫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위의 시는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어휘와 언술로 구성된 시는 구태여 해석이 필요치 않을 만큼 쉽다. 늦가을 까치 등의 날짐승이 먹으라고 남겨놓는 감을 일컫는 '까치밥'은 생명체를 향한 인간의 배려이자 생명공동체를 살아가는 지혜를 상징하는 언명言明이다. 그것을 우리는 '인정人情'이라고 한다. 인정이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성을 일컫지만, 그것이 이러한 어휘를 통해 하나의 관습으로서 전승되는 이유는 여기에 담긴 의미를 망각하지 말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기에는 생명을 셈으로 환산하는 상황에 대한 경계가, 그리고 사람살이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 이 시는 우리 공동체에 오래 전승됐던 이러한 마음을 자신의 삶으로서 온전히 수락受諾하겠다는 태도와 의지가 천명되어 있다. 물론 이 시에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도시적 삶과 돈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이 배후에 가로놓여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의 무게는 세 개의 연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문장, 그 문장을 종결하는 용언에 놓여 있다. 화자의 의지를 천명하는 어미 '∼겠습니다'는 안화수 시의 언어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언어는 자신의 태도와 의지를 안팎으로 분명히 하는 실천적 행위에 가깝다. 시인에게 시 쓰기는 자기 개성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이라기보다 품부된 인간의 성정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로서의 언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창안해낸 문명화된 문자 언어가 자연성에 기초한 입말의 아름다운 힘을 상실했다고 본 루소의 언어관과 상통한다. 루소는 상대를 감동시키고 문제적 상황을 각별한 목소리로 표현하고자 하는 정념적이고 음악적인 동기에서 기원한 인간 언어가 이성적 목적에 의해 보다 정교해지고 철저해지는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타락해졌다고 보았으며, 발달된 글말을 오염되고 건조한 언어로 규정한 바 있다.
안화수 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입말의 본성이다. 그의 시에서 언어는 정신의 표현이나 심미적 예술이기보다 자신의 정념을 분명히 하고 삶을 견인해가는 말의 자질을 지닌 것이며, 그때의 정념은 인간의 자연성, 이른바 인간 성정을 지키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와 한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언어가 지녔을 말의 힘, 자신의 정념을 표현하고 표현된 말이 다시 스스로를 추동해가는, 존재와 하나가 된 말의 꿈이야말로 그의 시 쓰기의 (무)의식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인용 시의 가상 청자가 '아버지'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는 그의 시가 타락한 자본 현실에 맞서 인간의 본성과 인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부성父性의 세계임을 시사한다. 안화수의 시적 출발을 보여주는 「까치밥」은 그의 시 세계의 중요한 자질들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3.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늙은 나무에 묻다』는 일상과 생활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 주를 이루어왔던 그간의 경향을 이어받으면서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개진하는 시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집이다. 평생 천직으로 수행해왔던 교직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고 세상의 어떤 소리를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 경지를 지칭하는 이순耳順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오히려 더 靑靑하고 生生하다. 그것은 삶과 현실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 보다 분명해졌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앞서 이야기했던 시 쓰기가 갖는 의미가 좀더 명확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시인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이번 시집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표명된 시 쓰기의 의미에 관한 개진은 그간의 시들에 배후를 이루고 있던 삶의 태도가 시작詩作의 역능으로서 사유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은 시 쓰는 일이 단순히 언어-창작이라는 관점을 넘어 삶에 영향을 주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겠다는 차원과는 다른, 존재를 구성해가는 일에 언어 행위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시 쓰기가 존재-구속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좀더 나은 방향"이란 무엇인가.
입추에 동풍이 불면 풍년이 든다는데/ 바람은 오지 않고 햇볕이 내리쬡니다/ 말복이 가로막아 그런 것도 아닌 듯합니다/ 기다림에 지친 콩이며 참깨는/ 선 자리에서 퍼지르고 앉았습니다// 입추에 비가 조금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때아닌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기청제祈晴祭를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벼가 빠르게 익어가는 시기에는/ 여름 농작물이 여무는 시기에는/ 한 방울의 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지금도 벌판에는 마스크가/ 띄엄띄엄 흩어진 채로 나뒹굽니다/ 계절을 잊은 형형색색의 마스크/ 우리의 가슴에 쇳덩이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 「입추立秋를 기다리며」 부분
이번 시집의 서시 격에 해당하는 위의 시는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를 일컫는 절기 '입추立秋'는 퇴직을 앞두고 생의 후반기를 맞고 있는 시인의 현재와 겹쳐지면서, 안화수 시인의 시 세계가 기초하고 있는 토대를 생각하게 한다. "입추에 ∼가 오면 ∼는데"로 시작하는 각 연은 일상과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사유가 자연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그 자체가 향유의 대상이라기보다 삶과 현실을 성찰하는 전거로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입추에 ∼가 오면 ∼는데"라는 이 시의 언술 형식은 시인의 생활 감각이 자연성, 확대하여 천리天理에 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절기는 천리를 생활의 잣대로서 인식하고 살았던 농경문화의 산물이지만, 인간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적 준거이기도 하다. 시의 언술들에 나타난 화자의 태도는 자연에 순順하는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마스크가 나뒹구는 현실을 사유하는 준거인 셈이다. 부연하지는 않았지만 "계절을 잊은 형형색색의 마스크"가 뒹구는 현실은 반反자연의 상태이며 재난의 상황인 것이다. 절기는 비단 자연의 운행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천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안화수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큰 배후가 되고 있는 셈이다.
간도 쓸개도 없는 세상이라 해도/ 겨울 가고 봄 오고 여름은 오잖아/ 의리義理의 개꽃/ 그래도 너만은/ 참꽃 옆에서 바짝 엎드려 있다가/ 진달래 피고 난 뒤에 고개 드는구나
- 「참꽃 개꽃」 부분
비바람에 눈서리 내리고/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당신을 향한 마음은 처음 가진 그대로입니다// 오늘도 안개 가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비단을 깔고 황금 방석을 내밀어도/ 주위에서 바보라고 놀려도/ 이 자리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 「신망부가」 부분
위의 두 편의 작품은 안화수 시의 중요한 전거로 작용하고 있는 자연성이 인간의 성정으로서, 지켜야 하는 본성으로 형상화된 사례이다. 이번 시집에 들어 빈도가 높아진 부정적인 현실의 맞은편에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의 시적 화자들은 그러한 자연의 본성을 자신의 성품으로 내면화한다. 시인이 시작의 이유로 들었던 "좀더 나은 방향"이란 어찌 보면 자연성의 내면화일 것이고, 시를 쓰는 과정은 이를 성찰하고 되새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편의 시가 보여주는 "의리義理의 개꽃"과 '망부석'의 형상은 "간도 쓸개도 없는 세상" '바뀌고 변하는 시대와 사회'를 대응하는 '나'의 감성 생명의 구체적 성격이자 인간의 성정으로 내면화한 자연성의 이미지인 것이다. 도리道里와 분수分數를 망각한 현실 속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처음 가진" 초심과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태도가, 저 '망부석'과 '개꽃'의 형상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연성, 즉 본성을 거스르는 어떤 행위도 거부한다는 의지가 내재화되어 있다. 이 의지가 부정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세태와 타락한 자본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누적된 적폐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의 시에 '의리義理'를 지키는 형상으로 제시된 사물이 '개꽃'이라는 것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역사적 시각과도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대목은 그의 시가 인간 성정이나 본래적 가치 등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 관한 언술들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흐르는 길 서로 달라도 본성은 같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합강合江, 그렇게 어울려 함께 가는 것/ 다정하게 어깨 걸고 바다를 향해 가는 것
- 「두 강물이 하나 되는」 부분
잘났다고 까불지 말라/ 비싸다고 무게 잡지도 말라/ 우리 함께 뭉치지 않으면/ 길가 널브러진 자갈인 것을
- 「사람 사이」 전문
합강合江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두 강물이 하나 되는」은 전형적인 민중 형상에 기초하고 있다. 시인은 도도한 강의 모습에서 장구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연대의 형상을 보고 있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렇게 어울려 함께 가"며 "어깨 걸고 바다를 향해 가는" 모습은 시인이 인식하는 역사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연대를 통해 이루어가는, 발전하는 역사의 형상이다. 물론 여기에서 역사를 추동해가는 주체는 1970, 80년대의 민중사적 관점에서의 민중과 달리, 좀더 다양한 주체들을 포함하는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강물이 만나는 자연 형상에서 역사의 형상을 발견해내는 이러한 시각은 「사람 사이」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길가 널브러진 자갈이"라는 시인의 인식은 자연(성)을 중요한 삶의 준거로 사유하는 시의식을 재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최근의 시국을 바라보는 현실 인식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팔뚝을 잘라 버릴까 아니면 뿌리째 뽑아 버릴까/ 국회의사당을 안고 돌아라 헌법재판소 대검찰청 건물도 덮어라 겨울이 오기 전에 너의 특기 살려 문드러진 세상살이 곪아 터지게 하라 그리하여 그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게 하라 희망이 샘솟게 하라
- 「칡넝쿨」 부분
등만 붙이면 단잠에 빠지는데/ 요즈음 나랏일 걱정으로/ 한밤중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 「기와집의 불」 부분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시국에 관한 시인의 인식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칡넝쿨의 자연 형상을 적폐 청산의 이미지로 감수할 정도로 "나랏일"을 걱정하는 시인의 내면이 매우 진솔하게 드러나 있는데, 사실상 호오好惡가 갈리는 정치적 이슈를 작품에 담아 발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문단 현실에서는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적폐 청산에 관한 시인의 염원과 정치의식이 매우 강렬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는 화자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인의 말〉을 참고한다면, 그에게 청산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적폐는 자연과 본성에 반하는 것이고, 천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앞서 살펴본 역사적 형상을 상기하고, 이에 부합하는 오랜 격언 '천심天心이 민심民心'이라는 말의 함의를 고려하면, 적폐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의 마음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라는 요구일 것이다.
안화수 시인이 민감한 정치 이슈를 시에 담아 뜻을 밝힌 것은, 어찌 보면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의 일환이고, 그것은 '더 큰 나'의 문제이자 참여해야 할 '나의 일'이기도 한 것이리라. 한국시사에서 자연 형상을 노래한 많은 시인과 달리, 안화수 시인에게서 자연(성)은 결코 현실의 문제와 분리된 소재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작동해야 할 인간 성정의 모범인 셈이다. 이러한 안화수 시 세계의 특징은 보수나 진보 등의 정치적 이념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말 없는 투본 강,/ 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이 아니란다/강물, 너는 알고 있겠지/ 수많은 사람의 억울함을// 아직도 그날들의 분통이/ 삭지 않았다면/ 인제 용서해다오/ 비무장非武裝한 친구들과/ 먼 길을 둘러서 이렇게 왔잖아
- 「투본 강 가에서」 부분
수태할 능력 있는 사람들,/ 오늘 밤 비무장으로 애국하자/피임 기구 없애고 사정없이 사정하자/ 주말 밤 애국하는 분위기 뜨겁게 달구자
- 「애국하는 밤」 부분
「투본 강 가에서」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역사의식 위에 기초하고 있다면, 「애국하는 밤」은 국가주의적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구적이다. 이념의 측면에서 보자면 같은 시인이 썼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의식의 간격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특징들을 상기해보면 안화수 시에 바탕을 둔 자연성과 인간 본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시는 인위적인 이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저 자연의 본성, 이를 인격화한 성정 위에 기초하고 있어 보수나 진보 등의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아 보인다.
4.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일부 있더라도 대체로 자신의 일상이나 생활 감성을 노래하고 있는 안화수의 시는 의도적인 언어 탐구나 심미성에 대한 관심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세계이다. 그의 시는 자신의 정념을 표현하고 삶의 방향과 태도를 분명히 하려는 의지 위에서 개진된다. 그러한 점에서 안화수의 시는 존재구속적이다. 이는 그의 시작詩作이 자신의 삶과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평생을 어려운 학생들을 지도한 교사로, 그리고 가정에서는 따뜻한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온 안화수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하며 표명한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라는 〈시인의 말〉은 이제까지 그의 시가 걸어온 내용을 시의식으로 길어올린 표현으로 생각된다.
앞서 했던 그의 시가 '존재구속적'이라는 말은 삶과 언어가 긴밀하여 시가 삶의 표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언어가 존재를 구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어가 존재를 구속한다는 것'은 언어가 지닌 주술적 힘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견인하는 언어의 윤리적 능력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 양자는 모두 힘 있는 시, 시의 역능力能을 생각하게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만진 언어, 언어의 유희성을 시적 동력으로 삼는 시도 그러하지만, 삶을 추동하거나 견인하는 힘을 갖고 있는 시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동행同行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응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고 그것은 언어와 관련된 수많은 문제, 어쩌면 인간학 전체와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이제까지 안화수 시의 본성에 관해, 그리고 시의 힘에 관해, 그것의 의의와 그것이 마주할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였는데, 그 연장선 속에서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편 중 가장 이질적으로 판단되는 아래의 작품은 안화수 시의 숨은 지점, 혹은 시적 진로를 생각하게 한다.
지상에 다닥다닥 들어찬 집/ 어디 꼭꼭 숨었을까/ 안개 자욱한 새벽녘이다// 잘난 체하는 사람도,/ 실제로 잘난 사람도 보이지 않고/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 자동차,/ 높낮이를 달리하는 수많은 아파트,/ 사방에는 컴퓨터 한 대 없다// 작은 새 한 마리/ 흐느적거리며 맴도는/ 바람마저 숨을 죽인 널따란 호수// 조용한 듯 시끄럽고/ 정의로운 듯 비겁한 세상에/ 먹물 묻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대로 풍덩 뛰어들었으면
- 「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전문
여타의 작품보다 언술의 배후에 품이 많은 시이다. 여기에는 안화수의 시에 등장하는 현실 사회의 문제와 그에 관한 시인의 사유들이 혼재되어 있다. "안개 자욱한 새벽녘"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에 주를 이루고 있는 생각들은 지상의 사람들, 현실 세상의 문제들이다. 이 고요한 이른 시간에 "정의로운 듯 비겁한 세상"을 생각하다니, 시적 정황을 놓고 보면 흔한 발상은 아니겠지만 『늙은 나무에 묻다』에 담긴 정념의 내용으로 볼 때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리라. 그런데 언술들의 고리가 조밀하지 않고 행간行間이 넓은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러저러한 상념想念들 사이로 등장하는 "먹물 묻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대로 풍덩 뛰어들었으면"이라는 표현이다. 이를 "시끄럽고", "비겁한 세상" 속에서의 자기정화自己淨化의 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평면적일 뿐만 아니라 이 시의 언술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안화수의 시를 가로지르는 비판적 현실 의식과 윤리적 성찰, 그리고 삶의 부하負荷에 대한 피로감이 (무)의식적으로 투영投影된 것이 아닐까. 이 대목은 그의 시적 미래, 시 세계의 전환에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 고요한 호수로의 잠수潛水, 혹은 침잠沈潛은 정화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탈출의 욕망도 담겨 있는 것일 테니까.
가을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용마산 시의 거리를 거쳐/ 산호 공원 맨 꼭대기/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옷차림 가벼운 사람 두셋/ 훌라후프 돌리는 초로의 아주머니/ 옆에 남자는 굵은 나무에 등을 두드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또 한 사람/ 낡은 시멘트 벤치에 앉아 졸고 있다
- 「문화원 있던 자리」 전문
안화수 시인은 이제 평생 봉직한 천직天職을 내려놓고 좀더 자연에 가까운 상태가 될 것이다. 존재의 위치가 바뀌면 보이는 세계도 달라질 것인데, 교단에서 내려서면 그의 눈과 마음에도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깃들게 되리라. "가을바람" 속에서 "용마산 시의 거리"와 "산호공원"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의 시선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늙은 나무에 묻다』의 대개의 시들과는 전혀 다른, 관조의 시선이 정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화원 있던 자리", 기억과 부재不在 위를 가만가만 응시하는 저 시선이 보고 소환하는 것들, 아마도 그것이 안화수 시의 이후以後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도래할 웅숭깊은 풍경에 대한 기대는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시집 해설]
성정性情의 시, 시의 역능力能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1.
한자문화권에서 시에 관한 가장 오랜 정의는 공자에서 연원한다. 공자가 편했다는 『상서尙書』 「순전舜典」은 '시란 뜻을 말하는 것'(詩言志)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란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詩言志 歌永言)이라는 유서 깊은 명제의 발원지인 상서에서 공자는 순임금을 빌려 시와 노래[詩歌]는 가르침의 주요 수단이자 그 가르침의 소산임을 밝힌다. 이 대목의 맥락을 정리해보면 전악典樂의 조화로움은 사람을 감화感化시키고 교육하는 중요한 원천이고, 그 교육적 성과는 사람의 됨됨이를 갖추게 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시는 교육의 주요 수단이자, 그러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 됨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표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교육의 한 축인 시교詩敎는 시를 통한 교육이면서 시 쓰기를 통한 자기 내면의 표현 교육인 셈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중의 하나는 이러한 전악典樂 교육이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성정性情이란 '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며, 굳세면서도 거칠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오만하지 않는 것', 이는 악樂의 조화로움이 인간 됨됨이에 육화된 상태이며, 중화中和의 덕을 갖춘 인격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시에 관한 또 하나의 전통적인 정의인 '사무사思無邪' 역시 『상서』에서 강조한 시교詩敎와 무관치 않다.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思無邪'라고 할 것이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고 규정함으로써 시가 사특함이 없는 생각에서 발현되는 정서적 산물임을 천명한다. 이는 시란 인욕人慾의 개입이 없는 본성의 발현으로 천리天理에 합하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의 소산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서 시를 통한 성정 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논어』에서 '사무사'와 관련하여 시를 언급한 것은 여러 대목이어서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공자에게 시는 단순한 일시적 감정 발산의 장場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는 자리라는 것, 그래서 시는 사회적, 교육적으로 쓰임새가 많은 실용적인 배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자로子路」편에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외우되 정치를 맡겼을 때 잘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능히 오로지 상대할 수 없다면 비록 많이 외운들 또한 어찌할 것인가?"라고 함으로써 시의 현실적 쓰임새, 특히 백성을 다스리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데 매우 유용한 영역임을 강조한 바 있다. 후자가 당대 시대적 상황과 관련된 것임을 감안하여 차치하더라도, 전자의 경우 시가 사람의 성정에 기초하고 있고 풍속을 살필 수 있는, 즉 사람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지표임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사무사'의 시적 표상이 된 『시경詩經』에는 인간의 감정과 시속의 풍속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아서 '시교詩敎'를 단순히 시를 통한 훈육의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임을 생각게 한다. 오히려 시 삼백 편은 넓은 의미의 '인간학'에 가깝다고 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한자문화권 최초의 문예비평서인 『문심조룡文心雕龍』은 '시언지詩言志'에 대해 "시는 지持이다. 인간의 성정을 보존, 유지하는 것이다. 『시경』에 수록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결국 그 내용은 마음의 순수성으로 귀결된다. '詩'가 '持'라는 논리가 여기에서 부합된다. 인간은 생래로 七情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과의 자극에 감응되어 '志'를 읊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헤아려보면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전통에서 시로 발현되는 내면이란 단순히 개인의 일시적 감정이나 사적인 기분이 아닌 좀더 보편에 바탕을 둔 뜻이자 감성이며, 그러한 점에서 시에서의 공감, 혹은 시를 통한 가르침과 배움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회복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언지'와 '사무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시학의 관점에서 시란 인간 본연의 성정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마음과 의지의 표현이며, 그것은 사특함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실천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2.
『늙은 나무에 묻다』를 논하는 자리에서 다소 생뚱맞게 동아시아 전통시학의 관점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것은 안화수 시인의 시 세계에서 이러한 시학적 전통이 두루 확인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이번 시집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 아니라 그의 시편들 전체에 바탕을 이루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기술하는 방식은 그것의 성격을 해명하는 데 전혀 충분치 않다. 근대시학이 언어예술로서의 시적 자의식과 자율성 위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해, 전통시학의 본질은 오히려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드러내는 자리라는 점에서, 좀더 정확히 부연하자면 시가 삶에 대해 갖는 성격과 의미의 차원을 배제하고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화수의 시편들이 전통시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은, 그의 시가 우리에게 삶의 내용들을, 나아가 시의 자리를 재삼 성찰하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1998년 등단 이후 안화수 시인은 『까치밥』, 『명품악보』 등 두 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이번 시집을 포함하면 20여 년의 세월 동안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하는 것이 된다. 비교적 과작寡作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인의 성정性情이 드러나는 시편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편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시가 대체로 담담한 삶의 일상을 소재로 하면서도 심성의 구심력이 강하게 견인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앞에서 안화수의 시편들이 시의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는 것은, 시적 자율성이 심미적 가치 판단의 핵심 척도, 아니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된 현 시단의 상황에서 시의 역능力能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란, 좀더 넓게 보아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근대시학의 기획이 분리하고자 했던 언어와 삶의 문제, 이 둘의 관계를 그의 시에서 재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 그루 한 그루마다/ 감 하나씩 달아놓겠습니다/ 아버지,/감 열매가 몇백 원, 몇천 원/ 아무리 비쌀지언정 참 좋은 놈 한 개/ 따지 않고 그냥 두겠습니다// 집 뒤 지나는 까치 있어/ 굳이 까치 아니라 까마귀라도/ 배고프면 잠시 앉아 쉬면서/ 먹고 갈 높이에 그대로 매달아 놓겠습니다// 겨울이 온다는/ 문자 메시지 한 줄 없이/ 갑자기 추워진 요즈음/ 도시에 부모 없이 외롭게 크는 아이에게도/ 까치밥만 한 탐스러운 어린이 밥 필요하겠습니다
- 「까치밥」 전문
안화수 시인의 첫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위의 시는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어휘와 언술로 구성된 시는 구태여 해석이 필요치 않을 만큼 쉽다. 늦가을 까치 등의 날짐승이 먹으라고 남겨놓는 감을 일컫는 '까치밥'은 생명체를 향한 인간의 배려이자 생명공동체를 살아가는 지혜를 상징하는 언명言明이다. 그것을 우리는 '인정人情'이라고 한다. 인정이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성을 일컫지만, 그것이 이러한 어휘를 통해 하나의 관습으로서 전승되는 이유는 여기에 담긴 의미를 망각하지 말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기에는 생명을 셈으로 환산하는 상황에 대한 경계가, 그리고 사람살이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 이 시는 우리 공동체에 오래 전승됐던 이러한 마음을 자신의 삶으로서 온전히 수락受諾하겠다는 태도와 의지가 천명되어 있다. 물론 이 시에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도시적 삶과 돈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이 배후에 가로놓여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의 무게는 세 개의 연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문장, 그 문장을 종결하는 용언에 놓여 있다. 화자의 의지를 천명하는 어미 '∼겠습니다'는 안화수 시의 언어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언어는 자신의 태도와 의지를 안팎으로 분명히 하는 실천적 행위에 가깝다. 시인에게 시 쓰기는 자기 개성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이라기보다 품부된 인간의 성정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로서의 언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창안해낸 문명화된 문자 언어가 자연성에 기초한 입말의 아름다운 힘을 상실했다고 본 루소의 언어관과 상통한다. 루소는 상대를 감동시키고 문제적 상황을 각별한 목소리로 표현하고자 하는 정념적이고 음악적인 동기에서 기원한 인간 언어가 이성적 목적에 의해 보다 정교해지고 철저해지는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타락해졌다고 보았으며, 발달된 글말을 오염되고 건조한 언어로 규정한 바 있다.
안화수 시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본질적으로 입말의 본성이다. 그의 시에서 언어는 정신의 표현이나 심미적 예술이기보다 자신의 정념을 분명히 하고 삶을 견인해가는 말의 자질을 지닌 것이며, 그때의 정념은 인간의 자연성, 이른바 인간 성정을 지키고자 하는 실천적 의지와 한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언어가 지녔을 말의 힘, 자신의 정념을 표현하고 표현된 말이 다시 스스로를 추동해가는, 존재와 하나가 된 말의 꿈이야말로 그의 시 쓰기의 (무)의식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한 점에서 인용 시의 가상 청자가 '아버지'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는 그의 시가 타락한 자본 현실에 맞서 인간의 본성과 인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부성父性의 세계임을 시사한다. 안화수의 시적 출발을 보여주는 「까치밥」은 그의 시 세계의 중요한 자질들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3.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늙은 나무에 묻다』는 일상과 생활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 주를 이루어왔던 그간의 경향을 이어받으면서 보다 분명하게 자신의 태도를 개진하는 시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집이다. 평생 천직으로 수행해왔던 교직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고 세상의 어떤 소리를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 경지를 지칭하는 이순耳順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오히려 더 靑靑하고 生生하다. 그것은 삶과 현실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 보다 분명해졌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앞서 이야기했던 시 쓰기가 갖는 의미가 좀더 명확해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시인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이번 시집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표명된 시 쓰기의 의미에 관한 개진은 그간의 시들에 배후를 이루고 있던 삶의 태도가 시작詩作의 역능으로서 사유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은 시 쓰는 일이 단순히 언어-창작이라는 관점을 넘어 삶에 영향을 주는 행위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겠다는 차원과는 다른, 존재를 구성해가는 일에 언어 행위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시 쓰기가 존재-구속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좀더 나은 방향"이란 무엇인가.
입추에 동풍이 불면 풍년이 든다는데/ 바람은 오지 않고 햇볕이 내리쬡니다/ 말복이 가로막아 그런 것도 아닌 듯합니다/ 기다림에 지친 콩이며 참깨는/ 선 자리에서 퍼지르고 앉았습니다// 입추에 비가 조금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때아닌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기청제祈晴祭를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벼가 빠르게 익어가는 시기에는/ 여름 농작물이 여무는 시기에는/ 한 방울의 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 지금도 벌판에는 마스크가/ 띄엄띄엄 흩어진 채로 나뒹굽니다/ 계절을 잊은 형형색색의 마스크/ 우리의 가슴에 쇳덩이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 「입추立秋를 기다리며」 부분
이번 시집의 서시 격에 해당하는 위의 시는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를 일컫는 절기 '입추立秋'는 퇴직을 앞두고 생의 후반기를 맞고 있는 시인의 현재와 겹쳐지면서, 안화수 시인의 시 세계가 기초하고 있는 토대를 생각하게 한다. "입추에 ∼가 오면 ∼는데"로 시작하는 각 연은 일상과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사유가 자연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물은 그 자체가 향유의 대상이라기보다 삶과 현실을 성찰하는 전거로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입추에 ∼가 오면 ∼는데"라는 이 시의 언술 형식은 시인의 생활 감각이 자연성, 확대하여 천리天理에 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절기는 천리를 생활의 잣대로서 인식하고 살았던 농경문화의 산물이지만, 인간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적 준거이기도 하다. 시의 언술들에 나타난 화자의 태도는 자연에 순順하는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마스크가 나뒹구는 현실을 사유하는 준거인 셈이다. 부연하지는 않았지만 "계절을 잊은 형형색색의 마스크"가 뒹구는 현실은 반反자연의 상태이며 재난의 상황인 것이다. 절기는 비단 자연의 운행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천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안화수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큰 배후가 되고 있는 셈이다.
간도 쓸개도 없는 세상이라 해도/ 겨울 가고 봄 오고 여름은 오잖아/ 의리義理의 개꽃/ 그래도 너만은/ 참꽃 옆에서 바짝 엎드려 있다가/ 진달래 피고 난 뒤에 고개 드는구나
- 「참꽃 개꽃」 부분
비바람에 눈서리 내리고/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당신을 향한 마음은 처음 가진 그대로입니다// 오늘도 안개 가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비단을 깔고 황금 방석을 내밀어도/ 주위에서 바보라고 놀려도/ 이 자리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 「신망부가」 부분
위의 두 편의 작품은 안화수 시의 중요한 전거로 작용하고 있는 자연성이 인간의 성정으로서, 지켜야 하는 본성으로 형상화된 사례이다. 이번 시집에 들어 빈도가 높아진 부정적인 현실의 맞은편에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의 시적 화자들은 그러한 자연의 본성을 자신의 성품으로 내면화한다. 시인이 시작의 이유로 들었던 "좀더 나은 방향"이란 어찌 보면 자연성의 내면화일 것이고, 시를 쓰는 과정은 이를 성찰하고 되새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편의 시가 보여주는 "의리義理의 개꽃"과 '망부석'의 형상은 "간도 쓸개도 없는 세상" '바뀌고 변하는 시대와 사회'를 대응하는 '나'의 감성 생명의 구체적 성격이자 인간의 성정으로 내면화한 자연성의 이미지인 것이다. 도리道里와 분수分數를 망각한 현실 속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처음 가진" 초심과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태도가, 저 '망부석'과 '개꽃'의 형상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연성, 즉 본성을 거스르는 어떤 행위도 거부한다는 의지가 내재화되어 있다. 이 의지가 부정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세태와 타락한 자본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 누적된 적폐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의 시에 '의리義理'를 지키는 형상으로 제시된 사물이 '개꽃'이라는 것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역사적 시각과도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대목은 그의 시가 인간 성정이나 본래적 가치 등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 관한 언술들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지점이다.
흐르는 길 서로 달라도 본성은 같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합강合江, 그렇게 어울려 함께 가는 것/ 다정하게 어깨 걸고 바다를 향해 가는 것
- 「두 강물이 하나 되는」 부분
잘났다고 까불지 말라/ 비싸다고 무게 잡지도 말라/ 우리 함께 뭉치지 않으면/ 길가 널브러진 자갈인 것을
- 「사람 사이」 전문
합강合江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두 강물이 하나 되는」은 전형적인 민중 형상에 기초하고 있다. 시인은 도도한 강의 모습에서 장구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연대의 형상을 보고 있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렇게 어울려 함께 가"며 "어깨 걸고 바다를 향해 가는" 모습은 시인이 인식하는 역사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연대를 통해 이루어가는, 발전하는 역사의 형상이다. 물론 여기에서 역사를 추동해가는 주체는 1970, 80년대의 민중사적 관점에서의 민중과 달리, 좀더 다양한 주체들을 포함하는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강물이 만나는 자연 형상에서 역사의 형상을 발견해내는 이러한 시각은 「사람 사이」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길가 널브러진 자갈이"라는 시인의 인식은 자연(성)을 중요한 삶의 준거로 사유하는 시의식을 재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최근의 시국을 바라보는 현실 인식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팔뚝을 잘라 버릴까 아니면 뿌리째 뽑아 버릴까/ 국회의사당을 안고 돌아라 헌법재판소 대검찰청 건물도 덮어라 겨울이 오기 전에 너의 특기 살려 문드러진 세상살이 곪아 터지게 하라 그리하여 그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게 하라 희망이 샘솟게 하라
- 「칡넝쿨」 부분
등만 붙이면 단잠에 빠지는데/ 요즈음 나랏일 걱정으로/ 한밤중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 「기와집의 불」 부분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시국에 관한 시인의 인식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칡넝쿨의 자연 형상을 적폐 청산의 이미지로 감수할 정도로 "나랏일"을 걱정하는 시인의 내면이 매우 진솔하게 드러나 있는데, 사실상 호오好惡가 갈리는 정치적 이슈를 작품에 담아 발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문단 현실에서는 다소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적폐 청산에 관한 시인의 염원과 정치의식이 매우 강렬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는 화자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인의 말〉을 참고한다면, 그에게 청산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적폐는 자연과 본성에 반하는 것이고, 천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앞서 살펴본 역사적 형상을 상기하고, 이에 부합하는 오랜 격언 '천심天心이 민심民心'이라는 말의 함의를 고려하면, 적폐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의 마음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라는 요구일 것이다.
안화수 시인이 민감한 정치 이슈를 시에 담아 뜻을 밝힌 것은, 어찌 보면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의 일환이고, 그것은 '더 큰 나'의 문제이자 참여해야 할 '나의 일'이기도 한 것이리라. 한국시사에서 자연 형상을 노래한 많은 시인과 달리, 안화수 시인에게서 자연(성)은 결코 현실의 문제와 분리된 소재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작동해야 할 인간 성정의 모범인 셈이다. 이러한 안화수 시 세계의 특징은 보수나 진보 등의 정치적 이념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말 없는 투본 강,/ 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이 아니란다/강물, 너는 알고 있겠지/ 수많은 사람의 억울함을// 아직도 그날들의 분통이/ 삭지 않았다면/ 인제 용서해다오/ 비무장非武裝한 친구들과/ 먼 길을 둘러서 이렇게 왔잖아
- 「투본 강 가에서」 부분
수태할 능력 있는 사람들,/ 오늘 밤 비무장으로 애국하자/피임 기구 없애고 사정없이 사정하자/ 주말 밤 애국하는 분위기 뜨겁게 달구자
- 「애국하는 밤」 부분
「투본 강 가에서」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역사의식 위에 기초하고 있다면, 「애국하는 밤」은 국가주의적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구적이다. 이념의 측면에서 보자면 같은 시인이 썼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의식의 간격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특징들을 상기해보면 안화수 시에 바탕을 둔 자연성과 인간 본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시는 인위적인 이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저 자연의 본성, 이를 인격화한 성정 위에 기초하고 있어 보수나 진보 등의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아 보인다.
4.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일부 있더라도 대체로 자신의 일상이나 생활 감성을 노래하고 있는 안화수의 시는 의도적인 언어 탐구나 심미성에 대한 관심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세계이다. 그의 시는 자신의 정념을 표현하고 삶의 방향과 태도를 분명히 하려는 의지 위에서 개진된다. 그러한 점에서 안화수의 시는 존재구속적이다. 이는 그의 시작詩作이 자신의 삶과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됨을 의미한다. 평생을 어려운 학생들을 지도한 교사로, 그리고 가정에서는 따뜻한 남편과 아버지로 살아온 안화수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하며 표명한 "시 쓰기는 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라는 〈시인의 말〉은 이제까지 그의 시가 걸어온 내용을 시의식으로 길어올린 표현으로 생각된다.
앞서 했던 그의 시가 '존재구속적'이라는 말은 삶과 언어가 긴밀하여 시가 삶의 표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언어가 존재를 구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어가 존재를 구속한다는 것'은 언어가 지닌 주술적 힘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견인하는 언어의 윤리적 능력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 양자는 모두 힘 있는 시, 시의 역능力能을 생각하게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만진 언어, 언어의 유희성을 시적 동력으로 삼는 시도 그러하지만, 삶을 추동하거나 견인하는 힘을 갖고 있는 시 역시 얼마나 오랫동안 동행同行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응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고 그것은 언어와 관련된 수많은 문제, 어쩌면 인간학 전체와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이제까지 안화수 시의 본성에 관해, 그리고 시의 힘에 관해, 그것의 의의와 그것이 마주할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였는데, 그 연장선 속에서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편 중 가장 이질적으로 판단되는 아래의 작품은 안화수 시의 숨은 지점, 혹은 시적 진로를 생각하게 한다.
지상에 다닥다닥 들어찬 집/ 어디 꼭꼭 숨었을까/ 안개 자욱한 새벽녘이다// 잘난 체하는 사람도,/ 실제로 잘난 사람도 보이지 않고/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 자동차,/ 높낮이를 달리하는 수많은 아파트,/ 사방에는 컴퓨터 한 대 없다// 작은 새 한 마리/ 흐느적거리며 맴도는/ 바람마저 숨을 죽인 널따란 호수// 조용한 듯 시끄럽고/ 정의로운 듯 비겁한 세상에/ 먹물 묻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대로 풍덩 뛰어들었으면
- 「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전문
여타의 작품보다 언술의 배후에 품이 많은 시이다. 여기에는 안화수의 시에 등장하는 현실 사회의 문제와 그에 관한 시인의 사유들이 혼재되어 있다. "안개 자욱한 새벽녘"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에 주를 이루고 있는 생각들은 지상의 사람들, 현실 세상의 문제들이다. 이 고요한 이른 시간에 "정의로운 듯 비겁한 세상"을 생각하다니, 시적 정황을 놓고 보면 흔한 발상은 아니겠지만 『늙은 나무에 묻다』에 담긴 정념의 내용으로 볼 때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리라. 그런데 언술들의 고리가 조밀하지 않고 행간行間이 넓은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러저러한 상념想念들 사이로 등장하는 "먹물 묻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이대로 풍덩 뛰어들었으면"이라는 표현이다. 이를 "시끄럽고", "비겁한 세상" 속에서의 자기정화自己淨化의 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평면적일 뿐만 아니라 이 시의 언술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안화수의 시를 가로지르는 비판적 현실 의식과 윤리적 성찰, 그리고 삶의 부하負荷에 대한 피로감이 (무)의식적으로 투영投影된 것이 아닐까. 이 대목은 그의 시적 미래, 시 세계의 전환에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 고요한 호수로의 잠수潛水, 혹은 침잠沈潛은 정화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탈출의 욕망도 담겨 있는 것일 테니까.
가을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용마산 시의 거리를 거쳐/ 산호 공원 맨 꼭대기/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옷차림 가벼운 사람 두셋/ 훌라후프 돌리는 초로의 아주머니/ 옆에 남자는 굵은 나무에 등을 두드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또 한 사람/ 낡은 시멘트 벤치에 앉아 졸고 있다
- 「문화원 있던 자리」 전문
안화수 시인은 이제 평생 봉직한 천직天職을 내려놓고 좀더 자연에 가까운 상태가 될 것이다. 존재의 위치가 바뀌면 보이는 세계도 달라질 것인데, 교단에서 내려서면 그의 눈과 마음에도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깃들게 되리라. "가을바람" 속에서 "용마산 시의 거리"와 "산호공원"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의 시선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늙은 나무에 묻다』의 대개의 시들과는 전혀 다른, 관조의 시선이 정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화원 있던 자리", 기억과 부재不在 위를 가만가만 응시하는 저 시선이 보고 소환하는 것들, 아마도 그것이 안화수 시의 이후以後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도래할 웅숭깊은 풍경에 대한 기대는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목차
목차
시인의 말
제1부_입추立秋를 기다리며
입추立秋를 기다리며
관음증 일기
우주를 휩쓸다
참꽃 개꽃
신망부가
두 강물이 하나 되는
애국하는 밤
합천호, 물속을 걷다
짧게 짧게, 더 짧게
유자를 생각하다
동리목월문학관
참외밭 외 참외
메이드 인 코리아
운영전雲英傳을 읽고
어떤 쉼표
골목 끝 집
늙은 나무에 길을 묻다
고라니 두 마리 놀던 자리
제2부_사람 사이
균형均衡을 위하여
매미에게 배우다
대통령의 시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적폐 청산積幣淸算
칡넝쿨
촉석루의 봄
촉석루의 여름
흔들리는 진실
사람 사이
갑질하다
유달산 돌꽃
기와집의 불
투본 강 가에서
강융기 열사 추도비
쉰아홉 개의 나이테를 가진 나무들 모여
제3부_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책에서 나무를 읽다
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아내를 기다리며
당신과 함께
손만 잡고 자다
엄마꽃
달맞이꽃 피면
예 또는 그렇지 예
산다는 것
성악가, 날개 달다
요술쟁이 꽃나무
세월·3
비만이 될 수밖에
봄이 진다
나무 가족
봄나들이
시詩가 잘 되는 날
제4부_문화원 있던 자리
팔룡산 돌탑
눈 오는 새벽
승연정勝緣亭에서
산복도로 구렁이
가고파 국화 축제장
황금 돼지 섬
진동 미더덕
가포, 성형하다
꽃의 대화법
팔룡산보다 더 높이
구슬골 고사리
남강 물가에서
소나기, 개울에서 만나다
그해 삼월 십오일
창원NC파크 마산구장
문화원 있던 자리
■해설┃성정性情의시, 시의 역능力能 /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제1부_입추立秋를 기다리며
입추立秋를 기다리며
관음증 일기
우주를 휩쓸다
참꽃 개꽃
신망부가
두 강물이 하나 되는
애국하는 밤
합천호, 물속을 걷다
짧게 짧게, 더 짧게
유자를 생각하다
동리목월문학관
참외밭 외 참외
메이드 인 코리아
운영전雲英傳을 읽고
어떤 쉼표
골목 끝 집
늙은 나무에 길을 묻다
고라니 두 마리 놀던 자리
제2부_사람 사이
균형均衡을 위하여
매미에게 배우다
대통령의 시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적폐 청산積幣淸算
칡넝쿨
촉석루의 봄
촉석루의 여름
흔들리는 진실
사람 사이
갑질하다
유달산 돌꽃
기와집의 불
투본 강 가에서
강융기 열사 추도비
쉰아홉 개의 나이테를 가진 나무들 모여
제3부_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책에서 나무를 읽다
팔룡산 정상에 누웠는데
아내를 기다리며
당신과 함께
손만 잡고 자다
엄마꽃
달맞이꽃 피면
예 또는 그렇지 예
산다는 것
성악가, 날개 달다
요술쟁이 꽃나무
세월·3
비만이 될 수밖에
봄이 진다
나무 가족
봄나들이
시詩가 잘 되는 날
제4부_문화원 있던 자리
팔룡산 돌탑
눈 오는 새벽
승연정勝緣亭에서
산복도로 구렁이
가고파 국화 축제장
황금 돼지 섬
진동 미더덕
가포, 성형하다
꽃의 대화법
팔룡산보다 더 높이
구슬골 고사리
남강 물가에서
소나기, 개울에서 만나다
그해 삼월 십오일
창원NC파크 마산구장
문화원 있던 자리
■해설┃성정性情의시, 시의 역능力能 / 김문주(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저자
저자
안화수
1959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와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文學世界』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하여 마산문인협회,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 사무국장, 경남문인협회 사무처장, 『경남문학』 편집주간을 지냈다.
시집 『까치밥』, 『명품 악보』, 『늙은 나무에 묻다』와 대학 교재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공저)가 있으며, 마산예술 공로상, 경남문학 우수작품집상, 경남 올해의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마산문인협회 회장,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영남지회 상임이사, 종합문예지 『시애』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마산공업고등학교에서 34년째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1998년 『文學世界』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하여 마산문인협회,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 사무국장, 경남문인협회 사무처장, 『경남문학』 편집주간을 지냈다.
시집 『까치밥』, 『명품 악보』, 『늙은 나무에 묻다』와 대학 교재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공저)가 있으며, 마산예술 공로상, 경남문학 우수작품집상, 경남 올해의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마산문인협회 회장,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영남지회 상임이사, 종합문예지 『시애』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마산공업고등학교에서 34년째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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