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민족개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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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는 최초의 근대소설 장편 『무정』을 발표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비조격인 인물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치고 모를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춘원은 작가로서 인식되고 소비되어지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춘원에게는 작가라는 위상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각인된 인상이 있다. 민족지도자의 한 분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제 말 춘원의 변절을 놓고 볼 때 민족지도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변절이라는 다소의 하자가 있더라도 춘원을 민족지도자의 한 분으로 인정하고 존숭하는 게 옳다는 입장이 엇갈린다. 그 어떤 입장에 서든 작가로서의 춘원의 위상이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민족문제가 춘원의 작가정신 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감안할 때, 그것과 구별지어 작가로서의 그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그러나 춘원에게는 작가라는 위상 못지않게 우리들에게 각인된 인상이 있다. 민족지도자의 한 분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제 말 춘원의 변절을 놓고 볼 때 민족지도자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변절이라는 다소의 하자가 있더라도 춘원을 민족지도자의 한 분으로 인정하고 존숭하는 게 옳다는 입장이 엇갈린다. 그 어떤 입장에 서든 작가로서의 춘원의 위상이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민족문제가 춘원의 작가정신 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감안할 때, 그것과 구별지어 작가로서의 그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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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가로서 이광수는 한평생 민족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다. 근대문학의 수용, 그에 따른 세계화, 자유연애 문제, 전통사상 등등 다양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을 지닌 춘원이었지만 민족문제와 관련하여서 보면 이것들은 지엽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근대문학에서 민족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주제의식이 된 것은 우리 근대문학의 개척자였던 이광수의 족적이 남긴 그 유산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민족지도자로서의 춘원의 위상이 흔들릴 때 작가로서의 그의 위상도 온전하게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다.
이 민족문제와 관련하여 이광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다름 아닌 도산 안창호였다. 춘원은 도산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나머지 도산이 조직한 흥사단에 입단하고, 수양동우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한다. 도산은 흥사단에 가입하려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근접면접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이 작품 『도산 안창호』에 잘 묘사되어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연상케 하는 면접이었는데, 여기서 면접을 보고 있는 흥사단 지망생은 다름 아닌 필자인 이광수가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상세한 대화의 묘사는 불가능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춘원은 도산이 형무소에 재수감될 때 함께 투옥된다. 도산은 서대문 형무소에 재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춘원은 6개월여 만에 다시 바깥세상을 보게 된다. 그 일로 도산은 민족의 큰 지도자로 평가되고 숭앙받는 반면 춘원은 변절자라는 오욕을 뒤집어쓰게 된다. 실제로 출옥 이후 춘원의 행동은 맑지 못하고 무언가 뒤를 숨기는 듯한 양상을 보여준다.
춘원이 변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소문도 있다. 도산이 임종을 맞이하며 이런 유언을 춘원에게 남겼다고 한다. '자신은 먼저 가니 동우들을 춘원이 챙겨라' 하였다는 거다. 춘원은 도산의 이 유언을 받고 수양동우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굴욕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춘원이 얼마나 도산을 깊이 앙모하였던가를 보여주는 일화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해방 이후 춘원이 자신이 그토록 숭앙했던 도산에 대하여 쓴 글이 이 『도산 안창호』이다.
특별히 춘원의 대표작 세 개만 꼽으라고 하면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과 전기 『도산 안창호』 그리고 논설 『민족개조론』을 드는 경우가 흔하다. 이광수가 널리 알려진 큰 소설가였음에도 그의 소설이 아닌 전기나 논설에서 그의 대표작이 언급되어진다는 게 다소 놀랍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민족문제에 대한 이광수의 문제의식이 깊고 진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지는 까닭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문제에 대하여 춘원만큼 깊고 넓게 천착한 작가는 달리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아니, 우리 근대문학이 민족문제에 깊이 기운 게 바로 춘원이라는 대작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춘원의 3대 걸작으로 알려진 전기 『도산 안창호』와 논설 『민족개조론』을 함께 묶었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주제 같은 인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전기요 하나는 논설이어도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유사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두 작품을 한데 묶은 책이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이상한 것은 해소하고 싶어지는 게 출판업자도 마찬가지다.
글도출판사에서 춘원의 『도산 안창호』와 『민족개조론』을 함께 묶어 출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남들이 여태껏 하지 않은 소중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랄까.
독자 제위도 이런 뿌듯한 기분을 우리 출판사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책을 내는 입장에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민족지도자로서의 춘원의 위상이 흔들릴 때 작가로서의 그의 위상도 온전하게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다.
이 민족문제와 관련하여 이광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다름 아닌 도산 안창호였다. 춘원은 도산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나머지 도산이 조직한 흥사단에 입단하고, 수양동우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한다. 도산은 흥사단에 가입하려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근접면접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이 작품 『도산 안창호』에 잘 묘사되어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연상케 하는 면접이었는데, 여기서 면접을 보고 있는 흥사단 지망생은 다름 아닌 필자인 이광수가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상세한 대화의 묘사는 불가능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춘원은 도산이 형무소에 재수감될 때 함께 투옥된다. 도산은 서대문 형무소에 재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춘원은 6개월여 만에 다시 바깥세상을 보게 된다. 그 일로 도산은 민족의 큰 지도자로 평가되고 숭앙받는 반면 춘원은 변절자라는 오욕을 뒤집어쓰게 된다. 실제로 출옥 이후 춘원의 행동은 맑지 못하고 무언가 뒤를 숨기는 듯한 양상을 보여준다.
춘원이 변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소문도 있다. 도산이 임종을 맞이하며 이런 유언을 춘원에게 남겼다고 한다. '자신은 먼저 가니 동우들을 춘원이 챙겨라' 하였다는 거다. 춘원은 도산의 이 유언을 받고 수양동우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굴욕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춘원이 얼마나 도산을 깊이 앙모하였던가를 보여주는 일화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해방 이후 춘원이 자신이 그토록 숭앙했던 도산에 대하여 쓴 글이 이 『도산 안창호』이다.
특별히 춘원의 대표작 세 개만 꼽으라고 하면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과 전기 『도산 안창호』 그리고 논설 『민족개조론』을 드는 경우가 흔하다. 이광수가 널리 알려진 큰 소설가였음에도 그의 소설이 아닌 전기나 논설에서 그의 대표작이 언급되어진다는 게 다소 놀랍기는 하지만, 이해가 안 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민족문제에 대한 이광수의 문제의식이 깊고 진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지는 까닭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문제에 대하여 춘원만큼 깊고 넓게 천착한 작가는 달리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아니, 우리 근대문학이 민족문제에 깊이 기운 게 바로 춘원이라는 대작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춘원의 3대 걸작으로 알려진 전기 『도산 안창호』와 논설 『민족개조론』을 함께 묶었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주제 같은 인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전기요 하나는 논설이어도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유사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두 작품을 한데 묶은 책이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이상한 것은 해소하고 싶어지는 게 출판업자도 마찬가지다.
글도출판사에서 춘원의 『도산 안창호』와 『민족개조론』을 함께 묶어 출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남들이 여태껏 하지 않은 소중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랄까.
독자 제위도 이런 뿌듯한 기분을 우리 출판사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책을 내는 입장에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목차
목차
서문
투쟁생애편(鬪爭生涯篇)
1장 소년시대 - 쾌재정(快哉亭)의 웅변 11
2장 미주유학시대 - 교포(僑胞)의 조직과 훈련 18
3장 신민회(新民會)시대 - 한말 풍운과 민족운동 26
4장 망명 - 실국(失國) 전후의 극적 사안 50
5장 미주활동시대 - 살아있는 태극기와 애국가 69
6장 상해시대(上海時代) - 임시정부에서 대독립당까지 80
7장 피수순국시대(被囚殉國時代) - 민족정신의 수호자113
국민훈련편(國民訓練篇)
8장 자아혁신(自我革新) 130
9장 송태산장(松苔山莊) 148
10장 흥사단(興士團) 167
11장 동지애(同志愛) 219
12장 이상촌 계획(理想村 計劃) 236
13장 상애(相愛)의 세계 248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
변언(辯言) 270
민족개조(民族改造)의의의(意義) 271
역사상(歷史上)으로 본민족개조운동 276
갑신이래(甲申以來)의 조선의 개조운동 284
민족개조(民族改造)는 도덕적(道德的)일 것 293
민족성(民族性)의 개조(改造)는 가능한가 303
민족성(民族性)의 개조(改造)는 얼마나한 시간을 要할까315
개조의 내용(內容) 327
개조의 방법(方法) 342
후기
결론(結論) 351
투쟁생애편(鬪爭生涯篇)
1장 소년시대 - 쾌재정(快哉亭)의 웅변 11
2장 미주유학시대 - 교포(僑胞)의 조직과 훈련 18
3장 신민회(新民會)시대 - 한말 풍운과 민족운동 26
4장 망명 - 실국(失國) 전후의 극적 사안 50
5장 미주활동시대 - 살아있는 태극기와 애국가 69
6장 상해시대(上海時代) - 임시정부에서 대독립당까지 80
7장 피수순국시대(被囚殉國時代) - 민족정신의 수호자113
국민훈련편(國民訓練篇)
8장 자아혁신(自我革新) 130
9장 송태산장(松苔山莊) 148
10장 흥사단(興士團) 167
11장 동지애(同志愛) 219
12장 이상촌 계획(理想村 計劃) 236
13장 상애(相愛)의 세계 248
민족개조론(民族改造論)
변언(辯言) 270
민족개조(民族改造)의의의(意義) 271
역사상(歷史上)으로 본민족개조운동 276
갑신이래(甲申以來)의 조선의 개조운동 284
민족개조(民族改造)는 도덕적(道德的)일 것 293
민족성(民族性)의 개조(改造)는 가능한가 303
민족성(民族性)의 개조(改造)는 얼마나한 시간을 要할까315
개조의 내용(內容) 327
개조의 방법(方法) 342
후기
결론(結論) 351
저자
저자
이광수
(1892. 03. 04일-1950. 10월 25)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문학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이며 애국 계몽 운동가이다. 최남선과 함께 거론되는 초창기 한국의 근대문학을 이끌었던 우리 근대문학의 일세대인이다. 호는 춘원(春園).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일제 강점기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인물이며, 소설가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청소년과 남녀 문인들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인물이다. 임정시절 도산 안창호와 깊은 교류가 있었고, 1921년 안창호의 우려를 뒤로 하고 경성으로 돌아온 그 다음해(1922년)에 『민족개조론』을 『개벽』(5월호)지에 발표. 그는 1917년 『무정』을 기점으로 하여 평생에 걸쳐 『흙』 『단종애사』 『유정』 『사랑』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와 더불어 옥고를 치렀고, 그는 6개월 만에 풀려나오나 안창호는 그 사건을 계기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해방 후 반민특위법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안창호의 일대기를 썼고, 그의 대표작 가운데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1950년 납북되었다가 폐결핵으로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문학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이며 애국 계몽 운동가이다. 최남선과 함께 거론되는 초창기 한국의 근대문학을 이끌었던 우리 근대문학의 일세대인이다. 호는 춘원(春園).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 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일제 강점기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미권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순한글체 소설을 쓰는 등 소설 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인물이며, 소설가로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시대 청소년과 남녀 문인들의 우상이었고,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인물이다. 임정시절 도산 안창호와 깊은 교류가 있었고, 1921년 안창호의 우려를 뒤로 하고 경성으로 돌아온 그 다음해(1922년)에 『민족개조론』을 『개벽』(5월호)지에 발표. 그는 1917년 『무정』을 기점으로 하여 평생에 걸쳐 『흙』 『단종애사』 『유정』 『사랑』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와 더불어 옥고를 치렀고, 그는 6개월 만에 풀려나오나 안창호는 그 사건을 계기로 그만 세상을 뜨고 만다. 해방 후 반민특위법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안창호의 일대기를 썼고, 그의 대표작 가운데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1950년 납북되었다가 폐결핵으로 병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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