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낙서
꾸밈없이 에파타
이종희 작가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성자의 낙서』. 고통과 아픔이 우리의 친구였으며 부족한 인간에게 생명과 함께 주어진 것이어서 우리는 그것으로 성장하였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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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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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열차 객실에서 계란과 김밥을 파는 수입이 보장되는 자리를 꿰찼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꼬마와 똑같은 처지로 역 주변을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렸다. 역사를 무대로 생계를 꾸려가는 구두닦이와 소매치기 그리고 껌팔이 행상 아이들은 그가 서울에서 사람을 죽이고 이 작은 소도시로 도망쳤다는 소문에 모두 깔때기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깔때기가 열차객실을 주름 잡으며 김밥장사를 독점하던 김중사라는 별명의 사내도 죽였다는 말이 퍼져나갔다. 이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의미로 깔때기라고 불리던 그는 최근에 놀랍게도 이 소도시에 유일한 체육관의 태권도 사범으로 또 한 번 변신을 했다. 알고 보니 드럼통 체구에 짧고 통통한 팔을 휘저으며 거만하게 소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며 다니는 체육관 관장이 깔때기의 대학선배였다. 유도국가대표출신의 관장은 이 조그만 도시의 자랑이었다. 깔때기의 본래 이름이 호일이며 그가 태권도의 고수였다는 것은 그 후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깔때기가 신분을 숨기려 한다는 것은 체육관에서 일 년에 한차례 사람들을 초대해서 유도와 태권도 시범을 보일 때도 깔때기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도 증명이 되는 듯 했다. 아이들이 시범을 보이는 광경을 사람들 사이에서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는데 실수를 한 아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벌을 가했다. 소도시의 체육관에서 전국체전 우승자가 나왔다. 사범 호일이 야구배트로 아이들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내려 친 뒤에 아이들은 펄펄 날았다. 아이들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깔때기의 고강도 훈련을 견뎌내고 태권도 대회에서 우승하여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그의 잔혹한 훈련에 대해 부모들에게 소상히 이야기를 하고 체육관을 그만두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대개 전자를 택했다. 뼈가 부러지고 몸 군데군데 검붉게 피멍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승을 차지했다.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역사를 빠져나갔다. 그러는 사이 미친 여자 월지가 언제 올라갔는지 역사의 창문틀에 올라서서 뛰어내리려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월지는 2m 높이의 창틀에 올라선 채 불안하게 그녀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 비켜요, 비켜.
팔을 휘저어가며 피하라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은 미친 월지가 장정의 키보다도 높은 창틀에서 뛰어내리며 발을 접지러거나 바닥에 넘어지며 머리를 짓찢지 않을까 염려하여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 내리온나, 니 그서 뛰었다카믄 빼 뿌사져뿐다.
군중들 가운데 섞여있던 노인이 월지를 향해 걱정스레 말했다.
― 젊은 얼라가 우짜다가 저 꼬라지가 돼 뿌랬노? 이 사람들아, 그래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말래 보라 카이.
꼬마가 구두약과 솔이 든 나무통을 어깨에 걸며 노인에게 말했다.
― 할배요, 미친 년이라요. 우리가 암만 말해도 몬 알아묵어요.
노인이 군중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 무슨 귀경꺼리 났다꼬 이래 보고 있노? 썩 몬 가나.
그는 지팡이를 들어 내려치려는 시늉을 하자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미친 여자 월지가 팬티를 무릎 아래까지 내리고, 치마를 배위까지 올렸다 내리는 민망한 광경을 연출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 와! ??한 게 쥑이네, 존나 맛있게 생기뿟다.
꼬마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별을 보았다. 노인의 지팡이가 꼬마의 정수리를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 떽끼 놈.
이때였다. 모여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저마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았다. 월지가 두어 번 팔을 앞뒤로 흔들며 도약준비를 한 후에 마침내 창문틀에서 힘차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몸의 어디 한군데는 부러지고 말았을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월지는 멀쩡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월지를 안고 함께 흙바닥에 나뒹군 사람이 있었다. 깔때기라고 불리는 청년 호일이었다.
― 자기 왜 이제 왔어?
월지가 깔때기를 향해 교태를 지으며 말했을 때 사람들은 혀를 차며 가엽다는 듯 여자를 바라보았다.
― 젊은 아가가 안됐네, 어디 사는 처잔고? 말씨를 보이, 이 지방 사람은 아인데, 어데서 왔다 카더노?
사람들이 수런거렸지만 월지는 눈길을 주지 않고 깔때기에게 안기려고 했다. 깔때기가 일어나며 옷에 묻은 흙탕물 얼룩을 털어냈다. 광장은 아직 두꺼운 구름이 뒤덮어 어둑어둑했다. 깔때기가 월지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 따라와.
월지는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이 풀린 채 넋을 놓고 진흙탕에 앉아 있었다. 깔때기가 월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아이가 있었다. 짱구였다. 미친 월지가 두 손을 모아 호일에게 비는 시늉을 했다. 소매치기 짱구가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월지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면서도 그는 연신 호일의 눈치를 살폈다. 찰나였다. 호일의 다리가 번쩍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때 짱구는 허공으로 날아 역사의 돌 벽에 등을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부랑아들은 호일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호일이 월지를 일으켜 세운 후에 먼저 앞장을 서고 월지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수군대는 소리가 커졌다.
― 너그들 봤제? 깔때기 저 시끼는 사람이 아인기라, 김중사 형님하고 다른 히야들이 열 명도 넘게 달라들었는데 졸지에 허벗는기라, 절마저그 기양 날라 뿌는데 우야겠노. 그 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믄서 돌려차삐는데, 죽이준다카이.
― 듣겠다, 시발놈아, 목소리 좀 낮차라, 깔때기 절마 들을라,점마한테 걸리믄 빼도 몬 추린다!
― 그런데 저 또라이 가시나는 와 델꼬 가는데? 우째끼나 인자 다른 놈들은 저 가시나 몬 건드리겠다.
― 아이고, 깔때기 절마, 우리 쳐다본다, 가자 짜슥들아. 아구창 돌아가지 말고, 미친년을 델고 가든지 말든지 지 맘대로 하라캐라.
가로등 빛을 받아 깔때기와 월지 두 사람의 긴 그림자가 광장에 드리워졌다. 호일이 앞서가고 월지가 그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어갔다. 호일이 돌아볼 때마다 월지는 깜짝 놀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비안개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안개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
대학에 복학한 후, 호일이 시작한 주식투자동아리는 성황을 이루었다. 전국적으로 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동아리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호일은 동아리 운영진을 시켜주겠다는 것을 미끼로 회원들을 끌어 모아 대출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꼬임에 빠진 철없는 학생들이 몇 백 만원에서부터 몇 천 만원에 이르는 금액의 채무자가 되어버렸고 그 돈은 고스란히 사이비교주의 금고로 들어갔다. 호일이 동아리 회원들로부터 신분증 사본과 계좌번호 그리고 공인인증서를 빼내는 역할을 했다. 사이비종교단체에서 어머니의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빚이랄 것도 없었다. 사교단체에 내기로 약속한 돈을 제 때에 내지 못한 것이 빚으로 둔갑을 했고 그들은 금액만큼의 차용 증서를 받고 공증을 했다. 빚은 눈 덩이처럼 늘어만 갔다. 어머니는 집을 팔았고 그 후로는 사교단체의 집단숙소에 기거하며 노동을 했다.
― 난 호일도 속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원망하지 않아.
호일의 여자 친구인 은영은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그녀는 호일의 권유에 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호일은 친한 친구인 그녀의 돈만은 되돌려주고 싶었다.
― 언제 한번 데리고 와, 교주님께 이야기 해 볼게.
사무장이라는 자가 음흉하게 웃는 이유를 호일은 알 수 없었다.
― 호일이 교주님의 경호를 맡고 있으니 교주님도 호의를 베풀어주실 거야.
은영이 교주를 만나는 동안 호일은 사무장의 심부름으로 잠시 집단 합숙소를 벗어나 외출을 했다. 은영은 천만 원을 돌려받았다고 했다. 며칠 뒤 은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교주를 만나게 해 줘.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호일이 그녀에게 갔을 때 은영은 정신을 잃었다. 인근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간 뒤에 그녀는 한동안 깨어나지 않았는데 응급의사는 대학생인 은영이,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간을 당한 흔적으로 보아 마약을 투여한 후에 여러 명이 강간한 징후를 확인했다는 말을 호일에게 전해주었다. 병원 측에서 서둘러 경찰에 연락을 했다. 경찰이 집단 합숙소에 들이닥치기도 전에 호일이 교주를 찾아갔다. 그는 대강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재물을 땅에 쌓아두면 어떻게 돼? 썩지, 썩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천국 창고에 쌓아두어야 해, 바로 너희들이 앉은 바로 이 자리가 천국 자리야.
간부들이 종이를 돌렸다.
― 얼마나 쌓을지 적어, 땅도 팔고 보석도 팔고, 적금도 깨고 모두 천국으로 옮겨, 썩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거야.
연이어 음악이 고막을 찢었다. 잠시 쉬는 틈에 사이비 교주가 목을 축이기 위해 연단 휘장 뒤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호일은 살인 충동을 억눌렀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움켜쥔 두 주먹을 떨었다. 교주의 뒤로 다가가 팔을 꺾었다.
― 쌔끼야, 아파.
교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호일이 교주의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바늘로 찌르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도끼로 찍으면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는 너무 아픈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교주를 발견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따라왔지만 호일은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
역을 떠돌던 미친 여자 월지를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자, 호일은 곧바로 그녀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호일은 월지에게서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 은영의 현재를 떠올려보았다. 소식이 끊어진 지도 벌써 삼년이 지나고 있었다.
호일이 잠깐 생각에 잠겨있을 때 욕실에서 월지의 비명이 들려왔다. 호일이 소리 없이 다가가 욕실 벽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월지가 타월의 끝을 양손으로 당겨서 팽팽하게 만들어 움켜쥐고 호일이 머리를 디밀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눈에 핏발이 서있었고 타올로 호일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 호일은 미친 여자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호일은 중지를 구부려 만든 손가락 관절주먹으로 월지의 명치를 찔렀다. 월지가 입을 쩌억 벌린 채 눈이 뒤집어지며 욕실 바닥에 쓰러졌다. 한동안 월지는 벌린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을 찢는 극렬한 통증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벌린 입으로 침이 흘러나왔다. 돌바닥에 팽개쳐진 개구리처럼 사지를 떨었다. 입에 거품을 물며 월지는 정신을 잃었다. 그녀의 몸 어디에선가 끼익, 끼이익,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사이에 호일은 익숙하게 욕조에 물을 받고 손가락을 넣어 온도를 점검했다. 잠시 후 월지는 깨어날 것이며 더 이상 도발할 수 없을 만큼 고분고분해진다. 그녀는 호일이 강하며 절대 이겨낼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호일이 사이비종교단체의 합숙소에서 미쳐버린 사람들을 다루었던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정신이 멀쩡하지만 광적이거나 가정이 파탄이 나고 전 재산을 단체에 바친 후에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그리고 육체를 유린당한 후에 미치거나 미친 듯이 행동했다. 그 모든 것을 일시에 잠재우는 방법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폭력이었다. 그 사이 월지는 깨어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 씻지 않아서 때 얼룩이 있는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수증기에 섞였다. 호일은 구역을 참기 위해 숨을 멈추었다. 그녀는 한동안 호일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호일이 턱으로 욕조를 가리켰다. 그러자 월지는 눈으로 샤워꼭지를 응시했다. 호일로서는 그녀가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샤워를 먼저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호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일은 그녀의 갑작스런 발작에 대비해 욕실을 지키기로 했다. 따스한 물이 얼굴과 몸에 떨어졌다.
― 나가요, 어서요.
그녀가 팔로 가위표를 만들어 재빨리 가슴을 가리며 말했을 때 호일은 잠깐 당황했다. 그녀는 정상인의 상태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월지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 낯선 남자가 욕실에 함께 있는지 의아했다. 월지는 고개를 돌리고 호일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발아래에는 아마 바로 조금 전 벗어던진 것으로 보이는 더러운 옷가지들이 샤워 비를 맞고 추적거린다. 월지는 자주 벌어지는 이런 상황에 덤덤했다. 언제나 정신을 차려보면 낯선 곳, 이상하고 비감한 상황에 빠진 것을 발견하곤 했다.
호일은 방금 월지가 보여준 뜻밖의 행동에 당황했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 행동이라기보다는 변화였다. '그녀가 정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까' 월지는 수줍어하는 단아한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호일은 자꾸만 월지와 오버랩 되는 은영의 얼굴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은영은 그런 일이 있은 후 행방불명이 되어버렸고 호일도 쫓기는 처지가 된 후로는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욕조의 물소리가 창밖의 빗소리와 섞였다. 호일은 현실과 비현실, 또는 정상과 광기 사이의 공간에 서있듯 그 자리에 선 채로 원두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벽 사이에 조성된 작은 도피처 같기도 했다.
역 광장에서 월지를 만난 뒤에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녀를 구하고 집에까지 데려와 목욕을 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에 대하여 알아낸 것은 월지가 두 개의 인격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짐작뿐이었다.
비는 다시 창을 세차게 때렸고 간혹 천둥과 번개가 쳤다. 뇌우는 계속되고 있었다. 월지는 타올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언제나 이때쯤 찾아오는 통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정신이 들어 처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즈음에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그녀를 엄습했다. 예외는 없었고 근원도 이유도 알 수 없는 고통이었다. 통증은 그치지 않았고 그녀가 정신을 놓고 미쳐버릴 때 통증은 사라졌다. 그 이후에 벌어진, 그녀가 광기에 이끌려 저지른 일은 그녀의 기억 밖의 사건이었다. 월지는 극심한 고통에 빠지거나 미쳐있었다.
월지가 광기와 통증 속에서 떠올린 실루엣은 어머니 만명의 방이었다. 신당은 무당 만명이 업무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다. 벽에는 알 수 없는 인간과 신의 중간쯤 되는 형상들이 초상으로 붙어있고 어지럽게 휘장이 드리워진 사이에 향내가 피어올랐다. 어머니는 노란색 바탕의 종이에 붉은 글씨로 부적을 그려 인간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 월지야, 신당에는 얼씬도 하지 마,
무당인 어머니는 월지를 그녀의 사업체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했다. 딸을 위해 신촌의 대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해주었다.
월지는 욕실에서, 언제나 손님처럼 찾아오는 통증에 몸부림쳤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오고 내장이 뒤틀렸다. 피부는 가시에 질린 듯 따끔거렸다.
호일은 언젠가 이 소도시의 동네 사람들이 복날 개를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우선 삶은 보리밥을 실컷 먹이고 나서 소화도 되기 전에 재갈을 물려 높이 매달았다. 그리고서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죽었다고 생각되면 껍질을 벗기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개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었다.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자 개는 고통에 우우, 소리를 냈다. 방금 호일은 욕실에서 그 때의 개가 내지르던 소름끼치는 비명을 들었다. 호일은 커피 잔을 집어 던지고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월지는 인기척을 느끼고 호일을 바라보았지만 동공은 풀려있었다. 호일은 도자기 같은 그녀의 몸을 보았다. 월지는 전혀 다른 인격의 탈혼 상태에 빠진 인간이었다. 호일이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더구나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상황에서 여성기를 본적도, 볼 기회도 없었다. 월지는 호일을 등지고 허리를 굽히며 여성기를 호일에게 디밀었다. 두 손으로 엉덩이를 잡고 벌렸으므로 검은 고양이의 입속 같기도 하고, 석류의 속 같은 진한 빨강의 질과 분홍빛 클리토리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호일이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월지는 호일의 화난 표정을 보자 흠칫 놀라는 듯 했다. 그녀는 얼른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운을 걸쳤다. 그녀는 호일이 지난번처럼 급소를 향해 무서운 일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월지가 식탁에 앉아 호일이 차려놓은 찌개와 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고 호일은 체육관에 갈 시간이 되어 어쩔 수없이 집을 나왔다.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월지의 손은 험한 일을 하지 않은 손이었다. 가운데 손가락 끝매듭의 굳은살로 보아 그녀는 학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얼른 본 월지는 귀엽고 아름다웠다. 순백의 빛나는 피부, 봉긋한 가슴과 그 위에 수줍은 듯 코코아 빛깔의 봉오리가 호일의 눈을 사로잡았다. 의문이었다. '왜 월지는 미쳐버린 것일까'
목차
목차
008 성자의 낙서 - 프롤로그
010 박영 안젤라
019 태반음
028 막달레나처럼
053 일곱 마리의 악령
060 갈대 연못 달빛
066 사이비 교주
070 생명나무 가지
074 검은 눈의 프린세스
084 앙코르 연주
089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향유
095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07 아리랑
111 땅과 후손
115 초대
135 성소
142 보다 나은 선택 - 배반
148 염기서열
152 에파타
156 존재의 쓸쓸함
159 생체항상성
165 임대차 존속기간
173 목숨과 생명(프시케와 조에)
185 커튼을 걷다
188 가든파티
193 문제와 해결의 방
198 성자의 손가락 - 에필로그
별지 : 이종희 신간 장편소설 목록
저자
저자
소설가/시인
경북 경주 출생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졸업
학사장교만기전역
단편소설《하트 모양의 가스 얼음》
大邱文學/대구문학
詩集《춤추는 목각줄인형》
단편소설《새를 쫓기 위하여》
短篇小說·詩選集《샤갈 선생》
短篇小說選集《크리스마스 목가》
長篇小說《신의 나라 토마스》
長篇小說 《잎새 시계》
長篇小說 《네모 행성》
長篇小說 《푸른 말 호박등불》
長篇小說 《성자의 낙서》
長篇小說 《은화를 입에 문 물고기》
長篇小說 《두 번째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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