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간
시대의 인간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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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정상 인간’은 기획되고 만들어진다, 역사 속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톺아보기!
현대 사회에서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필수 덕목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는 인간형이 이 시대의 ‘정상 인간’형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다. 그런데 표준화된 ‘정상 인간’을 상정하는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가진다. 역사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변화해왔다. 과거에는 정상이던 것이 현재에 비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저자는 당대를 지배한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은 사회를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정상 인간’을 상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모습이, 일상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필수 덕목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관리하는 인간형이 이 시대의 ‘정상 인간’형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다. 그런데 표준화된 ‘정상 인간’을 상정하는 이 사회는 과연 ‘정상’인가?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가진다. 역사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변화해왔다. 과거에는 정상이던 것이 현재에 비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저자는 당대를 지배한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세력은 사회를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정상 인간’을 상정하고 그에 맞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모습이, 일상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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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정상 인간 - 시대의 인간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기계발의 시대, 시간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지금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은 무엇인가?
시대마다 '정상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조국 근대화를 이룰 '근면한 근로자'가 '정상 인간'형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시간 관리에 능숙한 '자기계발의 주체', 이것이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시간을 관리하며 퇴근 후에도 학원을 다니거나 스터디를 하는 등 자기계발에 열중한다. 쉼과 여유를 누릴 시간은 없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인 대부분이 불안ㆍ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왜 사람들은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계발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안ㆍ강박증에 시달린다. 바꿔 말하면 이 시대가 만들어놓은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상 인간'형은 누가 만드는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의 힘 관계에 따라 구성된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쟁'이 핵심이다. 개인 간, 기업 간, 국가 간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사람들은 일터 외 일상에서도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일의 능률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자본은 시간 관리하는 인간형을 정상으로 만들고 자기계발이라는 주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톨의 자유시간도 경쟁력을 드높이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것이 바로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다.
이 책은 역사 세력들이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특정한 인간형으로 만들어왔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의 역사를 짚어본다. 특히 근대가 시작되는 시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시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시기마다 역사 세력들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을 개조해왔는지를 수많은 국내외 문헌을 참고하며 추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산업 질서와 맞지 않는 오락ㆍ레저ㆍ스포츠는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던 전통이라고 해도 배제되었다. 산업자본은 동물싸움이 아닌 건전 오락을 장려했고, 독주가 아닌 맥주를 권장했다. 나치 정권은 국민체육, 국민차, 국민도로 같이 민족 정체성을 목표로 한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대거 만들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여가시간이 지극히 부족한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형은 행복과 사랑마저도 상품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고 남은 시간에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각 시대마다 '정상 인간'을 규정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전작 《과로 사회》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사회학자 김영선은 특정한 오락ㆍ레저ㆍ스포츠를 정상으로 내세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내몰았던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지금 우리 시대에 전개되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성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비정상성을 해체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다.
권력이 기획한 여가의 통치,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휴가 기간이 다가온다. 인터넷 창을 띄워서 각종 여행 상품을 둘러보고 예약한다. 제주도를 갈 수도 있고 동남아, 유럽으로 떠날 수도 있다. 주말에는 무엇을 할까? 피곤한데 집에서 TV나 볼까? 요즘 유행이라는 캠핑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각자 취향과 선호에 맞게 여가를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시간을 즐기는 이 모든 방법이 온전한 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여행을 즐겼는지, 영화가 없던 시대에 무슨 오락거리를 즐기며 여가를 보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일터 밖 여가 장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은 인류 보편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전통사회에서는 이동수단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이나 즐기는 취미였다. 19세기 중반,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교통혁명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근현대 시대가 낳은 여가 모습인 셈이다. 반면 동물싸움과 몹 풋볼(돼지 오줌보 같은 공을 사용해 상대방 진영의 정해진 위치에 공을 갖다놓는 게임)은 근현대 시대에 사라진 여가의 한 장면이다. 영화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각종 동물싸움을 즐겼다. 광장 주변이나 선술집 앞에서 '곰 곯리기(쇠사슬로 묶인 곰에게 개를 덤비게 하는 옛놀이)', 투견, 투계 등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 또 사람들은 몹 풋볼을 즐겼다. 정해진 규칙이 없을 뿐 현대 축구와 유사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그러나 19세기 초반부터 이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면엔 산업자본의 계산이 있었다. 동물싸움이나 몹 풋볼을 공장에서 한창 노동해야 할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훼손하는 문제적 여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오락은 '동물 학대'로, 몹 풋볼은 '유혈 스포츠'라는 낙인을 찍어 비정상적인 것으로 사회에서 배제시킨 것이다.
국가 전체가 대대적으로 여가(통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경우도 있다. 1900년대 초반,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강건한 신체를 길러내는 것은 물론 정치적 충성심을 끌어내고 민족 정체성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도구로 생각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각각 여가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기구를 만들어 콘서트, 도서관, 헬스클럽, 하이킹, 합창 등 다양한 여가 시설과 프로그램을 세우고 기획했다. 이를 통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하자!
'정상 인간 만들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사람들은 각종 캠페인이나 도덕을 앞세운 구호에 쉽게 순응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 당대 지배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 정상적인 것일까? 비정상을 정상이라 여기며 살고 있진 않은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정상인가? 사람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발전주의의 유물인 줄만 알았던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비가시적인 방법 또는 자기 통치의 방식으로 덧대어져 재생산되고 있다. 주 40시간 노동이 제도화됐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 제도 자체가 '정상'인지도 의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도입된 이후 사람들은 퇴근을 하더라도 일상이 일의 요소에 의해 간섭받을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일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정보 시대의 이른바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고착화되고 강박ㆍ불안증을 넘어 골병과 과로사가 일상화된 이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저자는 이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정상성을 얽고 있는 고리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정상성의 얽힌 고리들의 배치를 하나씩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신기술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경쟁적 성과 장치의 반인권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일상 속에 뿌리 깊게 배어 있는 기존의 노동 규범, 판단 기준, 인식틀의 당연함에 의문을 품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장시간 노동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리는 담론을 해체할 대항적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 '임금 노예제'나 '살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살인'같은 공격 화법을 동원할 수도 있고 '저녁 있는 삶'과 같이 '다른 삶'의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넷째, 장시간 노동을 존속시키고 있는 큰 기둥인 임금 체계의 부적절함을 개혁하는 것을 포함해 새로운 소득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다섯 번째, 제도적 차원에서 장시간 노동을 대놓고 조장하는 고질적 제도를 없애고 제도의 현실성을 높이는 작업도 함께 한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희망의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처럼 현재의 비정상 상태를 상대화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일 수 있다. 우리는 비정상성의 당연함을 당연시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이것이 이어지도록 연결해야 한다. 또한 제도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쉼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성도 요구된다. 쉼은 그 자체로 자유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는 신자유주의적 장시간 노동체제에 맞선 저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 위해서 쉼을 향한 감각과 역량을 자극ㆍ교육해야 한다. 더 이상 '개미와 베짱이'류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할 수는 없다. 그래야만 진짜 '정상 사회'에서 '정상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자기계발의 시대, 시간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지금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은 무엇인가?
시대마다 '정상 인간'의 모습은 다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조국 근대화를 이룰 '근면한 근로자'가 '정상 인간'형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시간 관리에 능숙한 '자기계발의 주체', 이것이 이 시대가 상정하는 '정상 인간'형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시간을 관리하며 퇴근 후에도 학원을 다니거나 스터디를 하는 등 자기계발에 열중한다. 쉼과 여유를 누릴 시간은 없다.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인 대부분이 불안ㆍ강박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왜 사람들은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계발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안ㆍ강박증에 시달린다. 바꿔 말하면 이 시대가 만들어놓은 '정상 인간'형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상 인간'형은 누가 만드는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은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들의 힘 관계에 따라 구성된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쟁'이 핵심이다. 개인 간, 기업 간, 국가 간에 경쟁에서 이기려면 사람들은 일터 외 일상에서도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도 아니면 일의 능률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자본은 시간 관리하는 인간형을 정상으로 만들고 자기계발이라는 주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톨의 자유시간도 경쟁력을 드높이는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것이 바로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다.
이 책은 역사 세력들이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특정한 인간형으로 만들어왔는지를 파헤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의 역사를 짚어본다. 특히 근대가 시작되는 시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시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시기마다 역사 세력들이 어떻게 개인과 집단을 개조해왔는지를 수많은 국내외 문헌을 참고하며 추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산업 질서와 맞지 않는 오락ㆍ레저ㆍ스포츠는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왔던 전통이라고 해도 배제되었다. 산업자본은 동물싸움이 아닌 건전 오락을 장려했고, 독주가 아닌 맥주를 권장했다. 나치 정권은 국민체육, 국민차, 국민도로 같이 민족 정체성을 목표로 한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대거 만들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여가시간이 지극히 부족한 신자유주의 시대 인간형은 행복과 사랑마저도 상품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고 남은 시간에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각 시대마다 '정상 인간'을 규정하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전작 《과로 사회》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사회학자 김영선은 특정한 오락ㆍ레저ㆍ스포츠를 정상으로 내세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내몰았던 일련의 프로젝트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지금 우리 시대에 전개되는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성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비정상성을 해체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다.
권력이 기획한 여가의 통치,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휴가 기간이 다가온다. 인터넷 창을 띄워서 각종 여행 상품을 둘러보고 예약한다. 제주도를 갈 수도 있고 동남아, 유럽으로 떠날 수도 있다. 주말에는 무엇을 할까? 피곤한데 집에서 TV나 볼까? 요즘 유행이라는 캠핑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각자 취향과 선호에 맞게 여가를 즐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시간을 즐기는 이 모든 방법이 온전한 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여행을 즐겼는지, 영화가 없던 시대에 무슨 오락거리를 즐기며 여가를 보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일터 밖 여가 장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은 인류 보편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전통사회에서는 이동수단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이나 즐기는 취미였다. 19세기 중반,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교통혁명이 시작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근현대 시대가 낳은 여가 모습인 셈이다. 반면 동물싸움과 몹 풋볼(돼지 오줌보 같은 공을 사용해 상대방 진영의 정해진 위치에 공을 갖다놓는 게임)은 근현대 시대에 사라진 여가의 한 장면이다. 영화관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각종 동물싸움을 즐겼다. 광장 주변이나 선술집 앞에서 '곰 곯리기(쇠사슬로 묶인 곰에게 개를 덤비게 하는 옛놀이)', 투견, 투계 등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했다. 또 사람들은 몹 풋볼을 즐겼다. 정해진 규칙이 없을 뿐 현대 축구와 유사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그러나 19세기 초반부터 이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면엔 산업자본의 계산이 있었다. 동물싸움이나 몹 풋볼을 공장에서 한창 노동해야 할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훼손하는 문제적 여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물오락은 '동물 학대'로, 몹 풋볼은 '유혈 스포츠'라는 낙인을 찍어 비정상적인 것으로 사회에서 배제시킨 것이다.
국가 전체가 대대적으로 여가(통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경우도 있다. 1900년대 초반, 독일과 이탈리아는 오락ㆍ레저ㆍ스포츠 프로그램을 강건한 신체를 길러내는 것은 물론 정치적 충성심을 끌어내고 민족 정체성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도구로 생각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각각 여가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기구를 만들어 콘서트, 도서관, 헬스클럽, 하이킹, 합창 등 다양한 여가 시설과 프로그램을 세우고 기획했다. 이를 통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독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하자!
'정상 인간 만들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사람들은 각종 캠페인이나 도덕을 앞세운 구호에 쉽게 순응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 당대 지배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 정상적인 것일까? 비정상을 정상이라 여기며 살고 있진 않은가? 시간 관리와 자기계발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정상인가? 사람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발전주의의 유물인 줄만 알았던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이 비가시적인 방법 또는 자기 통치의 방식으로 덧대어져 재생산되고 있다. 주 40시간 노동이 제도화됐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 제도 자체가 '정상'인지도 의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도입된 이후 사람들은 퇴근을 하더라도 일상이 일의 요소에 의해 간섭받을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일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정보 시대의 이른바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고착화되고 강박ㆍ불안증을 넘어 골병과 과로사가 일상화된 이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저자는 이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정상성을 얽고 있는 고리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정상성의 얽힌 고리들의 배치를 하나씩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신기술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경쟁적 성과 장치의 반인권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일상 속에 뿌리 깊게 배어 있는 기존의 노동 규범, 판단 기준, 인식틀의 당연함에 의문을 품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장시간 노동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리는 담론을 해체할 대항적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 '임금 노예제'나 '살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살인'같은 공격 화법을 동원할 수도 있고 '저녁 있는 삶'과 같이 '다른 삶'의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넷째, 장시간 노동을 존속시키고 있는 큰 기둥인 임금 체계의 부적절함을 개혁하는 것을 포함해 새로운 소득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다섯 번째, 제도적 차원에서 장시간 노동을 대놓고 조장하는 고질적 제도를 없애고 제도의 현실성을 높이는 작업도 함께 한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희망의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처럼 현재의 비정상 상태를 상대화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일 수 있다. 우리는 비정상성의 당연함을 당연시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이것이 이어지도록 연결해야 한다. 또한 제도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쉼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성도 요구된다. 쉼은 그 자체로 자유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는 신자유주의적 장시간 노동체제에 맞선 저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 위해서 쉼을 향한 감각과 역량을 자극ㆍ교육해야 한다. 더 이상 '개미와 베짱이'류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재생산할 수는 없다. 그래야만 진짜 '정상 사회'에서 '정상 인간'으로 살 수 있다.
목차
목차
서문 정상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
1장 여가의 통치
1.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문제 삼다
2.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가 풍경
3. "식빵을 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4. 사회 없는 여가, 노동 없는 여가
2장 근대사회의 대중 오락
1. 낯설었던 것이 취향이 되다
2. 교통혁명, 시공간을 확장시키다
3. 대중의 탄생, 대중여가의 반격
4. 여가 산업, '풍요로운 미래'라는 이데올로기
5. 새롭게 등장한 정상의 범주
3장 교양 시민 만들기
1. 동물싸움, 사회적으로 허용되던 오락들
2. 근대 질서에 맞는 인간형 만들기
3. 근대사회, 쾌락ㆍ즐거움을 관리하다
4. 배제의 정치, 주체의 생산
4장 근면 신체의 발명
1. 일과 쉼은 하나의 생태계
2. 노동자와 공장, 정상 인간형이 바뀌다
3. 근면 신체, 노동자를 통제하다
4. 노동자와 빈민의 궁핍한 삶
5. 시간에 맞선 투쟁, 러다이트운동
6. 시간에 대한 투쟁, 공장법
5장 시간이 모든 것이며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1. 인간은 시간의 잔해일 뿐
2. '시간은 금'이라는 불문율
3.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
4. 시간 불평등 시대
6장 사람들은 왜 한계를 추구할까
1.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2. 문명사회의 행동 양식
3. 한계를 넘어서려는 강렬한 욕망
4. '비정상적인' 형태의 여가
5.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회색지대
결론을 대신하여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하자!
참고문헌
1장 여가의 통치
1.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문제 삼다
2.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가 풍경
3. "식빵을 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4. 사회 없는 여가, 노동 없는 여가
2장 근대사회의 대중 오락
1. 낯설었던 것이 취향이 되다
2. 교통혁명, 시공간을 확장시키다
3. 대중의 탄생, 대중여가의 반격
4. 여가 산업, '풍요로운 미래'라는 이데올로기
5. 새롭게 등장한 정상의 범주
3장 교양 시민 만들기
1. 동물싸움, 사회적으로 허용되던 오락들
2. 근대 질서에 맞는 인간형 만들기
3. 근대사회, 쾌락ㆍ즐거움을 관리하다
4. 배제의 정치, 주체의 생산
4장 근면 신체의 발명
1. 일과 쉼은 하나의 생태계
2. 노동자와 공장, 정상 인간형이 바뀌다
3. 근면 신체, 노동자를 통제하다
4. 노동자와 빈민의 궁핍한 삶
5. 시간에 맞선 투쟁, 러다이트운동
6. 시간에 대한 투쟁, 공장법
5장 시간이 모든 것이며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1. 인간은 시간의 잔해일 뿐
2. '시간은 금'이라는 불문율
3.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
4. 시간 불평등 시대
6장 사람들은 왜 한계를 추구할까
1.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2. 문명사회의 행동 양식
3. 한계를 넘어서려는 강렬한 욕망
4. '비정상적인' 형태의 여가
5.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회색지대
결론을 대신하여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하자!
참고문헌
저자
저자
김영선
저자 김영선은 사회학자로 노동시간센터에서 활동하며 시간의 문화/정치를 연구한다. 《잃어버린 10일》(이학사)과 《과로 사회》(이매진)를 썼고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코난북스)와 《여가와 문화》(리체레)를 함께 쓰고 옮겼다. 지금은 쉼 없는 한국 사회, 시간의 문화/정치를 분석하며 실질적인 자유시간이 가능한 조건들을 탐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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