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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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으로써 오히려 윤리적인 소설
작가 김살로메가 등단 12년 만에 펴내는 첫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 표제작인 《라요하네의 우산》을 비롯하여 《암흑식당》 등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고른 성취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은, 섬세한 미문 대신 투박하고도 중성적인 문체로 사회 저변의 다양한 인간상과 그들의 관계성, 그리고 개개인의 내면을 날카롭고도 풍요롭게 조명해나간다. 세련되고 인공적인 미학이 주조를 이루는 있는 한국단편소설의 조류에서 비켜나 돌밭 같은 길을 가는 듯한 그녀의 소설은 인간 존재의 복합성에 대해 불편할 정도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소설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윤리성과 건강함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재미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한 번쯤은 찾아오는 소설들이다.
작가 김살로메가 등단 12년 만에 펴내는 첫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 표제작인 《라요하네의 우산》을 비롯하여 《암흑식당》 등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고른 성취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은, 섬세한 미문 대신 투박하고도 중성적인 문체로 사회 저변의 다양한 인간상과 그들의 관계성, 그리고 개개인의 내면을 날카롭고도 풍요롭게 조명해나간다. 세련되고 인공적인 미학이 주조를 이루는 있는 한국단편소설의 조류에서 비켜나 돌밭 같은 길을 가는 듯한 그녀의 소설은 인간 존재의 복합성에 대해 불편할 정도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소설에서 요구하는 올바른 윤리성과 건강함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재미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한 번쯤은 찾아오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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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품 해설 중에서
박상준(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 우리 삶의 주변을 살피는 판타스마고리아
- 김살로메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이자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인간들이다.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는 대로 꼽아 보더라도, 알비노증이 있는 약사, 무력한 대학의 시간강사, 영세기업 사장과 직원, 혼자 사는 한지인형 제작자, 불륜에 빠져 있는 간호사, 살인을 주도한 무기수, 매춘을 겸하는 텔레마케터,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불법 의료장, 가난한 영세 상인이나 과외교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병행하는 고학생, 성폭행범, 시메트리 증후군 환자, 삼류 시인 등이 줄을 잇는다. 이들의 삶은 생물학적인 본성과 경제적인 유인에 크게 휘둘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삶의 비속함과 적나라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작품이 재현하는 현실 또한 풍성한 양상을 보인다. 아마추어 독립영화 모임이나, 장애인 단체, 결손 가정 및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 교육기관, 북한을 탈출해 나온 새터민 단체, 지방의 문인 모임 등에서, 텔레폰 클럽이나 암흑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이 대체로 사회의 이면이나 기층에 해당함은 물론인데, 바로 이렇게 사회의 저변을 두루 형상화하는 것이 『라요하네의 우산』의 특징이다.
- 이와 같이 『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들이 흔히 보는 삶의 현장, 공적으로 이야기되는 사회상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장을 찾아내어,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있다. 배경 자체가 전적으로 사회의 주변부라 할 수는 없어도 인물들의 삶을 보면 주변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들에 시선을 주어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라요하네의 우산』을 통해 작가가 축조해 낸 것은 우리 사회의 비루한 삶들이 빚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a) 곧 환영과도 같은 변화무쌍한 광경이다.
2.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관심
- 등장인물 면에서 『라요하네의 우산』이 갖는 특징은 우리 사회의 주변인을 내세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기행을 일삼는다는 점 곧 주변부의 보통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들 개개인의 행태나 상호간의 관계 면에서 보자면 보통사람들답지 않다는 사실이 김살로메 소설 고유의 특징을 이룬다.
남편의 치료를 위해 알비노증이 있는 며느리의 소변을 청하는 모친의 숨겨진 동기가 욕정이라는 사실(「알비노의 항아리」)이나, 여직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자위하는 사장과 그의 돈을 훔쳐 음식을 탐하고 끝내 그와 몸을 섞는 여자(「암흑식당」), 텔레폰 클럽 등을 통해 항상 바람을 피우는 병원 원장이나 그와 불륜 관계를 이어가는 여자, 내레이터 모델이자 아르바이트로 매춘을 하며 도벽을 가진 그녀의 동생(「귀휴」),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큼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아버지(「피의 일요일」), 23세에 첫 아이를 낳고 끊임없이 남성을 편력하는, 모성과는 거리가 먼 여인(「강 건너 데이지」), 가족을 무시하며 타인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남편 혹은 아버지(「누가 빈지를 잠갔나」, 「라요하네의 우산」), 공금횡령으로 교도소에 있으면서 출옥하면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하는 남성이나 술 취한 채 차를 움직여 아내를 불구가 되게 한 남편, 시메트리 증후군을 가져 타인의 일상을 간섭하고 부친의 깁스한 팔을 펴려고까지 하는 여인(「라요하네의 우산」), 북한을 탈출해 온 '허기와 상처의 극한을 경험한 자들'이 돈 문제로 갈등하는 것(「아폴로를 씹었어」), 삼류 시인들의 술자리 기행(「아빠는 시인이다」) 등처럼 모든 작품들에서 인물들의 기행이 그려지고 있다.
- 다소 특이한 부정적 인물들과 예외적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경향이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게 된 것은, 대체로 볼 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발견되는 따뜻한 인간 심리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주의할 것은, 어두운 상황 속의 긍정적인 인물(심성)을 부각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이분법적인 설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작품의 세계든, 인물구성이든, 주요 사건이든 부정성이 앞서 있기는 하되, 삶의 한 부면으로 그것을 차분히 재현해 내는 데 그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인간적인 소망을 놓치지는 않는 경우라 해야 할 것이다.
『라요하네의 우산』이 이러한 면모를 띠게 된 것은, 이 소설집이 거대담론과 거리를 둔 자리에서 우리 삶의 저변과 주변을 응시하는 시선의 산물인 까닭이다. 이 시선의 주체는 의지를 앞세운 해석도 섣부른 의미 부여도 삼간다. 보여주는 자로서의 소설가, 오롯이 재현하는 소설가가 바로 『라요하네의 우산』의 김살로메이다.
3. 소설, 언제나 지속되는 이야기의 길
- 이렇게 관조적인 입장에서 재현 대상과 거리를 두고 우리 사회 저변의 판타스마고리아를 펼쳐 보임으로써 『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에게 전통적인 소설 읽기의 진진한 재미를 선사한다. 각각의 작품들에 재현된 풍성한 현실 속에서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진 다채로운 인물들이 보이는 기행에 가까운 행태들을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김살로메의 소설은 서사문학의 오랜 전통, 민중적 삶의 다양함을 흥미롭게 제시해 온 전통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 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루한 삶, 상처받은 삶 들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는 김살로메의 소설들이야말로 가담항설(街談巷說)과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연원을 둔 동양 소설의 전통, 미하일 바흐찐이 보여 준 대로 민속에 뿌리를 두고 민중적인 문학으로부터 발전해 온 서양 소설의 전통, 이 모두의 연장선상에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 보이듯 김살로메는, '좋은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서늘한 진실'이 들어 있는 반면 '나쁜 소설이란 작가의 자기 합리화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서 작가는 "중립을 가장한 채 자기연민에는 당위성을 끌어다 붙이고, 타자를 향한 시선에는 근거 없이 객관적인 척하는 기만"을 강하게 의식한다. 바로 이러한 의식 이러한 경계심이 풍성하게 재현된 현상들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관조적인 태도를 낳은 것이고, 그 결과로, 재현된 이야기의 재미가 소설 읽기의 즐거움으로 온전히 이어지는 한편 독자들이 저마다 그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서사문학의 전통 위에서 우리 사회 비루한 삶들의 판타스마고리아를 재현함으로써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되살려 낸 것, 이것이 김살로메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의 의의를 이룬다.
책속으로 추가
그건 일종의 간접 트라우마였다. 오래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약자네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우리가 아재라 불렀던 약자네 아버지. 그 때문에 약자는 집을 나갔고, 차례로 아지매와 두 여동생마저 가출을 했다. 아재 곁엔 아무도 없었다. 홀로 쓸쓸했던 아재는 당뇨와 외로움에 지쳐 쓰러졌다. 피붙이 없는 장례식은 쓸쓸했다. 망자 앞에서는 누구나 관대한 법이지만, 그 관대함은 때론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곁에 있지도 않은 아지매에게 모진 말의 화살을 꽂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집을 먼저 나간 약자더러 죽일 년이라 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집 나갈 당시의 약자는 누구에게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다. 누가 봐도 아재가 지나쳤다고 했다.
- 누가 빈지를 잠갔나 중에서
p와 통화를 끝낸 여자는 얼마 전 턴테이블을 버린 것을 후회했다. 여자는 버리는 것을 좋아했다. 필요치 않다 싶으면 무엇이든 잘 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여자의 한 손엔 자주 무언가가 쥐어 있곤 했다. 달 지난 잡지나, 그을린 냄비, 묵은 옷가지 등 뭔가를 버릴 때 여자는 쾌감을 느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주변이 휑하다 싶을 만큼 버려야 속이 시원했다. 강박에 가까운 습성이었다. 그런 여자가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턴테이블만은 쉽게 버리지 못했다. p와 함께 고른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청소를 하던 얼마 전 그것을 갖다버렸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먼지 쌓인 채 한 구석을 차지한 턴테이블을 보는 순간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_ 왼손엔 달강꽃 중에서
처음 예나를 본 날 그 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스케치북을 슬쩍 넘겨 본 적이 있다. 예나는 다양한 동물들을 그리고 있었다. 떨어뜨린 지푸라기를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까치, 대로변에 널브러진 다리 다친 고양이, 못물 위로 떠올라 죽어 있는 붕어 등, 음울하고 서늘한 분위기의 동물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오희 말에 의하면 예나도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을 때,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에 태어난 아이라 부지불식간에 결핍이 학습된 아이라고 했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쳤고, 동물들마저 굶주린 사람에게 죽어나 씨가 마르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 아폴로를 씹었어 중에서
이번 시집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 서린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연작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백두산 이남이 낳은 최고 서사시인다운 소재들을 선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집 제목은 '단군아, 에밀레여'이다. 시집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너무 구태의연하고 억장 무너지는 제목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집도 서점에 제대로 깔리기도 전에 제 운명을 다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 아빠는 시인이다 중에서
박상준(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 우리 삶의 주변을 살피는 판타스마고리아
- 김살로메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이자 삶의 저변을 이루는 인간들이다.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는 대로 꼽아 보더라도, 알비노증이 있는 약사, 무력한 대학의 시간강사, 영세기업 사장과 직원, 혼자 사는 한지인형 제작자, 불륜에 빠져 있는 간호사, 살인을 주도한 무기수, 매춘을 겸하는 텔레마케터,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불법 의료장, 가난한 영세 상인이나 과외교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병행하는 고학생, 성폭행범, 시메트리 증후군 환자, 삼류 시인 등이 줄을 잇는다. 이들의 삶은 생물학적인 본성과 경제적인 유인에 크게 휘둘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삶의 비속함과 적나라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작품이 재현하는 현실 또한 풍성한 양상을 보인다. 아마추어 독립영화 모임이나, 장애인 단체, 결손 가정 및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회 교육기관, 북한을 탈출해 나온 새터민 단체, 지방의 문인 모임 등에서, 텔레폰 클럽이나 암흑식당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이 대체로 사회의 이면이나 기층에 해당함은 물론인데, 바로 이렇게 사회의 저변을 두루 형상화하는 것이 『라요하네의 우산』의 특징이다.
- 이와 같이 『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들이 흔히 보는 삶의 현장, 공적으로 이야기되는 사회상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는 장을 찾아내어,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들을 다양하게 등장시키고 있다. 배경 자체가 전적으로 사회의 주변부라 할 수는 없어도 인물들의 삶을 보면 주변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들에 시선을 주어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라요하네의 우산』을 통해 작가가 축조해 낸 것은 우리 사회의 비루한 삶들이 빚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a) 곧 환영과도 같은 변화무쌍한 광경이다.
2.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관심
- 등장인물 면에서 『라요하네의 우산』이 갖는 특징은 우리 사회의 주변인을 내세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기행을 일삼는다는 점 곧 주변부의 보통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들 개개인의 행태나 상호간의 관계 면에서 보자면 보통사람들답지 않다는 사실이 김살로메 소설 고유의 특징을 이룬다.
남편의 치료를 위해 알비노증이 있는 며느리의 소변을 청하는 모친의 숨겨진 동기가 욕정이라는 사실(「알비노의 항아리」)이나, 여직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자위하는 사장과 그의 돈을 훔쳐 음식을 탐하고 끝내 그와 몸을 섞는 여자(「암흑식당」), 텔레폰 클럽 등을 통해 항상 바람을 피우는 병원 원장이나 그와 불륜 관계를 이어가는 여자, 내레이터 모델이자 아르바이트로 매춘을 하며 도벽을 가진 그녀의 동생(「귀휴」), 시대착오적이라 할 만큼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아버지(「피의 일요일」), 23세에 첫 아이를 낳고 끊임없이 남성을 편력하는, 모성과는 거리가 먼 여인(「강 건너 데이지」), 가족을 무시하며 타인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남편 혹은 아버지(「누가 빈지를 잠갔나」, 「라요하네의 우산」), 공금횡령으로 교도소에 있으면서 출옥하면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하는 남성이나 술 취한 채 차를 움직여 아내를 불구가 되게 한 남편, 시메트리 증후군을 가져 타인의 일상을 간섭하고 부친의 깁스한 팔을 펴려고까지 하는 여인(「라요하네의 우산」), 북한을 탈출해 온 '허기와 상처의 극한을 경험한 자들'이 돈 문제로 갈등하는 것(「아폴로를 씹었어」), 삼류 시인들의 술자리 기행(「아빠는 시인이다」) 등처럼 모든 작품들에서 인물들의 기행이 그려지고 있다.
- 다소 특이한 부정적 인물들과 예외적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경향이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게 된 것은, 대체로 볼 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발견되는 따뜻한 인간 심리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주의할 것은, 어두운 상황 속의 긍정적인 인물(심성)을 부각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이분법적인 설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작품의 세계든, 인물구성이든, 주요 사건이든 부정성이 앞서 있기는 하되, 삶의 한 부면으로 그것을 차분히 재현해 내는 데 그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되는 인간적인 소망을 놓치지는 않는 경우라 해야 할 것이다.
『라요하네의 우산』이 이러한 면모를 띠게 된 것은, 이 소설집이 거대담론과 거리를 둔 자리에서 우리 삶의 저변과 주변을 응시하는 시선의 산물인 까닭이다. 이 시선의 주체는 의지를 앞세운 해석도 섣부른 의미 부여도 삼간다. 보여주는 자로서의 소설가, 오롯이 재현하는 소설가가 바로 『라요하네의 우산』의 김살로메이다.
3. 소설, 언제나 지속되는 이야기의 길
- 이렇게 관조적인 입장에서 재현 대상과 거리를 두고 우리 사회 저변의 판타스마고리아를 펼쳐 보임으로써 『라요하네의 우산』은 우리에게 전통적인 소설 읽기의 진진한 재미를 선사한다. 각각의 작품들에 재현된 풍성한 현실 속에서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진 다채로운 인물들이 보이는 기행에 가까운 행태들을 생생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김살로메의 소설은 서사문학의 오랜 전통, 민중적 삶의 다양함을 흥미롭게 제시해 온 전통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 주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루한 삶, 상처받은 삶 들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는 김살로메의 소설들이야말로 가담항설(街談巷說)과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연원을 둔 동양 소설의 전통, 미하일 바흐찐이 보여 준 대로 민속에 뿌리를 두고 민중적인 문학으로부터 발전해 온 서양 소설의 전통, 이 모두의 연장선상에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 보이듯 김살로메는, '좋은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서늘한 진실'이 들어 있는 반면 '나쁜 소설이란 작가의 자기 합리화가 들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서 작가는 "중립을 가장한 채 자기연민에는 당위성을 끌어다 붙이고, 타자를 향한 시선에는 근거 없이 객관적인 척하는 기만"을 강하게 의식한다. 바로 이러한 의식 이러한 경계심이 풍성하게 재현된 현상들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관조적인 태도를 낳은 것이고, 그 결과로, 재현된 이야기의 재미가 소설 읽기의 즐거움으로 온전히 이어지는 한편 독자들이 저마다 그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서사문학의 전통 위에서 우리 사회 비루한 삶들의 판타스마고리아를 재현함으로써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되살려 낸 것, 이것이 김살로메의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의 의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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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일종의 간접 트라우마였다. 오래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약자네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우리가 아재라 불렀던 약자네 아버지. 그 때문에 약자는 집을 나갔고, 차례로 아지매와 두 여동생마저 가출을 했다. 아재 곁엔 아무도 없었다. 홀로 쓸쓸했던 아재는 당뇨와 외로움에 지쳐 쓰러졌다. 피붙이 없는 장례식은 쓸쓸했다. 망자 앞에서는 누구나 관대한 법이지만, 그 관대함은 때론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곁에 있지도 않은 아지매에게 모진 말의 화살을 꽂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집을 먼저 나간 약자더러 죽일 년이라 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집 나갈 당시의 약자는 누구에게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다. 누가 봐도 아재가 지나쳤다고 했다.
- 누가 빈지를 잠갔나 중에서
p와 통화를 끝낸 여자는 얼마 전 턴테이블을 버린 것을 후회했다. 여자는 버리는 것을 좋아했다. 필요치 않다 싶으면 무엇이든 잘 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여자의 한 손엔 자주 무언가가 쥐어 있곤 했다. 달 지난 잡지나, 그을린 냄비, 묵은 옷가지 등 뭔가를 버릴 때 여자는 쾌감을 느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주변이 휑하다 싶을 만큼 버려야 속이 시원했다. 강박에 가까운 습성이었다. 그런 여자가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턴테이블만은 쉽게 버리지 못했다. p와 함께 고른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청소를 하던 얼마 전 그것을 갖다버렸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먼지 쌓인 채 한 구석을 차지한 턴테이블을 보는 순간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_ 왼손엔 달강꽃 중에서
처음 예나를 본 날 그 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스케치북을 슬쩍 넘겨 본 적이 있다. 예나는 다양한 동물들을 그리고 있었다. 떨어뜨린 지푸라기를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까치, 대로변에 널브러진 다리 다친 고양이, 못물 위로 떠올라 죽어 있는 붕어 등, 음울하고 서늘한 분위기의 동물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오희 말에 의하면 예나도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을 때,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에 태어난 아이라 부지불식간에 결핍이 학습된 아이라고 했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쳤고, 동물들마저 굶주린 사람에게 죽어나 씨가 마르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 아폴로를 씹었어 중에서
이번 시집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 서린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연작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백두산 이남이 낳은 최고 서사시인다운 소재들을 선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집 제목은 '단군아, 에밀레여'이다. 시집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너무 구태의연하고 억장 무너지는 제목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집도 서점에 제대로 깔리기도 전에 제 운명을 다할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 아빠는 시인이다 중에서
목차
목차
알비노의 항아리
암흑식당
라요하네의 우산
귀휴
피의 일요일
강 건너 데이지
누가 빈지를 잠갔나
왼손엔 달강꽃
아폴로를 씹었어
아빠는 시인이다
해설 | 박상준(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삶의 저변에 대한 재현의 힘ㄴ
암흑식당
라요하네의 우산
귀휴
피의 일요일
강 건너 데이지
누가 빈지를 잠갔나
왼손엔 달강꽃
아폴로를 씹었어
아빠는 시인이다
해설 | 박상준(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삶의 저변에 대한 재현의 힘ㄴ
저자
저자
김살로메
저자 김살로메는 안동에서 태어나 열두 해를 살고 대구로 터전을 옮겨 경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유일하게 꾸준한 취미였던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는 날들을 꿈꿨으나 쉽지 않았다.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폭설」이 당선된 걸 계기로 소설을 쓰고 있다. 바닷가 소도시에서 좋은 사람들과 책 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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