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파이낸셜 어드바이즈 한현순의 뉴질랜드 이민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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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1947년 7월, 충북 옥천군 군북면 지오리에서 한귀섭의 6남매 셋째딸로 출생해 평택 주재 미 8군 장교클럽 여비서로 근무해 오다 24세 때인 1971년 5월, 한국 주재 뉴질랜드 〈한뉴목장 농업 컨설턴트〉로 재직하던 뉴질랜드 청년을 서울 조계사 부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 지정된 좌석에서 평택까지 같이 앉아가게 되고, 얼마 후 뉴질랜드 청년의 구애와 청혼으로 한국 주재 뉴질랜드 대사관의 주선으로 국제결혼 후 남편을 따라 뉴질랜드로 귀화해, 세 아들을 낳아 훌륭히 키우면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기 위해 솔로 맘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 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사회 정착에 성공한 파이낸셜 어드바이즈 한현순의 일대기를 기록한 인간 승리 자전 에세이다.
1990년, 마흔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솔로 맘의 신분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씩 근무하며 자리를 잡을 만하면 또다시 구조조정을 당해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며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곱 번째 직장인 종신생명보험 판매 회사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 반열에 올라 4년간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청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었다.
그러다 1992년 6월 2일, 본의 아니게 종신보험회사 한 클라이언트의 집 한 채를 인수, 세입자 관리를 해주며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후 한 해에 한 채씩 부동산을 사들였고, 어떤 해는 두 채도 사들이고, 얼마 후는 웰링턴 지역을 넘어서 뉴질랜드 남섬의 부동산도 사들이며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라는 개념으로 부(富)의 문을 열어갔다…….
웰링턴 지역 일간지인 「The Post(구 Dominion Post)」지는 그녀를 향해 "성공한 한인 여성 사업가"이자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소개했고, 「코리아포스트(NZ Korea Post)」지는 2015년~2017년 비즈니스 섹션(12면~18면)에다 여러 회에 걸쳐 "모기지(mortgage) 설계의 마술사", "자산 증식의 파트너", "웰링턴의 부동산 투자 멘토"라는 제목으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48세 때인 1995년 5월, 종신보험 판매 프리랜서로 전향해 최근까지 뉴질랜드 아일랜드 베이 뉴타운에 거주하며, 〈Haley Fenwick Financial advisor'(헤일리 펜윅 경제 자문) 사무실을 열어놓고 멘토로 활동했던 그녀는, "4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아주 늦게 사회에 나온 온상 속의 화초, 아니면 잡풀(?)이라고 해야겠다. 보통 그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데 이 사람은 좀 달랐다. 일어섰다. 세 아들을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솔로 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해 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형 거미줄에 걸려든 한 마리의 벌처럼 허우적거리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절박함 속에서 살아날 길을 찾아야 했기에……. 그 절박함이 그녀를 살렸다."라고 처음 직장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직업소개소를 찾아 나선 그날을 회고하고 있다.
분망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1993년 3월 대전 EXPO'93 뉴질랜드관 관리자로 한국에 파견되었고, 그해 12월에는 뉴질랜드 육류수출위원회 한국어 통역사로 발탁되어, 한국 미트 바이어들의 육류 수입 상담을 한국어로 통역하며 뉴질랜드 전역 모든 도축장을 한국의 바이어들에게 안내하며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우뚝 서는 한국인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인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한국인 상〉을 이룩하였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1990년, 마흔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솔로 맘의 신분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씩 근무하며 자리를 잡을 만하면 또다시 구조조정을 당해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며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곱 번째 직장인 종신생명보험 판매 회사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 반열에 올라 4년간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청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었다.
그러다 1992년 6월 2일, 본의 아니게 종신보험회사 한 클라이언트의 집 한 채를 인수, 세입자 관리를 해주며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후 한 해에 한 채씩 부동산을 사들였고, 어떤 해는 두 채도 사들이고, 얼마 후는 웰링턴 지역을 넘어서 뉴질랜드 남섬의 부동산도 사들이며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라는 개념으로 부(富)의 문을 열어갔다…….
웰링턴 지역 일간지인 「The Post(구 Dominion Post)」지는 그녀를 향해 "성공한 한인 여성 사업가"이자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소개했고, 「코리아포스트(NZ Korea Post)」지는 2015년~2017년 비즈니스 섹션(12면~18면)에다 여러 회에 걸쳐 "모기지(mortgage) 설계의 마술사", "자산 증식의 파트너", "웰링턴의 부동산 투자 멘토"라는 제목으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48세 때인 1995년 5월, 종신보험 판매 프리랜서로 전향해 최근까지 뉴질랜드 아일랜드 베이 뉴타운에 거주하며, 〈Haley Fenwick Financial advisor'(헤일리 펜윅 경제 자문) 사무실을 열어놓고 멘토로 활동했던 그녀는, "4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아주 늦게 사회에 나온 온상 속의 화초, 아니면 잡풀(?)이라고 해야겠다. 보통 그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데 이 사람은 좀 달랐다. 일어섰다. 세 아들을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솔로 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해 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형 거미줄에 걸려든 한 마리의 벌처럼 허우적거리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절박함 속에서 살아날 길을 찾아야 했기에……. 그 절박함이 그녀를 살렸다."라고 처음 직장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직업소개소를 찾아 나선 그날을 회고하고 있다.
분망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1993년 3월 대전 EXPO'93 뉴질랜드관 관리자로 한국에 파견되었고, 그해 12월에는 뉴질랜드 육류수출위원회 한국어 통역사로 발탁되어, 한국 미트 바이어들의 육류 수입 상담을 한국어로 통역하며 뉴질랜드 전역 모든 도축장을 한국의 바이어들에게 안내하며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우뚝 서는 한국인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인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한국인 상〉을 이룩하였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목차
목차
저자의 글……4
프롤로그……18
그 삶이라는 것……18
예언……19
첫째 마당 이야기……21
나의 탄생……22
울보와 기적……23
내 어린 시절의 행복……23
쥐의 세상 뒷간……24
들꽃……24
거리 상가의 노래와 교회에서 주던 시루떡……25
두꺼비 녀석들……25
혼자만의 게임들……26
산 동네 친구들……26
기차의 기적소리……27
하늘의 선물……27
동대문국민학교에 입학하다……28
책 낭독 챔피언……30
꼬부랑 할머니들……31
그리운 귀뚜라미들의 코러스……32
개구리들의 개굴개굴 합창……32
혼자인 백로……32
양반님들같이 품위 있는 소나무들……33
즐거웠던 나날들……33
가랑잎과의 게임……34
거리마다 즐비했던 시인들의 이야기……34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34
행복한 시절의 한 가지 사건 - 엄마의 부재……35
국민학교 6학년 때 - 국가 장학금 시험……36
중학교 입학시험……39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다……40
첫 번째 외국어 - 영어……41
두 번째 외국어 - 독일어……43
세 번째 외국어 - 일본어……44
네 번째 외국어 - 중국어……46
다섯 번째 외국어 - 불어……47
둘째 마당 이야기…… 49
다시 어린 시절로……50
상이군인이 많았던 어린 시절……51
모윤숙 씨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51
그 많은 상처 속에서도……57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나……58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들……58
나의 엄마……59
엄마는 음치……60
우리 엄마의 영어 실력……62
긍정적인 사상……62
엄마와 나는 자매 같다네……63
엄마의 틀니……64
2006년 10월 29일 - 엄마의 마지막 날……65
나의 외조부모님들에 대해서……67
엄마는 외동딸……68
남자아이로 둔갑하신 엄마……70
외조부모의 외동딸 혼사 준비……71
부모님의 뜻대로……72
상반되는 부모님의 결혼 - 모든 결혼은 그러한가? 73
귀한 공주님이 허드레 일꾼으로 전락하다……73
나의 아버지……74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 주신 인생철학……76
남편과 옥천 방문……77
셋째 마당 이야기……79
첫 번째 직장 - 타자기를 만나다……80
나에게 학생들은 이방인……83
첫 번째 점이 나타나다……84
올빼미, 나의 올빼미……84
지금 선생님이 안 계셔……85
우리의 한평생 우정이 그렇게 시작되다……85
미 8군 타자수 모집……86
또 낙방……88
올빼미의 제안으로 〈캠프 험프리스〉엘 가다……89
또 하나의 시험……90
타자 시험 합격!……90
필기시험 합격!……91
구두시험 - 영국인 인사청장……91
기다리는 시간……92
또다시 평택으로……93
빈자리가 있긴 한데……94
두 번째 직업 - 웨이트리스……95
또 다른 세계를 만나다……95
담배 연기 속의 일……95
사고 -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따라온다더니……96
일 시작한 지 꼭 한 달 되던 날……97
전화위복……99
보고서 작성……100
내일 아침 9시까지 오시오……102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이 열리다……102
나의 세 번째 직장 - 장교 클럽의 여비서……103
두 개의 별명 - 베이비와 전화번호부……103
승진 위에 또 승진……106
말 많은 사람들……108
나타난 쫄병……109
펜 프랜드……113
만나자고 하는 펜팔……113
결혼하기 일 년 전에 일어난 슬픈 일……115
새로 부임해 온 커스토디언……116
한국인들은 모두 도둑놈……116
허락받은 도둑놈……118
프러포즈인가?……120
결근……121
나는 냉혈 인간인가?……122
또 한 단계의 승진……123
처음 만난 이성……124
다시 찾아온 그 고등학생……126
14살에서 19살까지……127
나는 부모님의 불량품일까?……128
아버지께 용돈 드리기……128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129
아버지의 죽음……131
꿈속에서의 아버지 이야기……132
결혼은 안 해!……133
우리 아버지의 계획……133
회색의 새……135
올빼미의 상경 명령……135
올빼미가 버스표를 바꾸다……137
그날은 석가 탄신일이었다……138
낚싯밥을 덜컥 문 나는 맹꽁이……139
그를 찾아간 운명의 그날……140
절세가인이 아닌 절세 미남……142
평화스러운 옥수수밭……142
가면 안 된다고 그가 만류하다……143
미스 한을 데려다줘라……144
궤도를 벗어났던 하루……144
우리 식구들과의 만남……145
괴상한 청혼과 주일 뉴질랜드 대사님의 편지……146
엄마가 좋다고 하셨다……147
주황색 독일 차 - 폭스바겐……147
다이아몬드 반지……148
휴가 허락……149
동해안을 따라서 속초로……150
임신이래……152
1971년 12월 2일 - 결혼식……153
'아부지 나 결혼했다. 이제 됐어?'……154
마약범!……155
돌아가야 해……156
넷째 마당 이야기……159
내가 사랑했던 한국을 뒤로하고……160
비행기……161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다……161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162
시댁에 도착하다……163
드론보다 더 겁나는 샌드플라이 공격……164
바위 틈새의 굴 - 나의 식량이 되다……166
결혼 이후 천천히 깔려 오는 안개……167
시간이 흘러 시어머님 댁을 떠날 때가 되다……168
남쪽으로 남쪽으로……169
Hello George!……169
거대한 여객선 - 인터 아일랜드호……171
한국의 동해안과 비슷한 픽턴에서 넬슨까지……172
모투에카에 도착하다……173
리와카로 이사하다……174
남편이 산 첫 번째 우리 집……176
뉴질랜드 남섬에서의 겨울……177
남편의 딜레마……178
1972년 크리스마스 파티……179
큰아들 사이몬(Simon)의 탄생……182
아이들을 싫어했던 나……183
내 몸이 만들어 낸 기적……184
도움의 손길 - 플랑켓 너스……186
유모차를 끌고 극장엘 가다……187
기이한 방법으로 기어다니는 아기……187
어머, 저 꼬마 좀 봐……189
단어 배우기……189
큰아들의 초등학교 생활 시작……189
큰아이 9개월 때 난 또 둘째를 임신하다……191
리틀 황제의 탄생 - 둘째 아들(Anton)……191
황달 - 둘째의 힘든 시작……192
이번엔 딸이겠지 - 우리 집 막내(Rex)……195
자궁 탈출증……196
또 아들이네……196
2미터밖에 못 보는 막내……197
신발 닦기……198
아들 셋 하고 산책을 나가면……199
남편의 대장암 선고……201
그날 남편은 큰 병원으로 이송되다……203
피아노와 그림……204
Summer Art School……205
팔려 나간 나의 명작……205
아이들과의 게임들……206
위험한 점프……209
위험한 엄마……211
튜발 라이게이션 수술……212
무척이나 슬펐던 '자궁 적출 수술'……212
정신병원 입원 직전에 풀려나다……212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어려워……215
망가져 버린 행복의 분수……219
다섯째 마당 이야기……221
새로운 일……222
흙을 뚫고 나오는 작은 생명의 기쁨……223
엄마가 뉴질랜드로 오셨다……224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엄마였는데……226
이번엔 오빠가 왔다……227
누구든 해서는 안 될 행동……229
"넌 한 번도 날 사랑한 적이 없지? 내 돈을 보고 결혼한 거잖아!"……231
뉴질랜드 달러로 4,000불을 빌려 간 오빠……232
오빠와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 더……233
도둑으로 몰리다……233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파 올빼미에게 가다……235
골든 베이로 이사를 하다……237
보스카와 싹스……239
코스모스와 싹스……242
목숨을 잃는 고래들……245
나의 차례……246
죽음이 나를 기다리던 날……246
물속에서의 죽음으로의 여행……248
그물로 건져 올린 구조……249
중국 정부의 뉴질랜드식 옥외목장 설립 기획……252
중국어 수업을 받다……253
환영 파티……254
마오타이주의 위력……256
탁구공 만한 바퀴벌레……257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치안지앙시범목장……258
중국은 거대한 대륙……259
아이들의 통신 교육 - 홈스쿨링……262
공산주의 사회의 면모……264
영혼을 빼앗아 가는 사진기……266
일자리 옮김……267
산시성의 모래 폭풍……268
아이들의 전쟁놀이……271
야외 이동공연단……272
동나무 심기……273
24시간 감시하는 공안주……275
레위 알리 씨와 우리 집 막내……279
내면에서의 메시지……281
1984년 8월 - 중국을 떠나오다……282
미국 여행……283
Have a Good Day!……285
1984년 10월 뉴질랜드로 돌아오다……286
1984년 또 하나의 수술……287
무슨 일이 있었어? - 의사 선생님의 의문……288
새로 생긴 나의 엄마들……288
남편의 일본인 애인……291
나의 남편은 왜 밖으로만 나돌까?……292
이중성격의 소유자인가?……293
약속을 어긴 남편……294
금이 간 우리의 결혼이라는 항아리……295
악몽들……296
1985년 12월에 내린 결정……297
남편이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298
거주지를 웰링턴으로 옮기다……298
이번에도 남편이 나를 따라오다……299
여섯째 마당 이야기……301
네 번째의 직장 - 은행 외환과……302
1986년 6월 대만 친구를 만나다……304
운전사와 요리사……305
다섯 번째 직장(Micrographic Wellington Limited) Receptionist……306
연봉 $19,000에서 $29,000로……306
내 인생의 꽃을 다시 피우기 시작하다……308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생일 파티……309
세 번째의 점(點) - 사장님……310
뉴질랜드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걸려 온 전화……311
가슴 아픈 증거물이 나오다……311
자동차 사고……313
일본어 장학생 여행……314
법정에 서다……317
호사다마 - 좋은 일엔 나쁜 일이 뒤따른다……319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고 퇴사하다……320
내가 언제 너의 상사였어?……320
여섯 번째 직업 - Operational Manager - 운영 관리자……321
정확한 사실만 이야기하라……322
또 감직……323
또 나를 따라온 남편……324
가족상담소가 내려준 최종 답안……325
이혼 - 1989년 9월 1일……326
또 하나의 교훈……328
모터바이크 사고……328
마지막 이력서 - 29번째……330
4번째의 점(點) - 더불 엠(MM)……331
100명의 이름을 적어 오라……333
하면 안 되는 3가지 일……334
부의 문이 열리다……336
결국은 보험판매원으로 첫발을 내딛다……337
하면 된다……337
일곱 번째의 직업-파이낸셜 어드바이저……337
충격을 준 그 '재정 구원'이라는 직책의 이름……337
준비해 둔 동아줄……338
보험 판매 업무의 시작……339
벽돌 크기 만한 휴대 전화기……341
125메가바이트 노트북……342
5개년 재무계획과 박정희 대통령……343
5개년 재무계획서의 세부 명세……345
계획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346
43세……347
마음 수련……348
Financial Planning 세미나에 등록하다……349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350
드디어 첫 클라이언트가 나타나다……351
7월 1일 밤……351
첫 번의 결과……354
일곱째 마당 이야기……357
부동산의 문이 열리다……358
집요한 그의 추적……362
융자 가능……363
Deposit(착수금)은?……364
동아줄 은인 - YL(Yueh-li Chang) - 나의 두 번째 점(點)……365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딛다……366
책임감 없는 젊은 세입자들……367
부동산을 한 해에 한 채씩 사들이다……368
파이낸셜 어드바이즈로 일하면서 배운 것들……368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370
대전 EXPO'93……372
대전 EXPO'93 관리자로 파견되다……374
뉴질랜드 전시관의 홍수……378
감기와 페니실린 부작용……378
뚱뚱보로 변모……380
나의 천국 - 3D 스크린 영화관……381
1993년 12월 통역사로……382
텐텐(10 : 10)의 나날……385
이름을 사는 동료들……386
전화번호부 = 나의 파트너……387
작전 변경……387
어딜 가나 앉으면 꾸벅꾸벅 졸았던 그 시절……388
Cold Call로 만난 영국 노인……389
1995년 5월 프리랜서가 되다……391
또 한 분의 은인을 만나다 - 더블 엘(LL : Philip Love)……392
동양인 세일즈우먼에 관한 신문 기사……394
웰링턴 이브닝 포스트에 오른 나와 내 사무실 모습……395
계획에도 없었던 부동산 전문가……396
비교되는 두 가정……396
특이한 목소리……398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가 되다……398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대되다……401
큰아들의 결혼……402
할머니가 되다……406
2005년 9월 손자 탄생……407
브릿지 게임 레슨을 받기 시작하다……408
2010년 조용필 씨의 노래에 반하다……410
2012년 우리 집 둘째 리틀 황제의 결혼……413
사무실 문을 닫다……414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다……415
갑상샘이 고장나다……416
자서전 쓰기를 다시 시작하다……420
또 이상한 일이……422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였다……424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424
올빼미의 소원……424
또 배움의 발작 - 우클렐레 시작……426
에필로그……428
마지막 커튼을 내리면서……429
프롤로그……18
그 삶이라는 것……18
예언……19
첫째 마당 이야기……21
나의 탄생……22
울보와 기적……23
내 어린 시절의 행복……23
쥐의 세상 뒷간……24
들꽃……24
거리 상가의 노래와 교회에서 주던 시루떡……25
두꺼비 녀석들……25
혼자만의 게임들……26
산 동네 친구들……26
기차의 기적소리……27
하늘의 선물……27
동대문국민학교에 입학하다……28
책 낭독 챔피언……30
꼬부랑 할머니들……31
그리운 귀뚜라미들의 코러스……32
개구리들의 개굴개굴 합창……32
혼자인 백로……32
양반님들같이 품위 있는 소나무들……33
즐거웠던 나날들……33
가랑잎과의 게임……34
거리마다 즐비했던 시인들의 이야기……34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34
행복한 시절의 한 가지 사건 - 엄마의 부재……35
국민학교 6학년 때 - 국가 장학금 시험……36
중학교 입학시험……39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다……40
첫 번째 외국어 - 영어……41
두 번째 외국어 - 독일어……43
세 번째 외국어 - 일본어……44
네 번째 외국어 - 중국어……46
다섯 번째 외국어 - 불어……47
둘째 마당 이야기…… 49
다시 어린 시절로……50
상이군인이 많았던 어린 시절……51
모윤숙 씨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51
그 많은 상처 속에서도……57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나……58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들……58
나의 엄마……59
엄마는 음치……60
우리 엄마의 영어 실력……62
긍정적인 사상……62
엄마와 나는 자매 같다네……63
엄마의 틀니……64
2006년 10월 29일 - 엄마의 마지막 날……65
나의 외조부모님들에 대해서……67
엄마는 외동딸……68
남자아이로 둔갑하신 엄마……70
외조부모의 외동딸 혼사 준비……71
부모님의 뜻대로……72
상반되는 부모님의 결혼 - 모든 결혼은 그러한가? 73
귀한 공주님이 허드레 일꾼으로 전락하다……73
나의 아버지……74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 주신 인생철학……76
남편과 옥천 방문……77
셋째 마당 이야기……79
첫 번째 직장 - 타자기를 만나다……80
나에게 학생들은 이방인……83
첫 번째 점이 나타나다……84
올빼미, 나의 올빼미……84
지금 선생님이 안 계셔……85
우리의 한평생 우정이 그렇게 시작되다……85
미 8군 타자수 모집……86
또 낙방……88
올빼미의 제안으로 〈캠프 험프리스〉엘 가다……89
또 하나의 시험……90
타자 시험 합격!……90
필기시험 합격!……91
구두시험 - 영국인 인사청장……91
기다리는 시간……92
또다시 평택으로……93
빈자리가 있긴 한데……94
두 번째 직업 - 웨이트리스……95
또 다른 세계를 만나다……95
담배 연기 속의 일……95
사고 -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따라온다더니……96
일 시작한 지 꼭 한 달 되던 날……97
전화위복……99
보고서 작성……100
내일 아침 9시까지 오시오……102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이 열리다……102
나의 세 번째 직장 - 장교 클럽의 여비서……103
두 개의 별명 - 베이비와 전화번호부……103
승진 위에 또 승진……106
말 많은 사람들……108
나타난 쫄병……109
펜 프랜드……113
만나자고 하는 펜팔……113
결혼하기 일 년 전에 일어난 슬픈 일……115
새로 부임해 온 커스토디언……116
한국인들은 모두 도둑놈……116
허락받은 도둑놈……118
프러포즈인가?……120
결근……121
나는 냉혈 인간인가?……122
또 한 단계의 승진……123
처음 만난 이성……124
다시 찾아온 그 고등학생……126
14살에서 19살까지……127
나는 부모님의 불량품일까?……128
아버지께 용돈 드리기……128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129
아버지의 죽음……131
꿈속에서의 아버지 이야기……132
결혼은 안 해!……133
우리 아버지의 계획……133
회색의 새……135
올빼미의 상경 명령……135
올빼미가 버스표를 바꾸다……137
그날은 석가 탄신일이었다……138
낚싯밥을 덜컥 문 나는 맹꽁이……139
그를 찾아간 운명의 그날……140
절세가인이 아닌 절세 미남……142
평화스러운 옥수수밭……142
가면 안 된다고 그가 만류하다……143
미스 한을 데려다줘라……144
궤도를 벗어났던 하루……144
우리 식구들과의 만남……145
괴상한 청혼과 주일 뉴질랜드 대사님의 편지……146
엄마가 좋다고 하셨다……147
주황색 독일 차 - 폭스바겐……147
다이아몬드 반지……148
휴가 허락……149
동해안을 따라서 속초로……150
임신이래……152
1971년 12월 2일 - 결혼식……153
'아부지 나 결혼했다. 이제 됐어?'……154
마약범!……155
돌아가야 해……156
넷째 마당 이야기……159
내가 사랑했던 한국을 뒤로하고……160
비행기……161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다……161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162
시댁에 도착하다……163
드론보다 더 겁나는 샌드플라이 공격……164
바위 틈새의 굴 - 나의 식량이 되다……166
결혼 이후 천천히 깔려 오는 안개……167
시간이 흘러 시어머님 댁을 떠날 때가 되다……168
남쪽으로 남쪽으로……169
Hello George!……169
거대한 여객선 - 인터 아일랜드호……171
한국의 동해안과 비슷한 픽턴에서 넬슨까지……172
모투에카에 도착하다……173
리와카로 이사하다……174
남편이 산 첫 번째 우리 집……176
뉴질랜드 남섬에서의 겨울……177
남편의 딜레마……178
1972년 크리스마스 파티……179
큰아들 사이몬(Simon)의 탄생……182
아이들을 싫어했던 나……183
내 몸이 만들어 낸 기적……184
도움의 손길 - 플랑켓 너스……186
유모차를 끌고 극장엘 가다……187
기이한 방법으로 기어다니는 아기……187
어머, 저 꼬마 좀 봐……189
단어 배우기……189
큰아들의 초등학교 생활 시작……189
큰아이 9개월 때 난 또 둘째를 임신하다……191
리틀 황제의 탄생 - 둘째 아들(Anton)……191
황달 - 둘째의 힘든 시작……192
이번엔 딸이겠지 - 우리 집 막내(Rex)……195
자궁 탈출증……196
또 아들이네……196
2미터밖에 못 보는 막내……197
신발 닦기……198
아들 셋 하고 산책을 나가면……199
남편의 대장암 선고……201
그날 남편은 큰 병원으로 이송되다……203
피아노와 그림……204
Summer Art School……205
팔려 나간 나의 명작……205
아이들과의 게임들……206
위험한 점프……209
위험한 엄마……211
튜발 라이게이션 수술……212
무척이나 슬펐던 '자궁 적출 수술'……212
정신병원 입원 직전에 풀려나다……212
결혼생활은 너무나도 어려워……215
망가져 버린 행복의 분수……219
다섯째 마당 이야기……221
새로운 일……222
흙을 뚫고 나오는 작은 생명의 기쁨……223
엄마가 뉴질랜드로 오셨다……224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엄마였는데……226
이번엔 오빠가 왔다……227
누구든 해서는 안 될 행동……229
"넌 한 번도 날 사랑한 적이 없지? 내 돈을 보고 결혼한 거잖아!"……231
뉴질랜드 달러로 4,000불을 빌려 간 오빠……232
오빠와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 더……233
도둑으로 몰리다……233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파 올빼미에게 가다……235
골든 베이로 이사를 하다……237
보스카와 싹스……239
코스모스와 싹스……242
목숨을 잃는 고래들……245
나의 차례……246
죽음이 나를 기다리던 날……246
물속에서의 죽음으로의 여행……248
그물로 건져 올린 구조……249
중국 정부의 뉴질랜드식 옥외목장 설립 기획……252
중국어 수업을 받다……253
환영 파티……254
마오타이주의 위력……256
탁구공 만한 바퀴벌레……257
2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치안지앙시범목장……258
중국은 거대한 대륙……259
아이들의 통신 교육 - 홈스쿨링……262
공산주의 사회의 면모……264
영혼을 빼앗아 가는 사진기……266
일자리 옮김……267
산시성의 모래 폭풍……268
아이들의 전쟁놀이……271
야외 이동공연단……272
동나무 심기……273
24시간 감시하는 공안주……275
레위 알리 씨와 우리 집 막내……279
내면에서의 메시지……281
1984년 8월 - 중국을 떠나오다……282
미국 여행……283
Have a Good Day!……285
1984년 10월 뉴질랜드로 돌아오다……286
1984년 또 하나의 수술……287
무슨 일이 있었어? - 의사 선생님의 의문……288
새로 생긴 나의 엄마들……288
남편의 일본인 애인……291
나의 남편은 왜 밖으로만 나돌까?……292
이중성격의 소유자인가?……293
약속을 어긴 남편……294
금이 간 우리의 결혼이라는 항아리……295
악몽들……296
1985년 12월에 내린 결정……297
남편이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298
거주지를 웰링턴으로 옮기다……298
이번에도 남편이 나를 따라오다……299
여섯째 마당 이야기……301
네 번째의 직장 - 은행 외환과……302
1986년 6월 대만 친구를 만나다……304
운전사와 요리사……305
다섯 번째 직장(Micrographic Wellington Limited) Receptionist……306
연봉 $19,000에서 $29,000로……306
내 인생의 꽃을 다시 피우기 시작하다……308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생일 파티……309
세 번째의 점(點) - 사장님……310
뉴질랜드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걸려 온 전화……311
가슴 아픈 증거물이 나오다……311
자동차 사고……313
일본어 장학생 여행……314
법정에 서다……317
호사다마 - 좋은 일엔 나쁜 일이 뒤따른다……319
어마어마한 퇴직금을 받고 퇴사하다……320
내가 언제 너의 상사였어?……320
여섯 번째 직업 - Operational Manager - 운영 관리자……321
정확한 사실만 이야기하라……322
또 감직……323
또 나를 따라온 남편……324
가족상담소가 내려준 최종 답안……325
이혼 - 1989년 9월 1일……326
또 하나의 교훈……328
모터바이크 사고……328
마지막 이력서 - 29번째……330
4번째의 점(點) - 더불 엠(MM)……331
100명의 이름을 적어 오라……333
하면 안 되는 3가지 일……334
부의 문이 열리다……336
결국은 보험판매원으로 첫발을 내딛다……337
하면 된다……337
일곱 번째의 직업-파이낸셜 어드바이저……337
충격을 준 그 '재정 구원'이라는 직책의 이름……337
준비해 둔 동아줄……338
보험 판매 업무의 시작……339
벽돌 크기 만한 휴대 전화기……341
125메가바이트 노트북……342
5개년 재무계획과 박정희 대통령……343
5개년 재무계획서의 세부 명세……345
계획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346
43세……347
마음 수련……348
Financial Planning 세미나에 등록하다……349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350
드디어 첫 클라이언트가 나타나다……351
7월 1일 밤……351
첫 번의 결과……354
일곱째 마당 이야기……357
부동산의 문이 열리다……358
집요한 그의 추적……362
융자 가능……363
Deposit(착수금)은?……364
동아줄 은인 - YL(Yueh-li Chang) - 나의 두 번째 점(點)……365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딛다……366
책임감 없는 젊은 세입자들……367
부동산을 한 해에 한 채씩 사들이다……368
파이낸셜 어드바이즈로 일하면서 배운 것들……368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370
대전 EXPO'93……372
대전 EXPO'93 관리자로 파견되다……374
뉴질랜드 전시관의 홍수……378
감기와 페니실린 부작용……378
뚱뚱보로 변모……380
나의 천국 - 3D 스크린 영화관……381
1993년 12월 통역사로……382
텐텐(10 : 10)의 나날……385
이름을 사는 동료들……386
전화번호부 = 나의 파트너……387
작전 변경……387
어딜 가나 앉으면 꾸벅꾸벅 졸았던 그 시절……388
Cold Call로 만난 영국 노인……389
1995년 5월 프리랜서가 되다……391
또 한 분의 은인을 만나다 - 더블 엘(LL : Philip Love)……392
동양인 세일즈우먼에 관한 신문 기사……394
웰링턴 이브닝 포스트에 오른 나와 내 사무실 모습……395
계획에도 없었던 부동산 전문가……396
비교되는 두 가정……396
특이한 목소리……398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가 되다……398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대되다……401
큰아들의 결혼……402
할머니가 되다……406
2005년 9월 손자 탄생……407
브릿지 게임 레슨을 받기 시작하다……408
2010년 조용필 씨의 노래에 반하다……410
2012년 우리 집 둘째 리틀 황제의 결혼……413
사무실 문을 닫다……414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다……415
갑상샘이 고장나다……416
자서전 쓰기를 다시 시작하다……420
또 이상한 일이……422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였다……424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424
올빼미의 소원……424
또 배움의 발작 - 우클렐레 시작……426
에필로그……428
마지막 커튼을 내리면서……429
저자
저자
한현순
(Haley Hyon-sun Fenwick)
저자 한현순은 1947년 7월, 충북 옥천군 군북면 지오리에서 청주 한씨(한귀섭)와 재령 이씨(이계녀)의 셋째 고명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품에 안겨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구 망우동(지금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아기였을 때 영양실조로 눈에 미영시(무명씨)가 끼어서 치료는 엄두도 못 낼 당시 외할머니가 닭 한 마리를 고아서 그녀를 무릎 위에 앉히고 숟갈로 국물을 떠먹였던 정성으로 미영씨 낀 그녀의 눈과 영양실조의 몸은 기적적으로 소생해 재롱둥이 고명딸로 성장했다.
일곱 살 때인 1953년 4월, 서울 동대문국민학교에 입학해 국민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열세 살 때인 1959년, 경기여자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으나 면접시험에서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낙방해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국민학교 졸업 직후부터 5개 외국어를 구사해야겠다는 꿈을 키우며 AFKN 미 8군 방송을 들으며 영어부터 독학의 길로 들어섰다.
열여섯 살 때인 1962년, 신설동 타자학원에 급사로 취업해, 열아홉 살 때인 1966년, 평택 캠프 험프리스 타자원 겸 여비서 공모에 응시해 타자실기 시험과 영어면접 시험에 합격했으나 발령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다 그해 8월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식당여종업원인 '웨이트리스'로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66년 9월, 세 번째 직장인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여비서로 발탁되어 18개월 동안 〈열심, 우의, 정직〉으로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공로로 1969년 1월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최고 우두머리인 제너럴 매니저 〈감사장〉을 받으며 Grade 7로 승진되어 대한민국 국민 평균 월급보다 12배의 급료를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했다.
24세 때인 1971년 5월, 서울 조계사 부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국 주재 뉴질랜드 〈한뉴목장 농업 컨설턴트〉로 재직하던 뉴질랜드 청년을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나, 지정된 좌석 때문에 평택까지 같이 앉아가게 되고, 얼마 후 뉴질랜드 청년의 구애와 청혼으로 7개월 후인 1971년 12월, 한국 주재 뉴질랜드 대사관의 주선으로 국제결혼 후 남편을 따라 1972년 2월 19일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1981년 7월, 중국 정부를 위해서 뉴질랜드식 아웃도어 파밍(Outdoor Farming : 옥외농장)을 셋업(Setup : 설립) 하려고 남편과 세 아들을 데리고 중국 광시성 치안지앙시범목장에서 1년, 산시성 친슈이시범목장에서 2년, 3년간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어와 중국 현지 생활을 체득하고 1984년 10월 뉴질랜드로 돌아와, 1986년 4월부터 그동안 결혼생활로 단절되었던 사회생활을 복원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1988년 8월 8일, 일본 정부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능력 시험을 치르며, 최고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게 비행기 삯, 숙식비, 용돈까지 현찰로 주며 일본을 구경시켜 주는 국위선양 행사를 열었는데, 그녀는 뉴질랜드 웰링턴 대표로 뽑혀 전 세계에서 모여든 93명의 〈일본어 장학생〉들과 함께 일본의 유명 도시를 여행하며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습득하기도 했다.
그녀의 나이 43세 때인 1990년, 세 아들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5개년 재무계획표〉를 작성한 후 솔로 맘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곱 번째 직장인 종신생명보험 판매 회사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 반열에 올라 4년간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빙되었다.
그러던 중 1992년 6월 2일, 본의 아니게 종신보험회사 한 클라이언트의 집 한 채를 인수, 세입자 관리를 해 주며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후 한 해에 한 채씩 부동산을 사들였고, 어떤 해는 두 채도 사들이고, 얼마 후는 웰링턴 지역을 넘어서 뉴질랜드 남섬의 부동산도 사들이며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라는 개념으로 부(富)의 문을 열어갔다…….
이 기간(2015∼2020) 동안 뉴질랜드 언론들은 그녀를 "부동산 투자 전문가", "모기지 설계의 마술사", "자산 증식의 파트너", "웰링턴 부동산 투자 멘토" 등으로 소개했고, 그녀는 한국 교민은 물론 뉴질랜드 본토민들로부터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43세 때인 1993년 3월 대전 EXPO'93 〈뉴질랜드관〉 관리자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1993년 12월, 뉴질랜드 육류수출위원회 한국어 통역사로 발탁되어, 한국 미트 바이어들의 육류 수입 상담을 한국어로 통역하며 뉴질랜드 전역 모든 도축장을 바이어들에게 안내하며 함께 동행했다…….
48세 때인 1995년 5월, 종신보험 판매 프리랜서로 전향하다.
50세 때인 1997년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가 되어 무려 4년간 계속되다.
54세 때인 2001년 밀리언 달러 라운드 테이블(Million Dollar Round Table :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빙되어 캐나다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2020년까지 그녀를 찾는 수많은 뉴질랜드 전역 클라이언트들의 모기지(mortgage) 대출상담, 재무 설계, 은퇴 전략, 그리고 특히 부동산 투자(Property Investment) 관련 컨설팅을 해주며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우뚝 서는 한국인의 참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여주며, 전 세계인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한국여성상〉을 이룩하였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저자 한현순은 1947년 7월, 충북 옥천군 군북면 지오리에서 청주 한씨(한귀섭)와 재령 이씨(이계녀)의 셋째 고명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품에 안겨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구 망우동(지금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아기였을 때 영양실조로 눈에 미영시(무명씨)가 끼어서 치료는 엄두도 못 낼 당시 외할머니가 닭 한 마리를 고아서 그녀를 무릎 위에 앉히고 숟갈로 국물을 떠먹였던 정성으로 미영씨 낀 그녀의 눈과 영양실조의 몸은 기적적으로 소생해 재롱둥이 고명딸로 성장했다.
일곱 살 때인 1953년 4월, 서울 동대문국민학교에 입학해 국민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열세 살 때인 1959년, 경기여자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으나 면접시험에서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낙방해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국민학교 졸업 직후부터 5개 외국어를 구사해야겠다는 꿈을 키우며 AFKN 미 8군 방송을 들으며 영어부터 독학의 길로 들어섰다.
열여섯 살 때인 1962년, 신설동 타자학원에 급사로 취업해, 열아홉 살 때인 1966년, 평택 캠프 험프리스 타자원 겸 여비서 공모에 응시해 타자실기 시험과 영어면접 시험에 합격했으나 발령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다 그해 8월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식당여종업원인 '웨이트리스'로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66년 9월, 세 번째 직장인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여비서로 발탁되어 18개월 동안 〈열심, 우의, 정직〉으로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공로로 1969년 1월 캠프 험프리스 장교클럽 최고 우두머리인 제너럴 매니저 〈감사장〉을 받으며 Grade 7로 승진되어 대한민국 국민 평균 월급보다 12배의 급료를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했다.
24세 때인 1971년 5월, 서울 조계사 부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국 주재 뉴질랜드 〈한뉴목장 농업 컨설턴트〉로 재직하던 뉴질랜드 청년을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나, 지정된 좌석 때문에 평택까지 같이 앉아가게 되고, 얼마 후 뉴질랜드 청년의 구애와 청혼으로 7개월 후인 1971년 12월, 한국 주재 뉴질랜드 대사관의 주선으로 국제결혼 후 남편을 따라 1972년 2월 19일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1981년 7월, 중국 정부를 위해서 뉴질랜드식 아웃도어 파밍(Outdoor Farming : 옥외농장)을 셋업(Setup : 설립) 하려고 남편과 세 아들을 데리고 중국 광시성 치안지앙시범목장에서 1년, 산시성 친슈이시범목장에서 2년, 3년간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어와 중국 현지 생활을 체득하고 1984년 10월 뉴질랜드로 돌아와, 1986년 4월부터 그동안 결혼생활로 단절되었던 사회생활을 복원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1988년 8월 8일, 일본 정부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능력 시험을 치르며, 최고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게 비행기 삯, 숙식비, 용돈까지 현찰로 주며 일본을 구경시켜 주는 국위선양 행사를 열었는데, 그녀는 뉴질랜드 웰링턴 대표로 뽑혀 전 세계에서 모여든 93명의 〈일본어 장학생〉들과 함께 일본의 유명 도시를 여행하며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습득하기도 했다.
그녀의 나이 43세 때인 1990년, 세 아들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5개년 재무계획표〉를 작성한 후 솔로 맘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곱 번째 직장인 종신생명보험 판매 회사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 반열에 올라 4년간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빙되었다.
그러던 중 1992년 6월 2일, 본의 아니게 종신보험회사 한 클라이언트의 집 한 채를 인수, 세입자 관리를 해 주며 부동산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후 한 해에 한 채씩 부동산을 사들였고, 어떤 해는 두 채도 사들이고, 얼마 후는 웰링턴 지역을 넘어서 뉴질랜드 남섬의 부동산도 사들이며 〈집 한 채는 나무 한 그루〉라는 개념으로 부(富)의 문을 열어갔다…….
이 기간(2015∼2020) 동안 뉴질랜드 언론들은 그녀를 "부동산 투자 전문가", "모기지 설계의 마술사", "자산 증식의 파트너", "웰링턴 부동산 투자 멘토" 등으로 소개했고, 그녀는 한국 교민은 물론 뉴질랜드 본토민들로부터도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43세 때인 1993년 3월 대전 EXPO'93 〈뉴질랜드관〉 관리자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1993년 12월, 뉴질랜드 육류수출위원회 한국어 통역사로 발탁되어, 한국 미트 바이어들의 육류 수입 상담을 한국어로 통역하며 뉴질랜드 전역 모든 도축장을 바이어들에게 안내하며 함께 동행했다…….
48세 때인 1995년 5월, 종신보험 판매 프리랜서로 전향하다.
50세 때인 1997년 뉴질랜드 전역 Top 10 브로커가 되어 무려 4년간 계속되다.
54세 때인 2001년 밀리언 달러 라운드 테이블(Million Dollar Round Table : 백만 달러 원탁회의)에 초빙되어 캐나다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2020년까지 그녀를 찾는 수많은 뉴질랜드 전역 클라이언트들의 모기지(mortgage) 대출상담, 재무 설계, 은퇴 전략, 그리고 특히 부동산 투자(Property Investment) 관련 컨설팅을 해주며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우뚝 서는 한국인의 참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여주며, 전 세계인들로부터 귀감이 되는 〈한국여성상〉을 이룩하였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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