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이 도착한다(파란시선 42)
금란 시집
금란 시집 [얼굴들이 도착한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의 시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아베마리아를 놓치기 전에》, 《이미 당신은 삼인칭》, 《오전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 《사슴을 그려 본 적 있다》, 《구겨졌던 것을 다시 펴 보니》등 다양한 작품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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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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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의 시에서 "얼굴"은 일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제유(提喩)처럼 사용된다. 벽 에서의 "등"이 신체의 일부이면서 한 인간이 살아온 "세월"의 축도(縮圖)이듯이, 몇몇 시들에서 "얼굴"은 신체의 일부이면서 한 개인을 가리키는 기호로 쓰인다. 가령 "우울하거나 명랑한 얼굴들이 이제 도착한다"( 초대장 1 )라는 진술이 그렇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얼굴 에 등장하는 "얼굴"은 조금 다르다. 화자에게는 "수많은 이름"과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 여기에서 "얼굴"은 색깔로 표현되는 내면의 감정과 유사하다. 화자는 자신을 가리켜 "생일이 없는 나이를 먹고"라고 쓰고 있다. "생일"이 없다는 것은 "여러 개의 얼굴"이 생물학적인 출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인 듯하다. 화자는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계를 '숲이 태양을 가린 캄캄한 길'이라고 말한다. 화자의 시선의 방향에 따라 길에는 두 방향, 즉 '앞'과 '뒤'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뒤를 돌아볼수록 견딜 수 없는 정글이 생겨나고/사방으로 흩어진 이름을 기억하며/참고 있던 얼굴이 쏟아진다"라고 고백한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를 회상한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유년을 떠올릴 때면 "정글" 속에 갇혀 헤매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흩어진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그 이름들과 더불어 "참고 있던 얼굴"이 쏟아진다. 얼굴이 쏟아진다는 것, 또는 쏟아지는 얼굴은 "검붉은", "새파란", "샛노란" 같은 감정과 연결된다. 이는 유년 시절로 리비도를 집중할 때마다 시인의 내면에서는 상처가 덧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의 얼굴 에 등장하는 "오래전에 죽은 내 얼굴"이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시인은 개인의 '내적 감정'을 주머니에 담겨 있는 얼굴의 이미지로 간주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얼굴은 주머니에 담기고, 또 어떤 얼굴은 주머니가 찢어져 "바닥으로 엎질러지고 마는" 경우도 발생한다. 감정에 대한 상상력이 이러하기에 어떤 감정, 즉 "웃자란 얼굴"은 주머니에 담기지 않는가 하면 바닥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주머니에 담기지 않거나 바닥으로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화자가 캄캄한 길 위에서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숨길 곳이 없는 얼굴들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금란의 시에서 이 느낌을 떨쳐 내는 유일한 방법은 현대적 풍경에 대해 "맛있는 상상"을 펼치는 순간이다. "상상"은 시인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늦추고, 고통의 시간을 위로하며, 그리하여 일상적 풍경을 한층 흥미롭게 만든다. 이것들이 뒤섞일 때 금란의 시는 멜랑콜릭해진다."(이상 고봉준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금란 시인은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으며, 2013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편두통'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얼굴들이 도착한다〉는 금란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추천사
로드킬 소재는 가장 흔한 소재 중의 하나이지만, 한 시인에게 소재의 상투성을 넘어서는 방법을 보여 주게 함으로써 그 시인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기도 한다. 검정에 대한 오독 에서 고양이 사체를 본 화자는 "완벽한 고양이가 내 품으로 달려들어 뜨거워질 때"까지 "고양이를 재구성한다". 이 상상 속에서 죽은 고양이는 "우연히 떨어진 검은 폭설"이 되기도 하고 "표정을 잃은 달빛이 까맣게 허물어"지는 자연적인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때 개별적인 죽음의 참혹함은 거대한 자연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 계절이 변화하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이 되며, 한 유기체의 삶과 죽음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애절한 감정들은 무심해지게 된다.
금란의 시는 이처럼 생명을 지닌 것들에 대한 모성적 연민을 드러내지만 감상에 빠지지는 않는다. 그 모성성을 상투성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힘은 "허공의 위치를 알고 뻗은 나뭇가지의 감각"이나 "바위를 향해 내리꽂는 빗줄기의 예민함"을 지닌 섬세한 촉수에서 나온다( 어린이 보호 구역 ). 이 촉수가 빚어내는 미학은 그것이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 감각이기 이전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존엄을 느끼는 감각이고 생명을 생명답게 느끼는 윤리적인 요청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감성이 불판에서 구워지는 살을 보는 화자로 하여금 "불 안의 나는 고기처럼 뜨겁고/불 밖의 그들은 서늘해"짐을 느끼게 한다( 완벽한 불판 ). 주체도 대상도 사라지고 고통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느낌의 윤리성이 미싱 소리 요란한 창신동 골목을 지나가는 화자에게 온몸으로 '바늘비, 슬리퍼비, 주름비'를 맞게 하는 것이다( 창신동 ).
―김기택(시인)
목차
목차
제1부
013 벽
015 분홍이 나를 분홍이라고 부를 때
016 모빌의 감정
018 창신동
020 그림자놀이
022 아베마리아를 놓치기 전에
024 빵의 시간
026 일요일의 자세
027 소녀여 일어나라
028 검정에 대한 오독
030 어린이 보호 구역
032 잘 지내
034 난독증
036 반갑습니다
제2부
039 눈사람
040 세 여자
042 하비슨
044 이미 당신은 삼인칭
046 사소한 가출
048 장미 레시피
050 맛있는 상상
051 선물
052 녹슨 꽃
054 초대장 1
056 소파는 기억한다
058 스포일러
060 햇빛, 뛰어내리다
062 여러 가지의 얼굴
제3부
065 오전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
066 고양이주의보
068 완벽한 불판
070 새로 만들어진 낭만
072 수집가
074 사각지대
076 수면내시경
078 우울들
080 알비노, 흑인 소년
082 안녕
084 통행금지
086 새는 손잡지 않고 먼저 난다
088 사과의 그늘
089 지속되는 의자 1
090 목련 너머
제4부
095 가까운 새
096 붉은 얼굴
097 지속되는 의자 2
098 이분법의 미학
100 사슴을 그려 본 적 있다
102 캔버스 위에서 잠든다
104 괄호에서 멈춘 이야기
106 아이는 끝났으나
107 집 밖에서
108 폭염
110 구겨졌던 것을 다시 펴 보니
112 초대장 2
114 동사무소로 간다
116 거울이면서 벽이면서
117 마르지 않는 옷
118 해설 고봉준 과거와 현재, 그사이에서의 몽유(夢遊)
저자
저자
2013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편두통'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얼굴들이 도착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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