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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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실재이며 그 과정이 전체이다
명확하다. 무려 537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예술은 과정이다’이다. 왜 그런가. 저자 황봉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예술은 생명의 힘에 의해서, 생명의 흐름을 따라서 일어나는 우주의 모든 작용과 현상을 느끼거나, 그리고 이를 이미 개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이 그 내면적인 움직임을 감지하면서, 안과 밖의 느낌들이 서로 상응하면서, 인간이 주체로서 이러한 느낌들을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내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에 의해 시공간에서 형상화된 결과물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작품이란 구체적 형상을 지닌 어떤 실체를 포함하여, 예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다. 과거에는 예술 작품은 형상을 지닌 것만으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현재 모든 인간은 예술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어느 경우에든 예술의 결과물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 결과물은 고정되어 멈춰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과정의 흐름 그 자체일 수 있다. 과정이 실재(reality)이며 그 과정(process)이 전체이다. 인간을 예술적 존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 자체가 예술을 본성의 하나로 거느리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며, 그들의 움직임과 행동이 남겨 놓는 궤적이나 흔적의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다.” 덧붙일 말이 없다.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황봉구의 문학을 포함한 예술론은 방대하나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며,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나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는 ‘자연(自然)’이다. 자연은 “그냥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연은 개념적 실재다.” “자연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궁극적 경계에 자리한 무형의 개념으로서 우주 전체를 조망하며 동시에 내재적으로 포괄하는 그 무엇이다.” 자연은 “자기 이외의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절대자를 가리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인 자체를 설정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하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노자의 말이 이를 보여 준다.” “자연이 빚어내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 이들의 천변만화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개념의 영역을 한껏 좁혀 인위적인 결과물들만으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예술 작품의 범위는 그야말로 광대하다. 그러한 작품들이 대상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심지어는 상상 속으로도 침투하여 예술 작품은 이제 인간이 지닌 본원적인 기능에 의해 산출된 사물로서, 그리고 생명체로서 지구 생활 세계의 어느 곳이든 널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는 일은 정당하다. “예술이 넘쳐 난다. 예술이 곳곳에 시내처럼, 개울처럼, 강물처럼 흐른다. 예술의 구름이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인류가 문화를 창출하고 생활 세계를 가득 메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예술은 인간의 손에 창출되어 거대한 바다를 형성하고 있다. 예술은 바다이며 우주이다. 그 세계의 영역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깊이는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도 형성의 과정에 있으며, 예술은 과정 그 자체로 흐르고 있다. 예술은 그 과정의 흐름에서 인간에게 거꾸로 잉여가치를 부가하며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삶이 풍성하다 함은 그 삶이 끊임없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영원히 빛나는 태양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는 한마디로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든 다른 사람에게 상대적일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예술가도 사람이며 그렇게 불리지 않는 사람도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성체(性體)를 지니는데, 그것은 천연(天然)이며 자연(自然)을 본질로 하고 있음에 공통성을 지닌다. 사람들에게 어떤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술을 빌미로 사람을 각기 상대적으로 구별함은 예술의 본질에 어긋난다. 예술은 바로 인간이 타고나는 천연의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절로 그러함이다.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모든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통쾌하고 장려하다. “‘어슴푸레 멍하니 헤아릴 수 없(惚恍)’는 것이 ‘혼명(混溟)’에서 솟아나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열어 밝혀지며(aufschliessen)’ 그 생김새를 드러낸다.”
명확하다. 무려 537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예술은 과정이다’이다. 왜 그런가. 저자 황봉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예술은 생명의 힘에 의해서, 생명의 흐름을 따라서 일어나는 우주의 모든 작용과 현상을 느끼거나, 그리고 이를 이미 개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이 그 내면적인 움직임을 감지하면서, 안과 밖의 느낌들이 서로 상응하면서, 인간이 주체로서 이러한 느낌들을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내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에 의해 시공간에서 형상화된 결과물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작품이란 구체적 형상을 지닌 어떤 실체를 포함하여, 예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다. 과거에는 예술 작품은 형상을 지닌 것만으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현재 모든 인간은 예술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어느 경우에든 예술의 결과물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 결과물은 고정되어 멈춰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과정의 흐름 그 자체일 수 있다. 과정이 실재(reality)이며 그 과정(process)이 전체이다. 인간을 예술적 존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 자체가 예술을 본성의 하나로 거느리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며, 그들의 움직임과 행동이 남겨 놓는 궤적이나 흔적의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다.” 덧붙일 말이 없다.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황봉구의 문학을 포함한 예술론은 방대하나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며,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나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는 ‘자연(自然)’이다. 자연은 “그냥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연은 개념적 실재다.” “자연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궁극적 경계에 자리한 무형의 개념으로서 우주 전체를 조망하며 동시에 내재적으로 포괄하는 그 무엇이다.” 자연은 “자기 이외의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절대자를 가리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인 자체를 설정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하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노자의 말이 이를 보여 준다.” “자연이 빚어내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 이들의 천변만화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개념의 영역을 한껏 좁혀 인위적인 결과물들만으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예술 작품의 범위는 그야말로 광대하다. 그러한 작품들이 대상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심지어는 상상 속으로도 침투하여 예술 작품은 이제 인간이 지닌 본원적인 기능에 의해 산출된 사물로서, 그리고 생명체로서 지구 생활 세계의 어느 곳이든 널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는 일은 정당하다. “예술이 넘쳐 난다. 예술이 곳곳에 시내처럼, 개울처럼, 강물처럼 흐른다. 예술의 구름이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인류가 문화를 창출하고 생활 세계를 가득 메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예술은 인간의 손에 창출되어 거대한 바다를 형성하고 있다. 예술은 바다이며 우주이다. 그 세계의 영역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깊이는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도 형성의 과정에 있으며, 예술은 과정 그 자체로 흐르고 있다. 예술은 그 과정의 흐름에서 인간에게 거꾸로 잉여가치를 부가하며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삶이 풍성하다 함은 그 삶이 끊임없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영원히 빛나는 태양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는 한마디로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든 다른 사람에게 상대적일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예술가도 사람이며 그렇게 불리지 않는 사람도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성체(性體)를 지니는데, 그것은 천연(天然)이며 자연(自然)을 본질로 하고 있음에 공통성을 지닌다. 사람들에게 어떤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술을 빌미로 사람을 각기 상대적으로 구별함은 예술의 본질에 어긋난다. 예술은 바로 인간이 타고나는 천연의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절로 그러함이다.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모든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통쾌하고 장려하다. “‘어슴푸레 멍하니 헤아릴 수 없(惚恍)’는 것이 ‘혼명(混溟)’에서 솟아나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열어 밝혀지며(aufschliessen)’ 그 생김새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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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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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pp.400-401.
우주는 하나의 생김새다. 그것은 무수한 생김새들을 거느린다. 우주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분신이되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우주와 동격이다. 본원이고 으뜸인 본생은 하나다. 본생은 개념적 실재요, 실체다. 그것은 생명이다. 하나인 생명이다. 모든 생김새들은 이에서 비롯된다. 우주 현상에는 생명을 지닌 구체적 형상인 생명체들이 넘쳐 난다. 예술은 생명의 흐름이며 그것이 매듭지어져 드러난 것이 예술 작품이다. 작품은 하나의 생김새다. 그 생김새는 모양새와 짜임새를 거느린다. 생김새는 본체요, 모양새와 짜임새는 본질이거나 속성이다. 굳이 말해서 모양새는 형식에 비견되고 짜임새는 내용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모양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변적이다. 그것은 흐른다. 우리가 작품을 흐름의 한곳에 일시적으로 매듭지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짜임새는 엄격히 말해서 내용이 아니다. 짜임새는 '-결', 또는 '-새'다. 위에서 언급한 시김새, 추임새도 모두 짜임새다. 내용은 형식을 이루는 바탕이라 하지만 하나의 대상이 내용과 형식으로 양분되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양새와 짜임새 그리고 생김새는 이미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모양새와 짜임새는 하나다. 짜임새가 있어야 모양새가 가능하다. 모양새는 다른 측면에서 짜임새를 보여 준다. 이들이 어떤 선후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병행해서 공존한다. 이는 필연이다. 분리가 아니라 본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생김새다.
pp.436-437.
언어는 기본적으로 차이를 읽는다. 그 차이는 도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동일성의 차이가 아니라, 도가 드러내는 우주 현상의 사물들이 보여 주는 현실적인 차이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제일(齊一)의 사물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이것저것 등의 차이다. 제일의 의미는 도로서, 또는 '하나'로서 모든 사물은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 도는 자연이므로(道法自然),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원인을 가지며 그 드러나는 모습은 천양 각색으로 서로 다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언어는 구분을 한다. 언어가 비동일성의 만물과 현상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떤 인식을 필요로 한다. 언어의 발전은 한편으로 미세화, 분석과 구별을 요구한다. 그것은 필연이다. 언어가 지니는 어휘가 다양한 것은 그만큼 분석을 통해 차이가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언제나 일정하지가 않다. 언어의 외양은 끊임없이 변하며, 그것들이 실어 나르는 의미도 또한 삭감이나 제거 그리고 덧붙임이나 다층화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것은 살아 움직인다. 불법(佛法)에서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언어에도 적용된다. 언어의 이러한 특성은 도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사물이나 현상은 도를 따라 제일하지만, 다시 말해서 궁극적인 도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하나'이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드러남은 일정하지 않다. 도는 언제나 흐르기 때문이며 그 움직임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음이다. 언어는 도의 쓰임으로써 하나의 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덕의 의미는 본질에 따르는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사유가 언어를 통해, 진리나 실체를 인식하려 하지만 언제나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바로 사유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언어의 본질이 이미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p.451-452.
시상은 열려 있다.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여 환하다. 시인은 하나의 개체인 생명체로 이를 전일적으로 체화(體化)하고 있다. 시상과 시인은 변화하며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는 지정된 형식이나 체계가 없다. 뿌리도 없다. 본받아야 할 어떤 규범이나 형식도 선행하지 않는다. 그것의 본질은 그냥 느낌이다. 적연부동하다가 일어나는 어떤 느낌이다. 그것은 혼돈이라는 우주의 시원에서부터 무한한 양태로 발생하고 있는 영속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원초적 힘을 지닌다. 바로 신(神)과 정(精)이기도 하다. 인간의 경험적 느낌은 그것에서부터 일부만을 취할 뿐이다. 더구나 느낌이 순수성을 상실한 언어로 표현될 때 그것은 한계를 지닌다. 느낌의 표현은 극히 일부만을 비출 뿐이다. 우리가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시는 이러한 모호함을 먹고 산다. 시는 그 자체가 상이다. 시를 만날 때, 우리는 시어들이 가리고 있는, 깊고 은밀하게 덮여 있는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것을 시경(詩境)이라고 부른다. 시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환한 모습으로 그를 반기는 시를 전체로 받아들이면서 시인은 신(神)을 느낀다. 시인은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한 작업이 바로 신명(神明)이다. 신이 나서 이를 드러냄이 바로 신명이다. 시 짓기는 바로 이러한 신명에 다름이 아니다. 시인은 신명이 날 때, 시를 짓는다.
pp.469-470.
진정한 평론은 그 자체로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은 생명의 흐름을 표현한다. 낳고 낳음을 이어 가는 생명의 흐름은 언제나 뜨겁고 강렬하다. 그것은 불꽃으로 타오르며 빛을 뿜는다. 그 불꽃은 무한한 양태를 갖는다. 하나의 불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불꽃들이 있다. 예술가가 그중의 하나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이때의 발견은 주체 의식을 지닌 작가가 불꽃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불꽃에는 객체와 주체가 없다. 작가가 불꽃이 된다. 불꽃이 된 작가는 그때 생명처럼 그냥 열려 있다. 이 열려 있는 불꽃 작가가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가는 그 어떤 것도 규정할 수 없다. 그냥 '되기'일 뿐이다. 춤이나 음악 그리고 회화나 문학은 어디까지나 사후에 임의적으로 선택되어 이루어지는 모습일 뿐이다. '되기' 능력과 감응성이 유달리 뛰어난 평론가 역시 이러한 불꽃을 동시에 인식하고, 그 자신의 마음에 내재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연결하여 자신만의 생생한 평론을 만든다. 이것이 평론가의 진정한 임무다. 이러한 작업은 어느 특정 예술 작품을 빗대어 평론이라는 그 자신의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p.499.
예술은 정신의 작용이 이루어 가는 과정이며, 예술 작품은 그 결과물이다. 평론가는 이 명제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평론과 평론가는 무엇인가를 해석하고 있다. 그 해석의 기준으로 이념이 아닌 본생의 정신을 거론하고 있다. 정신은 생명의 힘과 그 움직임이다. 예술 작품의 평가의 가장 근원적인 기준으로 생명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예술은 무엇보다 신명(神明)을 표출하여야 함이다. 신명은 생명의 움직임이 밝게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에 있어 가치 평가의 기준은 한 작품에 생명의 기운, 신명 또는 생명의 약동이 드러나는 강도의 크기에 달려 있다.
pp.518-519.
평론가는 예술가이다. 평론은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평론가는 예술 세계에서 무수한 예술 작품들을 만난다. 그 작품을 빚어낸 작가들은 고인도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평론가는 이들 모두와 대면한다. 망자와 산자를 모두 맞이함이다. 이때 평론가는 바로 무당이 된다. 무당이지만 세습무가 아니라 강신무(降神巫)가 된다. 진정한 평론가는 세습무처럼 가계를 이어 굿의 형식에 정통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내림과 신들림을 통해 무(巫)가 되어야 함이다.
pp.400-401.
우주는 하나의 생김새다. 그것은 무수한 생김새들을 거느린다. 우주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분신이되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우주와 동격이다. 본원이고 으뜸인 본생은 하나다. 본생은 개념적 실재요, 실체다. 그것은 생명이다. 하나인 생명이다. 모든 생김새들은 이에서 비롯된다. 우주 현상에는 생명을 지닌 구체적 형상인 생명체들이 넘쳐 난다. 예술은 생명의 흐름이며 그것이 매듭지어져 드러난 것이 예술 작품이다. 작품은 하나의 생김새다. 그 생김새는 모양새와 짜임새를 거느린다. 생김새는 본체요, 모양새와 짜임새는 본질이거나 속성이다. 굳이 말해서 모양새는 형식에 비견되고 짜임새는 내용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모양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변적이다. 그것은 흐른다. 우리가 작품을 흐름의 한곳에 일시적으로 매듭지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짜임새는 엄격히 말해서 내용이 아니다. 짜임새는 '-결', 또는 '-새'다. 위에서 언급한 시김새, 추임새도 모두 짜임새다. 내용은 형식을 이루는 바탕이라 하지만 하나의 대상이 내용과 형식으로 양분되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양새와 짜임새 그리고 생김새는 이미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모양새와 짜임새는 하나다. 짜임새가 있어야 모양새가 가능하다. 모양새는 다른 측면에서 짜임새를 보여 준다. 이들이 어떤 선후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병행해서 공존한다. 이는 필연이다. 분리가 아니라 본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생김새다.
pp.436-437.
언어는 기본적으로 차이를 읽는다. 그 차이는 도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비동일성의 차이가 아니라, 도가 드러내는 우주 현상의 사물들이 보여 주는 현실적인 차이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제일(齊一)의 사물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이것저것 등의 차이다. 제일의 의미는 도로서, 또는 '하나'로서 모든 사물은 하나라는 이야기다. 그 도는 자연이므로(道法自然),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원인을 가지며 그 드러나는 모습은 천양 각색으로 서로 다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언어는 구분을 한다. 언어가 비동일성의 만물과 현상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떤 인식을 필요로 한다. 언어의 발전은 한편으로 미세화, 분석과 구별을 요구한다. 그것은 필연이다. 언어가 지니는 어휘가 다양한 것은 그만큼 분석을 통해 차이가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언제나 일정하지가 않다. 언어의 외양은 끊임없이 변하며, 그것들이 실어 나르는 의미도 또한 삭감이나 제거 그리고 덧붙임이나 다층화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것은 살아 움직인다. 불법(佛法)에서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언어에도 적용된다. 언어의 이러한 특성은 도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사물이나 현상은 도를 따라 제일하지만, 다시 말해서 궁극적인 도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하나'이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드러남은 일정하지 않다. 도는 언제나 흐르기 때문이며 그 움직임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음이다. 언어는 도의 쓰임으로써 하나의 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덕의 의미는 본질에 따르는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서구의 사유가 언어를 통해, 진리나 실체를 인식하려 하지만 언제나 난관에 부딪히는 것은 바로 사유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언어의 본질이 이미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pp.451-452.
시상은 열려 있다.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여 환하다. 시인은 하나의 개체인 생명체로 이를 전일적으로 체화(體化)하고 있다. 시상과 시인은 변화하며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는 지정된 형식이나 체계가 없다. 뿌리도 없다. 본받아야 할 어떤 규범이나 형식도 선행하지 않는다. 그것의 본질은 그냥 느낌이다. 적연부동하다가 일어나는 어떤 느낌이다. 그것은 혼돈이라는 우주의 시원에서부터 무한한 양태로 발생하고 있는 영속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원초적 힘을 지닌다. 바로 신(神)과 정(精)이기도 하다. 인간의 경험적 느낌은 그것에서부터 일부만을 취할 뿐이다. 더구나 느낌이 순수성을 상실한 언어로 표현될 때 그것은 한계를 지닌다. 느낌의 표현은 극히 일부만을 비출 뿐이다. 우리가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시는 이러한 모호함을 먹고 산다. 시는 그 자체가 상이다. 시를 만날 때, 우리는 시어들이 가리고 있는, 깊고 은밀하게 덮여 있는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그것을 시경(詩境)이라고 부른다. 시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환한 모습으로 그를 반기는 시를 전체로 받아들이면서 시인은 신(神)을 느낀다. 시인은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한 작업이 바로 신명(神明)이다. 신이 나서 이를 드러냄이 바로 신명이다. 시 짓기는 바로 이러한 신명에 다름이 아니다. 시인은 신명이 날 때, 시를 짓는다.
pp.469-470.
진정한 평론은 그 자체로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은 생명의 흐름을 표현한다. 낳고 낳음을 이어 가는 생명의 흐름은 언제나 뜨겁고 강렬하다. 그것은 불꽃으로 타오르며 빛을 뿜는다. 그 불꽃은 무한한 양태를 갖는다. 하나의 불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불꽃들이 있다. 예술가가 그중의 하나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해 내는 과정이다. 이때의 발견은 주체 의식을 지닌 작가가 불꽃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불꽃에는 객체와 주체가 없다. 작가가 불꽃이 된다. 불꽃이 된 작가는 그때 생명처럼 그냥 열려 있다. 이 열려 있는 불꽃 작가가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가는 그 어떤 것도 규정할 수 없다. 그냥 '되기'일 뿐이다. 춤이나 음악 그리고 회화나 문학은 어디까지나 사후에 임의적으로 선택되어 이루어지는 모습일 뿐이다. '되기' 능력과 감응성이 유달리 뛰어난 평론가 역시 이러한 불꽃을 동시에 인식하고, 그 자신의 마음에 내재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연결하여 자신만의 생생한 평론을 만든다. 이것이 평론가의 진정한 임무다. 이러한 작업은 어느 특정 예술 작품을 빗대어 평론이라는 그 자신의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p.499.
예술은 정신의 작용이 이루어 가는 과정이며, 예술 작품은 그 결과물이다. 평론가는 이 명제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평론과 평론가는 무엇인가를 해석하고 있다. 그 해석의 기준으로 이념이 아닌 본생의 정신을 거론하고 있다. 정신은 생명의 힘과 그 움직임이다. 예술 작품의 평가의 가장 근원적인 기준으로 생명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예술은 무엇보다 신명(神明)을 표출하여야 함이다. 신명은 생명의 움직임이 밝게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에 있어 가치 평가의 기준은 한 작품에 생명의 기운, 신명 또는 생명의 약동이 드러나는 강도의 크기에 달려 있다.
pp.518-519.
평론가는 예술가이다. 평론은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평론가는 예술 세계에서 무수한 예술 작품들을 만난다. 그 작품을 빚어낸 작가들은 고인도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평론가는 이들 모두와 대면한다. 망자와 산자를 모두 맞이함이다. 이때 평론가는 바로 무당이 된다. 무당이지만 세습무가 아니라 강신무(降神巫)가 된다. 진정한 평론가는 세습무처럼 가계를 이어 굿의 형식에 정통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신내림과 신들림을 통해 무(巫)가 되어야 함이다.
목차
목차
005 책머리에
009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079 열린 예술과 닫힌 예술
125 예술 작품은 어떻게 생겼을까-생김새, 패턴과 문리(文理)
1. 들어가며
2. 느낌과 상(象)
3. 생김새, 짜임새 그리고 모양새
4. 패턴
5. 문리(文理)
6. 생김새, 패턴, 문리
402 상(象)과 도추(道樞)-언어와 사유 방식, 그리고 시어(詩語)
1. 상(象)과 언어
2.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언어
3. '-적(的)'
4. 도추(道樞)
5. 언어와 사유 방식-들뢰즈의 내재성
6. 언어로서의 시어(詩語)
455 예술 평론가에 대하여
009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079 열린 예술과 닫힌 예술
125 예술 작품은 어떻게 생겼을까-생김새, 패턴과 문리(文理)
1. 들어가며
2. 느낌과 상(象)
3. 생김새, 짜임새 그리고 모양새
4. 패턴
5. 문리(文理)
6. 생김새, 패턴, 문리
402 상(象)과 도추(道樞)-언어와 사유 방식, 그리고 시어(詩語)
1. 상(象)과 언어
2. 원형이정(元亨利貞)과 언어
3. '-적(的)'
4. 도추(道樞)
5. 언어와 사유 방식-들뢰즈의 내재성
6. 언어로서의 시어(詩語)
455 예술 평론가에 대하여
저자
저자
황봉구
1948년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났다.
시집 〈새끼 붕어가 죽은 어느 추운 날〉 〈생선가게를 위한 두 개의 변주〉 〈물어뜯을 수도 없는 숨소리〉 〈넘나드는 사잇길에서〉, 짧은 산문집 〈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여행기 〈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 〈명나라 뒷골목 60일 간 헤매기〉, 음악 산문집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 〈소리의 늪〉, 회화 산문집 〈그림의 숲〉, 예술철학 에세이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1권 정신에 관하여〉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2권 생명에 관하여〉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3권 예술에 관하여〉, 산문집 〈바람의 그림자〉, 예술 비평집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를 썼다.
시집 〈새끼 붕어가 죽은 어느 추운 날〉 〈생선가게를 위한 두 개의 변주〉 〈물어뜯을 수도 없는 숨소리〉 〈넘나드는 사잇길에서〉, 짧은 산문집 〈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여행기 〈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 〈명나라 뒷골목 60일 간 헤매기〉, 음악 산문집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 〈소리의 늪〉, 회화 산문집 〈그림의 숲〉, 예술철학 에세이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1권 정신에 관하여〉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2권 생명에 관하여〉 〈생명의 정신과 예술-제3권 예술에 관하여〉, 산문집 〈바람의 그림자〉, 예술 비평집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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