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 사람
역사가 된 그들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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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어떤 마음으로 「사기」를 집필했을까
'광개토왕비문'에 대한 논쟁은 왜 계속될까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의 일기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역사가 된 그들의 문장을 읽다
역사가는 무수한 글을 마주한다. 기록을 기반으로 하는 학의 연구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역사가가 마주한 글 모두가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세월이라고 할 만한 시간 동안 역사상의 이런저런 글을 읽은 역사가인 저자가 역사가 되었다고 꼽은 문장들을 소개한다. 시대와 지역, 글의 성격도 다르지만, 그 글들은 모두 고난을 극복하고 사실을 추구한 문장들이고, 그런 점에서 진실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져 저자의 마음에 남았다.
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마천은 왜 궁형을 견디면서까지 「사기」를 집필했는지, '광개토왕비문 신묘년 조'에 대한 논쟁을 넘어 이제는 어떻게 새로운 과제의 탐구로 나아가야 할지, 백의종군이 시작된 날 이순신이 일기에 쓴 것은 결국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궁형을 이겨낸 역사가의 소명 의식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일정한 나이를 넘은 사람으로 사마천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위로는 헌원부터 아래로는 당대 한무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0표, 12본기, 8서, 30세가, 70열전 등 모두 130편을 저술해 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독자적인 학설을 이루려고 한, 그의 「사기」는 불멸의 업적으로 역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불멸의 업적이 궁형이라는 참혹한 상처를 이겨낸 결과라는 것은, 그 업적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사마천에게 궁형은 하루에도 아홉 번씩 창자를 뒤틀리게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아득히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고 집을 나서면 갈 곳을 모르게 하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에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는 치욕이었다.
무엇이 그가 이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집필하게 했는지는 그의 감정을 담은 유일한 글인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알 수 있다. 그가 노비나 천첩도 할 수 있는 자결을 하지 않고, 가만히 참고 구차하게 살면서 분뇨가 뒹구는 곳에 갇혀서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지면 후세에 그의 글과 뜻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기」의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궁형을 당했는데, 그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그 책을 완성해 명산에 감춰뒀다가 적합한 사람에게 전해 알려진다면 앞서의 치욕을 보상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치욕을 이기고 혹은 치욕을 안고 불멸의 업적을 이룬 것이다.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는 역사가 사마천의 소명 의식이 담겨 있고, 그로써 역사의 글이 되었다.
배송지의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본문과 맞먹는 주석을 단 역사가의 연구 태도
연구서의 수준은 주석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견고한 본문 한 줄을 쓰려면 수없이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며, 그런 주석을 정리하고 모으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사 수업을 받은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한국 고대사의 핵심 자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 실려있는 진수의 「삼국지」는 사학사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배송지가 단 주석 때문이다. 배송지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국 역사에 관련된 230여 종의 자료를 채록해 36만 자의 본문과 맞먹는 32만 자의 주석을 완성했고, 그 주석은 완성된 직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역사가 되었다.
배송지 주를 역사가 되게 한 그의 연구 태도는 주석의 편찬을 지시한 남조의 송 태조 문제에게 올린 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진수가 서술하지 않은 일이라도 기록해야 하는 것이면 빠뜨리지 않고 채록해 그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같은 일을 서술한 것인데도 서로 어긋나고 뒤섞였거나 사건이 본래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다 실어 서로 다른 견해를 남겨뒀다. 오류가 분명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모두 바로잡고 그 잘못을 비판했다. 당시의 사실에 대한 서술의 타당성과 진수의 작은 오류는 그의 생각으로 논의하고 변별하기도 했다.
다케다 유키오의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체계와 밀도를 모두 갖춘 역사 연구서의 모범
하나의 사료, 그것도 2천 자도 안 되는 비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의 수많은 석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하고 논쟁한 학문적 장관이 있다. 다케다 유키오는 '광개토왕비'를 둘러싼 이 학문적 장관에 일생을 바친 역사가다.
그가 일평생을 바친 연구를 담았음에도 『서설』이라 이름 붙인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은 모든 연구서의 목표를 성취한 글로 역사에 남았다.
『서설』은 체계와 밀도 모두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서장·종장과 13장의 본문으로 이뤄진 구성에서 '광개토왕비문(이하 '비문')'과 무관한 것은 한 장밖에 없을 정도로 그 책은 '비문'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은 뒤 그것과 연결되고 거기서 파생된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한다. 그 주제들은 '비문'의 주요 사항은 물론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고구려의 왕계와 국제관계 등까지 널리 걸쳐 있다. 핵심적 문제인 '신묘년 조'에 관련된 부분은 '7장 신묘년 조 기사의 재검토'인데, 『서설』의 구성에서 7장은 그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다 유키오 못지않은 체계와 밀도로, 비문 신묘년 조의 '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해석과 사실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하고, 비문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을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제안한다.
한유의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과 교유
당송 8대가의 한 명으로 형식적이고 화려한 변려문을 개혁해 질박하고 본질적인 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문운동'을 일으킨 한유에게, 문학은 표현의 미학이나 형식의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이념과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였다.
세계 제국으로 불린 당이 절정의 융성기를 지나 긴 쇠락과 혼란으로 접어든 전환기에 사조를 바꾸거나 규정한 움직임을 주도한 인물의 삶은 평안하기 쉽지 않았다. 평안을 추구해서는 그런 움직임을 이끌 수도 없고 그러려고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한유는 현실에 결연히 맞서고 과감하게 발언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역사가 되었다.
한유는 그와 교유하던 맹동야에게 보낸 편지 「맹동야를 보내며」에서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우는데, 하늘이 앞으로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해 나라에서 크게 울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몸을 곤궁하고 굶주리게 하며 그 마음을 근심스럽게 해 스스로 자신의 불행함을 울게 할 것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윗자리에 있은들 어찌 기쁠 것이 있으며 아랫자리에 있은들 어찌 슬플 것이 있겠느냐며 평정을 얻지 못해 우는 자신과 벗의 삶을 문장에 담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오직 사실에 입각한 삶과 오직 사실에 입각한 글
『난중일기』는 군인이, 그것도 급박한 위기의 거대한 전쟁을 이겨내며 쓴 진중일기이다. 그것에는 날씨·일과·건강·회의·전황 같은 내용이 대부분으로, 건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597년 4월 1일, 우리가 잘 아는 압송과 고문을 거쳐 백의종군이 시작된 날의 이순신의 일기 또한 한 자락의 감상이나 감정도 없다는 점은, 그는 오직 사실에 입각해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승리의 원동력과 위대한 인격은 거기 있다는 평가가 정말 정확함을 보여주며, 그의 삶과 그의 글이 역사임을 보여준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디아스포라의 이별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은 경성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3·1운동에 참가했고 일제의 검거를 피해 독일로 망명했다. 거기서 어머니·아내·자녀 등 아무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설령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네 길을 가거라!" 살면서 이 첫 문장을 발설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인데, 이미륵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륵의 일대기는 그래서 깊고 슬픈 이야기, 깊고 슬픈 이별의 이야기다.
이 이별의 이야기 끝에서, 가족과 조국을 떠나 그야말로 낯설고 물선 만리타향에서 긴 세월 그리움과 외로움과 어려움을 헤쳐가며 살면서도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고, 역사에 이야기를 남겼다.
글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
중국 한 무제 시대에서 20세기 일본에 걸치고, 옛 문헌에서 연구서와 소설에 이르는 이 문장들에서 이렇듯 우리는 '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을 발견한다. 저자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여섯 편의 글을 마주했고, 역사가 된 문장들로 꼽았다.
"사람은 본래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고 사마천은 썼다. 그를 비롯해 이 책이 다룬 글을 쓴 사람은 모두 "태산보다 무거운" 삶을 살며 "태산보다 무거운"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태산보다 무겁게" 남기를 바란다.
'광개토왕비문'에 대한 논쟁은 왜 계속될까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의 일기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역사가 된 그들의 문장을 읽다
역사가는 무수한 글을 마주한다. 기록을 기반으로 하는 학의 연구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역사가가 마주한 글 모두가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세월이라고 할 만한 시간 동안 역사상의 이런저런 글을 읽은 역사가인 저자가 역사가 되었다고 꼽은 문장들을 소개한다. 시대와 지역, 글의 성격도 다르지만, 그 글들은 모두 고난을 극복하고 사실을 추구한 문장들이고, 그런 점에서 진실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져 저자의 마음에 남았다.
이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마천은 왜 궁형을 견디면서까지 「사기」를 집필했는지, '광개토왕비문 신묘년 조'에 대한 논쟁을 넘어 이제는 어떻게 새로운 과제의 탐구로 나아가야 할지, 백의종군이 시작된 날 이순신이 일기에 쓴 것은 결국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궁형을 이겨낸 역사가의 소명 의식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일정한 나이를 넘은 사람으로 사마천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위로는 헌원부터 아래로는 당대 한무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0표, 12본기, 8서, 30세가, 70열전 등 모두 130편을 저술해 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독자적인 학설을 이루려고 한, 그의 「사기」는 불멸의 업적으로 역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불멸의 업적이 궁형이라는 참혹한 상처를 이겨낸 결과라는 것은, 그 업적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사마천에게 궁형은 하루에도 아홉 번씩 창자를 뒤틀리게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아득히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고 집을 나서면 갈 곳을 모르게 하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에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는 치욕이었다.
무엇이 그가 이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집필하게 했는지는 그의 감정을 담은 유일한 글인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알 수 있다. 그가 노비나 천첩도 할 수 있는 자결을 하지 않고, 가만히 참고 구차하게 살면서 분뇨가 뒹구는 곳에 갇혀서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에 다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지면 후세에 그의 글과 뜻이 전해지지 않을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기」의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궁형을 당했는데, 그는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에, 그 책을 완성해 명산에 감춰뒀다가 적합한 사람에게 전해 알려진다면 앞서의 치욕을 보상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치욕을 이기고 혹은 치욕을 안고 불멸의 업적을 이룬 것이다.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에는 역사가 사마천의 소명 의식이 담겨 있고, 그로써 역사의 글이 되었다.
배송지의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본문과 맞먹는 주석을 단 역사가의 연구 태도
연구서의 수준은 주석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견고한 본문 한 줄을 쓰려면 수없이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며, 그런 주석을 정리하고 모으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사 수업을 받은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한국 고대사의 핵심 자료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 실려있는 진수의 「삼국지」는 사학사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배송지가 단 주석 때문이다. 배송지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국 역사에 관련된 230여 종의 자료를 채록해 36만 자의 본문과 맞먹는 32만 자의 주석을 완성했고, 그 주석은 완성된 직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역사가 되었다.
배송지 주를 역사가 되게 한 그의 연구 태도는 주석의 편찬을 지시한 남조의 송 태조 문제에게 올린 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진수가 서술하지 않은 일이라도 기록해야 하는 것이면 빠뜨리지 않고 채록해 그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같은 일을 서술한 것인데도 서로 어긋나고 뒤섞였거나 사건이 본래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다 실어 서로 다른 견해를 남겨뒀다. 오류가 분명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모두 바로잡고 그 잘못을 비판했다. 당시의 사실에 대한 서술의 타당성과 진수의 작은 오류는 그의 생각으로 논의하고 변별하기도 했다.
다케다 유키오의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체계와 밀도를 모두 갖춘 역사 연구서의 모범
하나의 사료, 그것도 2천 자도 안 되는 비석을 대상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의 수많은 석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하고 논쟁한 학문적 장관이 있다. 다케다 유키오는 '광개토왕비'를 둘러싼 이 학문적 장관에 일생을 바친 역사가다.
그가 일평생을 바친 연구를 담았음에도 『서설』이라 이름 붙인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은 모든 연구서의 목표를 성취한 글로 역사에 남았다.
『서설』은 체계와 밀도 모두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서장·종장과 13장의 본문으로 이뤄진 구성에서 '광개토왕비문(이하 '비문')'과 무관한 것은 한 장밖에 없을 정도로 그 책은 '비문'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은 뒤 그것과 연결되고 거기서 파생된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한다. 그 주제들은 '비문'의 주요 사항은 물론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고구려의 왕계와 국제관계 등까지 널리 걸쳐 있다. 핵심적 문제인 '신묘년 조'에 관련된 부분은 '7장 신묘년 조 기사의 재검토'인데, 『서설』의 구성에서 7장은 그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다 유키오 못지않은 체계와 밀도로, 비문 신묘년 조의 '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해석과 사실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하고, 비문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을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제안한다.
한유의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과 교유
당송 8대가의 한 명으로 형식적이고 화려한 변려문을 개혁해 질박하고 본질적인 고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문운동'을 일으킨 한유에게, 문학은 표현의 미학이나 형식의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이념과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였다.
세계 제국으로 불린 당이 절정의 융성기를 지나 긴 쇠락과 혼란으로 접어든 전환기에 사조를 바꾸거나 규정한 움직임을 주도한 인물의 삶은 평안하기 쉽지 않았다. 평안을 추구해서는 그런 움직임을 이끌 수도 없고 그러려고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한유는 현실에 결연히 맞서고 과감하게 발언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역사가 되었다.
한유는 그와 교유하던 맹동야에게 보낸 편지 「맹동야를 보내며」에서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우는데, 하늘이 앞으로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해 나라에서 크게 울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몸을 곤궁하고 굶주리게 하며 그 마음을 근심스럽게 해 스스로 자신의 불행함을 울게 할 것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윗자리에 있은들 어찌 기쁠 것이 있으며 아랫자리에 있은들 어찌 슬플 것이 있겠느냐며 평정을 얻지 못해 우는 자신과 벗의 삶을 문장에 담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오직 사실에 입각한 삶과 오직 사실에 입각한 글
『난중일기』는 군인이, 그것도 급박한 위기의 거대한 전쟁을 이겨내며 쓴 진중일기이다. 그것에는 날씨·일과·건강·회의·전황 같은 내용이 대부분으로, 건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597년 4월 1일, 우리가 잘 아는 압송과 고문을 거쳐 백의종군이 시작된 날의 이순신의 일기 또한 한 자락의 감상이나 감정도 없다는 점은, 그는 오직 사실에 입각해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승리의 원동력과 위대한 인격은 거기 있다는 평가가 정말 정확함을 보여주며, 그의 삶과 그의 글이 역사임을 보여준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디아스포라의 이별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은 경성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3·1운동에 참가했고 일제의 검거를 피해 독일로 망명했다. 거기서 어머니·아내·자녀 등 아무 가족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설령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네 길을 가거라!" 살면서 이 첫 문장을 발설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인데, 이미륵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륵의 일대기는 그래서 깊고 슬픈 이야기, 깊고 슬픈 이별의 이야기다.
이 이별의 이야기 끝에서, 가족과 조국을 떠나 그야말로 낯설고 물선 만리타향에서 긴 세월 그리움과 외로움과 어려움을 헤쳐가며 살면서도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고, 역사에 이야기를 남겼다.
글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
중국 한 무제 시대에서 20세기 일본에 걸치고, 옛 문헌에서 연구서와 소설에 이르는 이 문장들에서 이렇듯 우리는 '고난을 이겨낸 사실의 문장들'을 발견한다. 저자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여섯 편의 글을 마주했고, 역사가 된 문장들로 꼽았다.
"사람은 본래 한 번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고 사마천은 썼다. 그를 비롯해 이 책이 다룬 글을 쓴 사람은 모두 "태산보다 무거운" 삶을 살며 "태산보다 무거운" 성취를 이루었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태산보다 무겁게"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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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책을 내면서 5
바닥까지 내려간 슬픔과 분노
-사마천,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11
한 무제의 시대 36
사마천에 관련된 자료들 37
출생과 20대의 긴 여행 39
아버지의 별세 42
이릉 사건과 궁형 46
『사기』를 완성하다 56
「답신」을 생각해 본다 60
본문을 뛰어넘은 주석
-배송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65
주석자 배송지의 삶 71
주석의 특징과 평가 73
주석의 사례들 75
남을 아는 것이 먼저다 82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운다
-한유,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87
세계 제국의 위용 99
절도사의 시대 101
환관의 전횡 105
두 살 때 고아가 되다 108
큰형과 형수 아래서 자라다 109
학문과 문학을 공부하다 112
네 번 만에 급제하다 114
처음 관직에 나아가다 118
첫 번째 좌천 119
10년의 낙양 생활 124
회서 정벌에 참여하다 131
두 번째 좌천 133
영예를 누리고 별세하다 139
시의 감옥에 갇힌 죄수 맹교 142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의 일기
-『난중일기』 정유년에서 153
이순신을 변호한 정탁의 상소 160
길고 슬픈 이별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171
내 마음의 이별 177
이미륵의 삶 179
광개토왕비 연구에 바친 일생
-다케다 유키오,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185
나라의 위기에 직접 출전한 국왕-광개토왕비문의 주요 내용을 검토한다 196
비를 세운 목적과 비의 성격 198
'비문'의 구성과 특징 200
'신묘년 조'의 성격과 구조 204
'신묘년 조'의 해석-'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207
쟁점과 논거들 212
'신묘년 조'의 사실성-과장인가, 허구인가 216
기억을 처리하는 방법 222
책을 마치며 231
참고문헌 235
바닥까지 내려간 슬픔과 분노
-사마천, 「임안에게 보내는 답신報任安書」 11
한 무제의 시대 36
사마천에 관련된 자료들 37
출생과 20대의 긴 여행 39
아버지의 별세 42
이릉 사건과 궁형 46
『사기』를 완성하다 56
「답신」을 생각해 본다 60
본문을 뛰어넘은 주석
-배송지, 「삼국지 주를 올리는 표문上三國志注表」 65
주석자 배송지의 삶 71
주석의 특징과 평가 73
주석의 사례들 75
남을 아는 것이 먼저다 82
모든 사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운다
-한유, 「맹동야를 보내며送孟東野序」 87
세계 제국의 위용 99
절도사의 시대 101
환관의 전횡 105
두 살 때 고아가 되다 108
큰형과 형수 아래서 자라다 109
학문과 문학을 공부하다 112
네 번 만에 급제하다 114
처음 관직에 나아가다 118
첫 번째 좌천 119
10년의 낙양 생활 124
회서 정벌에 참여하다 131
두 번째 좌천 133
영예를 누리고 별세하다 139
시의 감옥에 갇힌 죄수 맹교 142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의 일기
-『난중일기』 정유년에서 153
이순신을 변호한 정탁의 상소 160
길고 슬픈 이별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171
내 마음의 이별 177
이미륵의 삶 179
광개토왕비 연구에 바친 일생
-다케다 유키오, 『고구려사와 동아시아-'광개토왕비' 연구 서설』 185
나라의 위기에 직접 출전한 국왕-광개토왕비문의 주요 내용을 검토한다 196
비를 세운 목적과 비의 성격 198
'비문'의 구성과 특징 200
'신묘년 조'의 성격과 구조 204
'신묘년 조'의 해석-'왜 주도형'과 '고구려 주도형' 207
쟁점과 논거들 212
'신묘년 조'의 사실성-과장인가, 허구인가 216
기억을 처리하는 방법 222
책을 마치며 231
참고문헌 235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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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 1970년 서울 출생.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다. 고려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조선전기 정치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에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사람과 그의 글」, 「민음 한국사-15세기」(공저), 번역서에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유형원과 조선후기」(제임스 팔레), 「조선왕조의 기원」(존 던컨), 「무신과 문신」(에드워드 슐츠),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김선주),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김기혁), 「한국전쟁의 기원」 1·2(브루스 커밍스), 『일본의 조선 강점』(힐러리 콘로이), 『만선사 연구』 1·2·3(이케우치 히로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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