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이 책은 기생에 대한 편견을 통렬히 날려버린다. 흔히 기생은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라고 비하될 뿐 아니라,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를 통틀어 황진이나 논개 같은 몇몇의 이름만 세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생의 전성시대는 일제강점기 초였다. 그 특별한 시기에 그들은 시대를 앞서 걸은 신여성이자, 예술가, 연예인이었다. 가장 먼저 머리를 깎은 여성도, 진정한 사랑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 목숨을 던진 이들도 기생이었다. 한때 최고의 인기가수도, 배우도, 명창도 모두 기생 출신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기생 가운데는 만주로 가 유일한 여성 출신 의열단원이 된 투사도 있으며, 기생 출신의 주산월, 정금죽 등은 나중에 여성운동의 정점에 서게 된다. 소수만 그런 게 아니다. 그게 시대정신이었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생들은 예인으로, 지사로서 시대적 소임을 다하였다. 이 책은 기생들이 직접 쓴 글을 통해 20세기 초의 기생사회를 생생히 복원해준다. 기생들이 직접 발행한 잡지 《장한》에 실린 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실린 주요한 글을 발굴 수록하였다. 기생의 문제를 사회제도의 모순과 계급적 관점에서 바로보는 박옥화의 글과 여성을 노리개 취급하는 남성들을 자신의 성적 포로로 만들겠다며 복수를 다짐하는 화중선의 글 등 도발적인 글은 오늘의 남성들까지 오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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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23년 《시사평론》에 실린 화중선의 글은 오늘에 읽어도 남성들의 몸이 오싹해질 내용이다. 여성을 노리개 취급하는 남성들에게 성적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은 기생이 되었으며, 남성들이 자신의 신코에 입을 맞추고 발바닥을 핥아가면서 자진하여 자신의 포로가 되게 하겠다는 복수전사를 자처한다.
이 같은 글은 기생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날려버린다. 흔히 기생은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라고 비하될 뿐 아니라,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를 통틀어 황진이나 논개 같은 몇몇의 이름만 세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생의 전성시대는 일제강점기 초였다. 근대 사회에 들면서 신분제의 철폐와 관기 제도의 해체로 기생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생계의 길을 찾아야 했던 기생들은 조합을 만들고, 아울러 전통 기예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누구든지 기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낙양의 명기가 되기 위해 기생의 길에 들어서는 소녀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더불어 기생놀음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전국의 한량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교방과 같은 기생학교가 설립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기생학교는 일종의 연예기획사 같은 존재였다. 전통적으로 천민 신분이면서 교양인이자 예인이기도 했던 모순적인 존재로서 기생들은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특별한 시기에 그들은 시대를 앞서 걸은 신여성이자, 예술가, 연예인이었다. 가장 먼저 머리를 깎은 여성도, 진정한 사랑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 목숨을 던진 이들도 기생이었다.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최향화, 이화자는 모두 기생 출신이었다. 배우로 이름을 날린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물론 영화 〈아리랑〉의 주인공 신일선도 기방에 몸을 담았다. 명창 이화중선과 박녹주도 기생 출신이다.
뿐만이 아니다. 기생 현계옥은 만주로 가 유일한 여성 출신 의열단원이 되었으며, 이소홍은 박열 열사의 국내 공작을 도왔다. 주산월과 정금죽은 기생 출신으로 나중에 여성운동의 정점에 서게 된다. 소수만 그런 게 아니다. 진주와 수원, 해주 등지의 기생들은 3·1만세운동에 집단으로 참여하였다. 그게 시대정신이었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생들은 예인으로, 지사로서 시대적 소임을 다하였다.
이같이 역동적인 기생의 세계를 우리는 얼마나 풍부히 알고 있는가.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단편적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의 기생사회를 생생히 복원해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가감없는 기생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기생들이 직접 발행한 잡지 《장한》에 실린 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실린 주요한 글을 발굴 수록하고 있다. 당시의 여러 매체에서 기생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생들이 직접 쓴 글만으로는 기생사회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기생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3편의 소설과 '최초의 단발랑' 강향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정사사건의 주인공 강명화, 최초의 가수왕 왕수복 등 당대를 풍미한 기생들에 관한 9편의 글을 덧붙였다.
[책을 펴내며]
"제가 매소賣笑함은 아니 매육賣肉함은… 저 유산계급들이 저희의 향략적 충동과 소유적 충동을 만족케 하자고 우리 여성을 자동차나 술이나 안주나 집과 같이 취급하는 그 아니꼬운 수작을 받기 싫은 나로서, 차라리 역습적 행위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신코에 입을 맞추고 나의 발바닥을 핥아가면서 자진하여 나와 나의 포로물이 되게 하여가지고, 나의 성적 충동을 발현하는 어떤 의의가 있는 살림살이를 하려 함에서 나온 동기였나이다. …저 마음을 팔고 성을 팔아가지고 소유적 충동에서 견마가 되어 헤메이는 그들, 더구나 우리 여성의 적인 남성들 특권계급들을 포로하려는 복수 전사의 일원이 되려 함이외다. 벌써부터 그 동물 몇 마리를 포로하였습니다."
남성들의 몸이 오싹해질 법한 내용이다. 백여 년 전 기생의 글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아마조네스 전사를 연상시키는 화중선이라는 이름의 이 기생은 여성을 노리개로 취급하는 남성들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겠다는 성적 복수를 다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화중선이 누구인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기생 박옥화는 2천만 인구 가운데 90퍼센트는 자신과 같은 계급이라며, 이들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때라야 자신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은 물론 기생 사회의 주류 의견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기생들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기생이 되었고, 한번 발을 들이면 그 속에서 청춘이 시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잃은 채 비탄 속에서 가슴을 태워야 하는 게 대다수 기생의 숙명이었다.
일제강점기 기생의 모습은 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잡지 《장한》 창간호의 표지 그림이 상징한다. '새장 속에 갇힌 기생의 모습'이 곧 그들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기생들은 신세를 한탄하고 기생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이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자각으로 나아간다.
전통적으로 기생은 천민 신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높은 교양과 예술성을 지닌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가무뿐 아니라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한 종합예술인이자 지식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근대 사회에 들면서 신분제의 철폐와 관기 제도의 해체로 기생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생계의 길을 찾아야 했던 기생들은 조합을 만들고, 아울러 전통 기예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누구든지 기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낙양의 명기가 되기 위해 기생의 길에 들어서는 소녀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더불어 기생놀음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전국의 한량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1910년대 후반은 새로운 시대의 기생 문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교방과 같은 기생학교가 설립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기생학교는 일종의 연예기획사 같은 존재였다. 아이돌을 꿈꾸며 모여드는 어린 소녀들을 일류 기생으로 양성한 대표적인 곳은 평양箕城기생학교였다.
왕수복 1위, 선우일선 2위, 김복희 5위. 1935년에 열린 인기가수 선발대회 결과다. 이들은 모두 기생 출신이다. 그것도 평양기생학교를 나온 평양 기생들이다. 이들 외에도 이은파, 최향화, 이화자 등 일세를 풍미한 기생 출신 가수는 즐비했다.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모두 기생 출신이다. 영화 〈아리랑〉의 여주인공 신일선은 나중에 기생이 되었다. 명창 이화중선과 박녹주도 기생 출신이다. 기생 장연홍, 깅영월, 노은홍 등은 광고 모델로 인기를 누렸다. 1914년 《매일신보》가 뽑은 당대의 예인藝人 100명 가운데 여성 89명은 모두 기생이다.
한편 조선 기생의 몸에는 고결한 기품과 지사적 풍모가 연면히 이어져왔다. 임진전쟁 시기의 논개와 계월향, 그리고 한말의 산홍 같은 존재들이다. 근대 기생의 세계에도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이같은 풍조가 확산되었다.
진주와 수원, 해주 등지의 기생들이 집단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는가 하면, 손병희의 부인이 된 기생 출신 주산월은 손병희의 거사를 돕고 나중에는 여성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게 된다. 만주로 가 의열단원이 된 현계옥, 박열 열사의 국내 연락책을 맡았던 이소홍,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정칠성 등 놀라운 인물이 많다. 이처럼 탁월한 개인이 아니더라도 국채보상운동, 조선물산장려운동, 노동운동 등에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기생들이 적지 않다.
이같이 역동적인 기생의 세계를 우리는 얼마나 풍부히 알고 있는가.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단편적이다. 이 책은 근대 기생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다. 가감없는 기생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생들의 육성을 위주로 수록하였다. 《장한》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기생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생들이 직접 쓴 글만으로는 기획 취지를 살리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태준을 비롯한 작가들이 쓴 소설과 《삼천리》 등의 매체에 실린 당대를 풍미한 기생들에 관한 글을 덧붙였다. 조선 여자 가운데 처음 머리를 자른 강향란도 윤심덕과 김우진에 앞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강명화도 모두 기생이었다.
기생에 대한 편견을 깰 때다.
2019년 5월
목차
목차
기생 생활의 이면 김난홍
기생의 인생관 박옥화
예기의 입장과 자각 윤옥향
의기사 사당에서 감동하여 시를 짓다 산홍
문학 기생의 고백 장연화
덕왕의 인상: 문학 기생의 작품 김숙
신생활 경영에 대한 우리의 자각과 결심 오홍월
화류계에 다니는 모든 남성에게 원함 배화월
기생 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화중선
기생도 노동자다 전난홍
여성운동의 수장이 되다 정칠성
지금부터 다시 살자 김계현
2부 나는 어떻게 기생이 되었나
파란중첩한 나의 전반생 백홍황
기생, 모두가 동정뿐
눈물겨운 나의 애화 이월향
한 늙은 기생의 자백
울음이라도 맘껏 울어보자 매헌
사랑하는 동무여 김녹주
초로 같은 인생 전산옥
기생과 희생 계산월
기생으로 본 10년 조선 김화중선
내가 만일 손님이라면 차별 없이 하겠다 홍도
기생들이 꿈꾸는 따뜻한 가정생활
가신 님에게 매헌
3부 소설 속의 기생
기생 산월이 이태준
시드는 꽃
우리의 참사랑 박화영
4부 기생은 누구인가
최초의 단발랑: 강향란
독립운동가 되어 국경을 넘다: 현계옥 백두산인
돈보다 사랑, 목숨보다 사랑: 강명화 청의처사
박열 열사의 재판정에 서다: 이소홍
사랑에 죽을까, 효에 살까: 채금홍
상해로 달아난 천하일색 명기: 장연홍
눈물 속에 진 꽃: 최향화 홍의동자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 인기가수: 왕수복 김여산
〈장한가〉 부르는 박행의 가인: 신일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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