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모악시인선 21)
김헌수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헌수 시인의 첫 시집이다. “대상의 이면과 그림자까지 관찰하며 사려 깊은 내면을 밀도 깊게 그려놓는다”고 평가받는 김헌수 시인은 일상의 표층과 심층 사이를 줄곧 응시해왔다. 그곳은 어느 곳에도 없는 세계이지만, 사실은 도처에 실재하는 세계이다. 그곳은 삶의 표면이 감추고 싶은 비밀의 세계이자 심층의 내밀함이 발화하는 “엑스트라 같은 숲”(「usb」)이다. 시인은 엑스트라의 숲으로 스며들어 무성해지다가 덧없이 황량해지는 삶의 순간들을 시로 포착해낸다. 간결한 시어의 조율과 안정된 이미지의 구도를 통해 삶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정서를 한층 두텁게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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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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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새에서 피어난 자유로운 영혼의 언어!"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헌수 시인의 첫 시집이다. "대상의 이면과 그림자까지 관찰하며 사려 깊은 내면을 밀도 깊게 그려놓는다"고 평가받는 김헌수 시인은 일상의 표층과 심층 사이를 줄곧 응시해왔다. 그곳은 어느 곳에도 없는 세계이지만, 사실은 도처에 실재하는 세계이다. 그곳은 삶의 표면이 감추고 싶은 비밀의 세계이자 심층의 내밀함이 발화하는 "엑스트라 같은 숲"(「usb」)이다. 시인은 엑스트라의 숲으로 스며들어 무성해지다가 덧없이 황량해지는 삶의 순간들을 시로 포착해낸다. 간결한 시어의 조율과 안정된 이미지의 구도를 통해 삶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정서를 한층 두텁게 형상화한다.
삶의 꽃대에서 피워 올린 꿈들
김헌수 시인은 "시간을 홀로 두기로 했던 약속"(「그해 봄」)을 지키고자 한다. 한때 명징하게 존재했으나 지금은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을 실천하고자 한다. 박남준 시인의 지적처럼, 삶과 시를 동일시하는 것은 "중력을 거부하며 나무와 새와 별들을 유영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시" 쓰기이다. 삶의 시간을 일상의 표층 혹은 심층 어딘가에 묶어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시간을 홀로 두는 일이다. 시인은 자유로운 시간을 유영해가며 일상의 "틈새에 꼿꼿한 협곡 하나 만들어 놓"(「크레바스」)는다. 그 틈새에서 "헐벗은 언어가 부풀"(「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하루」)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꽃대를 밀어 올"(「호모에렉투스」)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한 편의 시로 탄생한다.
당찬 깃을 들어 올리며
나란히 꽃대를 밀어 올린다
무릎 꺾인 삶에
불시착한 우리들의 우울한 취업
직립보행의 기억을 더듬다
돌아 나온 구직의 터널
불온한 책장 같은 꽃잎을 넘기며
세상과 타협하는 나를 세우고
지상에 없는 호모에렉투스의 꽃을 받아내고 싶다
튤립 사이로 가뿐하게 앉은
나비처럼 유장한 호흡
꽃술 사이로 번지는 편안한 망각
작년에 던져놓은 이력서에서 올라오는 싹
슬로 모션으로 깃을 세운 채
도도하게 서 있다
-「호모에렉투스」 전문
김헌수 시인은 "작년에 던져놓은 이력서에서 올라오는 싹"으로 시를 짓는다. 우리의 이력이 시가 된다는 발상은 무릎 꺾인 삶에서 무릎 꺾인 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꺾이지 않는 "직립보행의 기억을 더듬"어 "지상에 없는 호모에렉투스의 꽃"을 밀어 올린다. 이러한 상승의 이미지를 통해 "불시착한" 것 같은 삶의 비루를 '꽃'으로 긍정해낸다. 그리하여 시인은 "모두가 넉넉하게 살찔 때까지/흔들리며 서로를"(「버베나 꽃잎은 접어지고」) 감싸기 위해 "누울 곳 없는 자들/목숨을 밀어올리고 여미어주"(「바탕체로 읽는 하루」)고 있는 것이다.
순환의 언어로 표현해낸 존재의 흔적
작품 해설에 나와 있듯이, 김헌수 시인은 "침묵하고 있는 삶의 흔적에서 발화되어야 하는 리듬과 욕망을 발굴해"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일상의 최저까지 감각과 사유의 촉수를 드리울 줄 안다는 뜻이다. 누군가 살다간 흔적을 알아채는 일과 그 생애를 복원해내는 일은 시인에게 숙명처럼 보인다. 뜨거운 김치죽을 뜨면서 죽은 아버지를 보아내고(「낮잠」), 누워 있는 노인에게서 젊음의 문장을 읽어내는 일(「시간의 바깥」)은 시인이 발굴해낸 존재의 기미들이다. 이런 기미들을 "삶아서 말리고 걸어둔 언어"(「페이퍼」)로 표현해낸 시는 얼마나 견고하고 빛날 것인가.
말없이 흐르는 금강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고요한 두근거림으로 흘러가는 금강을 말입니다 그와 내가 나눈 입맞춤은 아직도 금강 어귀에 스릉스릉 스며들고 있을 것입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간 초봄에 그와 나눈 말이 새겨졌고 날리는 눈발을 둘이 맞았습니다 작년에 하늘로 돌아간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슬프다고 했지만 그는 마땅한 슬픔을 찾지 못하고 길을 나섭니다 다시 봄이 오고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금강의 눈발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와 그 사이에 새떼가 흘리고 간 울음을 주워봅니다 금강에서 사라져버린 시간을 홀로 두기로 했던 약속이 흐릅니다 누구도 낯설지 않은 금강에 있을 것입니다
-「그해 봄에는」 전문
한때 비만하고 두서없던 삶의 욕망을 단단한 등뼈로 추려내는 솜씨는 「그해 봄에는」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해 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시인만이 알겠지만, 그래도 어렴풋한 것들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금강은 금강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늘로 돌아간 아이의 눈망울"과 "겨울이 오면 금강의 눈발"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떠올리고 품어내고 시로 써내는 일은 슬픈 일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그래도 그 슬픔에는 두근거리는 입맞춤이 "스릉스릉 스며들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봄에서 겨울을 통과하여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삶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실은 다시 돌아온 봄날이야말로 지난봄의 이야기를 삶아서 말리고 걸어둔 언어라는 것도 안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을 다 안다. 알기 때문에 그해 봄날의 시간을 홀로 둘 수 있는 것이다.
김헌수 시인은 삶의 흔적이 남긴 이러저러한 기미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말」에서 "바깥에 앉은 네가/풍경의 중심으로 들어오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잘 아는 것들은 어디에서나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풍경의 중심'이 된 삶의 흔적들이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에 오롯이 담겨 있다.
목차
목차
유월 하늘에 뜨는 별은 / 16그램 / 크레바스 / 살바도르 달리에게 /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 하루 / 수평의 대열 / 호모에렉투스 / 중얼거리는 달과 물은 / 편두통 / 페이퍼 / 여전히 나를 부르는 / 겨울의 패턴/ 주름이 늘었다 / 거짓말 한 다발
2부 12월과 1월 사이
자두 / 오늘의 키워드 / 바탕체로 읽는 하루 / 기린로 빌딩 사이로 나온 별 / 산딸나무 / 도서관은 발효 중/ 짧은 통화 / 텀블러가 놓여있는 오후 / usb / 낮잠 / 당신은 문장의 통로를 지나가고 / 컬러링 / 12월과 1월 사이
3부 버베나 꽃잎은 접어지고
토마토 / 드로잉 / 비문증 / 컵을 얻다 / 골목 / 벨칸토 음악회를 보고 온 날에는 / 개와 나는 배롱나무 사이를 돌고 / 그해 봄 / 버베나 꽃잎은 접어지고 / 경천저수지 / 블라인드가 내려진 저녁 / 그의 서사 / 시간의 바깥
4부 피핀과 메리와 나는
포플러가 있는 산책로 / 거북바위에서 놀다 / 결벽증 / 큐레이터 / 곳에 따라 비 / 피핀과 메리와 나는 / 미수금 받아드립니다 / 혼자 있는 일요일 / 어반스케치 / 폐경 / 태백으로 갈까 / 고양이 왈츠 / 미술관에서 만나요???
해설 Blind : 지연되는 시, 침묵하는 삶 | 문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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