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한의 팝스다이얼(다시 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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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덮인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유고 노트, 아내가 정리
김광한 유고 자서전 전격 출간!
우리 시대 최고의 DJ 김광한,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
국내 1호 팝음악 전문 DJ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과 함께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김광한. 그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쇼 비디오 자키〉〈유머 1번지〉〈가요 Top 10〉 등 대한민국 방송가의 전설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DJ와 MC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5년 7월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난 뒤 2년이 흘러 우연히 자서전 유고가 발견되었다. 그의 ‘음악 아지트’였던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지하실에서였다. 1만 장이 넘는 LP판과 CD, 음향기기, 낡은 전축과 앰프, 턴테이블, 각종 음악서적들이 먼지와 함께 세월을 견디고 있었고, 켜켜이 먼지 쌓인 원고 더미 속에는 삶을 아끼고 음악을 사랑했던 김광한, 그의 전부가 담겨 있었다. 유년과 청춘을 지나는 김광한의 꿈과 사랑 그리고 90년대 최고의 DJ가 되기까지, 빛나던 모든 삶의 이야기가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제 장사를 하고 신문 배달과 확장을 하며 돈을 모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DJ 공부를 하면서 내 한 몸 의지하고 여유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끔씩 친구들이 찾아와 고생한다며 가슴 아파했지만 나는 전혀 고달프지 않았다. 힘든 줄도 몰랐다. 오히려 부모에게 얽매여 살아야 하는 그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겐 DJ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니까. (p. 165)
김광한 유고 자서전 전격 출간!
우리 시대 최고의 DJ 김광한,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
국내 1호 팝음악 전문 DJ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과 함께 당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김광한. 그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쇼 비디오 자키〉〈유머 1번지〉〈가요 Top 10〉 등 대한민국 방송가의 전설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DJ와 MC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5년 7월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난 뒤 2년이 흘러 우연히 자서전 유고가 발견되었다. 그의 ‘음악 아지트’였던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지하실에서였다. 1만 장이 넘는 LP판과 CD, 음향기기, 낡은 전축과 앰프, 턴테이블, 각종 음악서적들이 먼지와 함께 세월을 견디고 있었고, 켜켜이 먼지 쌓인 원고 더미 속에는 삶을 아끼고 음악을 사랑했던 김광한, 그의 전부가 담겨 있었다. 유년과 청춘을 지나는 김광한의 꿈과 사랑 그리고 90년대 최고의 DJ가 되기까지, 빛나던 모든 삶의 이야기가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미제 장사를 하고 신문 배달과 확장을 하며 돈을 모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DJ 공부를 하면서 내 한 몸 의지하고 여유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끔씩 친구들이 찾아와 고생한다며 가슴 아파했지만 나는 전혀 고달프지 않았다. 힘든 줄도 몰랐다. 오히려 부모에게 얽매여 살아야 하는 그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겐 DJ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니까. (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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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너무도 갑작스러운 김광한의 죽음, 그리고 슬픔 속 2년이 흐른 뒤
아내 최경순이 먼지 쌓인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유고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아내 최경순이 남편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서전 유고를 정리하는 가운데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에는 김광한의 어린 시절부터 일평생 꿈꾸던 DJ가 되기까지, 그리고 11년간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을 진행해오기까지의 굴곡 많은 이야기와 열정 가득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DJ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 시대의 DJ 김광한, 그의 이야기는 지난 시절의 음악과 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는 문화의 향기를 전한다. 책에는 DJ 김광한이 직접 기록한 인생사는 물론 70, 80년대 방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으며, 별도 화보를 통해서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국내외 최고의 팝스타들을 만나볼 수 있고, 자술 연보를 통해서는 그가 걸어온 삶의 행적을 따라가볼 수 있다.
남편은 팝 음악의 본고장 영국, 그중에서도 리버풀을 가보고 싶어 했다. 2주기가 지난 어느 날 나는 그의 뜻을 이뤄주고 싶은 생각에 두 가지 준비를 했다. 우선 남편 앞으로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리고 그가 평소 즐겨 입던 티셔츠와 함께 나름의 '의식'을 치른 뒤, 그것을 태운 재를 작은 통에 담아 영국으로 가져갔다. (……) 남편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준비해간 '재'를 매튜 스트리트 곳곳에 뿌렸다.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리버풀에 온 거예요. 보고 있죠?"라는 말과 함께. 그랬는데…… 같은 시각쯤 후배의 꿈에 나타나 "지금 나 여행 중인데, 여기 너무 좋다!"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니! 그는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여행한 게 분명했다. - 서문 중에서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고 싶어 했던 김광한의 열정 가득한 삶의 여정
어린 시절 서울 낙원동 골목을 누비던 골목대장 김광한이 DJ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최동욱의 〈탑툰쇼〉를 들으며 DJ를 꿈꾸던 그는 병아리 장사부터 은단 판매, 보험회사 외판원, 신문 배달을 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꿈을 키워나갔다. 음악다방 DJ를 전전하며 레코드 행상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국내 비디오 자키 1호로 인정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자선 공연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에 앞장서기도 했던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실천가였다. 허기졌던 음악을 실컷 들으며 카네기의 『인생의 길은 열리다』 책 속 한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바뀐 행동이 몸에 익으면 습관이 바뀐다.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나는 팝송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을 선도했다고 자부한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듣고 인생을 얘기하며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은 그들과 거리감 없이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p. 139 )
DJ가 되겠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DJ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 또 그렇게 하다 보니 DJ와 관계된 말과 행동, 생각만 하게 되어 끝내 DJ가 되고 말았다. (p. 173)
자유로움의 소유자,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사람,
명 DJ이자 명 MC였던 김광한을 추억하는 '3주기 추모 음악회'
우리 시대의 라디오 스타 김광한,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반추하는 것은 당대의 음악인들이나 후배 DJ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3주기 추모 음악회가 다음 달인 7월 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데, 이치현 유현상 양하영 김준원 등 후배 가수들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한다.
추모 음악회를 준비 중인 경인방송의 DJ 박현준을 비롯하여 진정한 팝 DJ 김광한을 그리워하는 여러 지인들의 추모글이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No Pain, No Gain(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김광한 선배가 생전에 자주 해줬던 말이다. 그는 "좋은 DJ가 되려면 항상 고통을 느껴야 하고 그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 박현준(경인방송 〈박현준의 라디오 가가〉 DJ 겸 PD)
1981년 버글스는 M-TV에서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노래하며 라디오 종언을 예고했지만, 라디오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DJ 김광한은 그 산증인이자 우리 시대의 진정한 라디오 스타였다. - 정일서(KBS 라디오 PD)
자신의 복은 자신이 가져온다지만 나 자신을 그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다. 광한이 형의 인복과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작용해 내 능력의 일부를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 한용진(한국방송DJ협회 회장)
김광한 씨는 마포의 지하 사무실에 많은 팝 비디오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에 못지않게 LP도 많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디오에 모든 걸 걸던 때, 그는 비디오에 관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 김웅래(전 KBS TV 〈유머 1번지〉 PD, 현 청도 한국코미디타운 관장)
팝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해서 팝 음악 방송 DJ와 팝 평론가로 평생을 살아오신 김광한 선생님의 삶에는 권위의식 없이 마치 옆집의 아는 형님처럼 편안하고 격식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넘쳐났습니다. - 한용길(CBS 사장)
"음악은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김광한, 그의 전부였던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다
에이커 빌크의 「Stranger On The Shore」를 즐겨 듣고, 코니 프란시스의 「Mama」를 들으며 눈물 흘렸던 그는 폴 앵카의 「My Hometown」이나 「Crazy Love」, 앤 마그렛의 「What Am I Suppose To Do」, 클리프 리처드의 「The Young Ones」, 「Lessons In Love」, 「When The Girl In Your Arms, Is The Girl In Your Hearts」,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1980~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라디오와 TV를 종횡무진했던 그는 마이클잭슨, 마돈나, 신디 로퍼, 스티비 원더, 듀란듀란 등의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전 세계 팝시장을 휩쓸던 시기 전설적인 그룹 퀸과 건스 앤 로지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스티비 원더,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 만나 인터뷰를 나누며 국내에 팝을 소개하고 음악을 알리는 데 몰두했다. 1993년 4월 30일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이 11년 90일 만에 막을 내리는 자리에서 그는 마지막 곡으로 존 마일스의 「Music」을 틀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음악 인생, 삶과 음악에 대한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은 음악을 자주 들을 때 생겨나지 않을까요?
음악을 많이 들으십시오. 김광한은 언제나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p. 283)
아내 최경순이 먼지 쌓인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유고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아내 최경순이 남편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서전 유고를 정리하는 가운데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에는 김광한의 어린 시절부터 일평생 꿈꾸던 DJ가 되기까지, 그리고 11년간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을 진행해오기까지의 굴곡 많은 이야기와 열정 가득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DJ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 시대의 DJ 김광한, 그의 이야기는 지난 시절의 음악과 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서는 문화의 향기를 전한다. 책에는 DJ 김광한이 직접 기록한 인생사는 물론 70, 80년대 방송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 있으며, 별도 화보를 통해서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국내외 최고의 팝스타들을 만나볼 수 있고, 자술 연보를 통해서는 그가 걸어온 삶의 행적을 따라가볼 수 있다.
남편은 팝 음악의 본고장 영국, 그중에서도 리버풀을 가보고 싶어 했다. 2주기가 지난 어느 날 나는 그의 뜻을 이뤄주고 싶은 생각에 두 가지 준비를 했다. 우선 남편 앞으로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리고 그가 평소 즐겨 입던 티셔츠와 함께 나름의 '의식'을 치른 뒤, 그것을 태운 재를 작은 통에 담아 영국으로 가져갔다. (……) 남편과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준비해간 '재'를 매튜 스트리트 곳곳에 뿌렸다.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리버풀에 온 거예요. 보고 있죠?"라는 말과 함께. 그랬는데…… 같은 시각쯤 후배의 꿈에 나타나 "지금 나 여행 중인데, 여기 너무 좋다!"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니! 그는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여행한 게 분명했다. - 서문 중에서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고 싶어 했던 김광한의 열정 가득한 삶의 여정
어린 시절 서울 낙원동 골목을 누비던 골목대장 김광한이 DJ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최동욱의 〈탑툰쇼〉를 들으며 DJ를 꿈꾸던 그는 병아리 장사부터 은단 판매, 보험회사 외판원, 신문 배달을 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꿈을 키워나갔다. 음악다방 DJ를 전전하며 레코드 행상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국내 비디오 자키 1호로 인정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자선 공연을 통해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에 앞장서기도 했던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실천가였다. 허기졌던 음악을 실컷 들으며 카네기의 『인생의 길은 열리다』 책 속 한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바뀐 행동이 몸에 익으면 습관이 바뀐다.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나는 팝송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을 선도했다고 자부한다. 음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듣고 인생을 얘기하며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은 그들과 거리감 없이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p. 139 )
DJ가 되겠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DJ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 또 그렇게 하다 보니 DJ와 관계된 말과 행동, 생각만 하게 되어 끝내 DJ가 되고 말았다. (p. 173)
자유로움의 소유자,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사람,
명 DJ이자 명 MC였던 김광한을 추억하는 '3주기 추모 음악회'
우리 시대의 라디오 스타 김광한,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반추하는 것은 당대의 음악인들이나 후배 DJ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3주기 추모 음악회가 다음 달인 7월 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데, 이치현 유현상 양하영 김준원 등 후배 가수들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한다.
추모 음악회를 준비 중인 경인방송의 DJ 박현준을 비롯하여 진정한 팝 DJ 김광한을 그리워하는 여러 지인들의 추모글이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No Pain, No Gain(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김광한 선배가 생전에 자주 해줬던 말이다. 그는 "좋은 DJ가 되려면 항상 고통을 느껴야 하고 그 속에서 배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 박현준(경인방송 〈박현준의 라디오 가가〉 DJ 겸 PD)
1981년 버글스는 M-TV에서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노래하며 라디오 종언을 예고했지만, 라디오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DJ 김광한은 그 산증인이자 우리 시대의 진정한 라디오 스타였다. - 정일서(KBS 라디오 PD)
자신의 복은 자신이 가져온다지만 나 자신을 그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다. 광한이 형의 인복과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작용해 내 능력의 일부를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 한용진(한국방송DJ협회 회장)
김광한 씨는 마포의 지하 사무실에 많은 팝 비디오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에 못지않게 LP도 많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디오에 모든 걸 걸던 때, 그는 비디오에 관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 김웅래(전 KBS TV 〈유머 1번지〉 PD, 현 청도 한국코미디타운 관장)
팝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해서 팝 음악 방송 DJ와 팝 평론가로 평생을 살아오신 김광한 선생님의 삶에는 권위의식 없이 마치 옆집의 아는 형님처럼 편안하고 격식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넘쳐났습니다. - 한용길(CBS 사장)
"음악은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김광한, 그의 전부였던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다
에이커 빌크의 「Stranger On The Shore」를 즐겨 듣고, 코니 프란시스의 「Mama」를 들으며 눈물 흘렸던 그는 폴 앵카의 「My Hometown」이나 「Crazy Love」, 앤 마그렛의 「What Am I Suppose To Do」, 클리프 리처드의 「The Young Ones」, 「Lessons In Love」, 「When The Girl In Your Arms, Is The Girl In Your Hearts」,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1980~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라디오와 TV를 종횡무진했던 그는 마이클잭슨, 마돈나, 신디 로퍼, 스티비 원더, 듀란듀란 등의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전 세계 팝시장을 휩쓸던 시기 전설적인 그룹 퀸과 건스 앤 로지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스티비 원더,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 만나 인터뷰를 나누며 국내에 팝을 소개하고 음악을 알리는 데 몰두했다. 1993년 4월 30일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이 11년 90일 만에 막을 내리는 자리에서 그는 마지막 곡으로 존 마일스의 「Music」을 틀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음악 인생, 삶과 음악에 대한 아직 꺼지지 않은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은 음악을 자주 들을 때 생겨나지 않을까요?
음악을 많이 들으십시오. 김광한은 언제나 '열일곱 살 아저씨 DJ'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p. 283)
목차
목차
서문 - 남편은 여행 중
I 낙원동의 잘생긴 골목대장
낙원동의 잘생긴 골목대장/ 어머니, 종교 이상의 존재
타고난 땡땡이꾼의 밀항 모의/ 낙원동 악동들의 아지트, 파고다공원
캠핑을 통해 자유를 맛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울며 지새운 밤
짧았던 첫 키스의 추억/ 쇼 구경을 다니며 팝송을 듣다/ 음악, 방황하던 나를 위로해주다
II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터
우리나라 최연소 팝송 DJ가 되다/ '쎄시봉' DJ가 될 뻔한 사연
입대하며 속세의 연을 끊다/ 음악이 흘러넘치는 군대 DJ 생활
월남에서 맞은 아버지의 죽음/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터/ 3년 만에 민간인으로 복귀하다
III DJ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
천애고아의 백수건달 세월/ DJ를 향한 힘든 첫걸음/ 가정교사에서 방송 모니터요원으로
간판쟁이가 되어 사업수완을 발휘하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어머니 얼굴
생활고 속에서도 DJ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다/ 부러진 이빨 덕에 혼자만의 방을 얻다
IV 사랑과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
다방 아가씨들에게 족집게 도사 노릇을 하다/ 음악다방 '블랙스타'의 우상 DJ
사랑을 놓치며 후회하다/ 주간지 기자가 되어 방송국을 출입하다
다방 DJ가 병아리장수로 나선 까닭은?/ 판돌이를 하며 인생의 여자를 만나다
사랑과 행운을 안겨준 여인 꽃님이
V 나의 사랑, 나의 뮤직
MUSIC,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11년 90일 진행한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팝송의 본고장에서 U2의 공연을 보다/ '나는 우리나라 1호 쇼 비디오 자키다'
부록 - 우리 시대의 DJ, 김광한을 기리다
나를 만들어준 한마디 "No Pain, No Gain."- 박현준
우리 시대의 라디오 스타 김광한 - 정일서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광한이 형 - 한용진
음악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광한이 형 - 김목경
좀 전에 만났다 헤어진 듯한 DJ 김광한 씨를 추억하며 - 김웅래
나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했던/ 모두가 사랑했던 당신! - 윤보영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애처가 - 이양일
DJ 김광한 키즈의 회고 - 조중석
권위의식 없는 자유로움의 소유자 - 한용길
김광한! 그는 명 DJ 겸 명 MC였다! - 이용
화보 - 김광한이 만난 사람들
김광한 연보
I 낙원동의 잘생긴 골목대장
낙원동의 잘생긴 골목대장/ 어머니, 종교 이상의 존재
타고난 땡땡이꾼의 밀항 모의/ 낙원동 악동들의 아지트, 파고다공원
캠핑을 통해 자유를 맛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울며 지새운 밤
짧았던 첫 키스의 추억/ 쇼 구경을 다니며 팝송을 듣다/ 음악, 방황하던 나를 위로해주다
II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터
우리나라 최연소 팝송 DJ가 되다/ '쎄시봉' DJ가 될 뻔한 사연
입대하며 속세의 연을 끊다/ 음악이 흘러넘치는 군대 DJ 생활
월남에서 맞은 아버지의 죽음/ 참혹하고 처절한 전쟁터/ 3년 만에 민간인으로 복귀하다
III DJ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여정
천애고아의 백수건달 세월/ DJ를 향한 힘든 첫걸음/ 가정교사에서 방송 모니터요원으로
간판쟁이가 되어 사업수완을 발휘하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어머니 얼굴
생활고 속에서도 DJ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다/ 부러진 이빨 덕에 혼자만의 방을 얻다
IV 사랑과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
다방 아가씨들에게 족집게 도사 노릇을 하다/ 음악다방 '블랙스타'의 우상 DJ
사랑을 놓치며 후회하다/ 주간지 기자가 되어 방송국을 출입하다
다방 DJ가 병아리장수로 나선 까닭은?/ 판돌이를 하며 인생의 여자를 만나다
사랑과 행운을 안겨준 여인 꽃님이
V 나의 사랑, 나의 뮤직
MUSIC,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11년 90일 진행한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팝송의 본고장에서 U2의 공연을 보다/ '나는 우리나라 1호 쇼 비디오 자키다'
부록 - 우리 시대의 DJ, 김광한을 기리다
나를 만들어준 한마디 "No Pain, No Gain."- 박현준
우리 시대의 라디오 스타 김광한 - 정일서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광한이 형 - 한용진
음악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광한이 형 - 김목경
좀 전에 만났다 헤어진 듯한 DJ 김광한 씨를 추억하며 - 김웅래
나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했던/ 모두가 사랑했던 당신! - 윤보영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애처가 - 이양일
DJ 김광한 키즈의 회고 - 조중석
권위의식 없는 자유로움의 소유자 - 한용길
김광한! 그는 명 DJ 겸 명 MC였다! - 이용
화보 - 김광한이 만난 사람들
김광한 연보
저자
저자
김광한
저자 김광한(1946. 11. 9~2015. 7. 9)
방송 MC 및 DJ, 팝 칼럼니스트이자 국내 쇼 비디오 자키 1호.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5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서울 FM(FBS)의 〈FM 히트퍼레이드〉 DJ로 데뷔했다. 1979년 방송작가 최경순과 결혼하였고, 군 제대 후 음악다방 DJ를 하다가 1980년 TBC FM 〈탑튠쇼〉를 통해 복귀하였으며 1987~1991년 KBS 2TV 〈쇼 비디오 자키〉를 진행했다. 1982~1994년 KBS 2FM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및 〈김광한의 팝스 투나잇〉, 〈김광한의 골든팝스〉를 진행하였으며, 그밖에 KBS 2TV 〈가요 Top 10〉, TBS 교통방송 〈밤과 음악 사이〉, TBN 인천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CBS 표준FM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를 진행했다. 2015년 7월 6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였고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방송 MC 및 DJ, 팝 칼럼니스트이자 국내 쇼 비디오 자키 1호.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5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서울 FM(FBS)의 〈FM 히트퍼레이드〉 DJ로 데뷔했다. 1979년 방송작가 최경순과 결혼하였고, 군 제대 후 음악다방 DJ를 하다가 1980년 TBC FM 〈탑튠쇼〉를 통해 복귀하였으며 1987~1991년 KBS 2TV 〈쇼 비디오 자키〉를 진행했다. 1982~1994년 KBS 2FM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및 〈김광한의 팝스 투나잇〉, 〈김광한의 골든팝스〉를 진행하였으며, 그밖에 KBS 2TV 〈가요 Top 10〉, TBS 교통방송 〈밤과 음악 사이〉, TBN 인천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CBS 표준FM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를 진행했다. 2015년 7월 6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였고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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