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밭에서(도서출판 각 시선 46)(양장본 Hardcover)
김경훈 시집
Regular price
$11.24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촌철살인과 피 냄새 나는 4.3시인
드디어 필생의 서정시편을 묶어내다
제주시의 동촌 조천리 출신인 그는 소위 조천 사름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냄새라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가 잘 씻지 않아서 몸에서 폴폴 나는 그런 냄새가 아니니.
제주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이래 연륙 포구이자 제주 유림의 본향으로 이름 높던 ‘조천’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제주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문기가 서린 포구마을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향의 문기를 물렸는지 조 천 사람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 냄새가 포구의 갯내음만은 아니리라, 그건 그의 DNA 속에 흐르는 조천의 전근대를 지나 해방공간 역사의 옷깃에서 묻혀 온 냄새가 틀림없으리라.
드디어 필생의 서정시편을 묶어내다
제주시의 동촌 조천리 출신인 그는 소위 조천 사름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냄새라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가 잘 씻지 않아서 몸에서 폴폴 나는 그런 냄새가 아니니.
제주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이래 연륙 포구이자 제주 유림의 본향으로 이름 높던 ‘조천’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제주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문기가 서린 포구마을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향의 문기를 물렸는지 조 천 사람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 냄새가 포구의 갯내음만은 아니리라, 그건 그의 DNA 속에 흐르는 조천의 전근대를 지나 해방공간 역사의 옷깃에서 묻혀 온 냄새가 틀림없으리라.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제주시의 동촌 조천리 출신인 그는 소위 조천 사름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냄새라니…. 오해하지 마시라. 그가 잘 씻지 않아서 몸에서 폴폴 나는 그런 냄새가 아니니.
제주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이래 연륙 포구이자 제주 유림의 본향으로 이름 높던 '조천'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제주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문기가 서린 포구마을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향의 문기를 물렸는지 조 천 사람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 냄새가 포구의 갯내음만은 아니리라, 그건 그의 DNA 속에 흐르는 조천의 전근대를 지나 해방공간 역사의 옷깃에서 묻혀 온 냄새가 틀림없으리라.
우스갯소리로 모 원로작가는 술좌석에서 푸줏간 시라고 약평, 또는 악평한 적이 있다. 그건 그가 그간 써낸 피비린 4.3의 시어들이 날 것 그대로의 언어들이었던 데서 기인하는 바일 것이다. 특히 4.3이 아니더라도 강정에 꽂혀 강정 투쟁의 최전선에서 그가 써낸 시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시인은
살인자다
촌철寸鐵의,
능히
비인非人을 제압하는
- 〈촌철살인 寸鐵殺人〉 전문
그의 시어들은 바로 비인(非人)을 제압해야 했기에, 무척이나 날카롭다. 찔리면 내상이 깊은 위험한 칼날의 언어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만 접한 독자들이나,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과격하거나, 거친 시인으로 기억할 듯하지만, 사실 그는 지극히 정이 많은 시인이고 눈물도 많은 시인이다. 그랬기에 그는 제주섬이 아파할 때마다 신열을 앓는다. 그의 여린 섬세한 신경세포들이 이 섬이 또는 이 섬의 자식들이 아파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지 못했으리라. 어디 이 섬의 일로만 아파할까?
그의 시는 그러므로 신열의 언설들이다. 그랬기에 그의 시어들에는 펄펄 끓는 열정이 배어 있다.
그런 그가 자칭 '서정 시집'을 냈다. 굳이 '서정'을 강조한 이번 시집에서 그는 저간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다분히 자부자분한 시어들로 시편들을 엮었다. 물론 몇몇 시편들에서는 여전히 촌철의 시어들이 행간을 채우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가 그간 간간이 써두었던 자칭 서정시들과 새 시집을 묶기 위해 최근에 써낸 시편들까지 그의 섬세한 시선과 정 많은 심성을 실은 언어들로 채워졌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
- 〈수선화 밭에서〉 전문
수선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시집 제목도 '수선화 밭에서'로 정했다. 수선화는 제주섬에 지천으로 널린, 지중해 연안이 고향인 귀화식물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섬꽃이 되었다. 이 수선화가 귀한 것임을 밝힌 것은 제주 대정골에서 오랫동안 귀양 생활을 했던 '추사'다. 그가 제주에 유배와서 화첩에서나 보는 수선화가 유배지 마을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고, 몇몇 글에 제주섬이 수선화 시편 몇과 썰을 남기면서 제주섬의 수선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왕 수선화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나가면,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특히 서화가들이나 호사가들이 애지중지했던 것은 난초다. 춘란, 한란으로 널리 알려진 제주섬의 난초는 예로부터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들에게는 고결한 화초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고결한 신분이었다. 추사 역시 지독한 애난가여서 빼어난 수작들을 남기고 있다.
어찌 보면 난은 고귀한(?) 지배계급인 선비들의 귀족성을 지닌데 반해, 온 섬에 지천으로 깔렸던 수선화는 민초의 삶을 닮았다. 또한 빼어나서 고귀하기는커녕 농부들의 호미에 뽑혀 나가는 등 잡초 취급을 받았지만, 한겨울 동리 울담 밑에 무심히 자라 온 마을을 다디단 꽃 향으로 물들였다.
그런 수선화는 어찌 보면 늘 아웃사이더 포지션인 그를 닮았다. 그래서 수선화에 더욱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
내통이 좌절된
회천동 이덕구 가족묘
도 막은 밭
- 〈맹지 盲地〉 부분
맹지는 제주에서 소위 '도(道) 없는 밭(땅)' 즉 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없는 막힌 땅을 말한다. 그러기에 맹지는 땅값도 도 있는 밭에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덕구, 4.3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결코 잊힐 수 없는 이름 석자다. 제주도 인민유격대 제2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4.3 발발 이후 1대 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이 입북하면서 넘겨받은 빨치산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훤칠한 미남형 리더였던 김달삼에 비해 벅벅얽은 얼골에 사람 좋았던 이덕구는 흔히 선말 제주섬의 만란을 이끌었던 '장두'에 비견된다. 장두란 섬사람들의 억울하고 굶주리는 삶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고 등소(等訴)의 맨 앞에 섰던 인물을 가르킨다. 즉, 자신의 목숨을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내어놓는 이타적 희생정신의 화신이다. 그리하여 장두의 목숨을 바친 후에야 겨우 나아지는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제주인들에게 장두는 영웅이면서 은인이기에 섬사름들은 결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대를 이어 신화로 전설로 전승한다.
이덕구 역시 그러했다. 폭도라고 낙인찍혔고, 한 집안이 씨 멸족 당했지만, 그는 홍길동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신출귀몰했다. 하지만, 패배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 4.3장두 이덕구. "지금은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가 되었지만, 시인은 도 막은 밭 앞에서 전설의 부활을 꿈꾼다. 언젠가는 이덕구 가족묘의 도 막은 밭이 비로소 길이 생기고 역사의 성지로 탈바꿈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의 시들은 바로의 이 역사의 맹지에 길을 뚫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 시인, 조천 사름, 김경훈.
그의 시어들은 사정없이 몰아치며 싸대기를 후려패는 섬 바람의 매서운 맛과 동리마다 무심히 자라 온 마을에 자신의 향을 채워 사악한 것들을 정화하는 수선화 향을 닮았다.
매섭지만 달다.
매서운 바람의 시만 써대던 그가 난생 처음 "나도 서정시 쓴다"고 내 놓은 이 시집, 《수선화 밭에서》 향에 취해보길 권한다.
발 문
김경훈 시인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시 「연인들」을 먼저 만났다. 그 시는 제주4·3 당시 학살당하기 직전에 연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쓴 작품이다. 비극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 시를 보면 그의 연극적 기질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도 4·3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는 중에 이 시를 메모했을 것이다. 한날한시에 희생당한 연인들의 이름을 보며 극적 상상을 했으리라. 그 상상은 비장한 장면이다. 이런 연인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어쩌면 이번 『수선화 밭에서』의 서시는 이 시 「연인들」이 아닐까. 피의 4·3을 들여다보며 사랑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이 시 이후 이 시집을 묶기까지 스무 해 남짓 지나야 가능한 일일 정도로 서글픈 사랑이다.
오라방
이렇게 묶이니 등에 체온이 전해져 와요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 따뜻한 느낌만으로도 난 행복해요
〈중략〉
오라방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죽어도 이렇게 오라방과 함께 죽으니
미련 원망 없어요 저승 갈 때랑
이 더러운 구속 다 벗어두고
우리 날혼으로 다시 만나요
〈중략〉
저 총구가 우리를 겨눈다
-「연인들」 부분(『한라산의 겨울』(2003, 삶창))
제주작가회의에 가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 시를 읽고 김경훈 시인을 직접 만나니 경외감이 들었다. 농담 섞어 하는 말로 제주도에 저항시인이 둘 있다는 건 나중에야 들었다. 김경훈 시인처럼 오랫동안 4·3을 연구하며 시를 쓰는 강덕환 시인이 윤동주라면, 김경훈 시인은 이육사라고. 더욱이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기운은 영화배우 뺨칠 외모다. 그는 영화배우 최민식을 닮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아우라가 그에게서 풍긴다. 대개 고수들이 그러하듯 그는 별 말 없이 소주를 연거푸 마신다. 그후 전화를 통화를 할 때도 내가 들은 말은 "어, 기여."뿐일 때가 많았다.
김경훈 시인은 시인이면서 연극인이다. 그의 시를 이해하려면 그의 시에 나타나는 극적인 요소를 살펴야 한다. 그는 문학과 삶을 연출한다. 그가 연출하는 이 문학과 삶은 현장성과 사회성을 강조한다. 그는 늘 현장에서 시를 쓴다. 『고운 아이 다 죽고』(각, 2003)와 『한라산의 겨울』(삶창, 2003)을 비롯한 여러 시집에서 4·3 현장을 노래했다.
『눈물 밥 한숨 잉걸』(심지, 2008)에 수록된 「꿩꿩 장서방」을 보면 알 수 있듯 제주 민요를 바탕으로 한 시에서도 그는 4·3을 말한다. "큰아들 확 차가부난 내 팔자여 내 사주여/ 셋아들아 손님 온다 상제질 잘 허라/ 셋아들은 까마귀 와서 오꼿 차가버리니"(「꿩꿩 장서방」)라고 말하는 제주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의 4·3 시집은 『까마귀가 전하는 말』(각, 2017)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 시집의 부제가 '4·3 순례 시집'이다. 그리고 이제 돌아와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니 이 사랑가는 진한 울림을 수반하는 노래일 수밖에. 이 시집에는 '백동백', '물매화', '배롱나무', '시로미나무', '찔레꽃' 등 식물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이 식물들은 사랑을 상징한다. 시 「들꽃 이름 외우기」에서 "들꽃이나 그 닮은 이들을 닮아야겠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식물 이름과 사람 이름을 동등하게 보면서 우리가 호명해야 할 이름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4·3을 따라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만났겠는가. 비석에 이름만 남은 존재들을 불러주면서 사랑을 말하는 시인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사랑의 마음으로 말한다. 사람의 이름이 곧 들꽃 이름이다. 들꽃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시인에게 역사를 정명(正名)하는 그의 방식은 마침내 사랑이다.
시류에 때 묻자
눈 감고 등 돌려
그이에게 가는 길 온통 막히고
지금은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
-「맹지(盲地)」 부분
아직 일어서지 못한 백비처럼 "내통이 좌절된" 맹지가 있다. 인민유격대장 이덕구 가족묘는 회천동에 있는데, 입구가 딱히 없다. 그 가족묘를 보며 시인은 "역사의 맹지"를 말한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이름들 앞에서 시인은 맹지와 같은 답답함으로 가슴을 친다. 이 맹지는 섬 제주도와 닮았다. "역사의 맹지"에서 제주도는 피로 물들었다. 이덕구와 같은 고향인 김경훈 시인은 이덕구가 사회 교사로 재직했던 조천중학교를 졸업했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문학 동아리 '신세대(新世代)'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비로소 이덕구를 만난다. 물론 역사 속이덕구. 고향 선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며 시를 쓴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보다 딴따라가 되고 싶었다. 마당극으로 그의 연극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가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마당극 중에 '똥풀이'가 있었다. 법환동 하수종말처리장 사업을 풍자하는 마당극이었다. 그리고 화순 자유무역항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구류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후 놀이패 '한라산'에 들어가 신나게 딴따라가 되었다.
그는 중학교 때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특활 시간에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미술은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포기한다. 마침 그가 진학한 제일고등학교에는 고시홍 소설가, 문영택 수필가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1년 선배인 강덕환 시인이 있었고, 점차 그들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김수영, 신동엽의 시를 좋아했던 김경훈은 리얼리즘 문학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도 이상(李箱)을 좋아했던 문학청년이었다. '신세대'에서 마련한 세미나에서 그는 '이상 문학론'을 발표했다. 81학번 스무 살 청년은 이상을 선택했다.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이상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언어에 대한 저항으로 가득한 이상(理想)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온 몸을 튕겨
운명을 잠시
비켜서기도 하지만
그 찰나의 해갈만으론
해저의 중력이
너무 깊다
-「숭어」 부분
시인은 숭어가 되어 이 세상을 견뎌왔다.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비자림로 등의 현장에서 시를 쓰고 읽었다. 그가 쓴 시의 맛은 현장에서 그의 육성으로 들어야 더 좋다. 숭어처럼 날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살아있는 시를 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이 생길 기회도 있었으나 며칠 만에 학교에서 박차고 나왔다. 그의 첫 시집 『운동부족』(오름, 1993)은 몇 해 전에 지역 작가 후배들이 존경의 뜻으로 복간했다. 그는 활동가이기 이전에 시인이 우선인 사람이다. 시를 통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다.
김경훈은 몇 해 전부터 과수원지기로 일한다. 마치 북에 있던 백석이 실각 후 농장원이 된 것처럼 그는 귤밭에서 닭을 기르며 과수원을 관리한다. 그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그 전에도 소작을 했다가 크게 망한 적 있는 그는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과수원 한편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아간다. 이름은 '창고재(創古齋)'. 그냥 창고가 아니다. 이 이름은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따왔다. 그가 그곳에 들어가 펴낸 첫 번째 책이 이 시집 『수선화 밭에서』이다. 제주의 역사를 밀고나간 기저에 있는 사랑을 끌어올려 노래한다.
과수원지기의 삶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도시 생활 중 일조권을 잃고 나서다. 거주하던 빌라 옆으로 큰 건물이 들어서면서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조천리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낡은 감귤창고 몇 동이 있는 그 곳은 낮에도 밤처럼 적막하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
-「수선화 밭에서」 전문
수선화를 좋아하는 시인은 당연하게도 창고재 옆에 수선화를 심었다. 수선화 옆으로는 토란, 물외, 참외, 고추, 가지, 호박, 도라지, 미나리 등을 심었다. 올해 나이 예순, 삶을 되돌아보며 그는 수선화 밭에서 시를 쓰며 지낸다. "그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름들이 오죽 많겠는가.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제 그 이름마저 지워지려 하니 시인은 이름을 부르듯 작물을 심는다. 귤 하나가 다 사람 얼굴로 보일 것이다.
그는 농부의 아들이다. 데모를 하다가도 일요일이면 농약을 쳤다. 그의 시집 발간은 농부의 수확과도 같다. 해거리가 지난 땅에서 얻은 이 시집에는 몇 년 간의 삶이 들어있다. 최근에 '산오락회'를 따라 전국 유랑을 했다. 안동에서는 안상학 시인과 함께 문상길 중위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제주의 민중가수 최상돈과 어울리며 우리 마음의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그를 따라 4·3 유적지에 간 적이 있는데, 그에 손에는 늘 한라산 소주병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찾아가고도 맨정신으로는 들어가기 주저하게 되는 모양이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이덕구 산전을 찾고, 광복절에는 4·3 유격대 시신 방치터인 속냉이골 벌초를 한다. 그에게 제주도 전체가 수선화 밭이 되는 순간이다. 그 이름들이 지워지지 않게 산전을 찾아 길을 내고, 속냉이골에 제주(祭酒)를 올린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는
상처받은 연인들처럼
바람마저 숨죽인 벌건 대낮에
저, 저,
산과 바다가
-「산과 바다가」 부분
사랑 없는 역사는 불가능하다. 다사함 김명식 시인이 2011년에 낸 시집 제목도 '사랑의 깊이'였다. 이 땅을 사랑한 사람들의 기록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경훈 시인의 문학이 이제 후기일 수는 없다. 그는 창고재에서 창작의 열기를 더한다. 그는 이덕구에 관한 세 가지 방식의 말하기를 준비 중이다. 이덕구 평전, 이덕구 서사시, 이덕구 영화 시나리오. 세 가지 장르로 나뉘어서 꼭 해야 할 이야기가 그의 마음에 있다.
그의 창고재 문학 시기는 이제 시작되었다. 앞으로 그 작은 공간에서 김경훈 문학의 불꽃이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너븐숭이 4·3기념관 관장 시절에 기념관 한편에 있는 애기무덤 옆에 심어둔 수선화의 밝기로 지속될 거라 믿는다. 고 정군칠 시인과 함께 심은 황근처럼 그 꽃은 밭을 이루어 제주도 전역을 덮으리라. 사랑의 밭에서 사랑이 흐드러지게 피리라.
현택훈(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원)
제주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이래 연륙 포구이자 제주 유림의 본향으로 이름 높던 '조천'은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서 제주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문기가 서린 포구마을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그러한 고향의 문기를 물렸는지 조 천 사람다운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 냄새가 포구의 갯내음만은 아니리라, 그건 그의 DNA 속에 흐르는 조천의 전근대를 지나 해방공간 역사의 옷깃에서 묻혀 온 냄새가 틀림없으리라.
우스갯소리로 모 원로작가는 술좌석에서 푸줏간 시라고 약평, 또는 악평한 적이 있다. 그건 그가 그간 써낸 피비린 4.3의 시어들이 날 것 그대로의 언어들이었던 데서 기인하는 바일 것이다. 특히 4.3이 아니더라도 강정에 꽂혀 강정 투쟁의 최전선에서 그가 써낸 시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시인은
살인자다
촌철寸鐵의,
능히
비인非人을 제압하는
- 〈촌철살인 寸鐵殺人〉 전문
그의 시어들은 바로 비인(非人)을 제압해야 했기에, 무척이나 날카롭다. 찔리면 내상이 깊은 위험한 칼날의 언어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만 접한 독자들이나,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과격하거나, 거친 시인으로 기억할 듯하지만, 사실 그는 지극히 정이 많은 시인이고 눈물도 많은 시인이다. 그랬기에 그는 제주섬이 아파할 때마다 신열을 앓는다. 그의 여린 섬세한 신경세포들이 이 섬이 또는 이 섬의 자식들이 아파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지 못했으리라. 어디 이 섬의 일로만 아파할까?
그의 시는 그러므로 신열의 언설들이다. 그랬기에 그의 시어들에는 펄펄 끓는 열정이 배어 있다.
그런 그가 자칭 '서정 시집'을 냈다. 굳이 '서정'을 강조한 이번 시집에서 그는 저간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다분히 자부자분한 시어들로 시편들을 엮었다. 물론 몇몇 시편들에서는 여전히 촌철의 시어들이 행간을 채우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가 그간 간간이 써두었던 자칭 서정시들과 새 시집을 묶기 위해 최근에 써낸 시편들까지 그의 섬세한 시선과 정 많은 심성을 실은 언어들로 채워졌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
- 〈수선화 밭에서〉 전문
수선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시집 제목도 '수선화 밭에서'로 정했다. 수선화는 제주섬에 지천으로 널린, 지중해 연안이 고향인 귀화식물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섬꽃이 되었다. 이 수선화가 귀한 것임을 밝힌 것은 제주 대정골에서 오랫동안 귀양 생활을 했던 '추사'다. 그가 제주에 유배와서 화첩에서나 보는 수선화가 유배지 마을에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환호했고, 몇몇 글에 제주섬이 수선화 시편 몇과 썰을 남기면서 제주섬의 수선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왕 수선화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나가면,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특히 서화가들이나 호사가들이 애지중지했던 것은 난초다. 춘란, 한란으로 널리 알려진 제주섬의 난초는 예로부터 선비의 지조와 기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들에게는 고결한 화초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고결한 신분이었다. 추사 역시 지독한 애난가여서 빼어난 수작들을 남기고 있다.
어찌 보면 난은 고귀한(?) 지배계급인 선비들의 귀족성을 지닌데 반해, 온 섬에 지천으로 깔렸던 수선화는 민초의 삶을 닮았다. 또한 빼어나서 고귀하기는커녕 농부들의 호미에 뽑혀 나가는 등 잡초 취급을 받았지만, 한겨울 동리 울담 밑에 무심히 자라 온 마을을 다디단 꽃 향으로 물들였다.
그런 수선화는 어찌 보면 늘 아웃사이더 포지션인 그를 닮았다. 그래서 수선화에 더욱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
내통이 좌절된
회천동 이덕구 가족묘
도 막은 밭
- 〈맹지 盲地〉 부분
맹지는 제주에서 소위 '도(道) 없는 밭(땅)' 즉 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없는 막힌 땅을 말한다. 그러기에 맹지는 땅값도 도 있는 밭에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덕구, 4.3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결코 잊힐 수 없는 이름 석자다. 제주도 인민유격대 제2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4.3 발발 이후 1대 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이 입북하면서 넘겨받은 빨치산의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훤칠한 미남형 리더였던 김달삼에 비해 벅벅얽은 얼골에 사람 좋았던 이덕구는 흔히 선말 제주섬의 만란을 이끌었던 '장두'에 비견된다. 장두란 섬사람들의 억울하고 굶주리는 삶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고 등소(等訴)의 맨 앞에 섰던 인물을 가르킨다. 즉, 자신의 목숨을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내어놓는 이타적 희생정신의 화신이다. 그리하여 장두의 목숨을 바친 후에야 겨우 나아지는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제주인들에게 장두는 영웅이면서 은인이기에 섬사름들은 결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대를 이어 신화로 전설로 전승한다.
이덕구 역시 그러했다. 폭도라고 낙인찍혔고, 한 집안이 씨 멸족 당했지만, 그는 홍길동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신출귀몰했다. 하지만, 패배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 4.3장두 이덕구. "지금은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가 되었지만, 시인은 도 막은 밭 앞에서 전설의 부활을 꿈꾼다. 언젠가는 이덕구 가족묘의 도 막은 밭이 비로소 길이 생기고 역사의 성지로 탈바꿈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의 시들은 바로의 이 역사의 맹지에 길을 뚫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 시인, 조천 사름, 김경훈.
그의 시어들은 사정없이 몰아치며 싸대기를 후려패는 섬 바람의 매서운 맛과 동리마다 무심히 자라 온 마을에 자신의 향을 채워 사악한 것들을 정화하는 수선화 향을 닮았다.
매섭지만 달다.
매서운 바람의 시만 써대던 그가 난생 처음 "나도 서정시 쓴다"고 내 놓은 이 시집, 《수선화 밭에서》 향에 취해보길 권한다.
발 문
김경훈 시인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시 「연인들」을 먼저 만났다. 그 시는 제주4·3 당시 학살당하기 직전에 연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쓴 작품이다. 비극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 시를 보면 그의 연극적 기질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도 4·3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는 중에 이 시를 메모했을 것이다. 한날한시에 희생당한 연인들의 이름을 보며 극적 상상을 했으리라. 그 상상은 비장한 장면이다. 이런 연인들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어쩌면 이번 『수선화 밭에서』의 서시는 이 시 「연인들」이 아닐까. 피의 4·3을 들여다보며 사랑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이 시 이후 이 시집을 묶기까지 스무 해 남짓 지나야 가능한 일일 정도로 서글픈 사랑이다.
오라방
이렇게 묶이니 등에 체온이 전해져 와요
마지막 가는 길에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 따뜻한 느낌만으로도 난 행복해요
〈중략〉
오라방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죽어도 이렇게 오라방과 함께 죽으니
미련 원망 없어요 저승 갈 때랑
이 더러운 구속 다 벗어두고
우리 날혼으로 다시 만나요
〈중략〉
저 총구가 우리를 겨눈다
-「연인들」 부분(『한라산의 겨울』(2003, 삶창))
제주작가회의에 가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 시를 읽고 김경훈 시인을 직접 만나니 경외감이 들었다. 농담 섞어 하는 말로 제주도에 저항시인이 둘 있다는 건 나중에야 들었다. 김경훈 시인처럼 오랫동안 4·3을 연구하며 시를 쓰는 강덕환 시인이 윤동주라면, 김경훈 시인은 이육사라고. 더욱이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기운은 영화배우 뺨칠 외모다. 그는 영화배우 최민식을 닮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한 아우라가 그에게서 풍긴다. 대개 고수들이 그러하듯 그는 별 말 없이 소주를 연거푸 마신다. 그후 전화를 통화를 할 때도 내가 들은 말은 "어, 기여."뿐일 때가 많았다.
김경훈 시인은 시인이면서 연극인이다. 그의 시를 이해하려면 그의 시에 나타나는 극적인 요소를 살펴야 한다. 그는 문학과 삶을 연출한다. 그가 연출하는 이 문학과 삶은 현장성과 사회성을 강조한다. 그는 늘 현장에서 시를 쓴다. 『고운 아이 다 죽고』(각, 2003)와 『한라산의 겨울』(삶창, 2003)을 비롯한 여러 시집에서 4·3 현장을 노래했다.
『눈물 밥 한숨 잉걸』(심지, 2008)에 수록된 「꿩꿩 장서방」을 보면 알 수 있듯 제주 민요를 바탕으로 한 시에서도 그는 4·3을 말한다. "큰아들 확 차가부난 내 팔자여 내 사주여/ 셋아들아 손님 온다 상제질 잘 허라/ 셋아들은 까마귀 와서 오꼿 차가버리니"(「꿩꿩 장서방」)라고 말하는 제주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의 4·3 시집은 『까마귀가 전하는 말』(각, 2017)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 시집의 부제가 '4·3 순례 시집'이다. 그리고 이제 돌아와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니 이 사랑가는 진한 울림을 수반하는 노래일 수밖에. 이 시집에는 '백동백', '물매화', '배롱나무', '시로미나무', '찔레꽃' 등 식물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이 식물들은 사랑을 상징한다. 시 「들꽃 이름 외우기」에서 "들꽃이나 그 닮은 이들을 닮아야겠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식물 이름과 사람 이름을 동등하게 보면서 우리가 호명해야 할 이름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4·3을 따라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만났겠는가. 비석에 이름만 남은 존재들을 불러주면서 사랑을 말하는 시인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사랑의 마음으로 말한다. 사람의 이름이 곧 들꽃 이름이다. 들꽃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는 시인에게 역사를 정명(正名)하는 그의 방식은 마침내 사랑이다.
시류에 때 묻자
눈 감고 등 돌려
그이에게 가는 길 온통 막히고
지금은
진입로조차 차단된
역사의 맹지
-「맹지(盲地)」 부분
아직 일어서지 못한 백비처럼 "내통이 좌절된" 맹지가 있다. 인민유격대장 이덕구 가족묘는 회천동에 있는데, 입구가 딱히 없다. 그 가족묘를 보며 시인은 "역사의 맹지"를 말한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이름들 앞에서 시인은 맹지와 같은 답답함으로 가슴을 친다. 이 맹지는 섬 제주도와 닮았다. "역사의 맹지"에서 제주도는 피로 물들었다. 이덕구와 같은 고향인 김경훈 시인은 이덕구가 사회 교사로 재직했던 조천중학교를 졸업했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문학 동아리 '신세대(新世代)'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비로소 이덕구를 만난다. 물론 역사 속이덕구. 고향 선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며 시를 쓴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보다 딴따라가 되고 싶었다. 마당극으로 그의 연극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가 대학생 시절 참여했던 마당극 중에 '똥풀이'가 있었다. 법환동 하수종말처리장 사업을 풍자하는 마당극이었다. 그리고 화순 자유무역항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구류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후 놀이패 '한라산'에 들어가 신나게 딴따라가 되었다.
그는 중학교 때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특활 시간에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미술은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포기한다. 마침 그가 진학한 제일고등학교에는 고시홍 소설가, 문영택 수필가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1년 선배인 강덕환 시인이 있었고, 점차 그들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김수영, 신동엽의 시를 좋아했던 김경훈은 리얼리즘 문학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도 이상(李箱)을 좋아했던 문학청년이었다. '신세대'에서 마련한 세미나에서 그는 '이상 문학론'을 발표했다. 81학번 스무 살 청년은 이상을 선택했다.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이상을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언어에 대한 저항으로 가득한 이상(理想)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온 몸을 튕겨
운명을 잠시
비켜서기도 하지만
그 찰나의 해갈만으론
해저의 중력이
너무 깊다
-「숭어」 부분
시인은 숭어가 되어 이 세상을 견뎌왔다.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비자림로 등의 현장에서 시를 쓰고 읽었다. 그가 쓴 시의 맛은 현장에서 그의 육성으로 들어야 더 좋다. 숭어처럼 날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살아있는 시를 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이 생길 기회도 있었으나 며칠 만에 학교에서 박차고 나왔다. 그의 첫 시집 『운동부족』(오름, 1993)은 몇 해 전에 지역 작가 후배들이 존경의 뜻으로 복간했다. 그는 활동가이기 이전에 시인이 우선인 사람이다. 시를 통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다.
김경훈은 몇 해 전부터 과수원지기로 일한다. 마치 북에 있던 백석이 실각 후 농장원이 된 것처럼 그는 귤밭에서 닭을 기르며 과수원을 관리한다. 그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계획이었다. 그 전에도 소작을 했다가 크게 망한 적 있는 그는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과수원 한편에 컨테이너를 놓고 살아간다. 이름은 '창고재(創古齋)'. 그냥 창고가 아니다. 이 이름은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따왔다. 그가 그곳에 들어가 펴낸 첫 번째 책이 이 시집 『수선화 밭에서』이다. 제주의 역사를 밀고나간 기저에 있는 사랑을 끌어올려 노래한다.
과수원지기의 삶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도시 생활 중 일조권을 잃고 나서다. 거주하던 빌라 옆으로 큰 건물이 들어서면서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조천리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낡은 감귤창고 몇 동이 있는 그 곳은 낮에도 밤처럼 적막하다.
꽃내음에
취해
죽어도 좋으리
그대 사랑
지천으로 흐드러졌으니
나 여기에
묻혀
꽃이 되어도 좋으리
-「수선화 밭에서」 전문
수선화를 좋아하는 시인은 당연하게도 창고재 옆에 수선화를 심었다. 수선화 옆으로는 토란, 물외, 참외, 고추, 가지, 호박, 도라지, 미나리 등을 심었다. 올해 나이 예순, 삶을 되돌아보며 그는 수선화 밭에서 시를 쓰며 지낸다. "그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름들이 오죽 많겠는가.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제 그 이름마저 지워지려 하니 시인은 이름을 부르듯 작물을 심는다. 귤 하나가 다 사람 얼굴로 보일 것이다.
그는 농부의 아들이다. 데모를 하다가도 일요일이면 농약을 쳤다. 그의 시집 발간은 농부의 수확과도 같다. 해거리가 지난 땅에서 얻은 이 시집에는 몇 년 간의 삶이 들어있다. 최근에 '산오락회'를 따라 전국 유랑을 했다. 안동에서는 안상학 시인과 함께 문상길 중위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제주의 민중가수 최상돈과 어울리며 우리 마음의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그를 따라 4·3 유적지에 간 적이 있는데, 그에 손에는 늘 한라산 소주병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번 찾아가고도 맨정신으로는 들어가기 주저하게 되는 모양이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이덕구 산전을 찾고, 광복절에는 4·3 유격대 시신 방치터인 속냉이골 벌초를 한다. 그에게 제주도 전체가 수선화 밭이 되는 순간이다. 그 이름들이 지워지지 않게 산전을 찾아 길을 내고, 속냉이골에 제주(祭酒)를 올린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는
상처받은 연인들처럼
바람마저 숨죽인 벌건 대낮에
저, 저,
산과 바다가
-「산과 바다가」 부분
사랑 없는 역사는 불가능하다. 다사함 김명식 시인이 2011년에 낸 시집 제목도 '사랑의 깊이'였다. 이 땅을 사랑한 사람들의 기록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경훈 시인의 문학이 이제 후기일 수는 없다. 그는 창고재에서 창작의 열기를 더한다. 그는 이덕구에 관한 세 가지 방식의 말하기를 준비 중이다. 이덕구 평전, 이덕구 서사시, 이덕구 영화 시나리오. 세 가지 장르로 나뉘어서 꼭 해야 할 이야기가 그의 마음에 있다.
그의 창고재 문학 시기는 이제 시작되었다. 앞으로 그 작은 공간에서 김경훈 문학의 불꽃이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너븐숭이 4·3기념관 관장 시절에 기념관 한편에 있는 애기무덤 옆에 심어둔 수선화의 밝기로 지속될 거라 믿는다. 고 정군칠 시인과 함께 심은 황근처럼 그 꽃은 밭을 이루어 제주도 전역을 덮으리라. 사랑의 밭에서 사랑이 흐드러지게 피리라.
현택훈(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원)
목차
목차
시인의 말ㆍ3
제1부 꽃의 위로
백동백
꽃의 위로
물매화
반얀나무
코스모스
배롱나무
복수초福壽草
들꽃 이름 외우기
상사화相思花
서향瑞香
해바라기
선인장아
시로미나무
여뀌와 대우리
수선화 밭에서
제2부 찔레꽃 당신은
경훈씨 그거 알아?
그대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더덕 캐기
맹지盲地
뭘 해도
오미자
호 아저씨
권정생
이 세계 절반의 사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하여
정선 여인
찔레꽃 당신은
미영美影의 달
도안응이아*의 봄
공철이형
우리 현미
제3부 산과 바다가
윤회輪廻
산山
계단
만월滿月
봄
조난遭難
산과 바다가
아무도 없었다
춘분春分
포구浦口에서
귤향橘香
벌초伐草
민들레거나 생강나무꽃 같은
입김
한라병원 5병동 502호
제4부 뚝배기 그릇처럼
뚝배기 그릇처럼
권위에 대하여
뇌 세척 바이러스
고해苦海
나의 절명사絶命辭
ㅋ
빤스의 수명
낮아진다는 것
숭어
대접과 그릇
우울
촌철살인寸鐵殺人
입맞춤
뚱딴지
제주상사화
제1부 꽃의 위로
백동백
꽃의 위로
물매화
반얀나무
코스모스
배롱나무
복수초福壽草
들꽃 이름 외우기
상사화相思花
서향瑞香
해바라기
선인장아
시로미나무
여뀌와 대우리
수선화 밭에서
제2부 찔레꽃 당신은
경훈씨 그거 알아?
그대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더덕 캐기
맹지盲地
뭘 해도
오미자
호 아저씨
권정생
이 세계 절반의 사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하여
정선 여인
찔레꽃 당신은
미영美影의 달
도안응이아*의 봄
공철이형
우리 현미
제3부 산과 바다가
윤회輪廻
산山
계단
만월滿月
봄
조난遭難
산과 바다가
아무도 없었다
춘분春分
포구浦口에서
귤향橘香
벌초伐草
민들레거나 생강나무꽃 같은
입김
한라병원 5병동 502호
제4부 뚝배기 그릇처럼
뚝배기 그릇처럼
권위에 대하여
뇌 세척 바이러스
고해苦海
나의 절명사絶命辭
ㅋ
빤스의 수명
낮아진다는 것
숭어
대접과 그릇
우울
촌철살인寸鐵殺人
입맞춤
뚱딴지
제주상사화
저자
저자
김경훈
1962년 제주시 조천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와 〈풀잎소리 문학동인〉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주문화운동협의회〉에서 제주청년문학회와 마당극 단체인 〈놀이패 한라산〉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제주작가회의에서 14년째 자유실천위원회 일을 하고 있다.
1992년 〈통일문학통일예술〉 창간호에 시 〈분부사룀〉을 발표했다.
1993년 첫 시집으로 《운동부족》을 상재한 이후, 《삼돌이네 집》,《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우아한 막창》, 《눈물 밥 한숨 잉걸》, 『한라산의 겨울》, 《강정木시》, 《그날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 《까마귀가 전하는 말》 등을 펴냈다.
산문집으로 《낭푼밥 공동체》가 있고, 마당극 대본집으로 《살짜기 옵서예》와 《소옥의 노래》가 있으며, 제주4·3 라디오 드라마 시나리오를 묶은 《한라산》이 있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문편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와 《강정은 4·3이다》를 출간했다.
이외에 《제주4·3유적지 기행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학민사), 『무덤에서 살아온 4·3수형자들》(역사비평사), 《4·3문학지도Ⅰ·Ⅱ》(제주민예총), 《그늘 속의 4·3》(선인),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봄은 가도 봄은 오고》(제주작가회의) 등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와 〈풀잎소리 문학동인〉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주문화운동협의회〉에서 제주청년문학회와 마당극 단체인 〈놀이패 한라산〉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제주작가회의에서 14년째 자유실천위원회 일을 하고 있다.
1992년 〈통일문학통일예술〉 창간호에 시 〈분부사룀〉을 발표했다.
1993년 첫 시집으로 《운동부족》을 상재한 이후, 《삼돌이네 집》,《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우아한 막창》, 《눈물 밥 한숨 잉걸》, 『한라산의 겨울》, 《강정木시》, 《그날 우리는 하늘을 보았다》, 《까마귀가 전하는 말》 등을 펴냈다.
산문집으로 《낭푼밥 공동체》가 있고, 마당극 대본집으로 《살짜기 옵서예》와 《소옥의 노래》가 있으며, 제주4·3 라디오 드라마 시나리오를 묶은 《한라산》이 있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문편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와 《강정은 4·3이다》를 출간했다.
이외에 《제주4·3유적지 기행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학민사), 『무덤에서 살아온 4·3수형자들》(역사비평사), 《4·3문학지도Ⅰ·Ⅱ》(제주민예총), 《그늘 속의 4·3》(선인),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봄은 가도 봄은 오고》(제주작가회의) 등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