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기억(양장본 HardCover)
오승국 시집
오 시인의 첫 시집인 만큼 이 시집에는 그의 젊은 날의 시편들이 실려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추억의 시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아쉬운 기억’이다. 새로운 시편들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오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편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낸 지난 40여 년간의 아쉬운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거나 환기할 수 있다는 점, 그런 동시대적 공감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의 묘미가 있다. 오 시인을 알고 지낸 독자나 모르는 독자나 한 번쯤 ‘제주도 시인’ 오승국의 시집을 펼쳐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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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오 시인의 문학과의 인연은 대학시절부터 시작된다. 제주대학 문학동아리 〈신세대〉에 가입하면서 그의 문청시대는 열렸다. 당시 신세대는 소위 진보적 문학동아리였다. 현재 제주에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시인 중 이 신세대 출신들이 많다. 김수열 시인은 발문에서 "문학동아리 〈신세대〉에 가입한다는 것은 이미 그가 문학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제가 발 딛고 선 제주를 자양분 삼아 민족과 민주와 민중을 담아내는 그런 문학으로 지향점을 삼았다는 것이다. 문학동아리 〈신세대〉는 제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출중한 문청조직"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는 이들 신세대의 멤버들과 젊은 날의 우정과 객기, 진보적 낭만(?)을 찾으면서 시인이 되어 갔다.
대학 1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게 되는데, 여기엔 일종의 전설이 있어 짧게 소개한다. 입대 날 논산훈련소에 늦게 도착해보니 영문이 잠기고 위병소에서는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번에 다시 오라고 하자 그 문을 잡고 돌아갈 수 없다고 지구전을 펼친 결과, 일반 훈련중대는 이미 인원 편제가 끝났던 터라 주로 헌병이나 특전사 카투사로 뽑혀 가는 훈련중대에 배치된 것이다. 이 훈련기간 벌어진 듣다 보면 배꼽을 잡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꽤 있어 술자리 담화로 최고의 안줏감이었다. 사실 오 시인은 동 세대의 평균 키인 170cm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런 그가 특전사나 헌병으로 뽑혀갈 훈련중대에서 훈련받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지각한 탓에 카투사가 된 그는 동두천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도 쉬지 않고 시를 썼던 모양인데 이 시집에도 실려있다. 동두천은 주한미군이 오래도록 주둔한 곳으로 소위 양공주, 양키, 양주 등이 떠오르는 곳이었기에 그는 말로만 듣던 소위 제국 아메리카 양키들의 만행과 동두천 주한미군 생태계를 들여 다 보았던 경험을 시로 남긴 것이다.
3년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한 그는 복학하여 신세대 활동을 지속하다 대학을 마친다. 졸업 후 〈신세대〉 선배들이 활동하던 문학동인 〈풀잎소리〉에 가입하여 시작 활동을 계속한다. 또한 제주에서는 87년 유월항쟁 이후 장르별 문화운동 그룹들이 이 시기에 속속 생겨나는데, 신세대 인맥이 주를 이루던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소속 〈청년문학회〉에 가입하여 진보적 문화운동에 가담하면서 지역문화운동가로서 성장해 나간다. 이 당시까지 오 시인은 늘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문화운동판의 마당발이 되어있었다. 이 시기 그의 별칭이 '자칭타칭 민족시인'이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인데, 언젠가 제주의 민주화운동사를 다룬 사진집들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제주지역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찍힌 사진들 중에 그가 끼지 않은 사진은 보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우연인지 의도였는지, 현수막을 펼치면 늘 그가 어느 한쪽에서 잡고 있던 것이다. 혹시나 하여 다시 뒤적여도 마찬가지였다. 현수막을 들면 절대 트리밍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 후 오 시인의 활동반경은 4·3으로 옮겨간다. 〈제주4·3연구소〉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4·3 관련 활동을 열정적으로 이어나간다. 물론 4·3과의 인연은 이미 이전에 제주도의회 4·3특위에서 주도하여 처음으로 4·3피해신고조사가 시작될 때, 조사요원으로 2년여간 활동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4·3생존자들이 많이 살아 있을 때였고, 그들을 일일이 만나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생존자 및 유족들의 개인사에 드리운 4·3으로 인한 상처와 회한을 육성으로 접하면서 4·3에 대한 그의 인식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이 시집의 시편들 중 〈죽었다가 살았다가 또 죽었네〉, 〈키 커부난 죽언〉, 〈진혼〉 등이 그 육성을 시로 남긴 것들이다.
연구소의 4·3사무처장을 맡으면서 그는 이제 연구소의 아이콘이 되어 갔다. 4·3관련 각종 집회나 성명서 기자회견 때면 예외 없이 그가 나서서 마이크를 잡거나 원로들을 모시고 자리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종종 포착된다. 특히 이 시기 그는 4·3유적지 해설가로 유명세를 누렸다. 이때 마침 소위 다'크투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4·3유적지 탐방을 찾아 제주에 온 단체나 그룹들은 우선 4·3연구소에 먼저 물어온다. "저 혹시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수 없을까요?" 하면 오 시인이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런 횟수가 하나둘 늘더니 어느 날 오 시인이 4·3유적지 해설사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것이다. 물론 거의 봉사활동이나 다름없던 사무처장의 가난한 주머니를 나름 쏠쏠하게 채워주는 건 덤이었다.
그러던 중 정부의 4·3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4·3의 법적 제도적 해결이 시작될 즈음, 4·3평화공원이 조성되고 평화재단이 문을 연다. 이때 그는 4·3평화재단 직원으로, 소위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 받아 경력직 직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이제 거리나 소위 문화판보다는 주로 평화재단이 벌이는 행사장에서 곧잘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 오 시인이 시들에게 미안하게 된 시기는 바로 이 시기부터였다. 공기관의 실무직원으로 정부미를 먹게 되면서 게을러지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일에 치여 시 쓸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카투사일 때도 시를 썼던 시인 오승국이 시와 소원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몇 편의 작품들을 써냈는데, 다름 아닌 위령비에 새겨진 추도시들이 그것이다. 이 즈음에 도내 곳곳에 4·3위령비가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오 시인의 추도시들이 4·3위령비들에 꽤나 많이 새겨져 있다. 혹 그 위령비들을 보게 되면 그의 추도시들을 재미 삼아 한 번쯤 찾아보시길 권한다.
올해 환갑인 오 시인에게도 정년퇴임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재단 사업팀장을 거쳐 4·3평화재단 산하 4·3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으로 일하던 그도 예외 없이 정년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오 시인이 회원으로 있는 〈제주작가회의〉 동료와 후배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의 시집을 내자고 도원결의를 한 것이다. 안 그러면 그의 시집은 영원히 빛을 볼 날이 없을 거라고 선배 후배가 거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볶아댄 결과 이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아마도 이제 제주의 문화판 곳곳에서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늘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다시 시인이 되어 문화판을 마당발로 쓸고 다닐 그가 눈에 선하다. 아마도 그의 두 번째 시집은 훨씬 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그의 신작 시들을 만날 날을 고대한다.
오 시인의 첫 시집인 만큼 이 시집에는 그의 젊은 날의 시편들이 실려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추억의 시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아쉬운 기억'이다. 새로운 시편들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오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편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낸 지난 40여 년간의 아쉬운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거나 환기할 수 있다는 점, 그런 동시대적 공감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의 묘미가 있다. 오 시인을 알고 지낸 독자나 모르는 독자나 한 번쯤 '제주도 시인' 오승국의 시집을 펼쳐보시길 권한다.
목차
목차
감나무와 할머니
용강 마을에서
복수초
눈물꽃
그 할아버지
진혼
남원의 노래
사멸
키 커부난 죽언
손가락총
죽었다가 살았다가 또 죽었네
제2부 아쉬운 기억
참깨
모슬포 이야기
우리 시대의 장두 - 양용찬 열사에게 바침
알젠틴에 보내는 편지
알젠틴 소녀에게
세기말 기억
지귀섬 연가
숨비소리
억새별곡
제3부 동두천 하늘 아래
동두천 하늘 아래 1 - 꺾인 꽃
동두천 하늘 아래 2 - 정지된 호흡
동두천 하늘 아래 3 - 민들레의 노래
동두천 하늘 아래 4 - 쓰러진 풀잎
동두천 하늘 아래 5 - 한탄강
동두천 하늘 아래 6 - 사랑을 위하여
동두천 하늘 아래 7 - 경원선 철로
동두천 하늘 아래 8 - 한국적 슬픔
동두천 하늘 아래 9 - 울지 말아요
동두천 하늘 아래 10 - 다시 만나면
제4부 광대한 바다, 감귤의 고향
그 바닷가에서
어머니, 해녀 조기은퇴
보고 싶다 친구들
월계수의 마을
그리운 형들
아버지, 감귤농사 시작
4.3의 기억 - 모자쌍묘
2개의 무덤에 어머니와 4명의 아들 합장
발문
오랜 유예를 마치고 마침내 도착한...(김수열)
저자
저자
대학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와 〈풀잎소리 문학동인〉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주문화운동협의회 대표, 제주청년문학회 대표를 역임하며 작품활동을 했고 공동창작 「용강마을, 그 피어린 세월」을 발표했다. 지금은 제주작가회의에서 활동 중이다.
1998년 바람처럼 까마귀처럼(실천문학사)에 시 〈복수초〉 등 5편을 발표했고, 1999년 제주작가 창간호에 시 〈모슬포 이야기〉 등 3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부터 2년간 「오승국의 4·3유적지를 찾아서」를 한라일보에 연재했으며, 2019년에는 JIBS 〈4·3유적지 기행〉을 진행하여 방송대상 수상 및 국가기록원 영구보존필름으로 선정되었다.
이외에 2001년부터 6년 동안 제주4·3연구소 사무처장을 역임했고, 2009년부터 2021년 까지 제주4·3평화재단 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 총무팀장, 기념사업팀장, 공원관리팀장을 역임하며 「4·3유적Ⅰ·Ⅱ」, 「무덤에서 살아온 4·3수형자들」 등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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