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 백정기(도서출판 각 시선 47)
백남이 다큐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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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그러한 백시인의 마음의 빚, 즉 후손의 의무, 잊혀지고 묻혀진 의결투사를 발굴하는 사명감,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죽음의 공포도 끌어안고 죽음의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 사내의 옹골찬 삶을 제대로 그려내는 일이리라 백시인의 문학혼은 이러한 마음의 빚의 불쏘시개가 되어 이제 구파 백정기라는 이름으로. 백시인은 “감히 이 치졸한 헌사를 백정기 열사님의 영전에 바친다.”는 아주 겸양의 언사로 내어놓지만, 이 시집은 백 시인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백시인의 표현처럼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에 값하는 오랜 수고로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백남이 다큐시집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이 시집은 한 많은 일제강점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순수성과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삶을 불살랐던 구파의 삶을 그나마 온전히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주 제한적인 자료들과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구파 시대의 어르신들마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구파의 생애를 올곧게 복원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백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리라.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실패한 거사와 강점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밀정의 늪에서 오직 조국해방의 꿈을 쫓으며 풍찬노숙했던 망국의 의열청년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이 시집은 모든 이름이 드러나지 못한 수십 수백의 또 다른 구파들에게 바치는 시집이기도 하다.
구파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구파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시를 읽는 재미를, 구파를 몰랐던 독자들에겐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항쟁의 선봉에서 살았던 또 다른 독립투사를 만난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실패한 거사와 강점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밀정의 늪에서 오직 조국해방의 꿈을 쫓으며 풍찬노숙했던 망국의 의열청년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이 시집은 모든 이름이 드러나지 못한 수십 수백의 또 다른 구파들에게 바치는 시집이기도 하다.
구파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구파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시를 읽는 재미를, 구파를 몰랐던 독자들에겐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항쟁의 선봉에서 살았던 또 다른 독립투사를 만난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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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약산 김원봉…. 우리 항일독립운동의 청사에 길이 남을 이름들. 결코 잊어서도 안 되지만 잊을 수도 없는 이름들일 것이다.
최근 영화 암살, 밀정 등을 통해, 항일투쟁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하지만 여전히 역사의 뒤안에서 잊혀져 가는 뭇 열사, 의사 의열투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처럼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구파 백정기 의사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일 정도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 학교에서 먼저 배웠던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인 의거로서 역사적 의의가 큰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윤봉길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의 거사는 윤봉길만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구파 역시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으나, 공원을 출입할 수 있는 입장권이 도착하지 않으면서 구파는 그 시각에 홍구공원에 당도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이날 구파 역시 입장권을 제때에 전달 받을 수만 있었다면, 홍구공원의 폭탄 의거는 더욱 큰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날 홍구공원의 거사를 준비한 세력은 바로 백범 김구의 '임정'과 이회영 백정기 등이 결성한 '남화한청연'이 그것이다. 두 세력 다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를 노리고 있었으나, 남화한청연의 거사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고, 그 결과 김구와 윤봉길은 역사에 남는 사건을 성공시켰으나, 무위로 끝난 남화한청연과 백정기의 거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잊혀진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
구파는 이 거사를 포함해 의열투쟁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또한 아나키스트로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가 성공시킨 의거는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역사에도 남지 못했던 것이다. 무정부주의항일투쟁조직인 남화한인청년연맹 활동, 중국인 일본인 무정주의자들과 연대한 항일구국연맹 활동, 그 산하의 행동대인 흑색공포단을 주도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결국은 일제가 깔아놓은 밀정의 마수에 걸려들고 만다.
1933년 3월 17일 상해 진주 일본군사령부와 유길명(有吉明; 아리요시 아키라) 공사가 중국정부 요인의 매수공작을 위해 중국 요리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연회를 베푸는 기회에 기습공격을 가할 계획을 세웠다. 이 거사를 위해 선발된 백정기·이강훈·원심창은 수류탄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유자명의 인도를 받아 상해 프랑스 조계로 들어가 거사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육삼정 연회는 실은 일제가 밀정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기 위해 벌인 함정이었던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구파 백정기 의사는 1935년 5월 22일 나가사키 감옥에서 안타깝게도 옥사하고 만다. 최근 '밀정'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일부 알려진 항일운동의 흑역사인 밀정을 2차례에 걸쳐 방영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거사는 바로 이 밀정이 일제와 결탁해 벌인 계획된 함정이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7월 6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봉환되어 독립운동가 3의사로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 백범 기구의 지시에 의한 일이었다. 반년 전 귀국해 그가 급하게 서두른 대사 중의 하나 의열투사들의 유해봉환이었다. 직접 부산까지 내려가서 3의사의 유골을 봉안하여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김구는 "그 세 사람을 죽으라고 보낸 것이 바로 나다. 조국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고 지하에 잠드신 선열이 어찌 3의사 뿐이랴만, 대담무쌍 왜국의 심장을 향하여 화살을 던져 조선 민족의 분열의 독립혼을 중외에 떨친 것은 아마 이 세분이 으뜸이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파는 김구의 지시로 거사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구파의 거사를 직간접적으로 도왔고 구파의 의기를 높이 샀기에 유해봉환과정에서 구파를 함께 모신 것이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3의사로 효창공원에 묻힌 구파 백정기.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항일 의열항쟁의 선봉에서 3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런 구파이지만, 그의 일대기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그나마 산재해 있어 이를 제대로 엮어 그의 일대기를 복원한 책이나 자료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장대한 항일투쟁의 인생사도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비운의 항일운동가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백남이는 구파와는 한 집안사람이다. 백 시인에게 구파는 5촌 당숙이 되니 매우 가까운 후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면서 세상을 주유하다 현재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백 시인의 말대로 지난한 표류를 잠식시켜 준 제주에 안착한 채 글을 쓰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면서 해묵은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구파를 올곧게 드러낼 글을 묶는 일이었다. 그녀는 국토의 남단 제주섬에서 100년 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오래전부터 수집해 온 자료 더미들과 함께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세웠을 것이다.
이 시집은 그러한 백시인의 마음의 빚, 즉 후손의 의무, 잊혀지고 묻혀진 의결투사를 발굴하는 사명감,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죽음의 공포도 끌어안고 죽음의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 사내의 옹골찬 삶을 제대로 그려내는 일이리라 백시인의 문학혼은 이러한 마음의 빚의 불쏘시개가 되어 이제 구파 백정기라는 이름으로. 백시인은 "감히 이 치졸한 헌사를 백정기 열사님의 영전에 바친다."는 아주 겸양의 언사로 내어놓지만, 이 시집은 백 시인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백시인의 표현처럼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에 값하는 오랜 수고로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백남이 다큐시집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이 시집은 한 많은 일제강점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순수성과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삶을 불살랐던 구파의 삶을 그나마 온전히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주 제한적인 자료들과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구파 시대의 어르신들마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구파의 생애를 올곧게 복원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백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리라.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실패한 거사와 강점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밀정의 늪에서 오직 조국해방의 꿈을 쫓으며 풍찬노숙했던 망국의 의열청년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이 시집은 모든 이름이 드러나지 못한 수십 수백의 또 다른 구파들에게 바치는 시집이기도 하다.
구파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구파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시를 읽는 재미를, 구파를 몰랐던 독자들에겐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항쟁의 선봉에서 살았던 또 다른 독립투사를 만난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작가의 글]
대한민국 근대사에 있어서 독립운동가 3의사로 추대된 윤봉길 · 이봉창 · 백정기 의사
이분들 중에서 구파 백정기 의사에 대하여 조명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매우 크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인 상해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 의거 (1932. 4. 29)
황포탄 의거 (1922. 3. 28)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 (1933. 3. 17)
이를 중국 3대 의거라 한다.
백정기 의사의 마지막 의거는 중·일 전쟁 직전의 국제관계적인 조망에서 바로 보아야 비로소 그 참뜻을 되새길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음은 그의 백범일지를 통해 짐작케 되는데도 선생은 백정기 의사를 이봉창, 윤봉길 양 의사와 병렬하는 3의사로 모시게 했다.
선생께선 임정을 이끌면서 그 당시의 복잡다단한 대외관계, 6·3정 의거 이후의 대외관계 변화를 몸소 겪으면서 그 의거의 위대함과 백의사 개인의 고결한 인품을 익히 알기에 그 공적을 반드시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오늘날처럼 가짜 자유, 불평등, 종속관계가 만연함에 비추어 백의사가 생전에 일관되게 추구해온 자유, 평등, 상호부조의 인류공영이라는 신념은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저마다의 자주인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대 관계를 이룩하려던 혁명가 백정기 의사의 철석같은 신념과 실천력이 1933년 3월의 인류사적인 분수령을 긋게 한 그 뜻은 안중근 의사가 영어의 상태에서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던 뜻과 일맥상통한다.
아직도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빈자를 억누르는 힘 있는 자 위주의 가짜 화해, 위장평화를 내세우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정의는 강자의 것이요 도덕은 있는 자의 보신책으로 악용되고 있음은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백의사는 생전에 그러한 불의, 부도덕과 싸웠고 살신성인 하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표상한 것이 마지막 의거 곧 6·3정 의거이다.
백의사가 전 생애를 던져 이루고자 했던 신념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시집을 묶는다. 구파에 대하여 사학자나 광복회 등 특정 연구자 외에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알림이 목적이 되다 보니 산문시도 아니고 다큐집이 되었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나 이로써 스스로 공부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병상에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국민문화연구소 간 『항일 혁명가 구파 백정기』 집필자 남이행 선생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 부디 남이행 선생님의 쾌유를 빈다. 후손의 명분을 일침 주시고 현재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투사들의 수많은 행적을 찾고 밀정 탐사에 생을 바쳐 사투를 겪고 계신 김광만 선생님.
또한, 남북평화통일 염원의 깃발을 높이 드신 (사)평화의 길 명진스님, 도정스님과 평생 조언과 지지를 벼락 같이 주시는 조해인 선생님 내외분께도 감사를 전한다.
내게 있어 미약하나마 선함이 비롯된다면 사랑하는 가족 덕분이다.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이다.
사촌 형님인 구파의 신문 기사를 접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신 정읍 이평면 조소리 출생 내 아버지 백학기, 조연숙 어머니와 집안 형제들과 아들 최심장이 함께 붙들어
감히 이 치졸한 헌사를 백정기 열사님의 영전에 삼가 바친다.
2021년 시월, 제주 동문로에서 백남이 쓰다.
최근 영화 암살, 밀정 등을 통해, 항일투쟁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하지만 여전히 역사의 뒤안에서 잊혀져 가는 뭇 열사, 의사 의열투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처럼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구파 백정기 의사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일 정도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 학교에서 먼저 배웠던 우리나라 항일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인 의거로서 역사적 의의가 큰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윤봉길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의 거사는 윤봉길만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구파 역시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으나, 공원을 출입할 수 있는 입장권이 도착하지 않으면서 구파는 그 시각에 홍구공원에 당도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거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이날 구파 역시 입장권을 제때에 전달 받을 수만 있었다면, 홍구공원의 폭탄 의거는 더욱 큰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날 홍구공원의 거사를 준비한 세력은 바로 백범 김구의 '임정'과 이회영 백정기 등이 결성한 '남화한청연'이 그것이다. 두 세력 다 홍구공원의 천장절 행사를 노리고 있었으나, 남화한청연의 거사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고, 그 결과 김구와 윤봉길은 역사에 남는 사건을 성공시켰으나, 무위로 끝난 남화한청연과 백정기의 거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잊혀진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
구파는 이 거사를 포함해 의열투쟁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또한 아나키스트로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가 성공시킨 의거는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역사에도 남지 못했던 것이다. 무정부주의항일투쟁조직인 남화한인청년연맹 활동, 중국인 일본인 무정주의자들과 연대한 항일구국연맹 활동, 그 산하의 행동대인 흑색공포단을 주도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결국은 일제가 깔아놓은 밀정의 마수에 걸려들고 만다.
1933년 3월 17일 상해 진주 일본군사령부와 유길명(有吉明; 아리요시 아키라) 공사가 중국정부 요인의 매수공작을 위해 중국 요리점 육삼정(六三亭)에서 연회를 베푸는 기회에 기습공격을 가할 계획을 세웠다. 이 거사를 위해 선발된 백정기·이강훈·원심창은 수류탄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유자명의 인도를 받아 상해 프랑스 조계로 들어가 거사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육삼정 연회는 실은 일제가 밀정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기 위해 벌인 함정이었던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구파 백정기 의사는 1935년 5월 22일 나가사키 감옥에서 안타깝게도 옥사하고 만다. 최근 '밀정'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일부 알려진 항일운동의 흑역사인 밀정을 2차례에 걸쳐 방영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거사는 바로 이 밀정이 일제와 결탁해 벌인 계획된 함정이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7월 6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의 유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봉환되어 독립운동가 3의사로 효창공원에 묻혀 있다. 백범 기구의 지시에 의한 일이었다. 반년 전 귀국해 그가 급하게 서두른 대사 중의 하나 의열투사들의 유해봉환이었다. 직접 부산까지 내려가서 3의사의 유골을 봉안하여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김구는 "그 세 사람을 죽으라고 보낸 것이 바로 나다. 조국을 위하여 신명을 바치고 지하에 잠드신 선열이 어찌 3의사 뿐이랴만, 대담무쌍 왜국의 심장을 향하여 화살을 던져 조선 민족의 분열의 독립혼을 중외에 떨친 것은 아마 이 세분이 으뜸이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파는 김구의 지시로 거사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구파의 거사를 직간접적으로 도왔고 구파의 의기를 높이 샀기에 유해봉환과정에서 구파를 함께 모신 것이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3의사로 효창공원에 묻힌 구파 백정기. 평생을 아나키스트로서 항일 의열항쟁의 선봉에서 3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이런 구파이지만, 그의 일대기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며, 그나마 산재해 있어 이를 제대로 엮어 그의 일대기를 복원한 책이나 자료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장대한 항일투쟁의 인생사도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비운의 항일운동가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백남이는 구파와는 한 집안사람이다. 백 시인에게 구파는 5촌 당숙이 되니 매우 가까운 후손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를 쓰면서 세상을 주유하다 현재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백 시인의 말대로 지난한 표류를 잠식시켜 준 제주에 안착한 채 글을 쓰는 일로 소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늘 마음의 빚이면서 해묵은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구파를 올곧게 드러낼 글을 묶는 일이었다. 그녀는 국토의 남단 제주섬에서 100년 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오래전부터 수집해 온 자료 더미들과 함께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세웠을 것이다.
이 시집은 그러한 백시인의 마음의 빚, 즉 후손의 의무, 잊혀지고 묻혀진 의결투사를 발굴하는 사명감,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죽음의 공포도 끌어안고 죽음의 불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 사내의 옹골찬 삶을 제대로 그려내는 일이리라 백시인의 문학혼은 이러한 마음의 빚의 불쏘시개가 되어 이제 구파 백정기라는 이름으로. 백시인은 "감히 이 치졸한 헌사를 백정기 열사님의 영전에 바친다."는 아주 겸양의 언사로 내어놓지만, 이 시집은 백 시인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시집은 백시인의 표현처럼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에 값하는 오랜 수고로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백남이 다큐시집이라는 별칭을 달고 있는 이 시집은 한 많은 일제강점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순수성과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삶을 불살랐던 구파의 삶을 그나마 온전히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주 제한적인 자료들과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구파 시대의 어르신들마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구파의 생애를 올곧게 복원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임을 백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리라.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실패한 거사와 강점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밀정의 늪에서 오직 조국해방의 꿈을 쫓으며 풍찬노숙했던 망국의 의열청년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이 시집은 모든 이름이 드러나지 못한 수십 수백의 또 다른 구파들에게 바치는 시집이기도 하다.
구파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겐 구파의 삶을 온전히 그려낸 시를 읽는 재미를, 구파를 몰랐던 독자들에겐 아나키스트로서 항일항쟁의 선봉에서 살았던 또 다른 독립투사를 만난다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작가의 글]
대한민국 근대사에 있어서 독립운동가 3의사로 추대된 윤봉길 · 이봉창 · 백정기 의사
이분들 중에서 구파 백정기 의사에 대하여 조명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매우 크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성지인 상해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 의거 (1932. 4. 29)
황포탄 의거 (1922. 3. 28)
백정기 의사의 육삼정 의거 (1933. 3. 17)
이를 중국 3대 의거라 한다.
백정기 의사의 마지막 의거는 중·일 전쟁 직전의 국제관계적인 조망에서 바로 보아야 비로소 그 참뜻을 되새길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음은 그의 백범일지를 통해 짐작케 되는데도 선생은 백정기 의사를 이봉창, 윤봉길 양 의사와 병렬하는 3의사로 모시게 했다.
선생께선 임정을 이끌면서 그 당시의 복잡다단한 대외관계, 6·3정 의거 이후의 대외관계 변화를 몸소 겪으면서 그 의거의 위대함과 백의사 개인의 고결한 인품을 익히 알기에 그 공적을 반드시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오늘날처럼 가짜 자유, 불평등, 종속관계가 만연함에 비추어 백의사가 생전에 일관되게 추구해온 자유, 평등, 상호부조의 인류공영이라는 신념은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저마다의 자주인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대 관계를 이룩하려던 혁명가 백정기 의사의 철석같은 신념과 실천력이 1933년 3월의 인류사적인 분수령을 긋게 한 그 뜻은 안중근 의사가 영어의 상태에서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던 뜻과 일맥상통한다.
아직도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빈자를 억누르는 힘 있는 자 위주의 가짜 화해, 위장평화를 내세우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정의는 강자의 것이요 도덕은 있는 자의 보신책으로 악용되고 있음은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백의사는 생전에 그러한 불의, 부도덕과 싸웠고 살신성인 하였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표상한 것이 마지막 의거 곧 6·3정 의거이다.
백의사가 전 생애를 던져 이루고자 했던 신념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 시집을 묶는다. 구파에 대하여 사학자나 광복회 등 특정 연구자 외에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알림이 목적이 되다 보니 산문시도 아니고 다큐집이 되었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나 이로써 스스로 공부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병상에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국민문화연구소 간 『항일 혁명가 구파 백정기』 집필자 남이행 선생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 부디 남이행 선생님의 쾌유를 빈다. 후손의 명분을 일침 주시고 현재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투사들의 수많은 행적을 찾고 밀정 탐사에 생을 바쳐 사투를 겪고 계신 김광만 선생님.
또한, 남북평화통일 염원의 깃발을 높이 드신 (사)평화의 길 명진스님, 도정스님과 평생 조언과 지지를 벼락 같이 주시는 조해인 선생님 내외분께도 감사를 전한다.
내게 있어 미약하나마 선함이 비롯된다면 사랑하는 가족 덕분이다.
도서관 한쪽에 오랫동안 앉아 계신 당숙 어른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심정이다.
사촌 형님인 구파의 신문 기사를 접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신 정읍 이평면 조소리 출생 내 아버지 백학기, 조연숙 어머니와 집안 형제들과 아들 최심장이 함께 붙들어
감히 이 치졸한 헌사를 백정기 열사님의 영전에 삼가 바친다.
2021년 시월, 제주 동문로에서 백남이 쓰다.
목차
목차
1부 유랑의 끝 그리고 시작
2부 북경으로 망명
3부 상해 풍경
4부 꿈을 �아서 1930~1931
5부 마지막 결전장 상해 1931~1932
6부 마지막 불꽃
2부 북경으로 망명
3부 상해 풍경
4부 꿈을 �아서 1930~1931
5부 마지막 결전장 상해 1931~1932
6부 마지막 불꽃
저자
저자
백남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제주도에 살고 있다.
첫 시집 『사랑은 없다, 기다리기로 하자』에서 바로, 지금이 사랑할 때임을 깨닫기까지,
제주는 지난한 표류를 잠식시켜주었고 19년 만에 시집을 엮게 해준 어머니의 품이다.
제주 입도 7년 차 육지것으로 살면서 세상없이 아름다운 제주가 난개발로 훼손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자연 환경 그대로의 보존이 현세의 독립운동임을 인식한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이며
(사)평화의길 제주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 시집 『사랑은 없다, 기다리기로 하자』에서 바로, 지금이 사랑할 때임을 깨닫기까지,
제주는 지난한 표류를 잠식시켜주었고 19년 만에 시집을 엮게 해준 어머니의 품이다.
제주 입도 7년 차 육지것으로 살면서 세상없이 아름다운 제주가 난개발로 훼손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자연 환경 그대로의 보존이 현세의 독립운동임을 인식한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이며
(사)평화의길 제주지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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