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읽는 지도(파라북스 시집 1)
≪손끝으로 읽는 지도≫는 시 한 편에도 시인의 의도가 여러 개 감추어져 있는 보기 드문 시집이다. 편집자의 의도도 여러 개 감추어져 있는데, 이 글을 ‘손끝으로 읽는 지도’라 여기고 빠짐없이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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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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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천 느낌이 나는 거친 종이다. 검은 바다색이다. '손끝으로'는 반듯한데, '읽는'은 '는'이 반쯤 내려왔고, '지도'는 가지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꽃잎처럼 기울었다. 시인의 이름은 허공에 흩날린다. 그 밑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있다. 글자와 꽃잎은 모두 은박이다. 시집을 손으로 집어들면 손끝으로 표지의 느낌이 전해진다. 거칠어 보였는데 부드럽다. 문득 깨닫는다. '손끝으로 읽으니 시집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구나!' 눈을 감고 이누이트처럼 손끝으로 시집을 읽어본다. 제목과 시인의 이름과 꽃잎이 다르지 않다. 뒤표지에는 커다란 꽃잎이 한 장 있다. 눈을 뜨고 보니 활짝 핀 살구나무다. 살구나무로 가는 길도 있다.
손끝으로 읽어야 하는 이 지도는 누가 만든 걸까? 표지를 넘겨 날개를 살피니 시인의 이름이 시 제목이다. 시인의 약력은 한 편의 시! 책 안으로 들어가면 시인의 사진이 있다. 해가 뜨는 걸까, 지는 걸까? 바다를 등지고 있는 시인은 얼굴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는 아이처럼 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류 최초의 글자는
거래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그래서 나는
글자가 화를 풀 때까지
시를 쓰기로 했답니다
'시인의 말'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우리가 쓰는 글은 글자를 화나게 할까, 화를 풀어 줄까? 다음은 차례다. 운주사 와불, 바람의 나날, 오늘 아침, 겨울 노래, 나비의 집. 총 다섯 부로 되어 있다. 부의 제목이 같은 글꼴이라서 시 제목도 그러려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부마다 글꼴이 다르다. 눈이 밝지 않은 독자는 편집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 같다. ≪손끝으로 읽는 지도≫는 본문으로 가는 짧은 여정에서도 잠들어 있는 독자의 감각과 심장과 머리를 깨운다.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허공에 지은 집≫과 달라진 점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 시집에도 군더더기가 없었는데 더 없어졌다. 노자는 "정말 말을 잘하면 말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정말 군더더기가 없으면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을 느끼기 어렵다. 군더더기 없이 쓰겠다는 생각이 군더더기였던 것이다. 짧게 써야 하는 시는 짧게, 길게 써야 하는 시는 길게, 적당한 길이로 써야 하는 시는 적당한 길이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를 쓰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힘들고 먼 길을 외롭게 걸어왔을지!
≪허공에 지은 집≫에서 시인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번 시집 ≪손끝으로 읽는 지도≫에서는 감정과 감각과 직관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감정이 중요하지만 감정만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자연스럽지 않다. 감각이나 직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감정과 감각과 직관이 조화를 이루는 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쓰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냇물에도
바위에도
낙엽에도
흙길에도
나비처럼 내려앉는
살구 꽃잎
살구 꽃잎
〈살구 꽃잎〉의 제1수다. 살구꽃은 가지에서 떨어져 나옴으로써 비로소 탄생한다! 사람들이 죽음이라 여기는 것이 실제로는 탄생이었다는 것을 시인이 알아차린 것이다. 덕분에 시집을 읽는 독자도 깨달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십 년 동안 쓴 예순한 편의 시가 ≪손끝으로 읽는 지도≫라는 제목으로 시집 한 권에 묶여서 세상에 나온 것도, 검은 밤바다 같은 세상에 은박 같은 발자국을 남기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도, 살구 꽃잎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손끝으로 읽는 지도≫는 시 한 편에도 시인의 의도가 여러 개 감추어져 있는 보기 드문 시집이다. 편집자의 의도도 여러 개 감추어져 있는데, 이 글을 '손끝으로 읽는 지도'라 여기고 빠짐없이 찾아보시라.
목차
목차
1부 운주사 와불
운주사 와불
동행
어머니의 집
손끝으로 읽는 지도
곰배령
오동나무장
안개도시
왕소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청봉
2부 바람의 나날
숨은 뜻
내 나이 서른에는
아버지의 길
구들마루
기러기의 봄
세상에 없는 풍경
달맞이꽃에?앉은? 잠자리
함박꽃 향기
바람의 나날
두로령
3부 오늘, 아침
새해에는
처서
오늘, 아침
하얀 궁전
그레이트 반얀 트리
술이 익어가는 시간 1
술이 익어가는 시간 2
뒷모습
어디에서 왔을까
다른 세상에 있는 나에게
4부 겨울노래
태어난 것만으로도
착한 핑계 1
겨울 노래 1
겨울 노래 2
겨울 노래 3
한 사람
착한 핑계 2
웃음나라
요즘 내가 걱정하는 건
아니, 아니?
오월, 아침
5부 나비의 집
나비의 집 1
나비의 집 2
나비의 집 3
나비의 집 4
나비의 집 5
나비의 집 6
옆집 모란
다른 세상의 줄?
살구 꽃잎
나는 이제
해설
엄정한 자기 성찰, 그리고 그리움과 이법의 세계 - 송기한 (대전대 교수)
저자
저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해
시와 산문, 평론을 써왔으며
충북대학교에서
한국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집으로 ≪허공에 지은 집≫(2010)이 있고
산문집으로 ≪세상에 없는 풍경≫(2019)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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