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나비(최측의농간 시 7)
김정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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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나비』, 김정란 시집, 2019, 최측의농간
참으로 늦게, 게으르게 걸어왔다. 늘 자신 없음으로 시달리며. 그러나 삶이여,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내 가슴을 세월의 날선 칼들이 찢어발길 때 내가 맨몸의 치열함으로 마주 설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아픔의 일회의 신선함들을 나는 그대에게 내보인다.
「자서」 부분.
참으로 늦게, 게으르게 걸어왔다. 늘 자신 없음으로 시달리며. 그러나 삶이여,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던가. 내 가슴을 세월의 날선 칼들이 찢어발길 때 내가 맨몸의 치열함으로 마주 설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아픔의 일회의 신선함들을 나는 그대에게 내보인다.
「자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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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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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인이라는 이름의 낙인
여성이라는 존재 조건을 은밀하거나 선정적이지 않게, 그러므로 보다 본격적이고 근본적으로 꿰뚫어보고자 했던 시인 김정란의 시들은, '삶'이라는 예외상태를, 안락하고 통속적으로만 대면하고자 했던 자들에게, 깊은 일격이 될 수 있다. 그 일격이 가장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 여기 소개하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이며 그러나 이 역설의 사투 혹은 전략으로 말미암아 보다 풍부한 시적 각성의 개화(開化)가 먼 훗날의 우리에게 예비되고 있었으니 지금 이 시간, 이 시집을 일독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여성 시인으로서 한국 시단이라는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에 하나의 당대적이고 지속적일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한 명의 여성 시인이 아닌, 형이상학적 시의 투사라는 면모를 드러내며 치열한 존재 방황을 통한 존재 각성에의 열망 혹은 그것의 실패라는 결과물을 기록해놓았다는 점에서, 이 시집을 통한 김정란 시인의 등장은 하나의 파문과 다르지 않았다. 감성의 안락한 발설과 감정의 낯익은 배설이라는 시적 기대 ?당대 여성 시인들에게 공공연하게 강요되었던 바로 그 기대-를 배반하고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그의 첫 번째 시집은 단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비의 꿈
이 시집 속에서 긍정적 이미지들과 부정적 이미지들은 서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결국 화해에 이르거나 봉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각각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서로 약탈하고 있으며 그 약탈의 중심에는 삶이라는 질병이 있다. 이렇듯 시적으로 윤색한(된) 이미지들을 통한 삶의 성급한 화해가(를) 거부(당)하고 있다는 점은, 그녀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녀의 시를 통해 비로소, 여성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그의 시 속에는 나비의 오랜 어두움의 나날과, 그 어두움을 뚫고, 아니 오히려 훌훌 벗어버리며 날아가 버리는 날갯짓과, 그 날갯짓을 가능케 했던 날개의 날갯짓에 의한 부러짐과, 그러나 부러진 날개가 예비하는 새로운 날갯짓으로 어떻게 존재의 상승을 예감토록 하는가와, 그 예감은 그러나 왜 그토록 아프고 혼란스러운가에 대한 쉼 없는 자문과 자답이 있다. 시인의 앎에의 의지는 앎의 결과에 실망하게 될 테지만 스스로 광증(狂症)으로 낙인찍은 자아의 모순적 -어쩌면 유일하게 덜 억압적이었던- 존재 상태를 남성/합리의 이념 혹은 폭력으로 배반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망설이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남성적이어서 억압적인 말의 바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이 시인에게는 시작(詩作)이 '시작(始作)'이 된다. 다시 시작하는 나비는 그러므로 하나의 끝에 다다른, 존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과 같은,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한 시인의 빛나는 모습이다.
시인, 김정란
적잖은 세월, 시인은 세속의 힘센 물결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것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적(敵) -혹은 타자- 들과의 사투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스스로와의 사투이기도 했다. 사투(死鬪), 그것은 글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는 일이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일이다. 시인의 다른 시집들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이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과의 사투라는 면모를 띠는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처음에는 그의 시를 난해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마침내는 능란하고 아름답다고 인정하게 만든다.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긴장 상태와는 별개로 그의 삶의 일정 부분은 늘 긴급 상태의 삶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시인을 계속 시인일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불문학자로서, 번역가, 비평가로서도 의미 있는 행보를 걸어온 저자지만, 그녀가 당위적/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오판하지 않고 재구성하려 했던 의지의 중심에는 '시인'으로서의 그것이 있었음을, 이 시집은 다시 한번, 그러나 처음과 같이 새롭게 증거한다. 시인의 길고 외로웠던 사투의 끝에서, 그 시인의 빛나는 첫 모습이 우리 곁에 도착했다.
그대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온다. 거의 대개는 옆모습이거나 뒷모습만의 그대, 그대의 몸 위에서 갈 바 몰라 하는 아픔, 가난, 어머니, 형제들, 곤두박질치는 시대의 비명소리. 그대는 언제나 잘못했어라고 말한다. 참회. 오 우리는 얼마나 잘못했다라고 말했던가. 무엇이 우리를 지켜주었을까, 이 메마름의 끝에서.
「쓸쓸한 몇 편의 사랑 노래」 부분.
여성이라는 존재 조건을 은밀하거나 선정적이지 않게, 그러므로 보다 본격적이고 근본적으로 꿰뚫어보고자 했던 시인 김정란의 시들은, '삶'이라는 예외상태를, 안락하고 통속적으로만 대면하고자 했던 자들에게, 깊은 일격이 될 수 있다. 그 일격이 가장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 여기 소개하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이며 그러나 이 역설의 사투 혹은 전략으로 말미암아 보다 풍부한 시적 각성의 개화(開化)가 먼 훗날의 우리에게 예비되고 있었으니 지금 이 시간, 이 시집을 일독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여성 시인으로서 한국 시단이라는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에 하나의 당대적이고 지속적일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단순히 한 명의 여성 시인이 아닌, 형이상학적 시의 투사라는 면모를 드러내며 치열한 존재 방황을 통한 존재 각성에의 열망 혹은 그것의 실패라는 결과물을 기록해놓았다는 점에서, 이 시집을 통한 김정란 시인의 등장은 하나의 파문과 다르지 않았다. 감성의 안락한 발설과 감정의 낯익은 배설이라는 시적 기대 ?당대 여성 시인들에게 공공연하게 강요되었던 바로 그 기대-를 배반하고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그의 첫 번째 시집은 단연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비의 꿈
이 시집 속에서 긍정적 이미지들과 부정적 이미지들은 서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결국 화해에 이르거나 봉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각각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서로 약탈하고 있으며 그 약탈의 중심에는 삶이라는 질병이 있다. 이렇듯 시적으로 윤색한(된) 이미지들을 통한 삶의 성급한 화해가(를) 거부(당)하고 있다는 점은, 그녀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녀의 시를 통해 비로소, 여성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그의 시 속에는 나비의 오랜 어두움의 나날과, 그 어두움을 뚫고, 아니 오히려 훌훌 벗어버리며 날아가 버리는 날갯짓과, 그 날갯짓을 가능케 했던 날개의 날갯짓에 의한 부러짐과, 그러나 부러진 날개가 예비하는 새로운 날갯짓으로 어떻게 존재의 상승을 예감토록 하는가와, 그 예감은 그러나 왜 그토록 아프고 혼란스러운가에 대한 쉼 없는 자문과 자답이 있다. 시인의 앎에의 의지는 앎의 결과에 실망하게 될 테지만 스스로 광증(狂症)으로 낙인찍은 자아의 모순적 -어쩌면 유일하게 덜 억압적이었던- 존재 상태를 남성/합리의 이념 혹은 폭력으로 배반하지 않고 끌어안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망설이고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남성적이어서 억압적인 말의 바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이 시인에게는 시작(詩作)이 '시작(始作)'이 된다. 다시 시작하는 나비는 그러므로 하나의 끝에 다다른, 존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과 같은,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한 시인의 빛나는 모습이다.
시인, 김정란
적잖은 세월, 시인은 세속의 힘센 물결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것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적(敵) -혹은 타자- 들과의 사투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스스로와의 사투이기도 했다. 사투(死鬪), 그것은 글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는 일이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일이다. 시인의 다른 시집들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이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과의 사투라는 면모를 띠는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처음에는 그의 시를 난해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마침내는 능란하고 아름답다고 인정하게 만든다.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긴장 상태와는 별개로 그의 삶의 일정 부분은 늘 긴급 상태의 삶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시인을 계속 시인일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불문학자로서, 번역가, 비평가로서도 의미 있는 행보를 걸어온 저자지만, 그녀가 당위적/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오판하지 않고 재구성하려 했던 의지의 중심에는 '시인'으로서의 그것이 있었음을, 이 시집은 다시 한번, 그러나 처음과 같이 새롭게 증거한다. 시인의 길고 외로웠던 사투의 끝에서, 그 시인의 빛나는 첫 모습이 우리 곁에 도착했다.
그대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온다. 거의 대개는 옆모습이거나 뒷모습만의 그대, 그대의 몸 위에서 갈 바 몰라 하는 아픔, 가난, 어머니, 형제들, 곤두박질치는 시대의 비명소리. 그대는 언제나 잘못했어라고 말한다. 참회. 오 우리는 얼마나 잘못했다라고 말했던가. 무엇이 우리를 지켜주었을까, 이 메마름의 끝에서.
「쓸쓸한 몇 편의 사랑 노래」 부분.
목차
목차
자서 7
당신의 어깨 ―시의 장소 13
쓸쓸한 몇 편의 사랑 노래 15
죽은 엄마에 의한 엄마의 교정 25
나비의 꿈 29
매복 32
밧줄 끊기 34
파비안 35
장미 화환을 쓴 암흑 37
타인들과의 관계 39
4월 41
나의 시 ―그대에게 가기 위하여 43
이 시대에 살기 45
우리의 패배주의 47
시와 힘 50
미망(迷妄)의 아이들 52
폼페이 54
눈 56
TV의 말놀이를 주제로 한 몇 개의 성찰 58
지옥에서 ―감기 기운 68
나의 병 1 ―자가 진단, 반성을 위하여 70
나의 병 2 72
나의 병 3 74
나의 병 4 76
어느 밤의 울기 78
나의 (시) -삶은 각질이다. 따라서 언어도 각질이다. 80
불면 -추함에 길들기 1 83
화장 -추함에 길들기 2 85
지하철에서 -추함에 길들기 3 87
또 가을 88
나의 시 -약한 너에게 기대어 91
나의 시 -죽음과 더불어 살기 93
나의 시 -무한의 받아쓰기 95
절망적인 시법(詩法) 98
봄 99
L씨의 주검에게 101
다시 오월 103
나의 시 -여기에서, 언제나 여기에서 105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또는 막가는 나의 시법(詩法) 108
엄마 버리기, 또는 뒤집기 109
강시 131
햇살, 세시의 짐승 132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1 133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2: 뜨개질의 성찰 135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3 139
당신의 어깨 ―시의 장소 13
쓸쓸한 몇 편의 사랑 노래 15
죽은 엄마에 의한 엄마의 교정 25
나비의 꿈 29
매복 32
밧줄 끊기 34
파비안 35
장미 화환을 쓴 암흑 37
타인들과의 관계 39
4월 41
나의 시 ―그대에게 가기 위하여 43
이 시대에 살기 45
우리의 패배주의 47
시와 힘 50
미망(迷妄)의 아이들 52
폼페이 54
눈 56
TV의 말놀이를 주제로 한 몇 개의 성찰 58
지옥에서 ―감기 기운 68
나의 병 1 ―자가 진단, 반성을 위하여 70
나의 병 2 72
나의 병 3 74
나의 병 4 76
어느 밤의 울기 78
나의 (시) -삶은 각질이다. 따라서 언어도 각질이다. 80
불면 -추함에 길들기 1 83
화장 -추함에 길들기 2 85
지하철에서 -추함에 길들기 3 87
또 가을 88
나의 시 -약한 너에게 기대어 91
나의 시 -죽음과 더불어 살기 93
나의 시 -무한의 받아쓰기 95
절망적인 시법(詩法) 98
봄 99
L씨의 주검에게 101
다시 오월 103
나의 시 -여기에서, 언제나 여기에서 105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또는 막가는 나의 시법(詩法) 108
엄마 버리기, 또는 뒤집기 109
강시 131
햇살, 세시의 짐승 132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1 133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2: 뜨개질의 성찰 135
결핍으로서의 존재 -어두움의 기록 3 139
저자
저자
김정란
서울 출생.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매혹, 혹은 겹침』,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스?타?카?토 내 영혼』, 『용연향』, 『꽃의 신비』가 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매혹, 혹은 겹침』,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스?타?카?토 내 영혼』, 『용연향』, 『꽃의 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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