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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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 두 집
분명 최욱은 평범한 집을 짓지 않았다. 사실 최욱이 온전하게 새로 손을 댄 곳은 한옥과 양옥 사이에 설치한 중정 그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한 지하 공간 정도였다. 그런데 집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회동 두 집의 핵심은 두 개의 중정과 둘 사이의 연결 통로다. 하나는 하늘로 열린 중정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층 끝에서 양옥의 1층으로 연결되는 개방형 계단실이다.
_50쪽에서
2021년 한옥과 양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집장수가 지은 한옥과 1960년대 부잣집의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는 양옥이 위·아래에서 공존하고 있다. 두 집의 공간을 엮은이는 건축가 최욱.
“건축가는 한옥이 도시와 만나는 방법을 제시했고, 중정으로 한옥과 양옥을 만나게 했으며, 양옥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35쪽)는 지은이 안창모의 말처럼 건축가는 두 집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정을 만들었으며 지하층 공간의 경계마다 단을 만들어 한 단 한 단 오르다보면 어느새 양옥의 1층에 이르게 했다. “사라졌던 원지형의 구릉을 설화수의 공간을 경험하며 오른 것”(50쪽)이다. 두 집은 얼핏보면 북촌에서 볼 수 있는 여느 한옥과 양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매력에 이끌려 구석구석 살피고 만져보게 된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가회동의 ‘잘 지은 두 집’을 이야기한다. 골격만 겨우 유지한 채 여기저기 잘리고 덧붙여진 채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북촌로변에 남아 있던 한옥. 한옥 뒤 외부와 단절된 채 우뚝 솟아 있는 양옥. 저자는 이 두 집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변화과정을 이야기한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기 이 전 두 집의 모습, 두 집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게 됐는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두 집은 북촌과 어떻게 관계 맺고 북촌에서 어떤 의미인지 등 두 집의 이모저모를 분석한다. 조경가 정영선이 적재적소에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은 나무와 꽃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건축주의 의지 또한 가회동 두 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건축가 최욱은 한옥과 양옥을 하나로 엮으며, 장소를 달리하고 레벨을 달리하며 이동하는 거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동안 의미있는 장소마다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최욱은 이것을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고 했다.
_44쪽에서
저자 안창모는 건축가 최욱이 두 집에 손을 대기 이전부터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집의 변모 과정을 살피고 기록했다. 책에 사용한 사진은 대부분 저자가 직접 촬영했다. “글이 아닌 이미지로 화두를 던진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5쪽)면서 책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직접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져보고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분명 최욱은 평범한 집을 짓지 않았다. 사실 최욱이 온전하게 새로 손을 댄 곳은 한옥과 양옥 사이에 설치한 중정 그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한 지하 공간 정도였다. 그런데 집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회동 두 집의 핵심은 두 개의 중정과 둘 사이의 연결 통로다. 하나는 하늘로 열린 중정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층 끝에서 양옥의 1층으로 연결되는 개방형 계단실이다.
_50쪽에서
2021년 한옥과 양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집장수가 지은 한옥과 1960년대 부잣집의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는 양옥이 위·아래에서 공존하고 있다. 두 집의 공간을 엮은이는 건축가 최욱.
“건축가는 한옥이 도시와 만나는 방법을 제시했고, 중정으로 한옥과 양옥을 만나게 했으며, 양옥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35쪽)는 지은이 안창모의 말처럼 건축가는 두 집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정을 만들었으며 지하층 공간의 경계마다 단을 만들어 한 단 한 단 오르다보면 어느새 양옥의 1층에 이르게 했다. “사라졌던 원지형의 구릉을 설화수의 공간을 경험하며 오른 것”(50쪽)이다. 두 집은 얼핏보면 북촌에서 볼 수 있는 여느 한옥과 양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매력에 이끌려 구석구석 살피고 만져보게 된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가회동의 ‘잘 지은 두 집’을 이야기한다. 골격만 겨우 유지한 채 여기저기 잘리고 덧붙여진 채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북촌로변에 남아 있던 한옥. 한옥 뒤 외부와 단절된 채 우뚝 솟아 있는 양옥. 저자는 이 두 집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변화과정을 이야기한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기 이 전 두 집의 모습, 두 집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게 됐는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두 집은 북촌과 어떻게 관계 맺고 북촌에서 어떤 의미인지 등 두 집의 이모저모를 분석한다. 조경가 정영선이 적재적소에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은 나무와 꽃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건축주의 의지 또한 가회동 두 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건축가 최욱은 한옥과 양옥을 하나로 엮으며, 장소를 달리하고 레벨을 달리하며 이동하는 거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동안 의미있는 장소마다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최욱은 이것을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고 했다.
_44쪽에서
저자 안창모는 건축가 최욱이 두 집에 손을 대기 이전부터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집의 변모 과정을 살피고 기록했다. 책에 사용한 사진은 대부분 저자가 직접 촬영했다. “글이 아닌 이미지로 화두를 던진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5쪽)면서 책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직접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져보고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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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북촌, 권문세가의 땅에서 자란 개화의 씨
북촌은 청계천 위, 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창덕궁 사이, 좋은 위치에 자리한 동네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곳이니 주거지로 최적이었는데, 사대부의 직장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의 공간인 궁궐과 사대부의 직장인 육조가 인접한 직주근접의 장소이기도 했던 까닭에 권문세가의 집이 많았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북촌에는 큰 필지를 가진 대갓집이 많았다.
_14쪽에서
'뜨는 동네'. 북촌을 소개하는 어떤 글에서 북촌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쓴이는 북촌에 왜 유명 브랜드들이 상점을 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지 이야기하는데 "남산타워, 창덕궁, 원서공원 등 북촌 풍경이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고 한다.
북촌하면 많은 사람이 검은 기와지붕을 올린 한옥을 떠올린다. '북촌=한옥마을'과 같은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옥만큼 꽤 큰 규모의 양옥도 많다. 고층 아파트가 없을 뿐이지 한옥, 양옥,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우리나라 주택 양식 전시장과 같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의 저자 안창모는 "권문세가의 땅이었지만 개화의 씨가 자라던 곳"이라고 말한다. 항상 새로움이 시작되던 곳이라는 것이다. 신흥사대부가 살던 곳이었으며 조선말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과 홍영식이 살았고 개화사상가 박규수의 집도 있었다. 이들이 살던 터에는 학교가 지어지고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이 문을 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윤택영, 민대식, 이재완, 한창수, 송병준, 이기용, 박제순, 한상룡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름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지인 가회동 두 집이 있던 가회동 79번지 일대는 천도교 4대 교주인 박인호와 3대 교주인 손병희 소유의 땅이었다. "조선말 권문세가와 종친의 거주지였던 북촌에 동학을 이은 천도교가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장"(28쪽)이었다.
1915년과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형도에서 확인되는 이름은 대부분 종친이거나 조선말과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로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된 사람들이다.
_23쪽에서
북촌은 권문세가의 땅이었지만, 개화의 씨가 자라던 곳이기도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양 궐 사이에 있는 북촌은 우리 역사에서 항상 새로움이 시작되던 곳이었다. 조선을 연 신흥사대부가 살던 곳이고, 조선말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이 살았고, 박규수와 홍영식도 살았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외국으로 망명한 김옥균 집터에는 관립한성중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의 터가 되었다. 홍영식의 집안은 갑신정변 후 멸문지화를 당했고 집터는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일부가 되었다.
_26쪽에서
북촌에는 전쟁의 흔적도 남아 있다. 북촌로. 1941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제는 공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소개도로(疏開道路)를 계획한다. 기존 길은 넓히고 큰 땅 사이에 큰길을 새로 만들어 공습으로 인한 화재가 인접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으로 폭 20~50미터에 이르는 도로이다. 당시 일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정확히 둘로 나눈 곳에 기존 도로를 폭 20미터로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다행히 일본이 패전하면서 도로 확장은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촌살리기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일제시기에 그은 도로 계획선을 따라 왕복 4차선 도로가 만들어졌는데 바로 북촌로이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집이 철거되고 땅이 잘려나갔다. 그래서 북촌로의 서쪽에는 북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축대 위에 얹힌 한옥이 줄지어 있게 되었다. 또한 북촌의 한옥 보존 운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북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상점이 많아졌는데 마당을 향해 열린 한옥을 도로를 향해 열고 대문간을 없애게 되었다.
전시체제에 그어졌던 소개도로 선은 경제개발기를 거치며 도시계획 도로 선으로 바뀌었다. 해방 후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집행되지 않았던 소개도로에 기초한 북촌로 확장이 1988년의 서울올림픽도 끝나고 북촌살리기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느닷없이 시행되면서 북촌로는 왕복 4차선이 되었고 오늘의 북촌 풍경을 만들었다.
_17쪽에서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가회동의 잘 지은 두 집의 변화 과정과 함께 두 집이 자리한 북촌, 가회동의 변화와 의미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물리적으로 보존된 북촌을 '바라보는 대상'을 넘어 북촌 안에서 북촌이 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미학을 즐기고 내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219쪽)며 가회동 두 집의 의미를 이야기를 끝맺는다.
북촌은 청계천 위, 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창덕궁 사이, 좋은 위치에 자리한 동네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곳이니 주거지로 최적이었는데, 사대부의 직장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임금의 공간인 궁궐과 사대부의 직장인 육조가 인접한 직주근접의 장소이기도 했던 까닭에 권문세가의 집이 많았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북촌에는 큰 필지를 가진 대갓집이 많았다.
_14쪽에서
'뜨는 동네'. 북촌을 소개하는 어떤 글에서 북촌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쓴이는 북촌에 왜 유명 브랜드들이 상점을 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지 이야기하는데 "남산타워, 창덕궁, 원서공원 등 북촌 풍경이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고 한다.
북촌하면 많은 사람이 검은 기와지붕을 올린 한옥을 떠올린다. '북촌=한옥마을'과 같은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옥만큼 꽤 큰 규모의 양옥도 많다. 고층 아파트가 없을 뿐이지 한옥, 양옥,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우리나라 주택 양식 전시장과 같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의 저자 안창모는 "권문세가의 땅이었지만 개화의 씨가 자라던 곳"이라고 말한다. 항상 새로움이 시작되던 곳이라는 것이다. 신흥사대부가 살던 곳이었으며 조선말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과 홍영식이 살았고 개화사상가 박규수의 집도 있었다. 이들이 살던 터에는 학교가 지어지고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이 문을 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윤택영, 민대식, 이재완, 한창수, 송병준, 이기용, 박제순, 한상룡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름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지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대상지인 가회동 두 집이 있던 가회동 79번지 일대는 천도교 4대 교주인 박인호와 3대 교주인 손병희 소유의 땅이었다. "조선말 권문세가와 종친의 거주지였던 북촌에 동학을 이은 천도교가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장"(28쪽)이었다.
1915년과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형도에서 확인되는 이름은 대부분 종친이거나 조선말과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로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된 사람들이다.
_23쪽에서
북촌은 권문세가의 땅이었지만, 개화의 씨가 자라던 곳이기도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양 궐 사이에 있는 북촌은 우리 역사에서 항상 새로움이 시작되던 곳이었다. 조선을 연 신흥사대부가 살던 곳이고, 조선말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이 살았고, 박규수와 홍영식도 살았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외국으로 망명한 김옥균 집터에는 관립한성중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의 터가 되었다. 홍영식의 집안은 갑신정변 후 멸문지화를 당했고 집터는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일부가 되었다.
_26쪽에서
북촌에는 전쟁의 흔적도 남아 있다. 북촌로. 1941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제는 공습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소개도로(疏開道路)를 계획한다. 기존 길은 넓히고 큰 땅 사이에 큰길을 새로 만들어 공습으로 인한 화재가 인접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으로 폭 20~50미터에 이르는 도로이다. 당시 일제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정확히 둘로 나눈 곳에 기존 도로를 폭 20미터로 확장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다행히 일본이 패전하면서 도로 확장은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촌살리기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일제시기에 그은 도로 계획선을 따라 왕복 4차선 도로가 만들어졌는데 바로 북촌로이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집이 철거되고 땅이 잘려나갔다. 그래서 북촌로의 서쪽에는 북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축대 위에 얹힌 한옥이 줄지어 있게 되었다. 또한 북촌의 한옥 보존 운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북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상점이 많아졌는데 마당을 향해 열린 한옥을 도로를 향해 열고 대문간을 없애게 되었다.
전시체제에 그어졌던 소개도로 선은 경제개발기를 거치며 도시계획 도로 선으로 바뀌었다. 해방 후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집행되지 않았던 소개도로에 기초한 북촌로 확장이 1988년의 서울올림픽도 끝나고 북촌살리기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느닷없이 시행되면서 북촌로는 왕복 4차선이 되었고 오늘의 북촌 풍경을 만들었다.
_17쪽에서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가회동의 잘 지은 두 집의 변화 과정과 함께 두 집이 자리한 북촌, 가회동의 변화와 의미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물리적으로 보존된 북촌을 '바라보는 대상'을 넘어 북촌 안에서 북촌이 담고 있는 우리의 삶과 미학을 즐기고 내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219쪽)며 가회동 두 집의 의미를 이야기를 끝맺는다.
목차
목차
책을 내면서
땅: 북촌
북촌, 사라지는 회색빛 도시 풍경이 안타까운 곳
한양도성과 북촌
북촌로, 북촌에 남은 전쟁의 흔적
가회동, 1962 vs. 2022
지도에 새겨진 이름
북촌, 권문세가의 땅에서 자란 개화의 씨
가회동 79번지, 설화수의 한옥과 오설록의 양옥 땅의 주인들
집: 한옥 vs. 양옥
리노베이션 전과 후
북촌로, 석축 또는 옹벽
최욱의 집짓기, 집터 확인하기
한옥, 도로를 향하고, 옹벽, 해체되다 ∥ 양옥, 옹벽 위 하얀 양옥
최욱의 집짓기, 일보일경
일보일경, 안과 밖을 넘나들다 ∥ 대지의 건축화 ∥ 원지형 산책
최욱의 집짓기, 병치의 미학
한옥의 진화 ∥ 더 이상 '이리 오너라'는 없다 ∥ 담장을 대신한 소나무 한 그루 ∥ 옹벽을 대신한 중정 그리고 매화나무 ∥ 옹벽, 역사로 남다 ∥ 중정, 양옥과 한옥의 공존 ∥ 중정, 설화수에 빛을 들이다 ∥ 설화살롱 ∥ 양옥, 1960년대 부잣집 ∥ 그들만의 마당, 모두의 마당이 되다 ∥ 설화정원, 겨울을 벗어난 정원 ∥ 오설록의 양옥, 현관 ∥ 테라스 정원, 안과 밖을 소통시키다 ∥ 테라스 정원, 층과 층을 소통시키다 ∥ 남산, 모든 이의 풍경이 되다 ∥ 계단실, 빛을 품다 ∥ 차실, 빛과 풍경을 품다 ∥ 바 설록이 품은 자개장
북촌 4경, 오설록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
남(南), 사라지는 남산 풍경 ∥ 동(東), 원서동의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만든 스카이라인 ∥ 서(西), 굴뚝이 있는 풍경 ∥ 북(北), 꽃병의 배경이 된 북촌의 백악 풍경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곳
하이퍼아트 토마손, 담장에 남은 삶의 흔적 ∥ 피뢰침 ∥ 골목에서 마주치는 설화수·오설록 ∥ 설화수·오설록 옆 골목 풍경
오감으로 즐기는 집
재료, 오감을 깨운다 ∥ 바닥과 높이 그리고 속도 ∥ 벽체와 재료 ∥ 빛을 품는 재료, 흙 ∥ 빛과 조명 ∥ 자개장의 추억
땅: 북촌
북촌, 사라지는 회색빛 도시 풍경이 안타까운 곳
한양도성과 북촌
북촌로, 북촌에 남은 전쟁의 흔적
가회동, 1962 vs. 2022
지도에 새겨진 이름
북촌, 권문세가의 땅에서 자란 개화의 씨
가회동 79번지, 설화수의 한옥과 오설록의 양옥 땅의 주인들
집: 한옥 vs. 양옥
리노베이션 전과 후
북촌로, 석축 또는 옹벽
최욱의 집짓기, 집터 확인하기
한옥, 도로를 향하고, 옹벽, 해체되다 ∥ 양옥, 옹벽 위 하얀 양옥
최욱의 집짓기, 일보일경
일보일경, 안과 밖을 넘나들다 ∥ 대지의 건축화 ∥ 원지형 산책
최욱의 집짓기, 병치의 미학
한옥의 진화 ∥ 더 이상 '이리 오너라'는 없다 ∥ 담장을 대신한 소나무 한 그루 ∥ 옹벽을 대신한 중정 그리고 매화나무 ∥ 옹벽, 역사로 남다 ∥ 중정, 양옥과 한옥의 공존 ∥ 중정, 설화수에 빛을 들이다 ∥ 설화살롱 ∥ 양옥, 1960년대 부잣집 ∥ 그들만의 마당, 모두의 마당이 되다 ∥ 설화정원, 겨울을 벗어난 정원 ∥ 오설록의 양옥, 현관 ∥ 테라스 정원, 안과 밖을 소통시키다 ∥ 테라스 정원, 층과 층을 소통시키다 ∥ 남산, 모든 이의 풍경이 되다 ∥ 계단실, 빛을 품다 ∥ 차실, 빛과 풍경을 품다 ∥ 바 설록이 품은 자개장
북촌 4경, 오설록에서 눈에 담을 수 있는 풍경
남(南), 사라지는 남산 풍경 ∥ 동(東), 원서동의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만든 스카이라인 ∥ 서(西), 굴뚝이 있는 풍경 ∥ 북(北), 꽃병의 배경이 된 북촌의 백악 풍경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곳
하이퍼아트 토마손, 담장에 남은 삶의 흔적 ∥ 피뢰침 ∥ 골목에서 마주치는 설화수·오설록 ∥ 설화수·오설록 옆 골목 풍경
오감으로 즐기는 집
재료, 오감을 깨운다 ∥ 바닥과 높이 그리고 속도 ∥ 벽체와 재료 ∥ 빛을 품는 재료, 흙 ∥ 빛과 조명 ∥ 자개장의 추억
저자
저자
안창모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근현대건축을 공부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한국건축의 성격 변화"로 석사학위를, "건축가 박동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에 건축사 면허를 취득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일본 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 건축역사학회 부회장,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큐레이터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한국 근대건축의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며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근대도시건축연구와실천을위한모임 회장, (재)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며 국가상징거리조성계획, 역사문화도심관리기본계획 등 역사도시 서울과 근대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현대건축 50년》(1996), 《서울건축사》(1999, 공저), 《북한문화, 둘이면서 하나인 문화》(2008, 공저), 《건축가 김정수》(2008, 공저), 《덕수궁: 시대와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2009), 《Architectural and Cultural Guide Pyongyang》(2012, 독일어·영어, 공저), 《21세기 북한의 예술》(2020, 공저), 《기술과 사회로 읽는
도시건축사》(2022) 등의 저서가 있다. 2021년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객원연구원, 건축역사학회 부회장,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큐레이터였다. 현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한국 근대건축의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며 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근대도시건축연구와실천을위한모임 회장, (재)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이며 국가상징거리조성계획, 역사문화도심관리기본계획 등 역사도시 서울과 근대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현대건축 50년》(1996), 《서울건축사》(1999, 공저), 《북한문화, 둘이면서 하나인 문화》(2008, 공저), 《건축가 김정수》(2008, 공저), 《덕수궁: 시대와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2009), 《Architectural and Cultural Guide Pyongyang》(2012, 독일어·영어, 공저), 《21세기 북한의 예술》(2020, 공저), 《기술과 사회로 읽는
도시건축사》(2022) 등의 저서가 있다. 2021년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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