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 한 편(반양장)
시는 오래도록 펄럭이는 깃발이다
시집 후기에서 최승호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본인의 시를 빌려 이렇게 시집을 자평한다.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이번 시집에서 최승호 시인은 ‘고재종, 기형도, 김경주, 김기택, 김민정, 김사인, 김소연, 김수영, 김정환, 김지하, 김행숙, 나희덕, 도종환, 박남철, 박상순, 박정대, 박찬일, 백석, 신용목, 신해욱, 심보선, 안도현, 유하, 이문재, 이병률, 이상희, 이성복, 이성부, 이성선, 이수명, 이수익, 이승훈, 이시영, 이영광, 이은림, 이정록, 이제니, 임영조, 장석남, 정끝별, 조용미, 진이정, 차창룡, 함기석, 함민복, 함성호, 허연, 황인숙, 황지우(이상 가나다 順)’ 등 50명의 시 50편을 인용하였는데, 시집에는 일부만 인용하였으므로(인용된 것만으로도 이번 시집을 읽기에 모자람은 없겠지만) 기왕이면 인용된 시 50편의 전문 모두를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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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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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자술과는 달리 편집자의 눈으로 보자면 문장을 조금 바꿔야 한다. "조개는 오직 오개만을 남겼다"라고. 달리 말하자면 "시는 오직 시만을 남겼다"라고 바꿔야 맞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니까 시가 시를 낳는 경지라고 하겠다.
2. 이번 시집에서 최승호 시인은 '고재종, 기형도, 김경주, 김기택, 김민정, 김사인, 김소연, 김수영, 김정환, 김지하, 김행숙, 나희덕, 도종환, 박남철, 박상순, 박정대, 박찬일, 백석, 신용목, 신해욱, 심보선, 안도현, 유하, 이문재, 이병률, 이상희, 이성복, 이성부, 이성선, 이수명, 이수익, 이승훈, 이시영, 이영광, 이은림, 이정록, 이제니, 임영조, 장석남, 정끝별, 조용미, 진이정, 차창룡, 함기석, 함민복, 함성호, 허연, 황인숙, 황지우(이상 가나다 順)' 등 50명의 시 50편을 인용하였는데, 시집에는 일부만 인용하였으므로(인용된 것만으로도 이번 시집을 읽기에 모자람은 없겠지만) 기왕이면 인용된 시 50편의 전문 모두를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각각의 시편들을 기초로 재창조한 최승호 시인의 시편들에 대한 느낌도 사뭇 다르게 다가올 터. 이번 시집을 제대로 읽는 독자라면 100편의 시를 읽는 셈이겠다.
3. 다시 말하지만 이번 시집은 최승호 시인이 '누군가의 시 한 편'을 읽고 시라는 형식으로 댓글을 단 것이다. 일종의 댓글詩集이다. 댓글이라고 했지만 원작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댓글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지닌다. 그런데 원래의 시와 댓글의 시가 묘하게 닿고 통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먼저 박상순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첫 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열 번째는 전화기
- 박상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 전문
박상순 시인의 도무지 알 수 없거나, 알 수 없을 것 같은 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를 읽은 최승호 시인은 시의 형식을 통해 이렇게 도무지 알쏭달쏭한 댓글을 단다.
헤헤
돌고래가 웃는다
조련사가 던져주는
냉동생선을 받아먹을 때에도
헤헤
조련사에게 꾸중 듣고
수조에서 혼자 벌을 설 때에도
헤헤
쇼가 있는 날
돌고래는 관객들을 웃겨 보려고
공중제비, 풍덩, 다시 공중제비,
풍덩,
돌고래는 쇼를 마치고
조련사에게 다가간다
입을 벌리고 웃는다
헤헤
― 「웃는 돌고래」 전문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도무지 알쏭달쏭한 것으로 화답하고 있는 형국이니 그야말로 선문선답(禪問禪答)이다. 이 선문답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으려면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한다. 어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어린아이. 그 열린 상태가 되어야 한다. 박상순 어린이가 "7은 돌고래"라고 하니까, 최승호 어린이가 "돌고래가 웃는다 헤헤"라고 답하는 거다. 어쩌면 세상에 없는 방식의 시 읽기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 무슨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들 결국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은 다름 아닌 최승호 시집이라는 사실이겠다. 그는 여전히 기계문명과 천민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고, 생태주의에 기반한, 기발한 상상력 또한 여전하다. 그러니 이 시집은 결코 유쾌 통쾌 상쾌하지만은 않다. 인류 문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만큼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우울하다. 어쩔 것인가. 시인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가릴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인 것을. 시인이 놓은 징검다리 징검돌을 두드리며 함께 건너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받은 이 생도
아주 우연한 음악
― 유하의 시 「우연의 음악」에서
징검다리 징검돌들을
두드럭
두드럭
두드리는
두드럭징거미새우야
징검다리 아래로 늙은 장님 악사가
떠내려가지 않게
기다란 두 발로 징검돌들을 두드려다오
두드럭
두드럭
두드럭
두드럭
돌북처럼 징검돌들을 두드려다오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늙은 장님 악사가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도록
― 「두드럭징거미새우」 전문
이 시집을 펴내며 최승호 시인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주 가벼운 시집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여행을 떠날 때, 언제 어디서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지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이 가벼운 시집 한 권, 주머니에 넣으시라.
목차
목차
여울의 음악
파랑이 지저귄다
들꽃
그냥 존재하는 사람
유리창의 눈물
망설임
귀 속의 텅 빈 굴
리스본의 갈매기
흐린 늪에 사는 게아재비 씨
소심
시가 연기 속에 카스트로 씨의 인생이 타들어갔다
두부 먹이기
푸른 늑대
소소리바람
벵갈호랑이
새
게
웃는 돌고래
골계
버스에서
까마귀 대변인
파김치 상어
하마
알
맨드라미
누가 파파파파를 보았는가
두드럭징거미새우
섬
발의 즐거움
잃어버린 구렁이를 찾아서
누가 가리왕산을 안고 운다
산에 사는 열목이
흰범꼬리풀
수풀떠들썩팔랑나비
뚱딴지 꽃 피는 날
왜 사는지 모르지만
물렁물렁한 바위
겨울나기
겨울산
바람의 무늬들
만리장성
아주 조그만 흡혈귀
다시 노을
종이배에서 노젓기
절에서 도망치기
말의 그릇
여백이 숨 쉴 때
낡은 말의 학교
말할 수 없는 것
여행
후기
[차례 2 _ 누군가의 시 한 편]
이성복/ 음악
이은림/ 태양 중독자
신용목/ 나비
김사인/ 조용한 일
심보선/ '나'라는 말
안도현/ 고드름
김행숙/ 음악 같은
이제니/ 잔디는 유일해진다
함성호/ 56억 7천만 년의 고독
나희덕/ 땅 속의 꽃
박정대/ 마지막이자 처음인 백야
박남철/ 지상의 인간
김경주/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황인숙/ 고양이를 부탁해
이시영/ 시인이라는 직업
김정환/ 구두 한 짝
김민정/ 그저 어항
박상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이영광/ 사람이 잘 안 죽는 이유
신해욱/ 메아리
김기택/ 전자레인지
박찬일/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기다려!
이병률/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차창룡/ 개심사에서
이문재/ 귀는 얼마나 큰 눈인가
유하/ 우연의 음악
진이정/ 등대지기
이성부/ 한눈파는 발
백석/ 나와 지렝이
함민복/ 묵상
임영조/ 열목이
도종환/ 호랑지빠귀
이정록/ 이슬
함기석/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뚱딴지 씨
이승훈/ 인생
이수익/ 어느 밤의 누이
기형도/ 엄마 생각
고재종/ 동안거
조용미/ 물 위의 길
김소연/ 그러나, 거대함에 대하여
허연/ 내 사랑은
장석남/ 해남 들에 노을 들어 노을 본다
정끝별/ 나 안개에 쉬려네
이상희/ 송광사 가서
이성선/ 고요하다
김지하/ 해
이수명/ 오렌지 나무의 농담
김춘수/ 비가를 위한 말놀이3
황지우/ 노스탤지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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