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봐라, 봄(달아실시선 26)
정충화 시집
정충화 시인이 2013년 첫 번째 시집(『누군가의 배후』)을 냈는데,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봄 봐라, 봄』을 세상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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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정충화 시집 『봄 봐라, 봄』
정충화 시인이 2013년 첫 번째 시집(『누군가의 배후』)을 냈는데,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봄 봐라, 봄』을 세상에 내놓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의 원고를 받은 것이니 나로서는 누구보다 고맙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충화 형의 원고를 시집으로 묶으면서 독자들이 이번 시집 『봄 봐라, 봄』을 읽을 때 지난해 나온 형의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를 먼저 읽거나 아니면 같이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문집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한다.
"십여 년 전, 해빙기에 지인 몇 사람과 들길을 걷다가 경기도 안산 근처 어느 저수지의 얼음 위를 무모하게 건넌 적이 있다. 먼 거리를 돌아가는 대신 가깝게 질러가려던 마음들이 미처 위험을 살피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저수지 복판을 지날 때쯤 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서야 위험을 감지하고 혼비백산했다. 이미 저수지 중간까지 갔기에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해야 했고 우리는 건너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무게를 분산하자고 넓게 흩어졌기에 망정이지 뭉쳐서 건넜더라면 모두 수중고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늘 위태롭다. 언제 꺼져 내릴지 모르는 박빙 위를 걷듯 말이다."
- 정충화 산문집, 『삶이라는 빙판의 두께』 중에서
산문으로 풀어 쓴 형의 캄캄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쩌면 이번 시집에서 시라는 형식으로 응축하고 변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형의 산문과 시편들을 함께 읽으면 그 맛이 훨씬 진하고 깊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시집의 맨 처음에 형이 배치한 시를 읽어보자. 사실 형의 원고를 처음 받고 이 시를 읽었을 때 나는 바로 형의 산문집을 떠올렸던 거다.
불행은 늘 우리 발밑에 있다
지근거리에 함정을 파두고
먹잇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거기 빠지는 순간
생은
간단하게 발목이 잘리고 만다
그 자리에는 이내
불행의 쌍생아인
절망이 들어찬다
멀리 있는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등촉 같은 희망 하나에 매달려 사는 게
인생이다
어둠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 「가까운 어둠」 전문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을 삶의 제일 목적으로 두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정반대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삶은 힘들고, 고달프고, 아프고, 슬프고, 화가 나고, 절망스런 일들로 가득하다. 내일이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은 늘 위태롭다. 언제 꺼져 내릴지 모르는 박빙 위를 걷듯 말이다."(『삶이라는 빙판의 두께』)라는 형의 말은 그래서 절절하게 와닿는다. "불행은 늘 우리 발밑에 있다" "언제 꺼질지도 모르는 / 등촉 같은 희망 하나에 매달려 사는 게 / 인생이다"(「가까운 어둠」)라는 형의 말은 그래서 절실하게 와닿는다.
이번 시집은 그렇게 캄캄한 삶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캄캄한 삶이지만, 무수한 슬픔과 절망의 얼음 위를 걷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건네주는 작은 희망, 기쁨, 행복, 웃음으로 우리네 삶은 위로받으며 견디는 것이라고, 그렇게 박빙의 한 생을 건너고 건네주는 것이라고 형은 덤덤히 이야기한다.
해설을 쓴 박성현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슬픔의 행간'에 조각된 염낭거미 한 채"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저한 자기-부정'에서 발원하는 정충화 시인의 문장은 이미 불볕이다. 그 맹렬한 문장들은 끊임없이 시인을 소환하고, 그의 몸과 마음에 깃든 윤리를 비판적으로 관찰하며, 마치 스스로를 법정에 세운 듯, 스스로를 냉철하게 판단한다. '땅뙈기 조금 넘보았기로 / 뿌리까지 뽑아 없앨 일이던가 / 고추 고랑에 팔을 걸친 풀들에게 / 미안하였다 // 그래, 고추 한 개 덜 먹자 하고 / 호미를 씻었다'(「수회리에서-고추밭을 매다가」)는 지극히 사소한 일상까지 그는 자기 자신마저 발가벗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이, 보편적 사물의 영역을 다루는 듯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 그의 시는 전통 서정시의 공식에 충실하다. 생활의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충격과 폐허에 '생명'이라는 삶의 본질적이고 고귀한 가치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부정'을 매개 고리로 삼았다는 사실로 그의 문장은 기존 서정시와 차별된다. 그는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세계-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인 바, 그가 형상한 세계는 시인의 형해(形骸)를 딛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다시 세계 속으로 스며든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정충화 시인의 문장들에서 새로 돋는 살이 아닌 몰락으로 치닫는 슬픔의 이미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가 갈 수밖에 없었던 길, 스스로를 비탈로 내던져버린, 구원으로써의 참혹한 길을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 바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힘인데, 어쩌면 그것만이 그가 평생을 다해 읽어냈던, 암각화에 갇힌 '나비 한 마리의 생애'(「암각화」)와 그것이 순간순간 '언 땅을 찢고 돋아나는 / 시푸른 문장'과 '너라는 詩'(「춘분春分」)로 폭발되는 강렬한 시적 분출을 인화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거칠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번 시집이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는 것은 정충화 시인이 자신을 주체가 아닌 타자로서 세계와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어정쩡한 타협보다는 슬픔과 절망의 바닥까지 자신을 몰아가는 데에 있다는 것이겠다.
속옷을 갈아입다가
우연히 바라본 벽 모서리에
거미집 두어 채가 눈에 띄었다
저것들이 감히 주인 허락도 없이
단칸방에 똬리를 틀다니
까치발로 빗자루를 휘둘러
무허가 쪽방을 허물어버렸다
내 방에서
몰래 곁방살이하던 것들이
황급히 옷장 뒤로 쫓겨 갔다
경고도 없이
그들 삶터를 부숴버림으로써
나는 순식간에
폭력 용역이 되고 말았다
거대 자본의 위력과
용역의 쇠파이프에 내몰린
재개발지역 빈민들처럼
거미들은 또 어느 변두리엔가
쪽방을 들일 것이다
삶이 가파르면
비탈을 쉬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 「만정리 자취 일기-철거」 전문
단단한 얼음이라는 헛된 희망보다는 박빙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오히려 작은 희망의 씨앗을 나누는 것이 현명한 선택 아닐까. 시인이 "봄 봐라, 봄" 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놓치고 있는 게 훨씬 더 크고 많을 것이다.
독자들께서 내가 놓친 그것들을 부디 찾아내어 알려주시길 바란다.
목차
목차
1부
가까운 어둠
거미와 백석
암각화
틈
춘분春分
지하 여인숙
구사일생
헛공부
염낭거미의 삶
뻘밭을 헤쳐 가는 짱뚱어처럼
배후
낡은
되새김질
반半
거리 풍경화 한 점
끈
망종亡種 무렵
2부
비수
새의 하늘
안개 도시
낡은 영사기
정성精誠의 밀도
친연성이라는 함정
촛불의 미학
채혈
옛집 우물의 小史
불면
환절기
찜질
시간의 윤회
거세된 말
D의 공포
겨울을 건너는 것들
불면 2
3부
마음에 느는 빚
인과관계
철새
무적霧滴
삶의 동질성에 대하여
눈꽃
추색秋色
을왕리에서
숙취
봄 봐라, 봄
통편집하고 싶다
중하순 무렵
자작自酌을 하며
흉년기
슬픔의 행간을 읽다
그리움
ㄹ이 만드는 삶
4부
문양이라는 비밀
술값
잠시 파문波紋
흑백 논리의 허구
함구
안개와 놀다
어느 가격표
새의 어원
수회리에서-고장
수회리에서-어느 하오下午
수회리에서-물그림자와 놀다
수회리에서-인사이동
수회리에서-고추밭을 매다가
만정리 자취 일기-빨래
만정리 자취 일기-철거
만정리 자취 일기-오월
해설
'슬픔의 행간'에 조각된 염낭거미 한 채 / 박성현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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