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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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생활상과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주는 『삼국유사』
이야기 형식에다가 어려운 낱말은 뜻풀이를 더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 약 150년 뒤에 나온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삼국사기』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책이 『삼국유사』이다.
두 책 다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성격이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삼국사기』는 역사 위주의 기록인데 반하여,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 중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은 스님으로서 『삼국사기』를 보다가 뼈대만으로 된 역사 기록에 대해 미흡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신화와 설화도 중요한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임을 깊이 인식하고 『삼국유사』를 쓰게 되었다. ‘역사’는 뼈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는 숨결과 몸을 지탱하는 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고대의 민속·문학·사상·종교 등 각종 문화적인 주제들이 이야기 형식의 서술 기법으로 쓰여 있다. 서연비람 『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에서는 바로 원본인 『삼국유사』가 갖고 있는 최대의 강점인 ‘이야기 형식을 빌어서 쓴 서술 기법’을 최대한 살렸다.
『삼국유사』는 원래 총 9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 왕력편은 삼국 시대 왕들의 행적을 연대별로 정리한 자료이므로 이 책에서는 생략했다. 2 기이편은 가장 내용이 많은 부분이라 2개의 장으로 구분했고, 나머지는 원본 그대로 다루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신화와 설화 등 이야기 위주로 되어 있는 내용만 골라 재편집했다. 따라서 원문의 번역이라고 하기 보다는 내용에 충실하되 읽기 편하도록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최대한 쉬운 단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각 이야기 말미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통해 삼국 시대의 생활상과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함께 생각하기’ 꼭지를 두었다. 한문자에서 온 단어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야기 형식에다가 어려운 낱말은 뜻풀이를 더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보다 약 150년 뒤에 나온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삼국사기』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책이 『삼국유사』이다.
두 책 다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성격이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삼국사기』는 역사 위주의 기록인데 반하여,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 중심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은 스님으로서 『삼국사기』를 보다가 뼈대만으로 된 역사 기록에 대해 미흡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신화와 설화도 중요한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임을 깊이 인식하고 『삼국유사』를 쓰게 되었다. ‘역사’는 뼈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는 숨결과 몸을 지탱하는 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고대의 민속·문학·사상·종교 등 각종 문화적인 주제들이 이야기 형식의 서술 기법으로 쓰여 있다. 서연비람 『엄광용 선생님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에서는 바로 원본인 『삼국유사』가 갖고 있는 최대의 강점인 ‘이야기 형식을 빌어서 쓴 서술 기법’을 최대한 살렸다.
『삼국유사』는 원래 총 9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 왕력편은 삼국 시대 왕들의 행적을 연대별로 정리한 자료이므로 이 책에서는 생략했다. 2 기이편은 가장 내용이 많은 부분이라 2개의 장으로 구분했고, 나머지는 원본 그대로 다루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신화와 설화 등 이야기 위주로 되어 있는 내용만 골라 재편집했다. 따라서 원문의 번역이라고 하기 보다는 내용에 충실하되 읽기 편하도록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최대한 쉬운 단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각 이야기 말미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통해 삼국 시대의 생활상과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함께 생각하기’ 꼭지를 두었다. 한문자에서 온 단어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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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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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어서]
♣ 함께 생각하기
절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았느냐에 따라 석굴사원, 평지사원, 산지사원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석굴사원은 암석으로 된 석굴을 이용하여 법당을 만든 것이며, 평지사원은 나라의 왕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평지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산지사원은 개인의 조용한 수행을 위해 깊은 산과 계곡에 자리를 잡은 절입니다.
석굴사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주 신선사의 석굴과 토함산의 석굴암이 있습니다. 평지사원의 경우 고구려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평양 동명왕릉 앞에 있는 정릉사, 백제의 사원으로 부여에 있는 정림사, 신라의 사원으로는 경주의 흥륜사와 불국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정릉사, 정림사, 흥륜사는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세운 사천왕사는 경주 낭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산지사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는 호국불교를 신봉하면서 사원들을 많이 건립했습니다. 호국불교는 '왕즉불'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왕이 곧 부처'라는 말인데, 불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06쪽
자장 율사,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다
신라 제27대 선덕 여왕 5년, 자장 율사가 불경을 연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갔다.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 들어가 불법을 익히는데, 문득 문수보살이 나타나 불교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문수보살은 자장 율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나라 대왕은 바로 천축의 찰리종왕1으로 이미 불법을 닦고 계시를 받은 자이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야만스런 오랑캐 족속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너희 나라는 산천이 험준하여 백성들의 성질이 사납기 때문에 다른 사교를 많이 믿는다. 이따금씩 큰 재앙이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라 안에 불도를 닦는 중들이 있어, 지금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평화로운 것이다."
문수보살은 말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자장 율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자장 율사가 중국의 '태화지'라는 연못가를 지나는데, 홀연히 한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오시었소?"
"불도를 닦으러 왔습니다."
자장 율사의 말에 다시 신인이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단 말이오?"
"예,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1과 접하여 있으며, 남으로는 왜국과 바다를 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고구려와 백제는 호시탐탐 신라의 국경을 넘보고 있으니,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왕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소. 그래서 이웃 나라가 얕잡아보고 침략을 일삼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도우시오."
신인의 말에 이번에는 자장 율사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국에 돌아가서 소승이 어떤 일로 나라를 도울 수 있습니까?"
"황룡사를 지키는 용은 바로 나의 큰아들이오. 그대는 본국에 돌아가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도록 하시오. 그러면 이웃 나라들이 모두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가 조공을 해올 것이오.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2를 베풀고 죄인을 석방하면 감히 외적들이 해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경기 지방 남쪽 해안에 작은 절을 지어 내 복을 빌어준다면, 나도 그 은덕에 보답하겠소."
-171~172쪽
♣ 함께 생각하기
삼국 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흔히 말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육상에선 말을 이용한 마차가, 해상에선 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이외에 소를 이용한 우차와 수레도 활용했습니다.
말은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배의 형태는 주형토기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배를 통해 당시의 실물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차·우차·수레 등의 실물 모습은 고구려의 쌍영총 벽화와 덕흥리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메고 다니는 가마도 교통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고구려의 안악3호분 벽화에는 남녀가 각각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신라의 기와에는 '바퀴달린 연'이라 해서 좌우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이 늘어져 있는 왕이 타던 가마 비슷한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들을 볼 때 삼국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가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엄격한 귀족 사회였기때문에 교통수단 역시 신분에 따라 사용 범위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경우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 깔방석의 꾸미개, 말의 치장 정도 등이 진골·6두품·5두품·4두품에 따라 각각 다르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은 결혼식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232쪽
♣ 함께 생각하기
절은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았느냐에 따라 석굴사원, 평지사원, 산지사원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석굴사원은 암석으로 된 석굴을 이용하여 법당을 만든 것이며, 평지사원은 나라의 왕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로 평지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산지사원은 개인의 조용한 수행을 위해 깊은 산과 계곡에 자리를 잡은 절입니다.
석굴사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주 신선사의 석굴과 토함산의 석굴암이 있습니다. 평지사원의 경우 고구려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평양 동명왕릉 앞에 있는 정릉사, 백제의 사원으로 부여에 있는 정림사, 신라의 사원으로는 경주의 흥륜사와 불국사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정릉사, 정림사, 흥륜사는 절터만 남아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세운 사천왕사는 경주 낭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산지사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는 호국불교를 신봉하면서 사원들을 많이 건립했습니다. 호국불교는 '왕즉불'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왕이 곧 부처'라는 말인데, 불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06쪽
자장 율사,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다
신라 제27대 선덕 여왕 5년, 자장 율사가 불경을 연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건너갔다.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 들어가 불법을 익히는데, 문득 문수보살이 나타나 불교의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문수보살은 자장 율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나라 대왕은 바로 천축의 찰리종왕1으로 이미 불법을 닦고 계시를 받은 자이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야만스런 오랑캐 족속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너희 나라는 산천이 험준하여 백성들의 성질이 사납기 때문에 다른 사교를 많이 믿는다. 이따금씩 큰 재앙이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라 안에 불도를 닦는 중들이 있어, 지금은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평화로운 것이다."
문수보살은 말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사라졌다. 자장 율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자장 율사가 중국의 '태화지'라는 연못가를 지나는데, 홀연히 한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오시었소?"
"불도를 닦으러 왔습니다."
자장 율사의 말에 다시 신인이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단 말이오?"
"예,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1과 접하여 있으며, 남으로는 왜국과 바다를 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고구려와 백제는 호시탐탐 신라의 국경을 넘보고 있으니, 백성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왕이 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소. 그래서 이웃 나라가 얕잡아보고 침략을 일삼는 것이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도우시오."
신인의 말에 이번에는 자장 율사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국에 돌아가서 소승이 어떤 일로 나라를 도울 수 있습니까?"
"황룡사를 지키는 용은 바로 나의 큰아들이오. 그대는 본국에 돌아가 황룡사에 구층 목탑을 세우도록 하시오. 그러면 이웃 나라들이 모두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가 조공을 해올 것이오.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2를 베풀고 죄인을 석방하면 감히 외적들이 해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경기 지방 남쪽 해안에 작은 절을 지어 내 복을 빌어준다면, 나도 그 은덕에 보답하겠소."
-171~172쪽
♣ 함께 생각하기
삼국 시대에는 교통수단으로 흔히 말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육상에선 말을 이용한 마차가, 해상에선 배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이외에 소를 이용한 우차와 수레도 활용했습니다.
말은 신라의 기마형토기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배의 형태는 주형토기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배를 통해 당시의 실물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차·우차·수레 등의 실물 모습은 고구려의 쌍영총 벽화와 덕흥리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메고 다니는 가마도 교통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고구려의 안악3호분 벽화에는 남녀가 각각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신라의 기와에는 '바퀴달린 연'이라 해서 좌우에 구슬로 꿰어 만든 발이 늘어져 있는 왕이 타던 가마 비슷한 것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들을 볼 때 삼국 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가마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엄격한 귀족 사회였기때문에 교통수단 역시 신분에 따라 사용 범위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경우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 깔방석의 꾸미개, 말의 치장 정도 등이 진골·6두품·5두품·4두품에 따라 각각 다르게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은 결혼식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232쪽
목차
목차
■ 제1권 기이 제1
1 고조선
2 위만 조선
3 고구려
4 신라
5 석탈해
6 연오랑과 세오녀
7 미추왕과 죽엽군
8 김제상
9 소지 마립간
10 지철로왕
11 도화녀와 비형랑
12 진평왕
13 선덕 여왕
14 김유신
15 태종 춘추공
16 백제 의자왕
■ 제2권 기이 제2
1 문무왕
2 신문왕
3 수로 부인
4 신무왕과 염장과 궁파
5 경문왕
6 처용랑과 망해사
7 거타지
8 김부 대왕
9 백제 무왕
10 가락국기
■ 제3권 흥법 제3
1 아도
2 이차돈
■ 제3권 탑상 제4
1 황룡사 구층 목탑
2 조신
3 신효 거사
■ 제4권 의해 제5
1 원광 법사
2 양지 스님
3 원효 대사
4 의상 대사
5 진표 율사
6 법해 스님
■ 제5권 신주 제6
1 밀본 법사
2 혜통 스님
■ 제5권 감통 제7
1 경흥 스님
2 월명사
3 선율 스님
4 김현
5 정수 스님
■ 제5권 피은 제8
1 낭지 스님
2 신충
■ 제5권 효선 제9
1 김대성
2 손순
1 고조선
2 위만 조선
3 고구려
4 신라
5 석탈해
6 연오랑과 세오녀
7 미추왕과 죽엽군
8 김제상
9 소지 마립간
10 지철로왕
11 도화녀와 비형랑
12 진평왕
13 선덕 여왕
14 김유신
15 태종 춘추공
16 백제 의자왕
■ 제2권 기이 제2
1 문무왕
2 신문왕
3 수로 부인
4 신무왕과 염장과 궁파
5 경문왕
6 처용랑과 망해사
7 거타지
8 김부 대왕
9 백제 무왕
10 가락국기
■ 제3권 흥법 제3
1 아도
2 이차돈
■ 제3권 탑상 제4
1 황룡사 구층 목탑
2 조신
3 신효 거사
■ 제4권 의해 제5
1 원광 법사
2 양지 스님
3 원효 대사
4 의상 대사
5 진표 율사
6 법해 스님
■ 제5권 신주 제6
1 밀본 법사
2 혜통 스님
■ 제5권 감통 제7
1 경흥 스님
2 월명사
3 선율 스님
4 김현
5 정수 스님
■ 제5권 피은 제8
1 낭지 스님
2 신충
■ 제5권 효선 제9
1 김대성
2 손순
저자
저자
일연
(1206~1289)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승려이자 학자이다.
1219년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다. 여러 선문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참선하였으며, 그로 인해 명성을 얻었다.
1277년(충렬왕3년)부터 운문사에 머물면서 왕명에 따라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다. 『삼국유사』는 고대 신화 및 민간 설화, 향가 등 고대 사료를 수록하여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일연은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불교 서적을 펴냈다.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가 현재 전하며, 그 외에 『어록』, 『게송잡저』, 『선문염송사원』 등이 알려져 있다.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승려이자 학자이다.
1219년 14세에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였다. 여러 선문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참선하였으며, 그로 인해 명성을 얻었다.
1277년(충렬왕3년)부터 운문사에 머물면서 왕명에 따라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다. 『삼국유사』는 고대 신화 및 민간 설화, 향가 등 고대 사료를 수록하여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일연은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불교 서적을 펴냈다.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가 현재 전하며, 그 외에 『어록』, 『게송잡저』, 『선문염송사원』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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