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문장
읽을수록새롭고,천천히음미하고싶은민족시인윤동주의고뇌와부끄러움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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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고뇌와 참회의 기록… 윤동주 문학의 에스프리!
124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의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고뇌하고 참회했던 윤동주 문학의 에스프리.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민족시인 윤동주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대표하는 시 86편, 동시 34편, 산문 4편 등 124편의 작품을 창작연월일 순으로 담았다. 특히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적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시인의 내면과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벗들의 회고와 추모의 글을 함께 담아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의 올곧은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124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의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고뇌하고 참회했던 윤동주 문학의 에스프리.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민족시인 윤동주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대표하는 시 86편, 동시 34편, 산문 4편 등 124편의 작품을 창작연월일 순으로 담았다. 특히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적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시인의 내면과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벗들의 회고와 추모의 글을 함께 담아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의 올곧은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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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진실한 자기성찰의 바탕에서 써 내려간,
깊은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는 124편의 빛나는 문장!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 그는 생전에 시인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시집을 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처음 부여한 사람은 조부 윤하현이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손자가 일본에서 만 27년 2개월(햇수로는 2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하자, 그의 조부 윤하현은 자신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손자의 비석으로 사용하며, 거기에 '시인 윤동주 지묘'라고 썼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시인이 된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단 한 순간도 온전한 내 나라에서 산 적이 없다. 민족의 한이 서린 간도에서 태어나 식민지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압제자의 땅에서 쓰러졌다.
그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독립투사도, 유명 시인도 아니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문학을 통해 민족이 처한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문학청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민족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여느 투사 못지않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서시〉의 구절처럼, 독립의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죽음의 늪에 빠진 민족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결국, 민족의 제단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말았다.
그가 시를 쓰던 때는 문학이 철저히 외면받던 때였다. 오로지 전쟁의 광기만이 너울거렸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었고, 벗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 감시받아야만 했다. 그러니 창씨개명 하지 않은 '순이'에 대한 추억이나 '흰옷', '살구나무' 등은 영락없는 불온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조국과 민족을 잊은 적이 없다. 민족의 아픔을 사랑으로, 분노를 꿈으로 피워내며, 죽는 순간까지 우리말로 시를 썼다.
《윤동주의 문장》은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시인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대표하는 시 86편, 동시 34편, 산문 4편 등 124편의 작품을 창작연월일 순으로 담고 있다. 특히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적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시인의 내면과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벗들의 회고와 추모의 글을 함께 담아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애썼던 시인의 올곧은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문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 윤동주의 올곧은 삶과 정신!
삶의 여정을 따라 진하게 울려 퍼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고뇌의 기록
대부분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윤동주의 작품 역시 행간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단순한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알면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가 된다.
그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이던 1936년 6월 10일에 쓴 〈이런 날〉이라는 시가 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 (중략) …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날'은 '일본의 국경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채 이 시를 읽으면 하나의 서정시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만주에서는 일본의 국경일에 만주국 국기인 오색기와 함께 일장기를 함께 달았다.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크게 웃고, 신나게 뛰어놀 뿐, 나라 잃은 설움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런 날〉은 그 심정을 담은 작품이다.
124편에 이르는 시인의 작품 대부분은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동시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한 소재를 아이다운 엉뚱한 생각과 동심으로 담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순진한 아이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꿈에 가 본 엄마'와 '돈 벌러 간 아빠'가 등장하는 〈오줌싸개 지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누구도 돌보는 사람 없는 형제의 비극을 티 없는 아이의 순진한 눈을 통해 그리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한다.
빨랫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는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쏴서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이렇듯 시인의 작품에는 시대의 아픔과 상처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또한, 그는 그런 아픔에 처한 민족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보듬고자 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윤동주의 문장》은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의 올곧은 삶과 정신을 담고 있다.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고뇌했던 시인의 삶이 오롯이 들여다보이는 깊은 울림의 기록인 셈이다. 이에 빛바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또 때로는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은 이유
윤동주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었다. 말과 글, 나라, 이름과 성까지 빼앗겼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즉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환자처럼 보였기에 때문이다. 이에 병원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듯, 자신의 시가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이다.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 〈참회록〉에 담긴 굳은 각오와 의지
1942년 1월 24일에 쓴 〈참회록〉이다. 국내에서 쓴 마지막 작품으로, 흔히 시인을 일컬을 때 말하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다.
육필 원고에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생존(生存)', '생활(生活)', '힘' 등의 낙서가 어지럽게 쓰여 있어 이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상을 떠올리며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1942년 3월, 시인은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만 했다.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당시 일본 유학을 하려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시인은 '히라누마 도쥬(平沼 東柱)'가 되었다.
창씨개명을 닷새 앞두고 쓴 〈참회록〉은 그때의 참담함과 괴로움을 담은 작품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참회록〉은 그가 그것을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일본 유학 시절 내내 이어졌다.
시인의 도시샤대 동기에 의하면, 시인은 수줍음이 많아서 수업 시간이면 항상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펜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는 나라를 잃었을지 모르지만, 정신과 문화만큼은 절대 잃지 않겠다는 시인의 마지막 저항이자 다짐이기도 했다.
윤동주의 고뇌와 괴로움의 모티브가 된 작가와 작품
윤동주의 〈툴계?의 언덕〉이라는 시가 있다. 현재 우리는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시로 시작해서 시로 문학 인생을 마무리했을 만큼 시를 사랑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의 시, 그것도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노년의 투르게네프가 뒤늦게 깨달은 삶의 가치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20세기 초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그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수작 중 하나로 젊은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소설 《루딘》 역시 윤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윤동주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지식인의 고뇌와 괴로움의 출발점은 《루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루딘》은 당시 암울한 사회 상황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젊은 청년 루딘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에서 루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조국 러시아는 우리가 없어도 전진하겠지만, 우리 중 누구도 조국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별했다. 햄릿은 생각에만 몰두하는 분석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자신을 맹신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돌진한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투르게네프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보다는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되자고 했다. 세상을 끌어가는 것은 돈키호테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가 만연하고 불의한 시대일수록 돈키호테형 인간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윤동주가 산 시대 역시 그런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행동을 중시하는 송몽규가 윤동주보다 먼저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은 거기서 오는 질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윤동주를 만든 팔 할, 송몽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문구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의 윤동주를 만든 팔 할은 송몽규였다.
1935년 1월 1일, 송몽규가 〈술가락(숟가락)〉이라는 작품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분에 당선되자, 자극을 받은 윤동주는 본격적으로 습작에 돌입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작품마다 창작연월일을 기록했다. 송몽규의 등단이 시인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고종사촌 사이로 3개월 간격으로 같은 집에서 나란히 태어난 두 사람은 평생의 벗이자 라이벌이었다. 송몽규는 눈물 많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인과는 달리 소년 시절부터 활동적이고 리더십이 강했다. 두 사람과 어린 시절 친구로 '간도 삼총사'라고 불렸던 고 문익환 목사에 의하면, 시인은 늘 자신보다 한발 앞선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송몽규는 전도유망했던 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독립군의 길을 걷는다. 생각건대, 그것이 시인을 더 부끄럽게 하고 반성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불의와 부조리에 행동으로 맞서는 송몽규와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비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깊은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는 124편의 빛나는 문장!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 그는 생전에 시인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시집을 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처음 부여한 사람은 조부 윤하현이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손자가 일본에서 만 27년 2개월(햇수로는 29년)의 짧은 삶을 마감하자, 그의 조부 윤하현은 자신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손자의 비석으로 사용하며, 거기에 '시인 윤동주 지묘'라고 썼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시인이 된 것이다.
시인 윤동주는 단 한 순간도 온전한 내 나라에서 산 적이 없다. 민족의 한이 서린 간도에서 태어나 식민지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압제자의 땅에서 쓰러졌다.
그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독립투사도, 유명 시인도 아니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문학을 통해 민족이 처한 아픔을 달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문학청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민족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여느 투사 못지않았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서시〉의 구절처럼, 독립의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죽음의 늪에 빠진 민족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결국, 민족의 제단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말았다.
그가 시를 쓰던 때는 문학이 철저히 외면받던 때였다. 오로지 전쟁의 광기만이 너울거렸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었고, 벗들과 어울리는 것 역시 감시받아야만 했다. 그러니 창씨개명 하지 않은 '순이'에 대한 추억이나 '흰옷', '살구나무' 등은 영락없는 불온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조국과 민족을 잊은 적이 없다. 민족의 아픔을 사랑으로, 분노를 꿈으로 피워내며, 죽는 순간까지 우리말로 시를 썼다.
《윤동주의 문장》은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민족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자 했던 시인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대표하는 시 86편, 동시 34편, 산문 4편 등 124편의 작품을 창작연월일 순으로 담고 있다. 특히 작품에 깃들어 있는 시대적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시인의 내면과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벗들의 회고와 추모의 글을 함께 담아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애썼던 시인의 올곧은 정신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 문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 윤동주의 올곧은 삶과 정신!
삶의 여정을 따라 진하게 울려 퍼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고뇌의 기록
대부분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윤동주의 작품 역시 행간에 깃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단순한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알면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가 된다.
그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이던 1936년 6월 10일에 쓴 〈이런 날〉이라는 시가 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 (중략) …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날'은 '일본의 국경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채 이 시를 읽으면 하나의 서정시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만주에서는 일본의 국경일에 만주국 국기인 오색기와 함께 일장기를 함께 달았다.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크게 웃고, 신나게 뛰어놀 뿐, 나라 잃은 설움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런 날〉은 그 심정을 담은 작품이다.
124편에 이르는 시인의 작품 대부분은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동시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한 소재를 아이다운 엉뚱한 생각과 동심으로 담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순진한 아이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상처를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꿈에 가 본 엄마'와 '돈 벌러 간 아빠'가 등장하는 〈오줌싸개 지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누구도 돌보는 사람 없는 형제의 비극을 티 없는 아이의 순진한 눈을 통해 그리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한다.
빨랫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는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쏴서 그린 지도
꿈에 가 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이렇듯 시인의 작품에는 시대의 아픔과 상처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또한, 그는 그런 아픔에 처한 민족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보듬고자 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윤동주의 문장》은 어둡고, 암울한 시대 문학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시인의 올곧은 삶과 정신을 담고 있다.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고뇌했던 시인의 삶이 오롯이 들여다보이는 깊은 울림의 기록인 셈이다. 이에 빛바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며, 또 때로는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은 이유
윤동주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었다. 말과 글, 나라, 이름과 성까지 빼앗겼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즉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환자처럼 보였기에 때문이다. 이에 병원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듯, 자신의 시가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이다.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 〈참회록〉에 담긴 굳은 각오와 의지
1942년 1월 24일에 쓴 〈참회록〉이다. 국내에서 쓴 마지막 작품으로, 흔히 시인을 일컬을 때 말하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다.
육필 원고에 '시(詩)란? 부지도(不知道)', '생존(生存)', '생활(生活)', '힘' 등의 낙서가 어지럽게 쓰여 있어 이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상을 떠올리며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1942년 3월, 시인은 일본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만 했다.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당시 일본 유학을 하려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시인은 '히라누마 도쥬(平沼 東柱)'가 되었다.
창씨개명을 닷새 앞두고 쓴 〈참회록〉은 그때의 참담함과 괴로움을 담은 작품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참회록〉은 그가 그것을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일본 유학 시절 내내 이어졌다.
시인의 도시샤대 동기에 의하면, 시인은 수줍음이 많아서 수업 시간이면 항상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펜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는 나라를 잃었을지 모르지만, 정신과 문화만큼은 절대 잃지 않겠다는 시인의 마지막 저항이자 다짐이기도 했다.
윤동주의 고뇌와 괴로움의 모티브가 된 작가와 작품
윤동주의 〈툴계?의 언덕〉이라는 시가 있다. 현재 우리는 그것을 〈투르게네프의 언덕〉으로 읽는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시로 시작해서 시로 문학 인생을 마무리했을 만큼 시를 사랑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의 시, 그것도 산문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노년의 투르게네프가 뒤늦게 깨달은 삶의 가치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20세기 초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그의 산문시 중 가장 인기를 끈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투르게네프의 수작 중 하나로 젊은 지식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소설 《루딘》 역시 윤동주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윤동주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지식인의 고뇌와 괴로움의 출발점은 《루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루딘》은 당시 암울한 사회 상황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젊은 청년 루딘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에서 루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조국 러시아는 우리가 없어도 전진하겠지만, 우리 중 누구도 조국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별했다. 햄릿은 생각에만 몰두하는 분석적이고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자신을 맹신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우선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돌진한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투르게네프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인간보다는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 되자고 했다. 세상을 끌어가는 것은 돈키호테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가 만연하고 불의한 시대일수록 돈키호테형 인간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윤동주가 산 시대 역시 그런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행동을 중시하는 송몽규가 윤동주보다 먼저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은 거기서 오는 질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윤동주를 만든 팔 할, 송몽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문구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의 윤동주를 만든 팔 할은 송몽규였다.
1935년 1월 1일, 송몽규가 〈술가락(숟가락)〉이라는 작품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분에 당선되자, 자극을 받은 윤동주는 본격적으로 습작에 돌입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작품마다 창작연월일을 기록했다. 송몽규의 등단이 시인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고종사촌 사이로 3개월 간격으로 같은 집에서 나란히 태어난 두 사람은 평생의 벗이자 라이벌이었다. 송몽규는 눈물 많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인과는 달리 소년 시절부터 활동적이고 리더십이 강했다. 두 사람과 어린 시절 친구로 '간도 삼총사'라고 불렸던 고 문익환 목사에 의하면, 시인은 늘 자신보다 한발 앞선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송몽규는 전도유망했던 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독립군의 길을 걷는다. 생각건대, 그것이 시인을 더 부끄럽게 하고 반성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불의와 부조리에 행동으로 맞서는 송몽규와 그렇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비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
─ 끊임없는 고뇌와 참회의 기록… 윤동주 문학의 에스프리
윤동주의 문장 __ 시
초 한 대 | 삶과 죽음 | 내일은 없다 | 거리에서 | 남쪽 하늘 | 공상 | 창공 | 비둘기 | 이별 | 식권 | 모란봉에서 | 황혼 | 가슴 1 | 가슴 2 | 종달새 | 닭 | 산상 | 오후의 구장 | 이런 날 | 양지쪽 | 산림 | 가슴 3 | 꿈은 깨어지고 | 빨래 | 아침 | 곡간 | 가을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 장 | 밤 | 달밤 | 풍경 | 울적 | 한난계 | 그 여자 | 야행 | 비ㅅ뒤 | 소낙비 | 비애 | 명상 | 바다 | 산협의 오후 | 비로봉 | 창 | 유언 | 새로운 길 | 어머니 | 가로수 | 비 오는 밤 | 사랑의 전당 | 이적 | 아우의 인상화 | 코스모스 | 고추밭 | 슬픈 족속 | 자화상 | 소년 | 달같이 | 투르게네프의 언덕 | 장미 병들어 | 산골물 | 팔복 | 병원 | 위로 | 무서운 시간 | 눈 오는 지도 | 태초의 아침 | 또 태초의 아침 | 십자가 | 눈 감고 간다 | 새벽이 올 때까지 | 못 자는 밤 | 돌아와 보는 밤 | 간판 없는 거리 | 바람이 불어 | 또 다른 고향 | 길 | 별 헤는 밤 | 서시 | 간 | 참회록 | 흰 그림자 | 흐르는 거리 | 사랑스런 추억 | 쉽게 씌어진 시 | 봄
윤동주의 문장 __ 동시
조개껍질 | 눈 1 | 참새 | 고향집 | 병아리 | 오줌싸개 지도 | 기왓장 내외 | 창구멍 | 닭 | 빗자루 | 해ㅅ비 | 무얼 먹구 사나 | 비행기 | 봄 | 굴뚝 | 버선본 | 눈 2 | 개 1 | 겨울 | 사과 | 편지 | 호주머니 | 둘 다 | 반딧불 | 나무 | 할아버지 | 만돌이 | 개 2 | 거짓부리 | 귀뜨라미와 나와 | 애기의 새벽 | 햇빛·바람 | 해바라기 얼굴 | 산울림
윤동주의 문장 __ 산문
달을 쏘다 | 별똥 떨어진 데 | 종시 | 화원에 꽃이 핀다
윤동주를 말하다
벗들의 회고와 최근의 평가
윤동주 연보
─ 끊임없는 고뇌와 참회의 기록… 윤동주 문학의 에스프리
윤동주의 문장 __ 시
초 한 대 | 삶과 죽음 | 내일은 없다 | 거리에서 | 남쪽 하늘 | 공상 | 창공 | 비둘기 | 이별 | 식권 | 모란봉에서 | 황혼 | 가슴 1 | 가슴 2 | 종달새 | 닭 | 산상 | 오후의 구장 | 이런 날 | 양지쪽 | 산림 | 가슴 3 | 꿈은 깨어지고 | 빨래 | 아침 | 곡간 | 가을밤 | 황혼이 바다가 되어 | 장 | 밤 | 달밤 | 풍경 | 울적 | 한난계 | 그 여자 | 야행 | 비ㅅ뒤 | 소낙비 | 비애 | 명상 | 바다 | 산협의 오후 | 비로봉 | 창 | 유언 | 새로운 길 | 어머니 | 가로수 | 비 오는 밤 | 사랑의 전당 | 이적 | 아우의 인상화 | 코스모스 | 고추밭 | 슬픈 족속 | 자화상 | 소년 | 달같이 | 투르게네프의 언덕 | 장미 병들어 | 산골물 | 팔복 | 병원 | 위로 | 무서운 시간 | 눈 오는 지도 | 태초의 아침 | 또 태초의 아침 | 십자가 | 눈 감고 간다 | 새벽이 올 때까지 | 못 자는 밤 | 돌아와 보는 밤 | 간판 없는 거리 | 바람이 불어 | 또 다른 고향 | 길 | 별 헤는 밤 | 서시 | 간 | 참회록 | 흰 그림자 | 흐르는 거리 | 사랑스런 추억 | 쉽게 씌어진 시 | 봄
윤동주의 문장 __ 동시
조개껍질 | 눈 1 | 참새 | 고향집 | 병아리 | 오줌싸개 지도 | 기왓장 내외 | 창구멍 | 닭 | 빗자루 | 해ㅅ비 | 무얼 먹구 사나 | 비행기 | 봄 | 굴뚝 | 버선본 | 눈 2 | 개 1 | 겨울 | 사과 | 편지 | 호주머니 | 둘 다 | 반딧불 | 나무 | 할아버지 | 만돌이 | 개 2 | 거짓부리 | 귀뜨라미와 나와 | 애기의 새벽 | 햇빛·바람 | 해바라기 얼굴 | 산울림
윤동주의 문장 __ 산문
달을 쏘다 | 별똥 떨어진 데 | 종시 | 화원에 꽃이 핀다
윤동주를 말하다
벗들의 회고와 최근의 평가
윤동주 연보
저자
저자
윤동주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20여 편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시집을 펴내진 못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발간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 후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2월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의문의 병사를 당했다.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간행 후 지금까지 무수한 판본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1990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20여 편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시집을 펴내진 못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발간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 후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2월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의문의 병사를 당했다.
1948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간행 후 지금까지 무수한 판본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1990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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