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목욕탕
일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두 일본인 저자가 ‘목욕탕 매니아’라는 이유로 의기투합해 책을 냈다. 한국과 오키나와, 태국 등 온천이 좋아서 시작한 여행이지만, 일제가 남긴 전쟁의 상흔을 마주하고 무거워진다. 즐기러 온 목욕탕에서도 가해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을 보며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동래 온천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이름을 묻자 ‘일본인에겐 이름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라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시작한 여정은 마침내 대량 살상용 독가스가 생산되던 현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일 관계. 민간 차원의 관심과 교류가 절실한 상황에서, ‘가해자’ 측에 속한 두 저자가 사죄의 심정으로 쓴 이 책을 소개하며 이들의 진심과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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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통해 일본의 극우 혐한 세력을 비판했던 야스다 고이치와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그림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카나이 마키가 일본의 태도에 반기를 들고 뭉쳤다. 태국과 한국, 일본 각지의 목욕탕을 탐방하며 가볍게 떠난 여행이 일제가 남긴 전쟁의 상흔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태국의 힌다드 온천은 정글이 우거진 숲속에서 노천탕을 즐기는 천혜의 휴양지이지만, 애초 일제 침략군이 자신들을 위해 지은 시설이다. 이 온천으로 향하는 '남톡 지선'은 일제가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한 옛 타이멘 철도이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인이세요?"라고 묻는 관광객에게 '일본인이라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 카나이의 속마음처럼, 이 책에는 일본인으로서 지닌 가해와 그에 대한 속죄 의식이 묻어난다.
'일본인에게는 이름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요'
일본에 대한 애증이 짙은 한국의 부산. 해운대에서 만난 최병대 선생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엔카를 듣고 자란 세대다. 해방 후 일본대사관에서 일하며 조선인 남성의 일본인 아내 등 한국에 체류하는 일본인을 돕는데 앞장섰다. 이들은 전쟁 직후 한국의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살았고, 본국으로 돌아가도 차별받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인을 돕는 최 씨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도 곱지 않았지만, 이들 또한 전쟁이 낳은 희생양이라 여기고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동래 온천에선 '일본인에게는 이름을 가르쳐 주기 싫다'라던 한 75세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 자신들의 여행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을 한다.
벌거벗은 일본의 가해 역사
저자들은 일본의 귀환자 마을 사무카와에 이르러 일제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 독가스 이페리트를 생산하던 현장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이곳에 지어진 최초의 공중목욕탕 '스즈란탕'을 취재하러 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지역에서 독가스를 만든 공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두 저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휘몰아치듯 전쟁의 증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이페리트 독가스 무기라는, 일제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범죄의 핵심에 다다른다.
두 사람은 사료를 뒤지며 징용공들의 기록과 회고록을 찾아내고, 사가미 군수 공장 부지와 유독 물질이 담긴 맥주병이 출토된 'A사안 구역'을 방문한다. 16세에 사가미 군수 공장에서 이페리트 폭탄을 만들던 이시가키 하지메 씨는 90세가 되도록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열여섯 살 때 그가 그린 자살 공격 전투기와 징용공들의 노동 현장의 그림에는 전쟁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토끼로 독가스의 이미지를 가리는 일본
목욕탕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부동성(浮動性) 이페리트와 적통(재채기 가스탄), 루이사이트 등을 만들던 독가스의 섬, 그러나 오늘날엔 토끼섬이라 불리는 오쿠노시마까지 이어진다. 이 섬은 독가스의 이미지를 가엾은 동물을 빌미로 은폐하려는 일본의 가증스런 역사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저자들은 여기서도 역사의 진실을 끊임없이 외치는 일본인들을 만난다. 14살부터 3년 반 동안 오쿠노시마 독가스 무기 공장의 양성공으로 일했던 후지모토 야스마 씨가 그렇다. 95세의 나이에도 당시 독가스의 화학 공식을 줄줄이 외던 그는 독가스 무기를 만들며 전쟁에 일조했던 자신과,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전쟁 그 자체에 분개한다. 훗날 중국에 가서 희생자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 그는 독가스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두 저자는 후지모토 씨가 쏟아내는 날선 말들과 그에 동요하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잊히도록 두어서는 안 되는 전쟁의 상흔
온천과 목욕탕은 긴장을 풀고 이완되는 공간이다. 식민지의 일본군도, 학살당하던 주민들도, 일제에 협조하던 조선인도, 가혹한 노동에 죽어가던 노동자도, 독가스 무기를 만들던 징용공도 탕에 몸을 담글 때면 똑같이 벌거벗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러한 온천에도 가해와 피해의 흔적을 남겨놓았고, 누군가는 그 흔적을 지우며 역사를 기만한다. 편안하고 소탈한 온천탕의 대화 속에 섬뜩하고 서글픈 진실을 담은 『전쟁과 목욕탕』.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증인의 이야기처럼, 세상에는 결코 잊히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들어가며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은 다들 표정이 좋다. 남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탕은 탈의실에서부터 활기가 넘친다. 아주머니들이 가슴을 내놓은 채 우스갯소리로 흥겨워하는 풍경과 만나면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기 전부터 온몸이 노글노글 풀린다.
탕 속에도 가지각색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알몸이 된 사람은 마음도 무방비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맞선을 본 사연, 매실주 담그는 법, 귀신 본 이야기 등 뭐든 다 나온다.
몇 년 전, 전기탕(저주파 전기가 흐르는 탕으로, 전기 자극으로 몸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 옮긴이)에서 만난 할머니가 잊히지 않는다. 그녀의 오빠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병사였다.
"군대에서는 한 명이 잘못하면 모두가 벌을 받는대. 우리 오빠가 겪은 일인데, 일렬로 서서 손을 잡게 하고는 전기를 흘려보냈다나 봐. 그게 너무 아팠대."
전기탕에 들어앉아 전기고문 이야기를 듣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야스다 고이치 씨와 '목욕탕 친구'가 된 건 몇 년 전부터의 일이다. 가끔 만나 동네 목욕탕에 가고 목욕이 끝나면 맥주를 마신다. 차별 반대 운동의 현장에서 분투 중인 야스다 씨와 마시다 보면 아무래도 그쪽으로 화제가 흘러간다.
세상에는 차별을 조장하는 책, 역사를 왜곡하는 책이 넘쳐난다. 심지어 잘 팔린다. 분하다. 어이없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녹차하이(일본식 소주에 녹차를 섞은 술 - 옮긴이) 두 번째 잔을 들이킨다.
"혐오를 조장하는 책보다 카나이 씨 책이 훨씬 더 재밌는데."
"열심히 취재해 만든 작가님 책보다 적당히 짜깁기한 책이 더 팔린다니, 말도 안 돼요."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지만 어쩐지 책이 팔리지 않아 몽니를 부리는 심정 같기도 하다. 녹차하이 잔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가슴 속에서 질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재미도 있고 팔리는 책을 만들어 맞서면 되잖아!'
그렇다. 역사수정주의 따위를 걷어차는 재미있는 책을 만들면 된다. 비뚤어져 있을 때가 아니다. 카나이 마키 사마귀가 앞발을 치켜든다.(당랑지부(螳螂之斧)의 사마귀를 본인에 비유한 것. 당랑지부는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마차를 멈추려는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덤벼드는 일을 일컫는다. - 옮긴이) 야스다 씨가 웃으며 말한다.
"같이 만들까요?"
둘 다 목욕탕을 좋아하니까 이런저런 탕을 경험해보는 책은 어떨까? 수증기 너머에 있는 역사의 진실을 펼치는 거다. 최고로 기분 좋은 책, 제대로 된 책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목을 씻고 기다려라, 역사수정주의! 이렇게 카나이 마키와 야스다 고이치는 도끼자루 끝에 목욕 수건을 걸고 길을 떠났다.
목차
목차
제1장 정글 노천탕과 옛 타이멘 철도 | 태국
제2장 일본 최남단의 대중목욕탕 | 오키나와
제3장 목욕탕과 때밀이, 두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 | 한국
제4장 귀환자들의 목욕탕과 비밀 공장 | 사무카와
제5장 토끼섬의 독가스 무기 | 오쿠노시마
부록 / 대담: 여행 도중에
글을 마치며
저자
저자
국내 출간된 저서로 『일본 '우익'의 현대사』, 『일본 넷우익의 모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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