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자유
20세기 초 파시즘의 시대를 거슬러 자유를 향해 나아간 건축가, 잔카를로 데 카를로의 자전적 스토리를 소개한다. 젊은 시절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뒤늦게 건축가가 되었으나, 건축을 ‘건축가에게서’ 빼앗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 했던 인물이다.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데 카를로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경험과 노년까지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을 짚어보고 그가 건축으로 구현하려 했던 세상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질서가 재편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 넘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는 다방면에 걸친 활동으로 유럽 건축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하던 그가 한 인간으로서 추구했던 삶의 궤적을 살피다 보면,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며 그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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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잔카를로 데 카를로는 1919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2005년 생을 마감한 건축가로, 영국 왕립 건축학회의 골드메달을 수상한 자유주의 건축의 대표적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시대엔 선박 엔지니어이자 레지스탕스로, 전후엔 건축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다이나믹한 삶을 이어간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화의 방향을 어느 한쪽으로 정해 놓지 말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제가 생각할 때나 설계할 때도 이런 방식을 따르니까요." 진정한 자유주의자였던 데 카를로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념은 물론 일상적인 행동과 언어사용에서도 일관된 면모를 보인다.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던 유년기
어릴 적 어느 건물 통로에서 살쾡이를 마주치는 바람에 도망칠 공간을 찾던 경험으로부터 3차원의 공간을 지각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제노바와 리보르노,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튀니지로 거주지를 옮기며 여행자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를 키워준 외할아버지가 철로 감시원이었던 덕분에 그는 일찍이 튀니지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다양한 지역의 건축물을 접하며 어디서나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경험, 튀니지에서 아랍인들의 베일에 싸인 듯한 생활양식을 접하고 느낀 강렬한 인상은 평생토록 그가 당대의 흐름이나 특정 학파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었다.
파시즘에 온몸으로 맞선 아나키스트
파시즘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던 시기에 그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공산주의에 맞섰다. 반파시즘 운동권의 한가운데서 언제든 붙잡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숨어다니던 때에도 그의 삶은 풍요로웠다. 이 시기에 그는 아내 줄리아나를 만났고, 변장을 하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친구들과 은밀한 회합을 가지던, 낭만과 위험이 뒤섞인 청년기를 보냈다. 때로 연행되거나 시민들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파르티잔으로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산속에 숨어 지낼 때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을 필사하며, 동지들에게 건축 강의를 이어갔다. 파시즘이 무너진 후에는 광장에 거꾸로 매달린 무솔리니와 그 일당들에게 온갖 모욕을 가하는 군중을 보며 인간성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이때를 회고하며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할 비열한 인간들이지만, '누군가의 굴욕은 모두의 굴욕이고 인간 자체의 파멸을 의미'한다며 인간성의 한계를 짚는다.
건축은 생동하는 과정
잔카를로 데 카를로의 건축 작업에는 효율성, 위계질서, 일률적 과정, 목표 지향 같은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서구적인 계몽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목표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어야 하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길로 접어들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의 건축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 동기이자 자연과의 접촉이며, 목적이란 주소지와 같은 지향점으로만 작용한다. 아나키스트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그러하듯 건축 또한 생동하는 과정이다. 데 카를로가 참여의 건축과 자가 건축을 추구한 것도 인간의 개별성과 다양성은 오로지 생동하는 과정이 유지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건축과 자유
그렇다면 건축과 자유는 어떤 관계인가? 독자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데 카를로는 직접적인 언급 대신, 자신이 전 생애를 통해 견지했던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아르케arche/아나키anarchi/아키텍처architecture라는 삼각구도를 통해 건축을 파악한다. 이는 건축을 아르케, 즉 근본적 원리를 지상에 구현하는 최적의 기술techne로 보고 이를 건축의 사명으로 인식하는 태도와는 달리, 원리 또는 진리의 유일성 자체를 상대화하는 '아나키an-arche'의 편에 섬으로써, 아르케의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건축에 부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건축은 자유와 만난다. 잔카를로 데 카를로가 실천을 통해 보여준 이런 관계는, 건축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해방을 향한 절대적 지향이었다. 독자들은 그의 삶을 엿보면서 그동안 아나키즘의 진정한 의미를 매우 좁은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도 건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초판 서문
1장: 유년기부터 레지스탕스 활동기까지
2장: 전후 시기
3장: 중년기로 접어들던 1960년대
4장: 건축의 대주제들
5장: 아나키즘
잔카를로 데 카를로의 활동연보
옮긴이의 글: 아키텍처와 아나키
저자
저자
활발한 사회활동 중에도 건축가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1949년 베네치아 건축대학IUAV을 졸업했다.
1952년부터 '근대건축 국제회의(CIAM)'에 참여했고? 1960년엔 '팀 텐Team 10'의 창설을 주도했다. 1976년 '국제 건축 및 도시 디자인 연구소(ILAUD)'를 설립했고? 건축 잡지 《카사벨라Casabella》의 편집진으로 활동했다. 1976년 건축평론지 《공간과 사회Spazio e Societ?》를 창간? 2000년까지 발행인을 맡아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유럽 건축계에 대안적인 목소리를 냈다.
베네치아 건축대학을 비롯해 예일? 코넬? MIT? UCLA 등에서 가르쳤다. 1993년 영국 왕립 건축학회의 골드메달(RIBA Gold Medal)을 수상했고 2005년 밀라노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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