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b판고전 16)
일본을 대표하는 종교사상사, 전도활동가, 저술가인 우치무라 간조의 대표작 How I became a Christian: Out of My Diary의 한국어 완역이다. 저자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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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의 원저는 복잡한 사정을 거쳐 출판되었다. 원래 영어로 저술되었다. 본서에 관해 우치무라가 최초로 언급한 것은 1893년 6월 25일 미국인 벨(David C. Bell)에게 보낸 편지로 "지금 저는 How I became a Christian: By a Heathen Convert라는 제목으로 영문 서적을 집필 중입니다"라는 언급이 보인다. 같은 해 책을 완성시킨 우치무라는 벨의 소개로 미국의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으나 좀처럼 출판 계획이 잡히지 않는다. 이는 본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미국 출판사 쪽에서 곱게 볼 리가 없다. 우치무라 또한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해 익명 출판을 희망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우치무라의 서술 방식이나 단어 선정에 이상과 같은 배경이 있다. 결국 How I became a Christian: Out of My Diary라는 제목으로 1895년 5월에 일본에서 출판되었다. 표지 저자명은 A Heathen Convert, 즉 이교의 회심자. 일본 내 출판된 서적을 미국으로 보낸 우치무라는 1895년 11월에 The Diary of a japanese Convert라는 제목의 책을 Uchimura Kanz?라는 이름으로 간행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이라는 동양 나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유럽에서 본서의 번역이 이어졌다. 1904년 독일을 필두로, 핀란드(1905), 스웨덴(1905), 덴마크(1906), 프랑스(1913) 등 번역 출간이 이어졌다. 본문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데 불경사건 이후 우치무라의 경제 상황은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유럽에서의 번역 출판은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치무라의 사상은 유럽뿐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전파되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본서를 통해 드러난 우치무라 특유의 무교회주의 사상은 식민지 조선에서 개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치무라의 사상과 인간성에 큰 감명을 받은 김교신, 함석헌 등은 1927년에 계간지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이것이 조선의 무교회주의 운동의 기점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실로 다양한 얼굴을 지녔다. 타이틀 그대로 신앙고백적인 글로 읽어도 좋고 한 기독교인의 회심의 기록으로 읽어도 좋다. 또는 한 인간의 고뇌와 고백에 대한 문학적인 글로 읽을 수도 있고 젊은 날 우치무라의 인생에 대한 회상록으로 읽을 수도 있다. 또는 근대라는 시대 속 동양인이 서양과 어떻게 마주했는가를 읽을 수도 있다.
우치무라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연구 및 언급은 현재도 활발하다. 한 예로 로마서 강의 등 성경 주해에 일생을 바친 우치무라의 성경 읽기의 현대적 의의를 분석한 서적이 2019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었다(?根?三, ??村鑑三?その聖書?解と危機の時代?, 筑摩書房, 2019). 우치무라가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또 꼼꼼히 읽어 삶의 양분으로 삼았는지는 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00년도 더 오래된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본서의 가치를 이야기해준다고 하겠다.
목차
목차
서문 13
제1장 이교 15
제2장 기독교 입신 29
제3장 초기 교회 47
제4장 신교회와 신도의 설교 103
제5장 세상 속으로: 감정적 기독교 135
제6장 기독교 나라의 첫인상 161
제7장 기독교 나라에서: 자선사업가 안에서 187
제8장 기독교 나라에서: 뉴잉글랜드의 대학 생활 229
제9장 기독교 나라에서: 신학과 접하다 269
제10장 기독교 나라의 실태: 귀국 295
우치무라 간조 연보 341
옮긴이 후기 351
저자
저자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기독교 사상가, 전도 활동가, 저술가. 일본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삿포로농업학교, 애머스트대학, 하트포드신학교 등에서 수학 후, 철저히 성서에 기초한 무교회주의를 바탕으로 평생에 걸쳐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우치무라는 기존의 교회가 의식, 조직, 신학의 속박에 의해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음을 비판하며, 성서 연구와 강해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제자를 양성, 김교신, 함석헌 등 조선의 무교회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우치무라는 근대 일본 최초의 공해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아시오 동산(銅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공해의 실태를 사회에 전했다. 한때 청일전쟁을 지지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러일전쟁 때는 전쟁 반대를 표명했다.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발표된 교육칙어의 봉독을 끝내 거부한 '불경 사건'으로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 저작으로 『구안록(求安?)』,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How I Became a Chris tian)』, 『대표적 일본인(Representative men of japan)』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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