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우리: 트랜스 부적응과 함께 사유하기
Regular price
$26.97
Sale price
Regular price
Shipping calculated at checkout.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광기 서리고 우울한 트랜스 삶이라는 이미지
그 이미지에 맞서지 않고 기댈 때
어떤 해석과 삶의 공간이 열릴까?
2014년 『타임』은 미국이 '트랜스젠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하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웅변하듯 이제 트랜스젠더는 온전한 가시성을 확보한 듯 보였고 트랜스성을 범죄나 질환과 결부시켰던 미디어의 재현과 대중의 인식도 옛말이 된 듯했다. 높은 빈곤율과 폭력 피해 같은 가혹한 현실이 여전히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커다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터였다. 이렇듯 트랜스에 대한 인정을 둘러싸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던 이 시기, 캐머런 어쿼드-리치는 이런 상황이 트랜스젠더의 구체적인 고통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트랜스 적대적 세력은 갈수록 선명하게 전선을 구축했고 트랜스 긍정적 담론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그 핵심이란 트랜스 운동과 정치가 긍정과 낙관을 위해 트랜스 주체들에게서 '나쁜 감정'(bad feeling)을 몰아내야 했다는 것이다.
캐머런 어쿼드-리치의 『끔찍한 우리』는 바로 이 나쁜 감정을 트랜스에 대한 사유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킨다. 트랜스젠더가 병자가 아니므로 시민 자격을 갖추었다면 다른 병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해도 괜찮은가? 이는 트랜스성을 다른 소수자적 신체, 특히 장애인이나 유색인 신체와 분리하고 후자를 배제하는 처사 아닌가? 더욱이 트랜스인 '우리'는 대개 어느 정도는 나쁜 감정과 광기적인 사고방식에 실제로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때때로 우리에게 살아갈 숨구멍을 틔워 주지 않았던가? 이 책은 광기, 고통, 부적응이 이런 '끔찍한 우리'를 옥죄는 제약일 뿐 아니라 이들의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우발적이고도 필수적인 자원이라는 발견을 나누려는 시도다.
『끔찍한 우리』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캐머런 어쿼드-리치는 세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장애학과 흑인학 분야의 도구를 활용해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다. 끔찍한 우리를 그 자체로 가능성을 내포한 세계로 이해하기 위해 그는 트랜스젠더학을 둘러싼 논쟁에 독창적으로 개입한다. 앞선 선배들의 논의에 신선하면서도 절실한 논점을 더하고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해서도 진지한 독해를 실행함으로써 사려 깊은 읽기의 전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호영의 번역을 통해 이론적이면서도 시적인 어쿼드-리치의 산문이 감각적인 한국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트랜스젠더 정치와 학문이 거리를 두어야 했던
유령들과 함께 머물려는 시도
젠더 연구자 로빈 위그먼은 '정체성 지식'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착 상태에 직면하곤 하는 경위를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소수자 정체성을 연구하는 분야는 자신의 비판적 실천이 정의를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력으로 삼는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믿음을 유지하려면 연구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구성해야 한다. 진취적이고 정치적으로 유용하며 부정적인 응어리가 없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 대상은 커다란 윤리적, 정치적 부담을 지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간주되는 순간 더 큰 심리적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정치와 학문도 여타 정체성 지식과 비슷한 궤적을 밟아 왔다. 오랫동안 덧씌워진 병리화의 굴레로부터 트랜스젠더의 삶과 생각을 해방하고자 많은 이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노력은 주로 트랜스젠더가 좋은 대상이자 시민임을, 말하자면 미쳐 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방향을 취했다. 그 결과 트랜스가 사회적 인정을 얼마간 획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반발로 트랜스 혐오가 더욱 강고해졌고 제도적 지원을 앗아 가려 호시탐탐하는 세력도 여전하다. 나아가 트랜스의 사회적 수용 과정에서 반복된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명령은 상당수 트랜스젠더에게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부과해 오기도 했다. 이처럼 낙관적인 전망과 그 조건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공존하는 이 순간, 『끔찍한 우리』는 트랜스에게서 광기를 벗겨 내고자 한 역사를 재고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의 뼈대가 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트랜스젠더를 넓게는 광기와, 좁게는 정신 질환과 분리하는 프레임은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복잡한 삶을 특정 면모로 환원하고, 의료 법률적 논리를 벗어나려 하면서도 '장애'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그 논리를 재생산하며, 무엇보다 여러 부적응 형태-우울, 해리, 비사회성 등-가 트랜스의 삶을 실제로 따라다닐 뿐 아니라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역량을 부여해 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미쳐 있음'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를 거부하기만 하기보다는 질문을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안녕하지 않은, 곧잘 나쁜 감정과 기분에 시달리는 이 '끔찍한 우리'를 내치지 않고 이들과 함께, 이들을 통해 사유한다면 어떤 삶과 해석의 공간이 열릴까?
트랜스 부적응이 가능케 하는 뜻밖의 자유들
이렇게 트랜스젠더와 광기의 연결을 전면 부인하는 대신 다른 방식의 트랜스젠더학을 실천하기 위해 이 책은 20세기와 21세기 미국의 여러 트랜스 인물과 그들이 생산한 문화적 자료를 꼼꼼히 읽고 통설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이 해석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논지는 여기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이 나쁜 감정과 부적응자라는 사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에 기대는 기예를 펼쳐 보였고, 이를 통해 막막한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한적으로나마 자유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장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트랜스 남성적 인물 세 명(에벌린 '재키' 브로스, 밀턴 맷슨, 잭 비 갈런드)의 삶을 들여다본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남성적인 복장으로 젠더 비순응을 실천한 이들은 '정상성'을 훈육하는 제도와 마찰을 빚었다. 정상적인 신체와 문제적 신체를 나누고자 심혈을 기울인 당대의 공간 통치는 후자를 유사 공적 영역에, 즉 법원, 감옥, 병원, 프릭 쇼 등에 몰아넣으려 했다. 장애인과 트랜스젠더라는 범주가 함께 만들어지던 이 시기에 이들 트랜스인은 비정상으로, 즉 일종의 장애인으로 여겨져 여러 제약에 직면했지만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특히 이 장은 "구술로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오로지 글만으로 소통"한 잭 비 갈런드의 일화에 주목해, 갈런드가 스스로 장애를 수행한 덕분에 당대의 여성이나 젠더 비순응자에게는 보통 허용되지 않았던 저자성과 자유에 다가갈 수 있었음을 밝힌다.
트랜스와 페미니즘,
오래된 교착 상태에 대한 새로운 시각
2장은 계속 되풀이될 뿐 아니라 점점 격화되는 트랜스와 일부 페미니즘의 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본다. 트랜스젠더는 젠더 정체성의 비고정성에,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는 억압에 근거해 있기에, 두 정체성과 각각에 기반한 이론을 통합하려 한 많은 시도가 실패해 왔다. 거기에 최근에는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이 트랜스 적대를 적극 재생산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격화된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 장은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기'를 제안한다. '우울한'은 소멸의 감각에 시달리는 병리적인 상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멸할 것 같은 느낌이 실제 소멸과는 다름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학을 통해 젠더 이분법 너머를 상상할 수 있다. 역으로 트랜스젠더학은 페미니즘을 통해 권력 관계를 더욱 정치하게 사고할 수 있다. 이렇듯 양자가 서로를 욕망하고 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 둘을 통합하려는 기획은 언제든 좌초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으며 둘의 괴리와 통합의 불가능성을 곱씹는 편이, 불완전한 공존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애착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의 갈등 관계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는 3장은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트랜스 남성적 인물이자 「소년은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브랜던 티나의 사례와 트랜스 작가인 엘리엇 들라인의 소설들을 살피며 성적 피해와 해리(dissociation), 트랜지션의 관계를 새롭게 질문한다. 트랜스 남성성이 성폭행이나 여타 젠더 기반 폭력에 따른 트라우마의 증상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트랜스 정체성을 병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고, 그런 만큼 트랜스 운동과 학계에서는 젠더 트라우마와 트랜스 정체성의 표면적인 인과 관계를 해체하고자 애써 왔다. 이 장은 그 노력에 공감을 표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폭력이 때때로 젠더 이분법의 (재생산이 아니라) 실패를 산출하는 방식을 이 담론이 놓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리고 브랜던 티나와 엘리엇 들라인, 그리고 유년기에 젠더화된 폭력을 겪은 많은 트랜스인의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해리 반응이 살아갈 수 있는 자아와 세계를-우발적으로라도-만들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적응하지 못한 '우리'가
둘러앉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4장에서는 트랜스의 유구한 특성인 '비사회성'을 중심 소재로 삼아,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이 특성을 병증으로 명명된 트랜스 적대적인 구성물인 동시에 트랜스 삶에서 흔히 발견되는 요소로 주목하는 사잇길을 내고자 한다. 트랜스는 '오인'으로써 정의되는 사회적 범주다. 타인에게 인식되는 젠더와 스스로 느끼는 젠더 사이에 언제나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트랜스 특유의 곤경이라면 이들은 어떻게 자아와 세상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가는가? 많은 경우 답은 '읽기를 통해서'다. 이 장은 트랜스의 비사회성과 그 대표적인 형상인 '책벌레'를 트랜스젠더가 되어 가는 과정의 출발점인 내적 침잠의 사례로 구출하며, 마지막으로 서정시를 사회의 인식과 자기 인식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쪼개짐을 구현하는 표현 방식으로 드러낸다. 시간의 연속에 의존하는 여타 서사 장르와 달리 서정시가 순간들의 층층이 쌓임을 전제하듯, 이 주체성은 쪼개진 자아들의 포개짐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면성과 공개성의 기묘한 공존으로 정의된다. 이 주체성은 내면으로 침잠한 자아이지만 그럼에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고, 따라서 윤리적인 형태의 교류를 요구하고 또 가능케 한다.
이렇듯 『끔찍한 우리』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학이 저자성(authority)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부정당해야 했던 일련의 형상을 불러내 이들 특유의 행위 능력을 읽어 낸다. '트랜스젠더 변곡점'이 선언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특별히 트랜스 적대적인 시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옮긴이 후기」에서 짚고 있듯 한국 사회에서도 지난 10년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동시에 "손에 잡히거나 잡힐 듯한 기회들이 아주 위태롭고 제한적인 것임"도 실감케 한 시간이었다. "발화를 가능하게 한 환경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323~324쪽).
트랜스젠더가 현재 맞닥뜨린 낙담과 두려움은 이들을 더한 끔찍함으로 몰아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담과 두려움은 삶에서 흔히 느끼는 감정이며 끔찍한 우리는 그것들을 자신의 일부로 삼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 '나쁜' 감정들을 트랜스 정체성과 무관한 것처럼, 또는 없애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 머물며 말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책, 부적응과 함께 사유하자고 제안하는 책, 적응하지 못한 '우리'가 둘러앉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이미지에 맞서지 않고 기댈 때
어떤 해석과 삶의 공간이 열릴까?
2014년 『타임』은 미국이 '트랜스젠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하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웅변하듯 이제 트랜스젠더는 온전한 가시성을 확보한 듯 보였고 트랜스성을 범죄나 질환과 결부시켰던 미디어의 재현과 대중의 인식도 옛말이 된 듯했다. 높은 빈곤율과 폭력 피해 같은 가혹한 현실이 여전히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커다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터였다. 이렇듯 트랜스에 대한 인정을 둘러싸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던 이 시기, 캐머런 어쿼드-리치는 이런 상황이 트랜스젠더의 구체적인 고통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트랜스 적대적 세력은 갈수록 선명하게 전선을 구축했고 트랜스 긍정적 담론은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그 핵심이란 트랜스 운동과 정치가 긍정과 낙관을 위해 트랜스 주체들에게서 '나쁜 감정'(bad feeling)을 몰아내야 했다는 것이다.
캐머런 어쿼드-리치의 『끔찍한 우리』는 바로 이 나쁜 감정을 트랜스에 대한 사유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킨다. 트랜스젠더가 병자가 아니므로 시민 자격을 갖추었다면 다른 병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해도 괜찮은가? 이는 트랜스성을 다른 소수자적 신체, 특히 장애인이나 유색인 신체와 분리하고 후자를 배제하는 처사 아닌가? 더욱이 트랜스인 '우리'는 대개 어느 정도는 나쁜 감정과 광기적인 사고방식에 실제로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때때로 우리에게 살아갈 숨구멍을 틔워 주지 않았던가? 이 책은 광기, 고통, 부적응이 이런 '끔찍한 우리'를 옥죄는 제약일 뿐 아니라 이들의 창의성을 발전시키는 우발적이고도 필수적인 자원이라는 발견을 나누려는 시도다.
『끔찍한 우리』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캐머런 어쿼드-리치는 세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장애학과 흑인학 분야의 도구를 활용해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다. 끔찍한 우리를 그 자체로 가능성을 내포한 세계로 이해하기 위해 그는 트랜스젠더학을 둘러싼 논쟁에 독창적으로 개입한다. 앞선 선배들의 논의에 신선하면서도 절실한 논점을 더하고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해서도 진지한 독해를 실행함으로써 사려 깊은 읽기의 전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호영의 번역을 통해 이론적이면서도 시적인 어쿼드-리치의 산문이 감각적인 한국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트랜스젠더 정치와 학문이 거리를 두어야 했던
유령들과 함께 머물려는 시도
젠더 연구자 로빈 위그먼은 '정체성 지식'이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착 상태에 직면하곤 하는 경위를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소수자 정체성을 연구하는 분야는 자신의 비판적 실천이 정의를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력으로 삼는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믿음을 유지하려면 연구 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구성해야 한다. 진취적이고 정치적으로 유용하며 부정적인 응어리가 없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 대상은 커다란 윤리적, 정치적 부담을 지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간주되는 순간 더 큰 심리적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정치와 학문도 여타 정체성 지식과 비슷한 궤적을 밟아 왔다. 오랫동안 덧씌워진 병리화의 굴레로부터 트랜스젠더의 삶과 생각을 해방하고자 많은 이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노력은 주로 트랜스젠더가 좋은 대상이자 시민임을, 말하자면 미쳐 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방향을 취했다. 그 결과 트랜스가 사회적 인정을 얼마간 획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반발로 트랜스 혐오가 더욱 강고해졌고 제도적 지원을 앗아 가려 호시탐탐하는 세력도 여전하다. 나아가 트랜스의 사회적 수용 과정에서 반복된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명령은 상당수 트랜스젠더에게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부과해 오기도 했다. 이처럼 낙관적인 전망과 그 조건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공존하는 이 순간, 『끔찍한 우리』는 트랜스에게서 광기를 벗겨 내고자 한 역사를 재고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의 뼈대가 되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트랜스젠더를 넓게는 광기와, 좁게는 정신 질환과 분리하는 프레임은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복잡한 삶을 특정 면모로 환원하고, 의료 법률적 논리를 벗어나려 하면서도 '장애'를 평가 절하함으로써 그 논리를 재생산하며, 무엇보다 여러 부적응 형태-우울, 해리, 비사회성 등-가 트랜스의 삶을 실제로 따라다닐 뿐 아니라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역량을 부여해 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미쳐 있음'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를 거부하기만 하기보다는 질문을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안녕하지 않은, 곧잘 나쁜 감정과 기분에 시달리는 이 '끔찍한 우리'를 내치지 않고 이들과 함께, 이들을 통해 사유한다면 어떤 삶과 해석의 공간이 열릴까?
트랜스 부적응이 가능케 하는 뜻밖의 자유들
이렇게 트랜스젠더와 광기의 연결을 전면 부인하는 대신 다른 방식의 트랜스젠더학을 실천하기 위해 이 책은 20세기와 21세기 미국의 여러 트랜스 인물과 그들이 생산한 문화적 자료를 꼼꼼히 읽고 통설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이 해석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논지는 여기 등장하는 여러 주인공이 나쁜 감정과 부적응자라는 사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에 기대는 기예를 펼쳐 보였고, 이를 통해 막막한 세상에서 숨을 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한적으로나마 자유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장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트랜스 남성적 인물 세 명(에벌린 '재키' 브로스, 밀턴 맷슨, 잭 비 갈런드)의 삶을 들여다본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남성적인 복장으로 젠더 비순응을 실천한 이들은 '정상성'을 훈육하는 제도와 마찰을 빚었다. 정상적인 신체와 문제적 신체를 나누고자 심혈을 기울인 당대의 공간 통치는 후자를 유사 공적 영역에, 즉 법원, 감옥, 병원, 프릭 쇼 등에 몰아넣으려 했다. 장애인과 트랜스젠더라는 범주가 함께 만들어지던 이 시기에 이들 트랜스인은 비정상으로, 즉 일종의 장애인으로 여겨져 여러 제약에 직면했지만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특히 이 장은 "구술로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오로지 글만으로 소통"한 잭 비 갈런드의 일화에 주목해, 갈런드가 스스로 장애를 수행한 덕분에 당대의 여성이나 젠더 비순응자에게는 보통 허용되지 않았던 저자성과 자유에 다가갈 수 있었음을 밝힌다.
트랜스와 페미니즘,
오래된 교착 상태에 대한 새로운 시각
2장은 계속 되풀이될 뿐 아니라 점점 격화되는 트랜스와 일부 페미니즘의 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본다. 트랜스젠더는 젠더 정체성의 비고정성에, 페미니즘은 여성이 겪는 억압에 근거해 있기에, 두 정체성과 각각에 기반한 이론을 통합하려 한 많은 시도가 실패해 왔다. 거기에 최근에는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이 트랜스 적대를 적극 재생산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격화된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 장은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기'를 제안한다. '우울한'은 소멸의 감각에 시달리는 병리적인 상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멸할 것 같은 느낌이 실제 소멸과는 다름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학을 통해 젠더 이분법 너머를 상상할 수 있다. 역으로 트랜스젠더학은 페미니즘을 통해 권력 관계를 더욱 정치하게 사고할 수 있다. 이렇듯 양자가 서로를 욕망하고 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 둘을 통합하려는 기획은 언제든 좌초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으며 둘의 괴리와 통합의 불가능성을 곱씹는 편이, 불완전한 공존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애착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의 갈등 관계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는 3장은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트랜스 남성적 인물이자 「소년은 울지 않는다」라는 영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브랜던 티나의 사례와 트랜스 작가인 엘리엇 들라인의 소설들을 살피며 성적 피해와 해리(dissociation), 트랜지션의 관계를 새롭게 질문한다. 트랜스 남성성이 성폭행이나 여타 젠더 기반 폭력에 따른 트라우마의 증상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트랜스 정체성을 병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고, 그런 만큼 트랜스 운동과 학계에서는 젠더 트라우마와 트랜스 정체성의 표면적인 인과 관계를 해체하고자 애써 왔다. 이 장은 그 노력에 공감을 표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폭력이 때때로 젠더 이분법의 (재생산이 아니라) 실패를 산출하는 방식을 이 담론이 놓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리고 브랜던 티나와 엘리엇 들라인, 그리고 유년기에 젠더화된 폭력을 겪은 많은 트랜스인의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해리 반응이 살아갈 수 있는 자아와 세계를-우발적으로라도-만들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적응하지 못한 '우리'가
둘러앉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4장에서는 트랜스의 유구한 특성인 '비사회성'을 중심 소재로 삼아,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이 특성을 병증으로 명명된 트랜스 적대적인 구성물인 동시에 트랜스 삶에서 흔히 발견되는 요소로 주목하는 사잇길을 내고자 한다. 트랜스는 '오인'으로써 정의되는 사회적 범주다. 타인에게 인식되는 젠더와 스스로 느끼는 젠더 사이에 언제나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트랜스 특유의 곤경이라면 이들은 어떻게 자아와 세상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가는가? 많은 경우 답은 '읽기를 통해서'다. 이 장은 트랜스의 비사회성과 그 대표적인 형상인 '책벌레'를 트랜스젠더가 되어 가는 과정의 출발점인 내적 침잠의 사례로 구출하며, 마지막으로 서정시를 사회의 인식과 자기 인식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쪼개짐을 구현하는 표현 방식으로 드러낸다. 시간의 연속에 의존하는 여타 서사 장르와 달리 서정시가 순간들의 층층이 쌓임을 전제하듯, 이 주체성은 쪼개진 자아들의 포개짐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면성과 공개성의 기묘한 공존으로 정의된다. 이 주체성은 내면으로 침잠한 자아이지만 그럼에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고, 따라서 윤리적인 형태의 교류를 요구하고 또 가능케 한다.
이렇듯 『끔찍한 우리』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학이 저자성(authority)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부정당해야 했던 일련의 형상을 불러내 이들 특유의 행위 능력을 읽어 낸다. '트랜스젠더 변곡점'이 선언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특별히 트랜스 적대적인 시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옮긴이 후기」에서 짚고 있듯 한국 사회에서도 지난 10년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동시에 "손에 잡히거나 잡힐 듯한 기회들이 아주 위태롭고 제한적인 것임"도 실감케 한 시간이었다. "발화를 가능하게 한 환경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323~324쪽).
트랜스젠더가 현재 맞닥뜨린 낙담과 두려움은 이들을 더한 끔찍함으로 몰아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담과 두려움은 삶에서 흔히 느끼는 감정이며 끔찍한 우리는 그것들을 자신의 일부로 삼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 '나쁜' 감정들을 트랜스 정체성과 무관한 것처럼, 또는 없애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 머물며 말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책, 부적응과 함께 사유하자고 제안하는 책, 적응하지 못한 '우리'가 둘러앉은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목차
목차
머리말/감사의 말
서론 _ 끔찍한 우리와 머물기
1장 _ 트랜스의 장애 역사
홀딩 스페이스
2장 _ 트랜스, 페미니즘-또는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기
3장 _ 트랜스 남성성의 해리 시학
4장 _ 우리라는 동행
그 후/애도의 시
옮긴이 후기 _ 소멸 이후-'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추천의 글 _ 루인, 이연숙(리타)
참고 문헌
찾아보기
서론 _ 끔찍한 우리와 머물기
1장 _ 트랜스의 장애 역사
홀딩 스페이스
2장 _ 트랜스, 페미니즘-또는 우울한 트랜스섹슈얼처럼 읽기
3장 _ 트랜스 남성성의 해리 시학
4장 _ 우리라는 동행
그 후/애도의 시
옮긴이 후기 _ 소멸 이후-'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추천의 글 _ 루인, 이연숙(리타)
참고 문헌
찾아보기
저자
저자
캐머런 어쿼드-리치 (Cameron Awkward-Rich)
문학과 학술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미국의 시인이자 연구자.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이론, 장애학, 흑인학, 실험적 글쓰기 형식을 결합해 트랜스젠더 미학과 문화 생산, 미국 내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사상의 역사와 집단적 정동을 탐구한다.
『끔찍한 우리: 트랜스 부적응과 함께 사유하기』(2022)로 뉴욕 시립대의 레즈비언 게이 연구 센터가 수여하는 실비아 리베라 상, 미국 현대 어문학회의 게이 레즈비언 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앨런 브레이 상을 수상했고, 35회 람다 문학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시집으로는 『동정심 많은 작은 괴물』(2016), 『디스패치』(2019), 『어떤 낙관』(2025)이 있으며, 트랜스젠더 작가 겸 화가 레드 조던 아로바토의 일기 선집 『그리고 시간이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줄 거야』(2026)를 편집했다.
현재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 연구 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흑인/트랜스 창작의 계보를 그리는 단행본을 집필하고 있다.
문학과 학술적 글쓰기를 넘나드는 미국의 시인이자 연구자.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이론, 장애학, 흑인학, 실험적 글쓰기 형식을 결합해 트랜스젠더 미학과 문화 생산, 미국 내 트랜스/페미니즘/퀴어 사상의 역사와 집단적 정동을 탐구한다.
『끔찍한 우리: 트랜스 부적응과 함께 사유하기』(2022)로 뉴욕 시립대의 레즈비언 게이 연구 센터가 수여하는 실비아 리베라 상, 미국 현대 어문학회의 게이 레즈비언 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앨런 브레이 상을 수상했고, 35회 람다 문학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시집으로는 『동정심 많은 작은 괴물』(2016), 『디스패치』(2019), 『어떤 낙관』(2025)이 있으며, 트랜스젠더 작가 겸 화가 레드 조던 아로바토의 일기 선집 『그리고 시간이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줄 거야』(2026)를 편집했다.
현재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 연구 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흑인/트랜스 창작의 계보를 그리는 단행본을 집필하고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