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싶다
시집 『밤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싶다』는 〈바램〉, 〈자화상〉, 〈가로수 잎새〉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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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문희 시집 『밤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를 읽고
차달숙 (시인/수필가)
부산문학인협회 명예회장
▣ 들어가면서
이문희 선생과 만남은 필자가 회장을 맡은 부산문학인협회 회원으로 입회하면서부터였다. 내가 본 이문희 시인은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다. 순박하고 인자하고 후덕한 인상이 동네 누님 같아 포근한 느낌이 들게 한다. 언 듯 보기에는 까칠한 것 같은데, 막상 대하고 보면 늘 낙천적이고 밝은 웃음과 즐거운 에너지로 가득하다. 오랜 연륜 속에서 피어나는 여유와 덕담으로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지적知的을 하고 정이 많은 분이다.
그는 경북 영덕출생이다. 광주대학교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대구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치원 설립 및 원장을 지낸 이력의 소유자다. 부산시법인 국공립어린이집 연합회 수석부회장, 부산시 유치원총연합회 부회장 및 감사, 부산시 교육위원회 민간 장학 요원, 부산광역시 교직원연수원 강사를 역임했다. 사회활동으로 평화통일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부산시 국제로터리 3,660지구 장미로터리클럽 회장을 지냈다. 문교부장관상 3회를 비롯하여 교육감상, 교육장 상, 부산광역시장상 등을 수상한 경력이 교육계와 사회활동에 이바지한 그의 업적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2015년 계간 《시와수필》에서 시 등단. 2022년 계간 《문심》에서 수필 등단하여 시인, 수필가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 운영위원, 신서정문학회 회원, 신서정문학 운영위원, 부산문학인협회 부회장, 계간 〈문심〉 공동발행인 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 수상으로는 신서정문학 작품상, 한국문학신문 사장상을 받았다.
문학은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고 인생의 진실을 보여 주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교시적 기능과 독자에게 고차원적인 정신적 즐거움이나 미적 쾌감을 준다는 쾌락적
기능 그리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종합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제 이문희 작가의 시를 시문학적 시평보다 시인의 시를 통한 삶의 면모를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그의 작품을 펼치고자 한다.
▣ 펼치면서
시인들은 누구나 자기가 쓴 한 편의 시가 따스한 체온이 되어 읽히는 시가 되기를 바라며 시를 쓴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바탕으로 그가 지닌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뜻이다.
새하얀 분신은
오색의 의미를 태워 버린 채
고달픈 영혼을 밀친 가슴에
순결은 새벽을 지킨다
고독이 잠자는 고운 얼굴에
왜 속세는
부질없는 눈망울로
가슴 설레이는가
돌아올 길 없는 한 곳
집념이 닿는 여정
그 사무치는 정성은
어디메로 끝닿으려는가
하이얀 물빛 흐르는 자락에
영혼이 닿는
머~ 언
향수를 느낀다.
- 「수녀님의 하복 」전문
위 인용 시에서 시적 자아는 '순결은 새벽을 지킨다.' '고독이 잠자는 고운 얼굴에' 등 적극적이면서도 함축적 의미가 게재된 말들을 구사하여 은총, 헌신, 기원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의 '영혼이 닿는 / 머~언 향수를 느낀다/는 헌신과 기원의 자세와는 모순같이 느껴진다. 참된 신앙인은 고독의 단계를 벗어나 진정한 헌신과 기원의 자세를 절대자 앞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시에 내재한 정신적 지주는 가톨릭 정신과 관련한 생명과 사랑, 인내와 계율이다.
시에 있어서는 신앙적 배경은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더욱 깊고 부드러운 것으로 이루는 구실을 한다. 화자의 시는 우아하고 유연한 리듬으로 시형 대부분을 자유롭게 형성해 나가는 특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허망 허망 허망
겹겹이 벗겨봐도
속이 없는 허망
무엇이 실이고
무엇이 허란 말인가?
실을 찾아 헤매다 보니
그것이 허요
허를 버리려 애를 쓰다 보니
그것이 바로 실이던 것을
실도
허도
이젠 다 가고 없는데
허망은 겹겹이 쌓이기만 하여라
- 「허망」 전문
이 인용 시는 아주 단순할 뿐만 아니라 문장의 구조 자체로서도 복잡한 구절이 없는 쉬운 시이다. 그러나 시가 이처럼 그 외형이 단순하다고 해서 시가 품고 있는 의미적 공간이 좁고 쉽다는 것과는 무관하다. '허망 허망 허망/ 겹겹이 벗겨봐도 / 속이 없는 허망' 비슷한 말의 되풀이로 조성되는 지나칠 만큼 고도의 단순성이 이 시를 너무도 평이하게 느껴지게 하지만 또한 의미의 진폭은 무한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인정도 눈물도 없는
쇳바람 부는 산 언덕배기
도무지
기댈 곳이 없네
뱃줄기 틀어지도록
소리쳐 보아도
내려앉은 협곡에는
메아리도 없구나
갑자기
푸드덕
매 한 마리 뜬다.
- 「협곡」 전문
위 인용 시는 전체가 3연 11행으로 연결된 간결하게 처리된 시상이다. '인정도 눈물도 없는 / 쉿 바람 부는 산 언덕배기 / 도무지 /기댈 곳이 없네' 단조로운 일상에서 '뱃줄기 틀어지도록 / 소리쳐 보아도 / 내려앉은 협곡에는 / 메아리도 없구나' 이런 상황에서 화자가 놓여 있는 현실은 아주 협소하고 어둡고 풍요롭지 못한 풍경이다.
마지막 연 '갑자기 / 푸드덕 / 매 한 마리 뜬다'는 화평과 충족 모든 가능성이 내재한 공간을 향해 자신의 내면을 열어 놓겠다는 밝은 심경을 보인다.
아카시아 향 휘날릴 때
하필 이 계절에 가야 했나
(중략)
숨 몰아쉬며 팔방으로 뛰어다니더니
내 가노라 말 한마디 없었다
웃으며 들어가더니 주사 쇼크
한방에 가버렸네
(중략)
어느 해이던가
하얗게 쇠 버린 억새풀 언덕
저만치 앉아
그렇게도 흐느끼며 많이도 울더니
그날 밤
여행 숙소 방에서는
벽을 보고 누운 체
내가 또 그렇게도 슬피 울었더라
- 「가버린 내 친구」 부분
이 시는 죽음에 관련한 시다. 이 시에서 죽음의 주체는 친구다. 시의 의미는 논리적 체계를 내세우는 일반적인 이해의 기대지 평을 훨씬 넘어서 있다. '숨 몰아쉬며 팔방으로 뛰어다니더니/ 내 간다고 말 한마디 없었다. / 웃으며 들어가더니 주사√쇼크 /한방에 가버렸네' 그만큼 애처롭고 간절하고 화자의 내면은 슬픔에 젖는다. '그날 밤/ 여행 숙소 방에서는 / 벽을 보고 누운 체 / 내가 또 그렇게도 슬피 울었더라' 그의 시에서 열린 슬픈 풍경을 보게 된다. 이 풍경 속에는 진한 인간의 냄새와 벅찬 숨결이 흐르고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화자의 참된 삶의 모습에 대면하면서 어떤 위안과 힘까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가식 없는 너무도 진정한 내면의 발견에서 찾아진다. 사람은 진실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으며 감동을 주는 힘을 갖지 못한다.
아
멀리 낙원을 향해
내 가느다란 목을 뽑는다
얼마를 뽑아야
행복은 오려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야윈 목이 쇠었다.
- 「바램」 전문
위 인용 시는 7행의 짧은 시로 이야기를 생략하고 암시하지만, 나머지 이야기의 완성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시는 이야기를 생략하면서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시가 너무 쉽고 빨리 유추되어 결론을 알아차리게 되면 단순해서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의미 진폭을 작게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시적 화자는 자기 실존 자리와 그 모습을 찾고 있다.
'나'는 '자연'에 있고 '사회'인에 있는 '나'는 그 모든 곳에 있으므로 '나'를 묶지 말라는 내면의 깊은 소리를 듣고 있다.
세월아 게 섰거라
못 들은 척 자꾸 가네
게 서지 못했겠느냐
아니
당신이 가면서
왜 나더러
가니 오니 하는 거요
- 「가는 세월」 전문
위 인용 시에서 화자가 구사하고 있는 언어는 조작적인 것이 아니고 일상적으로 쓰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배치하고 있어서 시의 이해나 해석에 있어서 난해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화자의 시는 언어의 상징적 단계를 밟지 않고 범박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쓰는 언어는 깊은 사색과 고뇌하는 심미적 가치를 느끼게 한다.
시인에게 있어서는 삶에 대하여 사물에 대하여 명료하게 사실을 밝히고 논증하고 분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나 사물 속에 인간 참모습을 기쁨이나 슬픔 같은 순수한 감정을 깊이 있게 불어 넣어 각인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승강기 문이 열렸다.
차례대로 승차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남자가 타고 뛰어서 여자가 탔다
문이 닫혔다 열렸다 시위를 한다
아줌마 한 사람 왈
아저씨는 내리세요
아지매가 뭔데 날보고 내리라 마라 해욧
저 아줌마보다 내가 먼저 탔는데
이때
놀란 문이 닫혔다
명령했던 아줌마 이마를 두드리며
아이 골이야 아이 골이야
인상 험한 아저씨가
시~ㅂ 하며 성난 기세로 노려본다
옆에 할머니가 살짝 귀에다 대고
거 골이야 골이야 좀 하지 말아요
아이 머리야, 아이 머리야
골이 머리로 바뀌었다
그 순간 도착 문이 열리고
앞에서 모두 내렸다
아, 휴~
1분간의 공포였다
스릴 서스팬스 순간의 장면
- 「1분의 공포」 전문
엄지의 터치에서
승강기 문이 열린다
수많은 발들의 일상을 나르는 수레
수레에 오르지 못한
남자의 발길이 뒤늦게 오르자
문이 열렸다 닫혔다 신호를 한다
전동 수레는 꼼짝 않는다
누군가가 무게를 덜어야 할 판
누군가를 거부하는 승강기
나를 밖으로 부려 놓자는 건가
그러면 오를 것인가
나의 몸무게를 물어본다
누구를 덜어내면 승강기는 오를까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움직일까
서로 눈치만 보는 승강기는 오를까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움직일까
서로 눈치만 보는 승강기 안에서
내 삶의 체중은 얼마인지 꼽아 본다.
- 「입구와 출구 사이」 전문
위 인용 시 2편은 평범한 일상적 삶을 다룬 일상 시다. 그의 시선은 우리의 일상에서 지나가는 사물이나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불러들인다. 현대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드나드는 것이 승강기이다.
인용 시 「1분의 공포」에서는 승강기 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웃음을 준다. 화자의 시선은 우리를 공연스레 당혹하게 하거나 긴장시키지 않는다. '1분간의 공포였다/ 스릴 서스팬스 순간의 장면'은 엄살같이 들리고, 믿음이라든가 평안의 기운이 스며있다.
위 인용 시 「입구와 출구 사이」에서 화자는 승강기를 '수많은 발의 일상을 나르는 수레'라고 비유한다. 이러한 비유를 바탕으로 화자는 뒤늦게 오른 발길에 주목한다. 규모상 인원이 제한된 승강기에 '남자의 발길이 뒤늦게' 올랐으니 '누군가는 무게를 덜어야 할 판'이다.
여기서 웃음과 함께 삶의 가치가 발현된다. 정원이 초과하여 '누군가를 거부하는 승강기' 이는 대부분 사람이 겪어본 체험이다. 이때 자신이 그 주범이든 그렇지 않든 '나를 밖으로 부려 놓자는 건가/ 그러면 오를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주범이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며 당장 승강기 밖으로 걸어 나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드러내놓고 웃지 못할 웃음을 짓는다.
화자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러한 상황을 삶의 가치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삶의 가치로 승화시킨다. '나를 밖으로 부려 놓자는 건가 / 그러면 오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은 곧 '나의 몸무게를 물어'오는 행위로 이어진다. '서로 눈치만 보는 승강기 안에서 / 내 삶의 체중은 얼마인지 꼽아'보는 시인의 성찰은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내 살의 체중'은 곧 내가 살아온 살의 가치를 가늠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너는 무엇이더냐
이 강산에 무단 침범을 하고
왜 그리도 떠나지 않느냐
그 위세가 너무도 당당하구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것이
널 달래려 세계가 휘청거린다
인간의 죄이더냐
산천 바다 우주까지 오염시키고
고작 마스크를 쓰는 게 대항무기다
독한 세제 공기오염 난개발
인간이 탈이로다
제발 자유를 좀 달라
코로나야
이게 뭐냐
입도 코도 봉하고 눈만 보란다
눈에도 들어온다니 구멍은 다 들어오는구나
아가들도 마스크를 한다
코로나야
우린 참 슬프다
- 「코로나19」 전문
반드시 입는 옷
마스크
귀걸이 선글라스 립스틱
그 어떤 사치품 보다
저 잘났다 우선이다
얼굴에 입는 옷
어떤 모습도 다 가리고
못난이 잘 난이도
차별이 없다
기막힌 옷이다
패션도
교복이 아니라
바로
국복일세
- 「마스크 옷」 전문
시인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치지 않는다. 위 인용 시 「코로나19」는 코로나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 '코로나 / 너는 무엇이더냐 /이 강산에 무단 침범을 하고 / 왜 그리도 떠나지 않느냐 / 그 위세가 너무도 당당하구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것이 / 널 달래려 세계가 휘청거린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제발 자유를 좀 달라 /코로나야/이게 뭐냐/입도 코도 봉하고 눈만 보란다/눈에도 들어온다니 구멍은 다 들어오는구나/ 아가들도 마스크를 한다.' '코로나야 우린 참 슬프다.'
무서운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마스크에서 의존하는 현실에서 빨리 탈출해야 하는 마음을 잘 피력하고 있다.
인용 시 「마스크 옷」에서 시인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현실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웃음을 주고 있다. '반드시 입는 옷/마스크'는 그 어떤 사치품보다 우선이다. '얼굴에 입는 옷 / 어떤 모습도 다 가리고/ 못난이 잘 난이도/차별이 없다.' 기막힌 옷이다. 패션도, 교복이 아니라 바로 국복'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사물과 현상에서 화자가 느끼는 감정들은 단지 시의 제재상태에 머물러 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화자의 내면세계의 생수와 어우러져 있는 진흙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섞고 모아 그릇의 모양을 빚어내는 것처럼 시를 창작함은 미적 감각이며 서정적 지성이다.
아빠가 지어주신
사형제 별명
맏이인 나 고집쟁이
여동생 깍쟁이
큰 남동생 욕심쟁이
막내 남동생 부랑쟁이
욕심쟁이와 부랑쟁이
한판 붙었다
다락방 모두 호출
네 명 모두 무릎 꿇었다
아빠가 회초리로 본인의 팔을
때리기 시작
너희들을 잘 못 가르쳤으니
대신 내가 벌을 받겠다
피멍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울며 잘못했다고 매달렸다
그 후 한동안 우리는 모두
정숙하게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 「아빠의 추억」 전문
위 인용 시에는 가족들의 얼굴이 보인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혼 없는 신체가 사람이 아니듯 결코 가정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성장한 유년의 장소와 추억이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화자는 상실해 버린 심상(원초의 고향)을 복원하여 아버지와 형제들을 소환한다. '아빠가 지어주신 /사형제 별명' '맏이인 나 고집쟁이/여동생 깍쟁이/큰 남동생 욕심쟁이/막내 남동생 부랑쟁이' '욕심쟁이와 부랑쟁이/한판 붙었다.' 아버지는 너희들을 잘 못 가르쳤으니 대신 내가 벌을 받겠다며, 회초리로 본인의 팔을 때리기 시작한다. 울며 잘못했다고 매달리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게 그려진다. 허물이 있고 잘못이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한집안 안에서 한 핏줄을 나눈 가족끼리는 모든 것이 애정의 온기를 덮어 감싸준다. 화자의 아버지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늘이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픔을 나누어 줄이는 것이 가족끼리의 인정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 준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가족들이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어느 사람이나 모두 따로 논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삭막한 세상에 '가족'이란 말처럼 정겨운 것이 있을까.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모두 소중한 식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캄캄한 우주공간 속에
까만 이불 덮고
웅크리고 있는 나
조절도 안 되는 어둠의 볼륨을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흐느끼는 소리조차
어둠 속에 갇혔다
어서 아침이 오라는 수밖에
비로소
내 초라한 육신은
용트림하고
빛의 속도로 천지를 헤맬 것이다
내일도 어둠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어쩌나
차라리 나는
밤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 「밤이 없는 나라」 전문
사람은 자기 앞의 생애와 현실 속에서 부단히 상처받고 끝없이 그 상처로 숨 쉬며 꿈꾸고 포옹한다. 그래서 시인은 내일의 흐릿한 희망보다 오늘의 뚜렷한 절망을 믿고 사랑한다. '캄캄한 우주공간 속에/ 까만 이불 덮고/ 웅크리고 있는 나' '조절도 안 되는 어둠의 볼륨을/ 있는 대로 크게 틀어놓고/ 흐느끼는 소리조차/ 어둠 속에 갇혔다'
위 인용 시는 개인적 의식과 현실적 환경의 틈 사이에서 싹트는 부재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화자는 이러한 부재나 결핍을 끊임없이 채우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완강한 힘을 꿈꾼다.
'어서 아침이 오라는 수밖에/ 비로소/ 내 초라한 육신은/ 용트림하고/ 빛의 속도로 천지를 헤맬 것이다' '내일도 어둠은/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화자의 자아 내부에 쌓이는 긍정과 부정의 의식 작용이 어떤 창조적인 내용이나 파괴적인 형태를 가지면서도 미적 진정성의 확보는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나/ 차라리 나는/ 밤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화자는 주어진 미세한 안목과 전망적 시야로 삶에 내재한 전면적 진실을 파악해 보고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기원하고 꿈꾸어 본다.
▣ 나가면서
이문희 시인은 차분히 자기의 독자적 목소리로 자신의 시 세계를 여는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철없을 때 나는 시어로 골라 쓰고 형식에 신경을 쓰고 어렵게 시를 쓰려고 했다. 지금은 내 마음 가는 데로 쉽게 쓰려한다. 편하고 시원하고 후련해진다. 나는 나의 시가 내 속의 고통을 뱉어내는 치유의 약으로 쓴다. 나를 위해 시를 쓴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공감하고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이문희 시 세계는 어렵지 않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친근감이 있다. 지나친 수식의 능란한 단계를 넘어서서 쉽고 편하게 이해되어 독자들 곁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기교 배제의 시, 자신의 삶이 배어있는 '이야기'가 있는 시를 써 왔다.
그의 시는 시들을 말하듯이 쓰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시가 반드시 압축과 농축된 상징으로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문희 시는 낯설게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낯익은, 즉 평소에 익숙한 단어와 문장을 중심으로 시를 쓰고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 쉽고 소박한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안식을 안겨다 준다. 언어가 애매하거나 주춤거리지 않는다. 우회하거나 굳이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전달이 분명하고 깨끗하다. 또한 그의 시는 따뜻한 역설의 묘미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재미가 있다.
이문희 시 67편 속에는 조용히 부딪치는 삶의 이야기들을 잔잔히 풀어낸 궤적이 보인다.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수없이 겪었을 내적 갈등과 다듬어지지 않은 시어 앞에서 불면의 고뇌가 느껴진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하느니라.'라고 했던 푸시킨의 시처럼 모든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채색되기 마련이다. 그의 시들의 여정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가 살아온 흔적은 참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목차
목차
01. 수녀님의 하복
02. 그리움
03. 상념
04. 허망
05. 기백
06. 폐야
07. 밤이 없는 나라
08. 협곡
09. 억새풀 숲으로 데려다주오
10. 침묵
11. 바램
12. 가버린 내 친구
13. 겨울비
제2부 자화상
14. 왜웁니까
15. 멍
16. 6월
17. 가는 세월
18. 자화상
19. 봄의 용트림
20. 기억의 동산
21. 1분의 공포
22. 들찔래
23. 하얀 눈빨
24. 사월의 모순
25. 목단
26. 여름의 노고를 아는가
27. 코로나19
28. 사월의 모순
제3부 가로수 잎새
28. 인생의 레일
29.숲
30. 갈망
31. 떠나간 동백꽃가지
32. 꿈속 나라
33. 그말이 그말
34. 메주콩의 한살이
35. 님
36. 보고 싶은 별
37. 가로수 잎새
38. 찻집
39. 푸른 숲
40. 세월과 인생
41.매미의 한
제4부 시험시간
40. 시험시간
41. 비
42. 가을하늘 구름열차
43. 노을과 바다
44. 인생의 길이
45. 가을이 떠나는 풍경
46. 마스크 옷
47. 봄비
48. 꽃에게 말했다
49. 나는 산새가 되고 싶다
50. 앎과 행함
51. 무상
52. 밤의 적막
53. 진실되로 살아라
제5부 민달팽이
54. 내 삶의 카테고리
55. 입구와 출구사이
56. 민달팽이
57. 닭서리의 추억
58. 아빠의 추억
59. 약속
60. 노할머니의 미소
61. 별이 쏟아진다
62. 초생달
63. 가을
64. 응어리
65. 갈망
[발문]
익숙한 단어로 빚어진 맛있는 흰쌀밥 같은 시ㆍ차달숙 -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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