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4: 나무과 콘크리트(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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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3회 발간되는 건축잡지 『미로』는 한국 현대 건축의 담론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매호 선정한 주제에 집중하는 글로만 구성되는 텍스트 중심의 잡지로 4호의 주제는 “나무와 콘크리트”이다.
『미로 4: 나무와 콘크리트』를 엮으며
『미로』 창간을 준비하던 무렵 어렴풋하게나마 4, 5호까지의 특집 주제를 미리 정해두었다. 1호부터 3호까지의 주제 “참조와 인용”, “일본”, “OMA”는 크게 보자면 일종의 영향관계를 물었다. “참조와 인용”은 당대 건축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다루었다면, “일본”은 지금도 한국에서 여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타자를 소환해보려 했다. 과시적이며 매혹적인 대상이자, 동시대 건축 실무와 이론의 척도 역할을 해온 OMA까지 『미로』 1-3호는 연속적인 면이 있다. 그러고나서 분위기를 바꿔 재료, 그러니까 건축을 둘러싼 많은 힘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재료를 다루고 싶었다.
나무와 그의 상대, 콘크리트를 불러오다
건축의 본질은 벽과 기둥, 바닥이 아니라 이것들로 이루어진 ‘공간’, 다시 말해 무형의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자 굳건한 입장이었다. ‘공간’의 위세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건축은 기하학이나 질서, 유형 등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을 높이 평가한다. 건축은 물질 덩어리에 속박되어 있기에 예술의 서열에서 제일 밑바닥을 차지한다는 헤겔에 항변이라도 하듯 말이다. 물론 텍토닉 등의 논의가 여기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텍토닉은 물질에서 출발해 정신으로 도약하길 원하는 거꾸로 선 미학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물질은 어느 때보다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고 시공업자가 건물을 짓는다는 이원적 구도가 (삐걱거릴지언정) 여전히 유지되지만, 양상은 꽤 달라지고 있다. 무형의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라던가, 아이코닉한 형태를 부여하는 자로 건축가를 설정하는 일은 이제 시대착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건축가가 어떤 형태를 만들었는지만큼, 어떻게 생산된 재료를 어떻게 가져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섬세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번 호는 이 소리를 듣고자 했고, ‘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로 4호 전체를 꾸리려 했다. 그러나 필자를 섭외하고 각 꼭지의 이슈들을 점검하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건축계에 이와 관련된 논의와 쟁점을 포괄적이고 ‘메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자리에 자신을 두고 훈계하는 식의 글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무의 상대, 지금 우리의 환경 대부분을 만든 콘크리트를 불러왔다. 재료의 전환을 부각시키는 데도 유리하다고 여겼다.
『미로 4: 나무와 콘크리트』를 엮으며
『미로』 창간을 준비하던 무렵 어렴풋하게나마 4, 5호까지의 특집 주제를 미리 정해두었다. 1호부터 3호까지의 주제 “참조와 인용”, “일본”, “OMA”는 크게 보자면 일종의 영향관계를 물었다. “참조와 인용”은 당대 건축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다루었다면, “일본”은 지금도 한국에서 여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타자를 소환해보려 했다. 과시적이며 매혹적인 대상이자, 동시대 건축 실무와 이론의 척도 역할을 해온 OMA까지 『미로』 1-3호는 연속적인 면이 있다. 그러고나서 분위기를 바꿔 재료, 그러니까 건축을 둘러싼 많은 힘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재료를 다루고 싶었다.
나무와 그의 상대, 콘크리트를 불러오다
건축의 본질은 벽과 기둥, 바닥이 아니라 이것들로 이루어진 ‘공간’, 다시 말해 무형의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자 굳건한 입장이었다. ‘공간’의 위세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건축은 기하학이나 질서, 유형 등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을 높이 평가한다. 건축은 물질 덩어리에 속박되어 있기에 예술의 서열에서 제일 밑바닥을 차지한다는 헤겔에 항변이라도 하듯 말이다. 물론 텍토닉 등의 논의가 여기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텍토닉은 물질에서 출발해 정신으로 도약하길 원하는 거꾸로 선 미학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물질은 어느 때보다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건축가는 도면을 그리고 시공업자가 건물을 짓는다는 이원적 구도가 (삐걱거릴지언정) 여전히 유지되지만, 양상은 꽤 달라지고 있다. 무형의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라던가, 아이코닉한 형태를 부여하는 자로 건축가를 설정하는 일은 이제 시대착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건축가가 어떤 형태를 만들었는지만큼, 어떻게 생산된 재료를 어떻게 가져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섬세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번 호는 이 소리를 듣고자 했고, ‘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로 4호 전체를 꾸리려 했다. 그러나 필자를 섭외하고 각 꼭지의 이슈들을 점검하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건축계에 이와 관련된 논의와 쟁점을 포괄적이고 ‘메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자리에 자신을 두고 훈계하는 식의 글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무의 상대, 지금 우리의 환경 대부분을 만든 콘크리트를 불러왔다. 재료의 전환을 부각시키는 데도 유리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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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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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나무로의 전환
나무를 다루는 필자는 하나같이 자신의 실천이 변화해오는 과정 속에서 걸러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론적인 접근을 하더라도 경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조건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문법을 모색하는 조남호 역시 이행의 과정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모더니즘 미학과 철근콘크리트에 빠져 있던 그가 어떤 연유로 목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목조의 가능성을 시공 현장과 대학에서 동시에 실험하게 되었는지는 건축가의 인생 여정과 나란히 읽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가 나무의 특이성에서 보편성으로 이행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의 경험을 통해 나무가 강제하는 한계와 그 속에 숨은 가치들을 발견해나가는 이야기는 박지현과 조성학의 내러티브에서도 나타난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시작한 경골 목구조 주택 설계를 거듭해 나가면서 목조 건축이 무엇인지 깨달아 나가는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만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또래의 동료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고, 학생들이라면 앞서 출발한 이들의 길을 따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산림녹화에 성공한 예외적인 국가다. 한국전쟁 직후 민둥산이었던 흔적은 수십 년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전국의 산에 심어진 나무는 지금 그다지 쓸모가 없고, 목재 산업과 목조 건축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 건축학과 교육에서도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선형은 어긋난 역사의 추이를 추적하며 이 둘을 다시 이을 가능성을 찾아나선다. 이세웅은 우려와 걱정을 전한다. 기능과 기술에 무감한 한국 건축계가 나무라는 재료 앞에서 수수방관과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한다. 재료와 결구에 대한 사려 깊고 감각적이며 과학적인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굳이 반복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디테일은 건축가의 공예가적 기질을 뽐내는 장치가 되는 현실에서는 뻔하기보다는 드문 일이다.
한동안 한국에서 목조건축은 곧 전통 건축이고, 전통 건축의 특징은 공포와 지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여겼다. 이런 연유로 한국적인 것을 앞세운 건축물들은 공포와 지붕을 콘크리트로 모방하곤 했다. 이런 시절이 꽤 지루하게 길게 이어져서인지, 공포의 현대화에 몰두하는 이는 드물다. 김재경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디지털 기술이 공포를 재해석하고 나무를 효율적으로 재단하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천착해온 공포 연구의 일단을 소개한다.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지역은 없다. 각국은 나무를 다루어온 오랜 전통이 자국에 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뽐낸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가 복잡한 지붕 결구 방식을 내세운다면,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바이킹의 선박 건조 기술을 언급하곤 한다. 수십 년 뒤, 2025년을 전후해 건축 재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면 틀림없이 올해 개최된 오사카-간사이 국제박람회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박람회에서 선보인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 그랜드 링은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미로』 이번 호는 이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 방문기보다 내부자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랜드링을 설계한 소우 후지모토 사무실에서 시니어 건축가로 일하는 송영대는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무로의 전환을 들려준다.
나무를 특집으로 한다면, 건축 재료로서의 나무는 산업의 규모로만 존재한다는 잊기 쉬운 지점을 짚어보고 싶었다. 부피가 큰 나무의 운송, 보관, 제작에는 엄청나게 큰 항만, 창고, 공장이 필요하다. 인천 북항에는 목재 산업에 할당된 부두와 단지가 별도로 존재한다. 목재 업체를 경영하는 이승환은 나무 산업의 꽃은 목조 건축이라는 간명한 주장과 함께 국내 목재 산업이 처해 있는 현주소를 가감 없이 전하며, 필요한 정책 등을 제안한다. 나무가 산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처리 과정이 필수적이다. 습기나 열에 견디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건축물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구조 성능을 내기 위해서 나무는 다른 물질과 결합해야 한다. 최혜정은 이 물질이 플라스틱이라고 말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한 나무가 지구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것은 아니니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무는 자연과 환경보존의 원천이고, 플라스틱은 인공,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히 우리는 나무가 플라스틱과 결합되어 공학 목재가 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최혜정의 글은 이 맹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콘크리트 이후, 해체와 희망
나무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연 기후 위기다. 지난 세기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삼분의 일 정도가 건설 산업에서 나왔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거의 모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석회석을 채굴해서 거대한 가마에서 구워 시멘트를 만들고 이를 건설현장에 보내어 굳히는 매순간 이산화탄소는 뿜어져 나온다. 현대를 만든 이 콘크리트는 누가 발명한 것일까? 에이드리언 포티에 따르면 현대 콘크리트의 기원을 두고 여러 설이 있고, 그 가운데 어떤 것도 단일한 하나의 기원을 지목하지 않는다. 포티는 콘크리트 기원설을 크게 셋으로 잡고, 각 기원설화가 정확한 기원을 말해주기보다 각 주장이 제기된 시대를 오히려 잘 설명해준다고 주장한다. 지식이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장에서 서술된 이 글은 원래 취리히 연방공대에서 발간하는 잡지 gta papers에 수록되었다. 저자와 출판사에 연락하고 번역한 임윤택의 노력으로 이 글을 『미로』에 실을 수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번역 게재를 허락해준 에이드리언 포티와 취리히 연방공대에 감사를 전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 지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해체되어야만 한다. 재료가 가진 내구연한에 달하기 전에 경제적 이유로 허물어지는 일이 더 많은 콘크리트 건축물은 폐기물과 재활용 사이를 오간다. 강난형은 물질 관리의 차원에서 이 짧은 여정을 기록한다.
1945년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다시 말해 외부 식민지 없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유일한 나라인 한국의 개발사는 시멘트 생산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한국은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하천, 절개지 등 사용가능한 지표면 모두를 시멘트로 덮다시피했다. 이연경은 유엔한국재건단의 지원으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문경 쌍용양회의 역사, 그리고 이와 얽힌 건축과 원조, 산업의 역사를 들려준다. 반면, 박정현은 시멘트-콘크리트-모더니즘의 양상을 거시적으로, 행성적 차원에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지질학, 탈식민주의, 문학사 등 최신 연구를 두루 원용해 건축사 연구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은 최근 브루탈리즘이라는 복고적인 유행과 함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매끄러운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1970-80년대 지어진 거친 콘크리트 건축물은 SNS와 출판 등에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 건축의 대체어, 동의어처럼 들릴 정도다. 전태규는 콘크리트 (가짜) 폐허가 도처에 널린 성수동에 시대착오적이면서 시대친화적으로 들어선 젠틀몬스터 사옥을 브루탈리즘의 맥락으로 읽어나간다.
도시와 공간을 자본 축적의 도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에서 건축은 기후 위기 부정론자에 가깝다. 세운상가 일대의 을지로 재개발, 노들섬 등 개발 이익과 랜드마크에 대한 열망에 서린 광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나무 역시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는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불쏘시개로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전환이 이전보다는 더 윤리적이기를 희망하면서 글들을 엮었다.
나무를 다루는 필자는 하나같이 자신의 실천이 변화해오는 과정 속에서 걸러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이론적인 접근을 하더라도 경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조건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문법을 모색하는 조남호 역시 이행의 과정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모더니즘 미학과 철근콘크리트에 빠져 있던 그가 어떤 연유로 목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목조의 가능성을 시공 현장과 대학에서 동시에 실험하게 되었는지는 건축가의 인생 여정과 나란히 읽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 과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가 나무의 특이성에서 보편성으로 이행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의 경험을 통해 나무가 강제하는 한계와 그 속에 숨은 가치들을 발견해나가는 이야기는 박지현과 조성학의 내러티브에서도 나타난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시작한 경골 목구조 주택 설계를 거듭해 나가면서 목조 건축이 무엇인지 깨달아 나가는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만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또래의 동료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것이고, 학생들이라면 앞서 출발한 이들의 길을 따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산림녹화에 성공한 예외적인 국가다. 한국전쟁 직후 민둥산이었던 흔적은 수십 년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전국의 산에 심어진 나무는 지금 그다지 쓸모가 없고, 목재 산업과 목조 건축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 건축학과 교육에서도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선형은 어긋난 역사의 추이를 추적하며 이 둘을 다시 이을 가능성을 찾아나선다. 이세웅은 우려와 걱정을 전한다. 기능과 기술에 무감한 한국 건축계가 나무라는 재료 앞에서 수수방관과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한다. 재료와 결구에 대한 사려 깊고 감각적이며 과학적인 태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굳이 반복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이지만, 디테일은 건축가의 공예가적 기질을 뽐내는 장치가 되는 현실에서는 뻔하기보다는 드문 일이다.
한동안 한국에서 목조건축은 곧 전통 건축이고, 전통 건축의 특징은 공포와 지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여겼다. 이런 연유로 한국적인 것을 앞세운 건축물들은 공포와 지붕을 콘크리트로 모방하곤 했다. 이런 시절이 꽤 지루하게 길게 이어져서인지, 공포의 현대화에 몰두하는 이는 드물다. 김재경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디지털 기술이 공포를 재해석하고 나무를 효율적으로 재단하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천착해온 공포 연구의 일단을 소개한다.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지역은 없다. 각국은 나무를 다루어온 오랜 전통이 자국에 있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뽐낸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가 복잡한 지붕 결구 방식을 내세운다면,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바이킹의 선박 건조 기술을 언급하곤 한다. 수십 년 뒤, 2025년을 전후해 건축 재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면 틀림없이 올해 개최된 오사카-간사이 국제박람회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박람회에서 선보인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 그랜드 링은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미로』 이번 호는 이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 방문기보다 내부자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랜드링을 설계한 소우 후지모토 사무실에서 시니어 건축가로 일하는 송영대는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겪은 개인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무로의 전환을 들려준다.
나무를 특집으로 한다면, 건축 재료로서의 나무는 산업의 규모로만 존재한다는 잊기 쉬운 지점을 짚어보고 싶었다. 부피가 큰 나무의 운송, 보관, 제작에는 엄청나게 큰 항만, 창고, 공장이 필요하다. 인천 북항에는 목재 산업에 할당된 부두와 단지가 별도로 존재한다. 목재 업체를 경영하는 이승환은 나무 산업의 꽃은 목조 건축이라는 간명한 주장과 함께 국내 목재 산업이 처해 있는 현주소를 가감 없이 전하며, 필요한 정책 등을 제안한다. 나무가 산업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처리 과정이 필수적이다. 습기나 열에 견디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건축물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구조 성능을 내기 위해서 나무는 다른 물질과 결합해야 한다. 최혜정은 이 물질이 플라스틱이라고 말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한 나무가 지구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것은 아니니 이는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무는 자연과 환경보존의 원천이고, 플라스틱은 인공,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히 우리는 나무가 플라스틱과 결합되어 공학 목재가 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최혜정의 글은 이 맹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콘크리트 이후, 해체와 희망
나무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단연 기후 위기다. 지난 세기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삼분의 일 정도가 건설 산업에서 나왔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거의 모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석회석을 채굴해서 거대한 가마에서 구워 시멘트를 만들고 이를 건설현장에 보내어 굳히는 매순간 이산화탄소는 뿜어져 나온다. 현대를 만든 이 콘크리트는 누가 발명한 것일까? 에이드리언 포티에 따르면 현대 콘크리트의 기원을 두고 여러 설이 있고, 그 가운데 어떤 것도 단일한 하나의 기원을 지목하지 않는다. 포티는 콘크리트 기원설을 크게 셋으로 잡고, 각 기원설화가 정확한 기원을 말해주기보다 각 주장이 제기된 시대를 오히려 잘 설명해준다고 주장한다. 지식이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장에서 서술된 이 글은 원래 취리히 연방공대에서 발간하는 잡지 gta papers에 수록되었다. 저자와 출판사에 연락하고 번역한 임윤택의 노력으로 이 글을 『미로』에 실을 수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번역 게재를 허락해준 에이드리언 포티와 취리히 연방공대에 감사를 전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 지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해체되어야만 한다. 재료가 가진 내구연한에 달하기 전에 경제적 이유로 허물어지는 일이 더 많은 콘크리트 건축물은 폐기물과 재활용 사이를 오간다. 강난형은 물질 관리의 차원에서 이 짧은 여정을 기록한다.
1945년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 다시 말해 외부 식민지 없이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유일한 나라인 한국의 개발사는 시멘트 생산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세기 한국은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하천, 절개지 등 사용가능한 지표면 모두를 시멘트로 덮다시피했다. 이연경은 유엔한국재건단의 지원으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시멘트공장인 문경 쌍용양회의 역사, 그리고 이와 얽힌 건축과 원조, 산업의 역사를 들려준다. 반면, 박정현은 시멘트-콘크리트-모더니즘의 양상을 거시적으로, 행성적 차원에서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지질학, 탈식민주의, 문학사 등 최신 연구를 두루 원용해 건축사 연구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은 최근 브루탈리즘이라는 복고적인 유행과 함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매끄러운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1970-80년대 지어진 거친 콘크리트 건축물은 SNS와 출판 등에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 건축의 대체어, 동의어처럼 들릴 정도다. 전태규는 콘크리트 (가짜) 폐허가 도처에 널린 성수동에 시대착오적이면서 시대친화적으로 들어선 젠틀몬스터 사옥을 브루탈리즘의 맥락으로 읽어나간다.
도시와 공간을 자본 축적의 도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에서 건축은 기후 위기 부정론자에 가깝다. 세운상가 일대의 을지로 재개발, 노들섬 등 개발 이익과 랜드마크에 대한 열망에 서린 광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나무 역시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는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불쏘시개로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전환이 이전보다는 더 윤리적이기를 희망하면서 글들을 엮었다.
목차
목차
박정현 ● 『미로 4: 나무와 콘크리트』를 엮으며 _
김선형 ● 나무 없는 건축, 건축 없는 나무-Formwork의 시대를 지나, 다시 Framework의 시대에 대한 고찰
에이드리언 포티 / 임윤택 번역 ● 현대 콘크리트의 기원 신화들
조남호 ● 부분과 전체, 생태 미학의 건축
박정현 ● 콘크리트: 행성적 모더니즘
최혜정 ● 유기물의 두 얼굴-나무와 플라스틱
박지현, 조성학 ● 샛기둥의 가능성
이연경 ● 시멘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이삭 ● 허공에 발치에 티끌에
전태규 ● 젠틀몬스터 사옥과 브루탈리즘적 콘크리트 이미지
이세웅 ●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살
송영대 ● 가장 전통적인, 가장 미래적인
강난형 ● 분해를 위한 카탈로깅: 짓고 부수는 계획의 물질, 시멘트
이승환 ● 목재 산업: 가장 오래된, 동시에 지속가능한 미래의 자원
김재경 ● 공포,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정체성 -기원, 발전, 지역적 변용과 현대적 재해석
김선형 ● 나무 없는 건축, 건축 없는 나무-Formwork의 시대를 지나, 다시 Framework의 시대에 대한 고찰
에이드리언 포티 / 임윤택 번역 ● 현대 콘크리트의 기원 신화들
조남호 ● 부분과 전체, 생태 미학의 건축
박정현 ● 콘크리트: 행성적 모더니즘
최혜정 ● 유기물의 두 얼굴-나무와 플라스틱
박지현, 조성학 ● 샛기둥의 가능성
이연경 ● 시멘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이삭 ● 허공에 발치에 티끌에
전태규 ● 젠틀몬스터 사옥과 브루탈리즘적 콘크리트 이미지
이세웅 ●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살
송영대 ● 가장 전통적인, 가장 미래적인
강난형 ● 분해를 위한 카탈로깅: 짓고 부수는 계획의 물질, 시멘트
이승환 ● 목재 산업: 가장 오래된, 동시에 지속가능한 미래의 자원
김재경 ● 공포,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정체성 -기원, 발전, 지역적 변용과 현대적 재해석
저자
저자
강난형
물질, 문화, 만듦의 관점에서 도시 건축을 연구하는 아키텍토닉스 대표이자 건축가, 연구자. 도시개발, 유산 복원, 수공예 콘크리트 기술사를 주제로 한 연구를 수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아시아 개발국가의 맥락에서 산업화 과정과 어바니즘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1960년대 서울시범도시계획연구」(2020), 『HURPI구술집』(2022), 『경복궁의 모던프로젝트』(심원건축학술상, 2018)등이 있으며, 연구 기반 전시로는 《아파트 카탈로깅》(DDP, 2024), 《짓는 집 부수는 집: 집의 생애지도》(서울시립미술관, 2020)등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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