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피해자(앳 시리즈 11)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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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은유마저도 전쟁통에 죽어버렸다."
정밀함과 아이러니로 벼려낸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
팔레스타인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통렬한 해부와 증언
우리의 공감은 왜 선택적으로 작동할까?
피해자의 자격을 가르는 시선에 대하여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이스라엘 비판 발언을 올려 큰 파장을 낳았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하고 옥상에서 떨어뜨렸다는 주장과 함께 게시된 영상을 공유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과 다를 바 없다고 썼다. 이후 추가 게시물을 통해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성인 시신에 행해진 일임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최우선 가치'이며 시신도 국제법의 보호 대상이라 언급했다. 하지만 법의 문제를 떠나, 군홧발에 차여 추락하는 대상이 아동이나 산 자가 아니면 우리의 윤리 감각을 그다지 거스르지 않는 걸까? 이미지 속 형체를 처음에 '아이'로 인식해 더 큰 공분을 느꼈던 것이 근래 국내 반이스라엘 정서 확대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분노의 크기가 피해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의 공감이 선택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5일 만에 관객 수 1만 명을 돌파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섯 살 힌드 라잡은 335발의 총탄이 박힌 차 안에서 가족을 잃고 절박하게 구조 요청을 했으나, 결국 구급대원들과 함께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사건에 많은 사람이 분개했고 힌드의 사진과 녹음된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집단학살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가 7만 2000명을 넘는 사이, 죽음이 받는 주목은 균등하지 않았다. 세상은 힌드처럼 너무나 명백히 '무고한' 이들의 고통에 더 아파했다. 어리고 힘없는 '약자'에게 더 깊이 공감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자 제도의 결실이기도 하므로 그 자체를 문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고함과 무해함을 강조할수록, 의도와 무관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을 더 좁은 틀에 옭아매게 된다는 점이다.
『완벽한 피해자』는 이처럼 인간의 조건 밖으로 내쫓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피해자성만을 내세워야 하는 인간화의 역설을 밝혀낸다. 점령당한 예루살렘 출신 작가이자 활동가인 저자 모함메드 엘쿠르드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서구의 호감과 신뢰를 살 만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호소의 정치'라 명명한다. 이는 팔레스타인인에게 분노와 저항을 박탈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고통받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길 요구한다. 이 책은 식민주의 체제의 이 같은 작동 방식을 통렬하게 해부하며, 그 틀을 거부하고 저항과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언어를 묻는다.
팔레스타인인에게 허락된 단 두 가지 이름,
인간 동물 혹은 송곳니 뽑힌 인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비인간화되고 피해자 아니면 테러리스트라는 이분법으로 재현된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 "박멸해야 하는 야만인"이라 일컫고 "팔레스타인 민족 같은 것은 없다"라든가 "애들도 다 죽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뱉는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인이 겪고 있는 끔찍한 폭력과 억압, 말소 앞에서 대체로 냉담하다.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자동으로 인간이 될 수는 없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다움', 즉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다.
따라서 인간화는 "결백-백인성, 교양, 부, 타협, 협력, 비동맹, 비폭력, 무력함, 미래 없음-에 가까워짐으로써"(47쪽) 가능하다. '민간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분노와 행위자성을 포기한 채 정세, 집단의 대의, 이데올로기 따위 입에 올리지 않으며 오직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구제만 기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인은 송곳니를 뽑혀야만 제한적일지언정 말하고 서사화될 수 있다.
이 책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스라엘 및 적극적인 공모국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연민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부지중에 피해자상(像)을 재생산해온 지지자도 포함한다. 연대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무고함을 강조하고, 그들을 자유주의적 기준에서 존중하고 공감할 만한 형태로 묘사한다. 엘쿠르드는 그럴수록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호소의 정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간의 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봐야 하는 권력 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구조 안에서 인간성을 입증할 수단을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인, 식민 폭력에 (때때로 총, 화염병, 돌멩이, 주먹을 들고) 맞서는 팔레스타인인은 권리와 존엄을 갖고 살아갈 자격을 잃는다.
나아가 이 책은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비춘다. 식민 논리를 내면화하고 완벽한 피해자 역할을 수행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서다. 유럽연합 여권이나 전문직 사원증, 졸업장을 무죄 보증서처럼 내미는 자들, 특권층, 계급 상승의 길이 있는 자들 등등. 이들은 언어를 순화하고, 정체성과 정치성을 탈색하고, 계급주의적 세계관에 복무한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의 사랑을 받는 기자였던 시린 아부 아클레는 취재 중에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살해당했다. 이후 사망 보도 과정에서 미국 시민임이 알려져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서 사면되었고 서구의 주목과 애도를 받았다. 반면 그 3주 후 마찬가지로 '프레스' 조끼를 입은 채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당한 구프란 와라스네는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목숨의 위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은 완벽한 피해자의 조건을 충족시켜줬을 뿐 목숨을 지켜주진 못했다. 결국 인간화 기획은 식민 논리와 인종주의적 서사를 강화하고, 집단적 해방 대신 개인적 승리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소비하게 하며, 해방 운동의 동력을 내부에서 잠식한다.
정착민 식민주의 체제의 책략,
폭력과 점령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프로파간다
이 책에서 엘쿠르드는 호소의 정치에 대한 거부와 함께, 식민주의와 봉쇄, 군사점령이라는 문제의 핵심에서 우리의 주의를 돌리도록 설계된 시온주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말 것을 요청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수감하거나 폭행하거나 살해하고서 그 경위와 구실로 허튼소리를 하기 일쑤다. 가령 이스라엘 대통령 헤르초그는 군이 팔레스타인인의 집 아이들 방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 아랍어판을 찾았다며 그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인 절멸을 획책하고 있는 증거인 양,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인 양 다뤘다. 이스라엘 경찰들은 팔레스타인 청년의 얼굴에 다윗의 별 모양 낙인을 찍은 후 그것이 경관의 신발로 인해 생긴 자국이라 주장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또 이스라엘군은 가자 알아흘리 병원을 폭격하고서 아군 포격이 원인이었다는 허위 주장을 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런 비논리, 날조, 신화를 논박하려는 충동을 다스려야 한다. 그들의 의도가 바로 그런 논쟁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인들과 그 연대자들의 주의를 분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상모략을 반박할 때 그것이 중요해 보이게 되고, 그 논리가 부지중에 정당화되고, 때론 시급한 눈앞의 현실이 외면당한다. 이를테면 『나의 투쟁』이 조작된 증거라고 증명하려 드는 순간, 책을 무기로, 범죄의 증거로 대하는 시온주의 논리를 인정하는 셈이다. "거짓 혐의에서 내 이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게 혐의를 씌우는 이들의 기만과 이중성을 폭로하는 것"(134-135쪽)이 옳은 방향이다.
저자는 연단에 설 때마다 받는 질문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인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가요?" 그는 갈수록 경박하고 불손하게 답한다. "그렇게나 빠져 죽을까 봐 걱정되면 수영을 배우면 될 일 아닌가요?" 이런 질문들은 식민자 정착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미래의 재앙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나크바(대재앙)보다 우선시하는 담론적 악순환을 부추기기 때문이다(213쪽). 이에 대해 웃음과 농담, 풍자, 불손으로 응답하는 행위는 도덕적·정치적으로 사소한 일이 정말로 심각한 일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한다.
"저 폭탄 앞에서 글이란 얼마나 모자란가?"
애도가 멈춘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시적 말하기
엘쿠르드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답게 정밀한 비유와 간결한 논변, 절제된 감정과 시적 리듬으로 진동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영어와 아랍어, 운문과 산문, 선언과 증언, 개인적 서사와 르포르타주가 교차하는 글쓰기는 참담한 진실을 다루면서도 종종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동시에 언어에 깃든 권력관계, 인종주의적이고 확장주의적인 수사적 장치, 주류화된 서사와 담론을 주요하게 분석하고 심문한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책 맨 앞에 배치한 「작업 노트」에서 의도적으로 글 전반에 남성 대명사를 과다하게 썼다고 밝힌다. 팔레스타인인을 너무 오랫동안 '여성과 아동'으로 축소하는 관행이 여성과 아동에게서는 주체성을 빼앗고 남성은 악마화해왔기 때문이다. 또 각주를 특별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각주는 결코 주변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많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과 순교자들의 약력을 담고 있고, 핵심적인 아이러니나 유머를 형성하는 비평적 기능도 한다. 종종 아랍어로만 쓰인 각주가 나온다. 이는 아랍어를 모르는 독자들의 세계 바깥에서 활발히 생산되고 유통되는 논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독자를 내 집을 찾은 손님처럼 대하고 싶"다고도 말하는데, 가장 '집'처럼 느껴지는 텍스트가 바로 이곳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딜레마를 진솔하게 고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 투쟁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가 구성하는 언어와 이미지는 장차 어떤 영향으로 되돌아올까?' 시온주의의 폭압을 기록할뿐더러 집단 투쟁이 일어나는 데 촉매 역할을 한 작품을 예로 들면서도, 각종 글과 예술을 통해 세계 여론이나 현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미미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함께 적는다.
함께 해방된 미래를 꿈꾸기
한편 이 책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물질적 분석에 헌신하는 일"(176쪽)을 강조한다. 그것은 거리에서 생산되는 지식, 민중의 경험과 전문성에 근거한 이해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엘쿠르드는 가자의 시민 언론인들이 일궈낸 변화를 다루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해내야 할 실천의 하나로 "비판적인 시청자와 비판적인 독자가 절대 빠지지 않는 실천"(177쪽)을 꼽는다. 이 책은 연대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이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다양한 일을 알려주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비판적인 독자'로 만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기 기술(記述)에 얽히게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간명하고 강력한 요구가 전해진다. 조건 없는 존엄을 존중할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다'라는 시위 구호를 은유가 아닌 실질이 되게 할 것. 가자와 팔레스타인이 구호를 혼자 외치게 두어선 안 된다. 이것은 또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청이다. 호소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를 거부하고 바꿔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적어도 독자를, 그들의 호소를 듣고 자격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
정밀함과 아이러니로 벼려낸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
팔레스타인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통렬한 해부와 증언
우리의 공감은 왜 선택적으로 작동할까?
피해자의 자격을 가르는 시선에 대하여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이스라엘 비판 발언을 올려 큰 파장을 낳았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하고 옥상에서 떨어뜨렸다는 주장과 함께 게시된 영상을 공유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과 다를 바 없다고 썼다. 이후 추가 게시물을 통해 해당 영상이 2024년 9월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성인 시신에 행해진 일임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최우선 가치'이며 시신도 국제법의 보호 대상이라 언급했다. 하지만 법의 문제를 떠나, 군홧발에 차여 추락하는 대상이 아동이나 산 자가 아니면 우리의 윤리 감각을 그다지 거스르지 않는 걸까? 이미지 속 형체를 처음에 '아이'로 인식해 더 큰 공분을 느꼈던 것이 근래 국내 반이스라엘 정서 확대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분노의 크기가 피해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의 공감이 선택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5일 만에 관객 수 1만 명을 돌파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여섯 살 힌드 라잡은 335발의 총탄이 박힌 차 안에서 가족을 잃고 절박하게 구조 요청을 했으나, 결국 구급대원들과 함께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사건에 많은 사람이 분개했고 힌드의 사진과 녹음된 목소리가 널리 퍼졌다.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집단학살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가 7만 2000명을 넘는 사이, 죽음이 받는 주목은 균등하지 않았다. 세상은 힌드처럼 너무나 명백히 '무고한' 이들의 고통에 더 아파했다. 어리고 힘없는 '약자'에게 더 깊이 공감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자 제도의 결실이기도 하므로 그 자체를 문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무고함과 무해함을 강조할수록, 의도와 무관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을 더 좁은 틀에 옭아매게 된다는 점이다.
『완벽한 피해자』는 이처럼 인간의 조건 밖으로 내쫓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피해자성만을 내세워야 하는 인간화의 역설을 밝혀낸다. 점령당한 예루살렘 출신 작가이자 활동가인 저자 모함메드 엘쿠르드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서구의 호감과 신뢰를 살 만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호소의 정치'라 명명한다. 이는 팔레스타인인에게 분노와 저항을 박탈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고통받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길 요구한다. 이 책은 식민주의 체제의 이 같은 작동 방식을 통렬하게 해부하며, 그 틀을 거부하고 저항과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언어를 묻는다.
팔레스타인인에게 허락된 단 두 가지 이름,
인간 동물 혹은 송곳니 뽑힌 인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비인간화되고 피해자 아니면 테러리스트라는 이분법으로 재현된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 "박멸해야 하는 야만인"이라 일컫고 "팔레스타인 민족 같은 것은 없다"라든가 "애들도 다 죽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뱉는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인이 겪고 있는 끔찍한 폭력과 억압, 말소 앞에서 대체로 냉담하다.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자동으로 인간이 될 수는 없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다움', 즉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다.
따라서 인간화는 "결백-백인성, 교양, 부, 타협, 협력, 비동맹, 비폭력, 무력함, 미래 없음-에 가까워짐으로써"(47쪽) 가능하다. '민간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분노와 행위자성을 포기한 채 정세, 집단의 대의, 이데올로기 따위 입에 올리지 않으며 오직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구제만 기대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인은 송곳니를 뽑혀야만 제한적일지언정 말하고 서사화될 수 있다.
이 책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스라엘 및 적극적인 공모국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연민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부지중에 피해자상(像)을 재생산해온 지지자도 포함한다. 연대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무고함을 강조하고, 그들을 자유주의적 기준에서 존중하고 공감할 만한 형태로 묘사한다. 엘쿠르드는 그럴수록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호소의 정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간의 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봐야 하는 권력 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구조 안에서 인간성을 입증할 수단을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인, 식민 폭력에 (때때로 총, 화염병, 돌멩이, 주먹을 들고) 맞서는 팔레스타인인은 권리와 존엄을 갖고 살아갈 자격을 잃는다.
나아가 이 책은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비춘다. 식민 논리를 내면화하고 완벽한 피해자 역할을 수행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서다. 유럽연합 여권이나 전문직 사원증, 졸업장을 무죄 보증서처럼 내미는 자들, 특권층, 계급 상승의 길이 있는 자들 등등. 이들은 언어를 순화하고, 정체성과 정치성을 탈색하고, 계급주의적 세계관에 복무한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의 사랑을 받는 기자였던 시린 아부 아클레는 취재 중에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살해당했다. 이후 사망 보도 과정에서 미국 시민임이 알려져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서 사면되었고 서구의 주목과 애도를 받았다. 반면 그 3주 후 마찬가지로 '프레스' 조끼를 입은 채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당한 구프란 와라스네는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목숨의 위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은 완벽한 피해자의 조건을 충족시켜줬을 뿐 목숨을 지켜주진 못했다. 결국 인간화 기획은 식민 논리와 인종주의적 서사를 강화하고, 집단적 해방 대신 개인적 승리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소비하게 하며, 해방 운동의 동력을 내부에서 잠식한다.
정착민 식민주의 체제의 책략,
폭력과 점령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프로파간다
이 책에서 엘쿠르드는 호소의 정치에 대한 거부와 함께, 식민주의와 봉쇄, 군사점령이라는 문제의 핵심에서 우리의 주의를 돌리도록 설계된 시온주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말 것을 요청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수감하거나 폭행하거나 살해하고서 그 경위와 구실로 허튼소리를 하기 일쑤다. 가령 이스라엘 대통령 헤르초그는 군이 팔레스타인인의 집 아이들 방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 아랍어판을 찾았다며 그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대인 절멸을 획책하고 있는 증거인 양,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해주는 구실인 양 다뤘다. 이스라엘 경찰들은 팔레스타인 청년의 얼굴에 다윗의 별 모양 낙인을 찍은 후 그것이 경관의 신발로 인해 생긴 자국이라 주장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또 이스라엘군은 가자 알아흘리 병원을 폭격하고서 아군 포격이 원인이었다는 허위 주장을 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런 비논리, 날조, 신화를 논박하려는 충동을 다스려야 한다. 그들의 의도가 바로 그런 논쟁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인들과 그 연대자들의 주의를 분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중상모략을 반박할 때 그것이 중요해 보이게 되고, 그 논리가 부지중에 정당화되고, 때론 시급한 눈앞의 현실이 외면당한다. 이를테면 『나의 투쟁』이 조작된 증거라고 증명하려 드는 순간, 책을 무기로, 범죄의 증거로 대하는 시온주의 논리를 인정하는 셈이다. "거짓 혐의에서 내 이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게 혐의를 씌우는 이들의 기만과 이중성을 폭로하는 것"(134-135쪽)이 옳은 방향이다.
저자는 연단에 설 때마다 받는 질문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인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가요?" 그는 갈수록 경박하고 불손하게 답한다. "그렇게나 빠져 죽을까 봐 걱정되면 수영을 배우면 될 일 아닌가요?" 이런 질문들은 식민자 정착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미래의 재앙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나크바(대재앙)보다 우선시하는 담론적 악순환을 부추기기 때문이다(213쪽). 이에 대해 웃음과 농담, 풍자, 불손으로 응답하는 행위는 도덕적·정치적으로 사소한 일이 정말로 심각한 일과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게 한다.
"저 폭탄 앞에서 글이란 얼마나 모자란가?"
애도가 멈춘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시적 말하기
엘쿠르드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답게 정밀한 비유와 간결한 논변, 절제된 감정과 시적 리듬으로 진동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영어와 아랍어, 운문과 산문, 선언과 증언, 개인적 서사와 르포르타주가 교차하는 글쓰기는 참담한 진실을 다루면서도 종종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동시에 언어에 깃든 권력관계, 인종주의적이고 확장주의적인 수사적 장치, 주류화된 서사와 담론을 주요하게 분석하고 심문한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책 맨 앞에 배치한 「작업 노트」에서 의도적으로 글 전반에 남성 대명사를 과다하게 썼다고 밝힌다. 팔레스타인인을 너무 오랫동안 '여성과 아동'으로 축소하는 관행이 여성과 아동에게서는 주체성을 빼앗고 남성은 악마화해왔기 때문이다. 또 각주를 특별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각주는 결코 주변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많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과 순교자들의 약력을 담고 있고, 핵심적인 아이러니나 유머를 형성하는 비평적 기능도 한다. 종종 아랍어로만 쓰인 각주가 나온다. 이는 아랍어를 모르는 독자들의 세계 바깥에서 활발히 생산되고 유통되는 논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독자를 내 집을 찾은 손님처럼 대하고 싶"다고도 말하는데, 가장 '집'처럼 느껴지는 텍스트가 바로 이곳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딜레마를 진솔하게 고한다. '팔레스타인의 해방 투쟁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내가 구성하는 언어와 이미지는 장차 어떤 영향으로 되돌아올까?' 시온주의의 폭압을 기록할뿐더러 집단 투쟁이 일어나는 데 촉매 역할을 한 작품을 예로 들면서도, 각종 글과 예술을 통해 세계 여론이나 현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미미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함께 적는다.
함께 해방된 미래를 꿈꾸기
한편 이 책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물질적 분석에 헌신하는 일"(176쪽)을 강조한다. 그것은 거리에서 생산되는 지식, 민중의 경험과 전문성에 근거한 이해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엘쿠르드는 가자의 시민 언론인들이 일궈낸 변화를 다루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해내야 할 실천의 하나로 "비판적인 시청자와 비판적인 독자가 절대 빠지지 않는 실천"(177쪽)을 꼽는다. 이 책은 연대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이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다양한 일을 알려주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비판적인 독자'로 만들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기 기술(記述)에 얽히게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간명하고 강력한 요구가 전해진다. 조건 없는 존엄을 존중할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다'라는 시위 구호를 은유가 아닌 실질이 되게 할 것. 가자와 팔레스타인이 구호를 혼자 외치게 두어선 안 된다. 이것은 또한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청이다. 호소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를 거부하고 바꿔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적어도 독자를, 그들의 호소를 듣고 자격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
목차
목차
작업 노트
1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2 송곳니 뽑기의 정치
3 시린의 여권
4 추궁받는 삶
5 비유와 드론
6 놀이방의 『나의 투쟁』
7 기적적인 깨달음
8 정말로 우리 모두 팔레스타인인인가?
9 "이스라엘인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가요?"
에필로그: 머지않아 비가 내릴 거야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인용 문헌
주
찾아보기
1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2 송곳니 뽑기의 정치
3 시린의 여권
4 추궁받는 삶
5 비유와 드론
6 놀이방의 『나의 투쟁』
7 기적적인 깨달음
8 정말로 우리 모두 팔레스타인인인가?
9 "이스라엘인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가요?"
에필로그: 머지않아 비가 내릴 거야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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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모함메드 엘쿠르드 (Mohammed El-Kurd)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 작가, 저널리스트, 활동가다. 《네이션》의 초대 팔레스타인 특파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팔레스타인 관점에서 보도하는 미국의 독립 매체 《몬도와이스》의 객원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쌍둥이인 무나 엘쿠르드와 함께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남매는 자신들의 집에서 강제 퇴거당할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고 정착민 식민주의에 맞서고자 #셰이크자라를구하라 캠페인을 조직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엘쿠르드는 2022년 아랍계 미국인 시민위원회 미디어 진실상을 수상했고 2023년 래넌 재단 문화자유 펠로십을 받았다. 2023년 제18회 프린스턴대학교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 강연에서 기조 강연을 맡기도 했다. 2021년에 첫 시집 『리프카』(Rifqa)가 출간되었고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 작가, 저널리스트, 활동가다. 《네이션》의 초대 팔레스타인 특파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팔레스타인 관점에서 보도하는 미국의 독립 매체 《몬도와이스》의 객원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쌍둥이인 무나 엘쿠르드와 함께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남매는 자신들의 집에서 강제 퇴거당할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고 정착민 식민주의에 맞서고자 #셰이크자라를구하라 캠페인을 조직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엘쿠르드는 2022년 아랍계 미국인 시민위원회 미디어 진실상을 수상했고 2023년 래넌 재단 문화자유 펠로십을 받았다. 2023년 제18회 프린스턴대학교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 강연에서 기조 강연을 맡기도 했다. 2021년에 첫 시집 『리프카』(Rifqa)가 출간되었고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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