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장전 2(최익한 전집 5)
을지문덕·연개소문·김유신·강감찬·곽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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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운동가로 활동하다 월북해 격변의 시대를 살다 간 지식인 최익한의 성과를 모은 ‘최익한 전집’의 다섯 번째 책. 이 책은 최익한이 1949년 북한의 학술지 《역사제문제》에 ‘조선명장론’이라는 주제로 연속 수록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이순신 등에 대한 논문에 이후 김유신, 곽재우 편을 보완하여 1956년 발간한 《조선명장전》을 활용한 것이다. 〈조선명장론〉은 최익한이 북한에서 처음 썼던 글로서 우리나라 역대 명장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단순한 위인전을 넘어 우리 역사의 흐름, 특히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보여 주며 다양한 자료에 기반한 결과물로서 그 학문적 가치도 높다.
특히 이 책은 《조선명장전 1》에서 다룬 이순신을 제외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강감찬, 곽재우 등 5명을 함께 묶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명장들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전쟁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과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명장들의 일대기
최익한은 이 책을 저작하는 데 매우 공을 들였다. 특히 고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명에 대한 고증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서들을 폭넓게 활용했고, 그 자신의 학문적 역량으로 독자적인 고증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익한은 제한된 고대 사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역사적 상상력도 상당히 담았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 《수서隋書》, 《당서唐書》를 꼼꼼하게 해석해서 고구려의 입장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수, 당, 요 또는 삼국 간의 외교정책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점도 눈에 띈다. 심지어 거란, 돌궐 등 주변 국가와 벌인 교섭도 빠트리지 않았는데, 이 점도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다만 책에서 다룬 인물들이 ‘명장’임을 강조하기 위해 해석이 지나친 경우도 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살해한 것에 대해 영류왕이 온건파(비겁한 연파), 미온적인 친당파에 속해 투항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봉건국가였던 고구려가 종래 지방분권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되었으며, 그것을 사회발전의 과정으로 보았다. 또한 당唐태종이 연개소문을 자기와 양립할 수 없는 유일한 적수로 규정했다는 점도 과장일 듯하다. 여당전쟁에 대한 해석에서도 지나친 점이 보인다. 가령 백암성전투에서 항복한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최익한은 거짓 항복이라고 칭하면서 적의 공세를 늦추고 응원군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지체되어 점령되었다고 하거나, 비사성은 매우 험준한 성인데 적을 업신여기고 방심해 함락되었다고 해석하거나, 연개소문 사후 아들 간의 정권 다툼을 소인배의 이간과 적국의 간첩 모략에 동요되었다고 하는 등의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다. 또한 발해의 건국을 강조하기 위해, 당나라 침략에 의한 고구려의 멸망을 몇 개 도성이 강점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과 연개소문이 종래 귀족민주주의적인 부족협의 및 공선제도의 미풍유속을 파괴했다고 한 점도 지나친 듯하다.
최익한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했고 1948년에 월북했던 당시의 상황 때문인지 역사적 평가에서 소련의 역사와 비교하는 기술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몇 예를 들어보자면, 을지문덕의 퇴각 작전을 스탈린의 전술과 비교한다거나 안시성의 승리를 스탈린그라드의 승리와 비교했으며, 김유신의 삼국통일을 러시아 모스크바의 역사적 공적과 비교했다. 임진왜란 때 각 지방에서 발발한 의병운동을 인민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조선 민족이 스탈린적 규정에 해당한, 근대 민족의 형성에 대한 맹아적 형태였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현대사와 비교하는 기술은 다소 지나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역사에 대한 애국적 입장을 드러내는 평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책 속에 다섯 명장을 포함했으므로 각각 간략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지만 이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느 책에 못지않게 제대로 담았다. 김유신을 제외하면 아직도 이들 명장에 대한 연구서가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금 봐서도 탁월한 견해들이 돋보인다.
특히 이 책은 《조선명장전 1》에서 다룬 이순신을 제외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강감찬, 곽재우 등 5명을 함께 묶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명장들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전쟁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과 전쟁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명장들의 일대기
최익한은 이 책을 저작하는 데 매우 공을 들였다. 특히 고대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명에 대한 고증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서들을 폭넓게 활용했고, 그 자신의 학문적 역량으로 독자적인 고증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익한은 제한된 고대 사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역사적 상상력도 상당히 담았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 《수서隋書》, 《당서唐書》를 꼼꼼하게 해석해서 고구려의 입장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수, 당, 요 또는 삼국 간의 외교정책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점도 눈에 띈다. 심지어 거란, 돌궐 등 주변 국가와 벌인 교섭도 빠트리지 않았는데, 이 점도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다만 책에서 다룬 인물들이 ‘명장’임을 강조하기 위해 해석이 지나친 경우도 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살해한 것에 대해 영류왕이 온건파(비겁한 연파), 미온적인 친당파에 속해 투항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봉건국가였던 고구려가 종래 지방분권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되었으며, 그것을 사회발전의 과정으로 보았다. 또한 당唐태종이 연개소문을 자기와 양립할 수 없는 유일한 적수로 규정했다는 점도 과장일 듯하다. 여당전쟁에 대한 해석에서도 지나친 점이 보인다. 가령 백암성전투에서 항복한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최익한은 거짓 항복이라고 칭하면서 적의 공세를 늦추고 응원군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지체되어 점령되었다고 하거나, 비사성은 매우 험준한 성인데 적을 업신여기고 방심해 함락되었다고 해석하거나, 연개소문 사후 아들 간의 정권 다툼을 소인배의 이간과 적국의 간첩 모략에 동요되었다고 하는 등의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다. 또한 발해의 건국을 강조하기 위해, 당나라 침략에 의한 고구려의 멸망을 몇 개 도성이 강점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과 연개소문이 종래 귀족민주주의적인 부족협의 및 공선제도의 미풍유속을 파괴했다고 한 점도 지나친 듯하다.
최익한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했고 1948년에 월북했던 당시의 상황 때문인지 역사적 평가에서 소련의 역사와 비교하는 기술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몇 예를 들어보자면, 을지문덕의 퇴각 작전을 스탈린의 전술과 비교한다거나 안시성의 승리를 스탈린그라드의 승리와 비교했으며, 김유신의 삼국통일을 러시아 모스크바의 역사적 공적과 비교했다. 임진왜란 때 각 지방에서 발발한 의병운동을 인민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조선 민족이 스탈린적 규정에 해당한, 근대 민족의 형성에 대한 맹아적 형태였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현대사와 비교하는 기술은 다소 지나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역사에 대한 애국적 입장을 드러내는 평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한 책 속에 다섯 명장을 포함했으므로 각각 간략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지만 이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느 책에 못지않게 제대로 담았다. 김유신을 제외하면 아직도 이들 명장에 대한 연구서가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금 봐서도 탁월한 견해들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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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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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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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글
조선명장전 서문
을지문덕
서언 〈을지문덕 장군전〉에 대하여
1 우리는 을지문덕 장군과 그의 전략 및 전공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2 당시 고구려의 발전과 수나라와의 관계
3 수양제의 침입과 을지문덕 장군의 방어 계획
4 요동성에서의 강고한 수성전과 패수, 평양에서의 적의 수군에 대한 섬멸적 타격
5 을지문덕 장군의 장거리 유도 전술과 평양성에서 적 육군의 곤궁
6 살수전투의 대승리와 적 주력부대의 전멸
7 수양제의 2차, 3차 침입, 고구려의 연속 승리와 수나라 왕조의 멸망
8 결론
부기
연개소문
서언
1 고구려의 종래 국제적 관계
2 연개소문의 정변과 그의 항당정책
3 고구려와 당나라의 교전 직전의 정세
4 당태종의 침략과 연개소문 장군의 조국 보위에서의 쌍방 작전 태세
5 요동 각지에서의 적 수륙군의 불리와 연개소문 장군의 전략적 승리
6 적군의 안시성 진격과 고연수의 실패
7 안시성의 대공방전과 적군의 결정적 패주
8 침략자 이세민: 당태종 패퇴의 진상
9 안시성주 양만춘의 영명
10 당태종의 재차 침입과 연개소문 장군의 연차 격퇴
11 이치: 당고종의 연차 침략과 연개소문 장군의 계속 격퇴
12 연개소문 장군의 사후 및 전통적 영향
13 결론
부기 연개소문 장군의 인물과 그에 대한 일화, 전설
김유신
서언
1 김유신 장군의 소년 시대와 전설, 일화에 나타난 그의 애국정신 및 영웅성
2 김유신 장군의 백제 평정 사업과 당나라군대의 신라 침략 음모의 파탄
3 김유신 장군의 고구려 평정 사업과 당나라군대의 패퇴 및 삼국통일의 성공
4 김유신 장군의 서거와 그 영향
5 결론
강감찬
서언
1 강감찬 장군의 출신과 그의 인품
2 고려와 거란 양국 간의 고구려 옛 지역에 대한 문제
3 거란의 2차 침략에 대한 강감찬 장군의 주전론 및 그 제승책
4 거란의 3차 침략과 강감찬 장군의 전략 전술 및 위대한 승리
5 강감찬 장군의 전공과 그 영향
곽재우
서언
1 곽재우 장군의 출신과 인품
2 '임진왜란'의 개시와 당시 영남 일대의 정세
3 곽재우 장군의 의병 조직
4 곽재우 장군의 의병 전술
5 곽재우 장군의 기발한 전투 공적들
6 곽재우 장군의 의분심에 관한 몇 가지 실례
7 곽재우 장군의 군사적 논평 및 예견성
8 곽재우 장군의 공성신퇴와 그에 나타난 평민 성격 및 애국 사상
창해 최익한 선생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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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장전 서문
을지문덕
서언 〈을지문덕 장군전〉에 대하여
1 우리는 을지문덕 장군과 그의 전략 및 전공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2 당시 고구려의 발전과 수나라와의 관계
3 수양제의 침입과 을지문덕 장군의 방어 계획
4 요동성에서의 강고한 수성전과 패수, 평양에서의 적의 수군에 대한 섬멸적 타격
5 을지문덕 장군의 장거리 유도 전술과 평양성에서 적 육군의 곤궁
6 살수전투의 대승리와 적 주력부대의 전멸
7 수양제의 2차, 3차 침입, 고구려의 연속 승리와 수나라 왕조의 멸망
8 결론
부기
연개소문
서언
1 고구려의 종래 국제적 관계
2 연개소문의 정변과 그의 항당정책
3 고구려와 당나라의 교전 직전의 정세
4 당태종의 침략과 연개소문 장군의 조국 보위에서의 쌍방 작전 태세
5 요동 각지에서의 적 수륙군의 불리와 연개소문 장군의 전략적 승리
6 적군의 안시성 진격과 고연수의 실패
7 안시성의 대공방전과 적군의 결정적 패주
8 침략자 이세민: 당태종 패퇴의 진상
9 안시성주 양만춘의 영명
10 당태종의 재차 침입과 연개소문 장군의 연차 격퇴
11 이치: 당고종의 연차 침략과 연개소문 장군의 계속 격퇴
12 연개소문 장군의 사후 및 전통적 영향
13 결론
부기 연개소문 장군의 인물과 그에 대한 일화, 전설
김유신
서언
1 김유신 장군의 소년 시대와 전설, 일화에 나타난 그의 애국정신 및 영웅성
2 김유신 장군의 백제 평정 사업과 당나라군대의 신라 침략 음모의 파탄
3 김유신 장군의 고구려 평정 사업과 당나라군대의 패퇴 및 삼국통일의 성공
4 김유신 장군의 서거와 그 영향
5 결론
강감찬
서언
1 강감찬 장군의 출신과 그의 인품
2 고려와 거란 양국 간의 고구려 옛 지역에 대한 문제
3 거란의 2차 침략에 대한 강감찬 장군의 주전론 및 그 제승책
4 거란의 3차 침략과 강감찬 장군의 전략 전술 및 위대한 승리
5 강감찬 장군의 전공과 그 영향
곽재우
서언
1 곽재우 장군의 출신과 인품
2 '임진왜란'의 개시와 당시 영남 일대의 정세
3 곽재우 장군의 의병 조직
4 곽재우 장군의 의병 전술
5 곽재우 장군의 기발한 전투 공적들
6 곽재우 장군의 의분심에 관한 몇 가지 실례
7 곽재우 장군의 군사적 논평 및 예견성
8 곽재우 장군의 공성신퇴와 그에 나타난 평민 성격 및 애국 사상
창해 최익한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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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최익한
崔益翰(1897??)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7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2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1년이 추가되어 모두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출
감한 후에는 국학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특히 1938년 말부터는 유명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동아일보》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워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차 월북한 뒤 계속 머물렀다. 그 뒤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등에 대해 여러 저작들이 나타난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사회 정책사》(1947),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공저, 1954), 《실학파와 정다산》(1955), 《조선명장전》(1956), 《정다산선집》(1957) 등이 있다.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7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2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1년이 추가되어 모두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출
감한 후에는 국학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특히 1938년 말부터는 유명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동아일보》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워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차 월북한 뒤 계속 머물렀다. 그 뒤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등에 대해 여러 저작들이 나타난다. 주요저서로는 《조선사회 정책사》(1947),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공저, 1954), 《실학파와 정다산》(1955), 《조선명장전》(1956), 《정다산선집》(195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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