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귀와 호박잎
이이진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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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진의 상상력과 어법은 독특하다. 특히 꽃과 풀 등 자연물이나 노인을 묘사할 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그는 눈雪 한 송이가 이마에 닿자 문득 지금은 사라진 여러 가지 현상들, “찬 이슬 먹고 살다간 풀꽃의 후생, 순이네 집 처마 끝에 등불을 달아주는 달빛. 어린 것들에게 햇살 밥을 먹이느라 뻘뻘 흘리는 사내의 땀방울”(「실종」) 등을 상상해낸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버찌 한 알”을 두고도 “별똥별을 처음 본 아이의 까만 눈동자, 지구를 지키러 온 외계 생명체”(「미래파」)로 치환하는 동심으로 표출된다.
「밥 짓는 나무들」은 ‘이팝나무’의 개화를 “누가, 누가 쌀밥을 잘 짓나, 내기”가 열렸는데, 계곡 물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우승상품 찔레꽃 향기와 다슬기 물풀 갉아먹는 소리는 봄 햇살과 빗방울이 협찬을 하며, 고라니가 심사를 하는 등 산속 동식물과 해와 비 등 자연이 모두 참여하는 산속의 축제로 화려하게 치장된다. 뿐만 아니라 이이진은 산벚나무의 낙화를 “산벚나무 꽃잎들이 이삿짐을 싸는 날”(「4월」)로 비유하고, 들판의 풀꽃이 꺾여져 누군가의 집 창가에 놓여있는 장면을 ‘보쌈’ 당한 여자 신세로 인격화한다.
어느 날 풀꽃은 깜짝 놀랐어요 느닷없이 비닐봉지에 보쌈을 당해 어디론가 끌려갔거든요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어느 집 창가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햇살은 따스했지만 바람 한 점 일지 않았죠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그날 밤 풀꽃은 아무도 몰래 꽃잎 하나를 창문 너머로 날렸어요 꽃잎은 솔바람 부는 쪽으로 조금씩 날려가겠죠 혼자 가는 길 눈물이 나겠지만 괜찮아, 괜찮아 달빛이 쏟아지면 어, 달님 별님 풀여치 베짱이 돌멩이 구름에게도 안녕, 아는 체하며 끝내 풀숲에 도착하구요 솔 냄새 풀냄새가 훅 끼쳐오네요 아기별도 달려 왔어요
아, 살 것 같애
창가 풀꽃은 아무래도 갈려나 봐요 머리를 땅에 닿게 숙이고 있네요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전문
「밥 짓는 나무들」은 ‘이팝나무’의 개화를 “누가, 누가 쌀밥을 잘 짓나, 내기”가 열렸는데, 계곡 물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우승상품 찔레꽃 향기와 다슬기 물풀 갉아먹는 소리는 봄 햇살과 빗방울이 협찬을 하며, 고라니가 심사를 하는 등 산속 동식물과 해와 비 등 자연이 모두 참여하는 산속의 축제로 화려하게 치장된다. 뿐만 아니라 이이진은 산벚나무의 낙화를 “산벚나무 꽃잎들이 이삿짐을 싸는 날”(「4월」)로 비유하고, 들판의 풀꽃이 꺾여져 누군가의 집 창가에 놓여있는 장면을 ‘보쌈’ 당한 여자 신세로 인격화한다.
어느 날 풀꽃은 깜짝 놀랐어요 느닷없이 비닐봉지에 보쌈을 당해 어디론가 끌려갔거든요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어느 집 창가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햇살은 따스했지만 바람 한 점 일지 않았죠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그날 밤 풀꽃은 아무도 몰래 꽃잎 하나를 창문 너머로 날렸어요 꽃잎은 솔바람 부는 쪽으로 조금씩 날려가겠죠 혼자 가는 길 눈물이 나겠지만 괜찮아, 괜찮아 달빛이 쏟아지면 어, 달님 별님 풀여치 베짱이 돌멩이 구름에게도 안녕, 아는 체하며 끝내 풀숲에 도착하구요 솔 냄새 풀냄새가 훅 끼쳐오네요 아기별도 달려 왔어요
아, 살 것 같애
창가 풀꽃은 아무래도 갈려나 봐요 머리를 땅에 닿게 숙이고 있네요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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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모지란 여사의 이토록 환한 세상
이이진 시인의 시적 시선과 관심은 단순, 집요하다. 아파트나 전원주택 같은 부동산이나 에르메스·샤넬 따위의 명품, 그리고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 많은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고작해야 "한 뼘 텃밭"에 깃들여 사는 작은 생명이나, 삼복더위에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올라가는 할마씨의 행보만 궁금해 한다. 시인이 애지중지하는 "한 뼘 텃밭"에는 토마토나 일용할 푸성귀도 있지만, 그보다는 명아주·개망초·달개비꽃 같은 잡초가 더 우거지고, 파란 줄무늬 거미나 말벌이 보란 듯이 주인 행세를 하여 "벌레 반 채소 반인 풀숲"같은 허접한 공간이다. 요컨대, 이이진은 재테크(財tech)나 해외 명품에는 손방이어서 현대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지란'('모지라다'는 '모자라다'의 경상·전라방언) 사람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가 신바람을 내며 되새기는 옛 기억이나 최근의 목격담을 들을라치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현실과 완전히 절연된 별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쯤 된
기집애와 머스매가
막 배동이 오르기 시작한 보리밭 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닌교
그런데 그 쪼꼬만 머시매가 문득 기집애더러 니 아랫도리
한 번만, 한 번만 보자 졸랐다 아닌교
기집애가 발끈 화를 내며, 니 꺼 먼저 보여도고
머스매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랫도릴 내렸다 아닌교
한 번 만져보고 싶게 깨끗한
겨울밤 오래비들이 초가지붕 속에서 꺼내오던
작고 따뜻하던 참새알 같은
머시매 아랫도릴 한 번 힐끗 바라본
기집애는 발딱 일어나 보리밭 속으로 숨었다 아닌교
-「참새알에 대한 기억」, 부분
위 시는 소아성범죄와 관련한 끔찍하고 파렴치한 사건 개요가 아니다. 한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사내아이의 성性은 동네 어른들의 짓궂은 호기심과 장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나이든 이들은 일쑤 어린 사내아이의 성을 가리키거나 만지며 '토실토실하다'는 둥 '묵직하다'는 둥 아이의 부모가 들으면 절로 기분이 좋을 덕담德談을 예사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아이에게는 결코 그런 농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장난이 사내아이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도 여자아이에게는 통용될 수 없는 유교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의 장난이 아니라 어린 머스매와 기집애 사이에서 벌어진 희한稀罕한 대화와 행동을 경상도 어느 지방의 방언을 사용해 간접화한 것이다. 머스매의 단순한 호기심과 그에 발끈하는 기집애의 반응이 절로 웃음을 유발하고, 머스매의 성에서 "작고 따뜻하던 참새알"을 떠올린 기집애의 상상력이 아이들의 자발스러운 행동을 단숨에 환하고 건강한 동화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다. 한두 세대 전 농촌에 살던 이들에게 '보리밭'은 가슴이 간질간질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객관적 상관물이었으나, 이 시에서는 그런 들척지근한 냄새나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시를 지배하는 정서가 시인의 천진한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이진의 동심은 비단 어린아이나 들풀·산새 등 자연물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재능은 오히려 노인의 삶을 재현하는 데서 단연 빛을 발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에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에
나부처럼 흐연 할마씨 셋이 산길을 올라간다
불전에 치성을 드리러 꼬부랑꼬부랑 올라간다
할마씨들이 걸음을 떼어놀 때마다
소나무며 굴참나무 허리가 꼬부랑꼬부랑 휘어지는 것이다
산길을 올라 꼬부랑꼬부랑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올린다
이맘침 산 것이 다 부처님 덕인데
세상에 나와 좋은 일 하나 한 것 없이, 자석들 고생 안 시키고
가는 것이 소원이니 참 염치가 없다고
할마씨들이 꼬부랑꼬부랑 엎드려 합장할 때마다
부처님 허리도 꼬부랑꼬부랑 휘어지는 것이다
-「휘어진다는 것」, 전문
굳이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정황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지고 가슴에 콕 와 박히는 시다. 할마씨 셋이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산사山寺에 가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편하게 죽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는 게 이 시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꼬부랑꼬부랑'이란 부사의 힘에서 기인한다. 할마씨들은 늙어 허리가 굽은 데다 다리에 힘마저 없어 '꼬부랑꼬부랑' 걷고, 숲의 소나무와 굴참나무도 오랜 세월 풍상을 이기느라 몸이 '꼬부랑꼬부랑' 굽었고, 부처님은 할마씨들의 무욕無慾과 자식 사랑이 어여뻐 '꼬부랑꼬부랑' 절을 받는 것이다. 우리말 '꼬부랑'은 시의 제목처럼 '휘어진 것' 즉 '곡선曲線'을 말하는데, 이 말은 사람과 동물뿐만 아니라 온갖 사물에 두루 쓰인다. 이를테면,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강아지와 꼬부랑 걷는데, 꼬부랑 다람쥐가 꼬부랑 바위에서 꼬부랑 튀어나와 꼬부랑꼬부랑 춤을 추는데 꼬부랑 황새가 꼬부랑 날아와 꼬부랑 가지에 앉아 꼬부랑 목을 꼬고 꼬부랑 노래를 부르고……"로 무한정 이어지는 민요에서 그 범례를 찾을 수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 To Have, To Be』에서 들판의 꽃을 꺾어 자기 방 화병에 담아 감상하는 서양인과 들판의 꽃을 한껏 감상해 마음에 새겨두는 동양인의 차이를 '소유'와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위 시는 들판의 꽃이 강제로 꺾여 누군가의 집 창가에 놓였다가 마침내 시들어 낙화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꽃을 사랑하고 즐기기 위해 들꽃을 꺾어 화병에 넣고 감상하지만, 그 행위가 꽃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해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이진의 이러한 역시자지易地思之 상상력은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처럼 배설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발전한다. 그 결과 그는 「살구꽃이 발간 이유」가 똥을 싸던 살구나무가 그 광경을 인간에게 들키자 무안해 얼굴이 발개진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능청스러움을 자랑한다.
이이진의 시집 『산당귀와 호박잎』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꽃과 들풀, 약초나 푸성귀가 지천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푸성귀를 길러 장에 내다 파는 할머니가 사는 그곳에는 "청산이 비치는 냇물", "양수로 가득 싸인 아늑하고 촉촉한 달의 집"이 있는데, 봄에는 "민들레와 씀바퀴"가, 여름에는 "달맞이꽃이 피어"나고, "오래 머물던 개망초꽃이 아주 가버리면" "눈이 내린다"(「푸성귀 할머니의 행성」). 이처럼 『산당귀와 호박잎』의 세계는 꽃과 들풀이 피고 지는 순서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자연 그대로의 시공간으로 『비 오는 날』이면 "산은 물안개 자욱하고 툇마루 앞 감나무 이파리 바람에 살랑"거리고 울타리 속 멧새들이 "얘들아, 우리 부침개 부쳐 막걸리 한잔 하자"고 재잘거리는 신화나 전설 속의 도원경과 진배없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때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을 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란 고작 "단돈 만 오천 원짜리 생활한복"이고, 그걸 받아놓고 "흰 고무신을 신을까 / 깜장 고무신을 신을까"(「모지란母地卵여사」)를 고민하는 순박한 촌부村婦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촌부를 '모지란 여사'로 호칭하는데, 굳이 그 이름을 한자로 병기倂記하여 '알을 품은 대지의 여신'이란 의미를 분명히 하려는 것은 불필요한 강조법이다.
『산당귀와 호박잎』의 세계는 '모지란 여사'가 태어나 자라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풀집인지 흙집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곳에서 "구름을 한 송이 품고"(「풀집과 흙집 사이」) 살아가는 근대 이전의 농촌 풍경이다. '모지란 여사'가 '알을 품은 대지의 여신'인 것은 막내가 잡아온 다슬기로 "된장을 지질까, 수제비를 끓일까" 고민하다가 "눈앞에서 잡혀가는 새끼들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젖은 눈빛"(「다슬기」)이 눈에 밟혀 천변 돌다리 밑에 풀어주었다는 대목이나,
풀벌레를 물고 가서 새끼들에게 고루 먹이는
어미새는 파닥이던 풀벌레가 눈에 밟히네 자꾸만 밟히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지극히 돋아난 새싹을 삼키는
고라니는 새싹이 목에 걸려, 목이 잠길 테지
소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도
점점 야위어 가는 소나무가 보기 짠한 거라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 부분
같은 시가 역설적 자비심에서 그 정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나는 이제까지 아들이 잡아온 다슬기를 그 어미 다슬기의 마음을 생각해 놓아주었다거나, 들풀을 뜯어먹는 고라니가 그 새싹의 생명력을 생각하며 목에 걸려 했다는, '악어의 눈물' 얘기 같기도 한 착하고 가슴 저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먹고 먹히는 삶을 영위한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자연의 순리여서 영양羚羊을 잡아먹는 사자가 그 영양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다. '악어의 눈물'이란 흔히 '위선'이나 '거짓'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모름지기 제 새끼 귀한 줄 아는 어미라면 남의 새끼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싹 뜯어먹는 고라니가 태풍을 이겨낸 새싹의 강인한 생명력을 생각하며 목 메인다는 생각을 하는 이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현실 세계에서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산당귀와 호박잎』이 이이진 시인(또는 '모지란 여사')의 생명을 보듬어 안는 자비와 작은 일에도 울컥 감동하는 여린 감성을 보여주는 시로 충만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재래시장 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게의 나무 문패에 '이토록'이란 상호가 쓰인 것을 보고 "이토록, 이토록, 이토록, 이토록 아아, 이토록"(「이토록」)하고 매우 과장된 것 같은 감정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의 '이토록'은 전주에 있는 작은 카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가게는 일상적인 커다란 간판 없이 출입구 앞에 타원형 모양의 나무 조각에 '이토록'이란 글자가 또박또박 정자正字로 쓰여 문패 겸 간판 역할을 담당한다.
시인은 『이토록』에서 그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이토록'이란 말만 여섯 번(제목까지 셈하면 일곱 번)이나 반복할 따름이다. '이 정도까지, 이렇게까지'란 뜻의 부사어 하나에 이토록 감탄사를 쏟아내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그 모두가 이이진 시인의 남다른 감수성과 성정 탓이라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그는 새끼 입에 벌레를 넣어주면서도 그 벌레의 저항을 떠올리는 보살 같은 심성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어느 지인의 "자기 집 암탉 살린 이야기"(「연탄불」)나 꼬부랑 할머니가 길을 가다 문득 볼일을 보는 장면을 그린 『외계外界』, 살구꽃이 왜 발간지를 흥미롭게 풀어낸 『살구꽃이 발간 이유』, 그리고 산책을 나왔다 지렁이를 밟고 쓴 다음 시를 읽다 보면 나는 어느새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던 시절 신화와 전설의 환한 세계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숨 트러 나온 지랭이가 그만 내 발에 밟히고 말았습니다
우레 한 잎이 오래도록 따라다녔습니다
-「산책길」, 전문
이이진 시에는 지방 사투리가 간혹 쓰이는데, 그것이 때로는 경상도 지방의 것이었다가 어디선가는 전라북도 방언이기도 하여 종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과제가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와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이진이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아침 이슬과 새벽 공기만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따라서 이런저런 가정사가 있게 마련, 독신을 선언한 딸아이가 "심신이 고달픈 날이면 / 날 뭐 할로 낳아 생고생 시키느냐 / 부아통을 질러"(「망종芒種 무렵」 - 이 시의 제목을 24절기 중 하나가 아니라 '몹쓸 종자'란 의미의 '망종亡種'으로 읽는 것도 재미있다) 대고, 아들인지 딸인지 불분명한 "아이는 퇴근길에 사표를 내고 왔다"며 "한동안 제 방에 틀어박혀 불빛을 잠글 것"(「태풍」)이라는 둥 자식 걱정에 편한 날이 없다. 그는 그런 자식을 보며 "망할 놈의 세상을 詩에 담아도 되나, 되나"고 밤새 생각을 곱씹고 되작이지만, 그런 시는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산당귀와 호박잎』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각박하고 살벌한 현실 모습을 다룬 시가 한 편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이진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세계와 같지 않고,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손바닥만 한 텃밭에 "새 한 마리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고 있을 때 / 며칠 굶은 고양이가 와서 물고 달아나"(「그렇지만도 않은 것이」)고, "명아주와 개망초 사이에 거미줄을 쳐놓고 / 죽은 듯 엎드려" 있는 파란 줄무늬 거미를 잡아먹으려는 말벌의 존재를 함께 그려낸 데서 잘 알 수 있다.
『산당귀와 호박잎』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보다 한 세기나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농촌 풍경을 다룬 시편처럼 읽힌다. 그렇다고 이 시인이 자연에 묻혀 안빈낙도하며 현실의 고통과 좌절을 모른 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더럽고 치사하며 울화통만 치미는 현실 얘기를 시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지키려 할 뿐이다.
그는 자식의 고통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 마음은 황조롱이가 나타나자 "순식간에 새끼들을 날개 속에 감추고 물속으로"(「물오리」) 숨는 물오리 어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는 제가 모르는 자식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기보다 누군가가 질펀하게 쏟아낸 토사물을 "진수성찬"이라 여기고 쪼아 먹고 간 까치와 참새 얘기를 풀어내려 한다. 이 시에서 토사물은 위선적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이 저지른 범죄 혹은 그들의 이중적 혀로 내뱉은 선심공약이거나 불량제품이고, 그걸 탐식하는 까치·참새는 일부 몽매한 대중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까? 그런 해석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유를 더 진척시키지 않기로 한다. 앞서 말했듯, 이이진 시인은 어딘가 다소 모자란 듯해 보이나, 그 때문에 이토록 환한 시를 쓸 수 있는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장영우(동국대학교 교수·문학평론가)
살아 계신다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시면서도
머리맡에 정히 두고 보실
故 이기남, 홍정숙님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
빚진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 시인의 말
이이진 시인은
전북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한약자원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이진 시인의 시적 시선과 관심은 단순, 집요하다. 아파트나 전원주택 같은 부동산이나 에르메스·샤넬 따위의 명품, 그리고 자동차나 스마트폰 등 많은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고작해야 "한 뼘 텃밭"에 깃들여 사는 작은 생명이나, 삼복더위에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올라가는 할마씨의 행보만 궁금해 한다. 시인이 애지중지하는 "한 뼘 텃밭"에는 토마토나 일용할 푸성귀도 있지만, 그보다는 명아주·개망초·달개비꽃 같은 잡초가 더 우거지고, 파란 줄무늬 거미나 말벌이 보란 듯이 주인 행세를 하여 "벌레 반 채소 반인 풀숲"같은 허접한 공간이다. 요컨대, 이이진은 재테크(財tech)나 해외 명품에는 손방이어서 현대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지란'('모지라다'는 '모자라다'의 경상·전라방언) 사람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그가 신바람을 내며 되새기는 옛 기억이나 최근의 목격담을 들을라치면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현실과 완전히 절연된 별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쯤 된
기집애와 머스매가
막 배동이 오르기 시작한 보리밭 가에서 놀고 있었다 아닌교
그런데 그 쪼꼬만 머시매가 문득 기집애더러 니 아랫도리
한 번만, 한 번만 보자 졸랐다 아닌교
기집애가 발끈 화를 내며, 니 꺼 먼저 보여도고
머스매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랫도릴 내렸다 아닌교
한 번 만져보고 싶게 깨끗한
겨울밤 오래비들이 초가지붕 속에서 꺼내오던
작고 따뜻하던 참새알 같은
머시매 아랫도릴 한 번 힐끗 바라본
기집애는 발딱 일어나 보리밭 속으로 숨었다 아닌교
-「참새알에 대한 기억」, 부분
위 시는 소아성범죄와 관련한 끔찍하고 파렴치한 사건 개요가 아니다. 한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사내아이의 성性은 동네 어른들의 짓궂은 호기심과 장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나이든 이들은 일쑤 어린 사내아이의 성을 가리키거나 만지며 '토실토실하다'는 둥 '묵직하다'는 둥 아이의 부모가 들으면 절로 기분이 좋을 덕담德談을 예사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아이에게는 결코 그런 농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장난이 사내아이에게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도 여자아이에게는 통용될 수 없는 유교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의 장난이 아니라 어린 머스매와 기집애 사이에서 벌어진 희한稀罕한 대화와 행동을 경상도 어느 지방의 방언을 사용해 간접화한 것이다. 머스매의 단순한 호기심과 그에 발끈하는 기집애의 반응이 절로 웃음을 유발하고, 머스매의 성에서 "작고 따뜻하던 참새알"을 떠올린 기집애의 상상력이 아이들의 자발스러운 행동을 단숨에 환하고 건강한 동화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다. 한두 세대 전 농촌에 살던 이들에게 '보리밭'은 가슴이 간질간질한 상상력을 유발하는 객관적 상관물이었으나, 이 시에서는 그런 들척지근한 냄새나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시를 지배하는 정서가 시인의 천진한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이진의 동심은 비단 어린아이나 들풀·산새 등 자연물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재능은 오히려 노인의 삶을 재현하는 데서 단연 빛을 발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에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에
나부처럼 흐연 할마씨 셋이 산길을 올라간다
불전에 치성을 드리러 꼬부랑꼬부랑 올라간다
할마씨들이 걸음을 떼어놀 때마다
소나무며 굴참나무 허리가 꼬부랑꼬부랑 휘어지는 것이다
산길을 올라 꼬부랑꼬부랑 대웅전에 들어가 절을 올린다
이맘침 산 것이 다 부처님 덕인데
세상에 나와 좋은 일 하나 한 것 없이, 자석들 고생 안 시키고
가는 것이 소원이니 참 염치가 없다고
할마씨들이 꼬부랑꼬부랑 엎드려 합장할 때마다
부처님 허리도 꼬부랑꼬부랑 휘어지는 것이다
-「휘어진다는 것」, 전문
굳이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정황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지고 가슴에 콕 와 박히는 시다. 할마씨 셋이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산사山寺에 가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편하게 죽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는 게 이 시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꼬부랑꼬부랑'이란 부사의 힘에서 기인한다. 할마씨들은 늙어 허리가 굽은 데다 다리에 힘마저 없어 '꼬부랑꼬부랑' 걷고, 숲의 소나무와 굴참나무도 오랜 세월 풍상을 이기느라 몸이 '꼬부랑꼬부랑' 굽었고, 부처님은 할마씨들의 무욕無慾과 자식 사랑이 어여뻐 '꼬부랑꼬부랑' 절을 받는 것이다. 우리말 '꼬부랑'은 시의 제목처럼 '휘어진 것' 즉 '곡선曲線'을 말하는데, 이 말은 사람과 동물뿐만 아니라 온갖 사물에 두루 쓰인다. 이를테면,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강아지와 꼬부랑 걷는데, 꼬부랑 다람쥐가 꼬부랑 바위에서 꼬부랑 튀어나와 꼬부랑꼬부랑 춤을 추는데 꼬부랑 황새가 꼬부랑 날아와 꼬부랑 가지에 앉아 꼬부랑 목을 꼬고 꼬부랑 노래를 부르고……"로 무한정 이어지는 민요에서 그 범례를 찾을 수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 To Have, To Be』에서 들판의 꽃을 꺾어 자기 방 화병에 담아 감상하는 서양인과 들판의 꽃을 한껏 감상해 마음에 새겨두는 동양인의 차이를 '소유'와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위 시는 들판의 꽃이 강제로 꺾여 누군가의 집 창가에 놓였다가 마침내 시들어 낙화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인간은 꽃을 사랑하고 즐기기 위해 들꽃을 꺾어 화병에 넣고 감상하지만, 그 행위가 꽃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해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이진의 이러한 역시자지易地思之 상상력은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처럼 배설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발전한다. 그 결과 그는 「살구꽃이 발간 이유」가 똥을 싸던 살구나무가 그 광경을 인간에게 들키자 무안해 얼굴이 발개진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능청스러움을 자랑한다.
이이진의 시집 『산당귀와 호박잎』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꽃과 들풀, 약초나 푸성귀가 지천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푸성귀를 길러 장에 내다 파는 할머니가 사는 그곳에는 "청산이 비치는 냇물", "양수로 가득 싸인 아늑하고 촉촉한 달의 집"이 있는데, 봄에는 "민들레와 씀바퀴"가, 여름에는 "달맞이꽃이 피어"나고, "오래 머물던 개망초꽃이 아주 가버리면" "눈이 내린다"(「푸성귀 할머니의 행성」). 이처럼 『산당귀와 호박잎』의 세계는 꽃과 들풀이 피고 지는 순서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자연 그대로의 시공간으로 『비 오는 날』이면 "산은 물안개 자욱하고 툇마루 앞 감나무 이파리 바람에 살랑"거리고 울타리 속 멧새들이 "얘들아, 우리 부침개 부쳐 막걸리 한잔 하자"고 재잘거리는 신화나 전설 속의 도원경과 진배없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고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때론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을 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란 고작 "단돈 만 오천 원짜리 생활한복"이고, 그걸 받아놓고 "흰 고무신을 신을까 / 깜장 고무신을 신을까"(「모지란母地卵여사」)를 고민하는 순박한 촌부村婦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촌부를 '모지란 여사'로 호칭하는데, 굳이 그 이름을 한자로 병기倂記하여 '알을 품은 대지의 여신'이란 의미를 분명히 하려는 것은 불필요한 강조법이다.
『산당귀와 호박잎』의 세계는 '모지란 여사'가 태어나 자라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풀집인지 흙집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곳에서 "구름을 한 송이 품고"(「풀집과 흙집 사이」) 살아가는 근대 이전의 농촌 풍경이다. '모지란 여사'가 '알을 품은 대지의 여신'인 것은 막내가 잡아온 다슬기로 "된장을 지질까, 수제비를 끓일까" 고민하다가 "눈앞에서 잡혀가는 새끼들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어미의 젖은 눈빛"(「다슬기」)이 눈에 밟혀 천변 돌다리 밑에 풀어주었다는 대목이나,
풀벌레를 물고 가서 새끼들에게 고루 먹이는
어미새는 파닥이던 풀벌레가 눈에 밟히네 자꾸만 밟히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지극히 돋아난 새싹을 삼키는
고라니는 새싹이 목에 걸려, 목이 잠길 테지
소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도
점점 야위어 가는 소나무가 보기 짠한 거라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 부분
같은 시가 역설적 자비심에서 그 정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나는 이제까지 아들이 잡아온 다슬기를 그 어미 다슬기의 마음을 생각해 놓아주었다거나, 들풀을 뜯어먹는 고라니가 그 새싹의 생명력을 생각하며 목에 걸려 했다는, '악어의 눈물' 얘기 같기도 한 착하고 가슴 저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먹고 먹히는 삶을 영위한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자연의 순리여서 영양羚羊을 잡아먹는 사자가 그 영양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다. '악어의 눈물'이란 흔히 '위선'이나 '거짓'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다. 모름지기 제 새끼 귀한 줄 아는 어미라면 남의 새끼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싹 뜯어먹는 고라니가 태풍을 이겨낸 새싹의 강인한 생명력을 생각하며 목 메인다는 생각을 하는 이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현실 세계에서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산당귀와 호박잎』이 이이진 시인(또는 '모지란 여사')의 생명을 보듬어 안는 자비와 작은 일에도 울컥 감동하는 여린 감성을 보여주는 시로 충만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재래시장 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게의 나무 문패에 '이토록'이란 상호가 쓰인 것을 보고 "이토록, 이토록, 이토록, 이토록 아아, 이토록"(「이토록」)하고 매우 과장된 것 같은 감정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의 '이토록'은 전주에 있는 작은 카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가게는 일상적인 커다란 간판 없이 출입구 앞에 타원형 모양의 나무 조각에 '이토록'이란 글자가 또박또박 정자正字로 쓰여 문패 겸 간판 역할을 담당한다.
시인은 『이토록』에서 그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이토록'이란 말만 여섯 번(제목까지 셈하면 일곱 번)이나 반복할 따름이다. '이 정도까지, 이렇게까지'란 뜻의 부사어 하나에 이토록 감탄사를 쏟아내는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그 모두가 이이진 시인의 남다른 감수성과 성정 탓이라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그는 새끼 입에 벌레를 넣어주면서도 그 벌레의 저항을 떠올리는 보살 같은 심성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어느 지인의 "자기 집 암탉 살린 이야기"(「연탄불」)나 꼬부랑 할머니가 길을 가다 문득 볼일을 보는 장면을 그린 『외계外界』, 살구꽃이 왜 발간지를 흥미롭게 풀어낸 『살구꽃이 발간 이유』, 그리고 산책을 나왔다 지렁이를 밟고 쓴 다음 시를 읽다 보면 나는 어느새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던 시절 신화와 전설의 환한 세계로 속절없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숨 트러 나온 지랭이가 그만 내 발에 밟히고 말았습니다
우레 한 잎이 오래도록 따라다녔습니다
-「산책길」, 전문
이이진 시에는 지방 사투리가 간혹 쓰이는데, 그것이 때로는 경상도 지방의 것이었다가 어디선가는 전라북도 방언이기도 하여 종잡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과제가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와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이진이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아침 이슬과 새벽 공기만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따라서 이런저런 가정사가 있게 마련, 독신을 선언한 딸아이가 "심신이 고달픈 날이면 / 날 뭐 할로 낳아 생고생 시키느냐 / 부아통을 질러"(「망종芒種 무렵」 - 이 시의 제목을 24절기 중 하나가 아니라 '몹쓸 종자'란 의미의 '망종亡種'으로 읽는 것도 재미있다) 대고, 아들인지 딸인지 불분명한 "아이는 퇴근길에 사표를 내고 왔다"며 "한동안 제 방에 틀어박혀 불빛을 잠글 것"(「태풍」)이라는 둥 자식 걱정에 편한 날이 없다. 그는 그런 자식을 보며 "망할 놈의 세상을 詩에 담아도 되나, 되나"고 밤새 생각을 곱씹고 되작이지만, 그런 시는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산당귀와 호박잎』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각박하고 살벌한 현실 모습을 다룬 시가 한 편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이진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세계와 같지 않고,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손바닥만 한 텃밭에 "새 한 마리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고 있을 때 / 며칠 굶은 고양이가 와서 물고 달아나"(「그렇지만도 않은 것이」)고, "명아주와 개망초 사이에 거미줄을 쳐놓고 / 죽은 듯 엎드려" 있는 파란 줄무늬 거미를 잡아먹으려는 말벌의 존재를 함께 그려낸 데서 잘 알 수 있다.
『산당귀와 호박잎』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보다 한 세기나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농촌 풍경을 다룬 시편처럼 읽힌다. 그렇다고 이 시인이 자연에 묻혀 안빈낙도하며 현실의 고통과 좌절을 모른 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더럽고 치사하며 울화통만 치미는 현실 얘기를 시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지키려 할 뿐이다.
그는 자식의 고통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그 마음은 황조롱이가 나타나자 "순식간에 새끼들을 날개 속에 감추고 물속으로"(「물오리」) 숨는 물오리 어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는 제가 모르는 자식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기보다 누군가가 질펀하게 쏟아낸 토사물을 "진수성찬"이라 여기고 쪼아 먹고 간 까치와 참새 얘기를 풀어내려 한다. 이 시에서 토사물은 위선적 정치인이나 관료, 기업인이 저지른 범죄 혹은 그들의 이중적 혀로 내뱉은 선심공약이거나 불량제품이고, 그걸 탐식하는 까치·참새는 일부 몽매한 대중이라 해석할 수도 있을까? 그런 해석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유를 더 진척시키지 않기로 한다. 앞서 말했듯, 이이진 시인은 어딘가 다소 모자란 듯해 보이나, 그 때문에 이토록 환한 시를 쓸 수 있는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장영우(동국대학교 교수·문학평론가)
살아 계신다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시면서도
머리맡에 정히 두고 보실
故 이기남, 홍정숙님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
빚진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 시인의 말
이이진 시인은
전북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한약자원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목차
1부
전동차를 타는 아이와 집 없는 고양이와 나비 몇 마리 - 10
외계外界 - 12
20200101,구름 - 13
실종 - 14
가시 - 16
서점 가는 길은 이쯤은 돼야 한다고 빡빡 우기고 싶어, 나는 - 18
물방울 랜드 - 20
눈송이 몇 잎이 - 21
이팝나무 꽃핀 사이로 날아간 새 - 22
미래파 - 24
그렇지 만도 않은 것이 - 25
물캐진 복숭아 - 26
카메라 - 28
이토록 - 29
풀집과 흙집 사이 - 30
밥 짓는 나무들 - 32
2부
4월 - 34
공양 - 35
휘어진다는 것 - 36
풀내음 - 37
푸성귀 할머니의 행성 - 38
선물 - 39
망종芒種 무렵 - 40
물방울 랜드 2 - 41
동행 - 42
삼복 - 43
감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 44
달그림자 - 46
안개 - 48
안개 2 - 49
태풍 - 50
구름의 서쪽 - 51
노랑수박 - 52
3부
밤이면 호롱불을 밝힌다 했습니다 - 54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 55
연탄불 - 56
살구꽃이 발간 이유 - 58
아우아우 셔 - 59
산에 아이를 묻은 여자가 있었다 - 60
비 오는 날 - 62
사치 - 63
구름식사 - 64
구름의 서쪽 2 - 66
모지란母地卵 여사 - 68
출렁이는 나침반 - 69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 - 70
시선 너머 - 71
삼월, 남부시장 - 72
참새알에 대한 기억 - 74
원족 - 76
4부
억새가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이유 - 78
밥 짓는 나무들 2 - 79
다슬기 - 80
물방울 랜드 3 - 81
물오리 - 82
날개 - 83
노가다 최 씨 - 84
오징어국 - 86
도원경 - 87
망치소리 - 88
입춘 - 89
상강 무렵 - 90
달맞이꽃 - 92
산책길 - 93
혼 쥐 생각 - 94
해설 모지란 여사의 이토록 환한 세상 장영우 - 96
시인의 말 - 114
전동차를 타는 아이와 집 없는 고양이와 나비 몇 마리 - 10
외계外界 - 12
20200101,구름 - 13
실종 - 14
가시 - 16
서점 가는 길은 이쯤은 돼야 한다고 빡빡 우기고 싶어, 나는 - 18
물방울 랜드 - 20
눈송이 몇 잎이 - 21
이팝나무 꽃핀 사이로 날아간 새 - 22
미래파 - 24
그렇지 만도 않은 것이 - 25
물캐진 복숭아 - 26
카메라 - 28
이토록 - 29
풀집과 흙집 사이 - 30
밥 짓는 나무들 - 32
2부
4월 - 34
공양 - 35
휘어진다는 것 - 36
풀내음 - 37
푸성귀 할머니의 행성 - 38
선물 - 39
망종芒種 무렵 - 40
물방울 랜드 2 - 41
동행 - 42
삼복 - 43
감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 44
달그림자 - 46
안개 - 48
안개 2 - 49
태풍 - 50
구름의 서쪽 - 51
노랑수박 - 52
3부
밤이면 호롱불을 밝힌다 했습니다 - 54
꽃잎을 또 하나 날리고 있네요 - 55
연탄불 - 56
살구꽃이 발간 이유 - 58
아우아우 셔 - 59
산에 아이를 묻은 여자가 있었다 - 60
비 오는 날 - 62
사치 - 63
구름식사 - 64
구름의 서쪽 2 - 66
모지란母地卵 여사 - 68
출렁이는 나침반 - 69
어쩌다 지구별에 와서 - 70
시선 너머 - 71
삼월, 남부시장 - 72
참새알에 대한 기억 - 74
원족 - 76
4부
억새가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이유 - 78
밥 짓는 나무들 2 - 79
다슬기 - 80
물방울 랜드 3 - 81
물오리 - 82
날개 - 83
노가다 최 씨 - 84
오징어국 - 86
도원경 - 87
망치소리 - 88
입춘 - 89
상강 무렵 - 90
달맞이꽃 - 92
산책길 - 93
혼 쥐 생각 - 94
해설 모지란 여사의 이토록 환한 세상 장영우 - 96
시인의 말 -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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