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윤명 해서천자문(천자문묵적총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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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자문은 28절지, 합계 56개.세로 28.6cm 가로 16.2cm, 앞 뒷면 용지 다서 폭은 세로28.5cm, 가로 16.7cm. 뒷면 용지 4폭은 세로 28.6cm, 가로 16.8cm.
전기로는 [가경어람보물]과 [선통어람보물]이 있고,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주는 축윤명을 이렇게 평가 하였다. ‘경조의 책은 청렴한 신하와 비슷하지만, 고풍스럽고 우아한 필치로 속된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고, 소박해 보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연구하여 그 깊은 뜻을 얻는다.일파일불,저사를 가지고 있으니 모방하는 자는 따라오지 못할것이요. 경조의 책 백여권에는 중복되는 것이 없고, 그 중에서도 정교하고 느린 필치가 적지않아, 이 한 권만 보아도 경탄하고 노공이 다시 살아난 듯하다. 그리고 해서의 북적은 따라올 자가 없다.’
그리고, 지면을 아끼기 위해 책자를 다시 맞추어 출판하였는데, 3행을 5행으로 변경하여 출판 하였다.
전기로는 [가경어람보물]과 [선통어람보물]이 있고,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주는 축윤명을 이렇게 평가 하였다. ‘경조의 책은 청렴한 신하와 비슷하지만, 고풍스럽고 우아한 필치로 속된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고, 소박해 보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연구하여 그 깊은 뜻을 얻는다.일파일불,저사를 가지고 있으니 모방하는 자는 따라오지 못할것이요. 경조의 책 백여권에는 중복되는 것이 없고, 그 중에서도 정교하고 느린 필치가 적지않아, 이 한 권만 보아도 경탄하고 노공이 다시 살아난 듯하다. 그리고 해서의 북적은 따라올 자가 없다.’
그리고, 지면을 아끼기 위해 책자를 다시 맞추어 출판하였는데, 3행을 5행으로 변경하여 출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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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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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머리말 - 1
도판 - 2 - 42
도판 - 2 - 42
저자
저자
축윤명
축윤명 [ 祝允明 ]
요약 중국 명대의 문인·서예가로 서도에서 명대 제1의 칭호를 들었다. 종요류(鐘繇流)의 격조 높은 해서, 단정한 초서와 광초(狂草)를 잘 썼다. 작품으로 소해(小楷)의 《출사표》, 《적벽부》등이 있다.
출생-사망: 1460 ~ 1526
자 희철(希哲)
호 지지생(枝指生) ·지산(枝山)
국적 중국 명나라
출생지 중국 장쑤성[江蘇省] 창저우[長州]
주요작품 소해(小楷)의 《출사표(出師表)》《적벽부(赤壁賦)》
자 희철(希哲). 호 지지생(枝指生) ·지산(枝山). 장쑤성[江蘇省] 창저우[長州] 출생. 1492년 거인(擧人)에 올랐으나 진사(進士)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1514년 처음으로 광둥성[廣東省] 싱닝현[興寧縣] 지사가 되었으며, 가정연간(嘉靖年間) 초에 수도의 응천부통판(應天府通判)으로 전임하였다. 일찍부터 글씨로 이름을 떨쳤으며, 같은 고향의 서정경(徐禎卿) ·당인(唐寅) ·문징명(文徵明) 등과 함께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라는 칭호를 들었다. 특히 서도에서는 당시 명대 제1의 칭호를 들었으며, 위(魏) ·진(晉)의 법첩(法帖)을 배워 해서(楷書)는 종요류(鍾繇流)의 격조높은 서풍을 자랑하였고, 단정한 초서와 광초(狂草)를 잘 썼다. 작품으로 소해(小楷)의 《출사표(出師表)》 《적벽부(赤壁賦)》 등이 있다.
요약 중국 명대의 문인·서예가로 서도에서 명대 제1의 칭호를 들었다. 종요류(鐘繇流)의 격조 높은 해서, 단정한 초서와 광초(狂草)를 잘 썼다. 작품으로 소해(小楷)의 《출사표》, 《적벽부》등이 있다.
출생-사망: 1460 ~ 1526
자 희철(希哲)
호 지지생(枝指生) ·지산(枝山)
국적 중국 명나라
출생지 중국 장쑤성[江蘇省] 창저우[長州]
주요작품 소해(小楷)의 《출사표(出師表)》《적벽부(赤壁賦)》
자 희철(希哲). 호 지지생(枝指生) ·지산(枝山). 장쑤성[江蘇省] 창저우[長州] 출생. 1492년 거인(擧人)에 올랐으나 진사(進士)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1514년 처음으로 광둥성[廣東省] 싱닝현[興寧縣] 지사가 되었으며, 가정연간(嘉靖年間) 초에 수도의 응천부통판(應天府通判)으로 전임하였다. 일찍부터 글씨로 이름을 떨쳤으며, 같은 고향의 서정경(徐禎卿) ·당인(唐寅) ·문징명(文徵明) 등과 함께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라는 칭호를 들었다. 특히 서도에서는 당시 명대 제1의 칭호를 들었으며, 위(魏) ·진(晉)의 법첩(法帖)을 배워 해서(楷書)는 종요류(鍾繇流)의 격조높은 서풍을 자랑하였고, 단정한 초서와 광초(狂草)를 잘 썼다. 작품으로 소해(小楷)의 《출사표(出師表)》 《적벽부(赤壁賦)》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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