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봄(시조사랑시인선 67)
임선규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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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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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봄》 - 시조로 피워낸 삶의 온기와 품격
문학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살아가는 마음'을 담는 그릇일 것이다. 그리고 임선규 시인의 첫 시조집 《천 개의 봄》은 그 마음을 오래 달여 만든 따뜻한 찻잔 같다.
이 시집에는 총 120여 편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으며, 자연과 고향, 가족, 세월, 상실,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동시대적 경험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아낸다. 다섯 부로 구성된 시들은 각각의 장면 속에 서정성과 통찰, 그리고 삶의 진실을 고요히 머금고 있다.
임선규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부드러움'이다. 원용우 시조시인은 해설에서 "시조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거칠면 맛이 없듯 시도 그렇다"고 했고, 이 시집은 그 말을 그대로 증명한다. 절제된 표현, 정갈한 어휘, 사려 깊은 시선이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부드럽게 녹여낸다.
'봄 언저리', '서호에 뜬 달' 같은 자연 시에서는 계절의 숨결을 정교하게 붙잡고, '사진첩을 보며', '부음을 듣고' 같은 시에서는 상실의 감정을 품위 있게 어루만진다. 또한 '보청기', '만보기', '코로나 자가격리' 등의 작품에서는 현대인의 일상과 노년의 생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시는 시끄럽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인은 과장 없이 삶을 바라보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시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그 덕분에 이 시집은, 시조를 멀게 느꼈던 독자에게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문학의 문턱이 된다.
《천 개의 봄》은 첫 시집이지만, 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단단한 시조집이다. 그 안에는 지난 계절을 거쳐온 이의 목소리, 또 앞으로 맞이할 '봄'에 대한 기대가 잔잔히 배어 있다.
시조가 낯설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 일상에서 시의 순간을 찾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
원용우(시조시인, 문학박사)
임선규 시인이 첫 시조집을 내신다고 한다. 그의 실력으로 보면 이미 작품집을 발간했어야 하는데 원래 겸손한 분이라 이제야 세상에 드러낸다고 한다. 나한테 보낸 작품이 100편가량 되는데, 현재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소재들이다. 시조 생활이라 해도 좋고 생활 시조라 불러도 좋다. 내용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면은 안 보이고 긍정적인 면만 그렸다. 귀에 거슬리는 언어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나 시조는 서정성이 강한데 이번의 작품집은 그 서정성에 미의식까지 강하다고 느껴진다. 시나 시조는 강하거나 거친 느낌이 들기보다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너무 거칠거나 뻑뻑하면 맛없듯이 부드러워야 잘 넘어간다. 그리고 시조는 상상력, 비유법, 참신성이 있어야 문학성을 인정받는데, 이번의 시조집이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I. 인생 여정
철없던 젊은 날에 연리지 연을 맺어
나날이 쌓이는 정 복인 양 메고 왔네
왔던 길 되짚어 보니 매 순간이 꿈이다.
미움도 서러움도 정으로 삭여내고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
서녘에 해가 기우니 가쁜 숨을 고른다.
-「우리 부부」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 부부」이다. 이 세상 만물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음과 양은 합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그런데 음양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어야지, 음과 음, 양과 양이 만나면 상충이 되어 짝을 이루지 못한다.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뻗으면서 합쳐진 것인데, 이 두 나무도 하나는 음, 또 한 나무는 양일 것이다. 두 나무도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하나의 나뭇가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연리지처럼 하나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정이 쌓이고 그것을 복인 양 메고 왔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꿈처럼 흘러가서 아득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었고, 필요없는 가지는 쳐내면서 살아왔는데 어느덧 노년기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막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을 마라톤 선수에 비유한 것이다. 달리기를 안 하고 그냥 걸어서 가는 나그네 비유되기도 한다.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은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고 인생 여정을 나그네가 먼 길 가는 것으로 본 것은 적절한 비유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비유법을 잘 썼으니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황망히 떠난 사람 소식 듣고 가는 길에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
변한 것 하나도 없네, 한 우주가 떠났는데
불꽃처럼 활활 타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
빈 의자 남겨두고 어디 먼 길 가시는지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
- 「부음을 듣고」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부음을 듣고」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고, 자아는 그 장례식에 가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생애를 살았으면 이 세상에서는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생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우주 만물은 모두 다 자연순환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있다. 그 작고한 분을 자아는 "황망히 떠난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 분위기는 비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아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다.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라고 노래하였다. 그 상황을 "변한 것 하나도 없네"라는 감정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떠나간 것을 "한 우주가 떠났는데"라고 하였다. 한 사람을 한 우주라 본 것은 성리학적 견해이다.
어떻게 한 개체를 우주라 볼 수 있는가? "사람의 형체는 천지(天地)와 상응하고 있다. 원형의 머리는 위에 있어서 하늘을, 방형의 발은 아래에 있어서 땅을 상징한다. 북극은 하늘 중앙의 북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백회혈(百會穴)은 정수리 뒤편에 있고, 일월의 왕래는 하늘의 남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두 눈은 모두 앞에 있으며, 바닷물은 맛이 짜고 모든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남쪽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성기 또한 앞쪽의 아래편에 있는데, 바른 기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생을 한 우주로 보는 것은 맞는 말이요 정당한 논리이다. 상기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녔다. "불꽃처럼 활활 타다"는 인생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인생으로 말하면 40대나 50대에 해당한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은 사람의 생명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상징해 준다. 그래서 인생 여정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다. 갓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은 만물의 생장 소멸설을 밑받침해 준다. 작품에서 "빈 의자"라고 했는데 이 역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은유해 준다.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는 인생의 죽음을 은유한 것이다. 이처럼 은유나 상징법을 활용해야 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II. 그리움의 정서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
두레박 드리우고
옛 기억 퍼 올려도
낯익은
이 거리에서
섬이 되어 서 있네.
- 「무교동에서」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무교동에서」이다. 형식은 단시조이다. 원래 단시조의 효시 작품은 역동 우탁의 「탄로가」이다. 그 당시 시조의 출발은 정형시라 생각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성립된 시이고, 그 나름의 틀과 격식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형식으로 이미 그 유형이 정해져 있었다. 일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일정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전통시라 하고 고유시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短時調'라 쓰는 이도 있고, '單時調'라 쓰는 이도 있다.
위의 시조는 3장 6구 12소절로 된 기준형에 가깝다. 기승전결 구조를 띄었는데 초장은 시상을 일으키는 기구起句에 해당한다. 무교동은 자아가 자주 방문하던 낯익은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 안 가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해서 낯선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장은 승구承句에 해당하는데 시상의 비약이 심하다. 두레박을 드리우고 옛 기억을 퍼 올린다는 것이다. 물을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퍼 올린다고 한 데에 묘미가 있다. 이처럼 시에서는 말재주를 부려야 한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말 부리기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종장은 전결轉結에 해당하는데, 멋진 표현으로 종장의 묘미를 장식하였다. 초장에서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했던 것이 종장에 와서는 "섬이 되어 서 있다"라고 하였다. 외롭다고 하지 않고 섬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표현이 이 작품의 가치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고향집 뒤란에는 옹기들 모여산다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
정화수 사발 속에는 새벽달이 뜨는 곳
동치미 설핏 어는 동짓달 추운 밤에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
눈 덮힌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그린다.
- 「장독대」 전문
장독대는 고향집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 위치가 집 뒤로 돌아가야만 눈에 띄는 항아리들이다. 그 항아리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들이 가득 채워졌다. 이 장들을 매일 함께 먹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요 같은 식구들이다. 그 모습을 "옹기들 모여 산다"라고 하였다. 정다운 식구들이 모여 살 듯이 그 항아리들도 함께 모여 산다는 뜻이다. 그 장들은 오랜 기간 숙성시켜야 하는데 그 모습을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라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장독대는 우리의 어머니가 깨끗한 정화수 떠다 놓고 자식들의 성공을 비는 기도처이다. 그런데 그 정화수 있는 곳을 새벽 달이 떠 있는 곳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새벽 무렵이란 것을 암시해 준다. 지금 세계는 현대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반대로 옛것을 숭상하면서 고전미를 맛보게 해주는 곳이 장독대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제2수는 계절적 배경이 '동짓달'이요 시간적 배경은 '추운 밤'이다. 얼마나 추울까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그런데도 아늑한 분위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중장 때문이다.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이라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 추운 밤에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 마시면서 아기를 재우듯이 문풍지를 재워 놓고 화롯가 앉아서 즐겁게 얘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더구나 밖에 눈 덮인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연상하게 된다. 초장에서는 맛을 떠올리고, 중장에서는 동화 같은 장면을, 종장에서는 수채화 같은 미술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이처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면서 그립고 아쉬운 정서를 자아낸다.
III. 식물들의 목소리
우람한 몸피 보니
그 세월 가늠되네
호시절 있었으나
비바람도 맞았으리
지팡이
의지하면서
기우는 몸 잡는다.
- 「보호수」 전문
위 작품의 제목은 「보호수」이다. 보호수란 학습의 참고 및 번식을 위해 보호하는 나무이다. 수령이 몇백 년 된 나무나 멸종 위기에 처한 나무들을 보호수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상기 작품도 나이가 많은 나무에 해당한다. 우람한 몸피를 보면 그 세월이 가늠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체격이 대단하면 우람한 몸피라는 표현을 했을까? 세월이 가늠된다는 말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표현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 꽃피우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비바람도 많이 맞으면서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눈서리도 맞고 더위나 추위도 겪었으리라. 사람처럼 나쁜 병에도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으리라. 종장에서는 완전히 의인법을 쓰고 있다. 늙은이는 혼자 걸어 다닐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기우뚱거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언가 의지할 나무나 쇠막대기를 설치해야 넘어가지 않고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처럼 나이 먹은 나무들이 평생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몇백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그 나무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지만, 그들끼리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기쁠 때는 소리 내어 웃고 슬플 때도 소리 내어 우는 정도는 표현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식물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울안에 무리 지어
피어날 운명인가
빠끔히 목을 늘려
바깥세상 엿보더니
용암이
분출하는 듯
눌린 울분 발산한다.
- 「넝쿨장미 ㆍ 2」 전문
앞의 작품은 「보호수」였는데 뒤의 작품은 「넝쿨장미」이다. 보호수는 덩치가 큰 나무인데 넝쿨장미는 덩치가 작은 식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타고난 운명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김씨 집에 태어났느냐 이씨 집에 태어났느냐는 문제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다. 주인공이 임의대로 바꿀 수 없다. 이처럼 변개變改가 불가능한 것을 우리는 천명天命이라 한다. 위에서 인용한 작품은 「넝쿨장미」이다.
"울안에 무리 지어/ 태어날 운명"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넝쿨장미가 목을 늘려가면서 바깥세상을 엿본다고 하였다. 울안에서 울타리 밖을 바라본 것이다. 울밖에는 호박꽃 채송화꽃 해바라기꽃 등이 만발한 꽃밭이다. 이런 식물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도 시도했을 것이다. 장미도 은근히 활짝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빨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가 이 작품의 종장이 되었다. "용암이/ 분출하는 듯/ 눌린 울분 발산한다"라는 것이다. 장미꽃이 다투어 만발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런 것을 수사법에서 암유(暗喩)라고 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장미는 빨간색 쏟아지는 것을 "눌린 울분 발산한다"고 보았고, 용암에서 화산이 분출할 때 빨간 물이 쏟아지는 것을 "용암이 분출한다"고 보았다. 장미의 빨간 색과 용암의 빨간 물 솟는 것을 같은 현상으로 본 것이다. 바로 이런 장면이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놀라운 비유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장면을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Ⅳ. 시조의 큰 스승
묘비에 새긴 이름 손 모아 마주하니
흰나비 나풀대며 주위에 맴을 돌고
청송은 임 호위하며 낯선 객을 반긴다
솔바람 손을 잡고 다가간 창의사엔
긴 세월 어제인 듯 발자취 뚜렷하고
숨죽인 제례 봉행에 푸나무도 읍하네
절의의 표상으로 당대의 문인으로
후대의 스승 되고 강원의 얼이 되니
올곧은 선비의 향기 비로봉을 넘는다.
- 「운곡을 찾아서」 전문
운곡 원천석은 고려 충숙왕 17년(1330)에 출생하고 90여 세의 생을 누렸는데, 별세한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고려말 신흥사대부들과 비슷한 출생 배경과 사상적 기반을 지녔는데도 그들과는 달리 벼슬길을 단념하고 치악산에 은거하였다.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수재라고 알려졌는데, 자신의 재지才智와 학문學問을 감추고 몸소 산전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그의 생애를 보면 60세까지는 고려조에 몸담아 살았고, 나머지 30년을 조선 시대에 살면서 은둔, 독서, 저술 생활로 일관하였다. 그러면서 이색, 무학대사, 나옹화상 등과 교유하면서 고려에 대한 절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상기 작품의 제목은 「운곡을 찾아서」인데 운곡의 묘비와 사당을 찾아가 그분의 정신을 시조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자아가 먼저 방문한 곳은 운곡 선생의 유적지이다. 그 유적지에는 선생의 묘소, 창의사 사당, 운곡 원씨들의 뿌리를 모셔놓은 설단지,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인 운곡학회 등이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선생의 묘소이다. 묘소의 위치는 고갯마루에 묘비와 함께 존재한다. 그 묘비에는 선생의 업적이 자세히 한문으로 기록되었는데 시인은 묘비에 새긴 이름에 예를 갖추어 합장하였다는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요약하면 고려조에 대한 절의정신, 저서인 운곡시사, 그 당시 새로 발생한 단가 형식의 시조 등인데 이러한 업적들을 찬양하는 찬양 시조가 될 수밖에 없다. 제1수를 보면 시인 자신 외에 흰 나비, 청송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운곡을 위해 등장한 소재들이다.
그다음은 위치를 창의사로 옮겼는데, 솔바람의 손을 잡고 옮겨 갔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운곡 선생에 대한 업적들이 유품으로 남아있고, 주변의 푸나무들도 제관들과 함께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느낌은 시적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주변의 나무나 풀까지도 읍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육안肉眼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
제3수 또한 운곡에 대한 찬사이다. 운곡은 절의의 표상이요, 당대의 문인으로 존중받는 인물이며 후대의 스승이 되고 강원의 얼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찬양하였다. 그의 올곧은 정신과 인품에서 나는 향기가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넘을 정도라 하였다. 이런 것이야말로 심안心眼으로 본 것을 그린, 문학세계에서나 가능한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운곡에 대한 일종의 찬양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우리 글 벗하시며 시조의 맥 이으신 임
지나온 발자취는 후학들 사표(師表) 되고
화천 땅 기념관 향기 깃발처럼 드높다
긴 세월 시조문학 면면히 이어오며
시단을 일궈 오신 선비의 공과 업적
큰 나무 버팀목 되어 어린 새싹 힘 나네
민족시(民族詩) 보급 운동 업(業)으로 여기시며
오로지 한뜻으로 대껴온 지난 여정
임께서 뿌린 씨앗에 그 열매가 영근다.
-「월하의 향기」 전문
위 작품의 제목은 「월하의 향기」이다. 월하 이태극 선생은 1913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촌리에서 출생하셨다. 1933년 춘천 고등보통학교 5학년을 졸업했고, 1936년 4월부터 1938년 5월까지 통신교육으로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과를 수학하였다. 그 후 1947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과를 2학년으로 편입, 1950년 5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53년 1월 《시조연구》에 창작시조 「갈매기」를 발표한 것이 시조로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 후 1960년 6월 1일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을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음으로써 전문 시조 잡지의 출간을 보게 되었고, 1996년 회고록을 발간하기까지 그 잡지 발간에 전념하였다. 시조문학이 발간됨으로써 시조 보급 운동이 확산하였으며, 무려 45년간 시조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아드님 이숭원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보자.
"조수 초목을 보며 사는 것이 아버님의 꿈이었고, 달빛이 비치는 강을 바라보며 솔직담백한 심정으로 시조 한 수 지어 읊조리는 것이 아버님의 이상이었다. 아버님은 계간 《시조문학》을 80대 중반까지 주관해 내셨는데, 건강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 것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하셨다. 아버님이 가장 사랑하신 것은 '시조'였다. 전에 어느 글에도 썼다시피 아버님은 이승을 떠나셨지만 삼천대천 세계 어디에선가 지금도 시조를 짓고 읊고 가르치고 계실 것이라 나는 믿는다."
상기 인용 작품의 제1수는 『월하 이태극 전집』에서 인용했듯이, 우리의 글 벗하시며 맥을 잇는 큰 스승이라 보았다. 선생의 업적이나 공로는 후학들의 사표가 되었고, 기념관에서 나는 향기는 깃발처럼 펄럭인다고 하였다. 제2수에서는 무려 50년 동안 시조문학의 발간을 맡아왔다는 것이며, 시조단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공로는 타(他) 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큰 나무의 버팀목 되시어 어린 새싹들에 힘을 실어주는 몫을 다하신다. 제3수 또한 논조가 달라지지 않았다. 민족시 보급 운동을 업으로 삼으셨고, 오로지 시조의 길만 닦아온 그 여정에, 종장에서는 결론 맺어야 한다. 임께서 뿌린 씨앗에 그 열매가 영글어간다는 것이다. 영근 열매는 따서 먹는 것이 그다음 순서이다. 풍성한 잔치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외도 인물을 주제나 제목으로 한 작품은 교회의 찬송가처럼 찬양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제 작품논의를 끝내고 마무리할 시간이다. 그 결과는 서론에서 언급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이한 것은 한 사람을 하나의 우주라 본 점이다. 또한 이 단락에서는 인생을 마지막을 달리는 기차로 보고, 그냥 걸어가는 나그네, 무대 위의 배우에 비유한 점이 특별하다. 그리움의 정서에서는 옛 기억을 퍼올린다고 한 점, 외롭다 하지 않고 섬이라고 한 것이 표현의 우수성이다. 장독대에서는 눈 덮인 장독대를 하나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본 것이 눈길을 끈다. 그다음 식물들도 벙어리처럼 살 수는 없고 그 나름의 소통을 하면서 생을 마칠 것이라 보았고, 장미꽃이 핀 모습을 용암이 분출한 것으로 본 것은 기상천외의 발상이다. 이처럼 장점들을 찾아서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문학은 상상력, 비유법, 참신성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작품을 많이 생산하시기 바란다. 앞으로 건강과 문운이 함께하시길 기대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살아가는 마음'을 담는 그릇일 것이다. 그리고 임선규 시인의 첫 시조집 《천 개의 봄》은 그 마음을 오래 달여 만든 따뜻한 찻잔 같다.
이 시집에는 총 120여 편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으며, 자연과 고향, 가족, 세월, 상실,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동시대적 경험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아낸다. 다섯 부로 구성된 시들은 각각의 장면 속에 서정성과 통찰, 그리고 삶의 진실을 고요히 머금고 있다.
임선규 시조의 가장 큰 매력은 '부드러움'이다. 원용우 시조시인은 해설에서 "시조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거칠면 맛이 없듯 시도 그렇다"고 했고, 이 시집은 그 말을 그대로 증명한다. 절제된 표현, 정갈한 어휘, 사려 깊은 시선이 전통적인 시조의 형식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부드럽게 녹여낸다.
'봄 언저리', '서호에 뜬 달' 같은 자연 시에서는 계절의 숨결을 정교하게 붙잡고, '사진첩을 보며', '부음을 듣고' 같은 시에서는 상실의 감정을 품위 있게 어루만진다. 또한 '보청기', '만보기', '코로나 자가격리' 등의 작품에서는 현대인의 일상과 노년의 생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시는 시끄럽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인은 과장 없이 삶을 바라보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시의 가능성을 길어 올린다. 그 덕분에 이 시집은, 시조를 멀게 느꼈던 독자에게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문학의 문턱이 된다.
《천 개의 봄》은 첫 시집이지만, 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단단한 시조집이다. 그 안에는 지난 계절을 거쳐온 이의 목소리, 또 앞으로 맞이할 '봄'에 대한 기대가 잔잔히 배어 있다.
시조가 낯설지 않기를 바라는 독자, 일상에서 시의 순간을 찾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
원용우(시조시인, 문학박사)
임선규 시인이 첫 시조집을 내신다고 한다. 그의 실력으로 보면 이미 작품집을 발간했어야 하는데 원래 겸손한 분이라 이제야 세상에 드러낸다고 한다. 나한테 보낸 작품이 100편가량 되는데, 현재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소재들이다. 시조 생활이라 해도 좋고 생활 시조라 불러도 좋다. 내용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면은 안 보이고 긍정적인 면만 그렸다. 귀에 거슬리는 언어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나 시조는 서정성이 강한데 이번의 작품집은 그 서정성에 미의식까지 강하다고 느껴진다. 시나 시조는 강하거나 거친 느낌이 들기보다는 부드러워야 한다. 음식도 너무 거칠거나 뻑뻑하면 맛없듯이 부드러워야 잘 넘어간다. 그리고 시조는 상상력, 비유법, 참신성이 있어야 문학성을 인정받는데, 이번의 시조집이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I. 인생 여정
철없던 젊은 날에 연리지 연을 맺어
나날이 쌓이는 정 복인 양 메고 왔네
왔던 길 되짚어 보니 매 순간이 꿈이다.
미움도 서러움도 정으로 삭여내고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
서녘에 해가 기우니 가쁜 숨을 고른다.
-「우리 부부」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 부부」이다. 이 세상 만물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음과 양은 합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그런데 음양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어야지, 음과 음, 양과 양이 만나면 상충이 되어 짝을 이루지 못한다.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뻗으면서 합쳐진 것인데, 이 두 나무도 하나는 음, 또 한 나무는 양일 것이다. 두 나무도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하나의 나뭇가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연리지처럼 하나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정이 쌓이고 그것을 복인 양 메고 왔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꿈처럼 흘러가서 아득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었고, 필요없는 가지는 쳐내면서 살아왔는데 어느덧 노년기가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막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삶을 마라톤 선수에 비유한 것이다. 달리기를 안 하고 그냥 걸어서 가는 나그네 비유되기도 한다. "곁가지 쳐내면서 묵묵히 걸어온 길"은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고 인생 여정을 나그네가 먼 길 가는 것으로 본 것은 적절한 비유다.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비유법을 잘 썼으니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황망히 떠난 사람 소식 듣고 가는 길에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
변한 것 하나도 없네, 한 우주가 떠났는데
불꽃처럼 활활 타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
빈 의자 남겨두고 어디 먼 길 가시는지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
- 「부음을 듣고」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부음을 듣고」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고, 자아는 그 장례식에 가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생애를 살았으면 이 세상에서는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생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우주 만물은 모두 다 자연순환의 원리를 따르게 되어있다. 그 작고한 분을 자아는 "황망히 떠난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 분위기는 비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아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다. "들꽃은 손 흔들고 구름은 한가롭다"라고 노래하였다. 그 상황을 "변한 것 하나도 없네"라는 감정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떠나간 것을 "한 우주가 떠났는데"라고 하였다. 한 사람을 한 우주라 본 것은 성리학적 견해이다.
어떻게 한 개체를 우주라 볼 수 있는가? "사람의 형체는 천지(天地)와 상응하고 있다. 원형의 머리는 위에 있어서 하늘을, 방형의 발은 아래에 있어서 땅을 상징한다. 북극은 하늘 중앙의 북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백회혈(百會穴)은 정수리 뒤편에 있고, 일월의 왕래는 하늘의 남쪽에 있으므로 사람의 두 눈은 모두 앞에 있으며, 바닷물은 맛이 짜고 모든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남쪽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성기 또한 앞쪽의 아래편에 있는데, 바른 기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생을 한 우주로 보는 것은 맞는 말이요 정당한 논리이다. 상기 작품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녔다. "불꽃처럼 활활 타다"는 인생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인생으로 말하면 40대나 50대에 해당한다. "꺼져버린 생명의 불"은 사람의 생명이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상징해 준다. 그래서 인생 여정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다. 갓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은 만물의 생장 소멸설을 밑받침해 준다. 작품에서 "빈 의자"라고 했는데 이 역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은유해 준다. "초행길 홀로 가시네, 등짐 벗고 가시네"는 인생의 죽음을 은유한 것이다. 이처럼 은유나 상징법을 활용해야 시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
II. 그리움의 정서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
두레박 드리우고
옛 기억 퍼 올려도
낯익은
이 거리에서
섬이 되어 서 있네.
- 「무교동에서」 전문
이 작품의 제목은 「무교동에서」이다. 형식은 단시조이다. 원래 단시조의 효시 작품은 역동 우탁의 「탄로가」이다. 그 당시 시조의 출발은 정형시라 생각되는데, 그것은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성립된 시이고, 그 나름의 틀과 격식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형식으로 이미 그 유형이 정해져 있었다. 일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고, 일정한 리듬을 지니고 있다. 전통시라 하고 고유시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短時調'라 쓰는 이도 있고, '單時調'라 쓰는 이도 있다.
위의 시조는 3장 6구 12소절로 된 기준형에 가깝다. 기승전결 구조를 띄었는데 초장은 시상을 일으키는 기구起句에 해당한다. 무교동은 자아가 자주 방문하던 낯익은 곳이었다. 그런데 너무 안 가서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가 거기인가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해서 낯선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장은 승구承句에 해당하는데 시상의 비약이 심하다. 두레박을 드리우고 옛 기억을 퍼 올린다는 것이다. 물을 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퍼 올린다고 한 데에 묘미가 있다. 이처럼 시에서는 말재주를 부려야 한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말 부리기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종장은 전결轉結에 해당하는데, 멋진 표현으로 종장의 묘미를 장식하였다. 초장에서 "친구들 어디 갔나"라고 했던 것이 종장에 와서는 "섬이 되어 서 있다"라고 하였다. 외롭다고 하지 않고 섬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표현이 이 작품의 가치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한다.
고향집 뒤란에는 옹기들 모여산다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
정화수 사발 속에는 새벽달이 뜨는 곳
동치미 설핏 어는 동짓달 추운 밤에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
눈 덮힌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그린다.
- 「장독대」 전문
장독대는 고향집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 위치가 집 뒤로 돌아가야만 눈에 띄는 항아리들이다. 그 항아리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들이 가득 채워졌다. 이 장들을 매일 함께 먹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요 같은 식구들이다. 그 모습을 "옹기들 모여 산다"라고 하였다. 정다운 식구들이 모여 살 듯이 그 항아리들도 함께 모여 산다는 뜻이다. 그 장들은 오랜 기간 숙성시켜야 하는데 그 모습을 "해와 달 오고 가고 장들이 익어가고"라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장독대는 우리의 어머니가 깨끗한 정화수 떠다 놓고 자식들의 성공을 비는 기도처이다. 그런데 그 정화수 있는 곳을 새벽 달이 떠 있는 곳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시간이 새벽 무렵이란 것을 암시해 준다. 지금 세계는 현대과학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반대로 옛것을 숭상하면서 고전미를 맛보게 해주는 곳이 장독대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제2수는 계절적 배경이 '동짓달'이요 시간적 배경은 '추운 밤'이다. 얼마나 추울까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그런데도 아늑한 분위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중장 때문이다. "문풍지 재워 놓고 사뿐히 눈 내리면"이라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 추운 밤에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 마시면서 아기를 재우듯이 문풍지를 재워 놓고 화롯가 앉아서 즐겁게 얘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더구나 밖에 눈 덮인 항아리들은 수채화를 연상하게 된다. 초장에서는 맛을 떠올리고, 중장에서는 동화 같은 장면을, 종장에서는 수채화 같은 미술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이처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면서 그립고 아쉬운 정서를 자아낸다.
III. 식물들의 목소리
우람한 몸피 보니
그 세월 가늠되네
호시절 있었으나
비바람도 맞았으리
지팡이
의지하면서
기우는 몸 잡는다.
- 「보호수」 전문
위 작품의 제목은 「보호수」이다. 보호수란 학습의 참고 및 번식을 위해 보호하는 나무이다. 수령이 몇백 년 된 나무나 멸종 위기에 처한 나무들을 보호수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상기 작품도 나이가 많은 나무에 해당한다. 우람한 몸피를 보면 그 세월이 가늠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체격이 대단하면 우람한 몸피라는 표현을 했을까? 세월이 가늠된다는 말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표현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다 보니 꽃피우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비바람도 많이 맞으면서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눈서리도 맞고 더위나 추위도 겪었으리라. 사람처럼 나쁜 병에도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으리라. 종장에서는 완전히 의인법을 쓰고 있다. 늙은이는 혼자 걸어 다닐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기우뚱거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언가 의지할 나무나 쇠막대기를 설치해야 넘어가지 않고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처럼 나이 먹은 나무들이 평생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몇백 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그 나무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지만, 그들끼리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기쁠 때는 소리 내어 웃고 슬플 때도 소리 내어 우는 정도는 표현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식물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울안에 무리 지어
피어날 운명인가
빠끔히 목을 늘려
바깥세상 엿보더니
용암이
분출하는 듯
눌린 울분 발산한다.
- 「넝쿨장미 ㆍ 2」 전문
앞의 작품은 「보호수」였는데 뒤의 작품은 「넝쿨장미」이다. 보호수는 덩치가 큰 나무인데 넝쿨장미는 덩치가 작은 식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타고난 운명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김씨 집에 태어났느냐 이씨 집에 태어났느냐는 문제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다. 주인공이 임의대로 바꿀 수 없다. 이처럼 변개變改가 불가능한 것을 우리는 천명天命이라 한다. 위에서 인용한 작품은 「넝쿨장미」이다.
"울안에 무리 지어/ 태어날 운명"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넝쿨장미가 목을 늘려가면서 바깥세상을 엿본다고 하였다. 울안에서 울타리 밖을 바라본 것이다. 울밖에는 호박꽃 채송화꽃 해바라기꽃 등이 만발한 꽃밭이다. 이런 식물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도 시도했을 것이다. 장미도 은근히 활짝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서 빨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가 이 작품의 종장이 되었다. "용암이/ 분출하는 듯/ 눌린 울분 발산한다"라는 것이다. 장미꽃이 다투어 만발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런 것을 수사법에서 암유(暗喩)라고 한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장미는 빨간색 쏟아지는 것을 "눌린 울분 발산한다"고 보았고, 용암에서 화산이 분출할 때 빨간 물이 쏟아지는 것을 "용암이 분출한다"고 보았다. 장미의 빨간 색과 용암의 빨간 물 솟는 것을 같은 현상으로 본 것이다. 바로 이런 장면이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놀라운 비유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장면을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Ⅳ. 시조의 큰 스승
묘비에 새긴 이름 손 모아 마주하니
흰나비 나풀대며 주위에 맴을 돌고
청송은 임 호위하며 낯선 객을 반긴다
솔바람 손을 잡고 다가간 창의사엔
긴 세월 어제인 듯 발자취 뚜렷하고
숨죽인 제례 봉행에 푸나무도 읍하네
절의의 표상으로 당대의 문인으로
후대의 스승 되고 강원의 얼이 되니
올곧은 선비의 향기 비로봉을 넘는다.
- 「운곡을 찾아서」 전문
운곡 원천석은 고려 충숙왕 17년(1330)에 출생하고 90여 세의 생을 누렸는데, 별세한 날짜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고려말 신흥사대부들과 비슷한 출생 배경과 사상적 기반을 지녔는데도 그들과는 달리 벼슬길을 단념하고 치악산에 은거하였다.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수재라고 알려졌는데, 자신의 재지才智와 학문學問을 감추고 몸소 산전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그의 생애를 보면 60세까지는 고려조에 몸담아 살았고, 나머지 30년을 조선 시대에 살면서 은둔, 독서, 저술 생활로 일관하였다. 그러면서 이색, 무학대사, 나옹화상 등과 교유하면서 고려에 대한 절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상기 작품의 제목은 「운곡을 찾아서」인데 운곡의 묘비와 사당을 찾아가 그분의 정신을 시조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자아가 먼저 방문한 곳은 운곡 선생의 유적지이다. 그 유적지에는 선생의 묘소, 창의사 사당, 운곡 원씨들의 뿌리를 모셔놓은 설단지,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인 운곡학회 등이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선생의 묘소이다. 묘소의 위치는 고갯마루에 묘비와 함께 존재한다. 그 묘비에는 선생의 업적이 자세히 한문으로 기록되었는데 시인은 묘비에 새긴 이름에 예를 갖추어 합장하였다는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요약하면 고려조에 대한 절의정신, 저서인 운곡시사, 그 당시 새로 발생한 단가 형식의 시조 등인데 이러한 업적들을 찬양하는 찬양 시조가 될 수밖에 없다. 제1수를 보면 시인 자신 외에 흰 나비, 청송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운곡을 위해 등장한 소재들이다.
그다음은 위치를 창의사로 옮겼는데, 솔바람의 손을 잡고 옮겨 갔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운곡 선생에 대한 업적들이 유품으로 남아있고, 주변의 푸나무들도 제관들과 함께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느낌은 시적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주변의 나무나 풀까지도 읍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육안肉眼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
제3수 또한 운곡에 대한 찬사이다. 운곡은 절의의 표상이요, 당대의 문인으로 존중받는 인물이며 후대의 스승이 되고 강원의 얼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찬양하였다. 그의 올곧은 정신과 인품에서 나는 향기가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넘을 정도라 하였다. 이런 것이야말로 심안心眼으로 본 것을 그린, 문학세계에서나 가능한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운곡에 대한 일종의 찬양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우리 글 벗하시며 시조의 맥 이으신 임
지나온 발자취는 후학들 사표(師表) 되고
화천 땅 기념관 향기 깃발처럼 드높다
긴 세월 시조문학 면면히 이어오며
시단을 일궈 오신 선비의 공과 업적
큰 나무 버팀목 되어 어린 새싹 힘 나네
민족시(民族詩) 보급 운동 업(業)으로 여기시며
오로지 한뜻으로 대껴온 지난 여정
임께서 뿌린 씨앗에 그 열매가 영근다.
-「월하의 향기」 전문
위 작품의 제목은 「월하의 향기」이다. 월하 이태극 선생은 1913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촌리에서 출생하셨다. 1933년 춘천 고등보통학교 5학년을 졸업했고, 1936년 4월부터 1938년 5월까지 통신교육으로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과를 수학하였다. 그 후 1947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과를 2학년으로 편입, 1950년 5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53년 1월 《시조연구》에 창작시조 「갈매기」를 발표한 것이 시조로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 후 1960년 6월 1일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을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을 맡음으로써 전문 시조 잡지의 출간을 보게 되었고, 1996년 회고록을 발간하기까지 그 잡지 발간에 전념하였다. 시조문학이 발간됨으로써 시조 보급 운동이 확산하였으며, 무려 45년간 시조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아드님 이숭원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보자.
"조수 초목을 보며 사는 것이 아버님의 꿈이었고, 달빛이 비치는 강을 바라보며 솔직담백한 심정으로 시조 한 수 지어 읊조리는 것이 아버님의 이상이었다. 아버님은 계간 《시조문학》을 80대 중반까지 주관해 내셨는데, 건강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 것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하셨다. 아버님이 가장 사랑하신 것은 '시조'였다. 전에 어느 글에도 썼다시피 아버님은 이승을 떠나셨지만 삼천대천 세계 어디에선가 지금도 시조를 짓고 읊고 가르치고 계실 것이라 나는 믿는다."
상기 인용 작품의 제1수는 『월하 이태극 전집』에서 인용했듯이, 우리의 글 벗하시며 맥을 잇는 큰 스승이라 보았다. 선생의 업적이나 공로는 후학들의 사표가 되었고, 기념관에서 나는 향기는 깃발처럼 펄럭인다고 하였다. 제2수에서는 무려 50년 동안 시조문학의 발간을 맡아왔다는 것이며, 시조단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공로는 타(他) 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큰 나무의 버팀목 되시어 어린 새싹들에 힘을 실어주는 몫을 다하신다. 제3수 또한 논조가 달라지지 않았다. 민족시 보급 운동을 업으로 삼으셨고, 오로지 시조의 길만 닦아온 그 여정에, 종장에서는 결론 맺어야 한다. 임께서 뿌린 씨앗에 그 열매가 영글어간다는 것이다. 영근 열매는 따서 먹는 것이 그다음 순서이다. 풍성한 잔치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외도 인물을 주제나 제목으로 한 작품은 교회의 찬송가처럼 찬양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제 작품논의를 끝내고 마무리할 시간이다. 그 결과는 서론에서 언급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이한 것은 한 사람을 하나의 우주라 본 점이다. 또한 이 단락에서는 인생을 마지막을 달리는 기차로 보고, 그냥 걸어가는 나그네, 무대 위의 배우에 비유한 점이 특별하다. 그리움의 정서에서는 옛 기억을 퍼올린다고 한 점, 외롭다 하지 않고 섬이라고 한 것이 표현의 우수성이다. 장독대에서는 눈 덮인 장독대를 하나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본 것이 눈길을 끈다. 그다음 식물들도 벙어리처럼 살 수는 없고 그 나름의 소통을 하면서 생을 마칠 것이라 보았고, 장미꽃이 핀 모습을 용암이 분출한 것으로 본 것은 기상천외의 발상이다. 이처럼 장점들을 찾아서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문학은 상상력, 비유법, 참신성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작품을 많이 생산하시기 바란다. 앞으로 건강과 문운이 함께하시길 기대한다.
목차
목차
ㆍ시인의 말
1부 서호에 뜬 달
가을날에
개망초
꽃봉오리
나뭇가지
담양 죽녹원
등나무
벚나무 아래에서
보호수保護樹
봄 언저리
봄날의 신열
봄 머리에
서호*에 뜬 달
석양
시골길
쌍계사에서
아침 산책길
파도
폭염
폭서暴暑에
호박꽃
2부 오래된 집
고향
구례에서
두물머리 산책
무교동에서
메주
미술관에서
백자
성묘
소풍
송현동 광장에서
오래된 집
오래된 엽서 한 장
오이지
올림픽공원에서
운곡을 찾아서
장독대
장롱
풍납 토성에서
한탄강의 비경
화산의 짐꾼
3부 사진첩을 보며
거울
경로석
고목古木의 뿌리
내 마음의 서랍
내 몸
당신
때로는
뜨개질
만추
말 수 줄이기
바느질
반짇고리
베란다에서
병상에서
부음을 듣고
사진첩을 보며
산소에서
엄마의 꽃밭
우리 부부
피붙이
4부 뜬소문
11월의 외출
고등어
그날
까치집
낙지의 변辯
뒷북 코로나
뜬소문
마스크
만보기
뮤지컬 공연을 보며
보청기
불면증
불통
비밀
연예인
비익조比翼鳥 사랑
종착역
짐
코로나 자가격리
폐지 모으는 영감님
5부 천 개의 봄
넝쿨장미 ㆍ 1
넝쿨장미 ㆍ 2
노송 앞에서
명자 언니
빨래
빨래를 개며
사이
선풍기
일기예보
작약
책장
천 개의 봄
초파일에
틈
어부의 노래
월담하는 꽃
월하의 향기
석별
북으로 가는 길
평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__원용우
1부 서호에 뜬 달
가을날에
개망초
꽃봉오리
나뭇가지
담양 죽녹원
등나무
벚나무 아래에서
보호수保護樹
봄 언저리
봄날의 신열
봄 머리에
서호*에 뜬 달
석양
시골길
쌍계사에서
아침 산책길
파도
폭염
폭서暴暑에
호박꽃
2부 오래된 집
고향
구례에서
두물머리 산책
무교동에서
메주
미술관에서
백자
성묘
소풍
송현동 광장에서
오래된 집
오래된 엽서 한 장
오이지
올림픽공원에서
운곡을 찾아서
장독대
장롱
풍납 토성에서
한탄강의 비경
화산의 짐꾼
3부 사진첩을 보며
거울
경로석
고목古木의 뿌리
내 마음의 서랍
내 몸
당신
때로는
뜨개질
만추
말 수 줄이기
바느질
반짇고리
베란다에서
병상에서
부음을 듣고
사진첩을 보며
산소에서
엄마의 꽃밭
우리 부부
피붙이
4부 뜬소문
11월의 외출
고등어
그날
까치집
낙지의 변辯
뒷북 코로나
뜬소문
마스크
만보기
뮤지컬 공연을 보며
보청기
불면증
불통
비밀
연예인
비익조比翼鳥 사랑
종착역
짐
코로나 자가격리
폐지 모으는 영감님
5부 천 개의 봄
넝쿨장미 ㆍ 1
넝쿨장미 ㆍ 2
노송 앞에서
명자 언니
빨래
빨래를 개며
사이
선풍기
일기예보
작약
책장
천 개의 봄
초파일에
틈
어부의 노래
월담하는 꽃
월하의 향기
석별
북으로 가는 길
평설:
따스한 마음으로 보는 시선視線__원용우
저자
저자
임선규
충남 당진 출생,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학과 졸업, 호서중학교 교사
《문학秀》 수필 등단 (2020), 《계간시조》 시조 등단 (2022)
사) 한국문인협회, 사) 한국시조협회 회원
사임당수필백일장 장원, 운곡시조백일장 수상, 《시조문학》 작가상
청명시조문학상 수상
《문학秀》 수필 등단 (2020), 《계간시조》 시조 등단 (2022)
사) 한국문인협회, 사) 한국시조협회 회원
사임당수필백일장 장원, 운곡시조백일장 수상, 《시조문학》 작가상
청명시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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