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달아실시선 48)
허림 시집
이번 시집이 아홉 번째이니 허림 시인은 그야말로 귀신이 다 되었다.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질펀한 시로 빚어내는 것이니, 자다가도 봉창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시를 빚어내는 것이니, 그야말로 詩 귀신이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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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허림 시집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
홍천의 허림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를 펴냈다. 제목이 무척 길다. 제목 긴 것이야 그렇다 치고, 골말 산지당골이야 지명이려니 그렇다 치고, 제누리 먹다는 무슨 말일까. 뭘 먹는다는 걸까. 그래서 찾아봤다.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제누리: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끼니 외에 참참이 먹는 음식. 표준어는 '곁두리'다. 지역별로는 다음과 같이 쓴다. 겨누리(화천), 사이(홍천), 새참(강릉·양구·원주·인제·화천), 아이정슴(삼척), 아침젯노리(정선), 오전젯노리(평창), 오후젠노리(평창), 잿누리(양구·인제), 저누리(화천), 저뚜리(철원), 제누리(양구·원주·인제·춘천·홍천), 젯노리(고성·양양·인제·정선·평창·횡성), 젯정슴(삼척), 지역젯노리(정선), 참(양양·춘천)
아마도 허림 시인이 사는 동네(홍천 내면)에서도 곁두리(새참)를 제누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럴 게 아니라 아예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라는 알쏭달쏭한 사건의 전모를 살펴보자.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먹는 제누리는 맛있다
옥양목 머릿수건 쓴 새댁이 호면을 삶아
동치미국물에 신짠지 송송 썰어 얹은 국시
이 냄새는 새콤하니 삭은 삼삼한 맛이어서
복골 상노인네도 때 되면
뒷짐 지고 재 넘어와 평상에 앉는다
엄 대장은 마을 떠돌며 야장하는 터라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 평상에는
붉은데이 작업장 버덩말 섬터 아랫비랑 중노인네들이
입동 햇살 덮고 앉아 톱을 쓸기도 하고
엄 대장 정에 맞춰 메질도 하며 차례 기다린다
지금은 땔 낭구할 때라 도꾸며 묵낫 작두가 상한 잇몸 드러내고
문드러진 톱날이 붉은 이빨 드러낸다
늘원장이나 고개 너머 큰 장에도 나가는 엄 대장은 입담도 세다
내 이래 봬도 임금님 칼을 벼르던 야장이었지 지금이야 떠돌이 딱쇠지만
먼 산 구름 보며 웃을 때는 소를 닮았다
호미며 낫 괭이 작두 칼 복령꼬챙이 늘어놓은 평상 한쪽에
새댁은 입 수대로 국시를 말아 차린다
누구도 물어보는 이 없지만
엄 씨가 새장가 갔느니 보쌈해 왔다느니 풍문이 돌았어도
누구도 쇠때 채운 듯 입 열지 않았다
함께 산다고 흉될 낫살도 아니지만
소문은 돌고 돌아 사시낭구 바람처럼 쇄쇄거렸고
탁주 한 대접 비운 엄 대장 봉평 어딘가 사는 먼 친척 동생이라며
겨울 한철 잠깐 살림 봐주러 왔다고
제누리 먹는 동안 색시는 불이 꺼질세라 불메질이다
노루가죽 덧댄 불메 밀고 당기면
쥐 우는 소리 토끼 우는 소리 노루 우는 소리를 따라
스적스적 노량 꺼지지 않을 만큼 밀고 당겼다
엄 대장이 먼저 일어나 봉담배 말아 불에 붙이며
우리 색시 손맛 좋지, 한다
확 사루어오른 불길에 색시 얼굴이 발그스레 달아오른다
-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 전문
이게 당최 뭔 소리여?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요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 아닌가. 이런 얘기하는 독자도 있겠다. 홍천의 내면은 오지 중 오지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말을 그대로 옮겼으니 듣는(읽는) 도시 사람은 당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몇 번이고 씹어봐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사는 냄새가 모락모락 풍기고, 사람 사는 모양새가 왁자지껄하지 않은가.
이번 시집이 아홉 번째이니 허림 시인은 그야말로 귀신이 다 되었다.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가지고도 이렇게 질펀한 시로 빚어내는 것이니, 자다가도 봉창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시를 빚어내는 것이니, 그야말로 詩 귀신이 다 되었다.
한마디로 귀신이 조화를 부린 시집인데, 사람이 무슨 말을 보탤 것인가.
시집의 발문을 쓴 김인자 시인은 허림 시인을 일러 이렇게 얘기한다.
"세상에 시가 없었거나 시를 몰랐다면 무엇으로 살았을까 싶을 만큼 그는 내장 아니 뼛속까지 자유인이고 자연인이고 시인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시밖에 없어서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아예 시를 생각하지 않는 삶이란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태생적 시인이다."
아마도 "허림 시인은 귀신이다"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에둘러 말한 것이리라. 내친 김에 김인자 시인의 발문을 좀 더 인용한다.
"허림의 시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본, 시대를 앞서간 백석, 박용래, 김종삼을 연상하게 하고 조금 더 나아가선 이효석의 문학 세계와도 닿아있다."
"허림의 시 세계는 잘 벼린 섬뜩한 날이 아니라 손때가 묻어 뭉툭하게 닳은 칼자루에 적당히 길들여져 쓰기 편한 날이다. 모가 없어 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어떤 날카로움도 그를 통과하면 둥글어진다는 것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혼자만의 시간, 내면의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비로소 안도한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저녁이 이끄는 힘은 얼마나 센가'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생의 깊은 안쪽 즉 내면에 있어야 할 사람이 맞다. 언젠간 돌아올 사랑도 그렇고, 운명처럼 기다려야 할 시 또한 거기에 있으므로."
이런 저런 말로 허림 시인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에두르고 있지만, 결국은 허림 시인은 귀신같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의 시를 읽고 애간장이 녹는 게 아니겠는가.
혹여라도 홍천에 가시거든, 홍천의 내면에 드시거든, 조심하기 바란다. 백 년 묵은 시 귀신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니. 귀신에 홀려서 애간장이 녹거나 잊고 살았던 첫사랑을 다시 앓게 될 수도 있으니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목차
목차
1부. 을수
을수
사는 법을 알지 못하듯
채비
서향
한때나마
달밤, 너하고는 첫사랑이구나
봄날의 방언
도광동을 지나며
봄나들이
또 별러보는 일
빗소리를 바라본다
삶의 연대기에는 꼭 슬픔의 몫이 남아 있다
뒤란
2부. 흘러간 시간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사월
누구인가
꽃과 별은 다르지 않다
새덕골 함 씨
그늘
툇마루
~수록
동지
삼강주막에서
꽃이 되는 말
물의 랩소디를 듣다
우두망찰한 적 있다
저녁놀
흘러간 시간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나무진골
난추니
3부. 겨울에 눈이 와서 다행이네
겨울에 눈이 와서 다행이네
남장놀이
송홧가루가 날린다
청어과메기를 먹다
귀밝이술
조풍내이
강냉이범벅
겨울엔 겨울하지
씨간장
골말 산지당골 대장간에서 제누리 먹다
청버섯
콩나물국
굴뚝새
자장가
느티나무 그늘에 편 새참
4부. 과꽃
첫눈
덧눈
과꽃
바늘
맑음
수국
찔렁
수타사, 소나무 법신
덜컥
관광버스에서 꼬인 시
다리
혼자, 라는 말이 무서워졌다
코가 삐뚤어졌다
발문 _ 내면과 외면 사이 ㆍ 김인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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