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창연 산문선 3.)
배종화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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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배종화 수필가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첫 수필집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에는 ‘희망’ 외 9편의 수필, 2부에는 ‘나는 수필가’ 외 9편의 수필, 3부에는 ‘아버지와 까꾸리’ 외 8편의 수필, 4부에는 ‘봄’ 외 9편의 수필, 5부에는 ‘나태주 문학관’ 외 10편의 수필 등 총 50편의 수필과 백남오 문학평론가의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인 백남오 수필가는 해설에서 “배종화 작가의 수필은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가고 있다. 도대체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배종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수한 역경을 맞이했지만,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극복해 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던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승리라 할 수가 있다. 그가 훌륭한 수필가로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배려, 형제지간의 특별하고도 남다른 우애가 오늘날 그를 키워냈다. 지금 배종화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디지털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예술인 배종화로 섰다. 이제 배종화는 먼 유년 시절부터 내면 깊이 묻어둔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며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인 백남오 수필가는 해설에서 “배종화 작가의 수필은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가고 있다. 도대체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배종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수한 역경을 맞이했지만,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극복해 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왔던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승리라 할 수가 있다. 그가 훌륭한 수필가로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배려, 형제지간의 특별하고도 남다른 우애가 오늘날 그를 키워냈다. 지금 배종화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디지털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예술인 배종화로 섰다. 이제 배종화는 먼 유년 시절부터 내면 깊이 묻어둔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며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여생을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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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수필집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배종화론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1. 감동의 인간승리
배종화 수필가는 2017년 《경남문학》 수필부문 신인상과 2022년 《선수필》 봄호 재등단으로 작가가 되었다. 등단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필 공부에 매진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진등재문학회 부회장직을 맡아 그 임무를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한 꿈과 포부가 그만큼 내면에서 들끓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그는 단 하나의 강의도 놓치지 않았고 부과되는 습작을 피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될 정도로 무섭게 성장을 해갔다.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등단 5년이 지난 2022년 「아버지와 까꾸리」란 작품으로 제7회 진등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잘 알다시피 진등재문학상은 수필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수필 문단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하며, 수필 문학 본류를 향한 염원에 밀알이 되고자 제정된 영예로운 상이다. 여기서 문학상 심사를 맡은 현순영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호평을 남긴다.
배종화의 「아버지와 까꾸리」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이다. 작가는 까꾸리라는 소재를 통해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이 어떤 의미와 빛깔을 지닌 감정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거의 평생 까꾸리를 손수 만들어 파시면서 가족을 지키셨다. 가난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헌신적이셨으며 사랑이 많으셨다. 아버지가 구식 연장과 손으로 정성을 다해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과 모습을 서술한 대목,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실 때 간혹 값싼 아귀와 복어를 사다 풍요로운 만찬을 베푸셨던 일을 감각적으로 서술한 대목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특히 크게 기여한다. 아버지는 헌신적으로 열심히 사셨지만, 목숨이 다해 간다는 것을 아셨을 때 묵묵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 모습을 작가는 까꾸리와 겹쳐 놓았다. 까꾸리는 쓰임새 많은 실용적 도구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음을 환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은 시대의 변화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라져 버린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 작품의 미덕들은 작가의 수필작법이나 테크닉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먼저, 작가가 아버지를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삶을 그만큼 깊이 응시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까꾸리쟁이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직조하였는데 그 결이 생생하다. 특히 아버지가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을 서술한 내용은 작가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얼마나 깊이 응시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또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대와 가치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확장한 것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질곡의 한 시대를 숙명인 양 살다 가신"한 인간으로 관조하고 이해하는 성숙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좋은 글에는'한 점 맑음'이 있다. 좋은 글의 한 점 맑음은 작가의 인간적 성숙을 증명하며 독자들을 고양시키는 그 무엇이다. 작가의 문장력 또한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다.
- 《진등재 수필》 제7호(2021년 10월)
위 심사평에서 현순영 평론가는 수상 작가의 세 가지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작가는 수필작법이나 테크닉이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재에 대한 응시가 깊은 통찰력을 획득했기에 아버지를 더욱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세 번째로는 문장력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을 만큼 수려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극찬을 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수필문학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작기법까지 실제에 적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숙하다. 수상소감에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아 꿈을 묻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리라 다짐도 하였지만, 삶에 쫓겨 돌아볼 여지가 없었답니다. 불현듯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고 오래 뒤척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품고 살았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겠다는 결심이다. 무엇보다도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며 오래 뒤척인다는 것이다. 그 결기 찬 꿈과 야망이 오늘의 작가를 일으켜 세운 힘임이 분명하다.
배종화 수필가가 태어난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이다. 3년간 동족상쟁의 비극적 전쟁으로 온 국토는 폐허로 초토화되고 만다. 전쟁 후 파괴된 나라를 수복하고 건설해 나가는 과정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힘겨운 고난의 시기였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혹독하게 가난하고 모두가 배고픈 시기였다. 도시의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창원군 웅남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로서도 배움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더구나 남보다 먼저 부모를 잃은 작가에게 교육이란 요원한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는 그 아픔의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 불가능한 일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가는 것이다.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정도다. 그리하여 작가는 중.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이수를 하며 배움이란 목마름을 해소해간다. 그 힘겨운 단계들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며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학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가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당연히 문학에 대한 꿈 때문이다. 이 꿈을 위해서 작가는 졸업 후에는 대학의 수필교실을 찾아왔고, 창작중심의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수필교실에서 그는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만하면 인간승리가 아닌가 싶다.
2. 가족 사랑이 피워낸 한 떨기 꽃
배종화 작가는 진등재문학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22년, 대망의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면서 원고를 보내왔다. 수필공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더구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디딤돌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니 더욱 반길 일이다.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모두 50편의 주옥같은 작품이 5부로 편집되어 있었다. 제1부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제2부 문학으로 부활의 꿈, 제3부 내 삶의 둥지, 제4부 그때 그 시절, 제5부 나를 깨운 시간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늦은 나이에 그의 이러한 문학적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일 텐데, 언제 공부하고, 일하고, 글 쓰고, 작가가 되어 책까지 내게 되었는지 신통하기만 했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세끼 밥 먹기도 어렵던 봄날이었다.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함박꽃 뿌리를 듬뿍 파내오셨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뿌리는 튼실해 보였다. 이윽고 집에서 키우던 수탉을 잡아서 털을 뽑고 다듬은 다음, 잘 씻은 꽃 뿌리와 함께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뿌리와 닭이 어느 정도 물러질 즈음 지난해 말려둔 대추를 한 움큼 넣고 한나절을 뭉근하게 더 끓였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손에는 뽀얀 국물을 담은 국그릇이 들려있었다. 무슨 국이냐며 묻는 내게, "니 그 한 달에 한 번 꽃배 앓는데 좋은 특효약이다." 하시고는 함박꽃잎 하나를 국물에 띄워주며 천천히 식혀가면서 마시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받아들긴 하였지만 얼마 전까지 좁은 마당에서 꼬꼬 대며 놀던 수탉 생각을 하니 차마 마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게 되자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급기야는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다.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전장을 지키는 장수가 저럴까 싶을 만큼 냉정하고 굳건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 「꽃 중의 꽃」 부분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릴 때 화자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작았지만, 얼굴도 병색이 짙어 볼품없는 아이였다. 상심한 어머니는 동무들이 놀러 오면 수시로 나란히 세워 키를 재거나, 몸무게를 어림으로 비교해 보시고는 속상해하셨다. 아버지가 인근에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가 성장기에 좋다는 한약재를 구해 달여 먹였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생리통 때문에 몸져눕기까지 하였으니 어머니의 큰 근심거리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집안의 재산이나 다를 바 없는 수탉을 잡아 가장 아끼는 함박꽃의 뿌리를 넣어 푹 고아서 약재를 만들어 화자에게 권한다. 이를 눈치챈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지만,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그렇게 애지중지 생각하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그때 분명 보았다. 화자에 대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함박꽃과 어머니의 사랑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작가에게 함박꽃은 어머니이며,?어머니의 사랑이다.?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주제가 매우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문장도 간결하면서 섬세하다. 작가가 문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작가는 이처럼 부모님의 사랑도 독차지를 했지만, 형제들과의 우애와 사랑도 남다르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①오야, 오야땡은 내 여동생 별명이다. 어릴 때부터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은 사내아이와 진배없었다. 행실 또한 천방지축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사내아이로 오해했다. 엄마가 밖에 외출할 때면 무조건 따라나섰고 싫증 난 고무신은 돌에 문지르거나 칼로 찢어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내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면 혼이 나고 남았겠지만, 부모님은 능히 그 청을 들어주셨다. 고추밭에 터를 팔아 대 이를 아들을 낳게 한 덕분이었다.
남아선호 시대 첫아들을 잃고 딸만 내리 셋을 낳은 부모님께 그보다 더 큰 효가 세상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런 자식을 어여삐 여긴 부모님은 호적에 등록된 이름 대신 오야라는 별명을 만들어 공로를 치하했다. 오야는 우두머리, 두목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 아닌가. 위의 언니가 못한 일을 능히 해냈으니 그 정도 호칭은 당연하다고 여기신 것이리라. 친척이나 동네 어른들도 동생이 지나가면 엄지를 치켜세우고 "어이 오야!"하며 큰 소리로 불러주고 칭송하였다. 신이 난 오야는 어깨를 으스대며 보무도 당당하게 동네를 활보했다.
- 「오야, 오야땡」 부분
②밤낮으로 속을 끓이던 어느 날, 나는 궁여지책으로 인근 사립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한 지 두 해가 되던 해였다. 행여 주변의 누가 알까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신입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서류를 조사해 본 뒤, 유도부 특기생으로 입학을 허락해 주셨다. 어릴 때부터 몸이 단단하여 씨름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에게 잘 어울리는 부서였다. 그렇게 동생은 꿈에 그리든 고등학생이 되었다.(중략)
눈이 많이 내려 자동차도 다니지 못하는 추운 겨울날, 동생이 내 일터를 찾아왔다. 온몸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눈사람 형상을 하고 서였다. 대책 없이 입학만 시켜놓고 조마조마하던 내 가슴은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마주보기 두렵고 민망해서 애써 눈길을 피했다. 그런 누나 마음을 어찌 모를까. 눈 내리는 창밖만 한참 응시하던 그는 할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한 채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어지럽게 남겨진 동생의 발자국 위로 무정하게 흰 눈만 내려 쌓였던, 그날의 막막함을 어찌 잊으랴.
- 「마음부자 내 동생」 부분
인용 작품 ①은 화자의 바로 밑 여동생 이야기다. 동생은 부모님 보호 아래 행복한 유년을 누렸다.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냇가에서 멱이나 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온종일 놀아도 탓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신식 운동화를 신고 다 헤진 화자의 검정 고무신을 툭툭 차고 지나간 적도 있었다. 참다못한 화자가 한 대 쥐어박았더니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서 엄마 귀에 들리게 하였다. 이렇듯 때로 언니인 화자에게까지 별명 값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권세가 있었던가. 그에게도 무지갯빛 꿈을 꾸는 사춘기가 찾아왔고, 그 무렵 부모님까지 차례로 잃었다. 고추밭에 터를 팔아 태어난 남동생이 자그마치 셋이나 되었으니 그 책임이 가벼울 수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 부모님은 자나 깨나 장남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농사지을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했던 탓에 가난을 벗어날 길은 오로지 장남이 공부를 많이 해서 훌륭하게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화자는 이 동생과 함께 부모님 평소 바람이었던, 장남과 그 아래 남동생의 교육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남아선호사상은 화자에게도 피해갈 수가 없었던 멍에 같은 것이었다.
당시 막 활성화된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은 인근 사람들에게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출구였다. 아니, 오빠나 남동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소녀들의 일터였다. 화자 역시 평일에는 이곳에서 일하고, 주말이나 야간에 틈틈이 집안 살림을 했다. 그도 모자라면 개발 바람이 불어 닥쳐 일거리가 늘어난 공사판에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날랐다. 젊어 한때 화자는 세상의 불공평에 기막혀했다. 가난만 물려주고 떠난 부모를 탓하며 원망했다.
요즘 오야땡은 그야말로 별명에 맞은 삶을 살고 있다. 첨단시대에 주눅 들지 않고 모르는 것은 조건 없이 배우는 용감무쌍한 사람이 되었다. 자동차가 없는 내게 발이 되기를 자청할 만큼 마음 씀도 넉넉하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못다 한 꿈을 펼치고 있다. 그런 동생이 화자의 힘이고 자랑이다.
작품②는 남동생 이야기다. 동생은 6남매 중 다섯째면서 차남이다. 어릴 때부터 속이 깊었다. 간혹 어머니가 형의 밥그릇에 달걀노른자를 넣어도 못 본 척했다. 용돈이 생기면 모가 닳도록 아껴 쓰고, 힘든 일을 시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낼 만큼 성실했다. 부모님은 착하고 무던한 그의 성품을 미루어, 이담에 꼭 부자가 될 놈이라고 칭찬하셨다. 화자는 형제 중에 유독 이 동생을 편애한다. 한때 부모를 대신했던 화자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둘만이 아는 아픈 사연을 공유했기에 애틋한 정이 생겼을 정도다. 부모님은 살아생전 자식 교육에 각별한 욕심을 가지셨다. 한 끼를 건너뛰는 한이 있어도 중고등학교는 꼭 시키겠다는 말씀을 귀가 따갑게 하셨다.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고, 자식들의 상급학교 진학은 위태로운 바람이 되고 말았다.
동생은 근근이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더 이상의 진학은 불가능했다. 손에서 책을 놓게 된 동생은 어른들 따라 땔나무를 하러 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소일했다.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나무꾼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화자인 누나의 의지로 억지로나마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킨 것이다. 그냥 입학이라도 시켜놓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동생이 형이 물려준 낡은 교복을 입고 누나를 찾아왔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은 당연하였다. 돈 이야기를 할 것이 뻔했고 누나는 그 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참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속 깊은 동생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돌아갔을 뿐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서정적인 문체까지 더욱 간절하고 애절한 형제간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려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한 동생은 곧바로 직장을 가졌다. 그의 성실함은 직장 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은행으로 달려가고, 한두 벌 작업복으로 사철을 견뎌냈다. 비가 몹시 쏟아지는 공휴일에 달걀 한 판을 삶아 아내와 나누어 먹으면서, 처음으로 넉넉함과 행복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운의 소년은 어느새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렸다. 비켜 갈 수 없는 게 세월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그 부자란 말이 화자를 위로한다. 화자는 이제 얼어있던 아픈 기억들이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고도 하며, 같은 혈육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한다.
멀리 호주에서 삶의 터전을 내린 딸아이도 그동안 아들 둘을 키우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국가가 인증하는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아이들을 가르친다. 또 복지사자격증도 갖게 되어 남의 나라에서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자랑한다. 해가 갈수록 성장해 가는 딸아이 모습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수필 「사랑하는 홀씨에게」 부분) 자식이 무탈하고 안전하니 부모도 편안하다.
3. 문학으로의 부활을 꿈꾸며
결국, 오늘날 배종화가 늦은 나이임에도 문학을 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사랑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이루 낼 수 있었던 소중한 자산이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선생님의 희망적인 격려다. 선생님께서 한번은 예고 없이 가정방문을 나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장래희망을 물으셨고,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몹시 당황하며 대답을 못 했는데, 선생님은 "너는 국어를 잘하니까 작가가 되면 될 텐데 뭐가 그리 어려워"하면서 공책과 연필을 한 아름 안겨주고 가셨다. 그날 이후 선생님이 한없이 좋아졌다. 그리고 국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이후로 귓전에는 다정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스며들었다. "그래 장래희망은 결정했니?"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시시각각 달라져 혼란스럽기만 하던 꿈들을 깡그리 지워 버렸다. "그리고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꿈은 때로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추거나 헤매었지만 먼 길을 돌아 기어이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수필 「그리운 선생님」 부분)
배종화는 요즘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일하는 공간은 세평 남짓한 원두 커피점이다. 출입문은 따로 없고 사방이 확 트인 합포구청 지하 1층 통로 옆이다. 정면으로는 ○○은행 지점이 있고, 양쪽 옆과 위층은 구청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작가는 그곳에서 엿새에 한 번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신나게 일한다. 마음은 한층 젊어졌고 일상은 전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내 일터는 세상을 보는 나만의 창이다. 은행 문이 열리면 온종일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저축하러, 빚내러, 공과금 내러 각계각층 각양각색이다. 젖먹이를 안고 오는 꿈 많은 부부, 장성한 자식을 앞세우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노인, 혼자서 겨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초라한 노인도 본다. 나는 이 창을 통해 아침 햇살 같은 젊음을 만나고,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도 만난다. 세상의 빛과 그늘을 만나고, 행복과 불행도 보게 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내 글의 소재로 삼는다.(중략) 나는 아직은 훌륭한 바리스타도 아니고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지만, 필요한 용돈은 직접 벌어 쓰고 원고청탁이 오면 역량껏 글을 써서 보낸다. 이만하면 노후를 잘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부분
이제 그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배종화가 아니라 자신감 넘치고 활력 있게 일하는 직업인이다.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작가 배종화로 우뚝 서 있음이다. 그는 일하는 것에도 자부심이 있고, 작가라는 꿈을 이룬 것에 대하여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의 삶의 모든 체험은 모두가 문학의 소재로 사유한다. 먼 옛날부터 꾸어온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고 있다. 배종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벽 앞에서 부딪치고 넘어지는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부모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요. 책 제목으로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선택한 건 힘든 세월을 살아낸 저의 근황을 부모님께 자랑하는 의미로 택했습니다. 세상의 파고를 넘고 오늘을 일궈낸 저의 뿌듯한 자존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 글을 쓰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올곧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이미 한 발짝 다가섰다고 표현한다. 육신도 감성도 이미 저물어 볼품없어진 화자를,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준 문학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노후를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다음 몇 작품을 더 살펴보자.
①수필가! 내게는 과분한 호칭이다. 글을 쓴다는 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다듬는 일이기에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비우리라. 설령 타고난 성향일지라도 바꿔야 한다면 과감히 바꾸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독자의 가슴에 영원히 감동으로 남을 글 한 편 쓰고 싶다. 그렇게 해보자고, 자고 나면 나를 다독인다. 나는 수필가니까.
- 「나는 수필가」 부분
②예술인 패스는 신청하기 전부터 많이 설레었다. 자나 깨나 작가가 꿈이었고 늦게나마 그 꿈을 이룬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간절한 바람 뒤에 이룬 꿈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더구나 이 증서는 9999년까지 작가의 신분을 인증받는 영원한 현직 증명서가 아닌가. 지금 나는 더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진 모습인가. 평범하게 나이 들기보다는 영원히 문학인으로 산다는 뿌듯함에 전에 없던 긍지를 가지고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 「9999년」 부분
③굳이 이 만년필을 선물한 동생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기왕이면 세월이 가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명품처럼, 반듯하고 아름다운 글을 써보라는 간절함이 아닐까. 이제는 나도 장인의 자세로 글을 써야겠다. 성급하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은 버리련다. 지금부터라도 차분하고 진중하게 진솔한 마음을 글에 담아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루 한 문단씩이라도 글을 쓰고 다듬어가면서 만년필에 담긴 의미를 되살려가야겠다.
- 「동생의 선물」 부분
작품①은 수필가로서의 등단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일인지를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글이다. 지금은 비록 버거운 일일지 모르나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비우며 독자의 가슴에 영원히 감동으로 남을 글 한 편 쓰고 싶다는 수필가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을 밝히고 있다. 작품②는 예술인 패스를 발급받는 이야기다. 예술인패스란 국가에서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이 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하고, 3년간 예술 활동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물이 있어야 한다. 이 증서가 있어야 국가로부터 예술인으로서의 각종 혜택과 대우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니 화자로서는 이 증서를 얼마나 받고 싶어 했겠는가. 그리하여 화자는 작가로서의 신분을 인증받는 영원한 현직 증명서라며 행복에 겨워하며, 문학인으로 산다는 뿌듯함에 전에 없던 긍지를 가지는 것이다. 작품③은 동생으로부터 등단선물로 만년필을 받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만년필을 선물한 동생 마음을 화자는 잘 헤아리고 있다. 그것은 세월이 가도 사랑받는 명품처럼,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을 써보라는 동생의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인의 자세로 글을 쓰겠다고, 성급하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은 버리겠다고, 차분하고 진중하게 진솔한 마음을 담아내겠다고, 하루 한 문단씩이라도 글을 쓰고 다듬어가면서 만년필에 담긴 의미를 되살려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4. 마무리를 대신하며
남편은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지녔다. 주름살이 늘어난 지금도 여전히 먼저 떠난 절친의 빈자리가 공허하다며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한다. 기분 좋은 날에는 친구와 불렀던 옛 노래를 흥얼거리고, 오늘처럼 적적한 밤에는 술잔을 앞에 놓고 친구가 남긴 시를 읊는다. 옆에 앉은 나라도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에 젖어 들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무관심한 내가 야속한지 남은 소절을 읊는 남편 목소리가 젖어있다.
- 「분위기 없는 여자」 부분
이 작품은 남편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은 소원하던 갤러리 겸 사무실을 열었다. 평생 소장한 그림자랑도 할 겸,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구 만나는 장소로도 활용한다. 처음에는 반대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작가가 이 공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전보다 활기차고 건강해진 남편 모습도 보게 되어 기쁘다. 나이 들면 왜 열린 공간이 필요한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먼저 떠난 절친의 빈자리가 공허하다며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로맨티시스트다. 섬세하고 여린 감성까지 지녔다. 함께 늙어가는 남편이 곁에 있어 더욱 든든하다.
누구의 삶인들 절망의 연속이 아니며 누구의 사연인들 슬프지 않으랴. 따지고 보면 살아있는 것 치고 허무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이런저런 이유로 더는 삶을 버티기가 힘겨울 때 어디선가 멀고도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래도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문학이란 자기의 삶을 사막에서 건져내는, 아니면 자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그것이 때로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한다. 놀라운 건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약효를 발휘하고 지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도 달콤하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한 줄의 수필을 쓰거나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모두 작은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행위이거나, 아니면 자기 삶의 부정을 씻어내는 씻김굿을 펼치는 것과 같다. 배종화의 수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음이다.
이상에서 배종화의 문학세계를 살펴보았다. 정리해보면, 배종화의 수필은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가고 있다. 그는 등단 5년 만에 제7회 진등재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배종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수한 역경을 맞이하지만,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극복해 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인 작가로서 우뚝 서게 된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승리라 할 수가 있다. 그가 훌륭한 작가로서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배려와 사랑, 형제지간의 특별하고도 남다른 우애가 오늘날 배종화를 키워냈다. 지금 배종화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예술인 배종화로 서 있음이다. 이제 배종화는 먼 옛날부터 꿈꾸어온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 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노후를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또한, 독자를 위하여 감동적인 글 한 편 남기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지고 있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배종화론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1. 감동의 인간승리
배종화 수필가는 2017년 《경남문학》 수필부문 신인상과 2022년 《선수필》 봄호 재등단으로 작가가 되었다. 등단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필 공부에 매진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진등재문학회 부회장직을 맡아 그 임무를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한 꿈과 포부가 그만큼 내면에서 들끓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그는 단 하나의 강의도 놓치지 않았고 부과되는 습작을 피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될 정도로 무섭게 성장을 해갔다.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등단 5년이 지난 2022년 「아버지와 까꾸리」란 작품으로 제7회 진등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잘 알다시피 진등재문학상은 수필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수필 문단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하며, 수필 문학 본류를 향한 염원에 밀알이 되고자 제정된 영예로운 상이다. 여기서 문학상 심사를 맡은 현순영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호평을 남긴다.
배종화의 「아버지와 까꾸리」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글이다. 작가는 까꾸리라는 소재를 통해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이 어떤 의미와 빛깔을 지닌 감정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는 거의 평생 까꾸리를 손수 만들어 파시면서 가족을 지키셨다. 가난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헌신적이셨으며 사랑이 많으셨다. 아버지가 구식 연장과 손으로 정성을 다해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과 모습을 서술한 대목,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실 때 간혹 값싼 아귀와 복어를 사다 풍요로운 만찬을 베푸셨던 일을 감각적으로 서술한 대목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특히 크게 기여한다. 아버지는 헌신적으로 열심히 사셨지만, 목숨이 다해 간다는 것을 아셨을 때 묵묵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셨다. 그 모습을 작가는 까꾸리와 겹쳐 놓았다. 까꾸리는 쓰임새 많은 실용적 도구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음을 환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은 시대의 변화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라져 버린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 작품의 미덕들은 작가의 수필작법이나 테크닉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먼저, 작가가 아버지를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삶을 그만큼 깊이 응시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까꾸리쟁이 아버지로 인해 겪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직조하였는데 그 결이 생생하다. 특히 아버지가 까꾸리를 만드시던 과정을 서술한 내용은 작가가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얼마나 깊이 응시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또한,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대와 가치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과 질문으로 확장한 것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질곡의 한 시대를 숙명인 양 살다 가신"한 인간으로 관조하고 이해하는 성숙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좋은 글에는'한 점 맑음'이 있다. 좋은 글의 한 점 맑음은 작가의 인간적 성숙을 증명하며 독자들을 고양시키는 그 무엇이다. 작가의 문장력 또한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다.
- 《진등재 수필》 제7호(2021년 10월)
위 심사평에서 현순영 평론가는 수상 작가의 세 가지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작가는 수필작법이나 테크닉이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소재에 대한 응시가 깊은 통찰력을 획득했기에 아버지를 더욱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세 번째로는 문장력이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뒷받침하고 있을 만큼 수려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극찬을 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수필문학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작기법까지 실제에 적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숙하다. 수상소감에서는
"철없는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을 가진 적이 있었지요.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아 꿈을 묻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리라 다짐도 하였지만, 삶에 쫓겨 돌아볼 여지가 없었답니다. 불현듯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고 오래 뒤척였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품고 살았다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불씨를 되살려 보겠다는 결심이다. 무엇보다도 그 꿈이 생각나면 밤잠을 설치며 오래 뒤척인다는 것이다. 그 결기 찬 꿈과 야망이 오늘의 작가를 일으켜 세운 힘임이 분명하다.
배종화 수필가가 태어난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해이다. 3년간 동족상쟁의 비극적 전쟁으로 온 국토는 폐허로 초토화되고 만다. 전쟁 후 파괴된 나라를 수복하고 건설해 나가는 과정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힘겨운 고난의 시기였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혹독하게 가난하고 모두가 배고픈 시기였다. 도시의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창원군 웅남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로서도 배움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더구나 남보다 먼저 부모를 잃은 작가에게 교육이란 요원한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는 그 아픔의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 불가능한 일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가는 것이다. 검정고시라는 제도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을 정도다. 그리하여 작가는 중.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이수를 하며 배움이란 목마름을 해소해간다. 그 힘겨운 단계들을 하나하나 밟아 오르며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학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그가 국문과에 입학한 것은 당연히 문학에 대한 꿈 때문이다. 이 꿈을 위해서 작가는 졸업 후에는 대학의 수필교실을 찾아왔고, 창작중심의 교육과정을 중시하는 수필교실에서 그는 드디어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만하면 인간승리가 아닌가 싶다.
2. 가족 사랑이 피워낸 한 떨기 꽃
배종화 작가는 진등재문학상을 받은 다음 해인 2022년, 대망의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면서 원고를 보내왔다. 수필공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더구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디딤돌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니 더욱 반길 일이다.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보았다. 모두 50편의 주옥같은 작품이 5부로 편집되어 있었다. 제1부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제2부 문학으로 부활의 꿈, 제3부 내 삶의 둥지, 제4부 그때 그 시절, 제5부 나를 깨운 시간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늦은 나이에 그의 이러한 문학적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일 텐데, 언제 공부하고, 일하고, 글 쓰고, 작가가 되어 책까지 내게 되었는지 신통하기만 했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세끼 밥 먹기도 어렵던 봄날이었다.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함박꽃 뿌리를 듬뿍 파내오셨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뿌리는 튼실해 보였다. 이윽고 집에서 키우던 수탉을 잡아서 털을 뽑고 다듬은 다음, 잘 씻은 꽃 뿌리와 함께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폈다. 뿌리와 닭이 어느 정도 물러질 즈음 지난해 말려둔 대추를 한 움큼 넣고 한나절을 뭉근하게 더 끓였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손에는 뽀얀 국물을 담은 국그릇이 들려있었다. 무슨 국이냐며 묻는 내게, "니 그 한 달에 한 번 꽃배 앓는데 좋은 특효약이다." 하시고는 함박꽃잎 하나를 국물에 띄워주며 천천히 식혀가면서 마시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받아들긴 하였지만 얼마 전까지 좁은 마당에서 꼬꼬 대며 놀던 수탉 생각을 하니 차마 마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게 되자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급기야는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다.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전장을 지키는 장수가 저럴까 싶을 만큼 냉정하고 굳건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 「꽃 중의 꽃」 부분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릴 때 화자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작았지만, 얼굴도 병색이 짙어 볼품없는 아이였다. 상심한 어머니는 동무들이 놀러 오면 수시로 나란히 세워 키를 재거나, 몸무게를 어림으로 비교해 보시고는 속상해하셨다. 아버지가 인근에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가 성장기에 좋다는 한약재를 구해 달여 먹였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생리통 때문에 몸져눕기까지 하였으니 어머니의 큰 근심거리였다. 급기야 어머니는 집안의 재산이나 다를 바 없는 수탉을 잡아 가장 아끼는 함박꽃의 뿌리를 넣어 푹 고아서 약재를 만들어 화자에게 권한다. 이를 눈치챈 동생들이 코를 킁킁대며 달려왔지만, 어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국그릇을 지키셨다. 그렇게 애지중지 생각하던 장남도, 고추밭에 터를 잘 팔았다고 추켜세우던 두 살 터울 여동생도 예외 없이 쫓겨났다. 그때 분명 보았다. 화자에 대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함박꽃과 어머니의 사랑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작가에게 함박꽃은 어머니이며,?어머니의 사랑이다.?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주제가 매우 생생하게 형상화되었다.?문장도 간결하면서 섬세하다. 작가가 문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작가는 이처럼 부모님의 사랑도 독차지를 했지만, 형제들과의 우애와 사랑도 남다르다.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①오야, 오야땡은 내 여동생 별명이다. 어릴 때부터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은 사내아이와 진배없었다. 행실 또한 천방지축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들 사내아이로 오해했다. 엄마가 밖에 외출할 때면 무조건 따라나섰고 싫증 난 고무신은 돌에 문지르거나 칼로 찢어 새 운동화를 사달라고 생떼를 썼다. 내가 그런 행동을 보였다면 혼이 나고 남았겠지만, 부모님은 능히 그 청을 들어주셨다. 고추밭에 터를 팔아 대 이를 아들을 낳게 한 덕분이었다.
남아선호 시대 첫아들을 잃고 딸만 내리 셋을 낳은 부모님께 그보다 더 큰 효가 세상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런 자식을 어여삐 여긴 부모님은 호적에 등록된 이름 대신 오야라는 별명을 만들어 공로를 치하했다. 오야는 우두머리, 두목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말이 아닌가. 위의 언니가 못한 일을 능히 해냈으니 그 정도 호칭은 당연하다고 여기신 것이리라. 친척이나 동네 어른들도 동생이 지나가면 엄지를 치켜세우고 "어이 오야!"하며 큰 소리로 불러주고 칭송하였다. 신이 난 오야는 어깨를 으스대며 보무도 당당하게 동네를 활보했다.
- 「오야, 오야땡」 부분
②밤낮으로 속을 끓이던 어느 날, 나는 궁여지책으로 인근 사립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한 지 두 해가 되던 해였다. 행여 주변의 누가 알까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신입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서류를 조사해 본 뒤, 유도부 특기생으로 입학을 허락해 주셨다. 어릴 때부터 몸이 단단하여 씨름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에게 잘 어울리는 부서였다. 그렇게 동생은 꿈에 그리든 고등학생이 되었다.(중략)
눈이 많이 내려 자동차도 다니지 못하는 추운 겨울날, 동생이 내 일터를 찾아왔다. 온몸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눈사람 형상을 하고 서였다. 대책 없이 입학만 시켜놓고 조마조마하던 내 가슴은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마주보기 두렵고 민망해서 애써 눈길을 피했다. 그런 누나 마음을 어찌 모를까. 눈 내리는 창밖만 한참 응시하던 그는 할 말은 차마 꺼내지도 못한 채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어지럽게 남겨진 동생의 발자국 위로 무정하게 흰 눈만 내려 쌓였던, 그날의 막막함을 어찌 잊으랴.
- 「마음부자 내 동생」 부분
인용 작품 ①은 화자의 바로 밑 여동생 이야기다. 동생은 부모님 보호 아래 행복한 유년을 누렸다.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냇가에서 멱이나 감고 물고기를 잡으며 온종일 놀아도 탓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신식 운동화를 신고 다 헤진 화자의 검정 고무신을 툭툭 차고 지나간 적도 있었다. 참다못한 화자가 한 대 쥐어박았더니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서 엄마 귀에 들리게 하였다. 이렇듯 때로 언니인 화자에게까지 별명 값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권세가 있었던가. 그에게도 무지갯빛 꿈을 꾸는 사춘기가 찾아왔고, 그 무렵 부모님까지 차례로 잃었다. 고추밭에 터를 팔아 태어난 남동생이 자그마치 셋이나 되었으니 그 책임이 가벼울 수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 부모님은 자나 깨나 장남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농사지을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했던 탓에 가난을 벗어날 길은 오로지 장남이 공부를 많이 해서 훌륭하게 되어 집안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화자는 이 동생과 함께 부모님 평소 바람이었던, 장남과 그 아래 남동생의 교육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남아선호사상은 화자에게도 피해갈 수가 없었던 멍에 같은 것이었다.
당시 막 활성화된 마산수출자유지역공단은 인근 사람들에게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출구였다. 아니, 오빠나 남동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소녀들의 일터였다. 화자 역시 평일에는 이곳에서 일하고, 주말이나 야간에 틈틈이 집안 살림을 했다. 그도 모자라면 개발 바람이 불어 닥쳐 일거리가 늘어난 공사판에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날랐다. 젊어 한때 화자는 세상의 불공평에 기막혀했다. 가난만 물려주고 떠난 부모를 탓하며 원망했다.
요즘 오야땡은 그야말로 별명에 맞은 삶을 살고 있다. 첨단시대에 주눅 들지 않고 모르는 것은 조건 없이 배우는 용감무쌍한 사람이 되었다. 자동차가 없는 내게 발이 되기를 자청할 만큼 마음 씀도 넉넉하다.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못다 한 꿈을 펼치고 있다. 그런 동생이 화자의 힘이고 자랑이다.
작품②는 남동생 이야기다. 동생은 6남매 중 다섯째면서 차남이다. 어릴 때부터 속이 깊었다. 간혹 어머니가 형의 밥그릇에 달걀노른자를 넣어도 못 본 척했다. 용돈이 생기면 모가 닳도록 아껴 쓰고, 힘든 일을 시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낼 만큼 성실했다. 부모님은 착하고 무던한 그의 성품을 미루어, 이담에 꼭 부자가 될 놈이라고 칭찬하셨다. 화자는 형제 중에 유독 이 동생을 편애한다. 한때 부모를 대신했던 화자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둘만이 아는 아픈 사연을 공유했기에 애틋한 정이 생겼을 정도다. 부모님은 살아생전 자식 교육에 각별한 욕심을 가지셨다. 한 끼를 건너뛰는 한이 있어도 중고등학교는 꼭 시키겠다는 말씀을 귀가 따갑게 하셨다.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고, 자식들의 상급학교 진학은 위태로운 바람이 되고 말았다.
동생은 근근이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더 이상의 진학은 불가능했다. 손에서 책을 놓게 된 동생은 어른들 따라 땔나무를 하러 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소일했다.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나무꾼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화자인 누나의 의지로 억지로나마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킨 것이다. 그냥 입학이라도 시켜놓고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동생이 형이 물려준 낡은 교복을 입고 누나를 찾아왔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은 당연하였다. 돈 이야기를 할 것이 뻔했고 누나는 그 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참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속 깊은 동생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돌아갔을 뿐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서정적인 문체까지 더욱 간절하고 애절한 형제간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려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한 동생은 곧바로 직장을 가졌다. 그의 성실함은 직장 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월급을 받으면 은행으로 달려가고, 한두 벌 작업복으로 사철을 견뎌냈다. 비가 몹시 쏟아지는 공휴일에 달걀 한 판을 삶아 아내와 나누어 먹으면서, 처음으로 넉넉함과 행복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화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청운의 소년은 어느새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렸다. 비켜 갈 수 없는 게 세월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그 부자란 말이 화자를 위로한다. 화자는 이제 얼어있던 아픈 기억들이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고도 하며, 같은 혈육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한다.
멀리 호주에서 삶의 터전을 내린 딸아이도 그동안 아들 둘을 키우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국가가 인증하는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아이들을 가르친다. 또 복지사자격증도 갖게 되어 남의 나라에서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자랑한다. 해가 갈수록 성장해 가는 딸아이 모습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수필 「사랑하는 홀씨에게」 부분) 자식이 무탈하고 안전하니 부모도 편안하다.
3. 문학으로의 부활을 꿈꾸며
결국, 오늘날 배종화가 늦은 나이임에도 문학을 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이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사랑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이루 낼 수 있었던 소중한 자산이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시절 선생님의 희망적인 격려다. 선생님께서 한번은 예고 없이 가정방문을 나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장래희망을 물으셨고,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몹시 당황하며 대답을 못 했는데, 선생님은 "너는 국어를 잘하니까 작가가 되면 될 텐데 뭐가 그리 어려워"하면서 공책과 연필을 한 아름 안겨주고 가셨다. 그날 이후 선생님이 한없이 좋아졌다. 그리고 국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이후로 귓전에는 다정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스며들었다. "그래 장래희망은 결정했니?"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시시각각 달라져 혼란스럽기만 하던 꿈들을 깡그리 지워 버렸다. "그리고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꿈은 때로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추거나 헤매었지만 먼 길을 돌아 기어이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수필 「그리운 선생님」 부분)
배종화는 요즘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일하는 공간은 세평 남짓한 원두 커피점이다. 출입문은 따로 없고 사방이 확 트인 합포구청 지하 1층 통로 옆이다. 정면으로는 ○○은행 지점이 있고, 양쪽 옆과 위층은 구청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작가는 그곳에서 엿새에 한 번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신나게 일한다. 마음은 한층 젊어졌고 일상은 전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 작품을 한번 보자.
내 일터는 세상을 보는 나만의 창이다. 은행 문이 열리면 온종일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저축하러, 빚내러, 공과금 내러 각계각층 각양각색이다. 젖먹이를 안고 오는 꿈 많은 부부, 장성한 자식을 앞세우고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노인, 혼자서 겨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초라한 노인도 본다. 나는 이 창을 통해 아침 햇살 같은 젊음을 만나고,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도 만난다. 세상의 빛과 그늘을 만나고, 행복과 불행도 보게 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내 글의 소재로 삼는다.(중략) 나는 아직은 훌륭한 바리스타도 아니고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지만, 필요한 용돈은 직접 벌어 쓰고 원고청탁이 오면 역량껏 글을 써서 보낸다. 이만하면 노후를 잘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부분
이제 그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배종화가 아니라 자신감 넘치고 활력 있게 일하는 직업인이다.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작가 배종화로 우뚝 서 있음이다. 그는 일하는 것에도 자부심이 있고, 작가라는 꿈을 이룬 것에 대하여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의 삶의 모든 체험은 모두가 문학의 소재로 사유한다. 먼 옛날부터 꾸어온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고 있다. 배종화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벽 앞에서 부딪치고 넘어지는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부모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요. 책 제목으로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선택한 건 힘든 세월을 살아낸 저의 근황을 부모님께 자랑하는 의미로 택했습니다. 세상의 파고를 넘고 오늘을 일궈낸 저의 뿌듯한 자존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또 글을 쓰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올곧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이미 한 발짝 다가섰다고 표현한다. 육신도 감성도 이미 저물어 볼품없어진 화자를,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준 문학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노후를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다음 몇 작품을 더 살펴보자.
①수필가! 내게는 과분한 호칭이다. 글을 쓴다는 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다듬는 일이기에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여전히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비우리라. 설령 타고난 성향일지라도 바꿔야 한다면 과감히 바꾸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독자의 가슴에 영원히 감동으로 남을 글 한 편 쓰고 싶다. 그렇게 해보자고, 자고 나면 나를 다독인다. 나는 수필가니까.
- 「나는 수필가」 부분
②예술인 패스는 신청하기 전부터 많이 설레었다. 자나 깨나 작가가 꿈이었고 늦게나마 그 꿈을 이룬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 간절한 바람 뒤에 이룬 꿈을 증명하는 자격증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더구나 이 증서는 9999년까지 작가의 신분을 인증받는 영원한 현직 증명서가 아닌가. 지금 나는 더는 바랄 것 없이 행복하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면 얼마나 달라진 모습인가. 평범하게 나이 들기보다는 영원히 문학인으로 산다는 뿌듯함에 전에 없던 긍지를 가지고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 「9999년」 부분
③굳이 이 만년필을 선물한 동생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기왕이면 세월이 가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명품처럼, 반듯하고 아름다운 글을 써보라는 간절함이 아닐까. 이제는 나도 장인의 자세로 글을 써야겠다. 성급하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은 버리련다. 지금부터라도 차분하고 진중하게 진솔한 마음을 글에 담아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루 한 문단씩이라도 글을 쓰고 다듬어가면서 만년필에 담긴 의미를 되살려가야겠다.
- 「동생의 선물」 부분
작품①은 수필가로서의 등단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일인지를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글이다. 지금은 비록 버거운 일일지 모르나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비우며 독자의 가슴에 영원히 감동으로 남을 글 한 편 쓰고 싶다는 수필가로서의 당당한 자부심을 밝히고 있다. 작품②는 예술인 패스를 발급받는 이야기다. 예술인패스란 국가에서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이 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등단을 해야 하고, 3년간 예술 활동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물이 있어야 한다. 이 증서가 있어야 국가로부터 예술인으로서의 각종 혜택과 대우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니 화자로서는 이 증서를 얼마나 받고 싶어 했겠는가. 그리하여 화자는 작가로서의 신분을 인증받는 영원한 현직 증명서라며 행복에 겨워하며, 문학인으로 산다는 뿌듯함에 전에 없던 긍지를 가지는 것이다. 작품③은 동생으로부터 등단선물로 만년필을 받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만년필을 선물한 동생 마음을 화자는 잘 헤아리고 있다. 그것은 세월이 가도 사랑받는 명품처럼,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을 써보라는 동생의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인의 자세로 글을 쓰겠다고, 성급하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은 버리겠다고, 차분하고 진중하게 진솔한 마음을 담아내겠다고, 하루 한 문단씩이라도 글을 쓰고 다듬어가면서 만년필에 담긴 의미를 되살려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4. 마무리를 대신하며
남편은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지녔다. 주름살이 늘어난 지금도 여전히 먼저 떠난 절친의 빈자리가 공허하다며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한다. 기분 좋은 날에는 친구와 불렀던 옛 노래를 흥얼거리고, 오늘처럼 적적한 밤에는 술잔을 앞에 놓고 친구가 남긴 시를 읊는다. 옆에 앉은 나라도 주거니 받거니 분위기에 젖어 들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무관심한 내가 야속한지 남은 소절을 읊는 남편 목소리가 젖어있다.
- 「분위기 없는 여자」 부분
이 작품은 남편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은 소원하던 갤러리 겸 사무실을 열었다. 평생 소장한 그림자랑도 할 겸,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구 만나는 장소로도 활용한다. 처음에는 반대하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작가가 이 공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전보다 활기차고 건강해진 남편 모습도 보게 되어 기쁘다. 나이 들면 왜 열린 공간이 필요한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먼저 떠난 절친의 빈자리가 공허하다며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로맨티시스트다. 섬세하고 여린 감성까지 지녔다. 함께 늙어가는 남편이 곁에 있어 더욱 든든하다.
누구의 삶인들 절망의 연속이 아니며 누구의 사연인들 슬프지 않으랴. 따지고 보면 살아있는 것 치고 허무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이런저런 이유로 더는 삶을 버티기가 힘겨울 때 어디선가 멀고도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그래도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문학이란 자기의 삶을 사막에서 건져내는, 아니면 자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그것이 때로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한다. 놀라운 건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약효를 발휘하고 지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도 달콤하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한 줄의 수필을 쓰거나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모두 작은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행위이거나, 아니면 자기 삶의 부정을 씻어내는 씻김굿을 펼치는 것과 같다. 배종화의 수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음이다.
이상에서 배종화의 문학세계를 살펴보았다. 정리해보면, 배종화의 수필은 파죽지세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가고 있다. 그는 등단 5년 만에 제7회 진등재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그런 거인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배종화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고난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수한 역경을 맞이하지만,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극복해 낸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인 작가로서 우뚝 서게 된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간승리라 할 수가 있다. 그가 훌륭한 작가로서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절대적인 배려와 사랑, 형제지간의 특별하고도 남다른 우애가 오늘날 배종화를 키워냈다. 지금 배종화의 삶과 사유는 완전히 변해있다. 첨단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이치를 헤아리는 예술인 배종화로 서 있음이다. 이제 배종화는 먼 옛날부터 꿈꾸어온 꿈을 이룬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인지를 몸소 즐기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로 다시 타오르게 해 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노후를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또한, 독자를 위하여 감동적인 글 한 편 남기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지고 있다.
목차
목차
■ 작가의 말
1부_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희망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벽 앞에서
여행
잣대
이심전심
특산물 유감
마음이란 놈 참
남편의 공간
이곳에도 볼거리가 있다
2부_문학으로 부활의 꿈
9999
나는 수필가
분위기 없는 여자
황혼의 품격
봄봄
미스터 트롯
인공섬에 거는 기대
못 믿을 약속
누렁이 안부
잠 못 드는 밤
3부_내 삶의 둥지
아버지와 까꾸리
꽃 중의 꽃
짝사랑
사랑하는 홀씨에게
짝사랑을 위해서라면
제삿날 단상
동생의 선물
마음부자 내 동생
오야, 오야땡
4부_그때 그 시절
봄
남천南川 둑길을 걷다
역사와 삶
그리운 선생님
모텔을 예약하다
고향 친구
번개시장
만추에 취하다
첫사랑
그때 그 시절
5부_나를 깨운 시간
나태주 문학관
경주에서 올곧은 작가를 꿈꾸다
울릉도 독도 여행기
성인봉 정상에 서다
만지도의 봄
지리산
2018년 머릿골
꽃보다 아름다워
나를 깨우는 시간
예감
회한
■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1부_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희망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
벽 앞에서
여행
잣대
이심전심
특산물 유감
마음이란 놈 참
남편의 공간
이곳에도 볼거리가 있다
2부_문학으로 부활의 꿈
9999
나는 수필가
분위기 없는 여자
황혼의 품격
봄봄
미스터 트롯
인공섬에 거는 기대
못 믿을 약속
누렁이 안부
잠 못 드는 밤
3부_내 삶의 둥지
아버지와 까꾸리
꽃 중의 꽃
짝사랑
사랑하는 홀씨에게
짝사랑을 위해서라면
제삿날 단상
동생의 선물
마음부자 내 동생
오야, 오야땡
4부_그때 그 시절
봄
남천南川 둑길을 걷다
역사와 삶
그리운 선생님
모텔을 예약하다
고향 친구
번개시장
만추에 취하다
첫사랑
그때 그 시절
5부_나를 깨운 시간
나태주 문학관
경주에서 올곧은 작가를 꿈꾸다
울릉도 독도 여행기
성인봉 정상에 서다
만지도의 봄
지리산
2018년 머릿골
꽃보다 아름다워
나를 깨우는 시간
예감
회한
■ 해설
문학으로 부활한 꽃 중의 꽃
백남오(수필가·문학평론가)
저자
저자
배종화
배종화 수필가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2017년《경남문학》신인상, 2022년《선수필》신인상, 2021년에는 진등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진등재문학회, 선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며 수필집 『요즘 나는 이렇게 지낸다』를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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