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줏빛 꽃술은 햇살처럼 웃고(창연디카시선 14)
제차순 디카시집
경남 고성에서 활동 중인 제차순 작가는 창연디카시선 시리즈 열네 번째 디카시집 『자줏빛 꽃술은 햇살처럼 웃고』를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 〈마음이 접힌 하루〉에는 ‘생명’ 외 21편의 디카시, 2부 〈도둑 맞은 세월〉에는 ‘노을이 지다’ 외 20편의 디카시, 3부 〈서로의 가슴에 고이는 말들〉에는 ‘고목의 하루’ 외 20편의 디카시, 4부 〈어디쯤 왔을까〉에는 ‘입추’ 외 24편의 디카시 등 총 90편의 디카시와 이상옥 교수의 디카시집 해설 ‘노년문학의 새 지평’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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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노년문학의 새 지평
- 구원의 생명시학
이상옥(창신대 명예교수)
디카시는 2004년 경남 고성에서 지역 문예 운동으로 펼쳐져서 지금은 한국을 넘어 해외로도 확산되면서 디카시의 발원지로 일컬어지는 고성에 대한 관심 또한 뜨겁다. 한국디카시인협회와 한국디카시연구소가 고성에 터를 두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성읍내에는 두 단체의 사무실이 있고, 필자의 고향집에는 서재로도 사용하며 디카시 관련 업무를 보는 한국디카시연구소 별관 '시움'도 있다. 고성 장산숲에는 마을 주민들이 디카시 발원지 표지판도 세웠다. 장산숲에서는 매년 한국디카시연구소 주최로 경남고성국제디카시페스티벌이 열리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디카시의 발원지 고성답게 글향 이라는 디카시 전문 동아리도 있고, 한국디카시연구소에서는 고성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디카시 창작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생활문학으로서의 디카시를 보급하고 있다.
2019년 경남 고성에서 발기인 대회를 하고 2020년 정식 출범한 한국디카시인협회는 매년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또한 이병주 디카시공모전, 황순원 디카시공모전 등을 주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디카시인협회 경남지부를 비롯하여 제주지부, 대전충청지부 등의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대구, 부산, 전주, 광주, 서울 등의 지부도 속속 창립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디카시인협회 부설 국경 없는 디카시인회도 구성돼 글로벌 조직망 구축도 가속화되고 있다.
디카시의 발원지 고성에서 제차순 어르신이 팔순 기념 디카시집을 상재하게 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제차순 시인은 수필집도 상재해서 문재를 널리 알린 바 있다.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제차순 시인은 한국디카시연구소 고성 어르신 디카시 창작 프로젝트에 참가하여서 디카시 공부를 제대로 하였고, 타고난 문재를 발휘해 이번에 디카시집을 상재하게 된 것이다.
이번 디카시집은 구원의 생명 시학을 보여준다. 팔순 기념 디카시집은 무엇보다 노년 문학의 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시는 일반적으로 청춘의 문학이라고 해서 청춘의 아름다움과 고뇌 등이 세계시문학사를 수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시인들의 대표작도 노년의 작품보다는 한창 감성이 풍부할 때의 젊은 시절의 것들이 아닌가. 제차순 시인은 노년에 본격 문학의 길에 들어서서 노년의 실존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이번 디카시집 한 권을 위해 전 생을 살아온 것처럼 생의 모든 에너지를 투여한다. 이 디카시집은 생의 끝자락에 도달한 노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생의 허무를 극복하고 부활의 새로운 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 생을 바쳐 가정을 일구고 자녀들을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내고 이제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명을 견뎌내는 힘을 세상의 다른 무엇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로 견인해 낸다는 점에서 제차순 시인의 디카시집은 노년 문학의 새 지평을 연다.
제차순 시인은 세상과의 싸움은 물론이고 무너져 내리는 몸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생명으로 다시 일어서는 포즈를 보인다. 존재의 의미를 다른 대상에서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때로 분노하고 배척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수용하고 그것을 딛고 견디고 긍정하는 길로 간다.
이번 시집은 노년의 긍정적 리얼리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노년문학의 가능성을 한껏 제시한다.
딱딱한 세월 견디고 나니
내 마음 속
꿈틀거리는 꿈들
쏘옥 쏘옥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생명」
제차순 디카시집을 관통하는 구원의 생명 시학의 키워드가 되는 작품이다. 팔순 기념 디카시집은 제차순 시인에게는 시인으로 당당하게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 새 생명의 표징이라 해도 좋다. 딱딱하게 짓누르는 세월을 묵묵히 인고의 세월로 견뎌온 시인의 생명의 면류관이 아닌가.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연이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겠는가. 기적처럼 견고한 세월을 뚫고 이제 막 신생으로 피어 오른 초록의 싱싱한 생명을 보라. 이것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년의 문학이 탄식과 한탄과 회한을 넘어 생명의 찬가로 승리의 노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월의 절망적 무게를 비집고 한없이 연약하지만 피어 오른 푸른 생명은 인고한 노년만이 맛볼 수 있는 환희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중도하차의 길을 걷기도 했던가. 얼마나 무수한 절망과 한탄과 탄식의 세월을 넘어야 이런 생명의 시학에 도달할 수 있을까.
백옥인 얼굴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 또한 삐뚤이라
세월 따라 삐뚤어진 줄 몰랐네
-「살다 보니」
노년의 슬픔이 배인 작품이다. 여자의 일생이라 할 만하다. 바위에 투영된 노년의 리얼리티가 절절하다. 백옥인 얼굴이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 세월 따라 변한 모습을 정작 화자 자신은 모르고 살아 왔더란 말이다. 사는데 바빠서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몰랐다. 남편 돌보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작 자신은 잊고 살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장성해서 떠나고, 남편마저도 먼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고서야 자신을 보니, 이런 모습이었을 법하다. 이런 절망을 겪지 않고서는 생명과 부활의 시학에 도달할 수는 없다.
어디 다 두고 왔을까
어디 다 놓치고 왔을까
도둑맞은 내 청춘 찾으러 날아간다
-「경로당」
이 디카시는 한평생 가족을 지키며 자녀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노년이 되었고, 경로당에 모여든 같은 연륜의 새하얀 생을 새삼 목도한다. 어쩌면 경로당 마당에 민들레 갓털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고 썼지 않았을까. 아니면 집 마당이면 어떤가. 이 디카시의 영상은 시인을 포함한 노년의 객관적 상관물로 제시돼 언술을 넘어서는 노년의 정서를 대변한다. 민들레 갓털의 아래에는 노란 민들레 꽃이 피어 있다. 민들레 꽃은 청춘을 환기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시인도 한때는 노란 민들레꽃처럼 빛나는 청춘이었다. 아름다운 청춘의 기억인 민들레 꽃도 시간이 지나면 지고 그 자리에 솜방망이 모양의 호호백발의 갓털들이 씨앗을 안고 바람을 타고 흩어지게 될 터이다. 여기서 흩어지기 직전의 정황이 시인의 포즈이라고 하면, 절망적 정황인 것처럼도 보인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새로운 땅에서 싹을 틔우고 또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을 포함한 경로당의 어르신들은 모두 민들레 갓털의 포즈이지만 그것은 결코 비극적인 것만이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도둑맞은 내 청춘이라며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회복을 간절하게 염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의 길로 가는 것임을, 언술로 다 표현 못 다한 것을 영상이 말하고 있다. 이 디카시는 이중적 의미구조이다. 언술로는 탄식과 한탄을 표출하지만 영상의 의미구조를 통해서는 생의 긍정과 낙관을 드러낸다. 역설과 아이러니 구조라 할 만하다.
내 삶의 무게만큼
남겨진 가을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돌감나무」
백옥 같은 얼굴이던 것이 삐뚤어진 얼굴로 드러난 것에 절망하고 도둑맞은 청춘의 세월을 원망하고 탄식을 쏟아내기도 하는 언술이 왜 없겠는가마는 그런 절망과 분노를 넘어 돌감나무의 결실을 보여주며 생은 결코 도둑맞은 것이 전부가 아님을 돌감나무의 입으로 말한다. 생의 양가성이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며, 행복과 불행이 넘나드는 생이기에 어찌 모든 걸 긍정하고 낙관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분노하고 절망하며 탄식만 하는 것도 아니다. 깊은 생의 통찰을 통해서 담담히 생을 받아들이며 짓누르는 무게를 견뎌내는 노년의 정서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수다하게 말하지 않지만 생이 결코 가볍지도 헛되지도 않은 것임을 돌감 나무의 가득한 결실로 충분히 환기하는 것이다. 얼마나 노년이 장엄할 수 있는가를 언술이 아닌 영상으로 입증한 것이다.
지난밤 길냥이 친구가
어느 목로주점에서
약주 한 잔 드셨는가
제멋대로 헤매고 가셨구나
-「무법자」
이 디카시는 노년의 유머와 조커가 돋보인다. 도로 콘크리트를 양성시키는데 고양이가 밟고 가서 발자국이 생긴 걸 이렇게 언술하고 있다. 노년의 여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목을 무법자라는 다소 무서운 말로 설정했지만 여유와 아량이 느껴지는 것이, 산전수전 다 겪고 세상의 이치를 아는 노년의 넉넉한 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핀
벙어리 꽃
가깝고도 먼 이웃
거리 두고 앞만 바라본다
-「신풍경」
구원의 생명시학을 구현해 낸 노년의 담론은 코로나 시대의 신풍경으로도 변주 돼 드러난다. 시골의 할머니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벙어리 꽃이라고 은유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꽃은 일반적으로 청춘 시절을 표현하는 언사이지만 마스크 쓴 할머니들을 꽃은 꽃이되 벙어리 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마스크를 써서 벙어리 꽃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영상 한 컷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 돼서 이제 거리를 두고 앞만 바라보는 것이 어찌 코로나 시대로 한정되는 것이겠는가. 코로나가 환유하는 것은 노년의 풍경이고 현실이다. 코로나와 시골 할머니들의 병치는 의미의 자장을 확장한다. 노년의 소외와 쓸쓸함이 코로나의 환유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풍경은 매우 아이러니칼하다. 쓸쓸함 가운데서도 생의 여유와 낙관이 묻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세상을 견뎌낸 할머니들의 표정의 넉넉함은 마스크로 가려지지가 않는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세월을 능히 건너온 할머니들은 담담하고 여유롭다. 이 디카시의 영상은 역시 직접적 언술을 넘어서 낙관으로 표출된다. 여기서도 구원의 생명시학의 힘을 보여준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마음이 접히고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그 세월
-「침묵」
빈집에 열쇠가 채워지고 꽁꽁 닫힌 대문이 을씨년스럽게 클로즈업 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침묵이라고 말한다. 왜 침묵인지 그 이유가 언술 돼 있다. 그것은 큰 사건이 아니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접혀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세월을 보낸 것이다. 사람은 정서적 동물임을 드러낸다. 오랜 삶의 지혜로 포착한 생의 경구와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의 흥망성쇠도 실상은 이와 같은 작은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말 한 마디가 개인의 마음을 닫게 하고 국가의 명운까지 좌우한다. 점점 가벼워지는 오늘의 세태에 대한 어르신의 꾸중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평범하게 보이는 언사도 힘을 지니는 것은 구원의 생명시학을 구축해낸 한 생을 견딘 몸의 울림통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목차
목차
1부_마음이 접힌 하루
생명
돌감나무
골다공증
코로나
무법자
억지를 부리다
침묵
은하수
살다 보니
백 년 노송
질주
빈 의자
아스라이
도전
부평초
두더지 집
재활용
무기고
분수
흔적
고인돌
2부_도둑 맞은 세월
노을이 지다
경로당
칡꽃의 일생
기다림
옹이
수행
보릿고개
농심
저울
고대광실
꿈
엉겅퀴
상사화
화무십일홍
회춘
우리 같이 가입시더
월동준비
엄마 나무
나의 애장품
만학
3부_서로의 가슴에 고이는 말들
고목의 하루
아버지의 벗
신풍경
솜방망이
천년의 사랑
추석 앞날
우리 집 정원
어린 천사
돌탑의 꿈
헝클어진 실타래
억새
할미꽃
춘설
토닥토닥
좋은 시절
소풍
옛 추억
쉼터
어깨동무
곰방대
4부_어디쯤 왔을까
입추
외면
횡재
웃음보따리
담쟁이의 사계
- 어부바(봄)
- 약속(여름)
- 명화(가을)
- 수묵화(겨울)
소원 나무
상족암
어허야? 풍년
거리공연
옹골차다
보호수
만세 삼창
유리 벽 사랑
꽃이 진 자리
만추
흑진주
■ 해설
노년문학의 새 지평
- 구원의 생명시학
이상옥(창신대 명예교수)
저자
저자
현재 거류면 송산리 송정에서 거주
어르신 디카시 창작 프로젝트 수강
디카시 창작 수업'나도 시인' 수강 외 다수
고성문화원, 고성향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자서전 『인생살이 그렇더라』
2022년 디카시집 『자줏빛꽃술은 햇살처럼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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