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창연 산문선 4)
홍옥선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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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홍옥선 수필가는 첫 수필집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를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에는 ‘기억의 무게’ 외 9편의 수필, 2부에는 ‘여름날의 동화’ 외 9편의 수필, 3부에는 ‘마음을 훔치다’ 외 9편의 수필, 4부에는 ‘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외 9편의 수필, 5부에는 ‘오래된 시간들’ 외 8편의 수필 등 총 49편의 수필과 허숙영 수필가의 해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이 실려 있다.
허숙영 수필가는 해설에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다.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삼킨 아픔이 느껴졌다. 유년의 가난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글로 재정립하면서 윤색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왜곡되어 나타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데 홍 작가는 담담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툭 던져놓고 독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기억만으로 한편의 서사를 풀어놓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홍옥선의 기억 재생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실핏줄 드러나듯이 선명한 기억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언어 조탁과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간다.”라고 말했다.
허숙영 수필가는 해설에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다.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삼킨 아픔이 느껴졌다. 유년의 가난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글로 재정립하면서 윤색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왜곡되어 나타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데 홍 작가는 담담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툭 던져놓고 독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기억만으로 한편의 서사를 풀어놓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홍옥선의 기억 재생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실핏줄 드러나듯이 선명한 기억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언어 조탁과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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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수필집 해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
- 홍옥선의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허숙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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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선 작가가 등단 15년 만에 처녀 수필집을 상재한다. 도서관 수필 강의를 할 때 한 학기 수강한 인연으로 서평을 맡았다. 그때는 수필을 한 편도 써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글을 써 모았으리라 짐작도 못했다. 홍옥선에게 글쓰기는 위안과 치유를 주기도 하지만 아픔과 슬픔도 안긴다. 그래서 망설인다. 잊고 있던 과거를 소환하면 마음은 더 어두워지는데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작가의 글을 대별해 본다. 기저에 깔린 외로움과 기억의 환원이다. 또한 체험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족, 그중에서도 단연 어머니다. 기행에서 얻은 작품도 여러 편이다. 글 곳곳에서 묻어나는 색채는 검어서 쓸쓸하다.
수필은 고백문학이다. 싫든 좋든 자신이 빚은 자화상이다. 체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며, 삶의 의미를 캐내는 것이 수필이다. 한마디로 독자나 작가 자신에게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그물망을 통합하고 구멍 나고 터진 곳을 꿰매는 역할을 한다. 가족과 이웃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하기에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학 중에서도 수필만이 해 낼 수 있는 인간성 회복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수필이 가치 있는 문학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장 속에 교훈적으로 드러내거나 성급하게 결론을 도출하려한다. 그러나 홍옥선은 독자로 하여금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다.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삼킨 아픔이 느껴졌다. 유년의 가난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글로 재정립하면서 윤색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왜곡되어 나타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데 홍 작가는 담담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툭 던져놓고 독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기억의 환원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다. 그렇기에 현재의 꼬인 매듭을 풀거나 좋은 감정을 지속하고자 할 때 과거를 소환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 어릴 적 소외되고 뒤틀린 자아는 가치관에까지 간섭하려 든다. 언젠가는 들추어내어 시시비비를 가려야 되는 것이다.
기억만으로 한편의 서사를 풀어놓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홍옥선의 기억 재생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실핏줄 드러나듯이 선명한 기억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언어 조탁과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간다.
유년 시절의 아이 눈에 비친 산나리꽃, 구절초 피는 들녘의 풍경이 마냥 예쁜 것만은 아니다. 문중에서 홀대하는 어머니의 거친 삶이 눈에 들어와 자신도 모르게 꽃 모가지를 비트는 행위를 한다. 들녘의 풍경뿐만 아니라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눈에 담은 마을 풍경, 집안 구석구석, 그늘진 뒤란까지도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줄줄이 소환된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두 줄의 낡은 살강 위에 얹힌 크고 작은 대소쿠리, 금방이라도 휘어질 듯한 양은 대야들과 검게 그을린 부엌 천장까지 잡힐 듯 그려낸다.
온 동네를 하얗게 덮어 동화 속 세상이 되어야 하는 눈이 애물단지가 되는 산동네의 좁은 골목과 빙판길에 달려드는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웠는지를 들려준다. 파리 끓는 공동화장실에 가기 위해 뚫어진 지붕 밑으로 길게 늘어섰던 줄 끝에 서본 비참함이 어린아이의 가슴에서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다.
마을 앞, 들 모롱이를 지나면 길게 이어지는 문중 산이 있었다. 산은 재넘이까지 이어지는데 상사목 빗점 옆 버덩아래 제법 넓은 자드락밭이 있었다. 밭이라고 해보아야 자갈이 흙보다 많아서 씨를 뿌려도 뭐가 잘 되질 않았다고 한다. 문중에서 어머니에게 생색을 내며 내준 밭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놀고 있으면 뭐하냐고 일손이 쉬는 겨울에도 밭에서 자갈을 골라내며 살다시피 하였다. 그래서인지 해가 다르게 밭다운 모양새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 밭에는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참깨, 들깨를 심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푸서리 옆에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에 앉혀 놓고 밭일을 하셨는데, 한참 밭일에 몰두하다 보면 나는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참을 넋을 놓고 찾다 보면, 들판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나리꽃 옆에서, 배시시 웃는 나를 찾아냈다. 입술은 온통 적갈색으로 물들어서 범벅이 되고, 손에는 주황색의 꽃 모가지를 비틀고 있었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우리가 항상 머무는 방은 안채와 떨어진 미나리밭이 딸린 아래채의 넓은 방이다. 원래는 이십여 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삼촌이 쓰시던 방이었다. 방 중앙의 천장 아래에는 통나무로 만든 긴 시렁이 자리를 잡고 있다. 통나무의 매끄러운 결 사이로 듬성듬성 갈라진 몸통, 여기저기 흠이 패여 있다. 시렁 위에는 회색 빛깔의 헤진 천위로 노란 꽃무늬가 그려진 이불과 밀짚을 넣은 베개, 그리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촌의 곰방대가 있다.
마을회관처럼 넓은 방 윗목에는 널따란 함지박 속에 하얀 속살 같은 가래떡이 담겨 있었다. 해마다 설날이면 볼 수 있는 가래떡이다. 사실 떡국은 아들을 빼고는 그리 즐기지 않는 음식이다. 가져가봐야 끓여먹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싫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주는 대로 가져가야 한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기에…
허옇게 뼈를 드러내고 누워버린 맘모스의 골짜기처럼 천장을 받치며 누워있는 나무의 매끄러운 몸통들, 분명 울울창창한 숲속에서 휘젓고 다녔을 그들이, 껍질이 벗겨진 채로 누런 황토 속에 발가벗겨져 매달려 있다.
(…중략…)
여름 한낮, 언제든 드러누워 뜨거운 햇빛을 마주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코흘리개 유년의 그림자를 따라 돌아보는 널따란 바위등걸, 그 따뜻하던 바위의 등은 석류나무를 자식처럼 키우며, 못 박히듯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 일어날 줄 모른다. 노란 콩을 콩콩 찧어대던 절구와 함께, 그 바위의 등에서 봄이나 겨울이나 계절에 관계없이 그 등을 빌려서 설거지를 한다. 가마솥의 뜨거운 물을 퍼 날라 연신 바위등걸을 씻어 내리며 사람들의 밥그릇을 씻는다. 그릇을 씻다 보면 착시현상에 빠져든다. 유년의 꼬맹이가 되어 햇빛 아래 바위와 한 몸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 「오래된 시간들」 중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얇은 베니어 칸막이를 이어붙인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처럼 마을은 아래를 향해서 지어진 산동네였다. 밤이면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사막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반짝 반짝 빛났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그 집들은 험하고 너덜거리는 초라한 몰골로 변했다.
그 산동네에서 보기 좋으면서도 애물단지가 눈이었다. 겨울이 되면 눈은 저 홀로 피는 꽃처럼 펄펄 내려 쌓였다.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산동네의 풍경은 동화속의 세상처럼 끝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하얀 눈 속에 숨어버린 베니어 지붕마저 아름다웠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쌓인 눈들이 밤사이에 얼어 좁은 골목길과 도로를 빙판길로 만들어버렸다. 길을 걷다 잠시 한눈이라도 판다면 낭떠러지같은 도로를 한없이 굴러 내려갈 것이다. 공동으로 쓰는 우물조차 얼어 버려서 세수도 하지 못하고 지내야 했다. 공동화장실은 뚫어진 지붕 밑으로 이른 새벽부터 길게 늘어 서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좁은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골목길은 어른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좁았다.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낮은 담장들은 고개를 쑥 내밀면 집 안의 광경이 한 눈에 다 보였다.
- 「그해의 겨울바람」 중에서
어린 시절의 풍경이 지금 현장을 보면서 쓰듯이 생생하다. 마을의 모습이나 행동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전해진다. 그 속에서 유난히 그녀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이 따뜻하고 널따란 너럭바위다. 어쩌면 바쁜 어머니 대신 부재중인 아버지 대신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바위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손상된 자존감이 부른 외로움
작가에게는 누구 한 사람 마음 터놓고 밤새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독백을 하거나 사진과 대화를 하고 일기에 심경을 고백한다. 심지어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도 정담을 나누기가 어색하고 친절이 탐탁하지 않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가족관계가 자존감 발달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낮은 자존감은 인정받기를 원하고 애정을 갈망한다. 개인적 성취에 대한 열망도 자존감의 척도에 따라 달라진다. 한데 홍옥선은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열패감만 안긴다.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 작가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종일 노동에 시달린 어머니의 잠을 방해할까 봐 다락방에서 숨죽이며 책을 읽었지만, 가정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그늘진 응달로만 뿌리를 내린 자의식은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구멍 뚫린 아버지의 자리,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남편의 눈, 생계 때문에 아등바등해야 했던 어머니의 무관심이 남긴 낮은 자존감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래서 더 외롭고 힘들다. 기저에 깔린 외로움이 글을 쓰게 만들었지 싶다.
손이 베일 것 같이 주름이 잡힌 두루마기에 검은색의 중절모를 쓰고 다시 집을 떠나는 아버지보다는, 허름한 옷에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하는 옆집 점숙이 아버지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런 생각은 친구들과 탱자나무 울타리 옆 공터에서 놀고 있을 때 더 했다.
해거름에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얗게 도둑눈이 내린 새벽녘 잠이 오지 않아 섬돌에 내려앉아,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을 보았을 때였다. 어머니는 부엌의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참깨대가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발자국 사이에 걸려 숨을 죽이는 낮은 풀잎을 쳐다본다. 너는 어쩌자고 그리 낮은 생명으로 태어났느냐. 저렇게 하늘을 둥둥 올려다보는 커다란 나무의 숨결로 태어나지. 그러다 그네들을 밟고 내처 옮기는 내 발바닥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모순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눈 질끈 감고, 채근하는 그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빠르게 걷는다.
- 「가을의 색채」 중에서
철길 위로 누군가가 쏘아올린 불꽃이 하늘을 향해 가다 제 풀에 풀썩 사그라진다. 아파트의 거대한 몸체에 가려 낡은 철길은 이제 막 숨을 쉬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어둠 속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쏘아 올린 불꽃으로 인하여 눈부신 생명을 얻는다. 소리와 빛이 하나가 되어 명멸하는 시간 속으로 갇혀있는 자의 비애가 함께 흘러든다. 빛을 따라가다 보면 소리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모여든다. 가슴 속에 숨어있는 많은 말들이 살아서 형태를 갖추고, 빛을 따라 순환하는 공기처럼 다가온다.
밤은 빛을 감추지 않는다. 또한 소리도 감추지 않는다. 소리가 잦아지듯 흐느끼다 애처롭게 사라지면 벽안에 몸을 감춘 그림자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안개처럼 어른거리는 음영의 조각 사이로 '날자 날자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던 이상의 날개가 생각남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 터이기에…
- 「독백」 중에서
그의 눈빛을 생각했다. 그를 향해 있던 내 손짓을 외면하며 변해가는 그의 눈동자 안에는 이미 나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며 스크린 속에 있는 '나쁜 남자'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그가 안았던 다른 여자들을 생각하고,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신의 가치관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낙화하는 꽃처럼 마음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짙은 상흔이 배여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밤이 되어도 집에 전등을 켜는 것을 잊어버렸다. 한밤 내내 캄캄한 거실에 서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머릿속엔 새하얀 새가 집을 지은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긴 하는 것이냐!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렇게 자신을 감고 도는 미련한 생각들이 나를 망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듯이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 「익숙함의 친절에 대하여」 중에서
보통사람들은 불꽃을 보면 축제를 연상한다. 그런 불꽃놀이에까지 그녀의 비애가 스며있다. 날개를 펼쳐 날고 싶은 자신의 이상을 발견하지만 그뿐이다. 금세 잦아들고 스스로 귀를 자른 고흐나 안갯속에 자살해버린 무진기행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혀있는 무수한 언어들 속을 헤맨다. 큰 나무들 틈에서 발아래 밟힐까 숨죽이는 풀잎에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자신과 동일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여길 때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생각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어린 시절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유일한 사람이라 여겼던 이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훨씬 더 클 것이기에.
엄마의 또 다른 이름 희생
엄마만큼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이가 또 있을까.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이다. 내 자식이 행여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이라도 받지 않을까 예절도 가르치고 배곯지나 않을까 연약한 손이지만 자드락밭이라도 일구어 감자와 고구마를 심으며 노심초사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밖을 나돌아도 울음 삼키며 자식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식이 아파하면 같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엄마 말고 또 있을까.
작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엄마니까 성질을 부린다. 산후조리를 해 주는 엄마에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방이 덥다고 까탈을 부린다.
자식 때문에 떠안은 빚과 손주들을 건사하고 가장이 되어 야근까지 하는 엄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행여 무너질까 표정조차 감춘다. 가슴에 쌓인 한이 너무 많아 차라리 무심으로 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무심함이 싫다.
엄마 살을 다 파먹고 자란 논 고둥이 둥둥 떠내려가는 엄마 고둥을 보고 "우리 엄마 흔들흔들 가마 타고 시집간다" 했다던가. 자식이 엄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자식을 낳아봐야 아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는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내게 "이분은 몇 대손 할아버지이시고, 저분은 그 아래 몇 대손 할아버지이시니 고샅길에서 마주치면 꼭 문안 인사를 여쭈어라" 하였지만 들을 그때뿐, 대부분 나는 머리에 담아두지 않았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젊은 시절, 어머니는 냉동회사에 다녔다. 어머니는 쉬는 날이 드물었고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신경이 늘 칼처럼 날이 서 있는 어머니는 깊은 밤 다락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못 견뎌 하였다. 어머니가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밤늦게까지 책을 보다 잠시 내려와 돌아보면 어느새 일어나 캄캄한 방안에 앉아있었다. 단칸 셋방살이에 그나마 다락이 있어 나는 좋았지만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에 밤늦은 시각 환한 불빛은 힘들었을 것이다.
(…중략…)
그해 겨울, 신발공장을 운영하던 오빠는 사업을 실패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올케와 아이들을 놔두고 몰래 도망을 가 버렸다. 남동생은 학교를 가다 골목 빙판 길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어머니의 가슴은 억장이 무너졌다. 행여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동생에게 먹였다. 어느 집 같으면 남편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가장이 되어 회사에 다니랴,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니랴 어머니의 마음은 늘 바빴다.
시집간 언니는 멀리 있었고 가까이 있는 나는 철이 없어서 밤늦은 시각까지 책을 끼고 살았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인지 위장약을 늘 달고 살았다.
- 「그해의 겨울바람」 중에서
어머니는 조용히 기척도 없다. 흔들거리는 버스의 바닥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생전에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를 바랐던 자식들이, 죽고 나서야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알 수 없다. 그 깊은 마음속을, 아무리 힘들어도 아파도 얼굴에 표정을 감추고 사신 분. 마음 안에 쌓인 슬픔이 너무 많아, 차라리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 모두를 대하셨을까. 어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가까이 사는 내게도 항상 담담하신 표정. 좋아도 너무 좋아도 입가에 잠시 머무는 미소,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도 아프지 않다고 하실 때, 나는 그 무심함이 정말 싫었다.
- 「배롱나무꽃 붉게 피고 또 피어」 중에서
자식은 그렇다.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 숭고한 희생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식들이 자주 모여 웃으며 살기를 소원한다. 살아생전에 그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자책하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 앞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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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킨은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고 했다.
수필이 거대한 담론을 담거나 거창하게 시대상을 꼬집는 문학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오솔길을 걸으며 땅에 납작 엎드린 풀꽃에도 눈길을 주며 수국의 헛꽃에서도 누군가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마음부자가 아니겠는가. 수필을 쓰면서 정화되는 내면의 힘을 이르는 말이 부라 믿는다.
어쩌면 문학은 결핍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풍족하고 완벽하면 글을 쓸 동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애를 태워가면서 이 어려운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
마음이 여리고 감성이 풍부한 작가는 사소한 일에도 감동을 하지만 상처도 잘 받는다. 수필집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는 작가 스스로가 온몸으로 부딪힌 결핍과 상처의 기록물이다. 창고에서 너저분하게 삭아가는 물건들을 정리하듯이 여태껏 저장해 둔 수필도 햇볕을 쬐어주며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망설이지 말고 털어내고 뽀송뽀송 말려서 새롭게 시작할 일이다.
인정도 많아 만나면 차라도 한 잔 사야 직성이 풀리는 홍옥선 작가의 글을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 평설을 쓰고 보니 내 아픔까지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첫 수필집 상재를 축하드린다. 기억을 재현해 내면의 성찰과 의미 부여를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
- 홍옥선의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허숙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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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선 작가가 등단 15년 만에 처녀 수필집을 상재한다. 도서관 수필 강의를 할 때 한 학기 수강한 인연으로 서평을 맡았다. 그때는 수필을 한 편도 써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글을 써 모았으리라 짐작도 못했다. 홍옥선에게 글쓰기는 위안과 치유를 주기도 하지만 아픔과 슬픔도 안긴다. 그래서 망설인다. 잊고 있던 과거를 소환하면 마음은 더 어두워지는데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작가의 글을 대별해 본다. 기저에 깔린 외로움과 기억의 환원이다. 또한 체험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족, 그중에서도 단연 어머니다. 기행에서 얻은 작품도 여러 편이다. 글 곳곳에서 묻어나는 색채는 검어서 쓸쓸하다.
수필은 고백문학이다. 싫든 좋든 자신이 빚은 자화상이다. 체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하여 보편성을 획득하며, 삶의 의미를 캐내는 것이 수필이다. 한마디로 독자나 작가 자신에게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그물망을 통합하고 구멍 나고 터진 곳을 꿰매는 역할을 한다. 가족과 이웃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하기에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학 중에서도 수필만이 해 낼 수 있는 인간성 회복과정을 그린다. 그래서 수필이 가치 있는 문학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장 속에 교훈적으로 드러내거나 성급하게 결론을 도출하려한다. 그러나 홍옥선은 독자로 하여금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감정이 전이되는 것 같다. 그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삼킨 아픔이 느껴졌다. 유년의 가난이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기도 하고 글로 재정립하면서 윤색하기도 한다. 기억의 대부분은 왜곡되어 나타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른다. 한데 홍 작가는 담담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툭 던져놓고 독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기억의 환원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다. 그렇기에 현재의 꼬인 매듭을 풀거나 좋은 감정을 지속하고자 할 때 과거를 소환한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들다. 어릴 적 소외되고 뒤틀린 자아는 가치관에까지 간섭하려 든다. 언젠가는 들추어내어 시시비비를 가려야 되는 것이다.
기억만으로 한편의 서사를 풀어놓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 홍옥선의 기억 재생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실핏줄 드러나듯이 선명한 기억을 이끌어내 아름다운 언어 조탁과 함께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간다.
유년 시절의 아이 눈에 비친 산나리꽃, 구절초 피는 들녘의 풍경이 마냥 예쁜 것만은 아니다. 문중에서 홀대하는 어머니의 거친 삶이 눈에 들어와 자신도 모르게 꽃 모가지를 비트는 행위를 한다. 들녘의 풍경뿐만 아니라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눈에 담은 마을 풍경, 집안 구석구석, 그늘진 뒤란까지도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줄줄이 소환된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두 줄의 낡은 살강 위에 얹힌 크고 작은 대소쿠리, 금방이라도 휘어질 듯한 양은 대야들과 검게 그을린 부엌 천장까지 잡힐 듯 그려낸다.
온 동네를 하얗게 덮어 동화 속 세상이 되어야 하는 눈이 애물단지가 되는 산동네의 좁은 골목과 빙판길에 달려드는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웠는지를 들려준다. 파리 끓는 공동화장실에 가기 위해 뚫어진 지붕 밑으로 길게 늘어섰던 줄 끝에 서본 비참함이 어린아이의 가슴에서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다.
마을 앞, 들 모롱이를 지나면 길게 이어지는 문중 산이 있었다. 산은 재넘이까지 이어지는데 상사목 빗점 옆 버덩아래 제법 넓은 자드락밭이 있었다. 밭이라고 해보아야 자갈이 흙보다 많아서 씨를 뿌려도 뭐가 잘 되질 않았다고 한다. 문중에서 어머니에게 생색을 내며 내준 밭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놀고 있으면 뭐하냐고 일손이 쉬는 겨울에도 밭에서 자갈을 골라내며 살다시피 하였다. 그래서인지 해가 다르게 밭다운 모양새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 밭에는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참깨, 들깨를 심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푸서리 옆에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에 앉혀 놓고 밭일을 하셨는데, 한참 밭일에 몰두하다 보면 나는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참을 넋을 놓고 찾다 보면, 들판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어있는 산나리꽃 옆에서, 배시시 웃는 나를 찾아냈다. 입술은 온통 적갈색으로 물들어서 범벅이 되고, 손에는 주황색의 꽃 모가지를 비틀고 있었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우리가 항상 머무는 방은 안채와 떨어진 미나리밭이 딸린 아래채의 넓은 방이다. 원래는 이십여 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삼촌이 쓰시던 방이었다. 방 중앙의 천장 아래에는 통나무로 만든 긴 시렁이 자리를 잡고 있다. 통나무의 매끄러운 결 사이로 듬성듬성 갈라진 몸통, 여기저기 흠이 패여 있다. 시렁 위에는 회색 빛깔의 헤진 천위로 노란 꽃무늬가 그려진 이불과 밀짚을 넣은 베개, 그리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촌의 곰방대가 있다.
마을회관처럼 넓은 방 윗목에는 널따란 함지박 속에 하얀 속살 같은 가래떡이 담겨 있었다. 해마다 설날이면 볼 수 있는 가래떡이다. 사실 떡국은 아들을 빼고는 그리 즐기지 않는 음식이다. 가져가봐야 끓여먹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싫어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주는 대로 가져가야 한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기에…
허옇게 뼈를 드러내고 누워버린 맘모스의 골짜기처럼 천장을 받치며 누워있는 나무의 매끄러운 몸통들, 분명 울울창창한 숲속에서 휘젓고 다녔을 그들이, 껍질이 벗겨진 채로 누런 황토 속에 발가벗겨져 매달려 있다.
(…중략…)
여름 한낮, 언제든 드러누워 뜨거운 햇빛을 마주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코흘리개 유년의 그림자를 따라 돌아보는 널따란 바위등걸, 그 따뜻하던 바위의 등은 석류나무를 자식처럼 키우며, 못 박히듯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 일어날 줄 모른다. 노란 콩을 콩콩 찧어대던 절구와 함께, 그 바위의 등에서 봄이나 겨울이나 계절에 관계없이 그 등을 빌려서 설거지를 한다. 가마솥의 뜨거운 물을 퍼 날라 연신 바위등걸을 씻어 내리며 사람들의 밥그릇을 씻는다. 그릇을 씻다 보면 착시현상에 빠져든다. 유년의 꼬맹이가 되어 햇빛 아래 바위와 한 몸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 「오래된 시간들」 중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얇은 베니어 칸막이를 이어붙인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처럼 마을은 아래를 향해서 지어진 산동네였다. 밤이면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사막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반짝 반짝 빛났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그 집들은 험하고 너덜거리는 초라한 몰골로 변했다.
그 산동네에서 보기 좋으면서도 애물단지가 눈이었다. 겨울이 되면 눈은 저 홀로 피는 꽃처럼 펄펄 내려 쌓였다.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산동네의 풍경은 동화속의 세상처럼 끝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하얀 눈 속에 숨어버린 베니어 지붕마저 아름다웠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쌓인 눈들이 밤사이에 얼어 좁은 골목길과 도로를 빙판길로 만들어버렸다. 길을 걷다 잠시 한눈이라도 판다면 낭떠러지같은 도로를 한없이 굴러 내려갈 것이다. 공동으로 쓰는 우물조차 얼어 버려서 세수도 하지 못하고 지내야 했다. 공동화장실은 뚫어진 지붕 밑으로 이른 새벽부터 길게 늘어 서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좁은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 골목길은 어른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좁았다.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낮은 담장들은 고개를 쑥 내밀면 집 안의 광경이 한 눈에 다 보였다.
- 「그해의 겨울바람」 중에서
어린 시절의 풍경이 지금 현장을 보면서 쓰듯이 생생하다. 마을의 모습이나 행동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감정까지도 세세하게 전해진다. 그 속에서 유난히 그녀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이 따뜻하고 널따란 너럭바위다. 어쩌면 바쁜 어머니 대신 부재중인 아버지 대신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바위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손상된 자존감이 부른 외로움
작가에게는 누구 한 사람 마음 터놓고 밤새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독백을 하거나 사진과 대화를 하고 일기에 심경을 고백한다. 심지어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도 정담을 나누기가 어색하고 친절이 탐탁하지 않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가족관계가 자존감 발달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낮은 자존감은 인정받기를 원하고 애정을 갈망한다. 개인적 성취에 대한 열망도 자존감의 척도에 따라 달라진다. 한데 홍옥선은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열패감만 안긴다.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 작가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종일 노동에 시달린 어머니의 잠을 방해할까 봐 다락방에서 숨죽이며 책을 읽었지만, 가정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그늘진 응달로만 뿌리를 내린 자의식은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구멍 뚫린 아버지의 자리,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남편의 눈, 생계 때문에 아등바등해야 했던 어머니의 무관심이 남긴 낮은 자존감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래서 더 외롭고 힘들다. 기저에 깔린 외로움이 글을 쓰게 만들었지 싶다.
손이 베일 것 같이 주름이 잡힌 두루마기에 검은색의 중절모를 쓰고 다시 집을 떠나는 아버지보다는, 허름한 옷에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하는 옆집 점숙이 아버지와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런 생각은 친구들과 탱자나무 울타리 옆 공터에서 놀고 있을 때 더 했다.
해거름에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얗게 도둑눈이 내린 새벽녘 잠이 오지 않아 섬돌에 내려앉아, 아무도 밟지 않은 마당의 눈을 보았을 때였다. 어머니는 부엌의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참깨대가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발자국 사이에 걸려 숨을 죽이는 낮은 풀잎을 쳐다본다. 너는 어쩌자고 그리 낮은 생명으로 태어났느냐. 저렇게 하늘을 둥둥 올려다보는 커다란 나무의 숨결로 태어나지. 그러다 그네들을 밟고 내처 옮기는 내 발바닥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모순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눈 질끈 감고, 채근하는 그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빠르게 걷는다.
- 「가을의 색채」 중에서
철길 위로 누군가가 쏘아올린 불꽃이 하늘을 향해 가다 제 풀에 풀썩 사그라진다. 아파트의 거대한 몸체에 가려 낡은 철길은 이제 막 숨을 쉬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어둠 속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쏘아 올린 불꽃으로 인하여 눈부신 생명을 얻는다. 소리와 빛이 하나가 되어 명멸하는 시간 속으로 갇혀있는 자의 비애가 함께 흘러든다. 빛을 따라가다 보면 소리는 홀로그램 영상으로 모여든다. 가슴 속에 숨어있는 많은 말들이 살아서 형태를 갖추고, 빛을 따라 순환하는 공기처럼 다가온다.
밤은 빛을 감추지 않는다. 또한 소리도 감추지 않는다. 소리가 잦아지듯 흐느끼다 애처롭게 사라지면 벽안에 몸을 감춘 그림자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안개처럼 어른거리는 음영의 조각 사이로 '날자 날자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던 이상의 날개가 생각남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 터이기에…
- 「독백」 중에서
그의 눈빛을 생각했다. 그를 향해 있던 내 손짓을 외면하며 변해가는 그의 눈동자 안에는 이미 나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며 스크린 속에 있는 '나쁜 남자'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그가 안았던 다른 여자들을 생각하고,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신의 가치관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낙화하는 꽃처럼 마음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짙은 상흔이 배여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밤이 되어도 집에 전등을 켜는 것을 잊어버렸다. 한밤 내내 캄캄한 거실에 서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머릿속엔 새하얀 새가 집을 지은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긴 하는 것이냐!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렇게 자신을 감고 도는 미련한 생각들이 나를 망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듯이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 「익숙함의 친절에 대하여」 중에서
보통사람들은 불꽃을 보면 축제를 연상한다. 그런 불꽃놀이에까지 그녀의 비애가 스며있다. 날개를 펼쳐 날고 싶은 자신의 이상을 발견하지만 그뿐이다. 금세 잦아들고 스스로 귀를 자른 고흐나 안갯속에 자살해버린 무진기행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혀있는 무수한 언어들 속을 헤맨다. 큰 나무들 틈에서 발아래 밟힐까 숨죽이는 풀잎에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자신과 동일시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여길 때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생각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어린 시절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유일한 사람이라 여겼던 이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훨씬 더 클 것이기에.
엄마의 또 다른 이름 희생
엄마만큼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이가 또 있을까.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이다. 내 자식이 행여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이라도 받지 않을까 예절도 가르치고 배곯지나 않을까 연약한 손이지만 자드락밭이라도 일구어 감자와 고구마를 심으며 노심초사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밖을 나돌아도 울음 삼키며 자식 곁을 떠나지 않고 자식이 아파하면 같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엄마 말고 또 있을까.
작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엄마니까 성질을 부린다. 산후조리를 해 주는 엄마에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방이 덥다고 까탈을 부린다.
자식 때문에 떠안은 빚과 손주들을 건사하고 가장이 되어 야근까지 하는 엄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행여 무너질까 표정조차 감춘다. 가슴에 쌓인 한이 너무 많아 차라리 무심으로 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무심함이 싫다.
엄마 살을 다 파먹고 자란 논 고둥이 둥둥 떠내려가는 엄마 고둥을 보고 "우리 엄마 흔들흔들 가마 타고 시집간다" 했다던가. 자식이 엄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자식을 낳아봐야 아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는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내게 "이분은 몇 대손 할아버지이시고, 저분은 그 아래 몇 대손 할아버지이시니 고샅길에서 마주치면 꼭 문안 인사를 여쭈어라" 하였지만 들을 그때뿐, 대부분 나는 머리에 담아두지 않았다.
-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중에서
젊은 시절, 어머니는 냉동회사에 다녔다. 어머니는 쉬는 날이 드물었고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신경이 늘 칼처럼 날이 서 있는 어머니는 깊은 밤 다락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못 견뎌 하였다. 어머니가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밤늦게까지 책을 보다 잠시 내려와 돌아보면 어느새 일어나 캄캄한 방안에 앉아있었다. 단칸 셋방살이에 그나마 다락이 있어 나는 좋았지만 어머니의 고단한 일상에 밤늦은 시각 환한 불빛은 힘들었을 것이다.
(…중략…)
그해 겨울, 신발공장을 운영하던 오빠는 사업을 실패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올케와 아이들을 놔두고 몰래 도망을 가 버렸다. 남동생은 학교를 가다 골목 빙판 길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어머니의 가슴은 억장이 무너졌다. 행여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동생에게 먹였다. 어느 집 같으면 남편이 있어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가장이 되어 회사에 다니랴,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니랴 어머니의 마음은 늘 바빴다.
시집간 언니는 멀리 있었고 가까이 있는 나는 철이 없어서 밤늦은 시각까지 책을 끼고 살았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인지 위장약을 늘 달고 살았다.
- 「그해의 겨울바람」 중에서
어머니는 조용히 기척도 없다. 흔들거리는 버스의 바닥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살아생전에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를 바랐던 자식들이, 죽고 나서야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알 수 없다. 그 깊은 마음속을, 아무리 힘들어도 아파도 얼굴에 표정을 감추고 사신 분. 마음 안에 쌓인 슬픔이 너무 많아, 차라리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 모두를 대하셨을까. 어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가까이 사는 내게도 항상 담담하신 표정. 좋아도 너무 좋아도 입가에 잠시 머무는 미소,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도 아프지 않다고 하실 때, 나는 그 무심함이 정말 싫었다.
- 「배롱나무꽃 붉게 피고 또 피어」 중에서
자식은 그렇다.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 숭고한 희생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식들이 자주 모여 웃으며 살기를 소원한다. 살아생전에 그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자책하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 앞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프다.
로그아웃
러스킨은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고 했다.
수필이 거대한 담론을 담거나 거창하게 시대상을 꼬집는 문학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오솔길을 걸으며 땅에 납작 엎드린 풀꽃에도 눈길을 주며 수국의 헛꽃에서도 누군가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마음부자가 아니겠는가. 수필을 쓰면서 정화되는 내면의 힘을 이르는 말이 부라 믿는다.
어쩌면 문학은 결핍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삶이 풍족하고 완벽하면 글을 쓸 동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애를 태워가면서 이 어려운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
마음이 여리고 감성이 풍부한 작가는 사소한 일에도 감동을 하지만 상처도 잘 받는다. 수필집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는 작가 스스로가 온몸으로 부딪힌 결핍과 상처의 기록물이다. 창고에서 너저분하게 삭아가는 물건들을 정리하듯이 여태껏 저장해 둔 수필도 햇볕을 쬐어주며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망설이지 말고 털어내고 뽀송뽀송 말려서 새롭게 시작할 일이다.
인정도 많아 만나면 차라도 한 잔 사야 직성이 풀리는 홍옥선 작가의 글을 읽으며 울다가 웃다가 평설을 쓰고 보니 내 아픔까지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첫 수필집 상재를 축하드린다. 기억을 재현해 내면의 성찰과 의미 부여를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목차
목차
■ 작가의 말\2
1부_기억의 무게
배롱나무꽃 붉게 피고 또 피어 \11
라상떼 카페에서 \17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20
창동을 걷다 \25
수국 \29
태풍 매미가 상륙한 날에 \33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보며 \39
기억의 무게 \43
진주 촉석루에서 \46
하우스 371 카페에서 \49
2부_여름날의 동화
독백 \55
여름날의 동화 \58
예술작품 속에 숨은 세상 \63
사진과의 대화 \66
외로움과 스킨십 \71
코로나19 상황에서 \75
빛바랜 상처 \80
소백산 산행 \84
미늘 \88
풋 마사지 \93
3부_마음을 훔치다
석류와의 인연 \101
슬픔에 대한 고찰 \105
'아워 바디'라는 영화를 보고 \111
마음을 훔치다 \117
비망록 \122
502호실 \125
산밤 \129
20년 만의 만남 \133
영화 이야기 \137
팔월 한가위 \141
4부_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가을 소풍 \149
무학산에서 \153
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158
섬진강 물길 따라 \163
정담情談 \167
행복에 대하여 \172
통영의 사랑 이야기 \176
함양향교 \181
가을의 색채 \186
초가을 산행 \191
5부_오래된 시간들
휴대폰 \197
겨울 여행 \201
오래된 시간들 \207
한마음의 집에서 \212
봉암수원지 \215
그해의 겨울바람 \220
첫눈이 내리던 날에 \224
크리스마스섬을 아시나요 \229
익숙함의 친절에 대하여 \232
■ 해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
허숙영(수필가) \237
1부_기억의 무게
배롱나무꽃 붉게 피고 또 피어 \11
라상떼 카페에서 \17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20
창동을 걷다 \25
수국 \29
태풍 매미가 상륙한 날에 \33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보며 \39
기억의 무게 \43
진주 촉석루에서 \46
하우스 371 카페에서 \49
2부_여름날의 동화
독백 \55
여름날의 동화 \58
예술작품 속에 숨은 세상 \63
사진과의 대화 \66
외로움과 스킨십 \71
코로나19 상황에서 \75
빛바랜 상처 \80
소백산 산행 \84
미늘 \88
풋 마사지 \93
3부_마음을 훔치다
석류와의 인연 \101
슬픔에 대한 고찰 \105
'아워 바디'라는 영화를 보고 \111
마음을 훔치다 \117
비망록 \122
502호실 \125
산밤 \129
20년 만의 만남 \133
영화 이야기 \137
팔월 한가위 \141
4부_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가을 소풍 \149
무학산에서 \153
마음이 건너가는 풍경 \158
섬진강 물길 따라 \163
정담情談 \167
행복에 대하여 \172
통영의 사랑 이야기 \176
함양향교 \181
가을의 색채 \186
초가을 산행 \191
5부_오래된 시간들
휴대폰 \197
겨울 여행 \201
오래된 시간들 \207
한마음의 집에서 \212
봉암수원지 \215
그해의 겨울바람 \220
첫눈이 내리던 날에 \224
크리스마스섬을 아시나요 \229
익숙함의 친절에 대하여 \232
■ 해설
외로움이 빚은 자화상
허숙영(수필가) \237
저자
저자
홍옥선
출간작으로 『산나리 피는 들 모롱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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