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의 빛살(PARAN LOGOS 4)(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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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 사랑의 실천과 지속”
〈감응의 빛살〉은 〈헤르메스의 문장들〉과 〈시/몸의 향연〉을 발간한 바 있는 이찬 평론가의 세 번째 비평집으로,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등 유려하고 섬세한 비평 35편이 실려 있다.
〈감응의 빛살〉은 〈헤르메스의 문장들〉과 〈시/몸의 향연〉을 발간한 바 있는 이찬 평론가의 세 번째 비평집으로,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등 유려하고 섬세한 비평 35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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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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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 사랑의 실천과 지속"
〈감응의 빛살〉은 〈헤르메스의 문장들〉과 〈시/몸의 향연〉을 발간한 바 있는 이찬 평론가의 세 번째 비평집으로,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등 유려하고 섬세한 비평 35편이 실려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감응의 빛살〉이 무려 761쪽에 이른다는 점인데, 이 비평집에서 저자가 직접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적자면 시인 강연호, 김륭, 김명인, 김민정, 김수영, 김영자, 김지율, 나희덕, 류성훈, 문태준, 박미산, 박제천, 박지혜, 박후기, 손택수, 신미나, 안현미, 오정국, 원구식, 위선환, 이수영, 이장욱, 이제니, 이현승, 장만호, 장석원, 전형철, 정숙자, 정영선, 정일근, 정지용, 정한아, 조계숙, 조오현, 조정권, 주영중, 최동호, 최명길, 최원, 한영옥, 허진석, 황인숙 그리고 평론가 황현산과 영화감독 봉준호 등으로, 문단의 원로와 중진, 신예, 작고 문인을 빠짐없이 아우르고 있을뿐더러 그 조망의 폭은 가히 한국 시단 전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더 나아가 저자는 〈주역〉과 생태주의 담론을 원용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내장된 다양한 특질과 모순된 면모들을 에두르지 않고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폭과 깊이 양면 모두에서 방대할 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이번 비평집에 실린 글들 대부분을 저자가 2018년 이후 불과 삼사 년 남짓 동안 썼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물론 이찬 평론가가 그만큼 성실하고 열정적인 독서가이자 문필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바이지만, 이처럼 장려하고 웅숭깊은 비평집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은 그리고 이 비평집의 진정한 의의는 표제어인 '감응의 빛살'과 저자가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는 '크로스오버 비평' 두 가지일 것이다.
'감응'은 그간 흔히 '정동'으로 번역되어 온 'affect'를 이찬 평론가가 새롭게 구축해 제시한 용어로,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일본식 번역 어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정동(情動)'이나, 한 개인의 고유하고 순간적인 마음결의 정취라는 어감을 감싸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感情)' 또는 '정서(情緖)'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신체적?내면적?물리적 영향 관계를 빠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말"이며,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전통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명사 전체에 뿌리박힌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특정한 마음 상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더 나아가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침투의 무한성과 그 영향력의 그물을 전제하고 있는" 단어다. 그리고 '빛살'은 "'빛'과 '살'이 결속된" 말로 "'빛'이 가시적이고 지각 가능한 어떤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살'은 보이지 않는 형세와 분위기, 좀처럼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 불가능한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끌어올린 용어다. "그리하여, '감응의 빛살'이란 시와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매개로 감응하는 자와 감응되는 자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 사이 공간에서 움터 오르는 양자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변용의 과정을 드러내"며, "또한 벤야민의 '아우라' 또는 메를로-퐁티의 '살'로 집약될 수 있을, '영기(靈氣)/분위기(雰圍氣)'를 현란하게 엇갈리면서 움터 오르는 휘황한 교감의 순간이자 화합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편 이 비평집에 실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과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는 특히 크로스오버 비평의 실례라 할 수 있겠는데, 저자에 따르자면 "크로스오버 작업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같이 풀어 가야 할 문제는 다양한 문학?예술 장르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의 장르 해체와 형식 실험으로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기성의 사회와 질서에 내재하는 숱한 허위와 억압과 모순들이며, 이를 넘어서려는 자리에서 움트는 '비틀어진 형식'의 의미이자 '새로운 장르'의 창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벤야민이 내세운 상징과 알레고리의 가치 전복적 위계 설정이나,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함께 추구했던 '철학의 한 형식으로서의 에세이'가 결국 기성 사회의 권력 구조이자 동일성의 원리가 배제하고 은폐하고 망각해 버린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크로스오버 비평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미메시스' 같은 새로운 개념의 발명을 통해 근대 이성의 바깥으로 추방된 무수한 비동일자, 곧 신화, 주술, 동양, 유색인, 여성, 제3세계 등등을 구제하여 이들과 우리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공성의 담론장으로 이끌어 올리는 방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감응'은 그리고 '감응의 빛살'은, 작가와 텍스트와 비평가와 비평과 독자 그리고 세계와 사물 간의 상호 교융이 진행되는 현재이자 그것의 지속이며, 크로스오버 비평은 단지 한갓진 방법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안해 나가야 하는 비판적?해방적 사유의 이행이다. 〈감응의 빛살〉이 그것 자체로 한국 비평사에서 사건적 지위에 이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인데, 그것을 한마디로 달리 표현하자면 "사랑의 실천"이다.
[책머리에]
이번 비평집의 이름을 '감응의 빛살'로 정했다. 그것은 여러 차례 곤혹에 가까운 상황을 불러들였다. 맨 앞자리에 내걸린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 때문이었다. 여기서 시도된 '감응' '감염력'이란 말은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에서 사용한 'affect/affect'와 더불어 'les affects intensifs/the intensive affects'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나,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스피노자의 라틴어 'affectus'에서 기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 글을 처음 발표한 지면(〈계간 파란〉, 2018.가을)에선 "여기서의 그림자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거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될 혁명적 정서의 공감대, 또는 집단적 공명의 파급력을 은유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그림자는 또한 얼마 전 문학을 위시한 한국 인문학 전체의 수준을 차원 높은 '담론/번역' 논쟁의 바다로 이끌어 간 정동(affect) 또는 감염력(les affects intensifs)에 대한 미학적 직관과 예술적 형상화의 방법론을 선취한 탁월한 사례에 해당될 것이다."라고 기술한 바 있었다.
그 당시 마음결을 휘어잡고 있었던 것은 'affectus'의 번역어로 '정동'을 활용해 온 역사가 20년에 가까운 시간에 이르렀으며, 이른바 지식-출판업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번역어 역시 '정동'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이었으리라. 그러나 2019년 6월부터 올 7월까지 참여한 〈주역〉 공부는 이를 돌려세웠다. 특히 2019년 12월 21일 만난 택산함(澤山咸) 괘는 스피노자의 'affectus'에 상응하는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의 용어가 바로 '감응(感應)'일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물음과 착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비평집은 'affectus'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뿐더러, 그것과 호환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되는 한국어 어휘로 '감응(感應)'이란 말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선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전통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명사 전체에 뿌리박힌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특정한 마음 상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더 나아가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침투의 무한성과 그 영향력의 그물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식 번역 어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정동(情動)'이나, 한 개인의 고유하고 순간적인 마음결의 정취라는 어감을 감싸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感情)' 또는 '정서(情緖)'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신체적?내면적?물리적 영향 관계를 빠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말로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일상 공간에서도 큰 무리 없이 사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어떤 확신에 가까운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틀림없기에.
이와 같은 '감응'이란 말에 대해서는, 물론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서구의 르네상스 시대를 관류했던 'ressemblances(유사성)'의 에피스테메를 구성하는 네 가지 '주요 형상들(les principales figures)'로 언급한 'convenientia(부합)' 'aemulatio(경합)' 'analogie(유비)' 'sympathie(감응)' 같은 것들 가운데서도, 'sympathie'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감응의 작용에서는 어떤 경로도 사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거리도 전제되어 있지 않다. 감응은 세계의 심층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작용한다. 감응은 한순간에 가장 드넓은 공간을 가로지른다."라는 문장들이나, "감응의 힘은 매우 커서 단지 접촉만으로 솟아나거나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며, 세계 내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초래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들이라도 가까이 접근시킨다." 같은 표현을 꼼꼼한 시선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아니, 푸코의 저 문장들을 〈주역〉 택산함(澤山咸) 괘의 대상전(大象傳)에서 등장하는 "柔上而剛下하여 二氣感應而相與하여 止而說하고 男下女라.(柔가 위에 있고 剛이 아래에 있어서 두 기운이 感應하여 서로 친해서 그치고 기뻐하며 남자가 여자에게 낮춘다.)" 같은 구절이나, 저 괘에 대한 정이천의 주석에서 나타나는 "觀天地交感化生萬物之理와 與聖人感人心致和平之道면 則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라. 感通之理는 知道者?而觀之可也니라.(天地가 서로 감동하여 만물을 化生하는 이치와 聖人이 人心을 감동시켜 和平을 이루는 道를 보면 天地 萬物의 情을 볼 수 있다. 感通의 이치는 道를 아는 자가 묵묵히 관찰하여야 한다.)" 같은 구절들과 다시 상세하게 비교?검토해 보라. 푸코가 제시한 'sympathie'와 〈주역〉의 인용 구절들에서 등장하는 '感應'이나 '感通'이 상호 호환 가능한 번역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들레르의 시 「Correspondances(만물조응)」에 나타난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은/간혹 혼돈스러운 말을 흘려보내니,/인간은 정다운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상징의 숲을 건너 거길 지나간다.//밤처럼 날빛처럼 광막한,/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향과 색과 음이 서로 화답한다." 같은 이미지들을 다시 섬세한 손길로 매만져 보라. 여기서 나타난 표제어 "Correspondances"나 이미지들의 짜임새 역시, 〈주역〉의 무수한 주석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感應' 또는 '感通'에 부합하는 의미 구조와 뉘앙스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향과 색과 음이 서로 화답한다"라는 이미지가 탁월한 감각의 향연으로 흩뿌려 놓는 것처럼, 보들레르의 「Correspondances」와 〈주역〉의 '感應'이나 '感通'이 그 배경에 포괄하고 있는 '天地萬物'이나 '和平'이라는 뜻과 뉘앙스는 거의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실상 〈주역〉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에서 오랫동안 활용되어 온 '감응'이나 '감통'은 서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감각이나 엄청난 시공간적 격차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 하나의 테두리 속에서 화합하고 공명한다는 의미의 벡터를 표현하기 위한 말로 사용되어 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응'이란 말이 근대과학 발생 이전의 세계를 수미일관하게 관류했던 유사성(ressemblances)의 인식소, 또는 아날로지(analogie)의 감각과 세계관의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들이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는 그 관계의 그물을 지시하는 용어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을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가령 '물리적 감응/심리적 감응'이나 '내면적 감응/정서적 감응', 그리고 '신체 감응/원격 감응' 등과 같은 용어들은 모두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한 것일뿐더러, 이미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생활세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감응'은 그것과 인접한 다른 말들과 결속되어 그야말로 다채로운 쓰임새로 그 외연이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또한 '감응'은 "두운처럼 하나의 계열임을 표시해주는 말(감[感])로 일련의 다른 단어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일뿐더러, "감정뿐 아니라, 감흥, 감동 같은 말들, 그리고 감수/감수성, 감각, 감화, 감염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에서도 일관된 관점과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감응의 빛살'이란 명명에서 흔히 활용되지 않는 '빛살'에 깊은 애착을 가졌던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빛'과 '살'이 결속된 저 말에서, '빛'이 가시적이고 지각 가능한 어떤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살'은 보이지 않는 형세와 분위기, 좀처럼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 불가능한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감응의 빛살'이란 시와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매개로 감응하는 자와 감응되는 자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 사이 공간에서 움터 오르는 양자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변용의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벤야민의 '아우라' 또는 메를로-퐁티의 '살'로 집약될 수 있을, '영기(靈氣)/분위기(雰圍氣)'를 현란하게 엇갈리면서 움터 오르는 휘황한 교감의 순간이자 화합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말일 수밖에 없으리라.
〈감응의 빛살〉은 〈헤르메스의 문장들〉과 〈시/몸의 향연〉을 발간한 바 있는 이찬 평론가의 세 번째 비평집으로,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등 유려하고 섬세한 비평 35편이 실려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감응의 빛살〉이 무려 761쪽에 이른다는 점인데, 이 비평집에서 저자가 직접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적자면 시인 강연호, 김륭, 김명인, 김민정, 김수영, 김영자, 김지율, 나희덕, 류성훈, 문태준, 박미산, 박제천, 박지혜, 박후기, 손택수, 신미나, 안현미, 오정국, 원구식, 위선환, 이수영, 이장욱, 이제니, 이현승, 장만호, 장석원, 전형철, 정숙자, 정영선, 정일근, 정지용, 정한아, 조계숙, 조오현, 조정권, 주영중, 최동호, 최명길, 최원, 한영옥, 허진석, 황인숙 그리고 평론가 황현산과 영화감독 봉준호 등으로, 문단의 원로와 중진, 신예, 작고 문인을 빠짐없이 아우르고 있을뿐더러 그 조망의 폭은 가히 한국 시단 전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더 나아가 저자는 〈주역〉과 생태주의 담론을 원용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내장된 다양한 특질과 모순된 면모들을 에두르지 않고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폭과 깊이 양면 모두에서 방대할 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이번 비평집에 실린 글들 대부분을 저자가 2018년 이후 불과 삼사 년 남짓 동안 썼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물론 이찬 평론가가 그만큼 성실하고 열정적인 독서가이자 문필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바이지만, 이처럼 장려하고 웅숭깊은 비평집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은 그리고 이 비평집의 진정한 의의는 표제어인 '감응의 빛살'과 저자가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는 '크로스오버 비평' 두 가지일 것이다.
'감응'은 그간 흔히 '정동'으로 번역되어 온 'affect'를 이찬 평론가가 새롭게 구축해 제시한 용어로,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일본식 번역 어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정동(情動)'이나, 한 개인의 고유하고 순간적인 마음결의 정취라는 어감을 감싸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感情)' 또는 '정서(情緖)'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신체적?내면적?물리적 영향 관계를 빠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말"이며,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전통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명사 전체에 뿌리박힌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특정한 마음 상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더 나아가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침투의 무한성과 그 영향력의 그물을 전제하고 있는" 단어다. 그리고 '빛살'은 "'빛'과 '살'이 결속된" 말로 "'빛'이 가시적이고 지각 가능한 어떤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살'은 보이지 않는 형세와 분위기, 좀처럼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 불가능한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끌어올린 용어다. "그리하여, '감응의 빛살'이란 시와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매개로 감응하는 자와 감응되는 자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 사이 공간에서 움터 오르는 양자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변용의 과정을 드러내"며, "또한 벤야민의 '아우라' 또는 메를로-퐁티의 '살'로 집약될 수 있을, '영기(靈氣)/분위기(雰圍氣)'를 현란하게 엇갈리면서 움터 오르는 휘황한 교감의 순간이자 화합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말이다.
한편 이 비평집에 실린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과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는 특히 크로스오버 비평의 실례라 할 수 있겠는데, 저자에 따르자면 "크로스오버 작업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같이 풀어 가야 할 문제는 다양한 문학?예술 장르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의 장르 해체와 형식 실험으로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학과 예술을 포함한 기성의 사회와 질서에 내재하는 숱한 허위와 억압과 모순들이며, 이를 넘어서려는 자리에서 움트는 '비틀어진 형식'의 의미이자 '새로운 장르'의 창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벤야민이 내세운 상징과 알레고리의 가치 전복적 위계 설정이나, 벤야민과 아도르노가 함께 추구했던 '철학의 한 형식으로서의 에세이'가 결국 기성 사회의 권력 구조이자 동일성의 원리가 배제하고 은폐하고 망각해 버린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크로스오버 비평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미메시스' 같은 새로운 개념의 발명을 통해 근대 이성의 바깥으로 추방된 무수한 비동일자, 곧 신화, 주술, 동양, 유색인, 여성, 제3세계 등등을 구제하여 이들과 우리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공성의 담론장으로 이끌어 올리는 방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감응'은 그리고 '감응의 빛살'은, 작가와 텍스트와 비평가와 비평과 독자 그리고 세계와 사물 간의 상호 교융이 진행되는 현재이자 그것의 지속이며, 크로스오버 비평은 단지 한갓진 방법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안해 나가야 하는 비판적?해방적 사유의 이행이다. 〈감응의 빛살〉이 그것 자체로 한국 비평사에서 사건적 지위에 이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인데, 그것을 한마디로 달리 표현하자면 "사랑의 실천"이다.
[책머리에]
이번 비평집의 이름을 '감응의 빛살'로 정했다. 그것은 여러 차례 곤혹에 가까운 상황을 불러들였다. 맨 앞자리에 내걸린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 때문이었다. 여기서 시도된 '감응' '감염력'이란 말은 들뢰즈?가타리가 〈천의 고원〉에서 사용한 'affect/affect'와 더불어 'les affects intensifs/the intensive affects'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나,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스피노자의 라틴어 'affectus'에서 기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 글을 처음 발표한 지면(〈계간 파란〉, 2018.가을)에선 "여기서의 그림자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거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될 혁명적 정서의 공감대, 또는 집단적 공명의 파급력을 은유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그림자는 또한 얼마 전 문학을 위시한 한국 인문학 전체의 수준을 차원 높은 '담론/번역' 논쟁의 바다로 이끌어 간 정동(affect) 또는 감염력(les affects intensifs)에 대한 미학적 직관과 예술적 형상화의 방법론을 선취한 탁월한 사례에 해당될 것이다."라고 기술한 바 있었다.
그 당시 마음결을 휘어잡고 있었던 것은 'affectus'의 번역어로 '정동'을 활용해 온 역사가 20년에 가까운 시간에 이르렀으며, 이른바 지식-출판업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번역어 역시 '정동'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단이었으리라. 그러나 2019년 6월부터 올 7월까지 참여한 〈주역〉 공부는 이를 돌려세웠다. 특히 2019년 12월 21일 만난 택산함(澤山咸) 괘는 스피노자의 'affectus'에 상응하는 동아시아 고전 텍스트의 용어가 바로 '감응(感應)'일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물음과 착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비평집은 'affectus'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뿐더러, 그것과 호환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되는 한국어 어휘로 '감응(感應)'이란 말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선 장구한 시간 동안 우리 전통과 더불어 동아시아 문명사 전체에 뿌리박힌 용어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특정한 마음 상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더 나아가 '천지만물(天地萬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침투의 무한성과 그 영향력의 그물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식 번역 어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정동(情動)'이나, 한 개인의 고유하고 순간적인 마음결의 정취라는 어감을 감싸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感情)' 또는 '정서(情緖)'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신체적?내면적?물리적 영향 관계를 빠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말로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일상 공간에서도 큰 무리 없이 사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어떤 확신에 가까운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틀림없기에.
이와 같은 '감응'이란 말에 대해서는, 물론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서구의 르네상스 시대를 관류했던 'ressemblances(유사성)'의 에피스테메를 구성하는 네 가지 '주요 형상들(les principales figures)'로 언급한 'convenientia(부합)' 'aemulatio(경합)' 'analogie(유비)' 'sympathie(감응)' 같은 것들 가운데서도, 'sympathie'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감응의 작용에서는 어떤 경로도 사전에 결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거리도 전제되어 있지 않다. 감응은 세계의 심층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작용한다. 감응은 한순간에 가장 드넓은 공간을 가로지른다."라는 문장들이나, "감응의 힘은 매우 커서 단지 접촉만으로 솟아나거나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며, 세계 내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초래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들이라도 가까이 접근시킨다." 같은 표현을 꼼꼼한 시선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아니, 푸코의 저 문장들을 〈주역〉 택산함(澤山咸) 괘의 대상전(大象傳)에서 등장하는 "柔上而剛下하여 二氣感應而相與하여 止而說하고 男下女라.(柔가 위에 있고 剛이 아래에 있어서 두 기운이 感應하여 서로 친해서 그치고 기뻐하며 남자가 여자에게 낮춘다.)" 같은 구절이나, 저 괘에 대한 정이천의 주석에서 나타나는 "觀天地交感化生萬物之理와 與聖人感人心致和平之道면 則天地萬物之情을 可見矣라. 感通之理는 知道者?而觀之可也니라.(天地가 서로 감동하여 만물을 化生하는 이치와 聖人이 人心을 감동시켜 和平을 이루는 道를 보면 天地 萬物의 情을 볼 수 있다. 感通의 이치는 道를 아는 자가 묵묵히 관찰하여야 한다.)" 같은 구절들과 다시 상세하게 비교?검토해 보라. 푸코가 제시한 'sympathie'와 〈주역〉의 인용 구절들에서 등장하는 '感應'이나 '感通'이 상호 호환 가능한 번역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들레르의 시 「Correspondances(만물조응)」에 나타난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은/간혹 혼돈스러운 말을 흘려보내니,/인간은 정다운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상징의 숲을 건너 거길 지나간다.//밤처럼 날빛처럼 광막한,/어둡고 그윽한 통합 속에/멀리서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향과 색과 음이 서로 화답한다." 같은 이미지들을 다시 섬세한 손길로 매만져 보라. 여기서 나타난 표제어 "Correspondances"나 이미지들의 짜임새 역시, 〈주역〉의 무수한 주석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感應' 또는 '感通'에 부합하는 의미 구조와 뉘앙스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향과 색과 음이 서로 화답한다"라는 이미지가 탁월한 감각의 향연으로 흩뿌려 놓는 것처럼, 보들레르의 「Correspondances」와 〈주역〉의 '感應'이나 '感通'이 그 배경에 포괄하고 있는 '天地萬物'이나 '和平'이라는 뜻과 뉘앙스는 거의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실상 〈주역〉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에서 오랫동안 활용되어 온 '감응'이나 '감통'은 서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감각이나 엄청난 시공간적 격차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 하나의 테두리 속에서 화합하고 공명한다는 의미의 벡터를 표현하기 위한 말로 사용되어 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응'이란 말이 근대과학 발생 이전의 세계를 수미일관하게 관류했던 유사성(ressemblances)의 인식소, 또는 아날로지(analogie)의 감각과 세계관의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들이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는 그 관계의 그물을 지시하는 용어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을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가령 '물리적 감응/심리적 감응'이나 '내면적 감응/정서적 감응', 그리고 '신체 감응/원격 감응' 등과 같은 용어들은 모두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한 것일뿐더러, 이미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생활세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감응'은 그것과 인접한 다른 말들과 결속되어 그야말로 다채로운 쓰임새로 그 외연이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또한 '감응'은 "두운처럼 하나의 계열임을 표시해주는 말(감[感])로 일련의 다른 단어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일뿐더러, "감정뿐 아니라, 감흥, 감동 같은 말들, 그리고 감수/감수성, 감각, 감화, 감염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 맥락에서도 일관된 관점과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감응의 빛살'이란 명명에서 흔히 활용되지 않는 '빛살'에 깊은 애착을 가졌던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빛'과 '살'이 결속된 저 말에서, '빛'이 가시적이고 지각 가능한 어떤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살'은 보이지 않는 형세와 분위기, 좀처럼 지각되지 않거나 지각 불가능한 미시적 차원의 물리적?정서적 자극과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감응의 빛살'이란 시와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매개로 감응하는 자와 감응되는 자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그 사이 공간에서 움터 오르는 양자의 상호 침투와 상호 변용의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벤야민의 '아우라' 또는 메를로-퐁티의 '살'로 집약될 수 있을, '영기(靈氣)/분위기(雰圍氣)'를 현란하게 엇갈리면서 움터 오르는 휘황한 교감의 순간이자 화합의 황홀경을 표현하는 말일 수밖에 없으리라.
목차
목차
004 책머리에 크로스오버 비평을 위하여
제1부 그리움의 빛살
037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053 우리 시대 서정의 풍경들-이현승, 안현미, 이제니, 나희덕의 시
074 전통이란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은 현재라는 난장이-박후기, 정한아, 김륭, 주영중, 김지율의 시
092 서정의 혁신, 서정의 변주-김명인, 문태준, 장석원, 장만호의 시집
112 구술역사가의 알레고리-오정국의 시집
133 다른 서정과 감응의 자취들-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160 아우라의 미학, 사이의 존재론-강연호의 시집
184 놀이의 깊이, 달관의 높이-박제천의 시집
제2부 전통과 현대시의 황홀경
211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240 적멸의 우주와 세속의 해학-조오현 전집
272 시선일미(詩禪一味)의 우주-최명길의 시
284 시의 황홀경, 극서정의 감각적 비의-최동호의 시집
307 운명애의 향연, 마음의 연금술-한영옥의 시집
327 상형문자로 새겨진 극서정의 비의-정일근의 시
339 풍경과 마음의 거리, 비극적 생의 너머-김명인과 문태준의 시집
362 이곳에 살기 위하여-류성훈 시집 〈보이저 1호에게〉
제3부 전통과 현대의 감응
377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412 산문적 현실 인식과 시적 초월의 리듬-최동호의 시
443 깨어진 아날로지, 샤머니즘과 만물조응의 해체-박미산과 손택수의 시
457 기원의 상상력, 심미적 삶의 충동-조계숙의 시집
474 어느 날 문득, 윤리학적 명령의 호소-정영선의 시집
494 존재 결여와 향유 주체의 몸부림-최원의 시집
514 단자론적 사유의 흔적들-전형철의 시
531 내통의 무늬들, 젊음의 감각들-위선환의 시
548 묵시록적 세계관, 기관 없는 신체의 해부도-원구식의 시
제4부 감응의 변주곡
567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596 살-리듬, 리듬-살-황인숙의 신작 시
613 진실의 몽타주, 필경사의 사랑-나희덕과 김민정 시집
636 노스탤지어, 탈향과 귀향의 변주곡-허진석의 시집
663 살의 존재론, 지상의 에피파니-김영자의 시집
685 자동차 박물지(博物志), 인물 형상들의 도안(圖案)-이수영 시집 〈안단테 자동차〉
712 앙양의 아날로지, 타자성의 무늬들-정숙자의 시집
731 주름, 모나드와 사건들-신미나와 박지혜의 시
745 맺음말 사랑, 만남의 우연과 지속의 구축-정지용 시 「호랑나�」
제1부 그리움의 빛살
037 1960년 4월 3일: 혁명적 감응과 군중적 감염력-김수영의 시와 황현산의 산문
053 우리 시대 서정의 풍경들-이현승, 안현미, 이제니, 나희덕의 시
074 전통이란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은 현재라는 난장이-박후기, 정한아, 김륭, 주영중, 김지율의 시
092 서정의 혁신, 서정의 변주-김명인, 문태준, 장석원, 장만호의 시집
112 구술역사가의 알레고리-오정국의 시집
133 다른 서정과 감응의 자취들-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160 아우라의 미학, 사이의 존재론-강연호의 시집
184 놀이의 깊이, 달관의 높이-박제천의 시집
제2부 전통과 현대시의 황홀경
211 열락의 터전으로서의 시-조정권 유고 시집 〈삶이라는 책〉
240 적멸의 우주와 세속의 해학-조오현 전집
272 시선일미(詩禪一味)의 우주-최명길의 시
284 시의 황홀경, 극서정의 감각적 비의-최동호의 시집
307 운명애의 향연, 마음의 연금술-한영옥의 시집
327 상형문자로 새겨진 극서정의 비의-정일근의 시
339 풍경과 마음의 거리, 비극적 생의 너머-김명인과 문태준의 시집
362 이곳에 살기 위하여-류성훈 시집 〈보이저 1호에게〉
제3부 전통과 현대의 감응
377 감응의 빛살-〈주역〉으로 김수영 읽기
412 산문적 현실 인식과 시적 초월의 리듬-최동호의 시
443 깨어진 아날로지, 샤머니즘과 만물조응의 해체-박미산과 손택수의 시
457 기원의 상상력, 심미적 삶의 충동-조계숙의 시집
474 어느 날 문득, 윤리학적 명령의 호소-정영선의 시집
494 존재 결여와 향유 주체의 몸부림-최원의 시집
514 단자론적 사유의 흔적들-전형철의 시
531 내통의 무늬들, 젊음의 감각들-위선환의 시
548 묵시록적 세계관, 기관 없는 신체의 해부도-원구식의 시
제4부 감응의 변주곡
567 봉준호 영화 「옥자」의 생태주의 사유와 '時中'의 윤리학
596 살-리듬, 리듬-살-황인숙의 신작 시
613 진실의 몽타주, 필경사의 사랑-나희덕과 김민정 시집
636 노스탤지어, 탈향과 귀향의 변주곡-허진석의 시집
663 살의 존재론, 지상의 에피파니-김영자의 시집
685 자동차 박물지(博物志), 인물 형상들의 도안(圖案)-이수영 시집 〈안단테 자동차〉
712 앙양의 아날로지, 타자성의 무늬들-정숙자의 시집
731 주름, 모나드와 사건들-신미나와 박지혜의 시
745 맺음말 사랑, 만남의 우연과 지속의 구축-정지용 시 「호랑나�」
저자
저자
이찬
1970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났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저서 〈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 〈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평론집 〈헤르메스의 문장들〉 〈시/몸의 향연〉 〈감응의 빛살〉을 썼다.
2012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저서 〈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 〈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평론집 〈헤르메스의 문장들〉 〈시/몸의 향연〉 〈감응의 빛살〉을 썼다.
2012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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