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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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돌아올 수 없는 강
조개류는 대부분 해감을 해서 먹는다. 해감을 하지 않거나 잘못했을 경우에는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버린다. 사람도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게 평소에 한 번씩 해감을 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노폐물을 토해내듯 자기 정화를 시켜가면서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수필집이라기보다 자서전이라고 해야 옳지 않나 싶다. 40대 말 늦깎이 시인이 되어 시집 네 권을 띄엄띄엄 내면서 30년을 보내버리고 이제야 늦깎이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라서 결혼하여 살아 온 인생을 고백하듯 뱉어내고 싶어서이다. 누구든지 나고 자라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면서 응어리도 쌓아가며 산다. 그러다가 때로는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가며 토닥이며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었는지 한 번도 풀어가며 산 기억이 없다. 이제라도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이 자서전적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올해는 많이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일 년 가까이 자리보존이다. 내가 이 책을 내고 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가 있으면 좋겠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에 해설을 써 주신 박양근 교수님과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21년 11월
多演 나 경 심
돌아올 수 없는 강
조개류는 대부분 해감을 해서 먹는다. 해감을 하지 않거나 잘못했을 경우에는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버린다. 사람도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게 평소에 한 번씩 해감을 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노폐물을 토해내듯 자기 정화를 시켜가면서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첫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수필집이라기보다 자서전이라고 해야 옳지 않나 싶다. 40대 말 늦깎이 시인이 되어 시집 네 권을 띄엄띄엄 내면서 30년을 보내버리고 이제야 늦깎이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라서 결혼하여 살아 온 인생을 고백하듯 뱉어내고 싶어서이다. 누구든지 나고 자라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면서 응어리도 쌓아가며 산다. 그러다가 때로는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가며 토닥이며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었는지 한 번도 풀어가며 산 기억이 없다. 이제라도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이 자서전적 수필집을 내게 되었다. 올해는 많이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일 년 가까이 자리보존이다. 내가 이 책을 내고 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가 있으면 좋겠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에 해설을 써 주신 박양근 교수님과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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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작품론】
삶의 서사와 시적 서정으로 엮은 인생 풍경
박 양 근
(문학평론가, 부경대 명예교수)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온 삶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감정과 현재의 자신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과 사물이 있고 반대로 잊거나 떠나보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 수필을 두고 비평가들은 영혼의 반사경이라 부르고 때로는 생의 자화상 같다고 말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정체성이 남겨지기 때문이다.
글이란 형식적으로 직조되는 자음과 모음이 합친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이유는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이력뿐 아니라, 사유하고 경험한 감정과 인식, 나아가 상처와 통증까지를 포함하는 존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필도 개인의 서사와 서정적 어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가 이미지로, 소설이 허구로 인간과 사회의 인상을 풀어낸다면 수필은 개인적인 체험과 삶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작가 자신을 화자와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때 그곳에 있었던 일화를 서술한다. 구성이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문장이 일인칭 서술이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사건이나 사물을 심층적으로 사유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면 문학성이 상대적으로 높겠지만 수필의 본질은 사실성과 담백성에 있다. 수필 문학이 추구하는 진실의 미학은 사회 역사적 가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성이라는 본질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형식이 아니라 내적 내용과 반응을 독자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여 감동과 공감의 길을 함께 걷도록 하는 방안을 항상 생각하여야 한다.
나경심은 시인이면서 수필가다. 운문과 산문을 겸한다는 문학적 자산은 삶과 문학에 대하여 남다른 혜안과 인상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하여 어린 시절부터 지녔던 감수성과 이미지를 넘치게 보여주었다. 나아가 한 여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거친 세파를 극복하면서 특유의 포용력과 문학에 대한 열정도 키웠다. 그 미적 결실로서 첫 수필집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상재하였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을 은유화한 제목을 달고 있다. 강물은 일단 흐르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은 바람이나 인간의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느지막한 인생의 강둑에 서서 자신의 인생이 강물과 같다고 여긴다. 고향으로부터 발현한 핏줄기가 어느덧 하류 가까이 다다랐다. 그 지점에서 작가는 강의 이미지를 빌어 인생 풍경을 그린다. 잊지 않기 위하여, 비로소 말하기 위하여. 수면이 잔잔하더라도 심연의 물살은 당시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 저녁노을이 비친 자신의 강을 지켜보는 나경심은 남다른 기억력과 시적 감성과 부드러운 문체로 일생을 초서`한다.
제1장 꿈엔들 잊으리요
향수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감정 중의 하나이다. 태어난 고향과 유년기 시절은 강물이 시작하는 원 샘과 같다. 그것은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사람의 발자국조차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인간이란 어찌 보면 앞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선회를 한다. 유순한 시절이 어른이 되면서 갖가지 경험으로 혼란스럽고 거칠어졌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건망증이 생기는 것은 다시 출생지로 되돌아가려는 섭리이기도 하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그 절절한 시원과 생명의 근원이므로 나경심은 연어처럼 회귀하려는 작품을 쓰게 된다.
본디 세상으로의 회귀로의 욕망은 <작가의 말>의 키워드인 '해감'으로 선언된다.
조개류는 대부분 해감을 해서 먹는다. 해감하지 않거나 잘못했을 때는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버린다. 사람도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게 평소에 한 번씩 해감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노폐물을 토해내듯 자기 정화를 시켜가면서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 <작가의 말> 일부 -
작가는 우리말로 숲실인 영일군 임곡에서 장녀로 태어났다는 출생을 밝힌다. 어머니가 고석암에 치성을 드려 낳았을 만큼 그녀는 귀한 장녀이었고 오래 살라는 의미로 갖낳았을 때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속였다. 「가지꽃, 빛 좋은 개살구」는 가지꽃의 별명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현실이 되는 동안 작가는 겉과 속이 달라져 버린 성장 과정을 숨김없이 펼쳐낸다. 어린 시절에 지켜본 아버지의 눈부신 활동과 어머니의 신여성다운 사회 활동은 은연중에 그녀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닮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당시는 해방 후 좌우익의 논쟁으로 누구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도 시대적 혼란과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녀 나경심도 나름의 시대적 진통을 앓으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일순간에 훌쩍 자란다. 신체적인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계기는 어머니가 아플 때이다. 그때 아이는 홀로 집을 지키고 부엌일을 한다. 장녀인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거들면서 깔끔하고 무슨 일이든 완수하는 성품을 인정받는 가운데 자신이 가족의 일원임을 일깨운다. 엄격한 가풍 아래 자라면서 순종과 인내도 배워 평생의 자질로 굳혀진다. 그것이 당시 여식이라면 응당 해야 할 도리였으므로 천성적으로 성실한 책임성도 갖게 되었다. 장수하라는 의미로 가지꽃이라 불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철창에 갇힌 한 마리 파랑새"였고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가지꽃의 꽃말이 '진실'이듯이 진실을 향하는 그녀의 노력이 품성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경심의 성장을 뒷받침한 부모는 아버지다. 작가는 아버지를 강직하고 성실하며 마을 대소사에 헌신적이었다고 기억한다. 「호랑이 아버지」는 금융조합 부이사란 직책과 부산에 내려온 후 선거위원으로서 강직한 성품을 유감없이 발휘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이다. 사회적 멘토였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이 문학에 있음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아버지였으므로 결혼도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이므로 따르게 된다, 아버지와 맏딸 사이에 교차하는 애증은 미움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꿈 때문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세월의 강물이 흐른 후 작가는 어느덧 자신도 호랭이 누나가 되어버렸음을 발견한다.
백두산 호랑이같이 무섭고 엄격하던 아버지도 나이 앞에는 장사가 없는지 막냇동생 둘을 가끔 업고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기도 하였다. 동생들과 놀다가 내가 방에 들어가면 아버지께서는 "호랭이 누나 왔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하시며 정리를 하셨다. 어느새 아버지의 호랑이 별명이 큰딸 앞으로 넘어와 있었다. 허튼짓을 안 한 큰딸이 받은 부담이 믿음직스러웠나 보다. 돌아가신 지 삼십육 년도 더 되었는데도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움은 유효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백두산 호랑이」일부 -
임곡이 유년기를 보낸 보금자리라면 부산은 학창시절의 갖가지 추억과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고향이다. 청소년에게 사춘기와 학창시절은 심리적 반항기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청춘기를 강물에 비유하면 거친 격류라고 할 만하다. 피하기보다는 장애물을 향해 돌진하는 물살의 속성을 지녔던 그녀는 감성이 풍부하고 주변 사건에 예민한 반응도 보인다. 증폭된 상상력과 기억력과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지나간 영광의 시절을 수필로 재현한다. 「간장이라고 찍었더니 꿀이더라」가 임곡에서의 갖가지 추억을 복기한 것이라면 「추억이 숨 쉬는 동네」는 부산에서 겪은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를 목격한 현장성이 높은 전기형 형식을 지닌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서사수필에 속한다. 그녀가 기억하는 동네 정경은 지도처럼 구체적이고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치 지금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나경심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시대의 풍경을 하나하나씩 스케치해나간다. 화사한 문체와 짜임새 있는 줄거리는 당대의 풍조를 활동사진처럼 펼쳐낸다. 미장원은 아줌마들의 사교장이고 동네 어느 남학생이 모 전 국회의원이었고 재첩국 아주머니들의 끈질긴 생활력은 금방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설 듯하다. 더욱이 아이들의 허기를 자극하던 찹쌀떡과 기비당꼬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미각적으로 떠올려준다. 동네 사람들은 공동우물에서 함께 물을 깃고 크고 작은 궂은일에 마음을 합쳤다. 경제적으로 힘겹지만, 인심이 정겨웠던 삶의 풍경을 나경심의 상상력은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당시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는 그리움이 박힌 회상이기 때문이다.
반백 년이 지나서 살던 옛 동네에 가 보았다. 우물도 보고 싶었고 미장원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혹시 안면 있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찾아가 보았다. 아뿔싸, 가슴이 써늘했다. 우리가 20여 년 넘게 살았던 집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앞길 건너에는 고층 아파트가 몇천 세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던 산과 산비탈의 집들은 모두 아파트가 되어있었다. 어디가 우물터이었는지 미장원이 있었던 자리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추억이 숨 쉬는 동네」일부 -
강물은 돌아올 수 없지만, 사람의 시간은 되살릴 수 있다. 그 기억의 흐름을 돌이키고 끌어내고 들어 올리는 기법이 문학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글을 쓸수록 몇 번이고 「돌아오지 않는 강」을 상상의 연어가 되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비록 현실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으나 상념의 강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 강은 흘러 바다로
사람의 시간은 강과 같다. 자연의 강이 종국적으로 바다에 다다르듯이 인간의 삶도 죽음이라는 바다에 다다른다. 이 삶의 회로는 누구든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의 운명을 생로병사와 관혼상제로 나누는 동양에서는 사람은 나이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작품도 인간의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갖가지 사건과 갈등을 제시하면서 그것에 따른 심리를 추적한다. 인생의 강은 갖가지 작은 물줄기가 모여 생사를 결정한다. 강은 주변에 있는 갖가지 오물을 묵묵히 받아드리면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철 풍경을 제공해 준다. 문학에서 흔히 여성의 삶을 강에 비유하는 것도 여성의 마음이 강이 지닌 포용력과 인내심에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경심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아니라 돌리고 싶지 않은 강이 자신의 삶과 운명임을 고백한다.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도 고백한다.
나경심이 30여 년간 시를 통해 문학적 동경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상화하였다면 현실에서 부딪쳤던 삶의 어둠은 수필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는 그지없이 너그럽고 여유롭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웬만한 일에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 은인자중은 유복한 환경이나 한가로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척박하고 메마른 대지에서 만개한 연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기 승화의 결실을 닮고 있다. 무엇보다 감옥 같은 결혼 생활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의 온유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는가를 알고 함께 아픔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세 작품을 통해 알게 된다. 그것은 「이름과 거울」, 「눈물의 맛」 그리고 「매일 서성이는 여자」이다. 「이름과 거울」은 사람의 성격을 이름과 거울에 빗대어 성격이 이름을 닮아간다는 인성 형성론을 다룬다, 자신은 직선적이고 꾸밀 줄 모른다고 여기며 이름이 '거울 경鏡, 마음 심心'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때로는 거울처럼 마음이 모두 드러나 버린다는 데 짜증을 낸다. 사회생활에서는 속셈을 보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지만 거울처럼 성격을 반영하나 경우를 고등학교 때 파출소에서 직원들에게 성화를 부렸던 사건에서 만난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올곧은 성품을 이어받았음을 나타내는 작품 중의 하나다.
「눈물의 맛」은 좀처럼 감정이 흩어지지 않지만 한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성격을 드러낸다. 그녀에게 눈물은 무언의 자존심이므로 일단 분출하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자신도 눈물은 마음 약한 것이 아니라 절제심이라고 말한다. 삼류 영화에서 배우가 울면 따라 울었던 그녀가 남편이 돌아갔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도 어긋난 결혼 생활을 이해하면 어쩔 수 없다 하겠다.
나경심은 자신을 '매일 서성이는 여자'로 여긴다. 주변을 맴돌았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원래 적극적이었던 성품이 주변 환경 탓에 소극적으로 되어버린 연유를 이해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서성이는 행동은 소극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방어 수단이다. 동물도 위험이 닥치면 몸을 웅크리고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는 본능을 보여준다. 이제 남편도 시어머니도 없다. 그러므로 예전과 같은 이유로 서성일 필요가 없다.
아이들아! 너희들이 나의 아이들로 태어난 것도 운명일진대 이 못난 엄마가 말은 안 해도 지금도 너희들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는 것만 알아다오. 건강과 행복하기를 빈다. 너희 아이들의 주위에도 항상 이 할머니의 서성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매일 서성이는 여자」일부 -
이제는, 자식들을 위해 그들 곁에서 서성인다. 그 모습은 망설임이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고 보호해주기 위한 자상한 모성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힐링을 통한 자기 정화를 이루었다고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결혼은 행불행의 분기점이다. 부모를 떠나 남편을 맞이하여 일생을 함께 하는 것은 인격적 주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이다. '혼자'에서 '함께'로의 심적 강물엔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이 나타난다. 성인으로서 이질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배우자와 공존하는 결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자식이 생기고 시가와 처가라는 주변 관계도 변수로 작용한다. 「단식 투쟁」, 「결혼 생활」, 「정신병동」 등은 갖가지 문제를 직시한 작품들이다.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상처와 힐링을 깔고 있다. 시든 소설이든 행복보다는 불행, 기쁨보다는 아픔을 드러내는 가운데 갈등을 해소한다. 자아 반영에 요소가 강한 수필에서는 성찰을 통한 자아 치유와 화해의 길이 한결 뚜렷해진다.
『돌아올 수 없는 강』에는 결혼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여성은 결혼을 낭만적으로 기대하지만, 빈번히 그 꿈은 남성중심사회와 시어머니를 간섭으로 좌절한다. 출산과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노동까지 양어깨에 짐 질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의 인생이다. 이러한 냉정하고 벅찬 가정과 사회적 요구를 묵묵히 인내하고 견뎌온 여성작가가 나경심이다.
남편은 아버지 안 계시는 육 남매의 장남으로 어머님과 동생들 건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누님 한 분은 결혼하고 없었다. 시어머님은 편찮으셨다. 허리가 아파서 항상 누워있었다. 남편과는 한 달이 되어도 대화 한 마디가 없었다. 나는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생활비를 받으면 먼저 쌀, 비누, 양념을 사고 남은 돈으로 월급 때까지 남은 날로 나눠서 날마다 시장에 갔다. 나는 결혼을 한 게 아니라 종으로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나의 의견은 아예 없었다.
-「맏이의 애환, 맏며느리의 고충」일부 -
남편과 나경심은 장남이자 장녀였으므로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어머니는 아팠고 남편은 직장에 매진하느라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결혼도 원한 것이 아니었다. 탐탁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하소연과 고뇌가 묻혀있다가 수필을 만나면서 말의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 나갈수록 어떻게 그 질곡의 강을 무사히 건넜을까에 동정과 경탄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불행 아닌 불행을 보여주는 결혼 수필 연작은 당대 여인들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풍속 수필의 일면성도 지닌다. 무엇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치른 결혼식, 신혼 생활에서 돌아온 후 혼자 아침밥을 다섯 번이나 챙긴 일에 이어 새벽잠을 자지 못한 남편이 자기 아내의 목에 새끼줄을 감아 시어머니가 당기라는 대화는 가정주부가 아니라 종살이였던 현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배려를 가져달라고 애원할까?
오죽하면 남편에게 "보이소. 내 표정이 안 좋거나 말이 없으면, '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라고 물어봐 주이소."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한 번도 해 준 일이 없다. 재차 당부하니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누겠는가.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가슴에 묻게 되었다.
-「결혼 생활 1」일부 -
남편의 삶은 3부로 이루어진 「나의 남편은」에서 밝혀진다. 그는 아내에 대한 배려보다 사회직장에 최선을 다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다. 집안일은 아내가, 밖의 일을 남편이 전담한다는 생각의 소유자인 점에서 그 역시 한국 문화의 희생자다. 당연히 두 부부 사이에는 소통이 부재한다. 초야를 함께 하지 않았고 아내가 잠시 세면실에 간 동안 남편은 마지막 눈을 감는다. "칫솔을 팽개치고 쫓아갔지만 숨진 뒤였다"라는 한 문장과 "허탈했다"라는 한 구절은 그 상황을 극적으로 기록하지만, 평생을 함께한 애틋함도 함축적으로 묻어난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 편이 아니고 남의 편이었다"라는 우스개를 그냥 넘길 수 없는 가정 현실의 단면도 제시한다.
나경심의 일생을 살피면 그녀는 서성이고 순종하는 유형이 아니다. 아버지의 호랑이 기질을 물려받아 단호하고 주변에 대한 배려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지도력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생애를 그려낸 작품이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시리즈다. 남편의 권유에 따라서 신발 봉제 수공업 공장을 운영한다. 재봉틀 공장 책임자로서 기업이윤보다는 직원들의 복지사업에 더 신경을 쓰지만, 원천 공장의 갑질로 중단된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항상 책임을 다한 모습은 문학 단체를 맡아 궂은일을 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3. 강가 풍경은 아름다워라
강은 대지를 비옥하게 하고 삶에 풍요롭게 한다. 강은 나무와 꽃과 동물을 키우고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생존자원도 제공한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간 심성을 유연하게 하고 문학의 소재도 된다. 강을 문명의 젖줄이라 부르는 이유도 생명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강 같은 여성이 없는 남자뿐이라면 파괴와 살육과 전쟁이 이어져 끝내 모두가 멸종할 것이다. 강을 여성으로 은유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물에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의미가 부여된다. 여성이 쓰는 작품에 남성작품보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이유도 여성과 강의 이미지가 비슷하고 페미니즘에 앞서 여성스러운 문맥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신화적 관점에서 살펴도 구원과 풍요이므로 나경심의 수필은 다감한 감수성과 산문적 해석력이 결합한 글쓰기가 된다.
여성적 자연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의 공통점은 포용력과 생명력이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을 예사로 보지 않았다. 현실이 팍팍하지만, 자연을 대하면 상상은 꽃처럼 피어났다. "우리는 태초에 흙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흙의 항변」은 흙의 자유로움과 친화성을 강조한다. 흙은 인간들에게 변함없는 곡물을 제공하지만, 인간들은 토지 유산을 두고 가족끼리 싸우면서 흙의 소중함을 망각해간다. 그녀의 시 「흙이로소이다」의 마지막 구절인 "흙은 황금 덩어리 옳습니다"와 "나는 흙이로소이다"라는 구절은 흙과 여성을 일치시키면서 자연주의적 인생론을 구현한다.
강변에서 자라는 나무는 도시 한복판의 가로수보다 생기가 넘친다. 품격의 자세도 높아 보인다. 「나무의 품격」은 사람에게 헌신적인 나무의 일생을 소개하면서 쓸모 있음의 생을 제시한다. 나무는 서로 시샘하지도 않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는 교훈을 통하여 인간 사회를 반추한다. 작가는 자신이 어느덧 "단풍과 낙엽 사이에 있다"는 낙조 인생을 되새김한다.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일하였으니 이제 쉬어라"는 안식과 소망의 상징을 주목하는 시선이 독특하다.
작가의 인생과 자연 사물 간의 유기적 인과성을 보여주는 3부작이 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섬세한 문장이 어울린 「빛과 소금」이다. 성경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자아발전의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더욱이 소금은 가장 중요한 양념으로 태양 빛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순백의 자아가 더욱 돋보인다.
우리가 원하는 '빛과 소금'이 있는 사회를 영위하려면 어쩌면 될까. 빛과 소금처럼 사는 것은 남의 모범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남의 모범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삶이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모든 것을 하얀 소금처럼 순백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아직도 숙성이 덜 된 내가 이 세상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남의 빛과 소금이 될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2019, 09. 24)
-「빛과 소금」일부 -
「숟가락은 젓가락을 기다린다」는 부부에 대한 담론이다. 수저를 인생론으로 풀이하는 가운데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도 제시한다. 수저는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 따라 변한다. 은수저와 놋수저가 있고 각설이가 통을 두드리는 동냥 숟가락이 있고 나이프와 포크도 있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먹거리가 넘치지만 핵가정과 혼밥이 만연해가는 오늘날을 바라보면서 사회가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이웃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물에 대한 나경심의 인식과 해석력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과 누군가를 정신적 경제적으로 받쳐주는 사람을 은유한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노동자 간의 상부상조를 중시했던 그녀는 사람은 서로에게 다리가 되고 울타리이기를 기대한다. 울타리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각별하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 울타리, 내 곁에 있는 울타리부터 잘 건사해야겠다. 그래야 남의 울타리도 돌아볼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리하여 울타리에 의지하여 끊임없이 기어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처럼 새파란 기운으로 주위의 울타리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부려보고 싶다.
울타리 옆에 꽃나무도 심고, 화사한 나팔꽃도 매달리게 하면, 새들도 기웃거릴 것이고 나비들도 찾아오겠지. 지나는 길손들도 들여다봐 주겠지. 높은 울타리는 아니더라도 나지막한 울타리 안의 조그만 바람부터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울타리」일부 -
신은 천지 사물을 창조하였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는 글 쓰는 작가다. 작가가 붙인 이름과 의미는 경험하고 지켜보고 일깨운 관념의 통합이다. 그녀는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와 감성의 색조를 가져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꿈과 비전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을 대하면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진실을 더욱 수긍하게 된다.
다시 한 움큼의 강물의 뜨며
한편의 글은 작가에게는 간이역이면서 출발역과 같다. 작가는 한편의 글이 완성되는 순간 다른 자아를 찾아 펜을 든다. 시인이면서 수필가인 나경심 작가는 30년간 시작詩作을 했지만, 다시 늦깎이에 수필집을 내면서 자기 정화를 위한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낸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딱딱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그녀는 글쓰기는 치유이고 용서임을 알게 된다.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증언하겠다는 의지로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상재하였다. 작가에게 수필이 존재의 시작이고 시는 영혼의 시작이다. 두 시점은 존재적 시종이므로 떼어낼 수 없다. 작가도 '돌아가지 못하는 강'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존재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존재자로서의 자기확립과 품격을 지킨 작가적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나경심 작가는 <작가의 말> 결미 부분에서 "이 책을 내고 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듯이 수필이 생활의 발견이자 힐링의 자전이다. 해갈 같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읽으면서 평자는 아픈 삶과 문학적 발현에 대한 작가의 수필론에 공감하였다. 독자분들의 공감 어린 독서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삶의 서사와 시적 서정으로 엮은 인생 풍경
박 양 근
(문학평론가, 부경대 명예교수)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온 삶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감정과 현재의 자신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과 사물이 있고 반대로 잊거나 떠나보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 수필을 두고 비평가들은 영혼의 반사경이라 부르고 때로는 생의 자화상 같다고 말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정체성이 남겨지기 때문이다.
글이란 형식적으로 직조되는 자음과 모음이 합친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이유는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이력뿐 아니라, 사유하고 경험한 감정과 인식, 나아가 상처와 통증까지를 포함하는 존재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필도 개인의 서사와 서정적 어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가 이미지로, 소설이 허구로 인간과 사회의 인상을 풀어낸다면 수필은 개인적인 체험과 삶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작가 자신을 화자와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때 그곳에 있었던 일화를 서술한다. 구성이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문장이 일인칭 서술이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사건이나 사물을 심층적으로 사유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면 문학성이 상대적으로 높겠지만 수필의 본질은 사실성과 담백성에 있다. 수필 문학이 추구하는 진실의 미학은 사회 역사적 가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성이라는 본질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형식이 아니라 내적 내용과 반응을 독자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여 감동과 공감의 길을 함께 걷도록 하는 방안을 항상 생각하여야 한다.
나경심은 시인이면서 수필가다. 운문과 산문을 겸한다는 문학적 자산은 삶과 문학에 대하여 남다른 혜안과 인상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하여 어린 시절부터 지녔던 감수성과 이미지를 넘치게 보여주었다. 나아가 한 여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거친 세파를 극복하면서 특유의 포용력과 문학에 대한 열정도 키웠다. 그 미적 결실로서 첫 수필집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상재하였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을 은유화한 제목을 달고 있다. 강물은 일단 흐르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은 바람이나 인간의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느지막한 인생의 강둑에 서서 자신의 인생이 강물과 같다고 여긴다. 고향으로부터 발현한 핏줄기가 어느덧 하류 가까이 다다랐다. 그 지점에서 작가는 강의 이미지를 빌어 인생 풍경을 그린다. 잊지 않기 위하여, 비로소 말하기 위하여. 수면이 잔잔하더라도 심연의 물살은 당시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 저녁노을이 비친 자신의 강을 지켜보는 나경심은 남다른 기억력과 시적 감성과 부드러운 문체로 일생을 초서`한다.
제1장 꿈엔들 잊으리요
향수는 인간이 지닌 원초적 감정 중의 하나이다. 태어난 고향과 유년기 시절은 강물이 시작하는 원 샘과 같다. 그것은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사람의 발자국조차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인간이란 어찌 보면 앞으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선회를 한다. 유순한 시절이 어른이 되면서 갖가지 경험으로 혼란스럽고 거칠어졌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건망증이 생기는 것은 다시 출생지로 되돌아가려는 섭리이기도 하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은 그 절절한 시원과 생명의 근원이므로 나경심은 연어처럼 회귀하려는 작품을 쓰게 된다.
본디 세상으로의 회귀로의 욕망은 <작가의 말>의 키워드인 '해감'으로 선언된다.
조개류는 대부분 해감을 해서 먹는다. 해감하지 않거나 잘못했을 때는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버린다. 사람도 감정의 응어리가 쌓이지 않게 평소에 한 번씩 해감해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노폐물을 토해내듯 자기 정화를 시켜가면서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 <작가의 말> 일부 -
작가는 우리말로 숲실인 영일군 임곡에서 장녀로 태어났다는 출생을 밝힌다. 어머니가 고석암에 치성을 드려 낳았을 만큼 그녀는 귀한 장녀이었고 오래 살라는 의미로 갖낳았을 때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속였다. 「가지꽃, 빛 좋은 개살구」는 가지꽃의 별명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현실이 되는 동안 작가는 겉과 속이 달라져 버린 성장 과정을 숨김없이 펼쳐낸다. 어린 시절에 지켜본 아버지의 눈부신 활동과 어머니의 신여성다운 사회 활동은 은연중에 그녀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닮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당시는 해방 후 좌우익의 논쟁으로 누구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도 시대적 혼란과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녀 나경심도 나름의 시대적 진통을 앓으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일순간에 훌쩍 자란다. 신체적인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계기는 어머니가 아플 때이다. 그때 아이는 홀로 집을 지키고 부엌일을 한다. 장녀인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거들면서 깔끔하고 무슨 일이든 완수하는 성품을 인정받는 가운데 자신이 가족의 일원임을 일깨운다. 엄격한 가풍 아래 자라면서 순종과 인내도 배워 평생의 자질로 굳혀진다. 그것이 당시 여식이라면 응당 해야 할 도리였으므로 천성적으로 성실한 책임성도 갖게 되었다. 장수하라는 의미로 가지꽃이라 불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철창에 갇힌 한 마리 파랑새"였고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가지꽃의 꽃말이 '진실'이듯이 진실을 향하는 그녀의 노력이 품성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경심의 성장을 뒷받침한 부모는 아버지다. 작가는 아버지를 강직하고 성실하며 마을 대소사에 헌신적이었다고 기억한다. 「호랑이 아버지」는 금융조합 부이사란 직책과 부산에 내려온 후 선거위원으로서 강직한 성품을 유감없이 발휘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이다. 사회적 멘토였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이 문학에 있음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아버지였으므로 결혼도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이므로 따르게 된다, 아버지와 맏딸 사이에 교차하는 애증은 미움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꿈 때문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세월의 강물이 흐른 후 작가는 어느덧 자신도 호랭이 누나가 되어버렸음을 발견한다.
백두산 호랑이같이 무섭고 엄격하던 아버지도 나이 앞에는 장사가 없는지 막냇동생 둘을 가끔 업고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기도 하였다. 동생들과 놀다가 내가 방에 들어가면 아버지께서는 "호랭이 누나 왔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하시며 정리를 하셨다. 어느새 아버지의 호랑이 별명이 큰딸 앞으로 넘어와 있었다. 허튼짓을 안 한 큰딸이 받은 부담이 믿음직스러웠나 보다. 돌아가신 지 삼십육 년도 더 되었는데도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움은 유효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백두산 호랑이」일부 -
임곡이 유년기를 보낸 보금자리라면 부산은 학창시절의 갖가지 추억과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고향이다. 청소년에게 사춘기와 학창시절은 심리적 반항기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청춘기를 강물에 비유하면 거친 격류라고 할 만하다. 피하기보다는 장애물을 향해 돌진하는 물살의 속성을 지녔던 그녀는 감성이 풍부하고 주변 사건에 예민한 반응도 보인다. 증폭된 상상력과 기억력과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지나간 영광의 시절을 수필로 재현한다. 「간장이라고 찍었더니 꿀이더라」가 임곡에서의 갖가지 추억을 복기한 것이라면 「추억이 숨 쉬는 동네」는 부산에서 겪은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세계를 목격한 현장성이 높은 전기형 형식을 지닌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서사수필에 속한다. 그녀가 기억하는 동네 정경은 지도처럼 구체적이고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치 지금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나경심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시대의 풍경을 하나하나씩 스케치해나간다. 화사한 문체와 짜임새 있는 줄거리는 당대의 풍조를 활동사진처럼 펼쳐낸다. 미장원은 아줌마들의 사교장이고 동네 어느 남학생이 모 전 국회의원이었고 재첩국 아주머니들의 끈질긴 생활력은 금방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설 듯하다. 더욱이 아이들의 허기를 자극하던 찹쌀떡과 기비당꼬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미각적으로 떠올려준다. 동네 사람들은 공동우물에서 함께 물을 깃고 크고 작은 궂은일에 마음을 합쳤다. 경제적으로 힘겹지만, 인심이 정겨웠던 삶의 풍경을 나경심의 상상력은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당시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는 그리움이 박힌 회상이기 때문이다.
반백 년이 지나서 살던 옛 동네에 가 보았다. 우물도 보고 싶었고 미장원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혹시 안면 있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찾아가 보았다. 아뿔싸, 가슴이 써늘했다. 우리가 20여 년 넘게 살았던 집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앞길 건너에는 고층 아파트가 몇천 세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바라보던 산과 산비탈의 집들은 모두 아파트가 되어있었다. 어디가 우물터이었는지 미장원이 있었던 자리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추억이 숨 쉬는 동네」일부 -
강물은 돌아올 수 없지만, 사람의 시간은 되살릴 수 있다. 그 기억의 흐름을 돌이키고 끌어내고 들어 올리는 기법이 문학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글을 쓸수록 몇 번이고 「돌아오지 않는 강」을 상상의 연어가 되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비록 현실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으나 상념의 강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 강은 흘러 바다로
사람의 시간은 강과 같다. 자연의 강이 종국적으로 바다에 다다르듯이 인간의 삶도 죽음이라는 바다에 다다른다. 이 삶의 회로는 누구든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의 운명을 생로병사와 관혼상제로 나누는 동양에서는 사람은 나이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작품도 인간의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갖가지 사건과 갈등을 제시하면서 그것에 따른 심리를 추적한다. 인생의 강은 갖가지 작은 물줄기가 모여 생사를 결정한다. 강은 주변에 있는 갖가지 오물을 묵묵히 받아드리면서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철 풍경을 제공해 준다. 문학에서 흔히 여성의 삶을 강에 비유하는 것도 여성의 마음이 강이 지닌 포용력과 인내심에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경심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 아니라 돌리고 싶지 않은 강이 자신의 삶과 운명임을 고백한다.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도 고백한다.
나경심이 30여 년간 시를 통해 문학적 동경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상화하였다면 현실에서 부딪쳤던 삶의 어둠은 수필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는 그지없이 너그럽고 여유롭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웬만한 일에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 은인자중은 유복한 환경이나 한가로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척박하고 메마른 대지에서 만개한 연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기 승화의 결실을 닮고 있다. 무엇보다 감옥 같은 결혼 생활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의 온유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는가를 알고 함께 아픔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세 작품을 통해 알게 된다. 그것은 「이름과 거울」, 「눈물의 맛」 그리고 「매일 서성이는 여자」이다. 「이름과 거울」은 사람의 성격을 이름과 거울에 빗대어 성격이 이름을 닮아간다는 인성 형성론을 다룬다, 자신은 직선적이고 꾸밀 줄 모른다고 여기며 이름이 '거울 경鏡, 마음 심心'인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때로는 거울처럼 마음이 모두 드러나 버린다는 데 짜증을 낸다. 사회생활에서는 속셈을 보이지 말아야 할 때가 있지만 거울처럼 성격을 반영하나 경우를 고등학교 때 파출소에서 직원들에게 성화를 부렸던 사건에서 만난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올곧은 성품을 이어받았음을 나타내는 작품 중의 하나다.
「눈물의 맛」은 좀처럼 감정이 흩어지지 않지만 한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성격을 드러낸다. 그녀에게 눈물은 무언의 자존심이므로 일단 분출하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자신도 눈물은 마음 약한 것이 아니라 절제심이라고 말한다. 삼류 영화에서 배우가 울면 따라 울었던 그녀가 남편이 돌아갔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도 어긋난 결혼 생활을 이해하면 어쩔 수 없다 하겠다.
나경심은 자신을 '매일 서성이는 여자'로 여긴다. 주변을 맴돌았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원래 적극적이었던 성품이 주변 환경 탓에 소극적으로 되어버린 연유를 이해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서성이는 행동은 소극적 태도 때문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방어 수단이다. 동물도 위험이 닥치면 몸을 웅크리고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는 본능을 보여준다. 이제 남편도 시어머니도 없다. 그러므로 예전과 같은 이유로 서성일 필요가 없다.
아이들아! 너희들이 나의 아이들로 태어난 것도 운명일진대 이 못난 엄마가 말은 안 해도 지금도 너희들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는 것만 알아다오. 건강과 행복하기를 빈다. 너희 아이들의 주위에도 항상 이 할머니의 서성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매일 서성이는 여자」일부 -
이제는, 자식들을 위해 그들 곁에서 서성인다. 그 모습은 망설임이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고 보호해주기 위한 자상한 모성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힐링을 통한 자기 정화를 이루었다고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결혼은 행불행의 분기점이다. 부모를 떠나 남편을 맞이하여 일생을 함께 하는 것은 인격적 주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이다. '혼자'에서 '함께'로의 심적 강물엔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이 나타난다. 성인으로서 이질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배우자와 공존하는 결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자식이 생기고 시가와 처가라는 주변 관계도 변수로 작용한다. 「단식 투쟁」, 「결혼 생활」, 「정신병동」 등은 갖가지 문제를 직시한 작품들이다.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상처와 힐링을 깔고 있다. 시든 소설이든 행복보다는 불행, 기쁨보다는 아픔을 드러내는 가운데 갈등을 해소한다. 자아 반영에 요소가 강한 수필에서는 성찰을 통한 자아 치유와 화해의 길이 한결 뚜렷해진다.
『돌아올 수 없는 강』에는 결혼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여성은 결혼을 낭만적으로 기대하지만, 빈번히 그 꿈은 남성중심사회와 시어머니를 간섭으로 좌절한다. 출산과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노동까지 양어깨에 짐 질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의 인생이다. 이러한 냉정하고 벅찬 가정과 사회적 요구를 묵묵히 인내하고 견뎌온 여성작가가 나경심이다.
남편은 아버지 안 계시는 육 남매의 장남으로 어머님과 동생들 건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누님 한 분은 결혼하고 없었다. 시어머님은 편찮으셨다. 허리가 아파서 항상 누워있었다. 남편과는 한 달이 되어도 대화 한 마디가 없었다. 나는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생활비를 받으면 먼저 쌀, 비누, 양념을 사고 남은 돈으로 월급 때까지 남은 날로 나눠서 날마다 시장에 갔다. 나는 결혼을 한 게 아니라 종으로 왔나 착각할 정도였다. 나의 의견은 아예 없었다.
-「맏이의 애환, 맏며느리의 고충」일부 -
남편과 나경심은 장남이자 장녀였으므로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어머니는 아팠고 남편은 직장에 매진하느라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결혼도 원한 것이 아니었다. 탐탁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하소연과 고뇌가 묻혀있다가 수필을 만나면서 말의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 나갈수록 어떻게 그 질곡의 강을 무사히 건넜을까에 동정과 경탄을 품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불행 아닌 불행을 보여주는 결혼 수필 연작은 당대 여인들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풍속 수필의 일면성도 지닌다. 무엇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치른 결혼식, 신혼 생활에서 돌아온 후 혼자 아침밥을 다섯 번이나 챙긴 일에 이어 새벽잠을 자지 못한 남편이 자기 아내의 목에 새끼줄을 감아 시어머니가 당기라는 대화는 가정주부가 아니라 종살이였던 현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오죽하면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배려를 가져달라고 애원할까?
오죽하면 남편에게 "보이소. 내 표정이 안 좋거나 말이 없으면, '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라고 물어봐 주이소."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한 번도 해 준 일이 없다. 재차 당부하니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누겠는가.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가슴에 묻게 되었다.
-「결혼 생활 1」일부 -
남편의 삶은 3부로 이루어진 「나의 남편은」에서 밝혀진다. 그는 아내에 대한 배려보다 사회직장에 최선을 다하는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다. 집안일은 아내가, 밖의 일을 남편이 전담한다는 생각의 소유자인 점에서 그 역시 한국 문화의 희생자다. 당연히 두 부부 사이에는 소통이 부재한다. 초야를 함께 하지 않았고 아내가 잠시 세면실에 간 동안 남편은 마지막 눈을 감는다. "칫솔을 팽개치고 쫓아갔지만 숨진 뒤였다"라는 한 문장과 "허탈했다"라는 한 구절은 그 상황을 극적으로 기록하지만, 평생을 함께한 애틋함도 함축적으로 묻어난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 편이 아니고 남의 편이었다"라는 우스개를 그냥 넘길 수 없는 가정 현실의 단면도 제시한다.
나경심의 일생을 살피면 그녀는 서성이고 순종하는 유형이 아니다. 아버지의 호랑이 기질을 물려받아 단호하고 주변에 대한 배려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지도력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생애를 그려낸 작품이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시리즈다. 남편의 권유에 따라서 신발 봉제 수공업 공장을 운영한다. 재봉틀 공장 책임자로서 기업이윤보다는 직원들의 복지사업에 더 신경을 쓰지만, 원천 공장의 갑질로 중단된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항상 책임을 다한 모습은 문학 단체를 맡아 궂은일을 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3. 강가 풍경은 아름다워라
강은 대지를 비옥하게 하고 삶에 풍요롭게 한다. 강은 나무와 꽃과 동물을 키우고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생존자원도 제공한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간 심성을 유연하게 하고 문학의 소재도 된다. 강을 문명의 젖줄이라 부르는 이유도 생명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강 같은 여성이 없는 남자뿐이라면 파괴와 살육과 전쟁이 이어져 끝내 모두가 멸종할 것이다. 강을 여성으로 은유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물에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의미가 부여된다. 여성이 쓰는 작품에 남성작품보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이유도 여성과 강의 이미지가 비슷하고 페미니즘에 앞서 여성스러운 문맥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신화적 관점에서 살펴도 구원과 풍요이므로 나경심의 수필은 다감한 감수성과 산문적 해석력이 결합한 글쓰기가 된다.
여성적 자연주의를 보여주는 작품의 공통점은 포용력과 생명력이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을 예사로 보지 않았다. 현실이 팍팍하지만, 자연을 대하면 상상은 꽃처럼 피어났다. "우리는 태초에 흙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흙의 항변」은 흙의 자유로움과 친화성을 강조한다. 흙은 인간들에게 변함없는 곡물을 제공하지만, 인간들은 토지 유산을 두고 가족끼리 싸우면서 흙의 소중함을 망각해간다. 그녀의 시 「흙이로소이다」의 마지막 구절인 "흙은 황금 덩어리 옳습니다"와 "나는 흙이로소이다"라는 구절은 흙과 여성을 일치시키면서 자연주의적 인생론을 구현한다.
강변에서 자라는 나무는 도시 한복판의 가로수보다 생기가 넘친다. 품격의 자세도 높아 보인다. 「나무의 품격」은 사람에게 헌신적인 나무의 일생을 소개하면서 쓸모 있음의 생을 제시한다. 나무는 서로 시샘하지도 않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는 교훈을 통하여 인간 사회를 반추한다. 작가는 자신이 어느덧 "단풍과 낙엽 사이에 있다"는 낙조 인생을 되새김한다.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일하였으니 이제 쉬어라"는 안식과 소망의 상징을 주목하는 시선이 독특하다.
작가의 인생과 자연 사물 간의 유기적 인과성을 보여주는 3부작이 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섬세한 문장이 어울린 「빛과 소금」이다. 성경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자아발전의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더욱이 소금은 가장 중요한 양념으로 태양 빛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순백의 자아가 더욱 돋보인다.
우리가 원하는 '빛과 소금'이 있는 사회를 영위하려면 어쩌면 될까. 빛과 소금처럼 사는 것은 남의 모범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남의 모범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삶이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모든 것을 하얀 소금처럼 순백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아직도 숙성이 덜 된 내가 이 세상을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남의 빛과 소금이 될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2019, 09. 24)
-「빛과 소금」일부 -
「숟가락은 젓가락을 기다린다」는 부부에 대한 담론이다. 수저를 인생론으로 풀이하는 가운데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도 제시한다. 수저는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 따라 변한다. 은수저와 놋수저가 있고 각설이가 통을 두드리는 동냥 숟가락이 있고 나이프와 포크도 있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은 서로 어울리는 것을 생명으로 삼는다. 먹거리가 넘치지만 핵가정과 혼밥이 만연해가는 오늘날을 바라보면서 사회가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이웃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물에 대한 나경심의 인식과 해석력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과 누군가를 정신적 경제적으로 받쳐주는 사람을 은유한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노동자 간의 상부상조를 중시했던 그녀는 사람은 서로에게 다리가 되고 울타리이기를 기대한다. 울타리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각별하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 울타리, 내 곁에 있는 울타리부터 잘 건사해야겠다. 그래야 남의 울타리도 돌아볼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리하여 울타리에 의지하여 끊임없이 기어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처럼 새파란 기운으로 주위의 울타리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부려보고 싶다.
울타리 옆에 꽃나무도 심고, 화사한 나팔꽃도 매달리게 하면, 새들도 기웃거릴 것이고 나비들도 찾아오겠지. 지나는 길손들도 들여다봐 주겠지. 높은 울타리는 아니더라도 나지막한 울타리 안의 조그만 바람부터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울타리」일부 -
신은 천지 사물을 창조하였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는 글 쓰는 작가다. 작가가 붙인 이름과 의미는 경험하고 지켜보고 일깨운 관념의 통합이다. 그녀는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와 감성의 색조를 가져와 자신이 성취하지 못한 꿈과 비전을 담아낸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을 대하면 하이데거가 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진실을 더욱 수긍하게 된다.
다시 한 움큼의 강물의 뜨며
한편의 글은 작가에게는 간이역이면서 출발역과 같다. 작가는 한편의 글이 완성되는 순간 다른 자아를 찾아 펜을 든다. 시인이면서 수필가인 나경심 작가는 30년간 시작詩作을 했지만, 다시 늦깎이에 수필집을 내면서 자기 정화를 위한 응어리와 앙금을 풀어낸다.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딱딱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그녀는 글쓰기는 치유이고 용서임을 알게 된다. 드디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증언하겠다는 의지로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상재하였다. 작가에게 수필이 존재의 시작이고 시는 영혼의 시작이다. 두 시점은 존재적 시종이므로 떼어낼 수 없다. 작가도 '돌아가지 못하는 강'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존재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존재자로서의 자기확립과 품격을 지킨 작가적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나경심 작가는 <작가의 말> 결미 부분에서 "이 책을 내고 나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듯이 수필이 생활의 발견이자 힐링의 자전이다. 해갈 같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읽으면서 평자는 아픈 삶과 문학적 발현에 대한 작가의 수필론에 공감하였다. 독자분들의 공감 어린 독서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목차
목차
작가의 말 … 3
제1부
01‥ 간장이라고 찍있더니 꿀이더라 ? 13
02‥ 가지꽃, 빛 좋은 개살구 ? 18
03‥ 어릴 적 우리 집 ? 22
04‥ 추억이 숨 쉬는 동네 ? 28
05‥ 설탕 포도, 서리 ? 32
06‥ 백두산 호랑이 ? 37
07‥ 작은 어머님과 고향 ? 41
08‥ 가방 ? 45
09‥ 사춘기의 꽃 ? 49
10‥ 부전여전父傳女傳 ? 54
제2부
11‥ 이름과 거울 ? 61
12‥ 살기 위해 먹는 삶 ? 64
13‥ 빛바랜 사진 한 장 ? 68
14‥ 나는 희미한 별을 갖겠소 ? 73
15‥ 친구, 경선이 ? 77
16‥ 단식 투쟁 ? 81
17‥ 결혼 생활 1 ? 86
18‥ 결혼 생활 2 ? 91
19‥ 나의 소중한 것들 ? 95
20‥ 맏이의 애환, 맏며느리의 고충 ? 97
제3부
21‥ 목도리 ? 103
22‥ 경봉 스님과 반지 ? 106
23‥ 소소한 비밀 ? 111
24‥ 정신병동 1 ? 115
25‥ 정신병동 2 ? 120
26‥ 나의 투병기 ? 124
27‥ 선물 ? 130
28‥ 인곡회 ? 135
29‥ 詩를 찾아 떠났던 곳 ? 140
30‥ 바다의 추억 ? 144
제4부
31‥ 나의 남편은 1 ? 151
32‥ 나의 남편은 2 ? 156
33‥ 나의 남편은 3 ? 161
34‥ 눈물의 맛 ? 166
35‥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1 ? 169
36‥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2 ? 175
37‥ 매일 서성이는 여자 ? 181
38‥ 울타리 ? 185
39‥ 나목으로서의 나 ? 188
40‥ 단풍과 낙엽 사이 ? 193
제5부
41‥ 숟가락은 젓가락을 기다린다 ? 199
42‥ 예쁜 듯 못난 내 발 ? 203
43‥ 후회의 가시 ? 206
44‥ 비누처럼 ? 210
45‥ 필기구의 성장 ? 214
46‥ 나무의 품격 ? 218
47‥ 흙의 항변 ? 222
48‥ 빛과 소금 ? 226
49‥ 큰 손일까, 작은 손일까 ? 230
50‥ 이 한 해를 보내면서 ? 234
작품론 / 박양근 … 239
제1부
01‥ 간장이라고 찍있더니 꿀이더라 ? 13
02‥ 가지꽃, 빛 좋은 개살구 ? 18
03‥ 어릴 적 우리 집 ? 22
04‥ 추억이 숨 쉬는 동네 ? 28
05‥ 설탕 포도, 서리 ? 32
06‥ 백두산 호랑이 ? 37
07‥ 작은 어머님과 고향 ? 41
08‥ 가방 ? 45
09‥ 사춘기의 꽃 ? 49
10‥ 부전여전父傳女傳 ? 54
제2부
11‥ 이름과 거울 ? 61
12‥ 살기 위해 먹는 삶 ? 64
13‥ 빛바랜 사진 한 장 ? 68
14‥ 나는 희미한 별을 갖겠소 ? 73
15‥ 친구, 경선이 ? 77
16‥ 단식 투쟁 ? 81
17‥ 결혼 생활 1 ? 86
18‥ 결혼 생활 2 ? 91
19‥ 나의 소중한 것들 ? 95
20‥ 맏이의 애환, 맏며느리의 고충 ? 97
제3부
21‥ 목도리 ? 103
22‥ 경봉 스님과 반지 ? 106
23‥ 소소한 비밀 ? 111
24‥ 정신병동 1 ? 115
25‥ 정신병동 2 ? 120
26‥ 나의 투병기 ? 124
27‥ 선물 ? 130
28‥ 인곡회 ? 135
29‥ 詩를 찾아 떠났던 곳 ? 140
30‥ 바다의 추억 ? 144
제4부
31‥ 나의 남편은 1 ? 151
32‥ 나의 남편은 2 ? 156
33‥ 나의 남편은 3 ? 161
34‥ 눈물의 맛 ? 166
35‥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1 ? 169
36‥ 생각지도 못한 사장님 2 ? 175
37‥ 매일 서성이는 여자 ? 181
38‥ 울타리 ? 185
39‥ 나목으로서의 나 ? 188
40‥ 단풍과 낙엽 사이 ? 193
제5부
41‥ 숟가락은 젓가락을 기다린다 ? 199
42‥ 예쁜 듯 못난 내 발 ? 203
43‥ 후회의 가시 ? 206
44‥ 비누처럼 ? 210
45‥ 필기구의 성장 ? 214
46‥ 나무의 품격 ? 218
47‥ 흙의 항변 ? 222
48‥ 빛과 소금 ? 226
49‥ 큰 손일까, 작은 손일까 ? 230
50‥ 이 한 해를 보내면서 ? 234
작품론 / 박양근 … 239
저자
저자
나경심
多演 나 경 심 (羅 鏡 心)
경북 포항 출생
부산여고 졸업
1992년『문예사조』를 통해 ?시? 등단
2019년『여기』를 통해 ?수필? 등단
주부클럽 주최 백일장 "시"부문 당선
반짇고리 문학회 회장 역임
(사) 부산 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수영구문인회 회장 역임
새부산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문인협회 이사 역임
작품집:『그 사이 비가 그쳤네』(2008년)
『너를 만나는 시간』(2012년)
『설화를 기다리며』(2016년)
『꽃이 춤을 출 때는』(2018년)
수 상 : 부산여성문학상 수상 (2013년)
부산시인상 수상 (2018년)
한국문학신문사장상 수상 (2020년)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로 12
광안SK뷰 105동 1402호
TEL : 051) 362-2200
H.P : 010-7372-7803
E-mail : yoonjungra@naver.com
경북 포항 출생
부산여고 졸업
1992년『문예사조』를 통해 ?시? 등단
2019년『여기』를 통해 ?수필? 등단
주부클럽 주최 백일장 "시"부문 당선
반짇고리 문학회 회장 역임
(사) 부산 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수영구문인회 회장 역임
새부산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문인협회 이사 역임
작품집:『그 사이 비가 그쳤네』(2008년)
『너를 만나는 시간』(2012년)
『설화를 기다리며』(2016년)
『꽃이 춤을 출 때는』(2018년)
수 상 : 부산여성문학상 수상 (2013년)
부산시인상 수상 (2018년)
한국문학신문사장상 수상 (2020년)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로 12
광안SK뷰 105동 1402호
TEL : 051) 362-2200
H.P : 010-7372-7803
E-mail : yoonjung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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