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 되어
배동순 제2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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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마음이 되어
저는 유난스레 동백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유를 대지 않아도 그냥 좋습니다. 꽃의 생장이 가진 사연이나 꽃말이 아니어도 그 붉음이 저를 물들게 합니다. 또 저는 꽃잎 가운데 있는 노란색과 꽃술 역시 좋아합니다. 동백꽃은 그저 닮고 싶고 닮아가는 저를 보는 것 같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리된 것 같습니다.
봄을 기다리며 더욱 많은 꽃과 이야기 나눕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사연도 그럴듯합니다. 대화하다 보면 지나온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침묵하며 활짝 웃는 꽃 모양에 사랑을 느끼며 반해 버립니다.
우리가 만나는 자연도 그렇고, 계절이 변하는 장면도 말을 걸어옵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우주의 이치를 알아채라고 눈치를 주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조된 서로가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조곤조곤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 내라 합니다. 같이 마음을 모아 함께 하면서 서로 닮아가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사람들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그들이 지혜를 전합니다. 이제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제대로 알아야겠습니다.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와 함께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동백꽃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면서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묵묵히 겨울나기를 견디며 함께해준 고마운 사람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짝 태양에게 이제야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또 동백낭송회 가족들에게도 더욱 애정 어린 마음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동백꽃 마음으로 살기에 그렇다고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봄에
동백꽃 마음 담은 배 동 순
저는 유난스레 동백꽃을 좋아합니다. 어떤 이유를 대지 않아도 그냥 좋습니다. 꽃의 생장이 가진 사연이나 꽃말이 아니어도 그 붉음이 저를 물들게 합니다. 또 저는 꽃잎 가운데 있는 노란색과 꽃술 역시 좋아합니다. 동백꽃은 그저 닮고 싶고 닮아가는 저를 보는 것 같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리된 것 같습니다.
봄을 기다리며 더욱 많은 꽃과 이야기 나눕니다. 그들이 전해주는 사연도 그럴듯합니다. 대화하다 보면 지나온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침묵하며 활짝 웃는 꽃 모양에 사랑을 느끼며 반해 버립니다.
우리가 만나는 자연도 그렇고, 계절이 변하는 장면도 말을 걸어옵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우주의 이치를 알아채라고 눈치를 주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조된 서로가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조곤조곤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 내라 합니다. 같이 마음을 모아 함께 하면서 서로 닮아가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사람들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그들이 지혜를 전합니다. 이제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제대로 알아야겠습니다.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와 함께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동백꽃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면서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묵묵히 겨울나기를 견디며 함께해준 고마운 사람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짝 태양에게 이제야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또 동백낭송회 가족들에게도 더욱 애정 어린 마음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동백꽃 마음으로 살기에 그렇다고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봄에
동백꽃 마음 담은 배 동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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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해설 】
인간성 회복과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변
배동순 시인이 이번에 발간하는 제2시집 『동백이 되어』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구분해 해설하도록 하겠다. 또 문학 이론이나 어려운 글을 지양하고 이야기하듯 쉽게 풀어나가겠다.
▣ 제1부: 꽃을 소재로 한 포용력의 미학
꽃은 사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남녀 간에 사랑을 표현할 때 꽃을 준다. 선물하는 꽃의 종류도 시대나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아직 덜 친숙한 남녀가 함께 길을 걷다 남자가 길가에 핀 들꽃을 한 송이 꺾어 무안스럽게 내밀거나 결혼 신청을 할 때 백 송이의 장미 다발을 건네기도 한다.
선사 이전 시대라도 달랐을까? 애도의 마음으로도 꽃을 준다. 미국 9·11 테러 현장에 수많은 시민이 애도하며 꽃을 놓았다. 오래전 경주 선덕여왕의 묘에 갔을 때 그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내민 꽃다발이었을 것이다.
배동순 시인의 시집 1부에 실린 시들은 모두 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면 시인은 꽃을 어떻게 시로 형상화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
굳이 말하면 꽃 중의 꽃 사람꽃 아닐까
그 꽃도 다양하여 어찌 승화해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까
사람의, 사람에게, 사람답게
사람으로서 향기 품은 심행心行이 빛 발할 때
꽃 중의 꽃이 되리라
- 시 「꽃이 되리라」 부분
시인은 자식 둘을 둔 어머니이자 주부이다. 사람이 결혼해 지식을 낳아 키우고 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온갖 일을 겪는다. 50대 중후반의 시적 화자는 세상사에 매우 익숙한 나이이다. 세상살이에 부와 권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사람답게 산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연륜에서 깨달은 지혜이다. 그리하여 "꽃 중의 꽃"은 "사람꽃"이라고 아예 정의해버린다. 그러면서 "어찌 승화해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까"라며, 불교의 보살심을 내보이고 있다. 실제로 화자는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적멸보궁 관음정사에 행사 때마다 참석하여 기도를 드린다. 사찰의 탱화에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 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나 화병에 꽂아 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자비로 구원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관음도이다. 꽃 중에서도 길상화는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꽃은 자비와 깨달음의 의미를 지닌다.
꽃에 대한 시편들의 표현이나 행간에 이러한 뜻을 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사람의, 사람에게, 사람답게/ 사람으로서 향기 품은 심행心行이 빛 발할 때/ 꽃 중의 꽃이 되리라"라고 자비와 깨달음의 의미에다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세상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사유는 다음 시에서도 이어진다.
행여나 손길 닿을까 두려워
흙탕물 위에다 터를 잡고서
백만 년에 한 번 핀다는 고고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지독한 가시를 가슴에 안은 너
섬�하게 만드는 처절한 고립
그 아픔 내가 찔려서라도
사랑스레 안아주고 싶다
- 시 「가시연꽃을 보면서」 부분
화자는 여러 역할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 존재로서 바르고 꼿꼿하게 자존의식을 갖고 있음을 시편 여러 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행여나 손길 닿을까 두려워/ 흙탕물 위에다 터를 잡고서/ 백만 년에 한 번 핀다는 고고함"이라는 표현도 그런 의식의 발로다. 지저분하고 나쁜 세상의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으며, 설사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반듯함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지독한 가시를 가슴에 안은 너/ 섬�하게 만드는 처절한 고립"이라는 시적 표현은 이중적이다. 가시연꽃의 고고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프다는 것은 화자의 심증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오염된 세상사에 뒤섞이지 않으려는 자세는 남들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무척 아프다. 지독한 가시를 안은 것처럼 고립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섬뜩할 정도로 처절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그 정신을 "찔려서라도" 스스로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싶다"라는 것이다.
시인이라고 모두 이런 맑고 순결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 비록 여성이지만 옛 선비들의 내면에 파랗게 가라앉아 있는 그 고절高節한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한매寒梅같은 기질을 가시연꽃에 대비해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거친 속에서 더 강하게
추운 곳에서 더욱 따뜻하게
슬플 때도 더더욱 웃음 지으며
미운 곳에서 더욱 사랑하려고
하얗게 피었습니다
차라리 꼭꼭 밟고 지나가라고
어떤 고통도 아무것 아니라고
당당하게 강한 눈웃음을 짓고 있어
차마 한 걸음도 옮길 수조차 없었습니다
- 시 「하얀 겨울 들꽃」 부분
그런 보살의 마음을 가진 화자이어서 "추운 곳에서 더욱 따뜻하게" 피고, "슬플 때도 더더욱 웃음 지으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아예 깨달음을 해탈의 경지에까지 다다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적 표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그러리라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비록 "미운 곳"에 처해 있더라도 사람과 세상을 "더욱 사랑하려고", 보듬어 감싸 안으려고 "하얗게 피었"다고 밝혔다.
본래의 심성이 그렇겠지만, 시를 쓰면서 시인은 더욱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이웃을 좀 생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승화된 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차라리 꼭꼭 밟고 지나가라고"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듯 "어떤 고통도 아무것 아니라고/ 당당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다. 이 정도의 마음이면 부처의 마음이기도 하고,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면 세상을 이렇게 관조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시인의 제1시집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에 실린 시 「어머니의 정수리」에서 그 기점을 읽어낼 수 있다.
곱디곱게 갸름한 얼굴 위로
나지막한 오름 같던
어머니 정수리가
어느 날부터 밥상처럼 편편해졌다
쉰 바라보던 낭군 병시중으로
국수 공장 말아먹고
청정한 마른 즈음 홀로 되어
팔 남매 먹거리 자식 농사
한숨 길어 올리고 선 장삿길에서
그릇이며 접시, 온갖 장사
수를 놓고 받은 쌀가마니
머리에 이고 오고 간 십리 길
무게가 짓누른 상흔이다
집으로 오는 길마중 나온
막내딸 손잡고 돌아와서는
점점 내려앉아 밥상 같은 정수리에
자식 공부 하루 끼니 차리시고
싫은 내색도 안 하시더니
구순이 된 지금도
찾아뵐 때마다
그 밥상을
또 펴신다
위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감동을 받아 가슴 뭉클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 자란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언행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는 말까지 한다. 화자의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며 팔 남매를 키우신 분이다. 어머니께서 그 과정에서 겪으신 어려움은 감히 짐작할 수 없으리라. 어머니의 머리가 편편해진 것은 온갖 물건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 다니신 때문이다. 그 "무게가 짓누른 상흔" 때문이다. 그 정수리가 "점점 내려앉아 밥상 같"다. 어머니는 지금 구순이다. 예순이 다 된 막내딸이 "찾아뵐 때마다" 지금도 "그 밥상을/ 또 펴신다"라고 한다. 이미 시인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섞여 자라면서 보살행의 마음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팔 남매의 막내로 자랐지만 일찍부터 이러한 시건(철)이 든 이유에 대해 시인은 무의식중에 다른 시에서도 나타내고 있다. "아버진 굵은 땀 흘리며 반죽하시고/ 어머닌 가느다란 면발/ 틀에서 정성스레 뽑아낸다// 언제나 국수를 대할 때면/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과/ …"(시 「국수를 먹으며」 부분)에서는 '겸손'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있다.
시 「어릴 적 고향」에서도 "나의 어릴 적 고향 마을 사람들은/ 재롱과 응석 모두 받아주던/ 호수가 되어 자궁처럼 누워있다"라며, 시인의 자비로운 마음과 세상사에 대한 깨달음은 비단 부모님의 언행뿐만 아니라 어릴 때 자라던 고향 마을 사람들의 넓은 품에서도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못나지 않았다
무심한 이가 못난이라 이름 지었고
혼자서도
아름다운 꿈을 키우며
향기만을
소유하고 싶은 건 욕심임을
세찬 바람마저
고맙고 사랑스러워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걸
꽃이라 부른다
- 시 「꽃의 항변」 전문
이 시는 꽃의 속성, 즉 본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꽃을 소재로 여러 편의 시를 읊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드러내는 시이다. 꽃은 예쁘든, 그렇지 않든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꿈을 키"운다. 그리고 향기를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진다. 그러면서 "세찬 바람마저. 고맙고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서도 세찬 바람뿐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모진 것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꽃의 본성, 아니 시인의 마음을 한 구절로 정의한다. 세상의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걸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걸' 꽃이라 부른다"라고 읊고 있다.
시 「능소화」에서는 "붉지 못해 붉어지려는 노오란 주황/ 확성기 모양을 하고/ 슬픈 전설을 노래한다"라며, 꽃 능소화의 속성을 여성 또는 화자 자신의 심상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제한받는 삶을 "붉어지려는 노오란 주황"이라며, 그 어떤 것에도 속박됨이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으로서의 속박을 마치 "슬픈 전설을 노래"하듯 들려주어 그 굴레를 벗게 하고 싶은 무제한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한 하나의 방법으로 "담장에 까치발로 기대어 서서" 바깥세상을 확인하려 한다. 여기에는 여권신장을 바라는 염원도 내포되어 있다.
시 「벚꽃」에서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지금 다 태우고 말 작정으로/ 뜨겁게 피"고자 하는 열망이 내면에 가득 차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시인은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그 열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읽힌다. "열매 잃고 이별 이겨낸"(시 「설중매」) 개인적 아픔일 수도 있고, "가슴 속 수많은 분신을 품"(시 「해바라기 연정」)은 인생의 애환이기도 하다. 또한 "서러움 흘려보내지 못하고. 저 강물 위에서 출렁 그네를 타고 있"(시 「홍매화」)는 낙동강의 윤슬처럼 가슴에 한과 서러움을 간직한 삶도 있고, "그리워도 참으라며 흔들리고 있"(시 「억새의 노래」)는 삶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적 삶의 어긋남을 직설적으로 노래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삶의 평안성을 기억하려고 한다. 시인의 정체성과 연관된 시구들이다.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하지만
작다고 덧없는 삶이 어디 있고
흔들린다고 부질없는 삶이 되나
모두가 소중한 생명인 것을
- 시 「부평초」 부분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크든 작든,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시인은 시를 통해 평소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이처럼 평등하게 공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하늘 아래 땅 위에서/ 같은 숨 쉬고 꿈틀거리는/ 수많은 삶의 줄기와 가지"(시 「고추가 하는 말」)로 묘사하고 있다. 꽃을 통한 이러한 사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를 한번 보자.
겨울을 타고 온 동백꽃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찬바람도 태풍도 모두의
아픔을 보듬은 까닭이다
태종대 돌아가는 둘레길
붉은 향기를 풍기다
늦은 봄에서야 꽃잎 떨구는 그리움 안고
마지막까지 활활 타오르다가
더욱 수줍게 붉어진 이유다
겨우내 임을 그리워하다가
이름이 붙여진 지도 모르고
미련스레 꿋꿋하게 버티며
가장 벼랑 진 바위에 매달려
다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더욱 아름다운 처지가 되면
나도 동백이 되어 닮아있다
- 시 「동백이 되어」 전문
요즈음 젊은 여성들은 평등한 교육을 받아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자처럼 예순이 다 된 여성의 경우 생각은 남녀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본인들의 실질적인 삶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아내이기 때문에, 어머니이기 때문에 한 걸음 양보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여성은 공통으로 남편과 지식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다. 시인은 이를 동백꽃에 비유하여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찬바람도 태풍도 모두의/ 아픔을 보듬은 까닭이다"라고 직시한다. 품이 너르고 깊은 화자 역시 여성이므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은 생의 마지막까지 "꽃잎 떨구는 그리움 안고" 살면서 "마지막까지" "더욱 수줍게 붉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수줍어지는 마음을 가진 게 여성, 즉 동백꽃이라는 것이다. 동백꽃은 화자 자신이다. "겨우내 임을 그리워하다가" "미련스레 꿋꿋하게 버티며" "가장 벼랑 진 바위에 매달려" "나도 동백이 되어 닮아있다"라고, 동백꽃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를 '시인과 시의 동일성' 또는 '시인과 시의 쌍란성'이라고 일컫는다.
▣ 제2부: 사계절을 그리움으로 환치하는 시심詩心
제2부의 시편들에서 화자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운행을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압축어로 묘사하고 있다.
겨우내 들판에 남아있던 잔설마저
따사로운 그리움을 태우고
구불구불 샛강으로 흐른다
끈끈한 핏줄기 지독하게 따라오는
인연으로 꽃망울 되어 버린 목련
돌고 돌아 다시 꽃처럼 보이는
서럽도록 아름답게 강물을 탄다
더욱 화려한 만개를 위해
꽃망울 감싸 보듬고서
기다리는 꽃바람 돛을 달고
봄이 강 되어 내게로 온다
- 시 「봄이 강처럼」 전문
위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연에서는 바람이 들어오는 열린 들창문 너머로 구불구불 샛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장면, 즉 들판의 잔설마저 따사로운 그리움을 데우는 장면을 본다. 시인의 가슴 밑바닥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출렁이고 있다.
둘째 연을 보면 시인의 시야에 목련도 들어온다. 그 목련에는 꽃망울이 맺혀 있다. 꽃망울의 사연은 처절하다. 망울 하나하나가 그냥 달린 게 아니라 지독한 인연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시인의 구체적인 경험이 아닌 감각으로 이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도 그냥 강물이 아니다. "돌고 돌아 다시 꽃처럼 보이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강물이다. 목련이 꽃 같은 이 "강물을 탄다". 마치 목련의 꽃망울에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풍광이 투시되어 있다는 표현이다.
셋째 연에서는 드디어 이 강이 화자 자신에게로 온다. 그것도 목련이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돛을 달고서 말이다.
이처럼 화자는 시의 구성에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있다. 3연의 시적 구조에 있어 첫째 연에서는 자연과 영물의 묘사, 둘째 연에서는 이를 느끼는 심상, 셋째 연에서는 그 자연에서 시인의 생각과 감성이 어떠한가를 읊고 있다. 반드시 이러한 시적 구조를 지킬 필요는 없겠지만 독자에게 시를 전달하는 감동이 더 크다. 시인의 생각을 더 잘 전해줄 수 있다. 그런데 화자는 많은 시인이 무시하고 있는 이러한 시 형식의 전형을 강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시 「흘러가는 봄」에서는 "시간도 꽃도, 슬픔도 그렇게 흐르고…// 이렇게 이별해도 견딜 수 있는 건/ 다시 올 봄을 벌써 기다리기에/ 서로가 바짝 다가가지 못해도/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을 사랑"이라며 읊고 있다. 계절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봄을 좀 더 붙잡고, 봄과 좀 더 사랑하며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화자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지나간다. 아쉽지만 봄을 떠나보낸다. 그건 다시 봄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자는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심성을 갖고 있다. 사랑해도 바짝 다가서 있지 않고 멀리서 그저 보기만 해도 좋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면 상대의 옆에 바짝 붙어 "내 것이야"라며, 소유하려고 하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 이타심과 배려심을 가진 품성이다.
그러면 '여름'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시 「여름 일기」를 보자. 화자는 여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매사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건 비록 화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본능이다. 화자 역시 사랑 때문에 "더운 눈물 질퍽하게 흘려보"낸다.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뒤돌아서서는 마치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양 "참회를 거듭"한다. 화자가 반성하고 참회를 하는 건 일상이다. 1부에서 언급했지만, 화자는 마치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그 계절에 뜨겁게 달구어진/ 사랑"을 염원한다. 화자에게 '사랑'이 없다는 건 생존할 의미가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사랑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세상사 및 모든 사람에 대한 그것이다.
가을을 노래한 시 「가을 단상」에서는 가을의 상징으로 "뜨락에 핀 국화 그림자 마주하며" 가족이든 이웃이든 사람들과 "도란도란 가을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가 대단하다거나 신비로운 삶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영위하는 일상 그 자체에서 창작된다. 그러면서 가을의 또 다른 상징인 기러기 떼를 시구에 등장시켜 시의 전개 및 완결성을 더 단단하게 직조하고 있다. "아, 이 계절이 지나면/ 하얀 머릿결 또 늘겠지"라며, 세월의 순환성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런데 머리를 들어보니 기러기 떼가 "제 갈 길 따라 동공을 움직이며" 날아가고 있다. "머얼리 점이 되어가"는 모습은 곧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너그러운 마음, 자비로운 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가을 역시 "내년에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시 「가을 속으로」에서는 "그 사이로 난 수많은 길이/ 거미줄 아닌 텔레파시처럼/ 얽히고설킨 틈 사이로/ 어제와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좁아서 불편하고, 넓어 허전한/ 수없이 오가며 넘는 행간으로 다가온다"라며 노래하고 있다. 삶이란 얽히고설켜 불편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한 상황이 언제나 되풀이된다. 대개의 사람은 생활에 쫓겨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화자는 한발 물러서 바라보는 듯 삶의 행간까지 다 읽고 있다.
시 「가을비, 너는」에서는 "이렇게 시원한 빗방울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만나/ 눈꽃이 되면/ 뜬 눈으로 긴 밤새는/ 축복되겠지"라며 읊었다. 많은 사람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화자는 가을이 가는 것을 상징하는 가을비가 계절의 바통을 이으려고 다가오는 겨울바람을 만나 눈꽃이 되면 그게 축복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과연 시인이 섬세한 심성을 가진 여성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큰마음'이 아니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시 「겨울비에게」에서 "너도 그리움이 있어 밤을 설치"며, "기쁨인지 슬픔인지 몰래 흐"른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눈물 나도록 빗소리를 사랑하는" 화자를 "다정하게 불러주던" 겨울비는 "모든 슬픔을 꽁꽁 얼려버리고" "수억 년 빙하 속의 위로를 꺼내어" "새 생명을 환생시키는 따스한 손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아얀 눈가루를 뿌리다가" "더 슬퍼지면 겨울비 되어 내리는구나"라며, 겨울비에 대한 화자의 감성을 풀어놓는다. 즉 화자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은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추위가 있지만, 그 속에는 새 생명을 배태시키는 따스한 손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지만 봄을 탄생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 제3부: 도시에서 잊고 사는 부호화된 언어들에 대한 인식
제3부에서는 자연적 현상 등에서 느끼는 감성을 주로 읊고 있다. 빌딩과 건물이 즐비한 도심지에서 느끼는 자연적 현상들을 표피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잠시 스쳐 가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시인은 가장 많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화자 역시 이런 전설(?)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여타의 시인들보다 더 예민하다. 도시에서는 이미 부호화되거나 박제화된 언어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마법을 보인다.
긴 장마가 오면 울기 참 좋다
온몸으로 비 맞으며 흘리는 눈물
마음 들키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어 좋다
사랑하지 못해서
사람에게 속아서
그 사실 알아채지 못한 아둔함
이제라도 울 수 있어 좋다
주르륵 쏟아지는 장대비 따라
모가지가 쉬어버릴 통곡마저
깨문 입, 두 손으로 막아본들
갈라지는 흐느낌으로 충분해서 좋다
절망의 고통에 온몸이 젖어도
비가 그치기 전 가슴 한편에다
보석 같은 눈물 한 방울 정도 남기고
모르게 따라 울 수 있어 좋다
- 시 「눈물비」 전문
장맛비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또는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의 슬픔과 거기에서 오는 순간적인 기쁨 등을 마치 비빔밥처럼 온갖 감정의 양념을 다 버무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그 속에 든 감성이 결코 그냥 막 쏟아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어를 최대한 절제하여 누르고 깎아 시라는 주물에 부어 넣어 만든 것이다. 나이 든 여성은 더더욱 아무 데서나 울지 않는다. "긴 장마가 오면 울기 참 좋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살면서 가슴 속에 담아둔 애환이 많다는 뜻을 은유시킨 것이다.
주부로서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온갖 난관이 있는데, 시 낭송가로서, 시인으로서 여러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은 다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자이크되어 있을 것이다. 늘 바람 세차게 부는 외딴집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온몸으로 비 맞으며" 눈물을 흘린다. "마음 들키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남모르게 "실컷 울 수 있어 좋"기 때문이다. 시인이든, 판·검사든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봤음 직한 보편적 생각이다.
이런 시적 장치를 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화자의 시편들은 모든 사람이 읽기에 어렵지 않다는 사실은 이러한 보통의 감성과 언어 등을 시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치이고 속은 그런 감정까지 빗속에서 다 배출하려고 한다, 울음 뒤에는 남은 찌꺼기가 생각에서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화자의 사람 좋음 때문에 비롯된 여러 상처는 "아둔함"이라 단정하며, "이제라도 울 수 있어 좋다"라고 말한다. 화자는 끝없이 너른 바다의 품을 가졌다.
「가을 무지개」라는 시는 시적 소재가 특이하다. 3연으로 된 이 시에서는 첫 연의 첫 행에 "향기롭다", 둘째 연의 첫 행에 "눈물겹다", 셋째 연의 첫 행에 "그립다"라며, 같은 형식의 시적 표현을 기입하였다. 그러면서 향기로운 이유는 "지난여름 지루한 장마와/ 혹독한 더위를 견뎌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내일이라는 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 "결실로 달"린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은 그냥 저절로 쉽게 생긴 건 아니다. "가슴 저미며 일곱 색깔을/ 쏟아부은 이유"이다.
둘째 연의 눈물겨운 이유에 대해서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남겨둔 소중한 유전자"가 가을 무지개인데, "누군가가 아름다운 모양으로 모아" 다 거두어 가 이름은 있지만 "남은 건 쭉정이뿐인 까닭"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때때로 절망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는 게 이런 때문이다. 애써 땀 흘리며 고생하여 이루어놓았는데 그 공을 남이 다 가로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셋째 연의 그리운 이유에 대해서 시인은 "마지막 사연마저 들려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기다리고 기다린 그대"가 "이 길목을 지나고 나면" "아치 같은 초승달 닮은 침묵으로/ 계절을 보내기 때문"인 것이다. 진정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화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이 비록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린 그대"를 위해서는 다 내어주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깊고 넓은 인성을 가진 화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런 마음이 더 크다. "초승달 닮은 침묵으로"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계절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그냥 볼 수 없는 심성 때문이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맥이 끊이지 않도록 이어 표현하고 있다. 시 「낙엽이 되어」에서는 "지난밤 소리 없이 내린 비/ 처마 끝에 부딪혀 떨어지며/ 뒹굴던 낙엽 위로 슬그머니 내려앉"는 모습을 시각적·청각적으로 그려낸다. 이제 화자의 마음이 드러날 차례다. 그 비가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어/ 툭툭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다며, 살아온 나날들이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인 지난날들을 끄집어낸다. 그 지난 세월 안에 들앉아 있던 사랑이 "심장이 터질 듯한 손길로" 화자의 "볼을 만진다". 남편이든 자식이든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없었으면 혼자만의 세월은 무척 외롭고 황량했으리라는 의미의 역설적 전달 수법이다.
삶에 있어 사랑만이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 「안개」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끝없는 어둠"이라고 힘든 나날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공포와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지 못한다. 화자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자신의 힘듦 보다는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심의 발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건 힘들어도 직설적으로 '힘들다'라고 언급하지 않는 화자의 심성 때문일 거다. 이러한 근거로 "누군가가, 무엇이든지/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기적 소리 크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죽을 만치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면 이전보다 더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는 교훈적 표현이다.
화자의 이러한 타자에 대한 마음은 다음 시 「하얀 바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솟아오를 때 무서워하거나 거칠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 품 같이/ 침묵으로 마음을 품는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평소의 마음이 그렇게 평온하여 세상 모든 것들을 자기 생각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심성을 담아 독자들에게 "날마다 꿈꾸던 바다에/ 작은 섬 하나 둥둥 띄우고/ 아련한 뱃길 같은 길 하나/ 고요한 새벽 열고 다가온다"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이나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희망은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다. 우주의 미미하기 짝이 없는 작은 존재인 우리가 "날마다" 꿈꾸면 "아련한 뱃길 같은 길"이 마치 "고요한 새벽 열고 다가온다"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막연한 배려가 아니라 옛 경서에 나오는 훈고訓?적 성격까지 띠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타인에 대한 화자의 마음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뚝뚝 떨어지는 다대포의 해
고열로 온 세상 붉게 만들더니
검은 지평선 너머 사라집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갈 길을 가지만
못내 아쉬워 오래오래 바라봅니다
다대포의 낙조를 읊은 시 「낙조」 부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야할 때가 되면 모두 가게 마련이다. 화자는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붉게 물들인 후 사라지는 낙조를 고요하게 보고 있는 화자가 말하는 "못내 아쉬워 오래오래 바라"본다는 표현은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며,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세상사를 마치 나무라듯 말한다.
그러면서 "화려한 이별은 있어도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며, 사라지는 낙조에 대해 보다 깊은 철학적 심미안을 내보이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이란 "작은 모래알이 퇴적되어 섬 되듯이/ 미움이 쌓여 거대한 사랑이 됩니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미움이 조금만 쌓여도 이별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미움이 쌓여 거대한 사랑이 된다는 이 논리 모순적인 표현을 화자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희망을 품으려면 일출을 보아야 하지만/ 절망을 이겨내려고 낙조 앞에 서 있습니다"라며, 낙조를 바라보는 개인적 소회를 풀어내고 있다.
시 「겨울 바다」에서는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게 운명이라는 듯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다.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차가운 바람 맞으러 가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허허벌판에서도 외롭지 않다
꽁꽁 언 모래밭에 발끝 세우면
하얀 김 내뿜으며 땅이 무너진다
한 주먹 모래를 얼굴에 뿌려대는 바람
질끈 눈을 감고 갈갈한 입속에서
깊어서 한이 된 외로움을 뱉어보지만
출렁이는 물거품에 멀미가 느껴진다
촉촉한 미련마저 바람은 말려버린다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 꿈이던가
파도는 침묵의 계절에 더욱 출렁이고
손가락 끝이 꽁꽁 얼어갈수록
수평선 구름처럼 떠오르며 다가오기에
시원한 희망으로 가슴 채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허허벌판에서도 외롭지 않다"라고 그렇지 않은 척 언급하지만, 화자의 가슴은 사실 외로움에 잠겨 있다. "질끈 눈을 감고" 독백하듯 "깊어서 한이 된 외로움을 뱉어"본다. 그러자 "출렁이는 물거품에 멀미가 느껴"짐을 느낀다. 화자의 깊은 속 아래에는 외로움·아픔·비애감 등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어 그걸 뱉어내게 되면 오히려 멀미가 느껴질 정도로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오래도록 간직한 그런 것을 자신과 동일체로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이던가"라며, 마치 태생적으로 아픔을 가진 것처럼 자신에게는 작은 꿈조차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 속으로 숨어버린다. 타인에게는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 꿈이던가"라며, 희망 또는 꿈을 가질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시 「겨울 바다 2」에서는 "만날 때 좋은 사람보다/ 헤어질 때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만큼 쓰라린 이별을 많이 맛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슴 속 뜨거움 나누었기에/ 파도에 씻기는 쓰라림 하나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라며, 이별도 또 다른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일러준다. 이별도 아름답다고 말이다.
시 「겨울 바다에서」는 "너무 아파서 느낄 수 없는 고통"이라며, 시인은 삶의 극한을 느끼고 그걸 넘어선 존재임을 명제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가" 힘들어 "정신 놓을 때가 되면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화자는 자신에게는 처절할 만큼 경계를 하는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화자는 시 「폭설을 만나서」에서 "언젠가 갇히고 싶은 적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성임을 숨길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도 좋고/ 아니 혼자여도 좋을 것만 같"다고 피력한다.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고 사유하는 시인이지만 여성이라는 태생적 감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강한 햇볕에도 녹지 않기"를 바라며, 혼자만의 아픔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럴 때 "독한 술을 마시고 쓰러진 것처럼/ 깊은 눈 속에 오래오래 취하고 싶었다"라고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고 있음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화자가 시적 언어를 내려놓고 혼자 몰래 일기를 쓰듯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3부에서는 시의 주제 및 시구의 소재, 언어는 모두 일상에서 보는 자연의 모습이다. 시적 소재가 또한 특이하다. 눈물비·가을 무지개·낙엽·안개·바람·소나기·하얀 바다·소나기·낙조·겨울 바다·폭설 등 도시화 된 세상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이미 부호화된 시어를 기억하고 있다. 화자가 삶을 영위해가는 공간은 부산이라는 대도시다.
▣ 제4부: 시인 겸 시 낭송가, 두 촉각으로 시를 짓는 고통
시 「진주 같은 눈물」에서는 "누구나 울지만/ 가슴으로 우는 사람은/ 쉬이 눈물을 닦지 않는다"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잠언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운다. 표면적으로 우느냐, "가슴으로 우"느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화자는 "가슴으로 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쉽사리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도 않아 쉽게 울지도 않지만, 또 "쉬이 눈물을 닦지 않는"데, 그건 한마디로 마음이 깊어서이다. 오랫동안 마음을 절제하고 이타심을 키우고 희생정신을 배양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눈물을 "진주 같은 눈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다음 시는 '행주'를 소재로 읊었다.
손톱 사이 티눈 살짝 스쳐도
온몸의 신경 날카로운데
행주 짜듯 내가 짜인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도 말없이 감사한
행주가 될 수 있다면
사회에 필요한 행주가 되자
-시 「행주가 되자」 부분
행주의 효용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화자 자신의 효용성에 대해 조용히 말하고 있다. "손톱" 밑의 "티눈 살짝 스쳐도" "온몸의 신경 날카"롭게 아프다. 하물며 "행주 짜듯 내가 짜인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화자가 그만큼 고통스러운 적이 있음을 눈치를 채게 하는 시구이다. 그러면서 식탁의 오물 등을 닦아내는 "행주가 될 수 있다면" "사회에 필요한 행주가 되"고 싶다는 화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주변의 좋지 못한 사람들을 좋게 만들고, 사회의 모순이나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잡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그러고 보면 화자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존재이다. 시에서 '사회'라는 단어가 생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참신함이 느껴진다.
다음 시는 「주부로 산다는 게」 전문이다.
신혼의 꿈 봄날 나비인 양
나풀거리는 착시 현상을 지나
비로소 지금에야 눈이 떠지며
하나둘 이건 아니다 하는데
차곡히 쌓인 벽돌 하나둘 빠지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안녕한 젊음
아들딸 놓고 키우느라
밥이 입,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세월 그리 빨리도 지나가는데
한 가지 끝나면 두 가지 걸리고
아침 돌아서면 점심과 저녁 준비
그사이 빨래며 청소, 쓰레기까지
눈꺼풀은 문 닫힌 셔터처럼 무겁다
이 일 언제까지 해야 할지
주부를 마셔버리면 무엇을 할까
이 시에서는 주부로서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주부로서의 인생을 잘 묘사한 시를 본 적이 없다. 결혼을 갓 한 신혼 때는 "봄날 나비인 양/ 나풀거리는 착시 현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눈이 떠지며"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나둘 이건 아니다"라는 걸 깨달으니 "젊음"은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아들딸 낳고 키우느라/ 밥이 입,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살아온 세월이 아득하다. 나이는 이미 예순이 다 되어 간다. "이 일 언제까지 해야 할지"라며, 끝없는 주부로서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주부"로서의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까"라며, 서운함이 들지도 모르겠다며 추측한다.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한 집안의 주부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시 「일기를 쓰며」에서는 "어떤 날 참고/ 꾸욱 참고 싶어도/ 목청 부딪히는 소리 내며/ 눈물 흘리는 날이 있다"라며 읊고 있다. '삶이란 참는 것'이라고 한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일인장락一忍長樂'이라는 말도 있다. '한 번 참으면 기쁨이 오래도록 간다'라는 뜻이다. 앞의 여러 시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화자라고 해서 무작정 참지는 못한다. 그러면 인간이지 않은가. 그래서 "꾸욱" 누르고 눌러 "참고 싶"지만, 결국에는 "목청 부딪히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울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눈물 흘리는 날이 있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시의 제목이 시의 흐름에 맞게 「일기를 쓰며」이다. 일기를 다른 이름으로 '일성록日省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날의 일을 정리하여 기록하면서 반성하고 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시 「갈미조개」에서는 "저리도 둥글 달 어이해서/ 낙동강 비추는 걸까/ 그 동네마다 달리 부르는 이름/ 명지에서 많이 난다고 명지조개/ 갈매기 부리 닮아서 갈미조개/ 속살이 노랗다고 노랑조개"라며 노래하고 있다. 민속학적인 지식까지 제공하는 이 시에서 조개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단순히 그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만, 그 속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것의 본모습을 보자는 의도가 시에 깔린 것이다. 어쩌면 갈미조개를 매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서로 부딪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궁합 볼 것 없이 어울리는 맛"처럼 한 꺼풀 벗겨 세상을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만 사람살이가 "제맛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4부의 제시題詩인 「절영서설絶影書說」은 영도에 있는 미룡사라는 절에서 바라보는 풍광과 그 절의 금당을 읊고 있다. 영도는 섬이므로 "한 고개 돌아보면 푸른빛 바다"이다. 그 섬에 "미륵불"을 바라보는 "미륵사 금당"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자의 시심詩心은 다분히 불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과 글이 어울려 노래하는
집을 짓기 위해 밤을 새우는 시인
풍성한 마음 담은 단어 하나까지
시 낭송가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
같은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쳐 아플 때 마셔야 하는 쓴 약이어도
달콤한 목 넘김으로 삼킬 수 있다면 좋겠다
기쁨 설레고 슬픔 더욱 아련하게
잘 부르는 노래가 듣기에도 좋듯이
고저장단 리듬 맞춘 편곡으로
노래는 말하듯 말은 노래하듯이
힘차고 고요하기 얼마나 힘든지
드러내지 않는 한복 같은 세련미를 보탠다
말은 좋은 기수를 만나서
다시 태어나 달려가듯이
가슴 속 울림 좋은 그림 그리듯
목에 힘 빼라는 고수의 말 한마디
위태롭지 않게 흔들릴 수 있어야
울지 않고 덤덤하게 울리는 감동을 주는
진정 아름다운 여백의 미 노래한다
- 시 「시를 노래하며」 전문
화자는 시인임과 동시에 시 낭송가이다. 시를 낭송하는 게 어떤 건지, 시를 낭송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시를 잘 낭송하는 방법까지 읊고 있다. "풍성한 마음 담은 단어 하나까지/ 시 낭송가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야 낭송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은 좋은 기수를 만나서/ 다시 태어나 달려가"듯 시 낭송가도 기수처럼 시의 묘미와 뜻을 잘 담아 낭송을 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무슨 일이라도 쉬운 게 없다. "목에 힘 빼라는 고수의 말 한마디"는 진정한 시 낭송가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많은 노력뿐 아니라 고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위태롭지 않게 흔들릴 수 있어야/ 울지 않고 덤덤하게 울리는 감동을 주는/ 진정 아름다운 여백의 미 노래한다"라는 말이다. 시 낭송가로서도 가볍게 살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읽힌다.
화자의 시 낭송은 시 「목어木魚 시詩울림 어울마당 -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에서」에서 현실화 된다. "시와 음악, 무용이 함께 더덩실 어울려/ 마냥 울다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감천마을 축제다"라며,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의 의미를 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덩달아 어우러진 외국인도 아리랑 부르며/ 비탈 골목길 따라 목어도 배를 두드리며/ 어울마당 가득한 시 울림 함께 춤을 춘다"라고, 외국인도 어울리는 다양한 성격의 축제임을 밝히고 있다. 부산
인간성 회복과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변
배동순 시인이 이번에 발간하는 제2시집 『동백이 되어』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구분해 해설하도록 하겠다. 또 문학 이론이나 어려운 글을 지양하고 이야기하듯 쉽게 풀어나가겠다.
▣ 제1부: 꽃을 소재로 한 포용력의 미학
꽃은 사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남녀 간에 사랑을 표현할 때 꽃을 준다. 선물하는 꽃의 종류도 시대나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아직 덜 친숙한 남녀가 함께 길을 걷다 남자가 길가에 핀 들꽃을 한 송이 꺾어 무안스럽게 내밀거나 결혼 신청을 할 때 백 송이의 장미 다발을 건네기도 한다.
선사 이전 시대라도 달랐을까? 애도의 마음으로도 꽃을 준다. 미국 9·11 테러 현장에 수많은 시민이 애도하며 꽃을 놓았다. 오래전 경주 선덕여왕의 묘에 갔을 때 그 앞에 놓인 꽃다발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내민 꽃다발이었을 것이다.
배동순 시인의 시집 1부에 실린 시들은 모두 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면 시인은 꽃을 어떻게 시로 형상화했는지를 들여다보겠다.
굳이 말하면 꽃 중의 꽃 사람꽃 아닐까
그 꽃도 다양하여 어찌 승화해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까
사람의, 사람에게, 사람답게
사람으로서 향기 품은 심행心行이 빛 발할 때
꽃 중의 꽃이 되리라
- 시 「꽃이 되리라」 부분
시인은 자식 둘을 둔 어머니이자 주부이다. 사람이 결혼해 지식을 낳아 키우고 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온갖 일을 겪는다. 50대 중후반의 시적 화자는 세상사에 매우 익숙한 나이이다. 세상살이에 부와 권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사람답게 산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연륜에서 깨달은 지혜이다. 그리하여 "꽃 중의 꽃"은 "사람꽃"이라고 아예 정의해버린다. 그러면서 "어찌 승화해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될까"라며, 불교의 보살심을 내보이고 있다. 실제로 화자는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적멸보궁 관음정사에 행사 때마다 참석하여 기도를 드린다. 사찰의 탱화에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 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나 화병에 꽂아 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자비로 구원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관음도이다. 꽃 중에서도 길상화는 관세음보살을 상징하는 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꽃은 자비와 깨달음의 의미를 지닌다.
꽃에 대한 시편들의 표현이나 행간에 이러한 뜻을 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사람의, 사람에게, 사람답게/ 사람으로서 향기 품은 심행心行이 빛 발할 때/ 꽃 중의 꽃이 되리라"라고 자비와 깨달음의 의미에다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세상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사유는 다음 시에서도 이어진다.
행여나 손길 닿을까 두려워
흙탕물 위에다 터를 잡고서
백만 년에 한 번 핀다는 고고함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지독한 가시를 가슴에 안은 너
섬�하게 만드는 처절한 고립
그 아픔 내가 찔려서라도
사랑스레 안아주고 싶다
- 시 「가시연꽃을 보면서」 부분
화자는 여러 역할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 존재로서 바르고 꼿꼿하게 자존의식을 갖고 있음을 시편 여러 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행여나 손길 닿을까 두려워/ 흙탕물 위에다 터를 잡고서/ 백만 년에 한 번 핀다는 고고함"이라는 표현도 그런 의식의 발로다. 지저분하고 나쁜 세상의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으며, 설사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반듯함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지독한 가시를 가슴에 안은 너/ 섬�하게 만드는 처절한 고립"이라는 시적 표현은 이중적이다. 가시연꽃의 고고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프다는 것은 화자의 심증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오염된 세상사에 뒤섞이지 않으려는 자세는 남들은 모르지만, 내면적으로는 무척 아프다. 지독한 가시를 안은 것처럼 고립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것도 섬뜩할 정도로 처절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그 정신을 "찔려서라도" 스스로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싶다"라는 것이다.
시인이라고 모두 이런 맑고 순결한 정신을 가질 수 없다. 비록 여성이지만 옛 선비들의 내면에 파랗게 가라앉아 있는 그 고절高節한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 한매寒梅같은 기질을 가시연꽃에 대비해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거친 속에서 더 강하게
추운 곳에서 더욱 따뜻하게
슬플 때도 더더욱 웃음 지으며
미운 곳에서 더욱 사랑하려고
하얗게 피었습니다
차라리 꼭꼭 밟고 지나가라고
어떤 고통도 아무것 아니라고
당당하게 강한 눈웃음을 짓고 있어
차마 한 걸음도 옮길 수조차 없었습니다
- 시 「하얀 겨울 들꽃」 부분
그런 보살의 마음을 가진 화자이어서 "추운 곳에서 더욱 따뜻하게" 피고, "슬플 때도 더더욱 웃음 지으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아예 깨달음을 해탈의 경지에까지 다다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적 표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그러리라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비록 "미운 곳"에 처해 있더라도 사람과 세상을 "더욱 사랑하려고", 보듬어 감싸 안으려고 "하얗게 피었"다고 밝혔다.
본래의 심성이 그렇겠지만, 시를 쓰면서 시인은 더욱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이웃을 좀 생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승화된 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차라리 꼭꼭 밟고 지나가라고"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듯 "어떤 고통도 아무것 아니라고/ 당당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다. 이 정도의 마음이면 부처의 마음이기도 하고,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면 세상을 이렇게 관조하는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시인의 제1시집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에 실린 시 「어머니의 정수리」에서 그 기점을 읽어낼 수 있다.
곱디곱게 갸름한 얼굴 위로
나지막한 오름 같던
어머니 정수리가
어느 날부터 밥상처럼 편편해졌다
쉰 바라보던 낭군 병시중으로
국수 공장 말아먹고
청정한 마른 즈음 홀로 되어
팔 남매 먹거리 자식 농사
한숨 길어 올리고 선 장삿길에서
그릇이며 접시, 온갖 장사
수를 놓고 받은 쌀가마니
머리에 이고 오고 간 십리 길
무게가 짓누른 상흔이다
집으로 오는 길마중 나온
막내딸 손잡고 돌아와서는
점점 내려앉아 밥상 같은 정수리에
자식 공부 하루 끼니 차리시고
싫은 내색도 안 하시더니
구순이 된 지금도
찾아뵐 때마다
그 밥상을
또 펴신다
위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감동을 받아 가슴 뭉클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 자란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언행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는 말까지 한다. 화자의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며 팔 남매를 키우신 분이다. 어머니께서 그 과정에서 겪으신 어려움은 감히 짐작할 수 없으리라. 어머니의 머리가 편편해진 것은 온갖 물건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 다니신 때문이다. 그 "무게가 짓누른 상흔" 때문이다. 그 정수리가 "점점 내려앉아 밥상 같"다. 어머니는 지금 구순이다. 예순이 다 된 막내딸이 "찾아뵐 때마다" 지금도 "그 밥상을/ 또 펴신다"라고 한다. 이미 시인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섞여 자라면서 보살행의 마음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팔 남매의 막내로 자랐지만 일찍부터 이러한 시건(철)이 든 이유에 대해 시인은 무의식중에 다른 시에서도 나타내고 있다. "아버진 굵은 땀 흘리며 반죽하시고/ 어머닌 가느다란 면발/ 틀에서 정성스레 뽑아낸다// 언제나 국수를 대할 때면/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과/ …"(시 「국수를 먹으며」 부분)에서는 '겸손'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있다.
시 「어릴 적 고향」에서도 "나의 어릴 적 고향 마을 사람들은/ 재롱과 응석 모두 받아주던/ 호수가 되어 자궁처럼 누워있다"라며, 시인의 자비로운 마음과 세상사에 대한 깨달음은 비단 부모님의 언행뿐만 아니라 어릴 때 자라던 고향 마을 사람들의 넓은 품에서도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못나지 않았다
무심한 이가 못난이라 이름 지었고
혼자서도
아름다운 꿈을 키우며
향기만을
소유하고 싶은 건 욕심임을
세찬 바람마저
고맙고 사랑스러워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걸
꽃이라 부른다
- 시 「꽃의 항변」 전문
이 시는 꽃의 속성, 즉 본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꽃을 소재로 여러 편의 시를 읊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드러내는 시이다. 꽃은 예쁘든, 그렇지 않든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꿈을 키"운다. 그리고 향기를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진다. 그러면서 "세찬 바람마저. 고맙고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서도 세찬 바람뿐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모진 것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꽃의 본성, 아니 시인의 마음을 한 구절로 정의한다. 세상의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걸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걸' 꽃이라 부른다"라고 읊고 있다.
시 「능소화」에서는 "붉지 못해 붉어지려는 노오란 주황/ 확성기 모양을 하고/ 슬픈 전설을 노래한다"라며, 꽃 능소화의 속성을 여성 또는 화자 자신의 심상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제한받는 삶을 "붉어지려는 노오란 주황"이라며, 그 어떤 것에도 속박됨이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으로서의 속박을 마치 "슬픈 전설을 노래"하듯 들려주어 그 굴레를 벗게 하고 싶은 무제한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한 하나의 방법으로 "담장에 까치발로 기대어 서서" 바깥세상을 확인하려 한다. 여기에는 여권신장을 바라는 염원도 내포되어 있다.
시 「벚꽃」에서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지금 다 태우고 말 작정으로/ 뜨겁게 피"고자 하는 열망이 내면에 가득 차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시인은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그 열정은 다양한 모습으로 읽힌다. "열매 잃고 이별 이겨낸"(시 「설중매」) 개인적 아픔일 수도 있고, "가슴 속 수많은 분신을 품"(시 「해바라기 연정」)은 인생의 애환이기도 하다. 또한 "서러움 흘려보내지 못하고. 저 강물 위에서 출렁 그네를 타고 있"(시 「홍매화」)는 낙동강의 윤슬처럼 가슴에 한과 서러움을 간직한 삶도 있고, "그리워도 참으라며 흔들리고 있"(시 「억새의 노래」)는 삶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적 삶의 어긋남을 직설적으로 노래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삶의 평안성을 기억하려고 한다. 시인의 정체성과 연관된 시구들이다.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하지만
작다고 덧없는 삶이 어디 있고
흔들린다고 부질없는 삶이 되나
모두가 소중한 생명인 것을
- 시 「부평초」 부분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크든 작든,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삶을 살 권리가 있음을 시인은 시를 통해 평소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이처럼 평등하게 공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하늘 아래 땅 위에서/ 같은 숨 쉬고 꿈틀거리는/ 수많은 삶의 줄기와 가지"(시 「고추가 하는 말」)로 묘사하고 있다. 꽃을 통한 이러한 사유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시를 한번 보자.
겨울을 타고 온 동백꽃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찬바람도 태풍도 모두의
아픔을 보듬은 까닭이다
태종대 돌아가는 둘레길
붉은 향기를 풍기다
늦은 봄에서야 꽃잎 떨구는 그리움 안고
마지막까지 활활 타오르다가
더욱 수줍게 붉어진 이유다
겨우내 임을 그리워하다가
이름이 붙여진 지도 모르고
미련스레 꿋꿋하게 버티며
가장 벼랑 진 바위에 매달려
다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더욱 아름다운 처지가 되면
나도 동백이 되어 닮아있다
- 시 「동백이 되어」 전문
요즈음 젊은 여성들은 평등한 교육을 받아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자처럼 예순이 다 된 여성의 경우 생각은 남녀가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본인들의 실질적인 삶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아내이기 때문에, 어머니이기 때문에 한 걸음 양보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여성은 공통으로 남편과 지식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다. 시인은 이를 동백꽃에 비유하여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찬바람도 태풍도 모두의/ 아픔을 보듬은 까닭이다"라고 직시한다. 품이 너르고 깊은 화자 역시 여성이므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은 생의 마지막까지 "꽃잎 떨구는 그리움 안고" 살면서 "마지막까지" "더욱 수줍게 붉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수줍어지는 마음을 가진 게 여성, 즉 동백꽃이라는 것이다. 동백꽃은 화자 자신이다. "겨우내 임을 그리워하다가" "미련스레 꿋꿋하게 버티며" "가장 벼랑 진 바위에 매달려" "나도 동백이 되어 닮아있다"라고, 동백꽃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를 '시인과 시의 동일성' 또는 '시인과 시의 쌍란성'이라고 일컫는다.
▣ 제2부: 사계절을 그리움으로 환치하는 시심詩心
제2부의 시편들에서 화자는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운행을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압축어로 묘사하고 있다.
겨우내 들판에 남아있던 잔설마저
따사로운 그리움을 태우고
구불구불 샛강으로 흐른다
끈끈한 핏줄기 지독하게 따라오는
인연으로 꽃망울 되어 버린 목련
돌고 돌아 다시 꽃처럼 보이는
서럽도록 아름답게 강물을 탄다
더욱 화려한 만개를 위해
꽃망울 감싸 보듬고서
기다리는 꽃바람 돛을 달고
봄이 강 되어 내게로 온다
- 시 「봄이 강처럼」 전문
위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연에서는 바람이 들어오는 열린 들창문 너머로 구불구불 샛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장면, 즉 들판의 잔설마저 따사로운 그리움을 데우는 장면을 본다. 시인의 가슴 밑바닥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출렁이고 있다.
둘째 연을 보면 시인의 시야에 목련도 들어온다. 그 목련에는 꽃망울이 맺혀 있다. 꽃망울의 사연은 처절하다. 망울 하나하나가 그냥 달린 게 아니라 지독한 인연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시인의 구체적인 경험이 아닌 감각으로 이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도 그냥 강물이 아니다. "돌고 돌아 다시 꽃처럼 보이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강물이다. 목련이 꽃 같은 이 "강물을 탄다". 마치 목련의 꽃망울에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풍광이 투시되어 있다는 표현이다.
셋째 연에서는 드디어 이 강이 화자 자신에게로 온다. 그것도 목련이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돛을 달고서 말이다.
이처럼 화자는 시의 구성에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있다. 3연의 시적 구조에 있어 첫째 연에서는 자연과 영물의 묘사, 둘째 연에서는 이를 느끼는 심상, 셋째 연에서는 그 자연에서 시인의 생각과 감성이 어떠한가를 읊고 있다. 반드시 이러한 시적 구조를 지킬 필요는 없겠지만 독자에게 시를 전달하는 감동이 더 크다. 시인의 생각을 더 잘 전해줄 수 있다. 그런데 화자는 많은 시인이 무시하고 있는 이러한 시 형식의 전형을 강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시 「흘러가는 봄」에서는 "시간도 꽃도, 슬픔도 그렇게 흐르고…// 이렇게 이별해도 견딜 수 있는 건/ 다시 올 봄을 벌써 기다리기에/ 서로가 바짝 다가가지 못해도/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을 사랑"이라며 읊고 있다. 계절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봄을 좀 더 붙잡고, 봄과 좀 더 사랑하며 시간을 즐기고 싶지만, 화자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지나간다. 아쉽지만 봄을 떠나보낸다. 그건 다시 봄이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자는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심성을 갖고 있다. 사랑해도 바짝 다가서 있지 않고 멀리서 그저 보기만 해도 좋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면 상대의 옆에 바짝 붙어 "내 것이야"라며, 소유하려고 하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 이타심과 배려심을 가진 품성이다.
그러면 '여름'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시 「여름 일기」를 보자. 화자는 여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매사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건 비록 화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본능이다. 화자 역시 사랑 때문에 "더운 눈물 질퍽하게 흘려보"낸다.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뒤돌아서서는 마치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양 "참회를 거듭"한다. 화자가 반성하고 참회를 하는 건 일상이다. 1부에서 언급했지만, 화자는 마치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그 계절에 뜨겁게 달구어진/ 사랑"을 염원한다. 화자에게 '사랑'이 없다는 건 생존할 의미가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사랑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세상사 및 모든 사람에 대한 그것이다.
가을을 노래한 시 「가을 단상」에서는 가을의 상징으로 "뜨락에 핀 국화 그림자 마주하며" 가족이든 이웃이든 사람들과 "도란도란 가을을 이야기"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가 대단하다거나 신비로운 삶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영위하는 일상 그 자체에서 창작된다. 그러면서 가을의 또 다른 상징인 기러기 떼를 시구에 등장시켜 시의 전개 및 완결성을 더 단단하게 직조하고 있다. "아, 이 계절이 지나면/ 하얀 머릿결 또 늘겠지"라며, 세월의 순환성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런데 머리를 들어보니 기러기 떼가 "제 갈 길 따라 동공을 움직이며" 날아가고 있다. "머얼리 점이 되어가"는 모습은 곧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너그러운 마음, 자비로운 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가을 역시 "내년에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한다.
시 「가을 속으로」에서는 "그 사이로 난 수많은 길이/ 거미줄 아닌 텔레파시처럼/ 얽히고설킨 틈 사이로/ 어제와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좁아서 불편하고, 넓어 허전한/ 수없이 오가며 넘는 행간으로 다가온다"라며 노래하고 있다. 삶이란 얽히고설켜 불편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한 상황이 언제나 되풀이된다. 대개의 사람은 생활에 쫓겨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화자는 한발 물러서 바라보는 듯 삶의 행간까지 다 읽고 있다.
시 「가을비, 너는」에서는 "이렇게 시원한 빗방울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만나/ 눈꽃이 되면/ 뜬 눈으로 긴 밤새는/ 축복되겠지"라며 읊었다. 많은 사람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화자는 가을이 가는 것을 상징하는 가을비가 계절의 바통을 이으려고 다가오는 겨울바람을 만나 눈꽃이 되면 그게 축복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과연 시인이 섬세한 심성을 가진 여성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큰마음'이 아니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시 「겨울비에게」에서 "너도 그리움이 있어 밤을 설치"며, "기쁨인지 슬픔인지 몰래 흐"른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눈물 나도록 빗소리를 사랑하는" 화자를 "다정하게 불러주던" 겨울비는 "모든 슬픔을 꽁꽁 얼려버리고" "수억 년 빙하 속의 위로를 꺼내어" "새 생명을 환생시키는 따스한 손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아얀 눈가루를 뿌리다가" "더 슬퍼지면 겨울비 되어 내리는구나"라며, 겨울비에 대한 화자의 감성을 풀어놓는다. 즉 화자에게 겨울이라는 계절은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추위가 있지만, 그 속에는 새 생명을 배태시키는 따스한 손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지만 봄을 탄생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 제3부: 도시에서 잊고 사는 부호화된 언어들에 대한 인식
제3부에서는 자연적 현상 등에서 느끼는 감성을 주로 읊고 있다. 빌딩과 건물이 즐비한 도심지에서 느끼는 자연적 현상들을 표피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잠시 스쳐 가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로부터 시인은 가장 많은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화자 역시 이런 전설(?)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여타의 시인들보다 더 예민하다. 도시에서는 이미 부호화되거나 박제화된 언어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마법을 보인다.
긴 장마가 오면 울기 참 좋다
온몸으로 비 맞으며 흘리는 눈물
마음 들키지 않고
실컷 울 수 있어 좋다
사랑하지 못해서
사람에게 속아서
그 사실 알아채지 못한 아둔함
이제라도 울 수 있어 좋다
주르륵 쏟아지는 장대비 따라
모가지가 쉬어버릴 통곡마저
깨문 입, 두 손으로 막아본들
갈라지는 흐느낌으로 충분해서 좋다
절망의 고통에 온몸이 젖어도
비가 그치기 전 가슴 한편에다
보석 같은 눈물 한 방울 정도 남기고
모르게 따라 울 수 있어 좋다
- 시 「눈물비」 전문
장맛비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또는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의 슬픔과 거기에서 오는 순간적인 기쁨 등을 마치 비빔밥처럼 온갖 감정의 양념을 다 버무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그 속에 든 감성이 결코 그냥 막 쏟아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어를 최대한 절제하여 누르고 깎아 시라는 주물에 부어 넣어 만든 것이다. 나이 든 여성은 더더욱 아무 데서나 울지 않는다. "긴 장마가 오면 울기 참 좋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살면서 가슴 속에 담아둔 애환이 많다는 뜻을 은유시킨 것이다.
주부로서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온갖 난관이 있는데, 시 낭송가로서, 시인으로서 여러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은 다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자이크되어 있을 것이다. 늘 바람 세차게 부는 외딴집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온몸으로 비 맞으며" 눈물을 흘린다. "마음 들키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남모르게 "실컷 울 수 있어 좋"기 때문이다. 시인이든, 판·검사든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거나 그런 생각을 해봤음 직한 보편적 생각이다.
이런 시적 장치를 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화자의 시편들은 모든 사람이 읽기에 어렵지 않다는 사실은 이러한 보통의 감성과 언어 등을 시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치이고 속은 그런 감정까지 빗속에서 다 배출하려고 한다, 울음 뒤에는 남은 찌꺼기가 생각에서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화자의 사람 좋음 때문에 비롯된 여러 상처는 "아둔함"이라 단정하며, "이제라도 울 수 있어 좋다"라고 말한다. 화자는 끝없이 너른 바다의 품을 가졌다.
「가을 무지개」라는 시는 시적 소재가 특이하다. 3연으로 된 이 시에서는 첫 연의 첫 행에 "향기롭다", 둘째 연의 첫 행에 "눈물겹다", 셋째 연의 첫 행에 "그립다"라며, 같은 형식의 시적 표현을 기입하였다. 그러면서 향기로운 이유는 "지난여름 지루한 장마와/ 혹독한 더위를 견뎌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내일이라는 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 "결실로 달"린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랑은 그냥 저절로 쉽게 생긴 건 아니다. "가슴 저미며 일곱 색깔을/ 쏟아부은 이유"이다.
둘째 연의 눈물겨운 이유에 대해서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고" "남겨둔 소중한 유전자"가 가을 무지개인데, "누군가가 아름다운 모양으로 모아" 다 거두어 가 이름은 있지만 "남은 건 쭉정이뿐인 까닭"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때때로 절망하고 슬퍼하고 원망하는 게 이런 때문이다. 애써 땀 흘리며 고생하여 이루어놓았는데 그 공을 남이 다 가로채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셋째 연의 그리운 이유에 대해서 시인은 "마지막 사연마저 들려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기다리고 기다린 그대"가 "이 길목을 지나고 나면" "아치 같은 초승달 닮은 침묵으로/ 계절을 보내기 때문"인 것이다. 진정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려고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화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이 비록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린 그대"를 위해서는 다 내어주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깊고 넓은 인성을 가진 화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런 마음이 더 크다. "초승달 닮은 침묵으로"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계절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그냥 볼 수 없는 심성 때문이다.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맥이 끊이지 않도록 이어 표현하고 있다. 시 「낙엽이 되어」에서는 "지난밤 소리 없이 내린 비/ 처마 끝에 부딪혀 떨어지며/ 뒹굴던 낙엽 위로 슬그머니 내려앉"는 모습을 시각적·청각적으로 그려낸다. 이제 화자의 마음이 드러날 차례다. 그 비가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어/ 툭툭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다며, 살아온 나날들이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인 지난날들을 끄집어낸다. 그 지난 세월 안에 들앉아 있던 사랑이 "심장이 터질 듯한 손길로" 화자의 "볼을 만진다". 남편이든 자식이든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없었으면 혼자만의 세월은 무척 외롭고 황량했으리라는 의미의 역설적 전달 수법이다.
삶에 있어 사랑만이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 「안개」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끝없는 어둠"이라고 힘든 나날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있는 공포와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지 못한다. 화자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자신의 힘듦 보다는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심의 발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건 힘들어도 직설적으로 '힘들다'라고 언급하지 않는 화자의 심성 때문일 거다. 이러한 근거로 "누군가가, 무엇이든지/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기적 소리 크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죽을 만치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면 이전보다 더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는 교훈적 표현이다.
화자의 이러한 타자에 대한 마음은 다음 시 「하얀 바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솟아오를 때 무서워하거나 거칠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 품 같이/ 침묵으로 마음을 품는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평소의 마음이 그렇게 평온하여 세상 모든 것들을 자기 생각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심성을 담아 독자들에게 "날마다 꿈꾸던 바다에/ 작은 섬 하나 둥둥 띄우고/ 아련한 뱃길 같은 길 하나/ 고요한 새벽 열고 다가온다"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이나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희망은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원동력이다. 우주의 미미하기 짝이 없는 작은 존재인 우리가 "날마다" 꿈꾸면 "아련한 뱃길 같은 길"이 마치 "고요한 새벽 열고 다가온다"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막연한 배려가 아니라 옛 경서에 나오는 훈고訓?적 성격까지 띠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타인에 대한 화자의 마음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뚝뚝 떨어지는 다대포의 해
고열로 온 세상 붉게 만들더니
검은 지평선 너머 사라집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갈 길을 가지만
못내 아쉬워 오래오래 바라봅니다
다대포의 낙조를 읊은 시 「낙조」 부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야할 때가 되면 모두 가게 마련이다. 화자는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붉게 물들인 후 사라지는 낙조를 고요하게 보고 있는 화자가 말하는 "못내 아쉬워 오래오래 바라"본다는 표현은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며,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세상사를 마치 나무라듯 말한다.
그러면서 "화려한 이별은 있어도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며, 사라지는 낙조에 대해 보다 깊은 철학적 심미안을 내보이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이란 "작은 모래알이 퇴적되어 섬 되듯이/ 미움이 쌓여 거대한 사랑이 됩니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미움이 조금만 쌓여도 이별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미움이 쌓여 거대한 사랑이 된다는 이 논리 모순적인 표현을 화자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희망을 품으려면 일출을 보아야 하지만/ 절망을 이겨내려고 낙조 앞에 서 있습니다"라며, 낙조를 바라보는 개인적 소회를 풀어내고 있다.
시 「겨울 바다」에서는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게 운명이라는 듯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다.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차가운 바람 맞으러 가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허허벌판에서도 외롭지 않다
꽁꽁 언 모래밭에 발끝 세우면
하얀 김 내뿜으며 땅이 무너진다
한 주먹 모래를 얼굴에 뿌려대는 바람
질끈 눈을 감고 갈갈한 입속에서
깊어서 한이 된 외로움을 뱉어보지만
출렁이는 물거품에 멀미가 느껴진다
촉촉한 미련마저 바람은 말려버린다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 꿈이던가
파도는 침묵의 계절에 더욱 출렁이고
손가락 끝이 꽁꽁 얼어갈수록
수평선 구름처럼 떠오르며 다가오기에
시원한 희망으로 가슴 채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허허벌판에서도 외롭지 않다"라고 그렇지 않은 척 언급하지만, 화자의 가슴은 사실 외로움에 잠겨 있다. "질끈 눈을 감고" 독백하듯 "깊어서 한이 된 외로움을 뱉어"본다. 그러자 "출렁이는 물거품에 멀미가 느껴"짐을 느낀다. 화자의 깊은 속 아래에는 외로움·아픔·비애감 등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어 그걸 뱉어내게 되면 오히려 멀미가 느껴질 정도로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오래도록 간직한 그런 것을 자신과 동일체로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이던가"라며, 마치 태생적으로 아픔을 가진 것처럼 자신에게는 작은 꿈조차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신 속으로 숨어버린다. 타인에게는 '작은 섬에게 갈매기는 노란색 꿈이던가"라며, 희망 또는 꿈을 가질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시 「겨울 바다 2」에서는 "만날 때 좋은 사람보다/ 헤어질 때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만큼 쓰라린 이별을 많이 맛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슴 속 뜨거움 나누었기에/ 파도에 씻기는 쓰라림 하나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라며, 이별도 또 다른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일러준다. 이별도 아름답다고 말이다.
시 「겨울 바다에서」는 "너무 아파서 느낄 수 없는 고통"이라며, 시인은 삶의 극한을 느끼고 그걸 넘어선 존재임을 명제한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가" 힘들어 "정신 놓을 때가 되면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화자는 자신에게는 처절할 만큼 경계를 하는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화자는 시 「폭설을 만나서」에서 "언젠가 갇히고 싶은 적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성임을 숨길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도 좋고/ 아니 혼자여도 좋을 것만 같"다고 피력한다.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고 사유하는 시인이지만 여성이라는 태생적 감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강한 햇볕에도 녹지 않기"를 바라며, 혼자만의 아픔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럴 때 "독한 술을 마시고 쓰러진 것처럼/ 깊은 눈 속에 오래오래 취하고 싶었다"라고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고 있음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화자가 시적 언어를 내려놓고 혼자 몰래 일기를 쓰듯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3부에서는 시의 주제 및 시구의 소재, 언어는 모두 일상에서 보는 자연의 모습이다. 시적 소재가 또한 특이하다. 눈물비·가을 무지개·낙엽·안개·바람·소나기·하얀 바다·소나기·낙조·겨울 바다·폭설 등 도시화 된 세상에서 우리가 잊고 사는 이미 부호화된 시어를 기억하고 있다. 화자가 삶을 영위해가는 공간은 부산이라는 대도시다.
▣ 제4부: 시인 겸 시 낭송가, 두 촉각으로 시를 짓는 고통
시 「진주 같은 눈물」에서는 "누구나 울지만/ 가슴으로 우는 사람은/ 쉬이 눈물을 닦지 않는다"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잠언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운다. 표면적으로 우느냐, "가슴으로 우"느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화자는 "가슴으로 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쉽사리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도 않아 쉽게 울지도 않지만, 또 "쉬이 눈물을 닦지 않는"데, 그건 한마디로 마음이 깊어서이다. 오랫동안 마음을 절제하고 이타심을 키우고 희생정신을 배양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눈물을 "진주 같은 눈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다음 시는 '행주'를 소재로 읊었다.
손톱 사이 티눈 살짝 스쳐도
온몸의 신경 날카로운데
행주 짜듯 내가 짜인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도 말없이 감사한
행주가 될 수 있다면
사회에 필요한 행주가 되자
-시 「행주가 되자」 부분
행주의 효용성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화자 자신의 효용성에 대해 조용히 말하고 있다. "손톱" 밑의 "티눈 살짝 스쳐도" "온몸의 신경 날카"롭게 아프다. 하물며 "행주 짜듯 내가 짜인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화자가 그만큼 고통스러운 적이 있음을 눈치를 채게 하는 시구이다. 그러면서 식탁의 오물 등을 닦아내는 "행주가 될 수 있다면" "사회에 필요한 행주가 되"고 싶다는 화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주변의 좋지 못한 사람들을 좋게 만들고, 사회의 모순이나 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잡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그러고 보면 화자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존재이다. 시에서 '사회'라는 단어가 생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참신함이 느껴진다.
다음 시는 「주부로 산다는 게」 전문이다.
신혼의 꿈 봄날 나비인 양
나풀거리는 착시 현상을 지나
비로소 지금에야 눈이 떠지며
하나둘 이건 아니다 하는데
차곡히 쌓인 벽돌 하나둘 빠지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안녕한 젊음
아들딸 놓고 키우느라
밥이 입,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세월 그리 빨리도 지나가는데
한 가지 끝나면 두 가지 걸리고
아침 돌아서면 점심과 저녁 준비
그사이 빨래며 청소, 쓰레기까지
눈꺼풀은 문 닫힌 셔터처럼 무겁다
이 일 언제까지 해야 할지
주부를 마셔버리면 무엇을 할까
이 시에서는 주부로서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주부로서의 인생을 잘 묘사한 시를 본 적이 없다. 결혼을 갓 한 신혼 때는 "봄날 나비인 양/ 나풀거리는 착시 현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눈이 떠지며"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나둘 이건 아니다"라는 걸 깨달으니 "젊음"은 어느새 저만치 가 있다. "아들딸 낳고 키우느라/ 밥이 입,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살아온 세월이 아득하다. 나이는 이미 예순이 다 되어 간다. "이 일 언제까지 해야 할지"라며, 끝없는 주부로서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주부"로서의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까"라며, 서운함이 들지도 모르겠다며 추측한다.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한 집안의 주부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시 「일기를 쓰며」에서는 "어떤 날 참고/ 꾸욱 참고 싶어도/ 목청 부딪히는 소리 내며/ 눈물 흘리는 날이 있다"라며 읊고 있다. '삶이란 참는 것'이라고 한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일인장락一忍長樂'이라는 말도 있다. '한 번 참으면 기쁨이 오래도록 간다'라는 뜻이다. 앞의 여러 시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화자라고 해서 무작정 참지는 못한다. 그러면 인간이지 않은가. 그래서 "꾸욱" 누르고 눌러 "참고 싶"지만, 결국에는 "목청 부딪히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울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 "눈물 흘리는 날이 있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시의 제목이 시의 흐름에 맞게 「일기를 쓰며」이다. 일기를 다른 이름으로 '일성록日省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날의 일을 정리하여 기록하면서 반성하고 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시 「갈미조개」에서는 "저리도 둥글 달 어이해서/ 낙동강 비추는 걸까/ 그 동네마다 달리 부르는 이름/ 명지에서 많이 난다고 명지조개/ 갈매기 부리 닮아서 갈미조개/ 속살이 노랗다고 노랑조개"라며 노래하고 있다. 민속학적인 지식까지 제공하는 이 시에서 조개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단순히 그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만, 그 속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것의 본모습을 보자는 의도가 시에 깔린 것이다. 어쩌면 갈미조개를 매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서로 부딪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궁합 볼 것 없이 어울리는 맛"처럼 한 꺼풀 벗겨 세상을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만 사람살이가 "제맛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4부의 제시題詩인 「절영서설絶影書說」은 영도에 있는 미룡사라는 절에서 바라보는 풍광과 그 절의 금당을 읊고 있다. 영도는 섬이므로 "한 고개 돌아보면 푸른빛 바다"이다. 그 섬에 "미륵불"을 바라보는 "미륵사 금당"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자의 시심詩心은 다분히 불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과 글이 어울려 노래하는
집을 짓기 위해 밤을 새우는 시인
풍성한 마음 담은 단어 하나까지
시 낭송가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
같은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쳐 아플 때 마셔야 하는 쓴 약이어도
달콤한 목 넘김으로 삼킬 수 있다면 좋겠다
기쁨 설레고 슬픔 더욱 아련하게
잘 부르는 노래가 듣기에도 좋듯이
고저장단 리듬 맞춘 편곡으로
노래는 말하듯 말은 노래하듯이
힘차고 고요하기 얼마나 힘든지
드러내지 않는 한복 같은 세련미를 보탠다
말은 좋은 기수를 만나서
다시 태어나 달려가듯이
가슴 속 울림 좋은 그림 그리듯
목에 힘 빼라는 고수의 말 한마디
위태롭지 않게 흔들릴 수 있어야
울지 않고 덤덤하게 울리는 감동을 주는
진정 아름다운 여백의 미 노래한다
- 시 「시를 노래하며」 전문
화자는 시인임과 동시에 시 낭송가이다. 시를 낭송하는 게 어떤 건지, 시를 낭송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시를 잘 낭송하는 방법까지 읊고 있다. "풍성한 마음 담은 단어 하나까지/ 시 낭송가는 시인의 마음이 되어"야 낭송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은 좋은 기수를 만나서/ 다시 태어나 달려가"듯 시 낭송가도 기수처럼 시의 묘미와 뜻을 잘 담아 낭송을 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무슨 일이라도 쉬운 게 없다. "목에 힘 빼라는 고수의 말 한마디"는 진정한 시 낭송가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많은 노력뿐 아니라 고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위태롭지 않게 흔들릴 수 있어야/ 울지 않고 덤덤하게 울리는 감동을 주는/ 진정 아름다운 여백의 미 노래한다"라는 말이다. 시 낭송가로서도 가볍게 살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이 읽힌다.
화자의 시 낭송은 시 「목어木魚 시詩울림 어울마당 -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에서」에서 현실화 된다. "시와 음악, 무용이 함께 더덩실 어울려/ 마냥 울다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감천마을 축제다"라며,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의 의미를 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덩달아 어우러진 외국인도 아리랑 부르며/ 비탈 골목길 따라 목어도 배를 두드리며/ 어울마당 가득한 시 울림 함께 춤을 춘다"라고, 외국인도 어울리는 다양한 성격의 축제임을 밝히고 있다. 부산
목차
목차
동백꽃 마음이 되어 배동순 … 4
제1부 · 가시연꽃을 보면서
。 동백이 되어 ‥ 13
。 가시연꽃을 보면서 ‥ 14
。 하얀 겨울 들꽃 ‥ 16
。 꽃의 항변 ‥ 18
。 능소화凌?花 ‥ 19
。 벚꽃 ‥ 20
。 설중매 ‥ 21
。 해바라기 연정 ‥ 22
。 홍매화 ‥ 23
。 부평초 ‥ 24
。 고추가 하는 말 ‥ 26
。 꽃이 되리라 ‥ 28
。 억새의 노래 ‥ 29
。 낙엽이 되어 ‥ 30
제2부 · 봄이 강처럼
。 아침의 노래 ‥ 33
。 불이 난 동백섬 ‥ 34
。 봄이 강처럼 ‥ 35
。 흘러가는 봄 ‥ 36
。 여름 일기 ‥ 37
。 가을 무지개는 ‥ 38
。 가을 단상 ‥ 40
。 가을 속으로 ‥ 41
。 가을비, 너는 ‥ 42
。 겨울바람 ‥ 43
。 사람 타는 산악회 ‥ 44
。 인생 소풍 ‥ 46
。 홀로 여행 ‥ 48
。 겨울비에게 ‥ 50
제3부 · 반가운 소나기
。 눈물비 ‥ 53
。 물의 미인 ‥ 54
。 안개 ‥ 55
。 바람 ‥ 56
。 반가운 소나기 ‥ 57
。 하얀 바다 ‥ 58
。 낙조落照 ‥ 60
。 을숙도 풍경 ‥ 62
。 겨울 바다 ‥ 64
。 겨울 바다 2 ‥ 65
。 겨울 바다에서 ‥ 66
。 폭설을 만나서 ‥ 68
제4부 · 절영서설
。 진주 같은 눈물 ‥ 71
。 불치병 몸살 ‥ 72
。 행주가 되자 ‥ 74
。 주부로 산다는 게 ‥ 75
。 일기를 쓰며 ‥ 76
。 마스크 쓴 얼굴 ‥ 77
。 광안리 바닷가 ‥ 78
。 모래톱 편지 ‥ 80
。 갈미조개 ‥ 82
。 모래톱, 사상沙上의 꿈을 안고 ‥ 84
。 오륙도 ‥ 86
。 절영서설絶影書說 ‥ 87
。 시를 노래하며 ‥ 88
。 목어, 시詩 울림 어울마당 ‥ 90
진주 같은 눈물 닦으세요 김종대 ‥ 93
해설 · 음유시인의 변 조해훈 … 95
제1부 · 가시연꽃을 보면서
。 동백이 되어 ‥ 13
。 가시연꽃을 보면서 ‥ 14
。 하얀 겨울 들꽃 ‥ 16
。 꽃의 항변 ‥ 18
。 능소화凌?花 ‥ 19
。 벚꽃 ‥ 20
。 설중매 ‥ 21
。 해바라기 연정 ‥ 22
。 홍매화 ‥ 23
。 부평초 ‥ 24
。 고추가 하는 말 ‥ 26
。 꽃이 되리라 ‥ 28
。 억새의 노래 ‥ 29
。 낙엽이 되어 ‥ 30
제2부 · 봄이 강처럼
。 아침의 노래 ‥ 33
。 불이 난 동백섬 ‥ 34
。 봄이 강처럼 ‥ 35
。 흘러가는 봄 ‥ 36
。 여름 일기 ‥ 37
。 가을 무지개는 ‥ 38
。 가을 단상 ‥ 40
。 가을 속으로 ‥ 41
。 가을비, 너는 ‥ 42
。 겨울바람 ‥ 43
。 사람 타는 산악회 ‥ 44
。 인생 소풍 ‥ 46
。 홀로 여행 ‥ 48
。 겨울비에게 ‥ 50
제3부 · 반가운 소나기
。 눈물비 ‥ 53
。 물의 미인 ‥ 54
。 안개 ‥ 55
。 바람 ‥ 56
。 반가운 소나기 ‥ 57
。 하얀 바다 ‥ 58
。 낙조落照 ‥ 60
。 을숙도 풍경 ‥ 62
。 겨울 바다 ‥ 64
。 겨울 바다 2 ‥ 65
。 겨울 바다에서 ‥ 66
。 폭설을 만나서 ‥ 68
제4부 · 절영서설
。 진주 같은 눈물 ‥ 71
。 불치병 몸살 ‥ 72
。 행주가 되자 ‥ 74
。 주부로 산다는 게 ‥ 75
。 일기를 쓰며 ‥ 76
。 마스크 쓴 얼굴 ‥ 77
。 광안리 바닷가 ‥ 78
。 모래톱 편지 ‥ 80
。 갈미조개 ‥ 82
。 모래톱, 사상沙上의 꿈을 안고 ‥ 84
。 오륙도 ‥ 86
。 절영서설絶影書說 ‥ 87
。 시를 노래하며 ‥ 88
。 목어, 시詩 울림 어울마당 ‥ 90
진주 같은 눈물 닦으세요 김종대 ‥ 93
해설 · 음유시인의 변 조해훈 … 95
저자
저자
배동순
※ 작가 배동순 프로필
。청주 문의 출생
。시인·수필가·시낭송가·시낭송 강사
。월간《한국국보문학》시 등단 (2016년 11월, 제99호)
。계간《실상문학》수필 등단 (2020년 가을, 제94호)
。동백낭송회 회장 (2017.6.30.∼현재)
。한국국보문학 부산지회장 (2022.1.15.∼현재)
。새부산시인협회 부회장 (2019년∼현재)
。부산문학인아카데미협회 계간《문심》공동발행인 (2021년∼현재)
。부산불교문인협회 이사 (2021년∼현재)
。재부 청주향우회 회장 (2020년∼현재)
。수상:
- 제2회 부산국보문학상 작가상(2021년 12월 17일)
- 제1회 한국국보문학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14년 11월 8일)
- 대한민국문화예술 시낭송 부문 명인상(2017년)
- 제5회 논개정신선양 전국시낭송퍼포먼스대회 동상(2015년)
- 제24회 전국재능시낭송 부산대회 은상(2014년 5월 17일)
- 제4회 논개시낭송대회 금상 수상(2014년 9월 27일)
。시집: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2022년 3월 3일)
『동백이 되어』(2022년 3월 3일)
。저서:『시 낭송, 삶의 속삭임』(가제) (2022년 예정)
。청주 문의 출생
。시인·수필가·시낭송가·시낭송 강사
。월간《한국국보문학》시 등단 (2016년 11월, 제99호)
。계간《실상문학》수필 등단 (2020년 가을, 제94호)
。동백낭송회 회장 (2017.6.30.∼현재)
。한국국보문학 부산지회장 (2022.1.15.∼현재)
。새부산시인협회 부회장 (2019년∼현재)
。부산문학인아카데미협회 계간《문심》공동발행인 (2021년∼현재)
。부산불교문인협회 이사 (2021년∼현재)
。재부 청주향우회 회장 (2020년∼현재)
。수상:
- 제2회 부산국보문학상 작가상(2021년 12월 17일)
- 제1회 한국국보문학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2014년 11월 8일)
- 대한민국문화예술 시낭송 부문 명인상(2017년)
- 제5회 논개정신선양 전국시낭송퍼포먼스대회 동상(2015년)
- 제24회 전국재능시낭송 부산대회 은상(2014년 5월 17일)
- 제4회 논개시낭송대회 금상 수상(2014년 9월 27일)
。시집: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2022년 3월 3일)
『동백이 되어』(2022년 3월 3일)
。저서:『시 낭송, 삶의 속삭임』(가제) (2022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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