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노동기사단과 공화적 자유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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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신공화주의 논쟁을 새롭게 불러일으킨 필립 페팃,
자유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제이콥 리비와 코리 로빈이 주목한 문제작
자유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제이콥 리비와 코리 로빈이 주목한 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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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 책은 19세기 미국 노동기사단(the Knights of Labor)의 공화주의 사상과 실천을 치밀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노동운동이 현대 공화주의 사유의 발전에 어떻게 공헌했는가를 밝힘은 물론,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를 야기할 정도로 타락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 담론과 윤리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를 '노동공화주의'라 명명하고 현대 공화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하나의 이론으로 체계화한다. 그 핵심내용과 시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공화주의는 신공화주의(neo-republicanism)으로 불리는 현대 공화주의 사상의 흠결을 보완한다. 90년대 이후 신공화주의가 정치 영역에서 자유의 제도화에 대해 천착했다면, 이 책의 저자인 고레비치는 '사회경제적 영역에서의 자립'을 자유의 본질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이를 구현하려고 했던 이론적, 실천적 노력을 19세기 노동기사단의 역사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공화적 자유의 보편화와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자립, 임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기획한 19세기 노동기사단의 지향을 '노동공화주의(labor republicanism)'로 명명한다.
둘째, 노동공화주의는 임노동체제를 대체할 대안적 생산체제로서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제시한다. 노동기사단은 임노동 체제 아래에서는 공화적 자유가 보장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협력의 가치에 기초한 공화적 생산체제를 대안을 구상했다. 또한,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5천여 개가 넘는 협동조합을 조직해 운영했다. 이 실험은 비록 (역사적으로는) 실패했으나, 19세기 산업사회 초기라는 당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협동조합의 이상을 제시하고 실천한 노동기사단의 활동은 말 그대로 '선진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셋째,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가 중요한데, 저자는 고전 사상가(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나 근대 인문주의 사상가(마키아벨리, 해밀톤 등)에 의해 정초된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개념을 현대 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감각, 즉 노동공화주의적 윤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윤리의 핵심은 연대다.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자개연)'이라는 이론적 성취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구축하되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를 내장한 주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윤리란 공화주의적 삶의 양식인 덕성(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ρετ?, 영어: arete) 구별되는)을 새롭게 발전시킨 연대다.
그렇기에 옮긴이는 노동공화주의를 '정치경제학'이 아닌 '윤리학'으로 읽어야 함을 제안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일찍이 칸트를 경유해 마르크스를 읽어낸 방식 - 《자본》에 내재한 윤리적 계기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이를 실천하는 윤리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 은 노동공화주의 독법으로 안성맞춤이다. 노동기사단의 사유와 실천을 사회운동사나 지성사의 관점이 아닌 윤리학으로 읽어낼 때,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라는 이상은 현실적 전망이 된다. 이를 구현할 주체의 상이 명확해지며 동시에 그 주체들이 갖추어야 할 덕성과 윤리 감각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노동기사단의 역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넷째, 노동공화주의는 공화주의의 핵심인 지배/종속에 대한 개념을 세밀하게 벼림으로써 지배/종속의 공간이자 위험의 공간인 현대 작업장의 부자유 문제를 새롭게 드러낸다. 특히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작업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이제 고전적 양식을 지나 은밀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노동자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잠식하고 있다.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해 자기착취가 일상화되고 있는 반면 착취자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알랭 쉬피오가 지적한 숫자에 의한 통치(數治)는 성과주의적 지배의 가장 발전된 형식이다. 이는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기술과 자본의 자의적 지배의 기술적 결합으로 노동자의 (비지배) 자유를 침식하고 자본의 지배를 완성한다. 태움 등 직장 괴롭힘 문제의 배후에는 자본이 자기통제를 내면화한 노동자(복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내는 데서 나아가 노동자 스스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시를 대행하는 주체'를 생산한 결과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노동공화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다 깊게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다섯째, 노동공화주의는 껍데기만 남은 현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담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허술하다 못해 반(反)민주적이기까지 한 선거제도를 목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거니와 자유의 개념을 새로이 정초하는 담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핵적 가치로 민주주의의 기원이자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자유의 왜곡, 곧 불간섭 자유의 이기와 타자에 대한 배제의 확산이 민주주의의 타락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를 자유의 패러독스라 불러도 좋겠다. 노동공화주의는 이 역설의 배후를 사회경제적 자유의 부재에서 찾는다. 제도정치의 영역이 아닌 사회경제적 영역, 즉 노동과 생활의 세계에서의 부자유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고레비치의 저작이 현재 미국과 유럽의 정치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작'이 된 것은 기존의 공화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사회경제적 자유'를 공화적 자유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이론적 외연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정치학계의 최고 권위 저널인 〈Political Theory〉는 이런 가치를 인정해서 이 책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논쟁을 담은 지상 심포지엄을 실었다.
여섯째, 매우 주목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노동공화주의가 19세기 페미니즘을 노동의 관점에서 정초한 담론 중 하나라는 점이다. 노동기사단은 당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노동'을 운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여성의 참정권 보장은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최초로 주장한 조직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가사노동자를 조직한 첫 노동조합이 노동기사단이다.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야말로 남편보다 더 힘겹고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민 계층'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들을 위한 독서와 쓰기 교육 등 시민교육을 제공했다. 노동기사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치능력을 갖춘 자율적 주체'로 본 최초의 노동조직이며 노동의 관점에서 근대적 페미니즘을 발전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일곱째,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방법론과 그 효과다. 푸코의 고고학, 계보학적 방법론에 필적할 만큼, 저자는 방대한 사료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노동공화주의라는 새로운 에피스테메를 개척하고 있다. 고레비치가 인용하고 분석한 사료는 새로 발굴된 자료로 노동의 지성사를 개척하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고고학적 발견이 주는 효과와 영향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 눈부신 기록 속에는 공화적 자유를 꿈꾸고 이를 노동과 생활의 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 협력하고 학습하며 연대하는 80만 노동기사단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들은 공화적 자유라는 깃발을 가슴에 품고 역사의 한 국면을 형성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찬란한 몰락이다. 살아 숨 쉬는 영감을 고스란히 역사 속에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들의 성취에 무엇을 더 보탰는가? 아니 그들을 알기는 하나? 노동기사단의 열정과 몰락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역자는 노동과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공화적 자유를 구현하고자 했던 노동기사단에 경의를 표한다. 이들이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세계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은 외려 실천적 의미를 더한다. 바꾸어야 할 현실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그 궁극의 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는 왜 그들만큼 멋지게 실패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 질문은 새로운 노동세계를 고민하다가 결국 좌절하고 만 모든 이들이 다시 품어야 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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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자립성의 가치가 위대한 이유는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노동으로부터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노동기사단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목표는 "노동자가 자신의 지적·도덕적·사회적 역량을 스스로 함양할 수 있는, 보장된 자유시간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는 진전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 246쪽.
"우리는[노동기사단]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8시간 노동으로도 10시간 노동분만큼 생산할 수 있는지.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아마도 하루 만에 당장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일 년이 걸려도 어려울지 모른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이 거듭해서 발전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에게 던질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생산하는 만큼, 그 생산된 것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지 여부다." - 251쪽.
[노동공화주의 프로젝트가 보편성을 획득했는지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여성과 노동에 대한 노동공화주의자들의 인식을 살펴야 한다. 여성이 여전히 남성을 위해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면, 그들은 종속노동을 강요받는 계급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보편성에 대한 노동공화주의적 비전은 그만큼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우선 확실한 것은 노동기사단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존재이며 남성과는 다른 역할이 부여돼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의 경제적 자립은 여성의 가사노동 때문에 가능했다. 노동기사단이 비록 '진정한 여성성'이나 순종적 여성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여성의 실질적인 공적 역할을 강조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다른 조직들과는 달리 꽤 진보적이었다.
노동기사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최초로 주장한 조직이며,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쟁을 조직하기도 했다. (...) 대부분이 여성인 가사노동자를 조직한 첫 노동조합이기도 하다.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남성 노동자의 배우자는 임금노동자인 남편보다 더 힘겹고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민 계층'이라는 점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여성 노동자를 위해 독서와 쓰기 교육 등 시민교육을 제공했고, 어거스트 베벨(August Bebel)의 《여성과 사회주의》와 같은 당대의 빼어난 페니미스트 작품을 낳는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동기사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치능력을 갖춘 자율적 주체'로 보았다. - 258쪽.
여러 기관지[노동기사단 기관지] 기사들에서도 보이는 데 〈여성 노동자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기사에는 여성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기술돼 있고, 〈노동기사단과 여성의 권리〉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뿐만 아니라 '경제와 법에서 동등한 권리'가 여성에게 보장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당면 요구〉는 임금노동체제가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분석했고, 〈여성 노동자를 위한 조직〉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한 많은 파업과 협동조합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여성은 안 된다〉라는 글은 당시 여자들이 남자와 밖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이상한 사회 풍조를 풍자하고 비판했다. 성경을 여성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 새롭게 편집해 실은 기사도 있는데, 새로 편집된 성경에는 성평등과 노동개혁이 진전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260쪽.
"노동기사단이 터득한 것은 이것이다. 파편화된 개인으로서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노동계급 전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연대, 그것이 가장 올바른 생각이다. 연대는 자기만 살려는 이기심에 입각한 모든 시스템을 쓸어버릴 것이다." - 모드 〈사슬을 끊어내며〉 - 267쪽.
"새벽 4시 반에 그들의 노동은 시작된다. 저녁 7시 반이 넘도록 그 노동은 쉼이 없다. 노동자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누가 찾아오지도 않는다. 씻을 시간도 없다. 꽃을 가꾼다고? 가족과 산책할 여유도 없는데?" 몸을 씻고 꽃을 가꾸는 일, 가족과 산책하는 일은 공공선을 위한 이타적 행동과 같은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스미스가 말한 비가시적 빈곤(invisibility of poverty), 곧 감추고 싶은 궁색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격과 매너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 281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이 직면한 난관은 외부의 억압과 종속계급 내부의 이질적 분화[균열]였다. 스튜어드가 가장 우려한 것은 노동계급의 자기파괴적 모순이다. "생각해보자. 기계공 여러분들. 당신들은 무지한 노동자와 여러분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차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무지한, 보통 노동자들은 자본가들 편으로 돌아서서 당신들과는 정반대로 투표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신들은 약삭빠른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그들이 노동자를 무시하듯] '그 무지한, 보통' 노동자들을 멀리하고 경멸한다." - 284쪽.
게다가 노동자 조직에 대한 신문 보도는 늘 불공정했고 가짜뉴스의 진원지였다. 노동기사단 사무총장이던 로버트 레이톤은 "정보를 신문에 의존하면 기만당하기 십상"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피츠버그 데일리 디스패치〉의 예를 들었는데, 그 신문은 왜곡 인용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도 않은 인터뷰를 가짜로 만들어 내보내기도 했다. (...) "자본가들은 수백만 달러를 뿌려서 뉴스 매체를 사들이고, 가짜뉴스로 사실을 날조하며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한다. 금융과 유통, 생산은 물론이고 뉴스 채널마저도 이미 독점자본의 손에 넘어가 있다." - 298쪽.
"분파주의와 편견이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깊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했다. 그 교육만이 당시 그들이 지지하고 있었던 부르주아 정당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철학적 관점을 획득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무도 노동자 교육에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자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공화주의자들, 특히 노동기사단이 공화주의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론만이 아닌 실천의 측면에서도 크게 공헌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 299쪽.
노동기사단의 초대 통계국장을 지낸 테어도어 쿠노(Theodore Cuno)는 통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노동대중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전반적인 노동문제는 물론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하고 충분한 보상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신뢰할만한 통계 없이는, 임금노동자가 자기가 생산한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통계 전문가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만이 우리에게 노동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다." - 301쪽.
한 노동기사단 조합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제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읽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동자 신문을 읽는 중이다." (...) "우리는[노동기사단] 우리를 위한 교육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서관과 강의실을 짓고, 우리가 기획하고 관리하는 그런 장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활용할 수 있는 여유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독서클럽, 강좌, 스터디그룹, 토론장, 대출이 가능한 도서관 등을 갖춘 다양한 시설이 노동기사단 각 지부에서 활발히 건설됐다. 파우덜리는 특히 '노동자들의 문예회관과 독서클럽 건설'에 주목했고, 이를 "노동하는 자 역시 고용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를 학습할 권리, 즉 평등한 학습권을 행사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평가했다. - 302쪽.
"우리는 애덤 스미스와 맬서스, 리카르도를 읽었다. 칼라일의 《과거와 현재》를 탐독했다. 헨리 조지와 허버트 스펜서의 책도 읽었다. 라쌀레의 정치 팜플렛 중 몇 개는 번역을 하기도 했다." (...) 〈노동연대〉는 공개강좌를 다루는 특별 세션을 마련하고 "미국 임금노동자에게는 노동문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특히 협력이 가장 중요한 주제"임을 공지했다. 첫 번째 강좌에서는 '협력:장점과 혜택, 그리고 노동기사단의 임무'를 주로 다뤘으며, 해마다 강좌 수를 늘려나갔다. - 303쪽.
"협력이란 윤리의 과학에 기초해 있다. 협력은 안정의 윤리, 존중의 윤리, 우애의 윤리를 내포하는 과학이다. 협력은 동시에 '자기 이익'이라는 관념의 산물이다. 이기심은 타인을 뒤처지게 만든다 해도 나의 조건을 유리하게 개선할 수 있다면 이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반면, '자기 이익'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으면 성취가 불가능한, 확고한 독립을 추구하는 속에서의 자신의 이익이다." - 307쪽.
노동공화주의가 성취한 개념적 진전[시민적 덕성 개념에서]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을 시민적 덕성의 담지자로 본 것이다. 자산가인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안정이라는 이익보다 피지배계급이 열망하는 자유노동에 대한 부분이익(partial interest)이 공화국의 일반이익(general interest)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시민적 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거니와 덕성은 종속된 피지배계급 스스로가 자기 교육과 자기 조직화를 통해 함양할 수 있는 윤리다. - 324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은 매력적이면서도 풍부한 영감을 주는 사상적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의 당시 관심사는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다. 적어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쿠폰 따위로 주는 고용주는 없으며, 도시 전역에 계엄 선포를 허용하는 법원도 없다. 노동운동 지도자들 역시 테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파업 천막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기관총으로 살육당할 일도 없다. 국가권력은 설사 노동자들이 도시를 장악한다 해도 이를 진압한다고 탱크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빈민가 공동주택 거주자나 옥수수 농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가난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일 뿐이다. 노동법과 복지제도, 첨단기술, 수많은 값싼 물건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19세기 말의 노동자보다는 풍족한 삶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19세기처럼 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우월감은 정당한가?] - 328쪽.
[아직도] 채용과 해고, 작업장에 대한 지휘와 감독, 혹은 일과 후 사생활 감시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갖가지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을 문제 삼는가 하면, 성적 지향이나, 너무 섹시하다 혹은 섹시함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해고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지지하면 해고했고, '충성도가 떨어진다'라거나 순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해고 사유가 됐다. (...) 노동자들의 소송 대상도 다양하거니와,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거나 고온의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강요받는 문제, 근무시간 중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거나 점심시간을 주지 않는 일, 교대시간이 끝난 후 강제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일, 휴게시간에 책 읽는 것을 금지하거나 냉난방기를 트는 일을 금지하는 것, 불시에 하는 임의적인 약물 검사, 모욕 행위,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두루 아는 것처럼, 거의 모든 소송에서 법은 사용자의 손을 들어준다. - 331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이 간파한 것처럼, 고용주는 자기 권한을 악의적이거나 잔인한 방식으로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할 수도 있고, 냉난방 시스템을 잘 갖추거나 작업장 안전규정을 준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선한 행동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라는 논쟁은 공화적 자유의 핵심을 벗어나는 문제다. 문제의 핵심은 고용주들만이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노동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332쪽.
주체의 실패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된 정치이론은 없다. 이는 보편적인 교훈이며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해방의 약속을 완전히 구현하는 데는 많은 실패가 따른다. 그러나 모든 실패를 완전한 패배나 이론적 오류를 드러내는 징후로만 볼 일은 아니다. 노동기사단은 그들이 추구한 모든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에 활동한 어떤 조직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실패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대신 우리는 왜 그들만큼 멋지게 실패할 수 있는 지점에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소임은 노동기사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다. - 14쪽 (저자 서문 중)
첫째, 노동공화주의는 신공화주의(neo-republicanism)으로 불리는 현대 공화주의 사상의 흠결을 보완한다. 90년대 이후 신공화주의가 정치 영역에서 자유의 제도화에 대해 천착했다면, 이 책의 저자인 고레비치는 '사회경제적 영역에서의 자립'을 자유의 본질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이를 구현하려고 했던 이론적, 실천적 노력을 19세기 노동기사단의 역사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공화적 자유의 보편화와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자립, 임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기획한 19세기 노동기사단의 지향을 '노동공화주의(labor republicanism)'로 명명한다.
둘째, 노동공화주의는 임노동체제를 대체할 대안적 생산체제로서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제시한다. 노동기사단은 임노동 체제 아래에서는 공화적 자유가 보장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협력의 가치에 기초한 공화적 생산체제를 대안을 구상했다. 또한,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5천여 개가 넘는 협동조합을 조직해 운영했다. 이 실험은 비록 (역사적으로는) 실패했으나, 19세기 산업사회 초기라는 당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협동조합의 이상을 제시하고 실천한 노동기사단의 활동은 말 그대로 '선진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셋째,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가 중요한데, 저자는 고전 사상가(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나 근대 인문주의 사상가(마키아벨리, 해밀톤 등)에 의해 정초된 시민적 덕성(civic virtue) 개념을 현대 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감각, 즉 노동공화주의적 윤리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윤리의 핵심은 연대다.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자개연)'이라는 이론적 성취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를 구축하되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를 내장한 주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윤리란 공화주의적 삶의 양식인 덕성(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ρετ?, 영어: arete) 구별되는)을 새롭게 발전시킨 연대다.
그렇기에 옮긴이는 노동공화주의를 '정치경제학'이 아닌 '윤리학'으로 읽어야 함을 제안한다. 가라타니 고진이 일찍이 칸트를 경유해 마르크스를 읽어낸 방식 - 《자본》에 내재한 윤리적 계기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이를 실천하는 윤리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 은 노동공화주의 독법으로 안성맞춤이다. 노동기사단의 사유와 실천을 사회운동사나 지성사의 관점이 아닌 윤리학으로 읽어낼 때, 협력적/공화적 생산체제라는 이상은 현실적 전망이 된다. 이를 구현할 주체의 상이 명확해지며 동시에 그 주체들이 갖추어야 할 덕성과 윤리 감각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노동기사단의 역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넷째, 노동공화주의는 공화주의의 핵심인 지배/종속에 대한 개념을 세밀하게 벼림으로써 지배/종속의 공간이자 위험의 공간인 현대 작업장의 부자유 문제를 새롭게 드러낸다. 특히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작업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이제 고전적 양식을 지나 은밀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노동자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잠식하고 있다.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해 자기착취가 일상화되고 있는 반면 착취자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알랭 쉬피오가 지적한 숫자에 의한 통치(數治)는 성과주의적 지배의 가장 발전된 형식이다. 이는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기술과 자본의 자의적 지배의 기술적 결합으로 노동자의 (비지배) 자유를 침식하고 자본의 지배를 완성한다. 태움 등 직장 괴롭힘 문제의 배후에는 자본이 자기통제를 내면화한 노동자(복종하는 신체)를 만들어내는 데서 나아가 노동자 스스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시를 대행하는 주체'를 생산한 결과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노동공화적 자유의 관점에서 보다 깊게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다섯째, 노동공화주의는 껍데기만 남은 현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담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허술하다 못해 반(反)민주적이기까지 한 선거제도를 목도하며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거니와 자유의 개념을 새로이 정초하는 담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핵적 가치로 민주주의의 기원이자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자유의 왜곡, 곧 불간섭 자유의 이기와 타자에 대한 배제의 확산이 민주주의의 타락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를 자유의 패러독스라 불러도 좋겠다. 노동공화주의는 이 역설의 배후를 사회경제적 자유의 부재에서 찾는다. 제도정치의 영역이 아닌 사회경제적 영역, 즉 노동과 생활의 세계에서의 부자유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고레비치의 저작이 현재 미국과 유럽의 정치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작'이 된 것은 기존의 공화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사회경제적 자유'를 공화적 자유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이론적 외연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정치학계의 최고 권위 저널인 〈Political Theory〉는 이런 가치를 인정해서 이 책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논쟁을 담은 지상 심포지엄을 실었다.
여섯째, 매우 주목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노동공화주의가 19세기 페미니즘을 노동의 관점에서 정초한 담론 중 하나라는 점이다. 노동기사단은 당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노동'을 운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여성의 참정권 보장은 물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최초로 주장한 조직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가사노동자를 조직한 첫 노동조합이 노동기사단이다.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야말로 남편보다 더 힘겹고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민 계층'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들을 위한 독서와 쓰기 교육 등 시민교육을 제공했다. 노동기사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치능력을 갖춘 자율적 주체'로 본 최초의 노동조직이며 노동의 관점에서 근대적 페미니즘을 발전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일곱째,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방법론과 그 효과다. 푸코의 고고학, 계보학적 방법론에 필적할 만큼, 저자는 방대한 사료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노동공화주의라는 새로운 에피스테메를 개척하고 있다. 고레비치가 인용하고 분석한 사료는 새로 발굴된 자료로 노동의 지성사를 개척하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고고학적 발견이 주는 효과와 영향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 눈부신 기록 속에는 공화적 자유를 꿈꾸고 이를 노동과 생활의 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 협력하고 학습하며 연대하는 80만 노동기사단원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들은 공화적 자유라는 깃발을 가슴에 품고 역사의 한 국면을 형성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찬란한 몰락이다. 살아 숨 쉬는 영감을 고스란히 역사 속에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들의 성취에 무엇을 더 보탰는가? 아니 그들을 알기는 하나? 노동기사단의 열정과 몰락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역자는 노동과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공화적 자유를 구현하고자 했던 노동기사단에 경의를 표한다. 이들이 꿈꾸고 실현하고자 했던 세계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은 외려 실천적 의미를 더한다. 바꾸어야 할 현실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그 궁극의 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는 왜 그들만큼 멋지게 실패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 질문은 새로운 노동세계를 고민하다가 결국 좌절하고 만 모든 이들이 다시 품어야 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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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자립성의 가치가 위대한 이유는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노동으로부터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노동기사단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목표는 "노동자가 자신의 지적·도덕적·사회적 역량을 스스로 함양할 수 있는, 보장된 자유시간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는 진전된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 246쪽.
"우리는[노동기사단]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8시간 노동으로도 10시간 노동분만큼 생산할 수 있는지.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아마도 하루 만에 당장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일 년이 걸려도 어려울지 모른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이 거듭해서 발전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에게 던질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생산하는 만큼, 그 생산된 것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지 여부다." - 251쪽.
[노동공화주의 프로젝트가 보편성을 획득했는지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여성과 노동에 대한 노동공화주의자들의 인식을 살펴야 한다. 여성이 여전히 남성을 위해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면, 그들은 종속노동을 강요받는 계급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결국 보편성에 대한 노동공화주의적 비전은 그만큼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우선 확실한 것은 노동기사단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존재이며 남성과는 다른 역할이 부여돼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의 경제적 자립은 여성의 가사노동 때문에 가능했다. 노동기사단이 비록 '진정한 여성성'이나 순종적 여성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여성의 실질적인 공적 역할을 강조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다른 조직들과는 달리 꽤 진보적이었다.
노동기사단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최초로 주장한 조직이며,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쟁을 조직하기도 했다. (...) 대부분이 여성인 가사노동자를 조직한 첫 노동조합이기도 하다.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남성 노동자의 배우자는 임금노동자인 남편보다 더 힘겹고 긴 노동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민 계층'이라는 점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여성 노동자를 위해 독서와 쓰기 교육 등 시민교육을 제공했고, 어거스트 베벨(August Bebel)의 《여성과 사회주의》와 같은 당대의 빼어난 페니미스트 작품을 낳는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동기사단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자치능력을 갖춘 자율적 주체'로 보았다. - 258쪽.
여러 기관지[노동기사단 기관지] 기사들에서도 보이는 데 〈여성 노동자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기사에는 여성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기술돼 있고, 〈노동기사단과 여성의 권리〉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뿐만 아니라 '경제와 법에서 동등한 권리'가 여성에게 보장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당면 요구〉는 임금노동체제가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분석했고, 〈여성 노동자를 위한 조직〉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한 많은 파업과 협동조합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여성은 안 된다〉라는 글은 당시 여자들이 남자와 밖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이상한 사회 풍조를 풍자하고 비판했다. 성경을 여성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 새롭게 편집해 실은 기사도 있는데, 새로 편집된 성경에는 성평등과 노동개혁이 진전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260쪽.
"노동기사단이 터득한 것은 이것이다. 파편화된 개인으로서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노동계급 전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연대, 그것이 가장 올바른 생각이다. 연대는 자기만 살려는 이기심에 입각한 모든 시스템을 쓸어버릴 것이다." - 모드 〈사슬을 끊어내며〉 - 267쪽.
"새벽 4시 반에 그들의 노동은 시작된다. 저녁 7시 반이 넘도록 그 노동은 쉼이 없다. 노동자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있겠는가.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누가 찾아오지도 않는다. 씻을 시간도 없다. 꽃을 가꾼다고? 가족과 산책할 여유도 없는데?" 몸을 씻고 꽃을 가꾸는 일, 가족과 산책하는 일은 공공선을 위한 이타적 행동과 같은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스미스가 말한 비가시적 빈곤(invisibility of poverty), 곧 감추고 싶은 궁색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격과 매너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 281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이 직면한 난관은 외부의 억압과 종속계급 내부의 이질적 분화[균열]였다. 스튜어드가 가장 우려한 것은 노동계급의 자기파괴적 모순이다. "생각해보자. 기계공 여러분들. 당신들은 무지한 노동자와 여러분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차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무지한, 보통 노동자들은 자본가들 편으로 돌아서서 당신들과는 정반대로 투표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당신들은 약삭빠른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그들이 노동자를 무시하듯] '그 무지한, 보통' 노동자들을 멀리하고 경멸한다." - 284쪽.
게다가 노동자 조직에 대한 신문 보도는 늘 불공정했고 가짜뉴스의 진원지였다. 노동기사단 사무총장이던 로버트 레이톤은 "정보를 신문에 의존하면 기만당하기 십상"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피츠버그 데일리 디스패치〉의 예를 들었는데, 그 신문은 왜곡 인용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도 않은 인터뷰를 가짜로 만들어 내보내기도 했다. (...) "자본가들은 수백만 달러를 뿌려서 뉴스 매체를 사들이고, 가짜뉴스로 사실을 날조하며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한다. 금융과 유통, 생산은 물론이고 뉴스 채널마저도 이미 독점자본의 손에 넘어가 있다." - 298쪽.
"분파주의와 편견이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깊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했다. 그 교육만이 당시 그들이 지지하고 있었던 부르주아 정당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철학적 관점을 획득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무도 노동자 교육에 나서지 않는다면, 노동자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공화주의자들, 특히 노동기사단이 공화주의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론만이 아닌 실천의 측면에서도 크게 공헌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 299쪽.
노동기사단의 초대 통계국장을 지낸 테어도어 쿠노(Theodore Cuno)는 통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노동대중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전반적인 노동문제는 물론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하고 충분한 보상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신뢰할만한 통계 없이는, 임금노동자가 자기가 생산한 가치의 3분의 2 이상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통계 전문가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만이 우리에게 노동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다." - 301쪽.
한 노동기사단 조합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제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읽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동자 신문을 읽는 중이다." (...) "우리는[노동기사단] 우리를 위한 교육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도서관과 강의실을 짓고, 우리가 기획하고 관리하는 그런 장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활용할 수 있는 여유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독서클럽, 강좌, 스터디그룹, 토론장, 대출이 가능한 도서관 등을 갖춘 다양한 시설이 노동기사단 각 지부에서 활발히 건설됐다. 파우덜리는 특히 '노동자들의 문예회관과 독서클럽 건설'에 주목했고, 이를 "노동하는 자 역시 고용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를 학습할 권리, 즉 평등한 학습권을 행사하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평가했다. - 302쪽.
"우리는 애덤 스미스와 맬서스, 리카르도를 읽었다. 칼라일의 《과거와 현재》를 탐독했다. 헨리 조지와 허버트 스펜서의 책도 읽었다. 라쌀레의 정치 팜플렛 중 몇 개는 번역을 하기도 했다." (...) 〈노동연대〉는 공개강좌를 다루는 특별 세션을 마련하고 "미국 임금노동자에게는 노동문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특히 협력이 가장 중요한 주제"임을 공지했다. 첫 번째 강좌에서는 '협력:장점과 혜택, 그리고 노동기사단의 임무'를 주로 다뤘으며, 해마다 강좌 수를 늘려나갔다. - 303쪽.
"협력이란 윤리의 과학에 기초해 있다. 협력은 안정의 윤리, 존중의 윤리, 우애의 윤리를 내포하는 과학이다. 협력은 동시에 '자기 이익'이라는 관념의 산물이다. 이기심은 타인을 뒤처지게 만든다 해도 나의 조건을 유리하게 개선할 수 있다면 이를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반면, '자기 이익'은 타인과 함께하지 않으면 성취가 불가능한, 확고한 독립을 추구하는 속에서의 자신의 이익이다." - 307쪽.
노동공화주의가 성취한 개념적 진전[시민적 덕성 개념에서]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을 시민적 덕성의 담지자로 본 것이다. 자산가인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안정이라는 이익보다 피지배계급이 열망하는 자유노동에 대한 부분이익(partial interest)이 공화국의 일반이익(general interest)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시민적 덕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거니와 덕성은 종속된 피지배계급 스스로가 자기 교육과 자기 조직화를 통해 함양할 수 있는 윤리다. - 324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은 매력적이면서도 풍부한 영감을 주는 사상적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의 당시 관심사는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다. 적어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쿠폰 따위로 주는 고용주는 없으며, 도시 전역에 계엄 선포를 허용하는 법원도 없다. 노동운동 지도자들 역시 테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파업 천막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기관총으로 살육당할 일도 없다. 국가권력은 설사 노동자들이 도시를 장악한다 해도 이를 진압한다고 탱크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빈민가 공동주택 거주자나 옥수수 농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가난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일 뿐이다. 노동법과 복지제도, 첨단기술, 수많은 값싼 물건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19세기 말의 노동자보다는 풍족한 삶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19세기처럼 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우월감은 정당한가?] - 328쪽.
[아직도] 채용과 해고, 작업장에 대한 지휘와 감독, 혹은 일과 후 사생활 감시를 둘러싸고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갖가지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을 문제 삼는가 하면, 성적 지향이나, 너무 섹시하다 혹은 섹시함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해고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지지하면 해고했고, '충성도가 떨어진다'라거나 순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해고 사유가 됐다. (...) 노동자들의 소송 대상도 다양하거니와,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거나 고온의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강요받는 문제, 근무시간 중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거나 점심시간을 주지 않는 일, 교대시간이 끝난 후 강제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일, 휴게시간에 책 읽는 것을 금지하거나 냉난방기를 트는 일을 금지하는 것, 불시에 하는 임의적인 약물 검사, 모욕 행위,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두루 아는 것처럼, 거의 모든 소송에서 법은 사용자의 손을 들어준다. - 331쪽.
노동공화주의자들이 간파한 것처럼, 고용주는 자기 권한을 악의적이거나 잔인한 방식으로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할 수도 있고, 냉난방 시스템을 잘 갖추거나 작업장 안전규정을 준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선한 행동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라는 논쟁은 공화적 자유의 핵심을 벗어나는 문제다. 문제의 핵심은 고용주들만이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해 노동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332쪽.
주체의 실패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된 정치이론은 없다. 이는 보편적인 교훈이며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해방의 약속을 완전히 구현하는 데는 많은 실패가 따른다. 그러나 모든 실패를 완전한 패배나 이론적 오류를 드러내는 징후로만 볼 일은 아니다. 노동기사단은 그들이 추구한 모든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에 활동한 어떤 조직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그들이 실패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대신 우리는 왜 그들만큼 멋지게 실패할 수 있는 지점에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소임은 노동기사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다. - 14쪽 (저자 서문 중)
목차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우리 시대의 노동은 자유로운가?
역자 서문: 노동공화주의를 읽는 하나의 방법
서론: 노예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장 노예제와 자유의 패러독스
노예제와 고대의 자유
딜레마에서 역설로: 노예제와 근대적 평등
자유노동의 내적 모순
2장 '자율계약과 독립적 노동자': 방임적 공화주의의 전회
공화주의에서의 임금노동의 전사
자유노동의 위기
불간섭 자유의 공화적 기원에 대한 재검토
3장 '결핍이라는 칼': 임금노동이 아닌 자유노동
농본주의적 공화주의
임금노동과 노동자 정당
노동가치설
"자산을 균등하게 배분하라"
4장 노동공화주의와 협력적 공화 체제
'거짓 자유의 관념에서 벗어나기' : 노동공화주의 총론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에 공화주의 원칙을 기입하라"
노예제와 자유의 패러독스에 대한 재검토
5장 연대와 이기: 종속계급의 정치이론
시민적 덕성의 이론과 역사
시민적 덕성과 연대
시민적 덕성의 정치학 재검토
결론 아직도 멀기만 한 자유
참고문헌
미주
찾아보기
역자 서문: 노동공화주의를 읽는 하나의 방법
서론: 노예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장 노예제와 자유의 패러독스
노예제와 고대의 자유
딜레마에서 역설로: 노예제와 근대적 평등
자유노동의 내적 모순
2장 '자율계약과 독립적 노동자': 방임적 공화주의의 전회
공화주의에서의 임금노동의 전사
자유노동의 위기
불간섭 자유의 공화적 기원에 대한 재검토
3장 '결핍이라는 칼': 임금노동이 아닌 자유노동
농본주의적 공화주의
임금노동과 노동자 정당
노동가치설
"자산을 균등하게 배분하라"
4장 노동공화주의와 협력적 공화 체제
'거짓 자유의 관념에서 벗어나기' : 노동공화주의 총론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에 공화주의 원칙을 기입하라"
노예제와 자유의 패러독스에 대한 재검토
5장 연대와 이기: 종속계급의 정치이론
시민적 덕성의 이론과 역사
시민적 덕성과 연대
시민적 덕성의 정치학 재검토
결론 아직도 멀기만 한 자유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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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알렉스 고레비치
Alex Gourevitch
브라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맥매스터 대학교 교수, 래드클리프 연구소(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리서치 펠로우, 하버드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노동공화주의 이론을 처음 체계화한 젊은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저널 〈Political Theory〉는 고레비치의 이 저작(『From Slavery to the Cooperative Commonwealth』)에 대한 지상 심포지엄(2020.8. 발간)을 열었으며, Genevi?ve Rousseli?re(듀크대), Jason Frank(코넬대), John P. McCormick(시카고대)이 참여해 노동공화주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사상사와 경제사상사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노동과 여가, 마르크스주의, 공화주의, 파업과 시민 불복종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Political Theory〉, 〈Modern Intellectual History〉, 〈Constellations〉, 〈Public Culture〉, 〈Philosophical Topics〉, 〈The Journal of Human Right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Polity〉 등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Politics Without Sovereignty: A Critique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Relations (2007)』을 공동 편집했다. 〈Jacobin〉, 〈Dissent〉,
〈Salon〉, 〈The Chronicle Review〉, 〈N+1〉, 〈The American Prospect〉, 〈Washington Monthly〉 등의 시사 매거진에 정치평론을 쓰고 있다. 현재는 파업의 윤리학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브라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맥매스터 대학교 교수, 래드클리프 연구소(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리서치 펠로우, 하버드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노동공화주의 이론을 처음 체계화한 젊은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저널 〈Political Theory〉는 고레비치의 이 저작(『From Slavery to the Cooperative Commonwealth』)에 대한 지상 심포지엄(2020.8. 발간)을 열었으며, Genevi?ve Rousseli?re(듀크대), Jason Frank(코넬대), John P. McCormick(시카고대)이 참여해 노동공화주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사상사와 경제사상사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노동과 여가, 마르크스주의, 공화주의, 파업과 시민 불복종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Political Theory〉, 〈Modern Intellectual History〉, 〈Constellations〉, 〈Public Culture〉, 〈Philosophical Topics〉, 〈The Journal of Human Right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Polity〉 등에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Politics Without Sovereignty: A Critique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Relations (2007)』을 공동 편집했다. 〈Jacobin〉, 〈Dissent〉,
〈Salon〉, 〈The Chronicle Review〉, 〈N+1〉, 〈The American Prospect〉, 〈Washington Monthly〉 등의 시사 매거진에 정치평론을 쓰고 있다. 현재는 파업의 윤리학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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