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 애벌레의 꿈(시와편견 서정시선 75)
김선중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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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중 시인은 2021년에 등단한 신인이지만 대학원에서 플로리스트를 전공한 화훼류 전문가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식물과 나무의 종류와 생태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 시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되면서 생명 현상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생명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깨달음의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김선중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의 특징은 숲과 나무와 꽃과 곤충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텃밭을 손수 가꾸며 텃밭의 생명들과 함께 사유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 아저씨로 유명한 류승철 선생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빛을 먹고 산다”(『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고 말한다. 그는 빛은 숲을 만들고 숲은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해준다고, 그리고 숲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숲이 품고 있는 빛과 지혜로움의 정신, 그리고 숲이 탄생시킨 뭇 생명들의 숨결 속에 김선중 시인의 시가 자리하고 있다.
산 아저씨로 유명한 류승철 선생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빛을 먹고 산다”(『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고 말한다. 그는 빛은 숲을 만들고 숲은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해준다고, 그리고 숲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숲이 품고 있는 빛과 지혜로움의 정신, 그리고 숲이 탄생시킨 뭇 생명들의 숨결 속에 김선중 시인의 시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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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시집해설]
자연을 통한 생명 사랑과 삶의 성찰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보이는 것만 본다면
삶의 깊이도 없을 것이다
-「보이는 것」
인간과 자연은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이와 같은 간단한 이치를 망각하고 자연을 함부로 다루어 결국은 자연으로부터 재앙을 받기에 이른다. 생각하고, 듣고 이해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만이 아니라 나무와 꽃과 숲을 이루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도 인간 못지않게 같은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이 동일 생명체라는 사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자연, 특히 숲은 오랜 시간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 소재이자 중심이었다.
김선중 시인은 2021년에 등단한 신인이지만 대학원에서 플로리스트를 전공한 화훼류 전문가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식물과 나무의 종류와 생태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 시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되면서 생명 현상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생명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깨달음의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김선중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의 특징은 숲과 나무와 꽃과 곤충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텃밭을 손수 가꾸며 텃밭의 생명들과 함께 사유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 아저씨로 유명한 류승철 선생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빛을 먹고 산다"(『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고 말한다. 그는 빛은 숲을 만들고 숲은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해준다고, 그리고 숲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숲이 품고 있는 빛과 지혜로움의 정신, 그리고 숲이 탄생시킨 뭇 생명들의 숨결 속에 김선중 시인의 시가 자리하고 있다.
비 온 후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청량하다
다람쥐는 엎드린 오대천을 일으키며
구불진 오솔길로 들어간다
아득한 옛날부터
스님과 방문객들이 다녔던
흔적의 울림으로
걷기 명상에 잠긴다
소나무 기둥의 섶다리, 지장교, 반야교를 지나
양파껍질처럼 허물을 벗고 있는 거제수나무 위
곤줄박이가 허물을 내민다
나를 찾아 글을 쓰라는 생각이 든다
상원사가 바로 앞인데
꿩의바람꽃 현호색 노루귀 바람까지도
지친 나를 깨운다
이곳은
내면 소리를 듣는 길
깨달음 길
道 찾는 길
와!
여기 오니
참 좋다
-「선재길」 전문
시인은 지금 비 그친 월정사 참나무 숲길을 걷고 있다.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사찰로 전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스님과 방문객들이 다녔던/ 흔적의 울림으로/ 걷기 명상에 잠긴" 길이 선재길이다. 선재길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화엄경의 선재 동자에서 따온 선재라는 이름의 길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가는 길 약 9km의 거리를 일컫는데, 선재길 입구에는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시인은 오랜 옛날부터 스님들이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걸었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명상에 잠긴다. "나를 찾아 글을 쓰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이 작품이 특별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전나무 숲길과 선재길을 걸었다, 가 아니라 이 숲을 이루고 있는 생명들, 즉 다람쥐와 거제수나무와 곤줄박이 나아가 꿩의바람꽃, 현호색, 노루귀 바람까지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인의 눈과 귀와 피부로 맞닿는 자연이 시인의 정신과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니 "와!/ 여기 오니/ 참 좋다"고 감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숲속 연주회」에서도 빽빽이 자란 나무숲에서 뻐꾸기, 휘파람새, 풀벌레들, 무당거미, 신갈나무 도토리, 다람쥐, 청설모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이고 시인은 지휘자가 된 것처럼 무아지경에 든다. 그야말로 "기쁨과 행복의 숲"(「숲길」)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계곡에 들어가며
먼저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하자
움찔하는 천마산
둥글게 모여 웅성이는 구경꾼 사이로
녹색 보료에 다소곳이 앉아
길게 붙인 속눈썹을 떨고 있는 처녀치마
마치 시집가는 날
당고모 모습 같다
멀리 떠나
지금은 무얼 할까
생각에 잠겨
그리는 사이
숲속 길 개울물 소리
박새 소리 따라와
당고모는
내 안에 같이 있다
-「그리는 사이」 전문
천마산 "깊은 계곡에 들어가며/ 먼저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누가 깊은 계곡에 들어가면서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하겠는가. 처음 받는 이 황공한 인사에 천마산도 그만 움찔한다. 이 살아있는 생명성을 보라.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 이 정도면 가히 시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단순히 꽃과 나무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면 이 시는 그냥 그런 시가 될 터이나 "녹색 보료에 다소곳이 앉아/ 길게 붙인 속눈썹을 떨고 있는 처녀치마"를 발견하고, 봄에 일찍 피는 꽃 중의 하나로 누런 낙엽 사이로 풀잎은 안 보이고 꽃대만 보이는 이 처녀치마가 마치 치마폭을 펼쳐놓은 듯 꽃잎이 고운 풀이기에 "시집가는 날/ 당고모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은 무얼 할까/ 생각에 잠겨" 그리워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과 숲과의 깊은 사유의 공간은 「여우비 오시는 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바람결 따라/ 서로 다른 몸짓을 하는/ 숲"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훑고 지나가는 여우비를 맞으며 숲의 저마다의 생명들이 내뿜는 "날숨"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 날숨은 곧 비의 다양한 내음으로 전이되어 "할머니 몸빼에 밴 듯한 흙 내음", "연꽃 핀 연못의 향긋하며 비릿한 내음". "푸른 숲길의 이끼 향 같은 내음"을 비에서 맡으며 화장품 따위의 향을 전문적으로 조합하는 "조향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제 시인은 이 공간의 한 일원으로서 비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풍성한 향기로 남는/ 내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유의 깊이에 침잠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새로이 발견한다. 숲의 생명성은 곧 자신의 생명성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의 발견과 통찰력은 먹물버섯이 "너 하나를 위해/ 내가 있고/ 온 우주가 있"(「먹물버섯」)다고 말해주고 있음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시골 동네 입구에
오고 가는 사람을 맞이하는
옹이 배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생각난다
경단처럼 노란 콩가루에 밥을 돌돌 말아주시고
손톱 밑이 까맣도록 구운 감자를 벗겨 주시고
가장 몫을 대신하는 희생으로
논밭 갈고 삯바느질하며
호미 같이 휘어진 엄지손가락
나무도 가슴에 맺힌 사연이 많으면
옹이가 지는 걸까
파문을 새겨넣듯 주름진 나무를 쓰다듬는다
옹이 난 상처를 휘어진 손가락인 양 주무른다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예쁘다지만
나는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호미 같이 휘어진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눈물 나게 좋다
-「휘어진 엄지손가락」 전문
인류에게 나무는 자연에서 가장 정답고 친숙한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나무는 신비로운 존재로 추앙받기도,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해주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휘어진 엄지손가락」에는 시적 대상으로 느티나무가 등장한다. 일명 규목槻木이라고도 불리는 느티나무는 대개 시골의 어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른들은 이를 정자나무 또는 당산나무라 부른다. 나무의 특성상 골고루 퍼진 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잎사귀로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니 그 그늘 아래 평상 하나 놓으면 어느 정자 부럽지 않기에 정자나무이며, 마을 사람들이 한 해에 한 번씩 이 나무 아래 모여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니 당산나무인 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명기되지는 않았으나 "옹이 배긴 오래된 느티나무"라 했으니 느티나무의 특성상 어린 느티나무 때에는 보이지 않는 줄기의 껍질이 두툼하게 벗겨졌을 터. 그래서 시인은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느티나무가 세월이 갈수록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며 한 삶을 지탱해왔듯 할머니의 엄지손가락은 "가장 몫을 대신하는 희생으로/ 논밭 갈고 삯바느질하며" 고생을 감내하시느라 엄지손가락이 호미 같이 휘어졌다. 따라서 할머니의 옹이 배긴 엄지손가락은 오래된 느티나무에 배긴 옹이와 같다는 시적 인식이 우선 남다르다.
그래 시인은 "파문을 새겨넣듯 주름진 나무를" 쓰다듬다가 나무의 "옹이 난 상처"를 할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인 양" 주물러준다. 주물러주며 "나는/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호미 같이 휘어진/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눈물 나게 좋다"고 고백한다. 늙은 느티나무에 배긴 옹이와 할머니 휘어진 엄지손가락이 하나로 보이는 시인의 측은지심, 그리고 "노쇠한 밤나무 그루터기는/ 어머니의 현신"(「설레는 아침」)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심성이 김선중 시인을 시인답게 하고 있음을 본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바라보다
병실의 환자처럼
수액 주머니를 꽂고 있는 양버즘나무
도란대는 푸른 숲길 떠나
아스팔트 도로 옆에 거무뎅뎅한 모습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 생명체
너와 나와
이웃과
지구를
보호하려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아침
-「양버즘나무」 전문
학명인 플라타너스로 불리는 양버즘나무는 버즘나무의 한 종류로 도시의 가로수와 오래된 초등학교 운동장 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대부분이 넓은 잎나무인 양버즘나무는 가로수로서 도시에 푸르름을 제공하고 공해에 강하면서도 미세한 먼지나 매연을 정화하는 능력까지 갖춘 나무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해에는 강하다고는 하나 나무도 공해에 너무 찌들다 보면 병이 들 수밖에 없고 또한 병충해에도 약하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기도 하는데, 지금 시인이 "달리는 버스 차창을 바라보다/ 병실의 환자처럼/ 수액 주머니를 꽂고 있"는 것은 양버즘나무를 치료하기 위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수액을 꽂고 있는 양버즘나무의 현상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김선중 시인의 정신과 사상이 잘 들어나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양버즘나무를 통해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 생명체/ 너와 나의/ 이웃과/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환경이 중요한 시대에 공감을 주는 이유이다.
김선중 시인의 나무에 관한 시는 「양버즘나무」에서처럼 나무를 통해 시적 깨달음을 주는 시인의 사유의 깊이를 볼 수 있다. 즉, "아낌없이 주는 귀룽나무는/ 어느 사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믿으며 "마음도 꽃처럼 희게 살며/ 향기로운 사람으로"(「귀룽나무」) 살고자 다짐하고, 담쟁이넝쿨이 "기댈 수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담장이 없다면/ 혼자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염려하면서 "나도/ 누군가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담쟁이넝쿨을 보며」) 하고 자신을 성찰한다. 또한 풍선덩굴을 통해서는 "네가 있어/ 나도 있는/ 영원한 반려자"로서 "꿈을 낳고/ 사랑을 키워/ 포옹하며"(「풍선덩굴」)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
봄이 오니
그대 만나러 갑니다
꽃샘바람 등을 타고
누구보다 먼저
봄맞이하는 변산바람꽃
가녀린 어깨지만
불굴의 의지와
굳센 열정의
그대를 만나니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바라볼수록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희열을 주는
그대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꽃마중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꽃마중」 전문
봄이 오면 봄을 마중하기 위해 피어나는 꽃은 물론 이러한 꽃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설렌다. 이 시에서는 특히 "꽃샘바람 등을 타고/ 누구보다 먼저/ 봄맞이하는 변산바람꽃"을 노래하고 있다. 변산에서 채집된 바람꽃이라 하여 이름이 붙은 변산바람꽃은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르는 복수초와 함께 꽃샘바람과 쌓인 눈을 뚫고, 2월이면 가장 먼저 봄을 부르며 피어나는 꽃이다 보니 "가녀린 어깨지만/ 불굴의 의지와/ 굳센 열정"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변산바람꽃을 만난 시인은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부풀어" 오른다고, 그리고 "바라볼수록/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희열을" 준다고 감격하는 마음을 한사코 숨기지 않는다. 김선중 시인은 여기에서 시를 끝내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를/ 꽃마중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심정을 내보임으로써 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꽃마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데서 참으로 김선중 시인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김선중 시인다운 면모는 다음 작품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멀고 깊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전갈자리 꼬리 같은
긴 별빛이 밤길을 밝히고 있다
햇빛 비치는 바닥진 곳
고개 숙여 들여다보니
둥글게 말려 있는 어깨와
하늘 닮은 파란 낯빛은
기쁨을 밝혀준다
꽃마리는
오이 향기를 풍기며
높거나
낮거나
어둡거나
환하거나
묵묵히 뿌리내려
봄을 알리고 있다
-「꽃마리」 전문
꽃마리는 꽃이 필 때 꽃차례가 말려 있다는 뜻의 '꽃말이'를 소리 나는 대로 부르는 이름이다. 4월부터 피어 "봄을 알리고 있"는 꽃마리는 반그늘이나 양지쪽 "햇빛 비치는 바닥진 곳"에서 피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꽃으로 그렇게 작은 꽃에도 나비나 벌과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는 생명의 힘이 있다. 시인은 이 꽃을 보기 위해 "고개 숙여 들여다 보"면서 "둥글게 말려 있는 어깨와/ 하늘 닮은 파란 낯빛"에서 "기쁨을 밝혀"주는 꽃의 마음과 함께 한다. 꽃마리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 또는 '나의 행복'임을 알기에 꽃과의 교감이 가능한 셈이다. 나아가 시인으로서의 겸손함과 하심下心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꽃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선중 시인이 시적 대상으로서의 꽃과 교감하고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심성은 야래향夜來香이라고 불리는 달맞이꽃에서도 "안쓰러이 지켜보는/ 별빛 친구가/ 어둠을 헹구기 전에/ 한 자락 바람 되어/ 시린 가슴/ 향기를 품어주고 싶다"(「달맞이꽃」)는 마음과 함께 하고, 우포늪 등 내륙의 늪에 널리 분포 되어 있는 가시연꽃을 큰 돌확에 옮겨 심어 놓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린 결과 마침내 "공기를 뜯어내는 힘!"으로 "물 끓듯 주름진 가시철조망에서/ 붉은 꽃등이 합장하"(「가시연꽃」)는 감격을 체험하는 신비로움에 젖는다. 이 신비로움은 벼꽃이 피는 광경을 보고 "뙤약볕에/ 꽃잎도 없이/ 농부들의 땀방울일까/ 풀잠자리알 같은 밥꽃 피네/ 우리들의 생명 꽃 피네"(「벼꽃」)에서 절정을 이룬다.
텃밭을 분양받아
유박퇴비를 뿌린다
곡괭이와 삽을 깊숙이 넣어
묵은 밭을 갈아엎고
쇠갈퀴로 보드라운 등을 쓰다듬는다
물기 머금은 불그죽죽한 알몸의 지렁이
쨍한 햇살에 노숙자처럼 움츠리고 있다
곁방살이하는 나는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에
본향인 흙 속으로 보내고
동거하는 주민이 된다
쌈 채소의 씨앗을 파종하고
물 부은 구덩이에
싹이 난 수미감자도 심는다
생명을 잉태한 밭에 쪼그려 앉아
모든 것이 내 소유는 없는 거야
잠시 빌려 쓰는 거라고 되뇌인다
-「무소유」 전문
김선중 시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은 "아픔도 긍정의 힘으로 만드는/ 구순을 넘긴 노모"(「본보기」)를 보살피는 일과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텃밭을 분양받아" "묵은 밭을 갈아엎고" 평평하게 정리한 뒤 "쌈 채소의 씨앗을 파종하고/ 물 부은 구덩이에/ 싹이 난 수미감자도 심는다". 단순히 이와 같은 작업 상태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을 터. 시인은 이 텃밭의 작업 과정에서 "쨍한 햇살에 노숙자처럼 움츠리고 있"는 지렁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물기 머금은 불그죽죽한 알몸의 지렁이"를 지상으로 파내놓은 시인의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곧 시인을 시인답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지렁이를 "본향인 흙 속으로 보내고" 나서야 지렁이와 함께 이 땅에서 "동거하는 주민"이 되는 자격을 받는다. 동시에 "생명을 잉태한 밭에 쪼그려 앉아/ 모든 것이 내 소유는 없는 거야/ 잠시 빌려 쓰는 거라고" 깨닫는 삶의 성찰로 이어 간다.
그뿐이 아니다. "차일피일 미룬 숙제처럼/ 텃밭을 호미로 일구며/ 잡초와 씨름하"던 시인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잡초처럼 뽑혀 버릴"(「잡초를 뽑으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거나, 호미를 거머쥐고 텃밭을 매면서 "비스듬히 누워 하얗게 질려있는 한련초/ 떨고 있어 주름이 더 굵어 보이는 주름잎/ 김장 농사를 위해 화해는 없어/ 작고 여린 풀의 몸통을 뽑"으며, "한집에 동거한 풀도 식구"(「텃밭을 매며」)라고 생각하는 자연과의 합일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아가 곰취와 얼갈이 열무로 "봄 내음 가득/ 몸 깨우는 밥상" 앞에서 "나도/ 향기 나는 먹거리 될 수 있을까// 나도/ 서로 어우러지는 행복 밥상 될 수 있을까?"(「밥상」)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깊은 사유의 탐색인가.
나무 그늘에 앉아
무심코 발밑을 보다가
앙증맞은 꽃
눈에 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
잡초라고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세 장의 하트 잎이 예뻐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인다
한 잎은 "너를 사랑해"
두 잎은 "나를 사랑해"
세 잎은 "영원히 사랑해"
가세한 노랑꽃까지도
행복에 젖어든다
나도 너처럼
낮은 곳에 앉아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괭이밥」 전문
이 시는 얼른 보아서는 단순해 보이지만 김선중 시인의 삶의 성찰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고양이 밥이라는 뜻을 가진 괭이밥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피는 풀꽃이지만 키가 약 10~30c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앙증맞은 꽃"이다. 시인은 지금 "나무 그늘에 앉아/ 무심코 발밑을 보다가" 이 괭이밥을 발견한다. 평소 같으면 "잡초라고 거들떠도 안 보았"던 이 풀꽃을 발견하고 "세 장의 하트 잎이 예뻐/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인다". 그만큼 괭이밥과의 친밀감을 보여준 셈이다. 작은 잎 3장으로 된 겹잎인 괭이밥의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이며 한 장 한 장 "너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거기에 "가세한 노랑꽃까지도/ 행복에 젖어" 드는 건 결국 괭이밥과 시인의 합일정신에서 솟아난 결과에 다름아니다. 괭이밥의 꽃말이 '빛나는 마음'처럼. 그런데 김선중 시인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성찰, 즉 "나도 너처럼/ 낮은 곳에 앉아/ 사랑을 줄 수 있을까?"를 되돌아본다는 것, 바로 여기에 시인다움이 녹아 있음을 본다.
이러한 삶의 성찰은 빨래를 널면서 "힘들었던 흔적들/ 푸른 창공에 헹궈내고/ 아름다운 추억을/ 내 마음에 널어 본다"(「빨래」)거나, 부엌에서 칼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이 베어 상처로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살아있다는 것은/ 새로운 손금을 만드는 나이테/ 살아있다는 것은/ 지나간 상처와의 동행"(「흔적」)을 통해 나타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늘이 출렁이며 비바람이 요동치는 날, "오늘 새삼 알았다/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나를 흔드는 마음도/ 바람이었음을"(「바람 부는 날」) 깨닫고, 허공을 나는 새가 승용차 유리창에 하얀 물똥을 싸며 금세 날아가 버린 뒤 "속을 비워야/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고 자유로울 수 있"(「새똥」)음을 깨닫는 것들이 모두 시인의 삶을 통한 성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자연을 통한 생명 사랑과 삶의 성찰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보이는 것만 본다면
삶의 깊이도 없을 것이다
-「보이는 것」
인간과 자연은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이와 같은 간단한 이치를 망각하고 자연을 함부로 다루어 결국은 자연으로부터 재앙을 받기에 이른다. 생각하고, 듣고 이해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만이 아니라 나무와 꽃과 숲을 이루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도 인간 못지않게 같은 행위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인간과 자연이 동일 생명체라는 사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자연, 특히 숲은 오랜 시간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 소재이자 중심이었다.
김선중 시인은 2021년에 등단한 신인이지만 대학원에서 플로리스트를 전공한 화훼류 전문가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식물과 나무의 종류와 생태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 시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되면서 생명 현상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생명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과 깨달음의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김선중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의 특징은 숲과 나무와 꽃과 곤충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텃밭을 손수 가꾸며 텃밭의 생명들과 함께 사유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 아저씨로 유명한 류승철 선생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빛을 먹고 산다"(『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고 말한다. 그는 빛은 숲을 만들고 숲은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해준다고, 그리고 숲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숲이 품고 있는 빛과 지혜로움의 정신, 그리고 숲이 탄생시킨 뭇 생명들의 숨결 속에 김선중 시인의 시가 자리하고 있다.
비 온 후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청량하다
다람쥐는 엎드린 오대천을 일으키며
구불진 오솔길로 들어간다
아득한 옛날부터
스님과 방문객들이 다녔던
흔적의 울림으로
걷기 명상에 잠긴다
소나무 기둥의 섶다리, 지장교, 반야교를 지나
양파껍질처럼 허물을 벗고 있는 거제수나무 위
곤줄박이가 허물을 내민다
나를 찾아 글을 쓰라는 생각이 든다
상원사가 바로 앞인데
꿩의바람꽃 현호색 노루귀 바람까지도
지친 나를 깨운다
이곳은
내면 소리를 듣는 길
깨달음 길
道 찾는 길
와!
여기 오니
참 좋다
-「선재길」 전문
시인은 지금 비 그친 월정사 참나무 숲길을 걷고 있다.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사찰로 전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스님과 방문객들이 다녔던/ 흔적의 울림으로/ 걷기 명상에 잠긴" 길이 선재길이다. 선재길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화엄경의 선재 동자에서 따온 선재라는 이름의 길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가는 길 약 9km의 거리를 일컫는데, 선재길 입구에는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시인은 오랜 옛날부터 스님들이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걸었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명상에 잠긴다. "나를 찾아 글을 쓰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이 작품이 특별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전나무 숲길과 선재길을 걸었다, 가 아니라 이 숲을 이루고 있는 생명들, 즉 다람쥐와 거제수나무와 곤줄박이 나아가 꿩의바람꽃, 현호색, 노루귀 바람까지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인의 눈과 귀와 피부로 맞닿는 자연이 시인의 정신과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니 "와!/ 여기 오니/ 참 좋다"고 감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숲속 연주회」에서도 빽빽이 자란 나무숲에서 뻐꾸기, 휘파람새, 풀벌레들, 무당거미, 신갈나무 도토리, 다람쥐, 청설모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이고 시인은 지휘자가 된 것처럼 무아지경에 든다. 그야말로 "기쁨과 행복의 숲"(「숲길」)이 아닐 수 없다.
깊은 계곡에 들어가며
먼저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하자
움찔하는 천마산
둥글게 모여 웅성이는 구경꾼 사이로
녹색 보료에 다소곳이 앉아
길게 붙인 속눈썹을 떨고 있는 처녀치마
마치 시집가는 날
당고모 모습 같다
멀리 떠나
지금은 무얼 할까
생각에 잠겨
그리는 사이
숲속 길 개울물 소리
박새 소리 따라와
당고모는
내 안에 같이 있다
-「그리는 사이」 전문
천마산 "깊은 계곡에 들어가며/ 먼저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누가 깊은 계곡에 들어가면서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하겠는가. 처음 받는 이 황공한 인사에 천마산도 그만 움찔한다. 이 살아있는 생명성을 보라.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 이 정도면 가히 시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단순히 꽃과 나무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면 이 시는 그냥 그런 시가 될 터이나 "녹색 보료에 다소곳이 앉아/ 길게 붙인 속눈썹을 떨고 있는 처녀치마"를 발견하고, 봄에 일찍 피는 꽃 중의 하나로 누런 낙엽 사이로 풀잎은 안 보이고 꽃대만 보이는 이 처녀치마가 마치 치마폭을 펼쳐놓은 듯 꽃잎이 고운 풀이기에 "시집가는 날/ 당고모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은 무얼 할까/ 생각에 잠겨" 그리워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과 숲과의 깊은 사유의 공간은 「여우비 오시는 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바람결 따라/ 서로 다른 몸짓을 하는/ 숲"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훑고 지나가는 여우비를 맞으며 숲의 저마다의 생명들이 내뿜는 "날숨"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 날숨은 곧 비의 다양한 내음으로 전이되어 "할머니 몸빼에 밴 듯한 흙 내음", "연꽃 핀 연못의 향긋하며 비릿한 내음". "푸른 숲길의 이끼 향 같은 내음"을 비에서 맡으며 화장품 따위의 향을 전문적으로 조합하는 "조향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제 시인은 이 공간의 한 일원으로서 비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풍성한 향기로 남는/ 내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유의 깊이에 침잠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새로이 발견한다. 숲의 생명성은 곧 자신의 생명성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의 발견과 통찰력은 먹물버섯이 "너 하나를 위해/ 내가 있고/ 온 우주가 있"(「먹물버섯」)다고 말해주고 있음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시골 동네 입구에
오고 가는 사람을 맞이하는
옹이 배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생각난다
경단처럼 노란 콩가루에 밥을 돌돌 말아주시고
손톱 밑이 까맣도록 구운 감자를 벗겨 주시고
가장 몫을 대신하는 희생으로
논밭 갈고 삯바느질하며
호미 같이 휘어진 엄지손가락
나무도 가슴에 맺힌 사연이 많으면
옹이가 지는 걸까
파문을 새겨넣듯 주름진 나무를 쓰다듬는다
옹이 난 상처를 휘어진 손가락인 양 주무른다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예쁘다지만
나는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호미 같이 휘어진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눈물 나게 좋다
-「휘어진 엄지손가락」 전문
인류에게 나무는 자연에서 가장 정답고 친숙한 생명체이다. 그러기에 나무는 신비로운 존재로 추앙받기도,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해주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휘어진 엄지손가락」에는 시적 대상으로 느티나무가 등장한다. 일명 규목槻木이라고도 불리는 느티나무는 대개 시골의 어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어른들은 이를 정자나무 또는 당산나무라 부른다. 나무의 특성상 골고루 퍼진 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잎사귀로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니 그 그늘 아래 평상 하나 놓으면 어느 정자 부럽지 않기에 정자나무이며, 마을 사람들이 한 해에 한 번씩 이 나무 아래 모여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니 당산나무인 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명기되지는 않았으나 "옹이 배긴 오래된 느티나무"라 했으니 느티나무의 특성상 어린 느티나무 때에는 보이지 않는 줄기의 껍질이 두툼하게 벗겨졌을 터. 그래서 시인은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느티나무가 세월이 갈수록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며 한 삶을 지탱해왔듯 할머니의 엄지손가락은 "가장 몫을 대신하는 희생으로/ 논밭 갈고 삯바느질하며" 고생을 감내하시느라 엄지손가락이 호미 같이 휘어졌다. 따라서 할머니의 옹이 배긴 엄지손가락은 오래된 느티나무에 배긴 옹이와 같다는 시적 인식이 우선 남다르다.
그래 시인은 "파문을 새겨넣듯 주름진 나무를" 쓰다듬다가 나무의 "옹이 난 상처"를 할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인 양" 주물러준다. 주물러주며 "나는/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호미 같이 휘어진/ 할머니 엄지손가락이 눈물 나게 좋다"고 고백한다. 늙은 느티나무에 배긴 옹이와 할머니 휘어진 엄지손가락이 하나로 보이는 시인의 측은지심, 그리고 "노쇠한 밤나무 그루터기는/ 어머니의 현신"(「설레는 아침」)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심성이 김선중 시인을 시인답게 하고 있음을 본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바라보다
병실의 환자처럼
수액 주머니를 꽂고 있는 양버즘나무
도란대는 푸른 숲길 떠나
아스팔트 도로 옆에 거무뎅뎅한 모습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 생명체
너와 나와
이웃과
지구를
보호하려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아침
-「양버즘나무」 전문
학명인 플라타너스로 불리는 양버즘나무는 버즘나무의 한 종류로 도시의 가로수와 오래된 초등학교 운동장 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대부분이 넓은 잎나무인 양버즘나무는 가로수로서 도시에 푸르름을 제공하고 공해에 강하면서도 미세한 먼지나 매연을 정화하는 능력까지 갖춘 나무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해에는 강하다고는 하나 나무도 공해에 너무 찌들다 보면 병이 들 수밖에 없고 또한 병충해에도 약하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기도 하는데, 지금 시인이 "달리는 버스 차창을 바라보다/ 병실의 환자처럼/ 수액 주머니를 꽂고 있"는 것은 양버즘나무를 치료하기 위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수액을 꽂고 있는 양버즘나무의 현상만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김선중 시인의 정신과 사상이 잘 들어나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양버즘나무를 통해 "우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 생명체/ 너와 나의/ 이웃과/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환경이 중요한 시대에 공감을 주는 이유이다.
김선중 시인의 나무에 관한 시는 「양버즘나무」에서처럼 나무를 통해 시적 깨달음을 주는 시인의 사유의 깊이를 볼 수 있다. 즉, "아낌없이 주는 귀룽나무는/ 어느 사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고 믿으며 "마음도 꽃처럼 희게 살며/ 향기로운 사람으로"(「귀룽나무」) 살고자 다짐하고, 담쟁이넝쿨이 "기댈 수 없고/ 의지할 곳 없는/ 담장이 없다면/ 혼자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염려하면서 "나도/ 누군가의/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담쟁이넝쿨을 보며」) 하고 자신을 성찰한다. 또한 풍선덩굴을 통해서는 "네가 있어/ 나도 있는/ 영원한 반려자"로서 "꿈을 낳고/ 사랑을 키워/ 포옹하며"(「풍선덩굴」)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
봄이 오니
그대 만나러 갑니다
꽃샘바람 등을 타고
누구보다 먼저
봄맞이하는 변산바람꽃
가녀린 어깨지만
불굴의 의지와
굳센 열정의
그대를 만나니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바라볼수록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희열을 주는
그대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꽃마중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꽃마중」 전문
봄이 오면 봄을 마중하기 위해 피어나는 꽃은 물론 이러한 꽃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설렌다. 이 시에서는 특히 "꽃샘바람 등을 타고/ 누구보다 먼저/ 봄맞이하는 변산바람꽃"을 노래하고 있다. 변산에서 채집된 바람꽃이라 하여 이름이 붙은 변산바람꽃은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르는 복수초와 함께 꽃샘바람과 쌓인 눈을 뚫고, 2월이면 가장 먼저 봄을 부르며 피어나는 꽃이다 보니 "가녀린 어깨지만/ 불굴의 의지와/ 굳센 열정"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변산바람꽃을 만난 시인은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부풀어" 오른다고, 그리고 "바라볼수록/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희열을" 준다고 감격하는 마음을 한사코 숨기지 않는다. 김선중 시인은 여기에서 시를 끝내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를/ 꽃마중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 심정을 내보임으로써 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꽃마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데서 참으로 김선중 시인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김선중 시인다운 면모는 다음 작품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멀고 깊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전갈자리 꼬리 같은
긴 별빛이 밤길을 밝히고 있다
햇빛 비치는 바닥진 곳
고개 숙여 들여다보니
둥글게 말려 있는 어깨와
하늘 닮은 파란 낯빛은
기쁨을 밝혀준다
꽃마리는
오이 향기를 풍기며
높거나
낮거나
어둡거나
환하거나
묵묵히 뿌리내려
봄을 알리고 있다
-「꽃마리」 전문
꽃마리는 꽃이 필 때 꽃차례가 말려 있다는 뜻의 '꽃말이'를 소리 나는 대로 부르는 이름이다. 4월부터 피어 "봄을 알리고 있"는 꽃마리는 반그늘이나 양지쪽 "햇빛 비치는 바닥진 곳"에서 피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꽃으로 그렇게 작은 꽃에도 나비나 벌과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는 생명의 힘이 있다. 시인은 이 꽃을 보기 위해 "고개 숙여 들여다 보"면서 "둥글게 말려 있는 어깨와/ 하늘 닮은 파란 낯빛"에서 "기쁨을 밝혀"주는 꽃의 마음과 함께 한다. 꽃마리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 또는 '나의 행복'임을 알기에 꽃과의 교감이 가능한 셈이다. 나아가 시인으로서의 겸손함과 하심下心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꽃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선중 시인이 시적 대상으로서의 꽃과 교감하고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심성은 야래향夜來香이라고 불리는 달맞이꽃에서도 "안쓰러이 지켜보는/ 별빛 친구가/ 어둠을 헹구기 전에/ 한 자락 바람 되어/ 시린 가슴/ 향기를 품어주고 싶다"(「달맞이꽃」)는 마음과 함께 하고, 우포늪 등 내륙의 늪에 널리 분포 되어 있는 가시연꽃을 큰 돌확에 옮겨 심어 놓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린 결과 마침내 "공기를 뜯어내는 힘!"으로 "물 끓듯 주름진 가시철조망에서/ 붉은 꽃등이 합장하"(「가시연꽃」)는 감격을 체험하는 신비로움에 젖는다. 이 신비로움은 벼꽃이 피는 광경을 보고 "뙤약볕에/ 꽃잎도 없이/ 농부들의 땀방울일까/ 풀잠자리알 같은 밥꽃 피네/ 우리들의 생명 꽃 피네"(「벼꽃」)에서 절정을 이룬다.
텃밭을 분양받아
유박퇴비를 뿌린다
곡괭이와 삽을 깊숙이 넣어
묵은 밭을 갈아엎고
쇠갈퀴로 보드라운 등을 쓰다듬는다
물기 머금은 불그죽죽한 알몸의 지렁이
쨍한 햇살에 노숙자처럼 움츠리고 있다
곁방살이하는 나는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에
본향인 흙 속으로 보내고
동거하는 주민이 된다
쌈 채소의 씨앗을 파종하고
물 부은 구덩이에
싹이 난 수미감자도 심는다
생명을 잉태한 밭에 쪼그려 앉아
모든 것이 내 소유는 없는 거야
잠시 빌려 쓰는 거라고 되뇌인다
-「무소유」 전문
김선중 시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은 "아픔도 긍정의 힘으로 만드는/ 구순을 넘긴 노모"(「본보기」)를 보살피는 일과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텃밭을 분양받아" "묵은 밭을 갈아엎고" 평평하게 정리한 뒤 "쌈 채소의 씨앗을 파종하고/ 물 부은 구덩이에/ 싹이 난 수미감자도 심는다". 단순히 이와 같은 작업 상태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을 터. 시인은 이 텃밭의 작업 과정에서 "쨍한 햇살에 노숙자처럼 움츠리고 있"는 지렁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물기 머금은 불그죽죽한 알몸의 지렁이"를 지상으로 파내놓은 시인의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곧 시인을 시인답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지렁이를 "본향인 흙 속으로 보내고" 나서야 지렁이와 함께 이 땅에서 "동거하는 주민"이 되는 자격을 받는다. 동시에 "생명을 잉태한 밭에 쪼그려 앉아/ 모든 것이 내 소유는 없는 거야/ 잠시 빌려 쓰는 거라고" 깨닫는 삶의 성찰로 이어 간다.
그뿐이 아니다. "차일피일 미룬 숙제처럼/ 텃밭을 호미로 일구며/ 잡초와 씨름하"던 시인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잡초처럼 뽑혀 버릴"(「잡초를 뽑으며」)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거나, 호미를 거머쥐고 텃밭을 매면서 "비스듬히 누워 하얗게 질려있는 한련초/ 떨고 있어 주름이 더 굵어 보이는 주름잎/ 김장 농사를 위해 화해는 없어/ 작고 여린 풀의 몸통을 뽑"으며, "한집에 동거한 풀도 식구"(「텃밭을 매며」)라고 생각하는 자연과의 합일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아가 곰취와 얼갈이 열무로 "봄 내음 가득/ 몸 깨우는 밥상" 앞에서 "나도/ 향기 나는 먹거리 될 수 있을까// 나도/ 서로 어우러지는 행복 밥상 될 수 있을까?"(「밥상」)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깊은 사유의 탐색인가.
나무 그늘에 앉아
무심코 발밑을 보다가
앙증맞은 꽃
눈에 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
잡초라고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세 장의 하트 잎이 예뻐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인다
한 잎은 "너를 사랑해"
두 잎은 "나를 사랑해"
세 잎은 "영원히 사랑해"
가세한 노랑꽃까지도
행복에 젖어든다
나도 너처럼
낮은 곳에 앉아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괭이밥」 전문
이 시는 얼른 보아서는 단순해 보이지만 김선중 시인의 삶의 성찰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고양이 밥이라는 뜻을 가진 괭이밥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피는 풀꽃이지만 키가 약 10~30c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앙증맞은 꽃"이다. 시인은 지금 "나무 그늘에 앉아/ 무심코 발밑을 보다가" 이 괭이밥을 발견한다. 평소 같으면 "잡초라고 거들떠도 안 보았"던 이 풀꽃을 발견하고 "세 장의 하트 잎이 예뻐/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인다". 그만큼 괭이밥과의 친밀감을 보여준 셈이다. 작은 잎 3장으로 된 겹잎인 괭이밥의 잎을 따서 손등에 붙이며 한 장 한 장 "너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거기에 "가세한 노랑꽃까지도/ 행복에 젖어" 드는 건 결국 괭이밥과 시인의 합일정신에서 솟아난 결과에 다름아니다. 괭이밥의 꽃말이 '빛나는 마음'처럼. 그런데 김선중 시인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성찰, 즉 "나도 너처럼/ 낮은 곳에 앉아/ 사랑을 줄 수 있을까?"를 되돌아본다는 것, 바로 여기에 시인다움이 녹아 있음을 본다.
이러한 삶의 성찰은 빨래를 널면서 "힘들었던 흔적들/ 푸른 창공에 헹궈내고/ 아름다운 추억을/ 내 마음에 널어 본다"(「빨래」)거나, 부엌에서 칼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이 베어 상처로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살아있다는 것은/ 새로운 손금을 만드는 나이테/ 살아있다는 것은/ 지나간 상처와의 동행"(「흔적」)을 통해 나타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늘이 출렁이며 비바람이 요동치는 날, "오늘 새삼 알았다/ 항상 내 곁에 있었지만/ 나를 흔드는 마음도/ 바람이었음을"(「바람 부는 날」) 깨닫고, 허공을 나는 새가 승용차 유리창에 하얀 물똥을 싸며 금세 날아가 버린 뒤 "속을 비워야/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고 자유로울 수 있"(「새똥」)음을 깨닫는 것들이 모두 시인의 삶을 통한 성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목차
목차
1부
흔적
바람 부는 날
여우비 오시는 날
하나뿐인 손주
청양
우리 엄마 시장 갔다 오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휘어진 엄지손가락
우산
아픈 웃음
본보기
빨래
2부
괭이밥
가시연꽃
꽃마리
풍선덩굴
그리는 사이
꽃 마중
오색주전골의 봄
달맞이꽃
감자꽃
청산도 해당화
바다의 꽃섬
담쟁이넝쿨을 보며
3부
선재길
설레는 아침
연분
숲속 연주회
갈매기
깃동잠자리
호랑나비 애벌레의 꿈
왕사마귀
연리근連理根
엉또폭포
재인폭포
비수구미계곡과 파로호
임진강가를 거닐며
4부
무소유
새똥
보이는 것
귀룽나무
양버즘나무
숲길
새끼오리
후투티의 수난
잡초를 뽑으며
텃밭을 매며
밥상
예송 검은 몽돌 해변
연천 역고드름
5부
벼꽃
자귀나무
빈 병
부부
격려
깨달음
한반도
소우주
경계
잉태
풍장
먹물버섯
응시
느티나무의 고백
달을 품다
소망
쑥개떡
달빛 천사
기다림
공동체
시집해설_ 허형만 시인
흔적
바람 부는 날
여우비 오시는 날
하나뿐인 손주
청양
우리 엄마 시장 갔다 오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휘어진 엄지손가락
우산
아픈 웃음
본보기
빨래
2부
괭이밥
가시연꽃
꽃마리
풍선덩굴
그리는 사이
꽃 마중
오색주전골의 봄
달맞이꽃
감자꽃
청산도 해당화
바다의 꽃섬
담쟁이넝쿨을 보며
3부
선재길
설레는 아침
연분
숲속 연주회
갈매기
깃동잠자리
호랑나비 애벌레의 꿈
왕사마귀
연리근連理根
엉또폭포
재인폭포
비수구미계곡과 파로호
임진강가를 거닐며
4부
무소유
새똥
보이는 것
귀룽나무
양버즘나무
숲길
새끼오리
후투티의 수난
잡초를 뽑으며
텃밭을 매며
밥상
예송 검은 몽돌 해변
연천 역고드름
5부
벼꽃
자귀나무
빈 병
부부
격려
깨달음
한반도
소우주
경계
잉태
풍장
먹물버섯
응시
느티나무의 고백
달을 품다
소망
쑥개떡
달빛 천사
기다림
공동체
시집해설_ 허형만 시인
저자
저자
김선중
2021《 시와편견》 등단
동인시집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 공저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화정시회 동인-꽃우물 詩우물
단국대 디자인대학원 졸업
한국마사회 플로리스트
고양신문 마을숲 코디네이터
동인시집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 공저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화정시회 동인-꽃우물 詩우물
단국대 디자인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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