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인형의 바람(시와편견 서정시선 76)
고바다 시집
고바다 시인의 첫 시집 「바람 인형의 바람」에는 다채로운 삶의 이력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열람하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시로 승화시켰기에 시를 읽는 즐거움이 앞선다. 무엇이든 어떻게 시로 나타내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게 되면 스스로 빛을 내며 밝아지는 시를 경험하게 된다. 고바다 시인의 시집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늦가을 각양각색의 낙엽이 지고 있는 풍경을 곁에 두고 고바다 시인의 시 세계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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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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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섭 시인
고바다 시인의 첫 시집 「바람 인형의 바람」에는 다채로운 삶의 이력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열람하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시로 승화시켰기에 시를 읽는 즐거움이 앞선다. 무엇이든 어떻게 시로 나타내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게 되면 스스로 빛을 내며 밝아지는 시를 경험하게 된다. 고바다 시인의 시집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늦가을 각양각색의 낙엽이 지고 있는 풍경을 곁에 두고 고바다 시인의 시 세계로 들어가 본다.
1. 아버지의 집, 엄마의 엄마
우리는 모두 가족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청년기까지 안 좋은 쪽으로 특별하게 여겨졌던 가족사라도 대부분 나이 들어 돌이켜보면 용납 가능한 가족사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식이 부모 나이가 되어 보면 더 그럴 것이다. 어느 때에는 그토록 원망스럽고 어느 때에는 사무치게 아프기도 하다가 어느 때에는 애타게 그립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을 거치는 것이다.
고바다 시인의 시집에 나타난 가족사 역시 특별함에서 용납에 이르는 원만한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 「뿌리의 연좌제」에서 시인의 "아버지는 무당의 양아들"이었다고 한다. 또 할머니는 무병을 앓았다고도 한다. 무당에게 아들을 맡길 정도로 할머니는 무신에 빠졌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태에서 무당의 양아들로 살게 된 아버지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시인은 "아버지의 숨은 이야기"를 짐작하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시에서 '아버지'는 집을 짓는 목수에 비유되었다. 아버지가 지은 집, 그러니까 아버지만의 세상은 "수백 채"(「뜨거운 집만 짓는」)에 달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시인에게 아버지는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나 보다. "들어갈 문도 없고 앉아 쉴 방도 없던"(「뜨거운 집만 짓는」) 아버지의 집에 시인이 거주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이 생긴다. 결국 시인은 부처의 세계에 들어가 자기만의 집을 짓기로 한다. '가출'까지 하면서 아버지를 떠나온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청년기의 가족사는 평범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스스로 결정했거나 그렇지 않았던 것만 빼면 부처의 세계에 귀의한 시인의 이야기나 할머니 곁을 떠나 무당의 양아들로 살게 된 아버지 이야기나 그 형식은 서로 닮아 있다. 가출을 한 시인은 가족의 '연좌제'에서 그리 멀리 떠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들어 보니 용납하게 된 것인지 몰라도 시인은 돌고 돌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당신이 지은 집은
언제나 돌아가야 할 마지막 목적지
오랫동안 서성이던 길 위에는
성장통에 유년을 기웃거리던 꽃이 피었고
돌아서 돌아서 만났던 그 길 끝에 걸어둔
등롱 하나 간절한 이름으로 타오르고
- 「당신의 집은」 부분
아버지와는 다르게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다. 어머니 역시 가슴 아픈 가족사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인다. 꿈에서라도 "많이많이 보고 싶은 내 동생"(「흐르는 물도 닮아가는」)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이다. 그런 어머니와 "그리움으로 이어진 한 유전자"(「흐르는 물도 닮아가는」)를 나눠가진 시인에게 어머니는 이제 보살펴 드려야할 존재가 되었다.
툭툭 불거진 뼈 마디마디오방색 연등 걸어두고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야지가장 순결한 꽃 잎 속에사무친 이름 적어두고꼭 한 번은 지워 드리고 싶은저승꽃시들 줄 모르고 피어나는 저승꽃
- 「시들 줄 모르고 피어나는」 부분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야지"라는 시인의 발화는 애가로 들린다. 사랑의 노래이기도 하고 슬픔의 노래이기도 하다. "저승꽃"으로 상징되는 죽음에 가까워진 '엄마'를 지키고 싶은 시인은 '엄마'의 심정으로 '엄마'를 곁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저승꽃"은 "시들 줄 모르고 피어나는"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지금, 여기서 시인은 '엄마의 엄마'가 되고자 한다.
시인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뿌리'와도같이 이어진 자양이자 '연좌'이다. 고바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뿌리'라는 낱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 '뿌리'는 새잎을 키우는 뿌리(「우뭇가사리, 웃는」), 살아갈 밥을 주는 뿌리(「수련이 꿈꾸는 세상」), "어둠 속에 양분을 모으는 뿌리"(「흑단목에 새긴 지도」) 등 어린 생명을 키우고 밥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고바다 시인의 의식 속에는 분명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선한 생명성과 애틋한 부모애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이다.
2. 당신과의 이별과 새로운 시작
이번 시집에는 '당신'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은 일관적이지 않다. 시인의 굴곡진 삶이 느껴져 숙연해진다. 시인에게 '당신'은 "내 한 쪽을 주고 싶"(「흔들리지 않는 벽이」)었던 사람이다. 삼십 년을 함께 살며 "바다를 통째로 삼키는"(「복국 한 그릇」) '복어'처럼 서로 닮아온 사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같이 오래 살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같은 마음으로 살았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별은 오래 살았어도 한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이고 같은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멀어질 때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도 보이지 않는 당신당신과 나 서로 석순을 키웠네한 치 두 치 자라난 무관심은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고우리는 서로 딴 곳을 바라보며돌아누웠네한때 내자장가였던 당신 숨소리화석이 된 우리들의 사랑가당신의 숨소리도나의 체온도 떠나간 침대보이지 않는 상처만 가득한우리들의 꽃자리
- 「낯선 방」 부분
"함께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마음이 떠난 것이다. 느리게 자라는 "석순"처럼 한번에는 아니고 세월 따라 조금씩 조금씩 자라난 "무관심"과 "보이지 않는 상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 비극일 것이다. 시에서 "서로 딴 곳을 바라보며" 돌아누운 장소는 "당신의 숨소리도/나의 체온도 떠나간 침대"이다. '침대'는 같이 사는 사람들을 엮어주는 가장 일차원적인 장소여서 한 곳에 기거하였으나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화석이 된" 두 사람의 근원적인 이별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이 파국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시인이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거인들이 서로 '무관심'에 도달하는 과정은 느리고 미세하다. 그것은 예견되는 상처의 아픔을 피하고자 하는 방어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생하고, 참고, 가식적으로 대하는 나날이 반복된다.
사진 속의 당신 웃고 있는데가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굽혀지지 않는 허리에 힘을 주고당신을 읽는다당신에게 내 한 쪽을 주고 싶었지내 곁에서 코를 골며 깊이 잠든 휜 등 어루만져 주는 일절박한 꿈을 토해 놓는 당신을 내 안에 가두고
빠르게 도착하는 아침을 속이는 일당신의 언덕이 되어당신의 배경이 되어당신을 더 빛나게 해 주는 일
- 「흔들리지 않는 벽이」 부분
아침에 일어나 곁에서 아직 잠을 자고 있는 '당신'은 이제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즉물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때는 "내 한 쪽을 주고" 싶었을 정도로 사랑하는 '당신'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함께 웃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시인은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가면"을 쓰고 "아침을 속이는" 가식의 나날은 '당신'을 "더 빛나게 해 주는 일"이라는 자기기만으로 이어진다. 삼십 년을 같이 살아온 사이가 멀어지고 있는 때인데 누군들 명징하게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시는 시집의 여타의 시들에 비해 조금은 불분명하게 시인의 마음을 비춰내고 있다. 복잡다단한 심경이 행간에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시인은 이 애절한 애씀의 생활조차도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제 안타까운 이별의 장면을 그린 시를 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가로수 가지를 쳐내고 있다몸통만 남은 나무
흔들릴 이유가 사라진다
말없이 매운 국물 홀짝이며당신 속내를 훔쳐보는 시간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쳐내며독하게 살아왔던환지 통으로 잠 못 들었던잘려 나간 내가잘려 나간 당신이기억의 문밖에서 울고 있다
(중략)
당신과 나의 이야기
쉼표를 찍는다
- 「그날, 짬뽕 한 그릇」 부분
법원을 나온 두 사람은 좋아하지도 않는 짬뽕으로 둘만의 마지막 식사를 한다. '당신'도 '나'도 같은 입장, 같은 생각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잘려 나간" 것은 누구의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에 겪는 통증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억 문밖에 서로를 밀쳐내고 "울고 있다". 시인이 보여주는 이별의 장면은 한편으로는 우울하지만 한편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심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가지를 다 쳐내고 함께 살며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날들에서 벗어나 이젠 "흔들린 이유가 사라진" "몸통만 남은 나무"가 되었다. 시인은 안도의 심리를 슬쩍 비친 것이다.
그런데 시의 끝에서 시인은 "당신과 나의 이야기"에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를 찍는다". 쉼표는 말 그대로 잠깐 쉬는 것이다. 쉼 다음에는 다시 이어지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집에서는 '당신'은 제외하고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가 다수 포착된다. 다음 장에서는 그 '나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3. '몸'이라는 육체성과 삶의 의지
고바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 대해 특정한 경로를 따라 어떠한 지점에 이르렀다는 과학적 논구는 편협된 시 읽기일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시는 그렇게 틀에 꿰어 맞추며 보는 예술이 아닌 것이다. 다만 시집의 시 몇 편에서 특징적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 중 한 가지를 찾아보기 위해 '대상 상실'과 관련된 프로이트의 연구를 상기해 보고자 한다. '대상 상실'이란 이른바 '사랑의 대상'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은 부모, 스승, 존경하는 인물, 친구, 남편, 아내 등등 누구나 될 수 있다. '대상 사실'이라는 큰 사건을 겪게 된 사람의 심리는 '애도'와 병적인 '우울'이라는 두 가지 심리 상태로 전이된다. 애도는 '대상 상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마음 한 쪽에 '대상'을 남겨두지만 그 상태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심리적 행위이다. 반대로 병적인 우울은 '대상 상실'을 부정하고 그 상실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심리, 즉 나르시시즘으로 변이되고 자신을 책망하거나 자신을 위로하며 깊은 침울 속에 빠져버린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경우의 우울을 극복해 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심각한 우울증에 힘겨워하는 것이다.
고바다 시인의 시집에서 '대상 상실'은 대체로 '당신'과의 이별을 통해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시집의 곳곳에서 시인은 자기 자신, 구체적으로는 '몸'이라는 육체성에 경도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대상 상실'이 '몸'으로 대변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경로로 나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울'까지 나아가진 않고 있다. 뒤에 말하겠지만 여기에는 시인이 갖고 있는 '낭만성'이라는 기질적인 성격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집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인의 '육체성'에 대한 발화는 '대상 상실'과 '기질적 성격'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실적 감응이라고 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을 건너온 꽃은 색을 놓고
색을 바꾼 나무는 무슨 꿈을 꿀까?
온도가 바꾸는 계절의 신비로움
그렇게 모든 세상은 한 꺼풀 색을 놓거나
또 다른 색을 더하거나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자
구르는 돌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는데
몸살이 새벽 비 탓일까?
습기를 품에 안은 이유가 있었겠지
몸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몸의 말에 화해를 청한다
- 「몸의 말」 부분
"몸살"에 걸린 "몸이 말을 하고 있다"라는 발화는 '몸'을 타자화하고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적 태도는 자아가 분열됐을 때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이 클 때 드러난다. 그것을 우리는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한다. 그렇다면 몸의 타자화는 어떻게 자기애와 관련되는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는 자기 외부로 시선이 향하게 된다. 반대로 자기 외부에서는 자기 자신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더 잘 들여다 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더 잘 들여다 보려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행위이다. 시인은 그러한 자기 자신인 "몸의 말에 화해를 청한다". 무슨 일로 화해를 청하는 것인지는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자"라는 발화에 나타나 있다. 계절도 꿈도 바뀌지만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태도는 곧 변화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이다. 시인은 변화를 거부하려 했기 때문에 자기의 '몸'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고 이제는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몸-자기 자신'에게 화해를 시도한다. 이 또한 그 기저에서는 자기애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앞서 '대상 상실'은 그러한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자기애로 변이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고바다 시인의 위 시에서는 '대상 상실'을 인정하면서, 즉 변화를 인정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육체성'에 대한 '자기애'로 나아가고 있는 특이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우울'에 이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로에는 고바다 시인 고유의 낭만적 기질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낭만성은 '대상 상실'도 '자기애'도 동시에 끌어안는 긍정적 포괄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 낭만성은 자기애를 넘어 삶의 의지를 가다듬게 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두고 온 뿌리는 새잎을 키우고 있겠지요물이 없으면 흔들릴 수조차 없나요내 몸을 뚝뚝 잘라삶의 도면 다시 그려보려 해요바람도 멍이 드는 세상붉은 기 다 내놓고잊혔거나 사라졌거나
- 「우뭇가사리, 웃는」 부분
섬에서 뭍으로 시집을 온 시인은 집에 "뿌리"를 두고 왔다고 여긴다. 뿌리는 뿌리대로 새잎을 키우며 살고 있겠고 떠나온 "내 몸"으로 시인은 새로운 "삶의 도면 다시 그"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섬의 집을 떠나온 상황도 '대상 상실'의 한 종류다. 그러나 시인은 그 흔한 실망이나 슬픔에 잠기지 않고 억척스럽게 "몸을 뚝뚝" 잘라내면서까지 삶을 헤져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멈춘 시계가 시간을 "절명 시켜도 기어코 몰려오는 허기"(「손목시계」)를 채워야하는 삶, 복권 번호가 맞지 않아 "어긋난 숫자 같은 삶"(「희망을 고문하는」)의 운세를 원망하는 삶을 살면서도 천혜의 낭만성으로 지금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세상에서 삶의 의욕과 행복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아래의 시에서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다.
손가락에도 눈물샘이 있다는 거 아세요다섯 손가락 모두 다른 눈물샘의 깊이영역표시처럼 새겨놓은 지문 가득한 집아침부터 밤까지 재잘거리는 손가락뺨에 대면 심장 뛰는 온도가 전해집니다
예쁜 옷을 만지는 순간 내게 없던 눈이 생겨났어요덧옷 껴입은 여름이 세상의 귀한 빛깔로떠오를 때 열 개의 반달은 만월로 차올라요처음부터 학습된 것은 없었어요손가락 마디마다 고인 실금이 가자는 데로갔을 뿐이지요
- 「손가락 눈물」 부분
4. 간절한 초월성
시인의 낭만성이 작동하는 곳은 삶의 현장뿐만이 아니다. 고바다 시인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 그 낭만성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결부되어 있다. 이 해설의 제목으로도 변용한 제목의 시 「물에 가둔 불」에서 시인은 "발효되는 꿈 풀어가며/익어가긴 하는 건가요."라며 잘 익은 술처럼 언젠가 잘 발효되어 익을 시에 대한 인내와 기대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낭만적 '몸'에 깃든 '불'과 같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시를 기다린다는 것. 시인이 가질 법한 낭만적인 기다림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삶은 늘 치열해야 하고 그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래하고 싶어요하지만 자꾸 울고 있어요좋아하는 당신을 앞에 두고도마음을 보일 수 없는
목소리
나는 염소가 된 거잖아요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심장의 기억은그대로 남아있는데활자가 점점 씨앗처럼 작아지며풀이 돋아나는 거예요주술에 걸린 게 분명해요
책을 먹고 있었지요아니 푸른 풀을 뜯고 있었던 거지요
- 「독서에 대한 변병」
독서에 대해 "변명"을 한다는 것은 시인이 일반적인 독서 행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는 "책을 먹고", "풀을 뜯"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먹어야 하는 존재는 일반적인 독자가 아니라 책을 통해 무언가를 해내는 독자인 것이고, 결국 위 시에서 "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이라는 존재로 귀결된다. 그러나 시인은 "노래"를 하고 싶어도 "울고" 있는 존재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존재다.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독서를 하고 시를 쓰는 존재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시인이라는 존재의 영역에서 "나"는 "마음을 보일 수 없는/목소리"로만 조심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바라는 곳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기를 시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발을 달라고 기도"하며 "퀴퀴한 진흙더미에서 빠져나와" "자유"(「수련이 꿈꾸는 세상」)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초월로의 간절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또 시인은 부처의 세계인 "수미산"(「어디 있는가 수미산은」)을 찾아 나선다. 현실에 대한 초월 추구는 많은 사람들이 지향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쉽게 이룰 없는 것이기에 그 추구는 긴 시간 지속적이어야 하고,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가야 하고 그만큼 간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시인은 아래 시와 같이 '초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는 세월을 견디는 걸까 건너가는 걸까 새겨지지 않는 사랑은땀방울 되어 사라지는데 갓 태어난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산고의 시간 당신의 말라버린심장에 솟구치는
무성한 잡초들 칼질해대는 기억들 기억들의 악다구니 당신은 말없이 바느질 하고 한 땀 한 땀 바늘이 지나가는 곳마다영원히 지지 않는 꽃 한 송이피어나고
- 「개화」
가편(佳篇)이다.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산고의 시간"으로 보고 있다. 또 쓸데없는 "기억들"을 "바느질"하며 지나간 바늘의 자리에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산고의 시간"은 "세월을 견디는" 것이며 "바느질" 하는 것은 "세월을 건너가는" 것이다. 이렇게 써서 가편이다. 세월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앞서서도 아니고 "개화" 과정을 세심하게 펼쳐놓아서도 아니다. 세월과 개화를 견디기도 하고 건너기도 한다는 인식으로 엮어놓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인고의 시간을 초월하여 피어난 세월-꽃을 선사하고 있다. 시인의 초월의식이 이제 "개화"한 것이다.
고바다 시인의 첫 시집과의 조우는 여기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고바다 시인은 우리 세계에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이 세계 이후 또 어떤 세계를 시로 피워낼지 우리는 또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것이다.
목차
목차
그날, 짬뽕 한 그릇
오일장 소식
그날, 짬뽕 한 그릇
우뭇가사리, 웃는
알을 품다
수련이 꿈꾸는 세상
산을 오르며
신호에 걸리다
어디에 있는가, 수미산은
장미 소식
가시
개화
그때라는 말
몸의 말
2부
낮게 나는 꿈
뜨거운 집만 짓는
흔들리지 않는 벽이
낮게 나는 꿈
살아있다는 알림 문자
흐르는 물도 닮아가는
당신의 집은
시들 줄 모르고 피어나는
집으로 가는 길은
뿌리의 연좌제
노란 완장
복국 한 그릇
낯선 방
어머니가 나에게 내가 내 딸에게
3부
손가락 눈물
흑단목에 새긴 기도
버스 인포메이션 시스템
종이컵을 자르다
손가락 눈물
물에 가둔 불
무장아찌 보고서
헤어 라이브
바람 속 영혼
혼밥 주의注意
거울 대화
바람 인형의 바람
4부
흐르는 골목
독서에 대한 변명
책장을 도굴하던 날
인력시장
손목시계
회귀回歸로
흑산도 아가씨
흐르는 골목
희망을 고문하는
조용한 퇴장
잔소리
완경기
구룡사에 가면
짝사랑을 끝내다
시집해설_ 윤의섭 시인
저자
저자
2022년 첫 시집「바람 인형의 바람」 상재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운영위원
시편작가회 동인
동인지 『탑의 그림자를 소환하다』외 6권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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